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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많은 오해를 산 곡 : Bruce Springsteen의 Born in the US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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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러스를 탓하라. : 역사상 가장 많이 팔린 타이틀 트랙인 Bruce SpringsteenBorn in the USA는(30년전 6월 4일에 발매된) 이 싱어의 노래중 가장 사랑받는 곡이다. 또한 가장 오해를 사고 있는 곡이기도 하다. 그리고 이런 상황에 적어도 스프링스틴도 부분적으로 공범이다.

앨범 커버에서의 성조기 배경이나 스프링스틴과 E스트리트 밴드의 전 세계를 순회하는 공연에서 연주되는 이 곡에 대한 주먹질을 부르는 에너지 덕분에, 많은 팬들은 Born in the USA를 듣기에 좋고 애국주의적인 곡으로 여기고 있다. 그러한 팬들 중 하나가 보수적 컬럼니스트 George Will이었는데, 그는 그 곡을 미국에 관한 모든 좋을 것들에 관한 “즐거운 확신”이라고 단호하게 규정하였다. Will의 친구인, 당시에 우연히도 미국의 대통령이었던 Ronald Reagan은 재선 캠페인 당시 스프링스틴과 그의 “희망”에 찬 노래를 언급하였다.

Will과 Reagan과 셀수 없는 많은 다른 이들은 이 노래가 가지는 진정한 의미를 파악하기 위해 사기를 드높이는 노골적인 코러스를 피할 의지가 결코 없었다. 국가주의적인 자부심에 대한 선언이라고 하기 어려운 Born in the USA는 어메리칸 드림에 대한 공허함을 노래하고 있다. 이 곡은 노동계급은 총알받이쯤으로 여기는 시골에 돌아온 베트남 참전용사를 묘사하고 있다. 가진 자와 못 가진 자의 차이를 벌어지게 했던 경기 침체라는 배경 하에 의기소침한 가사는 코러스의 공허한 슬로건을 조롱하고 있다.

그러한 결론에 도달하기 위해서는 노래를 면밀하게 읽어보는 작업이 필요하다. 비록 스프링스틴이 10년 후 솔로 공연에서 Born in the USA를 비통하고 블루스적인 만가로 공연할 때 그 진짜 메시지를 강조하며 확인해주긴 했지만, 이 가수 역시 그의 히트곡이 청중에 의해 잘못 이해된 첫 고전은 아니라는 사실에 위안을 받을 수도 있을 것이다. 그리고 그게 마지막도 아닐 것이다. (전문보기)

The Riv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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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ruce Springsteen의 The River는 ‘미국에서 노동자로 산다는 것’에 대한 풍부한 시각적/청각적 이미지를 제공한다. 예기치 않은 임신으로 인한 급작스런 결혼, 경제침체 속에서 일자리를 찾는 노동자, 미국적 삶의 상징 중 하나인 캐딜락으로 꾸며진 농장, 고된 일을 끝낸 후의 소녀와의 데이트, 홀로 두 아이를 키우는 여자에 대한 사랑, 오랫동안 반목했던 아버지의 죽음, 한때 사랑했던 아내와의 지쳐가는 관계, 고속도로 주행 중에 마주친 사고에서 홀로 목격한 낯선 이의 죽음 등등. 고달프지만 그 안에서 기쁨을 찾으려는 평범한 1970~80년대의 미국 노동자의 삶이 주마등처럼 지나간다. 자동차, 노동, 섹스, 가족, 고속도로, 사막, 락앤롤, 결혼 등등. 스프링스틴은 실제로 그가 그의 고향과 가족으로부터 곡의 영감을 얻어서 썼기 때문에 평범한 표현으로 여겨질지라도 가슴에 와 닿는 가사를 만들어낼 수 있었을 것이다. 스무 곡의 수록곡에 총 83분의 연주시간에 이르는, 정규 앨범 치고도 매우 긴 트랙리스트는 직선적이고 템포 빠른 락앤롤 곡에서부터 발라드풍의 어쿠스틱 곡이 고르게 섞여 우리 인생의 굴곡을 적절하게 상징하고 있다. 앨범의 제목이자 이 앨범의 대표곡의 제목이기도 한 “강(The River)”은 또한 이런 우리 인생을 의미한다. 잔잔하게 흐르며 존재감조차 비치지 않다가 어느 지점에선가 거칠게 흐르고, 심지어 마을을 덮치는 홍수가 되기도 하는 강. 개인적으로 위의 모든 풍경을 집약한다고 여겨지는 노래는 앨범의 마지막 곡인 Wreck On The Highway다. 고속도로 주행 중 낯선 이의 죽음을 목격한 화자는 때때로 어둠 속에서 잠을 깨어 옆에서 자고 있던 사랑하는 여인을 꼭 껴안는다. 고속도로에서의 그 사고를 생각하며.

The River

Born in the U.S.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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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4년 6월 4일 Bruce Springsteen의 일곱 번째 스튜디오 앨범 “Born In The USA”가 발매되었다. Jon Landau, Chuck Plotkin, Bruce Springsteen, 그리고 Steve Van Zandt가 프로듀스한 이 앨범은 1982년 1월부터 1984년 3월에 걸쳐 뉴욕에 있는 파워스테이션과 힛팩토리(The Hit Factory)에서 녹음되었다. 1982년 발표된 Springsteen의 이전 앨범 “Nebraska”는 평론가의 찬사를 얻었지만 상업적으로는 썩 훌륭한 결과는 아니었다. 이 때문에 Springsteen은 새 앨범을 준비하면서 음악적 수준을 유지하면서도 좀 더 많은 청취자 층을 확보해야하는 도전에 직면하였다.

1981년 영화감독 Paul Schrader는 Bruce Springsteen에게 자신의 영화 Born in the U.S.A.를 위해 노래를 만들어줄 것을 제안했다.1 Springsteen은 대본을 대충 보고 영화 제목으로 된 노래를 흥얼거렸다. 그는 이 노래를 여섯 번째 스튜디오 앨범 “Nebraska”를 만들 당시 벌써 완성했고 당초에는 그 앨범에 수록하고 싶어 했다. 하지만 앨범의 다른 곡들의 우울한 분위기와 어울리지 않다는 이유로 수록곡에서 제외됐다. 비슷한 이유로 이미 완성된 “Cover Me”와 “I’m on Fire” 같은 곡들이 앨범에서 제외됐다. 그리고 그 작업들이 모여 “Born In The USA”가 탄생한 것이다.

결과적으로 앨범의 수록곡은 이전의 앨범의 수록곡에 비해 더 밝아졌다. 신디싸이저를 통한 어레인지먼트와 팝 친화적인 멜로디가 보강되었다. 가사는 미국인의 꿈을 좇는 보통 미국인의 일상생활에서의 삶을 그리고 있다. 결과는 비평과 흥행 모두에서 성공적이었다. 이 앨범에서는 “Dancing In The Dark” (#2 Pop), “Glory Days” (#5 Pop), “Born In The USA”(#9 Pop) 등을 포함하여 무려 일곱 개의 탑10 싱글이 쏟아져 나왔는데, 이는 Michael Jackson의 Thriller 그리고 Janet Jackson의 Rhythm Nation 1814와 동일한 기록이다. Bruce Springsteen and the E Street Band는 1984년 6월 29일부터 1985년 10월 2일까지 전 세계 순회공연에 나섰다.

유명한 앨범 커버에는 성조기의 줄무늬 벽을 배경으로 Springsteen이 청바지를 입고 뒤춤에 빨간 캡을 쑤셔 넣고 있는 뒷모습이 실려 있다. 이 빨간 야구 모자는 원래 Springsteen의 친구 Lance Larson의 아버지의 것이었다고 한다. Larson은 아버지의 죽음 후에 그 모자를 Springsteen에게 주었고 Springsteen은 친구의 선친을 기리기 위해 이 앨범 사진을 찍을 때 그 모자를 사용했다. 청바지 차림의 몸매 좋은 Springsteen의 이러한 이미지는 의도하든 하지 않았든 불가피하게 당시의 시대적 조류, 즉 로널드 레이건과 람보로 대표되는 애국주의적 이미지와 겹치게 되었다. “백인 노동자 영웅”

84주간 탑10에 머문 이 앨범은 미국에서만 1천5백만 장 가량 팔려 그해에 가장 많이 팔린 앨범이 되었고 Springsteen은 이 앨범을 통해 생애 최초로 그래미상 시상식에서 ‘베스트 락보컬 퍼포먼스’ 상을 수상했다. The Village Voice는 비평가를 대상으로 하는 연례 설문조사를 통해 “Born In The USA”를 ‘그해의 베스트 앨범’으로 선정하였다. 롤링스톤은 이 앨범을 ‘The 500 greatest albums of all time’에서 85위에 올렸다. Slant 매거진은 2012년 이 앨범을 ‘Best album of the 1980s’에서 35위에 선정하였다.

Side one
1. “Born in the U.S.A.” 4:39
2. “Cover Me” 3:27
3. “Darlington County” 4:48
4. “Working on the Highway” 3:11
5. “Downbound Train” 3:35
6. “I’m on Fire” 2:37
Side two
1. “No Surrender” 4:00
2. “Bobby Jean” 3:46
3. “I’m Goin’ Down” 3:29
4. “Glory Days” 4:15
5. “Dancing in the Dark” 4:00
6. “My Hometown” 4:34

  1. 이 영화는 결국 1987년 Michael J. Fox 주연으로 Light of Day라는 이름으로 극장에 개봉되었다.

Born To Ru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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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orn to Run은 미국의 싱어송라이터 Bruce Springsteen의 세 번째 정규 앨범이다. 이 앨범은 1975년 8월 25일 콜롬비아 레코드사를 통해 발매되었다. 이 앨범은 통상 Springsteen의 최고의 명반으로 꼽히며 그의 음악이 메인스트림으로 부각된 최초의 작품이라 할 수 있다. 앨범은 빌보드 200에 3위까지 올라갔으며 미국에서만 2000년까지 6백만 장이 넘게 팔렸다. 싱글은 “Born to Run”과 “Tenth Avenue Freeze-Out”이 발매되었다. Springsteen은 1974년 5월 앨범 작업에 돌입했는데, 녹음은 “Born to Run” 한 곡에만 6개월을 보내는 등 14개월에 걸쳐 이루어졌다. 곡들은 그의 고향인 뉴저지의 몇몇 장소가 구체적으로 언급되며 십대 혹은 젊은이들의 그 곳에서의 삶을 그리고 있어 자전적 요소가 섞여 있음을 알 수 있다. 작곡은 기타가 아닌 피아노로 이루어졌는데 Springsteen은 이 앨범이 “Roy Orbison이 Bob Dylan의 곡을 부르는 것”처럼 들렸으면 좋겠다는 희망을 피력했다. 앨범 커버는 락뮤직 역사에 있어 가장 유명한 커버가 되었는데, Eric Meola가 찍은 Springsteen의 모습이 담겨져 있다. 커버에서 Springsteen은 펜더텔레캐스터를 들고 누군가의 등에 기대어 웃고 있다. 그 등은 섹스폰 연주자 Clarence Clemons의 등이다. 이 이미지는 다양한 대중문화에서 패로디했다.

Side one
1. “Thunder Road” 4:49
2. “Tenth Avenue Freeze-Out” 3:11
3. “Night” 3:00
4. “Backstreets” 6:30

Side two
1. “Born to Run” 4:31
2. “She’s the One” 4:30
3. “Meeting Across the River” 3:18
4. “Jungleland”

80년대 팝계의 20대 사건

출처가 어디인지는 불명입니다. http://myhome.naver.com/ouimoi/favorite/80년대사건.htm 라는 링크가 남아 있긴 한데, 지금 열어보니 더 이상 서비스를 하지 않는 페이지라는군요. 누군가 예전에 “음악세계”란 잡지에서 본 것 같다는 코멘트를 달아놓기도 했네요. 여하튼 저작권이 있으신 분이 있으시면 연락주시고요. 이 중 몇 개나 동의하시는지 한번 곰곰히 생각해보는 것도 재밌겠네요.

Pop Events Of The Decade (80년대 팝계의 20대 사건)

1. 1980-핑크 플로이드의 화제작 「벽」

1980년 최대의 화제작은 핑크 플로이드의 「벽」(The Wall)이었다. 67년 데뷔작 「여명의 문 앞에 선 풍적수」(The Piper At The Gates Of Dawn)를 발표한 이래 핑크는 프로그레시브 음악으로 팬들은 물론이고 아티스들에게도 음악적인 영향을 미쳤다. 73년 「달의 어두운 면」(Dark Side Of The Moon) 이래 최대의 앨범이라는「벽」은 15주간 차트 정상을 차지했는데, 82년에 영화로도 제작되어 또 다시 핑크 플로이드 열풍을 몰고 오기도 했다. 앨런 파커 감독의 이 영화는 당시로선 최장시간의 록영화였다. 라이브 에이드로 우리들에게도 친숙한 봅 겔도프가 주연한 이 영화는 록 스타의 정신적인 붕괴를 다룬 것이다. 영화 속에 나오는 애니메이션은 정치만화 칼럼니스트로 유명한 제럴드 스카프의 작품.

2. 1980-존 레논 흉탄에 쓰러지다

비틀즈의 존 레논이 80년 12월 8일 뉴욕에 있는 다코타 아파트에서 마크 채프먼이라는 사내의 총탄에 쓰러졌다.  80년 11월, 5년 동안의 침묵을 깨며 그는 앨범 「이중 환상」(Double Fantasy)을 발표하여 팬들을 설레게 했었다. 싱글 <다시 시작하는 것처럼>(<Just Like> Starting Over)은 그의 죽음 이후 차트 1위에 올라 사람들을 더욱 애석하게 했다. 비틀즈 시절 “우리는 예수보다 유명하다”는 말로 구설수에 오르기도 했던 존은 60년대 팝 역사의 산 증인이기도 했다. 하지만 오만함 속에 번득이는 예지등으로 그의 개성은 더욱 팬들에게 어필되었고, 65년 비틀즈 멤버로서 ‘대영제국훈장’을 받기도 하였다.

3. 1981-MTV의 영향

1981년 8월 미국의 어느 케이블 방송국은 24시간 동안 음악만을 방송하기 시작했다. 그것이 MTV(Music Televison)이다. 75년 일본의 소니사에 의해 비디오가 대중화될 때부터 MTV의 출현은 이미 예상되었는데, 디스크의 소리에 TV의 화면을 접목시킨 것이었다. 노래를 듣고, 거기에다 보기까지 하니 음악의 내용도 상당히 변하게 되었다.  MTV는 뉴 웨이브 가수들의 출현을 앞당기기도 했다. 듀란 듀란, 컬처 클럽 등이 대표적인 예이다. 70년대 통신기기의 대변혁인 비디오가 음악에 미친 영향은 바로 MTV의 출현이었다.

첫 시작을 알린 비디오는 그 유명한 The BugglesVideo Killed The Radio Star

4. 1981-뉴웨이브의 기수들

뉴웨이브라는 말처럼 뜻이 다양하고 복잡한 용어도 드물 것이다. 70년대 말 펑크와 디스코, 그리고 기존 록의 혼합물을 뉴웨이브라고 부르는데 큰 무리가 없을 것이다. 기계적으로는 MTV의 등장이 뉴 웨이브의 출현을 앞당기는 역할을 했다. 70년대 데이비드 보위의 음악을 80년대의 요구에 맞춘 것이 뉴 웨이브라고 보는데도 큰 무리가 없을 것이다(?). 대중적인 기반은 1981년 블론디였다. 그것은 시작에 불과했고 멘 앳 워크. 폴리스. 유리쓰믹스. 컬처 클럽. 듀란 듀란 등 수많은 아티스트가 등장했다. 감각적인 사운드, 현대적인 감각의 화장 및 분장 그리고 환상적인 패션 등이 그들의 개성이기도 했다. 70년대 말의 파괴적인 펑크 시대 이후 찾아온 대중 음악, 그것이 뉴 웨이브였다.

5. 1982-CD 및 LPD의 개발

디스크와 TV의 만남이 MTV였다. 하지만 우리들은 거기에 만족할 수 없었다. 왜냐하면 시각과 청각의 동시 해결이라는 요구는 풀렸지만 그 질(質)이 문제였다. 먼저 원음(原音)에 가까운 소리를 듣고자 했다. 그것이 CD(Compact Disk)이다. 일본의 소니사와 네덜란드 필립스사는 82년 CD발매를 개시했다. 광통신(光通信)의 발전은 거기에서 머물지 않았다. 화면도 실물에 가까운 생생한 것을 가능케 했다. 그것이  LDP(Laservision Disk Player)이다. 83년 일본의 파이오니어사는 LDP를 시장에 내놓기 시작했다. MTV가 제공하는 음악의 발전 단계가 LDP인 것이다. 이제 팬들은 생생한 소리와 화면을 보게 되었다.

하지만 비디오의 등장처럼 LDP가 음악계의 흐름을 뒤집진 못하고 있다. 지금은 초기 단계다. LDP의 대중화는 비디오에 못지 않은 결과를 가져올 것이 분명하다.(결국 LDP는 단명하고 말았고 현재는 DVD가 대세죠 : 옮긴 이 주)

6. 1982-80년대의 음악 뉴 에이지

80년대 들어 태동한 두 가지 음악 장르라면 뉴 에이지와 랩이다. 80년대 초부터 ‘뉴 에이지’ 또는 ‘환경음악'(주로 일본) 등으로 불린 이 음악은 동양적인 명상음악이라는데 특징이 있었다. 굳이 뉴 에이지를 82년의 사건으로 잡는데는 약간의 무리가 있지만, 뉴 에이지라는 음악을 대중화시킨 조지 윈스턴의 활동을 기초로 했다. 80년 조지는 「가을」(Autumn), 「겨울에서 봄으로」(Winter Into Spring),「12월」(December)등을 발표했다. 위의 앨범이 꾸준히 팬들의 사랑을 받아 83년 초 빌보드 재즈 차트에  오르기도 했다. 한편 반젤리스는 82년 <불의 마차 ‘(Chariots Of Fire)라는 영화음악으로 앨범 차트 1위를 기록하기도 했다.(반젤리스가 뉴에이지? : 옮긴 이의 의문) 이때부터 뉴 에이지는 그
독립성을 인정받아 87년 최초의 뉴 에이지 그래미 수상자 안드레아스 플렌바이더를 배출하기에 이르렀다. CD의 보급은 뉴 에이지를 전파하는 데 큰 몫을 했다는 사실도  간과해선 안되겠다.

7. 1983-80년대의 대표적인 뮤지션 마이클 잭슨

지금도 팬들에겐 <빌리 진>(Billie Jean)의 전주 부분이 귀에 생생할 것이다. 83년 팝계를 휩쓸어 버린 수퍼스타가 등장했으니 그가 바로 마이클 잭슨이다.  당시만 해도 흑인 가수의 방영을 꺼리던 MTV에 그는 백인에 가까운 성형으로 얼굴을 내밀었다. 영화감독 존 랜디스 (“블루스 브러더스”<Blues Brother>의 감독)를 영입하여 만든 비디오 <비트 잇>(Beat It)은 마이클을 수퍼스타로 만들기에 충분했다. 모타운 설립 20주년 기념식에서 보여준 그의 춤 솜씨와 퀸시 존스에 의해 프로듀스된 앨범 「스릴러」(Thriller)의 펑키한 사운드, 그리고 백인에 가까운 분장 등은 MTV의 장점을 가장 완벽하게 이용했다는 평을 들었다. 그 앨범에선 싱글 톱10이 7곡이었는데, 덕분에 마이클 잭슨은 그 해 그래미상  8개 부문을 수상하기도 했다.

8. 1983-온 거리를 뒤흔든 브레이크 댄스

수퍼스타 마이클 잭슨의 등장 이후 뒤로 걷는 댄스 스텝은 팝계의 또 다른 화제거리였다. 길거리에서도 그를 흉내내는 청소년들을 보기란 어렵지 않았다. 관절을 비틀어 대는 춤 때문에 상처를 입을 수도 있다는 기사들이 발표되기도 했었다.  이름하여 브레이크 댄스 열기였다. 이 좋은 소재를 영화계에서 놓칠리가 없었다. 83년 애드리언 라인 감독의 “플래시댄스”(Flashdance)가 바로 그것이다.  제니퍼 빌스 주연의 이 영화는 황당한 스토리를 지닌 것이었지만 디스코 작곡가로 유명한 조르지오 모로더의 음악 덕분에 흥행에 성공한 영화였다. 특히 아이린카라가 부른 <플래시댄스>와 <신나는 기분> (Flashdance What A Feeling)(이 노래가 언제부터 두곡이었을까나… : 옮긴 이의 의문)은 오스카 주제가상을 받았다. 이 영화 이후 댄스 음악은 영화에서 주요한 위치를 갖기 시작했다.

9. 1984-브루스 스프링스틴의 열기

84년은 유난히 뛰어난 앨범이 많이 발표된 해였다. 한 앨범이 계속해서 1위에 머무는 바람에 1년(약52주) 동안 4개의 앨범만이 넘버원을 차지했다. 브루스 스프링스틴과 프린스의 해라고 해도 좋을 시기였다. ‘보스'(브루스)는 70년대 미국을 대표하는 가수였지만 「미국에서 태어나」 (Born In The U.S.A) 앨범으로 대중적인 기반도 확실히 다지게 되었다. 「끝없는 질주」(Born To Run)로 자신의 색깔을 분명히 한 그는 그 해 타임, 뉴스위크 양 잡지의 표지인물로 선정되기도했다. 80년 「강」(The River)으로 앨범 1위를 기록한 그는 수작 「네브라스카」 Nebraska) 이후 84년 「미국에서 태어나」를 발표했다. 재킷에 노동자 복장 차림의 사람이 성조기를 향해 오줌을 누고 있는 듯한 자세 때문에 말도 많았지만 본인은 강력히 부인하기도 한 문제의 앨범이었다.

10. 1984-미네아폴리스 사단의 리더 프린스

TV 드라마 “배트맨”(Batman)의 주제곡을 열심히 피아노로 연주하던 소년이 바로 영화 “배트맨”의 사운드트랙을 맡았던 프린스이다. 1984년은 한 마디로 보스와 프린스의 해였다. 특히 프린스는 작곡, 작사, 프로듀서, 싱어를 겸하는 만능 재주꾼으로 83년의 마이클 잭슨 열기를 뒤엎기에 충분한 인물이었다. 70년대에 데이비드 보위가 새로운 음악의 창조를 위해 노력했다면 80년대는 단연 프린스였다. 그는 「심홍색 비」(Purple Rain) 한 장의 앨범으로 표현된다. 바로 자신의 이야기이기 때문이다.  또한 그는 스타 제조기이기도 하다. 배내티와 아폴로니아가 프린스 사단 출신이며, 실라E. 차카 칸. 마돈나. 시나 이스턴 등 그가 후원한 가수는 수도 없이 많다.

11. 1985-만능 엔터테이너 마돈나

80년대 최고의 여성 가수로 마돈나를 지목하기에 주저하는 사람은 드물 것이다. 1985년 마돈나는 「처녀처럼」(Like A Virgin)으로 전 세계 팝 팬들의 마음을 완전히 사로잡고 말았다. 프로듀서는 듀란 듀란의 프로듀서로도 유명한 나일 로저스. 미모와 섹시함 그리고 가수로서의 가창력과 춤 등이 그녀를 수퍼스타로 만들기에 충분했지만 MTV의 도움이 결정적이었다. 그녀는 MTV 등장 이후 최고의 스타가 되었다. 88년에는 브로드웨이 연극에도 출연하여 화제를 몰고 온 그녀는 영화배우 숀 펜과의 결혼 생활을 끝내는 등 끊임없이 구설수에 올랐지만, 올해 「기도처럼」(Like A Prayer)을 발표하며 자신의 건재를 과시하였다.

12. 1985-이디오피아 난민구호 ‘라이브 에이드

85년 7월 13일 영국 런던의 웸블리 구장과 미국 필라델피아의 존 F. 케네디 구장에서 동시에 대규모 콘서트인 ‘라이브 에이드'(Live Aid)가 개최되었다. 이디오피아를 비롯한 아프리카 난민을 돕기 위한 자선공연이었다. 장장 16시간의 공연, 200여명의 아티스트 출연, 430억의 자선 기금, 세계 140개국에의 15억 시청자 등등 종래의 모든 기록을 깨버린 행사였다. 영국의 록 그룹 붐 타운 래츠의 리더 봅 겔도프는 이 행사를 개최한 공로로 그 해 노벨 평화상 후보에 오르기도 했다. ‘라이브 에이드’는 우드스톡 이후 최대의 공연이었으며, 이 행사에 자극받아 해리 벨라폰테는 ‘우리는 곧 세계'(We Are The World) 라는 앨범(We are the world는 라이브에이드 이전에 나오지 않았나요? : 옮긴 이의 의문)을 제작하기도 했다. 프로듀서는 퀸시 존스. 빌보드 차트 1위 및 그래미상 수상의 영광도 안은 앨범이었다.

13. 1981-뉴 웨이브의 기수들

뉴 웨이브의 열기, MTV의 등장 그리고 아티스트의 개성 등이 그 시대와 딱 들어맞은 뮤지션이 왬이었다.  조지 마이클과 앤드류 리즐리로 구성된 이 영국 듀오는 1984년 <떠나기 전에 깨워주오>(Wake Me Up Before You Go-Go)를 싱글 차트 1위에 올려 놓으며 스타덤에 올랐다. 1985년 중국 공연까지 벌였던 그들은 특히 여성 팬들의 우상이었다.  준수한 외모와 로맨틱한 노래로 국내에서의 인기도 대단했는데 85년 <경솔한 속삭임>(Careless Whisper)은 아마 팝 팬들에게 많은 추억을 준 곡으로 짐작된다. 흑인의 소울을 팝 감각으로 소화시켜 자신들의 개성을 구축했던 이들은 2집 「크게 해봐」(Make It Big)의 성공 이후, 끝없이 해체설이 돌다 결국 86년 헤어지고 말았다.

14. 1986-앰네스티 로큰롤 순회공연 개시

86년 ‘앰네스티’라는 단체가 뉴스에 종종 오르내렸다.’국제사면위원회'(Amnesty International)라는 이 단체는 각국의 탄압받는 양심수들을 석방시키기 위해 61년에 조직되었다. 온 세계에 이 단체의 존재를 명확하게 알리는 데는 록 스타들의 역할이 컸다. 앰네스티 미국 지부의 잭 힐리라는 사람은 85년 ‘라이브 에이드'(Live Aid) 공연의 위력을 실감한 뒤 대규모 록 행사를 계획했다. 86년 6월 4일 샌프란시스코에서 처음 개최되었던 이 행사에서 U2와 스팅 등은 자신들의 개성을 팝 팬들에게 강력히 심어 주기도 했다. U2는 이 행사로 전세계적인 스타가 되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 결과는 1987년 ‘여호수아 나무'(The Joshua Tree)로 나타났다. 1988년 ‘지금 인권을'(Human Rights, Now!)공연으로 이 행사는 맥을 잇고 있다.

15. 1987-미래의 검은 로큰롤 랩

50년대 로큰롤이 등장했을 때 젊은이들의 호응은 열광적이었지만 기성세대는 불안하지 않을 수 없었다. 선정적이고 도발적인 춤, 가사, 창법 등으로 젊은이들을 흥분시켰던 로큰롤은 기성세대들이 보기엔 천박한 잡음이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이후 로큰롤은 대중음악의 주류가 되었다. 아직은 소수이지만 랩에서 로큰롤이 가졌던 의의를 찾는 사람들이 있다. 80년대 중반 흑인들 사이에서 랩이 퍼지기 시작했다. 마구 지껄이는 폭력적인 가사, 반복되는 리듬 등으로 일반 팬들을 어리둥절하게 하던 음악이 랩이었다. 86년 런-DMC에 의해 랩의 저변이 확대되기 시작하더니 87년 드디어 백인 래퍼 3인조 비스티 보이스의 「살인 허가」(Licenced To Kill)가 앨범 차트 1위에 올라섰다. 뉴 에이지와 함께 80년대에 탄생한 장르로 새로이 위치를 굳힌 랩은 올해 톤 록이라는 또 다른 스타를 내기도 했다.

16. 1987-로큰롤은 U2를 통해 재탄생되었다.

85년의 ‘라이브 에이드'(Live Aid)와 86년의 앰네스티 순회공연을 통해 등장한 스타 중 U2의 부상은 단연 돋보이는 것이 있었다. 특히 앰네스티 공연에서 U2의 리드 싱어 보노가 보여준 개성은 60년대 도어스의 짐 모리슨이 보여 준 바로 그것이었다. 아일랜드 출신 4인조 U2는 87년 팬들에 보답하는 앨범 「여호수아 나무」(Joshua Tree)를 발표했다. 이 앨범은 차트 1위에 랭크된 것은 물론이고, 78년 팀결성 이후 발표한 앨범들도 덩달아 차트에 무더기로 진입하여 그들의 인기를 실감케 했다. 정통 로큰롤에 실린 의미있는 가사와 진지한 매너로 한몫 보기도한 U2는 그 해 그래미상을 휩쓸기도 했다. 오랜만에 로큰롤이 U2를 통해 기지개를 켠 87년이었다.

17. 1988-일년내내 톱10에 랭크된 조지 마이클의 「믿음」

1988년은 오직 한 명의 스타가 독주한 해였다. 그 주인공은 조지 마이클. 86년 왬이 해산될 때부터 그의 솔로 등장은 시간 문제였다. 섹스 어필하는 용모와 흑인 가수를 방불케하는 소울 창법 등 스타가 될 만한 재능이 넘치는 영국 가수였다. 그의 솔로 데뷔 앨범은 「믿음」(Faith)이었는데, 이 앨범은 88년 한해 단 1주만 11위를 기록하였고 나머지 기간에는 톱10안에 랭크되었었다. 정상에 머무른 기간도 12주였다. 싱글 1위곡도 5개나 터져 나왔다(I Want Your Sex, Faith, Father Figure, One More Try, Monkey). 마이클 잭슨도 마돈나도 이런 기록은 세우지 못했다. 트레이시 채프먼의 포크와 스티브 윈우드의 컴백도 조지 마이클의 열기를 따라 잡진 못한 한 해였다.

18. 1988-헤비 메틀의 전성기를 다시 연 밴드들

88년 후반부의 주인공은 데프 레퍼드와 건스 & 로지스였다. 이들이 벌인 차트 경쟁은 헤비 메틀 만큼이나 치열한 것이었다. 88년 메틀계에 불을 당긴 팀은 반 헤일런의 「오! 자네도 하나 먹었군」(OU 812) 앨범으로 시작해서 데프 레퍼드의 「히스테리아」(Hysteria), 건스 & 로지스의 「파괴 망」(Appetite For Destruction) 그리고 본 조비의 「뉴 저지」(New Jersey)까지 그 열기는 이어졌다. 데프 레퍼드는 83년 「방화광」(Pyromania)에 이어 「히스테리아」도 7백만 장 이상 판매하여 앨범 2장을 연속으로 7백만장 이상 판매한 최초의 밴드가 되었다. 이들을 이어 건스 & 로지스 그리고 본 조비가 메틀의 열기를 이었다. 「뉴 저지」가 차트 1위에 올랐을 때 2위는 「파괴 욕망」, 3위는 「히스테리아」였다. 빌보드 차트 사상 메틀 밴드의 앨범이 1,2,3위를 휩쓴 것도 이때가 처음이었다.

19. 1989-팝계의 새로운 주인공 10대 가수들

89년은 유난히 10대 가수들의 활약이 돋보인 해였다. ’10대현상’은 88년 티파니부터 시작되었다. 데뷔 앨범 ‘티파니'(Tiffany)를 차트 정상에 올려놓으며 그녀는 10대 선풍을 몰고 왔다. 이것은 시작에 불과했다. 곧이어 데비 깁슨이라는 천재 소녀가 출현했다.  데뷔 앨범 「뜻밖에」(Out Of Blue)에 이어 「짜릿한 청춘」(Electric Youth)을 내놓으며 티파니의 인기를 능가하고 있다. 전반기는 보비 브라운의 독무대였다. 앨범 「잔인하게 굴지 마세요」(Don’t Be Cruel)에서 연속으로싱글 히트곡을 내놓았다(Don’t Be Cruel, My Prerogative, Roni, Every Little Step 등). 후반부는 뉴 키즈 온 더 블록이었다. 앨범「끈질기게 버텨」(Hangin’ Tough)를 차트 1위에 올리며 동명 싱글곡 외에 <커버 걸>(Cover Girl), <내가 (당신을 황홀하게 하지 않았어요>(Didn’t I<Blow Your Mind>)등을 연속 히트시켰다.

20. 1989-돌아온 공룡들

전반부엔 10대 가수들의 활약이 두드러졌다면 후반부는 60년대 로커들의 재등장이 활발한 시기였다. 토론토 공연으로 시작된 더 후의 컴백, 제퍼슨 에어플레인의 재등장. 봅 딜런. 반 모리슨. 비지스. 링고 스타 등의 새로운 모습이 인상적인 해였다. 그러나 뭐니뭐니해도 1989년의 사건은 롤링 스톤즈의 재결합 공연이었다. 필라델피아에서 8월 31일 시작된 그들의 순회공연은 미국을 온통 뒤집어 놓았다. 뉴욕에선 공연이 예정되자마자 6시간만에 약 30만장의 입장권이 동나버리기도 했다. 새 앨범 「강철 바퀴」(Steel Wheels)와 싱글 <복잡한 감정> (Mixed Emotion)은 차트 정상을 향해 질주했다. ‘구르는 돌은 이끼가 끼지 않는다’는 말을 실감케 했다.

테마가 있는 80년대 팝 이야기 (허스키 보이스)

예전에 80snet.com이 popi.com이란 이름으로 제로보드 형식으로 운영되던 시절, J. Hyun님이라는 걸출한 글쟁이가 “테마가 있는 80년대 팝 이야기”란 이름으로 칼럼을 남겨주시곤 했었습니다. 언젠가 한번 게시판이 삭제되는 바람에 다시 복구하는 등의 소란을 피우고 이 사이트가 블로그 형태로 바뀌는 과정에서 몇몇 글이 없어지기도 했었고요. 몇 개 살아남은 글들은 옮겨 놓았습니다만 아직 옮겨 놓지 않은 글이 있어 반가운 맘에 다시 퍼 올립니다. 잘 지내시죠? J. Hyun님? 🙂

그의 다른 글들을 보시려면 여기를 클릭

제가 처음 팝을 접할 때(’83~84년쯤이라고 기억)는 Olivia Newton-John이나 Madonna와 같은 말랑말랑하고 달콤한 매력적인 목소리에 반해서 팝송을 즐겨듣게 되었습니다. 뭔 말인지는 하나도 몰랐지만 그냥 목소리가 좋아서 좋아하는 곡들도 많았었죠. 어느 정도 팝에 눈을 뜨게 되면서(그 당시 이미 가요는 통달한 수준이었음. 어릴 때 공부는 안하고 음악만 들어서리…-_-;;;) 세상에 참 다양한 목소리가 있구나…하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남자인데도 Christopher Cross 같은 미성을 가진 사람이 있는가 하면 여자인데도 Tina Turner와 같은 호쾌하고 걸걸한 보컬의 소유자도 있더군요.

이처럼 여러 가수들의 다양한 목소리들을 듣게 되면서 제가 아주 싫어하는 목소리가 생겼으니 바로 허스키 보이스… 어쩐지 쉰 듯한 소리가 듣기 싫어서(정도가 심한 보컬을 듣고 있노라면 제 목이 다 이상할 정도-_-) 어릴 때는 허스키 보이스 가수는 극소수를 제외하고는 대부분 싫어했습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어느 정도 시간이 흐르고 나서 어릴 때는 안 듣던 그 가수들의 곡을 다시 들어보니 의외로 괜찮은 곡들이 많았고, 허스키 보이스에도 그 나름대로의 매력이 있다는 걸 확인하면서 역시 편견 없이 듣는 게 중요하구나…하는 생각도 하게 되더군요. 오늘 그런 곡들 좀 모아봤습니다.

Bonnie Tyler ESC - United Kingdom 01 crop.JPG
Bonnie Tyler ESC – United Kingdom 01 crop” by Albin Olss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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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Bonnie Tyler – Holding Out For A Hero (1984년)
▶ 까놓고 말해 제가 허스키 보이스에 대한 심한 편견을 갖게 된 건 순전히 보니 타일러 때문이라고 할 수 있는데요(제가 처음으로 접한 허스키 보이스였거든요), TV에서 보니 타일러의 어떤 뮤직비디오(하도 오래전이라 제목은 기억나지 않는데, 별로 히트하지 못한 곡이라고 생각됨)를 보고 나서 그 천갈래 만갈래 갈라지는 목소리에 소름이 쫙 돋더라구요… 아니 뭐 저런 여자가 가수를 다 하나 싶기도 하고… 그래서 그 다음부터 보니 타일러의 곡은 제 안티대상 1호가 되곤 했습니다. 그러나… “Footloose” 사운드트랙에 실린 이 곡은 정말 괜찮은 곡이에요. 보니 타일러의 매력(?)을 비교적 잘 살린 곡으로 짐 스타인먼의 곡답게 드라마틱하고 박진감 넘치는 분위기 때문에 그녀의 쉰 목소리가 그리 심하게 드러나지도 않고, 또 워낙에 빠른 곡이다 보니 듣고 있노라면 그저 흥겨워서…^^ 우리 나라에서는 민해경의 애창곡이었죠.

▷ 보니 타일러를 보고 있노라면 왠지 이미지가 우리 나라 탤런트 권은아와 흡사하다는 생각… 그러나 둘의 목소리는 정반대죠.

2. Mike Leno & Ann Wilson – Almost Paradise (1984년)
▶ “Footloose” 사운드트랙에서 한 곡 더… Loverboy와 Heart의 간판 멤버 두 사람이 부른 멋진 듀엣곡으로 이 곡에서는 오히려 두 사람의 허스키한 목소리가 곡의 분위기를 더 잘 살려낸 것 같습니다. 멜로디도 애절하구요. 특히 앤 윌슨의 보컬이 일품…
▷ 앤 윌슨은 나중에 Cheap Trick의 Robin Zander와 함께 “Surrender To Me”란 곡을 부르기도 하죠. 둘 다 제가 좋아하는 보컬리스트인데 이상하게도 이 곡은 싫더라구요.

3. Rod Stewart – Infatuation (1984년)
▶ 허스키 보이스의 대명사라고 할 수 있는 로드 스튜어트의 80년대 히트곡(1984년 싱글차트 6위 기록)으로 80년대 유행하던 뉴웨이브 사운드를 고스란히 담아내고 있습니다. 이러한 프로듀싱 덕분인지 다행히 이 곡에서는 로드 스튜어트의 허스키 보이스가 그리 드러나지 않고 있습니다.
▷ 로드 스튜어트는 자기 주관없이 유행만 따라서 여기 붙었다 저기 붙었다 하는 가수라는 이유로 새 앨범 나올 때마다 욕을 좀 먹곤 했었죠… 개인적으로 특히 가증스러웠던 때는 아내한테 바친답시고 언플러그드 공연에서 “Have I Told You Lately”를 부를 때… 전과가 두둑(-_-)한 사람들은 뭘 해도 믿음이 안가더군요…-.-;

4. Bruce Springsteen – Born In The U.S.A. (1984년)
▶ 미국의 소시민층을 대표하는 가수(라고들 하던데 테러 이후 하는 짓 봐선 그렇지만도 않은 것 같음) 브루스 스프링스틴의 동명의 앨범 수록곡입니다. 이 앨범은 소위 말하는 ‘명반’답게 투박한 미국록 분위기에 노동자 계층의 애환을 담아낸 가사가 인상적이죠. 이 앨범에서 나온 대표적인 히트곡으로 도입부 브루스의 쩌렁쩌렁한 보컬을 듣고 있으면 미국이고 미역국이고 다 신경끄고 그냥 시원해집니다. ^^ 허스키 보이스만의 매력이 십분 발휘된 곡.
▷ 이 곡을 두고 정치적인 곡이라는 둥 전혀 아니라는 둥 말이 많았던 걸로 기억…

5. John Parr – St. Elmo’s Fire (Man In Motion) (1986년)
▶ 데이빗 포스터가 만들어낸 최고의 명곡이라고 제가 극찬하는 곡…^^ 동시에 허스키 보이스 계열의 가수들의 곡 가운데 제일 좋아하는 곡이기도 합니다. 이 곡을 들으면  내가 언제 허스키 보이스를 싫어했나 하는 생각이 절로 듭니다. 역동적이고 다이나믹한 곡 분위기에 걸맞게 존 파가 힘차게 쭉쭉뻗는 보컬을 들려주고 있습니다. 가사를 따라부르면 더욱 신나는데(영어라는 언어의 매력이 느껴지는 곡… 곡과 가사가 아주 잘 어울려요.) 특히 좋아하는 부분은 코러스 후반부에 ‘Higher and higher~’… 진짜 신나죠. 1986년 싱글차트 1위곡.
▷ “St. Elmo’s Fire” OST 수록곡 가운데 잔잔한 듀엣곡인 “Love Theme”도 참 좋답니다.

6. Journey – Faithfully (1983년)
▶ 도입부의 피아노 반주가 멋진 저니의 발라드곡. “Open Arms”와 함께 저니의 노래 가운데 특히 꾸준히 사랑받고 있는 곡이죠. 제가 저니의 곡 중 가장 좋아하는 곡… 이 곡이 주는 느낌은… 어딘지 모르게 아주 솔직담백하게 느껴집니다. 사실 사랑 노래들 가운데서도 어떤 곡들은 너무 과장된 가사(특히 남자가수의 곡들. 무작정 기사도 정신… Cheap Trick의 “The Flame”이나 Donny Osmond의 “Soldier Of Love”는 그 정도가 심함)나 지나치게 닭살돋는 분위기(Atlantic Starr의 “Always”… 한마디로 왕느끼) 때문에 오히려 거부감이 드는데 이 곡 “Faithfully”는 같은 사랑고백을 해도 분위기가 왠지 진지하고 정직하게 느껴집니다. 가사는 역시 ‘기사도 정신’인데도… 분위기의 차이인가…
▷ 요런 곡 불러주면서 프로포즈하면 성공확률 높을 듯 한데 상대가 있어야지…

7. Bryan Adams – Heat Of The Night (1987년)
▶ 개인적으로 80년대에 브라이언 아담스가 인기있을 때는 그를 별로 좋아하지 않았는데(역시 목소리 때문) 요새 그 때의 인기곡들을 다시 들어보면 왜 그리도 좋은건지…-_-; 이 곡은 브라이언 아담스의 곡 가운데서도 록적인 느낌이 특히 강한 곡입니다. 사실 브라이언 아담스의 보컬이 제게는 그리 듣기 좋은 편이 아니라는 생각은 지금도 여전한데, 아마도 멜로디 때문에 좋아하는 것 같아요.
▷ 브라이언 아담스 못보던 새에 엄청 늙었더군요. 얼굴에 주름이… 휴~

8. Tina Turner – Let’s Stay Together (1984년)
▶ 브라이언 아담스와 한때 연인사이로 소문나기도 했던 사자부인 티나 터너의 곡입니다. 제가 대학 합격하던 날 그 기념으로 산 앨범이 바로 티나 터너의 베스트앨범 “Simply The Best”였는데, 덕택에 그 날 최고의 기분(^^)으로 이 곡을 듣게 되었답니다. 도입부의 잔잔한 분위기가 티나 터너의 읊조리는 듯한 보컬과 함께 이어지던 도중 갑자기 이를 깨뜨리는 듯한 티나 터너의 ‘Let me! be the one…’하는 강렬한 보컬이 등장하고… 다시 잔잔하다가 또 고조되다가… 이래저래 드라마틱한 곡입니다. 티나 터너가 문자 그대로 ‘열창’을 하는 곡… 1999년도 VH1 Divas Live 공연에서도 티나 터너가 이 곡을 불렀는데 그녀의 콘서트만이 가질 수 있는 열정적인 분위기가 정말 좋더군요. 꼭 한 번 들어보세요.
▷ 우리 나라 코미디언 가운데서는 예전에 김미화가 티나 터너 분장을 곧잘 했었는데 기억나시는 분 계시려나…

9. Terence Trent D’Arby – Wishing Well (1987년)
▶ 테렌스 트렌 다비의 보컬은 허스키라기보다는 정통 소울에 가깝다고 할 수 있을 듯… 흑인적인 느낌이 강한 보컬의 소유자로 등장 당시에 프린스를 연상케하는 외모로도 화제를 모았던 가수… 최근 빌보드 싱글차트를 보면 완전히 그 자체가 블랙싱글차트(한때 R&B 싱글차트를 이렇게 불렀었죠)라고 해도 다름없을 정도로 흑인 음악의 강세가 뚜렷한데 왜 이런 분위기 속에서도 테렌스 같은 가수들은 안 나오나 모르겠어요. (나오긴 나오는데 뜨질 못한다는 게 더 정확한 표현이겠지만) 참 아끼는 가수인데…

▷ 예전에 어떤 분에게서 테렌스 트렌 다비가 자기의 데뷔앨범을 두고 ’80년대 최고의 데뷔앨범’이라고 자화자찬했다는 얘길 들은 기억이 나는군요.

10. Bon Jovi – Bad Medicine (1988년)
▶ 80년대 팝씬에서 돈냄새를 강하게 풍긴다는 이유로 비난을 받았던 가수들이 있는데 Def Leppard나 본 조비가 그런 케이스. 제가 본 조비의 곡 가운데 특히 좋아하는 이 곡이 수록된 앨범 “New Jersey”가 발매될 당시에는 설문조사까지 해서 상업적인 곡들만 골라 실었네 어쩌네 해서 혹평을 받기도 했는데, 솔직히 상업적이건 어떻건 듣기 좋은 건 사실… 어차피 대중가요라는 건 상업적인 성격을 아주 떨칠 수 없는 것이고, 또 음악이란 건 많은 사람들이 즐길수록 좋은 것이 아닐까요. 어떤 곡을 두고 ‘이 곡은 지나치게 상업적이기 때문에 안 좋네 어쩌네…’ 한다거나, 어떤 가수가 다소 하드한 록음악을 하다가 후에 대중적인 성격으로 돌아서면(Heart가 대표적) 변절자 어쩌구 하고 비난을 하는 이런 평가들은 어찌보면 조금은 어불성설이라는 생각도 드는군요.
▷ 록그룹의 보컬리스트들은 열에 아홉은 다 허스키 보이스 소유자라 여기서 일일이 나열하진 않겠습니다. (물론 이것은 변명이고, 내가 뭐 락을 알아야지…–)

11. Michael Bolton – How Can We Be Lovers (1989년)
▶ 마이클 볼튼의 대표작 “Soul Provider”의 수록곡으로 Diane Warren이 작곡에 참여한 곡입니다. 역동적인 느낌이 강해서 본 조비의 곡 느낌도 나는 곡… 마이클 볼튼의 보컬은 이 곡을 히트시킬 때까지만 하더라도 뭐 고전 소울에 어울린다는 둥, 허스키 보컬답지 않게 유연하다는 둥 비교적 준수한 평가를 받았었는데 이후 “When A Man Loves A Woman”가 발표되면서부터는 최악의 리메이크곡(올인!)이라는 악평과 내놓는 노래마다 그게 그거라는 악평(여기에도 올인!)을 거듭하더니 급기야 “Love Is A Wonderful Thing”이란 곡이 100% 표절곡임이 밝혀지면서 순식간에 인기가 추락… 90년대 후반 이후부터는 그 특유의 라면머리도 자른 채 재기를 시도하고 있으나 별다른 효과가…
▷ 무엇이 무엇이 똑같을까… 마이클 볼튼과 임재범이 똑같아요. -.-

12. Roxette – Listen To Your Heart (1989년)
▶ 록시트는 스웨덴 출신 가수로서 ABBA 이후 가장 성공한 가수라고 할 수 있죠. 이 곡은 특히 제가 좋아하는 곡으로 1989년 싱글차트 1위를 차지한 대형 스케일의 발라드곡입니다. 마리 프레드릭슨의 허스키 보이스가 곡의 느낌을 더욱 애절하게 해줍니다. 특히 후반부 에드립과 현악 연주로 끝나는 마지막 부분이 압권…. 거대한 성곽에서 혼신의 힘을 다해 노래하는 맨발의 마리를 만날 수 있는 뮤직비디오도 근사하답니다.
▷ 이 곡은 재미있는 기록을 하나 세웠는데 LP나 카세트 싱글이 아닌 오로지 CD 싱글로만 발매되어 싱글 차트 1위에 오른 최초의 곡이기도 합니다. 미디어 시대의 변화를 반영했던 곡…

지금 생각해보니까 허스키 보이스의 가수들이 정말 많다는 생각이 드는군요. 앞에서 언급한 가수들 이외에도 블루 아이드 소울을 대표하는 흑인적인 느낌의 허스키 보컬로는 Righteous Brothers의 Bill Medley나 “Up Where We Belong”으로 잘 알려진 Joe Cocker, 리메이크곡들로 인기를 얻은 Paul Young 등을 꼽을 수 있겠구요… 컨트리의 아버지 Kenny Rogers, 투박한 미국록의 분위기를 구사하는 보컬리스트 John Cougar Mellencamp나 80년대 최고의 보컬리스트로 꼽히는 Steve Winwood 등도 빼놓을 수 없습니다. 여성가수로서는 “Bette Davis Eyes”의 Kim Carnes가 대표적이고 ‘한어깨’하는 가수 Laura Branigan, ‘하얀 티나 터너’로 불리웠던 Taylor Dayne 등이 생각나는군요. 90년대 후반 이후로는 Mariah Carey도 한몫하고 있습니다. -_-

To Be Continued…

We Are The World에 참여한 가수들

“We Are The World”
The Singers

Al Jarreau
Bette Midler
Billy Joel
Bob Dylan
Bob Geldof
Bruce Springsteen
Cyndi Lauper
Dan Aykroyd
Diana Ross
Dionne Warwick
Hall and Oates
Harry Belafonte
Huey Lewis and the News
Jackie Jackson
James Ingram
Jeffery Osborne
Kenny Logins
Kenny Rogers
Kim Carnes
LaToya Jackson
Lindsey Buckingham
Lionel Richie
Marlon Jackson
Michael Jackson
Paul Simon
Quincy Jones
Randy Jackson
Ray Charles
Sheila E.
Smokey Robinson
Steve Perry
Stevie Wonder
The Pointer Sisters
Tina Turner
Tito Jackson
Waylon Jennings
Willie Nelso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