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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bbie Harry “누군들 David Bowie를 사랑하지 않았나요?”

데이빗 보위의 Low와 이기팝의 The Idiot의 발매에 따른 순회공연에 팝과 보위가 이 젊은 밴드를 데리고 다니는 등 “보위가 [블론디의] 장래의 성공에 큰 역할을 했다” 고 믿는다며 블론디의 싱어는 말을 이어갔다. “그들은 블론디가 그들을 위해 오픈 공연을 해주길 바랬고, 나머지는 역사에요. 이 몽상가와 그의 친구 이기팝이 아니었다면 오늘날의 블론디가 있었을까요?”[전문 보기]

Bowie Di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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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ina Turner – Private Danc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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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inaTurnerPrivateDancer” by http://www.allmusic.com/album/private-dancer-mw0000196120. Licensed under Wikipedia.

1984년 5월 29일 Tina Turner의 다섯 번째 솔로 앨범 “Private Dancer”가 발매되었다. John Carter 등 4개의 프로덕션 팀이 프로듀스한 이 앨범은 유명한 애비로드 스튜디오 이외에도 런던이나 영국의 다른 도시 스튜디오 등 다양한 곳에서 1983년 9월부터 약 7개월에 걸쳐 녹음작업을 진행했다. 당시 Tina Turner는 1976년 Ike Turner와 이혼한 후 솔로 뮤지션으로서의 경력을 계속 쌓아오던 중이었다. 새 매니저 Roger Davies의 도움으로 캐피톨 레코드사와 계약을 체결할 수 있었던 Tina는 새로운 경영진이 들어서면서 앨범도 만들기 전에 버림받을 뻔 했었다. 그러나 운명은 David Bowie가 뉴욕에서 임원들과 저녁을 함께 먹으면서 바뀌었다. 저녁식사가 끝날 무렵 David Bowie가 “내가 좋아하는 가수 Tina Turner를 보러 갈 예정이에요.”라 말했고 임원들은 The Ritz에서 Tina의 공연을 함께 보았다. 열정적인 공연을 본 그들은 그녀를 버리려는 당초 생각을 바꾸고 즉시 그녀를 스튜디오에 투입했다. Tina는 Al Green의 고전 “Let’s Stay Together”를 커버하기 위해 Heaven 17의 Martyn Ware, Ian Craig Marsh와 함께 작업했다. 이 노래는 R&B 차트 3위, 팝 차트 26위에 오르는 성적을 거두었다. 그 싱글의 성공 덕택에 캐피톨 레코드사는 그녀에게 정식 앨범의 취입을 요구했다. 앨범에는 많은 정상급 뮤지션들이 힘을 보탰는데 이 중에는 Jeff Beck, Wilton Felder, Joe Sample, Dire Straits, The Fixx 등이 있다. “Private Dancer”에서는 싱글 차트 1위에 오른 “What’s Love Got To Do With It”를 비롯하여 다섯 개의 싱글이 연속으로 히트했다. 앨범은 빌보드 R&B 앨범 차트 1위에 올라 1주간 머문다. 탑200에는 3위까지 올랐다. 1985년 그래미상 시상식에서는 6개 부문의 후보에 올라 ‘레코드오브더이어’ 등을 포함 4개 부문을 수상했다. 이 앨범은 전 세계적으로 2천만 장 이상이 팔린 것으로 추산된다.

Let’s Danc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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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etsDance” by Own photo. Licensed under Wikipedia.

1983년 5월 21일 David Bowie의 “Let’s Dance”가 빌보드 핫100차트 1위에 올라 1주간 머문다. David Bowie가 작곡한 이 곡은 Bowie에게 있어서는 두 번째로 미국 차트 1위의 기쁨을 선사한 곡이다. 1982년 EMI와 계약을 맺은 Bowie는 EMI에서의 첫 앨범을 위해 Chic의 Nile Rodgers와 함께 작업을 했다. 녹음을 시작하기 전에 Bowie는 Rogers에게 “Let’s Dance”를 포함하여 자신이 만든 곡들을 들려주었다. “Let’s Dance”는 원래 12현의 기타 연주로 데모 작업을 했기 때문에 완성된 곡과 거의 닮지 않았다. Rodgers는 이 곡을 업템포 댄스락으로 변신시켰다. 녹음 작업은 1982년 12월 뉴욕에 있는 파워스테이션에서 진행되었다. 녹음은 단지 3주 만에 완료됐다. “Let’s Dance”는 Tony Thompson이나 Nile Rodgers와 같은 특급 뮤지션들의 연주로 포장되었는데, 당시에는 무명의 블루스 기타리스트였던 Stevie Ray Vaughan도 기타 솜씨를 보태주었다. Bowie의 열다섯 번째 스튜디오 앨범은 1983년 3월에 발매되었다. “Let’s Dance”는 1983년 3월 26일 핫100 차트에 59위로 데뷔했다. Bowie는 이 곡의 인기로 신세대 팬층을 형성할 수 있게 되었다.

뮤직비디오

Let’s Dance

1983년 4월 14일 David Bowie의 열다섯 번째 스튜디오 앨범 “Let’s Dance”가 발매되었다. Nile Rodgers와 David Bowie가 프로듀스한 이 앨범은 1982년 겨울 뉴욕시에 있는 파워스테이션에서 녹음되었다. Nile Rodgers는 이 앨범을 위해 Chic의 동료였던 Bernard Edwards(베이스), Tony Thompson(드럼) 등의 최고급 수준의 연주자들을 모았다. 특히 당시에는 무명에 가까웠던 블루스 기타리스트 Stevie Ray Vaughn에게 리드 기타를 맡기기도 했다. 앨범은 단 3주 동안에 녹음을 마쳤는데 이 앨범은 Bowie의 앨범 중에서 가장 상업적으로 성공한 앨범이 되었다. 타이틀 곡 “Let’s Dance”는 핫100 싱글 차트 1위에 올랐으며 “China Girl”과 “Modern Love”도 각각 10위와 14위에까지 오르는 성적을 거두었다. Bowie는 1983년 이 앨범의 판촉을 위해 “Serious Moonlight World Tour” 라는 이름의 순회공연을 가졌다. 1983년 9월 12일 뱅쿠버에서 열린 공연은 홈비디오로 제작됐는데 그래미상의 “최고의 뮤직비디오” 부문에 노미네이트되기도 했다.

David Bowie의 생일, 새 싱글, 새 앨범

1월 8일은 David Bowie의 생일이었다. 생일을 맞아 보위는 팬들에게 큰 선물을 주기로 맘먹었는데, 바로 새로운 싱글 “Where Are We Now?”다. 이 싱글과 함께, 2003년에 발표된 Reality이후 처음으로, The Next Day란 이름의 신보도 발표할 예정이다. 이 앨범에는 14개의 새로운 곡이 담겨질 예정이며, 그의 오랜 동료 Tony Visconti와의 협업 하에 만들어 졌다.

더 자세한 소식 읽기

The Next Day
1. “The Next Day”
2. “Dirty Boys”
3. “The Stars (Are Out Tonight)”
4. “Love Is Lost”
5. “Where Are We Now?”
6. “Valentine’s Day”
7. “If You Can See Me”
8. “I’d Rather Be High”
9. “Boss of Me”
10. “Dancing Out in Space”
11. “How Does the Grass Grow”
12. “(You Will) Set the World on Fire”
13. “You Feel So Lonely You Could Die”
14. “Heat”
Bonus tracks:
15. “So She”
16. “I’ll Take You There”
17. “Plan”

Bowie, Davi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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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vid-Bowie Chicago 2002-08-08 photoby Adam-Bielawski-cropped” by Photographer: Photobra|Adam Bielawski
Derivative work: Y2kcrazyjoker4David-Bowie_Chicago_2002-08-08_photoby_Adam-Bielawski.jpg. Licensed under CC BY-SA 3.0 via Wikimedia Commons.

1947년 영국 런던에서 출생한 데이빗 보위(David Bowie; 본명 David Robert Jones)는 영국의 가장 위대한 록스타 중 한명으로 96년 로큰롤 명예의 전당에 헌정된 슈퍼스타이다. 30여년이 넘는 기간 동안 팝 역사에 커다란 족적을 남긴 그는 항상 새로운 문화적 트랜드의 가장 전위에 있었으며 음악적인 면에서도 아방가르드적인 실험정신과 도전을 추구해 왔다. 물론 어떤 면에서 그의 행적은 상당 부문 마케팅 상술의 일종-이를 테면 70년대 충격적인 ‘게이선언’등-으로 비춰지는게 사실이지만 ‘지기 스타더스트’로 상징되는 ‘스페이스 록’, 그리고 기존의 권위와 성정체성의 혁명을 불러일으킨 특유의 글래머러스한 분위기는 60∼70년대 수많은 젊은이들과 전위적인 예술가들을 열광시키며 새로운 경향을 형성했었다.

데이빗 보위는 불우한 어린 시절을 보낸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의 부모는 그가 태어날 때까지 결혼을 하지 않은 상태였고 형은 정신질환을 앓고 있었으며 꽤나 과격한 성격이었던지 그는 거리에서 싸움질을 하다가 왼쪽 눈의 동공이 영구적으로 확장되는 사고를 당하기도 했다. 그러나 그에게는 다행히도 음악이라는 분출구가 있었다. 어린 시절부터 척 베리(Chuck Berry), 팻츠 도미노(Fats Domino), 엘비스 프레슬리(Elvis Presley) 같은 미국의 선구적인 록뮤지션들을 접하며 자란 그는 기타를 배우기 시작했고 나중에는 색소폰 연주까지 익히기 시작한다(보위의 색소폰 실력은 73년도에 발표한 루 리드(Rou Reed)의 [Walk on The Wild Side]에서 발휘되었다).

브롬리 기술 고등학교(Bromley Technical High School)에서 상업미술을 공부한 그는 콘-라즈(Kon-Rads)라는 밴드를 만들었다가 다시 동창인 조지 언더우드(George Underwood)와 함께 64년에 킹 비스(King Bees)를 조직해 영국 차트에 랭크된 싱글 ‘Liza Jane’을 발표한다. 그리고 10월에는 다시 런던을 근거지로 하고 있던 매니쉬 보이스(Manish Boys)에 들어가 EMI의 팔로폰 레이블과 계약을 맺는다.

이듬해에 그는 매니쉬 보이스를 떠나 로우어 써드(The Lower Third)를 조직하고 [You’ve Got A Habit of Leaving]을 발표한다. 66년에 로우어 써드는 파이 레코드(Pye Records)로 자리를 옮기고 그는 데이빗 존스라는 이름 대신 데이빗 보위라는 예명을 사용하기 시작한다. 데이빗 보위 앤 로우어 써드(David Bowie & The Lower Third)는 파이 레코드에서 [Can’t Help Thinking about Me](66)를 발표(미국에서는 워너 브러더스에서 발매)하지만 앨범을 내놓자마자 보위는 솔로 아티스트로 전향해 66년 5월 솔로 싱글앨범 [Do Anything You Say]를 선보인다.

67년에는 그의 솔로 데뷔앨범 [The World of David Bowie]를 발표해 평론가들의 호평을 받았지만 앨범 판매량은 미미했다. 이렇게 별 주목을 받지 못하고 단명해버린-그러나 수년 후에 메이저 레이블에서 재발매되면서 뒤늦게 히트하는-[The Man Who Sold The World], [Hunky Dory]등 몇몇 앨범을 계속 만들어내던 그에게 본격적으로 대중의 관심이 쏠리기 시작한 것은 72년 미국 시장으로 진출해 재발표한 [Spacy Oddity]의 공이 크다. 이 앨범은 ‘스페이스 록(Space Rock)’이라는 신조어를 팝씬에 대두시키며 커다란 논쟁거리를 제공했다. 이보다 몇 달 앞서 발표한 문제작 [The Rise And Fall of Ziggy Stardust And The Spiders from Mars] 또한 스페이스록과 글램록(Glam Rock)의 시초가 된 음반이다. 짙은 화장과 밤무대에나 어울릴 듯한 빤짝이 의상, 망사 스타킹, 하이힐, 심할 때는 드레스로 몸을 휘감고 등장한 중성적인 데이빗 보위의 퍼포먼스는 당시의 성정체성을 일거에 무너뜨리기 충분했고 21세기가 되면 모든 사람들의 성구별이 모호해지면서 대부분의 사람들이 동성애자, 혹은 양성애자가 될 것이라는 보위의 말 또한 엄청난 파장을 일으키며 퍼져나갔다. 이무렵 보위는 RCA 레코드사에서 재이슈시킨 [The Man Who Sold The World](90년대에 너바나 가 타이틀곡을 리메이크해 히트시키기도 했다)의 재킷에 여왕으로 분장한 채 등장하기도 했다. 열풍처럼 불어닥쳤던 글램록은 루 리드 , 이기 팝(Iggy Pop) , 브라이언 이노(Brion Ino), 퀸(Queen) , 토킹 헤즈(Talking Heads), 휴먼 리그(Human League) , 컬처 클럽(Culture Club) , 프리텐더스(The Pretenders), 듀란 듀란(Duran Duran), 소닉 유스(Sonic Youth), 스매싱 펌킨스(Smashing Pumkins) 등 수많은 뮤지션들에게 영향을 끼쳤다. 그러나 정작 데이빗 보위는 2년여의 시간이 흐른 뒤 글램록에서 완전히 손을 떼고 또다시 새로운 변화를 모색한다(양성애적인 이미지의 대명사였던 그는 이후 거의 모든 무대에 단정한 정장 차림으로 서기 시작했다).

1975년에 이르러 싱글 ‘Fame’이 최초로 US 차트 정상에 오르는 쾌거를 올렸으며 소울과 펑크(Funk)의 퓨전앨범 [Young American]도 골드를 기록하는 등 그의 인기가 치솟아갔다. 그러나 이와 때를 같이 해 보위는 더 이상 앨범 제작도 투어도 하지 않을 것이라며 은퇴를 선언한다. 그 동안에도 ‘Fame’, ‘Changes’ 등은 여전히 팬들에게 애청되고 있었으며 ‘Velvet Goldmine’같은 곡은 UK 차트 1위에 랭크되기도 했다.

은퇴 선언이 무색하게도 이듬해에 보위는 [Station To Station]을 발표해 UK 차트(5위)와 US 차트(3위) 톱텐에 올려놓고 미국 순회공연에 나서는데 투어 도중 이기 팝 을 비롯한 몇몇 뮤지션들과 매사추세츠 호텔에서 마리화나를 흡연하다 체포되어 2천달러의 벌금을 물기도 한다. 77년에는 브라이언 이노와의 합작품 [Low]에서 어둡고 밀도 높은 신디사이저 사운드를 선사했으며 [The Man Who Fell The Earth]로 “US Academy SF Fantasy Horro Films Award”에서 남우주연상을 수상한다. 앰비언트 음악의 대가로 기억되는 브라이언 이노와 보위는 80년 초반 몇몇 작품에서 합작하지만 두 사람의 명성에도 불구하고 그다지 뛰어난 결과물을 얻지는 못했다.

80년대 초반 그는 [Just A Gigolo]라는 지저분한 영화에 출연해 구설수에 오르기도 하고 부인 앤젤라와 이혼하는 등 불운한 시기를 맞이한다. 그러나 얼마 후 퀸 과 함께 한 싱글 ‘Under Pressure’가 히트하고 기타리스트 스티비 레이 본(Stevie Ray Vaughan) 이 피쳐링한 [Let’s Dance](83)가 플래티넘을 기록하면서 어려움을 넘긴다. 또 영화 [캣 피플]의 사운드트랙을 제작해 찬사를 받았으며 브로드웨이 뮤지컬 [Elephant Man]에 등장하는 한편 프랑스의 여배우 까뜨린 드뇌브와 함께 영화 [The Hunger]에 출연하는 등 배우로서의 재능도 과시했다. 80년대에 들어서 그는 70년대만한 인기는 누리지 못했지만 매우 바쁜 행보를 계속하며 활발한 활동을 보였다. 이전에 “정신적 퇴폐가 빚어낸 소음”이니 “정신상태가 의심스럽다”고 개탄했던 평론가들이 서서히 그에게 호감을 표시하기 시작한 것도 이 무렵이다.

85년도에는 “Live Aid Concert” 무대를 빛냈는가 하면 퓨전재즈 그룹인 팻 매시니 밴드(Pat Metheny Band)와 영화 [The Falcon And The Snowman]의 테마곡 ‘This Is Not America’를 녹음하고 롤링 스톤스(Rolling Stones) 의 믹 재거(Mick Jagger)와 함께 ‘Dancing in The Street’를 리메이크해 US 차트 톱텐에 올려놓는다. 87년에 발표한 [Never Let Me Down] 또한 차트 상위권에 진입하고 골드를 기록하는 등 히트 행진을 계속하였으며 5월에는 앨리슨 모이엣(Alison Moyet), 빅 컨트리(Big Country), 테렌스 트렌트 다비(Terence Trent D’Arby) 등을 게스트로 초대해 글래스 스파이더(Glass Spider) 투어를 대대적으로 벌인다.

80년대가 저물어갈 무렵 그는 리브스 가브렐스(Reeves Gabrels 리드기타), 토니 세일즈(Tony Sales 베이스, 보컬), 헌트 세일즈(Hunt Sales 드럼, 보컬) 등의 라인업으로 새 밴드 틴 머신(Tin Machine)을 결성한다. 틴 머신은 셀프타이틀 앨범 [Tin Machine](89)과 [Tin Machine Ⅱ](91)를 발표하지만 별 반응을 끌어내지 못한 채 얼마 못가 해체되고 말았다. 이후 보위는 다시 솔로로 활동을 개시해 [Black Tie White Noise](93), 브라이언 이노와의 콜라보레이션 [Outside](95) 등을 발표해 노익장을 과시했다. 97년 1월 그의 50번째 생일을 기념하여 마련한 “매디슨 스퀘어 가든 콘서트” 실황은 [Earthling]이란 앨범으로 제작됐으며 99년 9월에는 그의 최근작 [Hours]가 발매돼 시들지 않는 뮤지션의 열정을 보여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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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스코그래피
1969 Man of Words/Space Oddity Mercury
1969 Space Oddity/Man of Words/Man of Music Atlantic
1969 Space Oddity Virgin
1970 The Man Who Sold the World Virgin
1971 Hunky Dory Virgin
1972 The Rise & Fall of Ziggy Stardust Virgin
1973 Aladdin Sane Virgin
1973 Pin-Ups Virgin
1974 David Live Rykodisc
1974 Diamond Dogs Virgin
1975 Young Americans Virgin
1976 Station to Station Virgin
1977 Low Virgin
1977 Heroes Virgin
1978 Prokofiev’s Peter and the Wolf RCA
1978 Stage [live] Rykodisc
1979 Lodger Virgin
1980 Scary Monsters (And Super Creeps) Virgin
1982 Christiane F. Wir Kinder [Original… RCA
1983 Let’s Dance Virgin
1984 Tonight Virgin
1987 Never Let Me Down Virgin
1990 The Rise & Fall of Ziggy Stardust [Bonus… Rykodisc
1993 Black Tie White Noise Virgin
1995 Outside Virgin
1995 The Buddha of Suburbia Virgin
1995 Christiane F./Baal/Rarities Remembering
1997 Earthling Virgin
1998 Space Oddity [Bonus Tracks] Rykodisc
1999 Outside [Australia] BMG
1999 Low [Bonus Tracks] Virgin
1999 Heroes [Bonus Tracks] Virgin
1999 Let’s Dance [Bonus Tracks] Virgin
1999 Hours Virgin
2000 Outside [Import Bonus Tracks] MVP Japan
2000 Earthling [Australia Bonus CD] BMG
2001 Hours [Japan Bonus Track] EMI
2001 Rarest Live MF
2002 Rarest One Bowie [Bonus Tracks] [live] Japanese
2002 Heathen [Japan Bonus Track] Japanese
2002 Heathen Columbia
2002 Heathen [Bonus Disc] ISO
2002 Heathen [12×12 Special Package] ISO
2002 The Rise & Fall of Ziggy Stardust [30th… Virgin
2002 Heathen [SACD] ISO/Columbia
2002 David Live at the Tower Philadelphia
2002 Lodger [Bonus Tracks] Ryk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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