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이빗 번 내한공연 후기

그가 한국에 오기까지 너무 오랜 시간이 걸렸다.1 수많은 뮤지션들이 그렇듯이 그 역시도 옆 나라 일본에는 토킹헤즈 활동 초창기부터 공연을 위해 수시로 드나들었고, 창작의 아이디어를 얻었고, 일본인 아내와 결혼했었고, 솔로 활동 시절에도 공연을 했었음에도 우리나라는 오지 않았었다. 그나마 한국에 방문한 흔적을 남긴 것은 오래전에 그 지인의 결혼식에 참석하기 위한 음악 활동과는 관계없는 방문이었다. 그랬던 그가 이번에 드디어 한국에서 공연을 가졌다. 그런 만큼 개인적으로는 감개무량한 첫 공연이었다.

익히 짐작할 수 있듯이 그의 공연이 성사될 수 있었던 배경에는 이제 한국에서도 어느 정도 데이빗 번 개인과 토킹헤즈에 대한 시장이 형성되었다는 공연 기획사의 계산이 있었다고 생각한다. 당연하게도(!!) 토킹헤즈의 현역 시절에는 한국에는 그러한 시장이 없었다.2 어제 공연에서도 확인할 수 있듯이 관객층의 나이는 토킹헤즈 시절에 음악을 즐겼을 만한 중장년층은 그리 많지 않았다. 오히려 락페스티벌 및 스탑메이킹센스의 극장 상영으로 신규 유입된 듯한 젊은 팬들이 많았다.3


(이미지 출처)

공연장은 경희대학교에 있는 ‘평화의 전당‘이라는 거창한 이름의 건물(외관도 거창하다4)이었다. 적지 않은 관객들이 트위터에서 공연장이 걸어가기 어렵다고 푸념하는 위치였다. 개인적으로는 과거에 안젠치타이 공연을 감상했던 추억의 장소였지만, 당연하게도 많은 이들에게는 불만이 나올만한 나쁜 접근성의 공연장이었다. 사실은 그만큼 우리나라 공연 문화가 척박한 것이다. 전문 공연장도 아니고 접근성이 후진 대학교 부속건물을 쓰는 공연 인프라. 그게 2026년 K-컬처의 현재다.

이제 공연 이야기를 해보자. 개인적인 감회가 있어 공연 수준의 뛰어남을 논할 냉정함을 유지할 수 있었던 공연이 아니었다.5 개인적으로 가장 좋아하는 밴드 둘을 꼽자면 The Smiths와 함께 탑으로 꼽을 밴드인 토킹헤즈, 그 밴드의 프론트맨이었던 번옹이 생애 처음으로 공연을 펼치는 것을 육안으로 볼 수 있는 그런 경험은 냉정함으로 분석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닌 – 처음 그들의 음악을 접했던 시절이 주마등처럼 떠오르는 – 어떤 아련함과 벅참의 감정이 솟아오르는 순간이었기 때문이다.6


(이미지 출처)

인터넷에 올라온 셋리스트 숫자를7 세어보니 번옹이 공연에서 들려준 노래는 총 21곡이었다. 공연시간은 대략 1시간 40분 정도 되었던 것 같다. 인상적이었던 점은 번옹이 토킹헤즈 곡들 사이사이에 솔로 곡들을 빼곡하게 배치했다는 점이다. 솔로 앨범의 곡들은 총 10곡이다. 거의 비중이 50대 50인 셈이다. 본인의 솔로 활동에 대한 확고한 신념이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다. 개인적으로는 번옹의 솔로 활동 곡보다는 모리씨의 솔로 활동 곡을 좋아하는데 이번 공연을 보며 선입견이 좀 바뀌었다.8

조금 냉정을 유지하고 그의 공연을 평하자면 그의 컨셉트는 확실하게 동적(動的)으로 활발하게 움직이는, 락 공연이라기보다는 뮤지컬 혹은 댄스 퍼포먼스에 가까운 공연이었다는 점이 인상적이었다.(트위터에서의 각종 감상 트윗) 그간 영상으로 느꼈던 그 역동성이 육안으로 다가오자, 확실히 그 공연의 다이나믹함이 피부로 느껴졌다. 기술의 발전과 본인의 천재성으로 만든 13인조 오케스트라가 유기적으로 작동하는 기계적인 건물 안에 우리 관중이 자리 잡은 것이다. 그게 번옹의 의도였다.


(이미지 출처)

번옹은 사견으로 본인을 뮤지션이 아닌 퍼포먼서 내지는 종합 예술인이라고 자처할 것이라 생각한다. 이런 캐릭터는 그가 음악이 아닌 미술 전공의 로드아일랜드디자인학교에 다녔던 이력에서부터 형성되었을 것이다.9 그리고 이후 뮤지션으로서의 활동한 이후에도 공연계와의 인연을 계속 이어가면서 그는 무대를 하나의 종합적인 경험을 전달하는 공간으로 자리매김하여 왔고, 토킹헤즈 초기 활동에서의 그 컨셉트의 정수는 바로 스탑메이킹센스 홍보 공연과 조나단 드미의 영화화에서 꽃을 피우게 됐다.

즉, 번은 로버트 윌슨, 트와일라 타프, 토니 실 등 종합예술인과 관계를 유지하면서 일찌감치 극장이라는 공간에서 뮤지션이 단순한 소리의 전달이 아닌 다양한 감각을 전달할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고, 이번 내한 공연을 포함한 그의 공연 포맷은 그러한 신념이 반영된 결과이다. 결과적으로 그간 그의 작업은 뮤지컬로 확장되기도 했었고, 때로는 건물 자체를 악기로 사용하는 파격을 선보이기도 했다. 요컨대 번은 자유로운 영혼의 소유자이기에 이번과 같은 마술 같은 공연을 선보일 수 있었던 밑거름이 되었다고 생각한다.


많은 사람들이 폰카메라를 꺼내게 만든, 그 유명한 Make America Gay Again(이미지 출처)

그런데 그 모든 것을 떠나서, 나를 포함한 관객들을 마법적인 황홀감에 빠지게 할 수 있었던 첫 번째 치트키는 사실 그런 독특한 공연 컨셉트나 고령을 무색하게 하는 그의 노익장 뭐 그런 것도 아니고 – 그런 것도 있겠지만 – 토킹헤즈 및 그의 솔로 곡들이 가지고 있는 독자성에10 있었다. 누가 – 다른 곡들보다 호응은 덜 했던 듯하지만 – 그 시절에 어떻게 Air와 같은 곡을 만들고 공연할 수 있었을까?하는 감탄사가 나오게 하는, 멜로디부터 가사까지 지금 들어도 ‘뭐야 이건?’ 할만한 독창성을 뽐냈던 뮤지션, 그들이 토킹헤즈다.

어떤 사용자는 티나가 오지 않는 공연이어서 공연에 올지 망설였다는 트윗을 올렸던데, – 어느 정도 공감하면서도 – 어떻게 보면 이러한 고민은 과거 실시간으로 유명 해외 뮤지션의 공연을 즐길 수 없었던 환경의 나라에서는 다소 배부른 고민일 수밖에 없다. 한창 그들의 음악을 듣던 시대가 아닌 시간이 한참 흐른 뒤에 이제야 가까스로 시장이 형성된 때에 찾아오는 뮤지션들. 그런데 맘에 들지 않는 구석이 있다고 공연에 안 간다고? 당연히 가야지! 인생은 그런 것이다. ㅎㅎㅎ


(이미지 출처)

뮤지션들이 순회공연을 하면서 전성기 시절의 노래를 부르고 관객들이 이에 호응할 수 있는 환경, 이건 문외한인 내가 생각해도 어마어마하게 어려운 환경이라고 생각한다. 혹자는 “추억팔이”라고 폄하할 수 있지만, 그런 추억팔이도 시장이 있고 공간이 있어야 하는 것이지 그마저도 쉽지 않은 수많은 뮤지션이 있는 상황이다. 그런데 우리 번옹은, 슬기롭게 그런 추억팔이와 본인의 솔로 커리어를 조화롭게 팬들에게 선보여서 팬으로써 너무 “뿌듯한” 감정을 느꼈다. 감사합니다 번옹.

개인적으로는 아직도 위시리스트가 몇 개 있다. 이제 나 역시도 이미 장년을 바라보는 비루한 처지라서 신진 뮤지션의 공연을 보는 것이 꿈은 아니고, 어린 시절 감히 육안으로 볼 수 없었던 그런 뮤지션들을 그나마 K-컬처의 유행 덕으로 볼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하는데 아마도 … ㅎㅎ 어렵겠지. Joe Jackson, Paul Weller, Depeche Mode, ABC 등등의 뮤지션 공연을 보고 싶었는데, 그런 한 축으로 번옹의 공연을 이번에 본 것이다. 그래서 감사해야겠지. 건강하세요 번옹. ㅋㅋㅋ

공연 영상 


  1. 한국 가수의 나이와 비교하면 나훈아가 내한 공연하는 수준
  2. 우리나라에서 유일하게 발매된 그들의 스튜디오 앨범은 리틀크리쳐다.
  3. 그런 의미에서 소간지님 고맙습니다. 님이 한국에 멋진 서브장르를 만들어주셨습니다.
  4. 벨기에의 생 미셸성당을 모델로 만들어진 고딕 건축물이라고 한다.(출처)
  5. 그저 눈물이 주루륵
  6. 예전에 모리씨 공연을 보고 이제 번옹의 공연을 봤으니, 버킷리스트의 두어 개 정도는 지워도 될 것 같다
  7. 참고로 일본 썸머소닉 공연 셋리스트와 동일하다
  8. 그래서 공연을 직접 봐야 작품의 진가를 확인할 수 있는 것이겠지.
  9. 잘 알다시피 크리스와 티나 역시 그 학교에 다녔고 번은 이후 중퇴하지만, 그 둘은 끝까지 남아 학교를 졸업했다.
  10. 이러한 독자성은 어떤 뮤지션의 음악을 특정 장르로 규정할 수 없는 넘사벽의 독창성으로 규정할 수 있고 이러한 독자성을 가지고 있는 뮤지션을 극히 희귀하다. 개인적으로 꼽자면 일단 토킹헤즈, 스미쓰, 스트랭글러스, 엑스티씨, 조이디비전 정도가 생각난다. 지금 Bros를 듣고 있는데 그들도 독자성이 있을까? 좋아하는 밴드여서 선입견이 생기기도 한다. ㅎㅎ

Happy Families

Blancmange - Happy Families.jpg
By Derived from a scan of the CD cover (creator of this digital version is irrelevant as the copyright in all equivalent images is still held by the same party). Copyright held by the record company or the artist. Claimed as fair use regardless., Fair use, Link

1979년 영국 런던에서 닐 아서(Neil Arthur, 보컬), 스티븐 루스콤비(Stephen Luscombe, 키보드),1 로렌스 스티븐스(Laurence Stevens, 드럼) 3명에 의해 결성된 신스팝 밴드 블랑망주(Blancmange)의 1982년 앨범이다. 원래 블랑망주는 녹말가루, 우유, 설탕과 바닐라향, 아몬드를 첨가한 희고 부드러운 푸딩을 의미한다. 영국의 앨범 차트 30위에 오르면서 상업적으로는 그런대로 인상적인 성적을 거두어 이후에 꾸준히 음악 활동을 이어갈 수 있는 밑거름이 되었다. 스타일 적으로는 다소 독창성이 떨어진다는 평가가 있었다. 하늘 아래 새로운 것은 있을 수 없지만, 그래도 어느 정도 오리지널리티는 있게 마련인데 블랑망주는 그런 부분이 조금은 약했던 것 같다.

일례로 이 앨범의 두 번째 트랙 Feel Me는 Talking Heads의 데이빗 번(David Byrne)의 느낌이 강하다. 또 다른 곡에서는 Joy Division의 분위기가(I’ve Seen the Word), 또 다른 곡에서는 Simple Minds의 분위기가(Wasted) 느껴진다. 이런 면에서는 비슷한 체급으로 느껴지는 밴드 중에서도 하나의 스타일을 일관되게 밀고 나간 Secession이나 Camouflage와는 조금은 다른 경로의 지향점이라 할 수 있을 것 같다. 한편으로는 본인들은 본인들대로 자신만의 스타일을 유지했다고 생각하는데 다른 이들이 그렇게 평가하면 억울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만큼 예술가의 스타일은 가지려 노력해도 쉽게 가질 수 없는 묘한 뉘앙스가 있다는 생각이 든다.

어쨌든 앨범에서는 네 번째 트랙이자 세 번째로 내놓은 싱글인 Living on the Ceiling이 영국 싱글 차트 7위까지 오르면서 앨범의 상업적 성공을 견인한다. 톡톡 튀는 멜로디와 편곡이 이미 듣고 있는 순간에도 가장 상업적인 곡이라는 느낌이 드는 곡이다. 조금은 절박한 심정으로 상업적 요소를 곳곳에 때려 박은 느낌의 곡이라는 느낌이다. 그런데 이 곡은 또 Men At Work의 곡이라 속이고 들려줘도 믿을 것 같다. 다양한 스타일의 조합, 그게 블랑망주의 생존 방식이자 대박을 못 낸 원인이었을까? 한편 개인적으로는 이 앨범에서는 우울한 멜로디가 매력적인 Waves가 가장 마음에 든다. 그런데 이 곡은 또 비록 후배 밴드이긴 하지만 When In Rome을 생각나게 한다.

마지막으로 앨범 커버 이야기를 하고 싶은데, 신스팝 밴드의 앨범 중 이렇게 감각 없는 커버가 또 있을까 싶다. 그림 자체는 재미있다. 하지만 앨범 커버도 앨범이라는 매체를 내놓는 뮤지션에 있어 매우 중요한 스타일 중 하나다. 그렇기에 어떤 뮤지션들은 – Talking Heads나 The Smiths 등 – 본인들이 직접 커버 작업을 해서 자신만의 아이덴티티를 창조했다. New Order는 Peter Saville이라는 걸출한 아티스트에게 작업을 맡기기는 했지만, 이 작업을 통해 자신만의 이미지를 확립했다. 그런데 이 앨범 커버는 선대의 포크음악이나 후대의 로우파이 음악이 연상되는 장르와는 동떨어진 커버다. 작품성이 떨어진다는 것이 아니라 신스팝의 앨범에는 어울리지 않는 이미지라는 의미다.

1982 UK LP and cassette

Side one

  1. “I Can’t Explain” – 4:00
  2. “Feel Me” – 5:07
  3. “I’ve Seen the Word” – 3:00
  4. “Wasted” – 4:17
  5. “Living on the Ceiling” – 4:11

Side two

  1. “Waves” – 4:07 (original version on early pressings of the album is 4:25 long)
  2. “Kind” – 3:56
  3. “Sad Day” – 4:05
  4. “Cruel” – 4:52
  5. “God’s Kitchen” – 2:54

1982 Canadian version

Side one

  1. “Waves” – 4:07
  2. “Feel Me” – 5:07
  3. “I’ve Seen the Word” – 3:00
  4. “Wasted” – 4:17
  5. “Living on the Ceiling” – 4:11

Side two

  1. “Blind Vision” – 4:20
  2. “I Can’t Explain” – 4:00
  3. “Kind” – 3:56
  4. “Sad Day” – 4:05
  5. “Cruel” – 4:52
  6. “God’s Kitchen” – 2:54

2008 Happy Families… Plus CD

  1. “I Can’t Explain” – 4:03
  2. “Feel Me” – 5:07
  3. “I’ve Seen the Word” – 3:00
  4. “Wasted” – 4:17
  5. “Living on the Ceiling” – 4:02
  6. “Waves” – 4:09
  7. “Kind” – 3:58
  8. “Sad Day” – 4:04
  9. “Cruel” – 4:52
  10. “God’s Kitchen” – 2:57
  11. “Living on the Ceiling” (Extended Version) – 5:40
  12. “God’s Kitchen” (12″ Mix) – 4:29
  13. “Feel Me” (Extended 12″ Version) – 7:01
  14. “Feel Me” (7″ and 12″ Instrumental) – 5:10
  15. “Business Steps” – 4:28
  16. “Feel Me” (US 12″ Instrumental) – 5:22

2017 Edsel 3 CD Media Book Edition

Disc one

  1. “I Can’t Explain” – 4:00
  2. “Feel Me” – 5:07
  3. “I’ve Seen the Word” – 3:00
  4. “Wasted” – 4:17
  5. “Living on the Ceiling” – 4:11
  6. “Waves” – 4:07
  7. “Kind” – 3:56
  8. “Sad Day” – 4:05
  9. “Cruel” – 4:52
  10. “God’s Kitchen” – 2:56
  11. “Living On The Ceiling (Extended Version)” – 5:39
  12. “God’s Kitchen (12″ Mix)” – 4:28
  13. “Feel Me (12″ Instrumental)” – 5:08
  14. “Waves (Original Version – No Strings)” – 4:22

Disc two

  1. “Sad Day (Original Version)” – 3:10
  2. “Feel Me (Extended 12″ Version)” – 6:59
  3. “Business Steps” – 4:28
  4. “Black Bell (Demo)” – 4:22
  5. “Melodic Piece (Demo)” – 2:31
  6. “Your Hills (Rehearsal)” – 2:46
  7. “I Can’t Explain (Demo)” – 3:20
  8. “Waves (Demo)” – 4:45
  9. “I’ve Seen the Word (1979 Demo)” – 3:06
  10. “Holland (Demo)” – 2:47
  11. “I’ve Seen the Word (Demo)” – 2:25
  12. “Feel Me (Mike Howlett Dub Version)” – 6:48

Disc three

  1. “I Would” – 4:06 [Radio 1 Session (13.2.82)]
  2. “Living on the Ceiling” – 3:13 [Radio 1 Session (13.2.82)]
  3. “Waves” – 4:01 [Radio 1 Session (13.2.82)]
  4. “Running Thin” – 2:20 [Radio 1 Session (13.2.82)]
  5. “God’s Kitchen” – 2:54 [Radio 1 Session (5.6.82)]
  6. “Feel Me” – 5:19 [Radio 1 Session (5.6.82)]
  7. “Kind” – 3:48 [Radio 1 Session (5.6.82)]
  8. “Cruel” – 3:49 [Radio 1 Session (5.6.82)]
  9. “God’s Kitchen” – 3:33 [In Concert, Paris Theatre (13.11.82)]
  10. “Living on the Ceiling” – 4:33 [In Concert, Paris Theatre (13.11.82)]
  11. “I’ve Seen the Word” – 3:36 [In Concert, Paris Theatre (13.11.82)]
  12. “I Can’t Explain” – 4:23 [In Concert, Paris Theatre (13.11.82)]
  13. “Waves” – 4:38 [In Concert, Paris Theatre (13.11.82)]
  14. “Feel Me” – 5:40 [In Concert, Paris Theatre (13.11.82)]

  1. 이분은 최근 유명을 달리하셨다. 고인의 명복을 빈다.

Heaven Or Las Vegas

Cocteau Twins—Heaven or Las Vegas.jpg
By Obtained from iTunes on 8 August 2017.[1], Fair use, Link

콕토트윈스가 1990년 내놓은 이 앨범은 확실히 어떤 경계선에 서있는 듯한 느낌이다. 누군가 이 앨범은 ‘80년대 음악이야’하면 ‘그렇네’할 것 같고 다른 누군가 이건 ‘90년대 음악이야’하면 또 ‘확실히 그렇네’할 것 같다. 80년대 초부터 앨범을 내놓으면서 쉼 없이 달려온 콕토트윈스가 1990년대를 시작하는 해에 내놓은 앨범으로 앨범 제목인 Heaven Or Las Vegas를 1980년대와 1990년대로 빗대자면 80년대는 천국이었고 90년대는 라스베가스인 셈이 아닌가 생각된다. 천국이었던 80년대는 그렇다 치고 라스베가스인 90년대는 그럼 천국인가 지옥인가? 이 질문은 앨범명과 같은 제목의 노래의 이 가사에서 어느 정도 실마리를 찾을 수 있지 않을까 싶다.

Singing on the famous street
I want to love a boy that won’t love me
Am I just in heaven or Las Vegas.

나를 사랑하지 않는 어떤 소년을 사랑하는 화자. 그는 어떤 유명한 거리에 서있는데 그 거리는 천국 혹은 라스베가스에 있다. 같은 곳 일수도 있고 다른 곳 일수도 있다. 일찍이 Talking Heads의 유명한 노래 Heaven에서는 “천국은 아무런 일도 일어나지 않는 곳”1이라고 정의한바 있다. 그런 의미에서 해석해보자면 어떤 소년을 사랑했다는 그 감정 때문에 이미 화자는 천국에 있는 것은 아니고 라스베가스에 있는 것이다. 그런데 아무런 일이 일어나지 않는 천국보다는 누군가를 사랑하지만 그는 나를 사랑하지 않는 괴로운 상황마저 감내할 수 있는 라스베가스를 더 선호할 사람들도 분명 있을 것 같다.

어쨌든 이 앨범은 꽉 채워져 있다. 콕토트윈스가 했던 음악, 하고 있는 음악, 하고 싶은 음악을 90년대를 시작하는 즈음에 모두다 펼쳐놓자고 작정한 듯한 느낌이다. 곡 하나하나가 반짝반짝 빛나고 있다. 그리고 개인적으로 발견한 재밌는 사실은 앨범의 세 번째 트랙 Iceblink Luck에서 토킹헤즈가 또 한번 연상되는 지점을 발견했다는 점이다. 버닝다운더하우스와 비슷한 가사를 발견한 것이다.

You’re the maraschino cherry coal (the match of Jerico)?
That will burn this whole madhouse down
And I’ll throw open like a walnut safe

네이버 블로그 어떤 글에서 “피치포크 10점 본다!”라는 멘트를 봤는데 8.3점 줬다. 그것도 다섯 번째 앨범 Blue Bell Knoll과 합쳐 나온 디럭스 바이닐을.

  1. “Heaven is a place. A place where nothing. Nothing ever happens.”

씨네21의 토킹헤즈 스페셜

스탑메이킹센스 상영을 기념하여 씨네21이 이번 호에서 토킹헤즈 스페셜을 마련하였다. 이 블로그 운영자도 한 꼭지를 담당했다.

Talking Heads의 Stop Making Sense 국내 개봉 소식

그간 <서브스턴스>, <존 오브 인터레스트>, <악마와의 토크쇼>, <찬실이는 복도 많지>, <여름날 우리> 등 독립·예술영화를 중심으로 수입 및 배급을 진행해온 찬란이라는 영화사에서 Talking Heads의 걸작 공연필름 <스탑 메이킹 센스>를 수입해서 상영할 계획이다. 개봉 예정일은 오는 8월 13일.

한편 다음은 상영 예정인 CGV 앱에 올라와 있는 상영 정보

시얼샤 로넌이 등장하는 Psycho Killer 뮤직비디오

Talking Heads의 첫 라이브 공연 50주년을 맞아 새로운 Psycho Killer 뮤직비디오가 공개되었다. 이 비디오는 ‘우리의 20세기(20th Century Women)’의 감독이었던 마이크 밀스(Mike Mills)가 감독하고, ‘레이디버드’나 ‘작은 아씨들’과 같은 수작에 연이어 출연했던 배우 시얼샤 로넌(Saoirse Ronan)이 주연을 맡았다. 뮤직비디오의 내용은 한 평범한 여성이 일상생활 속에서 무관심, 슬픔, 분노 등의 감정이 차례대로 밀려오는 과정을 그리고 있는데, 마치 영화 ‘그라운드혹데이(Groundhog Day)’처럼 반복적이지만 조금씩 변화하는 일상을 절묘한 무대 세팅을 통해 재치 있게 묘사하고 있다.

a few days later

뮤비를 심심할 때마다 봤는데 자꾸 보다보니까 생각나는 드라마가 있었는데 The Office라는 미드다. 직장인의 일상을 가짜 다큐멘터리의 형식으로 찍으면서 그 속에서 웃음 포인트를 찾았던 드라마. 다만, 이 드라마는 원래 영국의 괴짜 셀럽 리키저베이스가 창조한 영드 The Office가 원본이다. 그런데 각설하고 이 뮤비는 영드보다는 미드가 연상되는 질감이다. 굳이 이유를 찾자면 색감하며 주연배우가 드나드는 집도 전형적인 미국풍 – 내 기준에서는 – 이기 때문인 듯하다. 아무튼 이 뮤비에서의 주연은 미드 오피스에서 조연으로 등장하는 어느 누군가가 매일 출퇴근 할 때에 겪었을 법한 – 물론 거기에 조금 더(?) 아니 훨씬 더(?) 과장된 – 인간적 갈등이 있었을 것 같은 느낌이 들었기 때문이다. 요컨대 직장에 출근하는 행위는 견고하게 조립된 톱니바퀴 가득한 기계장치에 우리 몸을 끼워 맞추는 행위다. 나태하고 리버럴한 인간의 품성에 걸맞은 행위가 아님은 분명하다.

이 비디오에 관한 더 많은 내용의 소식

Talking Heads / Speaking in Tongues [1983]

Talking heads burning down the house standard cover art.jpg
By May be found at the following website: http://www.discogs.com/viewimages?release=2188727, Fair use, Link

걸작 Remain In Light을 내놓은 뒤 Talking Heads는 한동안 꿀맛같은 휴지기를 가졌다. 이 시기에 데이빗번은 브라이언이노와 함께 1981년 My Life in the Bush of Ghosts라는 제목의 앨범을 내놓았다. 데이빗 개인적으로는 The Catherine Wheel이라는 앨범 작업도 했다. 우연히도 나머지 멤버들도 같은 해 자신들만의 창작물을 냈다. 즉, 크리스프란츠는 티나웨이머스와 함께 Tom Tom Club이라는 밴드를 조직하여 셀프타이틀 앨범과 Under the Boardwalk를(1982년) 내놓았는데, 첫 번째 앨범에서 발매된 싱글 Genius Of Love가 크게 인기를 얻었다. 제리해리 역시 The Red and the Black이라는 솔로 앨범을 내놓았다.

물론 밴드 활동도 이어지고 있었다. 1982년 밴드의 라이브 앨범 The Name of This Band is Talking Heads가 발매되었다. 스튜디오앨범 사이의 간극을 메우기 위해 만들어진 감도 없지 않지만, 이 앨범은 그 나름대로의 그간의 밴드의 음악적 성과가 차곡차곡 담겨진 뛰어난 라이브앨범이라고 할 만하다. 그리고 밴드는 “확장한 토킹헤즈”와 함께 일본 및 유럽을 포함한 순회공연도 – 라이브 앨범을 홍보하는 라이브! – 가졌다.1 이렇듯 밴드 멤버는 음악적으로나 상업적으로나 만족스러운 기간을 보내고 있었다.

이 기간이 이후의 활동에 있어 가지는 특별한 의미는 각자의 사이드프로젝트를 통해 멤버들이 점점 더 흑인음악의 다양한 면을 그들의 음악에 녹여내는 목표를 추구하였고 많은 성과가 있었다는 점이다. 특히 개인적으로는 밴드의 리듬 섹션끼리 모여 만든 탐탐클럽의 펑키(funky) 댄스팝 사운드가 대중에게 먹혔다는 점이 나머지 멤버들에게도 깊은 인상을 주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2 이러한 사실은 바로 1983년 밴드의 이름으로 발표한 Speaking in Tongues가 백인 락과 흑인 댄스팝의 결합이라는 점에서 확인할 수 있다.3

악상의 작업은 롱아일랜드에 있는 크리스의 아파트 등에서 진행되었고, 몇몇 기본 트랙은 뉴욕의 Blank Tapes에서 녹음했다. 본격적인 앨범의 녹음은 바하마에서 이루어졌다. 이노는 이제 프로듀싱에 더 이상 참여하지 않았다.4 그렇게 되면서 프로듀서의 이름은 Talking Heads가 되었다. “확장한 토킹헤즈” 멤버중 상당수는 이번에는 앨범 작업에서부터 참여했다. Bernie Worrell은 Girlfriend is Better에서 신디사이저를 맡았고, Nona Hendryx과 Dolette McDonald는 유사(類似) 가스펠곡과도 같은 Slippery People에서 쏘울풀한 보컬을 맡아주었다. Steve Scales는 Burning Down the House 등에서 퍼커션을 연주했다.

특징적인 세션 뮤지션은 Wally Badarou와 Alex Weir다. Level 42와 함께 활동했던 왈리는 이 앨범에서 세 곡의 신디사이저 연주를 맡아서 앨범의 그루브를 책임졌다.5 R&B 밴드 The Brothers Johnson의 멤버였던 알렉스는 Adrian Belew 대신에6 기타를 연주했다. 알렉스는 어이없게도 라이브앨범 The Name of This Band is Talking Heads의 홍보를 위한 라이브 투어에서부터 참여했는데,7 더 많은 흑인 뮤지션의 참여는 더 많은 흑인 음악이 가미되었음을 의미한다. 그런 결과로 Rolling Stone의 David Fricke은 “예술적인 백인 팝음악과 딥 블랙 펑크(funk)를 구분하는 얇은 선을 마침내 무너뜨린 앨범”이라고 극찬했다. 물론 이미 그 얇은 선은 탐탐클럽이 부순 상황이었고 이 앨범은 그 후속작이다.

A yellow plastic case with clear vinyl albums inside that have red and blue photographs stamped onto the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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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버트 라우첸버그(Robert Rauschenberg)가 디자인한 앨범 아트

앨범 아트는 데비잇의 작품이다. 이전 작품의 커버 아트에 비해 많이 밝은 톤이라는 느낌인데 당시 밴드는 (토킹헤즈의 팬이기도 했던) 장미쉘바스키아(Jean-Michel Basquiat)나 데이빗 호크니( David Hockney)와 같은 팝아트 예술가들이 주최하고 동석했던 파티에 가는 등 당대의 화가들과 많은 교류가 있었기 때문에, 데이빗도 이런 작풍에 영향을 받은 것이 아닌가 하는 것이 개인적인 생각이다. 또한 로버트 라우첸버그(Robert Rauschenberg)가 디자인한 이 앨범의 한정판의 디자인도 못지않게 밝은 톤인데 같은 맥락이 아닐까 싶다. 다만, 이 창작 과정에는 약간의 사연이 있는데 원래는 라우첸버그의 디자인이 정식 버전이 될 예정이었으나 너무 복잡한 작품 구성 때문에 대량생산이 어려워서 한정판이 되었다. 그래서 데이빗이 임시로 로스엔젤레스의 선셋마퀴스(Sunset Marquis) 호텔에 있던 의자를 넘어뜨려 찍은 사진을 조합한 커버를 만들게 된 것이다.8

이 앨범은 월스트리트저널에서도 리뷰를 써줄 정도로 상업적인 인기를 얻었다. 밴드의 작품으로는 처음으로 미국에서만 백만장 이상의 카피가 팔리며 RIAA로부터 플래티넘 인증을 받았다. 특히 카셋테잎의 판매가 두드러졌는데 십대 사이에서의 소니의 워크맨 열풍이 이러한 트렌드를 가속화하였다. 레코드사는 테잎에는 오리지널보다 더 긴 리믹스 곡을 수록할 수 있었는데 이 앨범에서도 Moon Rocks를 포함한 다섯 곡이 테잎 버전이 LP 버전보다 길다. 이런 변주를 통해 회사는 소비자에게 더 많은 즐거움을 제공할 수 있게 되었고, 이는 더 많은 수익으로 이어지게 된 것이다.9

대세가 된 MTV의 존재도 앨범과 싱글의 인기에 한몫했다. 도시 외곽의 평범한 이층집의 벽과 도로에 데이빗의 얼굴이 줌인된 영상이 비춰지고, 전부 하얀 색의 의상을 입은 밴드 멤버들이10 아이, 뚱뚱한 남자, 늙은 여자 등으로 교체가 되는, 토킹헤즈 특유의 수수께끼 같은 Burning Down the House11의 뮤직비디오가 MTV에서도 인기를 얻으면서 밴드의 인기도 덩달아 올라갔다. 요컨대 스피킹인텅은 워크맨과 MTV라는 시대적 조류에 잘 적응한 한 아트락 밴드의 성공담이라고 할 만하다.

이 앨범이 개인적으로 보다 각별한 이유 하나는 내게 토킹헤즈라는 존재를 처음 알려준 노래가 앨범의 첫 번째 트랙이자 밴드의 가장 큰 히트곡이라 할 수 있는 Burning Down the House이기 때문이다. 당시 이 노래가 좋아서 시내 레코드 가게에 가서 그들의 앨범을 구입하였다. 그런데 사들고 온 앨범은 알고 보니 밴드의 후속작 Little Creatures였다. 토킹헤즈의 앨범중 국내에 유일하게 라이센스로 나온 앨범은 그 앨범뿐이었고 가게 점원은 그 앨범을 내게 안겨준 것이었다.

이렇게 나를 토킹헤즈의 파리지옥에 빠져들게 만든 곡이 수록된 앨범, 그게 바로 음악적 “방언(Speaking in Tongues)”이 터져 나오는 이 앨범이다. 이 앨범이 특히 맘에 드는 점은 흑인 음악으로의 지향점을 보다 명확히 하면서도 전작 Remain In Light을 의식하여 보다 더 아방가르드한 방향으로 진행시키지 않았다는 점이다. 오히려 팝적인 요소를 한층 가미하여 본인들도 의식하지 않았을 상업성과 음악성의 얇은 선 사이에서 마음껏 하고 싶은 음악을 했다는 점이 대단하다고 생각한다.

이 앨범은 앨범의 홍보를 위한 공연은 1984년 조나단 드미(Jonathan Demme)가 감독하여 만든 음악 역사상 가장 뛰어난 공연 기록물로 간주되는 Stop Making Sense로 이어졌으며, 같은 이름의 라이브 앨범이 탄생하는 등 이어지는 토킹헤즈의 창작물에 지속적으로 영향을 미치게 된다. 재밌는 점은 개인적으로 좋아하는 토킹헤즈와 The Smiths가 스튜디오 앨범 수에서 2배의 차이(각각 8개와 4개)가 나는데, 딱 이 앨범이 토킹헤즈의 다섯 번째 앨범이라는 점이다. 즉, 스미쓰는 이 마수걸이를 넘지 못했고 토킹헤즈는 어렵사리 그 작업을 했기에 스미쓰의 2배의 스튜디오 앨범을 만들어 낸 것이다.

  1. 일본에서 데비잇과 제리는 아델르 루츠(Adelle Lutz)라는 시세이도 모델과의 염문에 휩싸이기도 한다. 삼각관계의 승자는 데이빗에 가깝다.(This Must Be The Place, 234-236쪽)
  2. 제리도 이에 대해 같은 의견이었는데 그는 “탐탐클럽이 성공했기 때문에 토킹헤즈의 경쟁적인 정신을 다시 촉발할 수 있고 우리는 더 오래 살아남을 수 있다고 생각했다”고 발언했다.(This Must Be The Place, 2396쪽)
  3. 펑키함을 유지하는 것은 중요했다. 한 예로 데이빗은 Making Flippy Floppy라는 곡의 가사를 쓰면서 flippy floppy가 무슨 의미인지도 생각하지 않았는데 다만 그 발음이 펑키(funky)했기 때문에 가사로 채택했다.(This Must Be The Place, 241쪽)
  4. 크리스에 따르면 이노는 이제 너무 많은 것을 요구했는데 예를 들면 그는 미국까지 콩코드를 타고 올 텐데 그 비용을 밴드가 부담하라고 했다고 한다.(Remain In Love, 290p)
  5. 당시 스물여덟 살이었던 왈리 역시 보렐처럼 클래식 음악의 영향을 받은 연주자였고 Level 42 이외에도 그레이스존스의 Warm Leatherette에서 곡을 쓰고 연주하는 등의 실력파 뮤지션이었다.
  6. 토킹헤즈의 전기 This Must Be The Place의 서술(234쪽)에 의하면 블루가 더 이상 밴드와 일하지 않게 된 계기는 그가 탐탐클럽과 같이 작업했는데 크리스와 티나가 제대로 정산을 해주지 않아서였다고 한다. 하지만 훗날 애드리안은 크리스와 티나를 만나면 언제나처럼 즐겁게 인사할 수 있다고 말하기도 했다.(같은 책 239쪽) 한편 크리스는 애드리안이 Robert Fripp 과 작업하기 위해 그들과 합류하지 않은 것으로 기억하고 있다.(Remain In Love, 291p)
  7. This Must Be The Place, 233p
  8. This Must Be The Place, 248p
  9. This Must Be The Place, 249-250p
  10. 흥미롭게도 일본의 락그룹 안전지대(安全地帯)도 이 영상에서 비슷한 디자인의 하얀 색 의상을 입고 공연을 하고 있다
  11. 크리스의 회고에 따르면 이 노래의 제목은 크리스가 관람했던 P-Funk 공연에서 관객들이 “Burn down the house”라고 외쳤던 상황을 밴드 멤버들 간의 잼에서 흉내 내면서 만들어진 것이라고 한다.(Remain In Love, 289p)

Johnny Marr & Talking Heads

토킹헤즈가 그들의 새 앨범을 파리에서 나와 함께 작업하자고 제안하였다. [중략] 그들은 우리 세대에서 너무나 중요한 밴드였고, 예술적 독창성을 유지하면서도 세계 최고의 밴드 중 하나라는 희귀한 업적을 이루었다. 난 그들의 음악을 속속들이 알고 있었고, 그들의 앨범에 기여해달라고 요청받은 것에 대해 기뻤고 흥분했다. [중략] 앨범을 프로듀싱한 스티브 릴리화이트(Steve Lillywhite)가 작업실에 있었는데, 내가 알던 이여서 반가웠다. [중략] 나는 간헐적인 퍼커션과 드럼 그루브를 한동안 들었다. 그리고 기타 코드 두어 개가 흐른 후 티나 웨이머스의 베이스라인이 흘렀다. [중략] 나는 내 손가락에서 노니는 트랙에로의 접근을 개념화하기 위해 뇌를 비워냈다. [중략] 아무 것도 생각나지 않았다. [중략] 난 겁에 질리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할 수 있는 유일한 행동으로 스튜디오를 빠져나와 머리를 식혔다. 파리 거리를 걸었다. [중략] 난 너무 아끼고 있었다. 그냥 내 것을 던져 넣으면 된다. [중략] 스튜디오로 돌아와서 깁슨-335 12현 일렉트릭을 꼽고 스티브에게 테잎을 다시 틀어달라고 했다. 인트로가 시작되고 생각 없이 내 머리에 떠오르는 처음 것을 연주했다. 스티브는 웃으며 엄지손가락을 치켜들었다. [중략] 데이빗이 그의 영리한 가사와 보컬을 더했고 그 곡은 (Nothing But) Flowers가 되었다. [Set The Boy Free, 273-275pp]

창작의 어려운 과정이 짧게 서술되어 있는 재밌는 일화라 소개한다. Talking HeadsThe Smiths라는 희소한 조합을 만들어낸 계기는 자니마가 밴드를 떠나고 난 이후의 토킹헤즈가 그를 세션 연주자로 초대했던 덕분이었다. 토킹헤즈의 드러머 크리스 프란츠의 회고록에 따르면 그를 초대하자는 생각은 자니마의 친구였던 스티브 릴리화이트의 아이디어였다고 한다. 자니는 연주를 쉽고 아름답게 해냈고 함께 와인을 즐기며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고 한다.1 한편, 자니마의 회고록에서 후술하는 부분을 읽어보면 자니마는 이런 활동 때문에 오히려 The Smiths 해체의 주범으로 욕을 먹기도 했다고 한다. 어쨌든 두 밴드 모두를 좋아하는 입장에서는 이런 조합의 곡이 탄생해주었다는 것 자체에 만족한다. 물론 The Smiths가 존속했더라면 어떠한 앨범이 더 나왔을지에 대해서 궁금하기도 하지만 말이다.

Talking Heads / Remain in Light [1980]

Album cover containing four portraits covered by red blocks of colour, captioned "TALKING HEADS" (with inverted "A"s) at the top and (much smaller) "REMAIN IN LIGHT" at the bottom.
By scan, Fair use, Link

1980년 1월, Talking Heads 멤버들은 1979년 앨범 Fear of Music을 홍보하기 위한 투어를 마치고 뉴욕으로 돌아와 개인적인 관심사를 추구하기 위해 시간을 보냈다. Byrne은 Brian Eno와 함께 앨범 My Life in the Bush of Ghosts를 작업했다. Jerry Harrison은 뉴욕에 있는 Sigma Sound Studios에서 나중에 본인의 초청으로 토킹헤즈의 다음 앨범에서 백보컬을 담당할 소울 가수 Nona Hendryx의 앨범을 제작했다. Chris Frantz와 Tina Weymouth는 카리브 해에서 휴가를 보냈다.

1980년 초에 멤버는 재회했다. Chris의 회고록 260쪽에 따르면 이렇게 다시 재회할 수 있었던 것은 그와 티나가 제안한 잼 연주 덕분이라고 한다. 어쨌든  밴드 멤버들은 지금까지 작곡이 대체로 Byrne의 책임이었고, 나머지 멤버들은 백킹 밴드라는 개념에 지쳤다는 것을 깨달았다. Byrne에 따르면, 그들이 목표로 삼은 이상은 “상호 협력을 위해 자존심을 희생하는 것”이었다. Byrne은 또한 뉴욕에서 느끼고 있던 “심리적 편집증과 개인적 고통”에서 벗어나고 싶었다.

Chris의 회고록 261쪽에 따르면 바하마로 가기 전 미리 작업한 곡은 없었으며 즉흥 연주로 만들 계획이었다고 한다. 또한 멤버들이 크레딧에 오르는 것으로 구두합의했다고 한다. 그룹은 Byrne의 가사에 맞춰 음악을 쓰는 대신 Fear of Music 트랙 “I Zimbra”를 기반으로 확장된 악기의 잼연주를 시도했다. 그렇게 밴드는 바하마1에서 즉흥 연주를 녹음하고, 가장 좋은 부분을 분리하고, 반복적으로 연주하고, 그것을 (라자냐처럼) 겹쳐 녹음하는 법을 익히면서 Remain in Light를 발전시켜나갔다.

Eno는 Byrne보다 3주 후에 바하마에 도착했다. 이전 두 앨범에서 협업한 후 밴드와 다시 작업하는 것을 꺼렸지만 악기 데모 테이프를 듣고 마음을 바꾸었다고 한다.2 밴드와 Eno는 개별 부분이 폴리리듬으로 맞물리는 공동의 아프리카 음악 제작 방식을 실험했다. Afrobeat의 창시자로 알려진 나이지리아 음악가 Fela Kuti의 1973년 앨범 Afrodisiac이 밴드와 Eno의 앨범의 원형(原形)이 되었다. Weymouth에 따르면 힙합의 등장으로 밴드는 음악적 풍경이 변화하고 있음을 깨달았다.3

Eno는 Cale과 Byrne을 자신의 아파트로 초대했고, 그들은 앉아서 레코드를 들었다. 그가 내놓은 앨범 중에는 Fela Kuti의 Afrodisiac이 있었는데, 이는 Remain in Light의 원형(原形)이 되었다. Eno는 “당시 저는 이 음악에 매우 흥분했고 그들도 매우 흥분했습니다.”라고 말했다. “영국에서는 아무도 관심이 없었기 때문에 스릴이 있었습니다.”[출처]

녹음은 1980년 7월과 8월에 바하마의 Compass Point Studios와 뉴욕의 Sigma Sound Studios에서 진행되었다. 가사는 밴드가 미국으로 돌아와 뉴욕시와 캘리포니아에서 만들었다. 세션 음악가로는 기타리스트 Adrian Belew,4 가수 Nona Hendryx, 트럼펫 연주자 Jon Hassell이 참여했다.5 (결국 앨범 뒷면으로 넘어갈) 커버의 아트워크는6 Tina와 Chris가 매사추세츠 공과대학의 연구원 Walter Bender와 그의 ArcMac 팀(MIT 미디어 랩의 전신)의 도움을 받아 작업했다. 부부는 히말라야 위로 편대를 이루며 날고 있는 붉은 전투기의 콜라주를 만들었는데, 미국 해군 제독이었던 Tina의 아버지 Ralph Weymouth를 기리기 위해 Grumman Avenger 비행기를 예술적으로 묘사한 것이다.

Album cover containing a drawing of a mountain range and four mostly red warplanes flying in formation. There is green text on the left hand side and a barcode in the top right corn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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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alking Heads와 Eno는 모든 노래를 알파벳순으로 “David Byrne, Brian Eno, Chris Frantz, Jerry Harrison 및 Tina Weymouth”에게 크레딧하는 데 합의했지만, 최종 발매된 앨범에는 “모든 노래는 David Byrne & Brian Eno가 씀(David Byrne, Brian Eno & Jerry Harrison이 쓴 “Houses In Motion”과 “The Overload” 제외)”라고 되어 있었다.7 Frantz, Harrison 및 Weymouth는 크레딧에 대해 이의를 제기했다. 이후 에디션에서는 모든 밴드 멤버들로 크레딧이 바뀌었다. Frantz는 2009년에 그와 웨이머스는 “크레딧 분쟁으로 인해 매우 화가 났다”고 말했다.8

이런 우여곡절 끝에 탄생한 앨범 Remain in Light9 은 1980년 10월 8일 Sire Records에서 발매되었다. 앨범은 음향 실험, 리듬 혁신, 서로 다른 장르를 응집하여 전체로 통합한 시도였기에 비평가들로부터 폭넓은 찬사를 받았다. 이 앨범은 미국 Billboard 200 앨범 차트에서 19위, 영국 앨범 차트에서 21위를 차지했으며, 싱글 “Once in a Lifetime”과 “Houses in Motion”이 발매됐다. 앨범은 전 세계적으로 100만 장 이상 판매되었다. 2017년 의회도서관은 이 앨범을 “문화적으로, 역사적으로 또는 미적으로 중요한” 앨범으로 간주하여 National Recording Registry에 보존하기로 결정했다.

비평가 Stephen Thomas Erlewine은 이 앨범을 “아프리카 타악기, 펑크 베이스 및 키보드, 팝송 및 전자 음악의 밀집된 혼합물”이라고 불렀다. 2008년 리뷰에서 Vibe의 숀 페네시(Sean Fennessey)는 “Talking Heads는 아프리카 폴리리듬을 NYC로 가져와서 우아하고 색다른 포스트펑크를 만들었다”고 평했다. 정신 분석가 Michael A. Brog는 이 앨범이 록앨범의 형식의 잠재력을 이용하여 “정신병 및 분열증적 경험에 강력하고 당혹스러운 음악적 표현을 공급“하고 있다고 묘사했다.

Byrne은 앨범 보도 자료에 참고 문헌과 함께 앨범이 아프리카 신화와 리듬에서 영감을 받았다는 내용의 성명을 포함했다. 이 발표에서는 가사의 주요 영감이 John Miller Chernoff의 African Rhythm and African Sensibility라고 강조했는데, 이는 농촌 아프리카 지역 사회의 삶의 음악적 향상을 조사한 서적이다. Chernoff는 1970년 가나로 여행을 가서 토착 타악기를 연구했고 아프리카인들이 드럼 패턴을 통해 대화를 나누는 방법에 대해 썼다.10

Eno는 Talking Heads에게 Remain in Light의 음악이 4인조가 라이브 공연하기에는 너무 밀도가 높다고 조언했다. 밴드는 앨범을 홍보하기 위해 투어 인원을 9명의 뮤지션으로 확대하기로 했고,  이에 따라 Adrian Belew, Parliament-Funkadelic 키보디스트 Bernie Worrell, 베이시스트 Busta “Cherry” Jones, Ashford & Simpson 타악기 연주자 Steven Scales, 백킹 보컬리스트 Dolette MacDonald를 영입했다. 확대된 밴드는 최초로 1980년 8월 23일 온타리오의 Heatwave 페스티벌에서 70,000명의 관객을 대상으로 공연했다. 8월 27일, 또한 Wollman Rink에서 8,000명의 관객을 모아 트랙 쇼케이스를 선보이기도 했다.11 12

Radiohead는 Remain in Light가 그들의 2000년 앨범 Kid A에 큰 영향을 미쳤다고 밝혔다. Radiohead 기타리스트 Jonny Greenwood는 루프로 구성되어 있다고 생각했지만, Harrison에게 Talking Heads가 대신 반복해서 연주하는 부분을 녹음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Greenwood는 “그래서 듣기에 지치지 않는 이유는 같은 음악을 계속 반복해서 듣지 않기 때문입니다. 매번 약간씩 다르게 들리죠. 거기에는 교훈이 있습니다.” 2018년 베냉 가수 Angélique Kidjo는 Jeff Bhasker가 프로듀싱하고 Kravenworks 레이블에서 발매한 Remain in Light의 1:1 곡 커버를 발표했다 밴드가 아프리카 음악에서 영감을 받았다는 점을 강조하여 앨범에 경의를 표하고 싶어했다.

2022년 해리슨과 벨루는 앨범 40주년을 기념하는 3개의 콘서트 일정을 위해 뭉쳤고, 앨범 전체와 Talking Heads의 여러 곡을 연주했다. 2023년, 그들은 프로젝트를 북미 전체 투어로 확대했고, 벨루가 Talking Heads의 영향을 받은 1980년대 King Crimson의 시기에 활동했던 시절의 자료를 포함했다.

1. Born Under Punches (The Heat Goes On)

“Born Under Punches (The Heat Goes On)”의 샤우팅 창법은 일상에서의 “설교, 소리치기, 횡설수설 등”에서 영감을 얻었다. 특히 이 노래는 워터게이트 스캔들 이후의 대중의 편집증을 다루고 있다. 번은 존 딘(John Dean)의 워터게이트 증언에서 나온 직설적인 말을 연구하여 자신의 작업에 적용하려고 했다. 제목에 사용되고 코러스에서 반복되는 “And the Heat Goes On”이라는 표현은 1980년 여름에 이노가 읽은 New York Post 헤드라인에서 힌트를 얻었고, 번은 데뷔 앨범의 트랙 “Don’t Worry About the Government”라는 노래 제목을 “Look at the hands of a government man”이라는 가사로 다시 사용했다.

Don’t you miss it? Don’t you miss it?
Some ‘a you people just about missed it!
Last time to make plans
Well, I’m a tumbler
I’m a government man

이 가사에서 “Last time to make plans”은 리처드 닉슨이 탄핵 직전에 갑자기 사임함으로써 그를 정당하게 처벌하려는 행위를 무력화시킨 계획을 의미하는 것처럼 느껴진다. 마치 지금 한국의 대통령에 대한 탄핵 절차가 진행되는 와중에 ‘자진 사퇴할 수도 있다’라는 설이 일각에서 흘러나오는 상황이 연상되어서 씁쓸함을 느끼게 하는 구절이다.

음악적인 관점에서 볼 때 이곡은 앨범의 실험적인 시도가 가장 잘 응축되어 있는 곡이라 할 수 있다. 이 리뷰에서도 이러한 부분을 높이 평가하고 있고, 브라이언이노도 이곡에서 밴드와 본인이 했던 실험에 대해 이렇게 설명하고 있다.

제가 만족했던 다른 중요한 것 중 하나는 악기를 서로 연결하는 아이디어였습니다. 몇 개의 악기가 복잡한 부분을 연주하는 대신, 많은 악기가 매우 간단한 부분을 연주하고 이 부분들이 서로 어우러져 복잡한 트랙을 만들어냅니다. 예를 들어 Born Under Punches 에는 5~6개의 베이스가 있었는데 , 각각이 서로 어울리는 간단한 부분을 연주했습니다.(출처)

2. Crosseyed and Painless

이곡의 작업 당시 번은 곡을 어떻게 불러야 할지 몰라 작가적 난관(impasse)에 부딪혔다고 한다. 그래서 크리스는 “너도 알겠지만 랩이라 부르는 새로운 것이 있는데, 넌 꼭 노래를 부를 필요가 없어. 그냥 가사를 랩하면 돼. 이거 들어봐”하며 Byrne에게 Kurtis Blow의 “The Breaks“를 들려주었다고 한다. 그리고서 번은 한번의 시도만에 성공했다.(회고록 264-265쪽) 아래 가사는 “사실”이라는 것을 끊임없이 주입받지만 이에 대해 계속 회의(懷疑)하는 화자의 완고함이 느껴진다.

I push the facts in front of me
Facts lost
Fa-Facts are never what they seem to be
No-no-thing there
No information left of any kind

이 노래의 뮤직비디오는 Toni Basil이 댄싱팀 The Electric Boogaloos와 함께 만들었다. 이 뮤직비디오를 보면 토킹헤즈의 음악은 다시 한번, 지적인 갈증을 해소해주는 난해한 음악이기 이전에 앞서 댄스음악이라는 사실을 일깨워준다.13

3. The Great Curve

Byrne이 Robert Farris Thompson의 책 African Art in Motion을 읽은 후 사용한 “The world moves on a woman’s hips”라는 가사로 아프리카 테마를 잘 보여준다.

Sometimes the world has a load of questions
Seems like the world knows nothing at all

또한 도입부의 이 가사가 흥미로운데 언젠가 한 유튜브 영상에서 ‘모두가 비정상인 사회에서 정상적으로 사는 것은 정상적인가’라는 취지의 발언을 본 적이 있다. ‘번이 자폐 스펙트럼장애라서 사회에 적응하는 것이 어려워서 토킹헤즈의 음악이 편집증적이 아니었을까’라는 이야기도 많지만, 우리 사회에서 당연시 여기는 많은 것들이 사실은 많은 질문을 던지는 비정상적인 것일 수도 있다. 재밌게도 번은 데뷔 앨범의 “No Compassion”에서도 같은 질문으로 노래를 시작한다.

So many people…have their problems
I’m not interested in their problems

요컨대 이러한 상황은 앞서의 트랙 Crosseyed and Painless에서 “사실”을 계속 강요받는 상황과도 맥이 닿아 있다고도 할 수 있다.

음악적으로 볼 때 Crosseyed and Painless와 함께 앨범에서 개인적으로 가장 재밌게 듣는 곡이다. 타악기로 봉고(Bongo)가 쓰였다. 그리고 애드리안 벨루의 기타 간주가 돋보이는 곡. 빠른 속도의 기타 연주와 관악기 연주가 긴장감을 더하고 있다.

4. Once in a Lifetime

어떻게 보면 이렇게 시종일관 긴장감을 놓칠 수 없는 앨범 속에서 그나마 다소 느긋하게 들을 수 있는 곡. 상업적으로도 큰 인기를 끌었고 가사 속의 스토리가 많은 이들에게 영감을 주었다.  Nicolas Cage 주연의 The Family Man은 이 곡을 모티브로 해서 시나리오를 썼음에 틀림없다.

And you may ask yourself
“How do I work this?”
And you may ask yourself
“Where is that large automobile?”
And you may tell yourself
“This is not my beautiful house!”
And you may tell yourself
“This is not my beautiful wife!”

그야말로 ‘나는 누구며 여기는 어디인가?’ 하는 상황이다. 이 가사를 그대로 묘사하고 있는 재밌는 사진이 인터넷에서 밈으로 인기를 끌기도 했다. Byrne이 NPR에서 이곡에 대해 이렇게 말하기도 했다. “우리는 대체로 무의식적입니다. 아시다시피, 우리는 반쯤 깨어 있거나 자동 조종 장치로 작동하고 결국 집과 가족과 직장과 다른 모든 것을 가지게 되고, ‘내가 어떻게 여기까지 왔을까?’라고 스스로에게 묻지 않습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토킹헤즈의 곡 가사 중에 가장 유명한 가사가 등장한다.

Same as it ever was

이 노래의 뮤직비디오는 번과 토니베실이 같이 감독한 것으로 크레딧에 올라있다.

5. Houses in Motion

이곡은 세션으로 참가한 Jon Hassell의 으스스한 트럼펫 연주가 돋보이는 곡이다.

I’m walking a line
I’m visiting houses-in-motion
I’m walking a line

번은 유난히 건축물이나 도시에 대해 곡을 많이 썼는데

  • Love → Building on Fire
  • Don’t Worry About the Government
  • The Big Country
  • Cities
  • Born Under Punches (The Heat Goes On)
  • Burning Down the House
  • (Nothing But) Flowers

등을 들 수 있다. 두 번째 앨범의 제목을 알다시피 – 비록 웨이머스의 아이디어로 채택된 제목이기는 하지만 – “More Songs About Buildings and Food” 이다. 그리고 솔로 커리어 시절에는 건물을 악기로 사용하여 “Playing the Building”이라는 인터랙티브한 전시회를 열기도 했다.

6. Seen and Not Seen

Byrne은 밴드의 나머지 멤버들이 만든 악기 연주에 낭송 스타일의 시를 낭송한다. 이 시는 은유를 통해 대중 문화에서 보는 사람들의 정체성을 바탕으로 정체성을 재형성할 만큼 불안한 한 남자와, 이것이 완벽하게 자연스럽다는 의견을 묘사하고 있다. “Gradually his face would change its shape”이라는 가사에서 보듯 앨범의 등장인물들은 계속 모습을 잃어간다(Crosseyed and Painless는 Lost my shape이라는 가사로 시작한다).

7. Listening Wind

이 노래는 미국 식민지 개척자들을 폭격하는 외국 테러리스트 Mojique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논란의 여지가 있는 주제에 대해 Byrne은 다음과 같이 말했다.

“더 이상 라이브로 공연할 수 있을지 모르겠어요!… 미국이 ​​보편적으로 사랑받지 못하는 이유를 이해합니다. 저는 수년간 그 사실을 알고 있었지만 많은 미국인에게는 그렇지 않습니다. 그들의 즉각적인 반응은 ‘그들은 우리를 사랑하고, 그저 질투할 뿐이야. 그들은 그저 맥도날드를 원할 뿐이야.’”

8. The Overload

이곡은 Talking Heads가 노래를 Joy Division의 스타일로 만들려 했던 시도다 . 문제는 멤버중 중 누구도 Joy Division을 들어본 적이 없다는 것. 그냥 그들에 대해 읽은 바에 따라 그 분위기대로 노래를 만들고 연주한 것이다. 마치 존재하지 않는 Sci-fi 영화의 사운드트랙처럼.14 가사는 마치 불교의 영겁을 노래하는 듯한 분위기다.

A frequent returning
And leaving unnoticed
A condition of mercy
A change in the weather
A view to remember
The center is missing
They question how the future lies
In someone’s eyes

  1. 밴드가 도착했을 때에는 옆 스튜디오에서 AC/DC가 Back in Black을 녹음 중이었다고
  2. 이노는 “난 너희들이 가려고 하는 방향이 무척 맘에 들어. 이런 식으로 계속 간다면 너희 앨범을 프로듀서할 거야.”라고 말하며 엔지니어로 Rhett Davies를 데려왔다.(David Bowman의 책 167쪽)
  3. 맨해튼의 북쪽 할렘에서 등장한 힙합은 서서히 남쪽의 백인 음악의 공간으로 침투하며 협업의 길을 걷기 시작한다. 이 작업의 선두주자로는 토킹헤즈와 블론디 등이 있다.
  4. Belew는 “Crosseyed and Painless”, “The Great Curve”, “Listening Wind” 및 “The Overload”가 될 트랙에서 연주했다
  5. Eno는 그에게서 “제4세계 음악”의 비전을 보았다. 하셀은 “커피 색깔의” 미래의 고전음악에 대해 이야기했다. 그는 지구의 반은 15세기를 살고 있고 나머지 반은 순수한 블레이드러너에 살고 있다고 믿었다.(David Bowman의 책 166쪽)
  6. 앨범의 앞면 커버는 네 멤버의 사진에 컴퓨터그래픽 효과를 통해 멤버들의 얼굴에 빨간 칠을 한 Scptt Fisher라는 프로그래머의 작품이다.(David Bowman의 책 177쪽)
  7. 크리스의 회고록 266쪽
  8. 한편으로 Chris의 회고록 263쪽에 따르면 크리스 부부는 레코드사에 청구하지 않은 금액 십만 달러 이상을 이 음반에 썼다고 한다. 그는 특히 이노의 냉대와 이에 대한 번의 침묵에 분노가 컸다.
  9. 작업 초기에 정해진 이름은 Melody Attack이었다. 이노가 후에 어디선가 읽은 책에서 영감을 받아 이 이름을 제안했다고 한다.
  10. 이 책은 번이 유럽에서 미국으로 오는 여정에 읽은 책인데 작가는 아프리카에서 8년 이상을 보내며 어떻게 아프리카의 타악기 연주자가 연주를 통해 서로 대화를 나누는 지에 대해 서술한 책이다. 드럼 연주의 어휘는 언어의 그것 만큼이나 복잡하였다.(David Bowman의 책 173쪽)
  11. Chris의 회고록 272쪽에 따르면 이 공연의 오프닝은 일본의 일렉트로닉팝 밴드 Plastics가 담당했다고 한다
  12. 확장된 토킹헤즈
  13. 우키팝이라는 유튜버가 2024년에 올린 피치포크의 사세 축소에 관한 이 영상을 보면 피치포크의 리뷰를 보고 어떻게 그 유튜버가 토킹헤즈의 음악에 대해 이해도를 높일 수 있었는 지를 여담으로 설명하고 있다.
  14. David Bowman의 책 178쪽

Week-end à Rome

지난번 Talking Heads의 Psycho Killer에 나오는 프랑스어 가사에 대해 알아보려고 챗지피티를 활용하였다. 당시 챗지피티는 아래와 같이 대답했다.

이 프랑스어 문장은 Étienne Daho의 노래 Week-end à Rome의 가사 중 일부입니다. 각 구절의 의미를 해석해 보면 다음과 같습니다.

1. Ce que j’ai fait, ce soir-là
👉 그날 밤 내가 한 것
2. Ce qu’elle a dit, ce soir-là
👉 그날 밤 그녀가 한 말
3. Réalisant mon espoir
👉 내 희망을 실현하며
4. Je me lance, vers la gloire
👉 나는 영광을 향해 뛰어든다

전체적으로 해석하면, “그날 밤 내가 한 일과 그녀가 한 말, 내 희망이 실현되면서 나는 영광을 향해 나아간다.” 정도의 의미가 됩니다. 이 문장은 감성적이고 시적인 표현으로, 어떤 중요한 순간(특히 사랑과 관련된 순간)에서 희망과 성취감을 느끼는 장면을 그리고 있습니다.

사이코킬러의 프랑스어 가사에 대해 물었는데 전혀 다른 가수의 노래라고 대답하기에 당시엔 ‘아 같은 가사를 쓴 다른 노래인가보다’라고 생각하고 잊고 있다가 오늘 그 노래를 찾아봤는데 황당하게도 해당 노래에는 그런 가사가 없다. 챗지피티가 엉뚱한 대답을 – 혹은 거짓말 – 한 것이다. 어쨌든 덕분에 멋진 노래를 하나 알게 되긴 했다. 프랑스 출신의 가수이자 프로듀서인 에티엔 다호(Étienne Daho)가 직접 작곡하여 1984년에 발표한 곡이라 한다. 심플한 신스팝과 건조한 보컬이 잘 어울린다. Saint Etienne이 1995년 싱글로 발매된 He’s on the Phone 이라는 제목의 영어 버전으로 커버하기도 했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