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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ff Course(オフコース)

Off Course(오프코스, オフコース) 는 일본의 영향력있는 포크락 밴드였다. 1969년  카나가와 현 요코하마시 의 聖光학원 고등학교에 재학 중이던 오다 가즈마사(小田和正)와 스즈키 야쓰히로(鈴木康博)등이 중심이 되어 만든 이 밴드는 1970년 싱글 “群衆の中で”(군중의 안에서)로 데뷔하였다. 결성 7년째인 1976년에는 기타, 베이스, 키보드 등을 보강하여 밴드의 진용을 갖춘다. 이후, “さよなら”(안녕), “言葉にできない”(말로 할 수 없다)1 등의 수많은 히트곡을 양산했지만 TV프로그램에는 거의 출연하지 않고 레코드 제작과 콘서트에만 주력하는 개성을 유지했다. 1982년 스즈키가 탈퇴하는 등의 위기도 있었지만 이후 활동을 지속하다가 1989년 2월 26일 도쿄돔에서의 공연을 마지막으로 해체했다. 가성을 쓰지 않으면서도 여성의 음역까지 올라가는 하이톤이라서 오프코스의 곡들은 대체로 청아한 느낌의 발라드다. 그룹의 중심인 오다는 그룹 해체와 동시에 솔로 활동에 나섰고 1991년 TV시리즈였던 도쿄러브스토리의 주제가로 발매한 “ラブストーリーは突然に”(러브 스토리는 돌연히)는 오리콘 1위를 기록하고 270만 장이 넘은 판매량을 기록했다. 오프코스의 가장 큰 특징이라면 메인 보컬을 맡은 오다 가즈마사의 존재감이다.

오프코스 일본 위키
오다 가즈마사 엔하위키
오다 가즈마사 위키백과
뮤직비디오

  1. 이 곡은 동방신기가 리메이크하기도 했다

Oye, Erlend

Erlend oye.jpg
Erlend oye” by Mike Mantinhttp://www.flickr.com/photos/mikemike/191919371/. Licensed under CC BY 2.0 via Wikimedia Commons.

Erlend Øye는 Kings of Convenience라는 노르웨이 출신의 인디팝 듀오의 키타리스트이다. 이 듀오는 컴퓨터 뮤직이 소프트하게 연출된 최신 팝발라드를 생산해내어 많은 인기를 얻었다. 2001년 내놓은 앨범 Quiet Is the New Loud의 성공 이후 Øye는 보다 좋은 음악을 만들고 싶은 욕심이 생겼지만 파트너인 Erik Glambek Bøe 는 심리학 공부에 더 흥미를 느꼈고 일종의 캐리어로써의 음악만들기에 큰 관심을 보이지 않았다. Øye는 그래서 동료 노르웨이 그룹인 Royksopp와 함께 일하기 시작했다. 이를 통해 그의 솔로프로젝트가 탄생하였다. 핀란드의 음악 패스티발 이후 레코딩에 들어간 그는 2003년 앰비언트 댄쓰 앨범 Unrest를 내놓았다. 이 앨범은 유럽내 열 개의 도시에서 열 명의 다른 협력자들과 작업한 열 개의 싱글이 들어간 특이한 앨범이다. 이 협력자들 중엔 Soviet, Prefuse 73, Schneider TM 등이 있다. 부드럽게 다듬어진 컴퓨터 뮤직과 Øye의 멜랑꼬리하면서도 온기가 느껴지는 보컬이 조합된 각각의 싱글들은 10개의 도시를 돌아다니며 작업한 수고가 아깝지 않을 정도의 순도를 유지하고 있다.

디스코그래피
2003 Unrest [Japan Bonus Track] [Virgin]
2003 Unrest [Astralwerks]

링크
Official Site

Other Two, The

The Other Two는 New Order의 멤버인 Stephen Morris(기타/키보드) 와 Gillian Gilbert(프로그램/퍼커션) 가 별도로 작업한 프로젝트 밴드였다. 기본적으로 New Order 의 그루브한 리듬감에 기초한 신쓰팝을 선보였던 이들은 1994년 첫 앨범 The Other Two & You를 내놓았다. 이 앨범을 내놓기 전인 1991년에는 히트싱글 Tasty Fish를 내놓았고 2년 후에는 다시 싱글 Selfish를 내놓았다. 또한 다양한 영화와 TV 시리즈에서 작업하기도 했다. 1999년에는 두 번째 앨범 Superhighways를 내놓았다.

디스코그래피
1993 The Other Two & You Qwest
1999 Superhighways
Polygram International

Orlando, Bobby

그 스스로도 뛰어난 가수였던 프로듀서 Bobby Orlando – 또는 Bobby “O” – 는 그의 인디레이블에서에 발표한 일련의 디스코 앨범과 Hi-NRG 앨범을 통해 80년대의 하나의 전설이 되었다. 어릴 적 Alice Cooper 와 T. Rex 를 즐겨듣던 Orlando는 클래식 학교의 학위를 거부하고 한 글리터 밴드에서 키타를 쳤다.

이후 디스코에 감명 받은 Orlando 는 1977년 Todd Forester의 ‘Dancin’이라는 곡의 엔지니어를 담당했다. 이 곡은 Orlando 가 극복하려고 노력했던 신디사이저의 천재 Giorgio Moroder 에 의해 개발된 베이스라인을 흉내 내고 있다. 1980년 그는 Lyn Todd 의 앨범 작업을 주도했다. 이후 O 레코드사를 설립했다. 이후 첫 발매한 Barbie & the Kens의 “Just a Gigolo”와 I Spy의 “Change of Life”가 빌보드 댄스차트에서 인기를 얻는다. 디스코가 점차 인기를 잃어감에도 불구하고 Orlando 는 굴하지 않고 Roni Griffith의 “Desire”나 Waterfront Home의 “Take a Chance on Me”과 같은 디스코 넘버를 발표하고 클럽에서 인기를 얻었다. 역시 1980년에 Divine – Pink Flamingo 의 히로인인 그 추녀 컬트 스타 – 이 Orlando 를 찾아와 프로듀싱을 의뢰한다. 이 둘은 악명 높기로 성공적이었던 몇몇 싱글을 발매한다. 특히 “Native Love”는 하나의 클럽찬가로 남게 된다.

그 후 Orlando 는 자신이 쓴 곡을 불러줄 미녀 트리오 Flirts 를 조직한다. 이들은 고정된 멤버가 아니라 몇 명의 미녀들이 때에 따라 교체되는 특이한 시스템이었는데 오늘날 우리 가요계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그런 시스템이기는 하다. Orlando 의 Nunzio Brocheno 프로덕션은 또한 Lisa Lisa & Cult Jam 과 Full Force 의 곡을 프로듀스한다. 이러한 언더그라운드 컬트 무브먼트는 Hi-NRG 라 이름 붙여졌다.

그리고 드디어 그의 팬이자, Smash Hits 의 평론가이자, Pet Shop Boys 의 보컬을 맡고 있는 Neil Tenant가 그를 찾아온다. Orlando 는 “West End Girls”, “One More Chance” 등의 초기 버전을 프로듀스하는 등 이 위해단 영국 출신 신스팝 듀오의 출발을 돕는다(Pet Shop 소년들도 이 부분에 대해서 그들의 역사를 담은 다큐멘터리에서 비교적 자세히 이야기하고 있다). Pet Shop Boys 는 이후 EMI로 떠나갔고 국제적인 명성을 얻게 된다. 이후 그는 점차 자신의 스튜디오에 그리 큰 정을 쏟지 않게 된다. 엉뚱하게도 그는 진화론을 반박하는 Darwin Destroyed 라는 책을 쓴다. 90년대에 또 다른 레이블인 Reputation 레코드사를 시작하였다.

그는 팝시장에서 하나의 뛰어난 프로듀서 이상의 의미를 지니고 있단. 거의 모든 악기를 혼자서 다루는 일종의 ‘일인밴드(One Man Band)’에다 프로듀서까지 담당한 그의 음악은 촘촘한 신디사이저, 반복적인 베이스라인, 그리고 울림이 큰 퍼커션 등 일관되게 흐르는 음악적 특징이 있었고, 이것이 유럽의 댄스뮤직의 형성에 큰 영향을 미쳤기 때문이다. 솔로 아티스트로서의 그는 또한 “She Has a Way”, “A Man Like Me”, “I’m So Hot for You”같은 히트곡을 남기기도 했다.

디스코그래피

1983 Freedom in an Unfree World Hot Productions
1995 His Banana Republic Hot Productions
2005 Outside the Inside Radikal
2005 Excited Radikal

링크

위키피디어
팬페이지
소개글

Orchestral Manoeuvres in the Dark

OMD 2011.JPG
By monophonic.grrrlOMD -Orchestral Manoeuvres In The Dark- @ CORONA CAPITAL 2011, CC BY-SA 2.0, Link

O.M.D.는 일렉트로닉 팝의 역사를 말할 때 결코 빼놓을 수 없는 중요한 역할을 담당했다. 초기 음산하고 고딕적인 음악을 구사했던 이들은 독일 테크노 신에 비해 엄청나게 미미했던 영국에 테크노 음악이 대중적으로 성공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심어주었으며 신스팝으로 대표되는 일렉트로닉 팝의 연대기를 시작한 기념비적인 밴드이다.

Paul Humphreys와 Andy McCluskey가 중심멤버인 리버풀 태생의 씬쓰팝 그룹 O.M.D(Orchestral Manoeuvers in the Dark) 70년대 후반에 결성되었다. Humphreys와 McCluskey는 학창시절부터 VCL XI, Hitlerz Underpantz, 그리고 the Id와 같은 밴드에서 그들의 경력을 쌓아나갔다. the ID가 1978년 해체한 후 McCluskey는 Dalek I Love You라는 밴드에 잠시 몸담았다. 밴드를 탈퇴한 그는 Humphreys와 Paul Collister와 함께 Orchestral Manoeuvers In The Dark를 조직하였다. 그룹은 Factory 레코드사에서 첫싱글 Electricity를 발매했다. 이로 말미암아 그들은 Virgin의 계열사인 DinDisc와 계약을 체결할 수 있었다. 계약선금을 가지고 그들은 스튜디오를 만들었다. 그리고 드러머 Malcolm Holmes(the Id의 전멤버)와 Dave Hughes(Dalek I Love You의 전멤버)와 함께 트랙 네개를 녹음했다.

1980년에 그룹은 셀프타이틀 앨범을 데뷔 앨범으로 내놓았다. 반응은 바로 나타났다. Enola Gay는 영국에서 탑텐에 올랐다. Hughes는 탈퇴하고 Martin Cooper가 그 자리를 메꿨다. 이어진 그룹의 앨범들에서 — Architecture and Morality (1981), Dazzle Ships (1983), Junk Culture (1984) — 그들은 매우 실험적인 사운드를 선보였다. 새로운 멤버 Graham Wier과 Neil Weir가 함께 한 Crush는 그들의 앨범중 가장 팝에 가까운 앨범인데 영국에서 보다는 미국에서 성공하였다. So in Love는 챠트 26위까지 올랐고, 영화 Pretty in Pink에 삽입된 If You Leave는 챠트 4위까지 오르며 그들의 최고의 히트곡이 되었다. 이 앨범을 낸 직후 Weir 형제가 그룹을 떠났다. 나머지 멤버들은 1991년 Sugar Tax를 내놓았다. Humphreys는 잠시 the Listening Pool을 조직하기도 했다. Sugar Tax의 상업적 실패이후 O.M.D는 1993년 Liberator를 선보였다. 그러나 역시 외면당했다. Universal을 내놓은 후 1998년 베스트집을 선보였다.

Country: U. K. (Liverpool)
Genre: Electro Pop
Members:
O.M.D. : Andy McCluskey, Paul Humphreys, Dave Hughes, Martin Cooper, Malcom Holmes, Graham Weir, Neil Weir
The Listening Pool: Paul Humphreys, Martin Cooper, Malcom Holmes
Dalek I (Love You): Alan Gill, Dave Hughes, Dave Balfe, Chris Teepee, Gordon Hon, Keith Hartley, Kenny Peers, Andy McCluskey, Marin Cooper
Godot: Dave Hughes & Keith Hartley
Affiliates: The Listening Pool, Delek I (Love You), Godot, Big In Japan, The Teardrop Explodes
Connections: Elektric Music
Labels: Virgin , Inevitable [Dalek I]

디스코그래피
1980 Orchestral Manoeuvres in the Dark [Virgin]
1980 Organisation [Virgin]
1981 Architecture & Morality [Virgin]
1983 Dazzle Ships [Virgin]
1984 Junk Culture [A&M]
1985 Crush [A&M]
1986 The Pacific Age [A&M]
1991 Sugar Tax [Virgin]
1993 Liberator [Virgin]
1996 Universal [Virgin]

링크
OFFICIAL OMD WEBSITE
Virgin의 OMD 싸이트
Fan Site
Pet’s OMD Page
OMD Web
Facebook 공식페이지

Orange Juice

스코틀랜드의 네오팝의 중심에 섰던 Orange Juice는 1976년 글래스고에서 처음 결성되었다. 당시 밴드의 이름은 Nu-Sonics였는데 보컬과 키타를 맡았던 Edwyn Collins, 키타 James Kirk, 베이스 David McClymont, 드러머 Steven Daly 등으로 구성되었다. 1979년 이들은 이름을 Orange Juice로 바꾸고 Collins의 제자격인 Alan Horne이 설립한 레이블 Postcard의 선봉에 서게 된다. 당시 이들은 펑크의 마초적인 공격성에 대한 거부감을 표하며 로맨티시즘과 인디펜던트팝의 적극적인 옹호자로 자리매김하게 된다. 1980년의 데뷔싱글 “Falling and Laughing” 은 “Blueboy,” “Simply Thrilled Honey”, “Poor Old Soul” 등의 싱글이 연속으로 발표되었다. 곧 정식 데뷔앨범을 위한 작업에 착수하게 되었는데 이 와중에 Orange Juice는 Postcard를 떠나 Polydor와 계약을 체결하게 되었다. 1982년 You Can’t Hide Your Love Forever라는 이름의 데뷔앨범 발표후 Josef의 Malcolm Ross가 그룹에 가입하였다. 이로 인해 그룹멤버는 다소간의 조정을 거쳐야 했다. 이와중에 Zimbabwe 태생의 드러머 Zeke Manyika가 그룹에 가담하였는데 이로 인해 Collins는 보다 새롭고 휴전적인 팝과 블루아이드쏘울을 실험해볼만한 공간을 갖게 되었다. 1982년 Rip it Up은 앞선 작품보다 보다 야심적인 작업이었다. 이 앨범에는 “I Can’t Help Myself”와 같은 모타운 싸운드에 대한 존경어린 작품에서부터 에너지틱한 팝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음악이 선보였다. 그러나 뒤이은 작품들은 챠트에 진입하는데 실패하고 말았다. 이로 말미암아 Polydor와 그룹사이에 불화가 잦아지게 되었다. 결국 Ross와 McClymont가 그만두었고 그룹은 Collins와 Manyika의 듀오의 형태로만 남게 되었다. 그들은 레게 프로듀서인 Dennis Bobell와 함께 1984년 EP Texas Fever를 녹음하였다. 몇번의 변변찮은 공연후에 Collins와 Manyika는 스튜디오로 돌아와 The Orange Juice를 녹음하였다. 싱글들은 챠트진입에 실패하였고 Polydor는 Collins를 뺀채 Manyika의 솔로활동을 시도하였다. 1995년 “A Girl Like You”에 이르러서야 Collins의 상업적 성공이 한번 빛을 발할 수 있었다.

디스코그래피
1982 You Can’t Hide Your Love Forever [Polydor]
1982 Rip It Up [Polydor]
1984 The Orange Juice [Polydor]

링크
Discography
Edwyn Collins에 관한 글
Rip It Up 뮤직비디오

Oingo Boingo

Oingo Boingo(Boingo로도 알려진)는 남캘리포니아에서 결성된 뉴웨이브 밴드이다. 그들의 음악은 사실 어느 한 스타일로 분명히 규정할 수 없는 다양한 스펙트럼을 가지고 있는데 특히 Ska, Funk, Country, Jazz 등 다양한 음악스타일에 복잡한 리듬과 기이한 가사를 오버랩시키는 등 자신들만의 스타일로 재창조해내는데 특별한 재주가 있었고 – 특히 관악기를 아주 유머러스하게 사용하였는데 필자에게는 이점이 아주 매력적이다 – 이러한 음악적 역량은 주로 밴드의 핵심인 Danny Elfman의 독특한 취향과 뛰어난 음악적 능력에서 비롯되었다고 할 수 있다.

1980년 이후 10장의 정규앨범을 녹음한 그들의 역사는 Danny의 형인 Richard Elfman(영화배우이자 감독)이 자신의 영화 Fobidden Zone의 음악작업을 위해 1978년 The Mystic Knights of The Oingo Boingo – Oingo Boingo는 아무런 의미도 없는 그들이 창조해낸 단어이다 – 란 희한한 이름의 밴드를 시작하면서부터 시작되었다. 이 그룹은 얼마가지 않아 해체되고 Danny는 친구들과 함께 새로운 그룹을 조직하고 1980년 데뷔앨범의 발표를 위해 이름을 Oingo Boingo로 간단히 줄여 사용하게된다. 이후 1994년의 셀프타이틀 앨범 발매후에는 아예 Boingo로 더욱 줄여 사용하기도 하는 등 이름부터도 그들의 변덕스러운 재기를 엿볼 수 있다. 이들의 기행은 여기에서 그치지 않는데 이들은 매년 할로윈마다 공연파티를 갖는가 하면, 사용하는 악기도 전통적인 악기에서 그치지 않고 쓰레기통, 차바퀴 덮개 등 비전통적인 악기(!)들을 이용하는 등 퍼포먼서적인 취향을 한껏 드러냈다. 이러한 그들의 독특한 스타일로 말미암아 얼마가지 않아 그들에게는 일종의 컬트팬층이 형성되기 시작하였다.

Oingo Boingo의 메인스트림으로의 진입은 1985년 발표된 앨범 “Dead Man’s Party”의 타이틀트랙이 탑40에 진입하면서부터이다. 그러나 이러한 상업적 인기는 그리 오래가지 않았고 – 그들이 의도하였든 또는 의도하지 않았든 – 1987년의 Boi-ngo에서는 또다시 열광적인 그들만의 컬트팬에게로 복귀하였다. Oingo Boingo는 또한 영화 사운드트랙 작업에도 활발히 참여하였는데 1986년작인 Weird Science의 주제가를 불러 큰 인기를 얻기도 하였다. 이 성공으로 인해 Danny Elfman은 영화와 TV의 음악작업 – Simpsons의 주제가 역시 그의 작품인것 아시죠? – 에 상당한 관심을 기울이고 그만의 사이드프로젝트로 자리잡게 된다. 특히 그의 열성팬이었던 Tim Burton과의 오랜 공동작업과 우정은 꽤 유명하다. 결국 Danny는 영화음악 작업에 온힘을 쏟기 위해 ’90년 Dark at the End of the Tunnel 발표이후 그룹을 떠나게 된다. 이후 앞서 말했다시피 밴드 이름을 Boingo라 줄이고 셀프타이틀 앨범을 발표하였던 그들은 결국 1995년 공식적으로 해체하였다.

디스코그래피

1980 10 Inch EP IRS
1981 Only a Lad A&M
1982 Nothing to Fear A&M
1983 Good for Your Soul A&M
1985 Dead Man’s Party MCA
1987 Boi-ngo MCA
1988 Boingo Alive MCA
1990 Dark at the End
of the Tunnel MCA
1994 Boingo Giant
1996 Farewell [live] A&M

링크

Oingo Boing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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