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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킹헤즈의 ‘Once in a Lifetime’이 말하고자 하는 바는 무엇일까?

Talking Heads c. 1980; left to right: David Byrne, Jerry Harrison, Tina Weymouth, Chris Frantz
By Distributed by Sire Records. Photographer uncredited. – , Archive , eBay listing two, , Public Domain, Link

토킹헤즈의 1981년 작 ‘Once in a Lifetime’이 역사상 가장 위대한 곡 중 하나라는 사실은 과장이 아니다. 곡의 발표후 40년 이상 Remain in Light의 이 리드싱글은 그 첫 발매이후 사랑받고 적절한 곡으로 기억되고 있다. – 그러나 그 가사는 어떠한 내용일까?

곡을 쓴 데이빗번에 따르면 이 곡은 무의식에 관한 노래다. “알다시피 우리는 비몽사몽간이나 자동 조종장치 위에서 움직이고 어쨌든 집 한 채, 가족, 직업, 그리고 그 외의 것을 가지게 됩니다. 그리고 우리는 계속 우리에게 자문합니다 ‘어떡하다 내가 여기에 있지?’” NPR에게 프론트맨이 한 말이다.

번은 곡의 첫 소절에서 일상생활에서의 자동 조종장치 루틴에 대해 요약한다. 1절에서의 각각의 가사는 다음과 같은 구절로 문을 연다. “그리고 넌 너 자신을 발견할 것이다.(And you may find yourself.)” 곡의 전체적인 메시지를 증류한 것 같은 다섯 단어다. 곧바로 번은 우리가 우리의 삶을 통제하고 있다고 가장된 인지에 초점을 맞춘다. – 너는 능동적으로 멋진 저택이나 아름다운 아내를 추구한 것이 아니다. 넌 단지 그것들을 가진 너 자신을 발견한 것이다.

1절에서의 이 구절의 반복은 우리 대부분이 맹목적으로 받아들이고 우리의 삶이 어떻게 변하는지에 대해 거의 관조하지 않는 단조로움을 반영한다. 다만 이는 파멸이나 의기소침을 의미하지 않는다. 번의 읊조림은 우리가 주변을 바라보도록 상기시켜 우리가 우연히도 얻게 되었을 성취와 아름다음을 찬양하고 스스로에게 자문하게 한다. “어떡하다 내가 여기에 있지?(How did I get here?)”

그가 우리를 계속해서 두 번째 인물로 안내하는 동안, 이 프론트맨의 무게감 있는 가사나 단호한 보컬은 번에 의해 의도적으로 스타일리스틱하게 선택한 어느 목사의 환영을 묘사한다. 코러스에 대한 브라이언 이노의 멜로디에 관해 말하자면, 그는 Uncut에 다음과 같이 설명했다. “이는 마치 설교자와 그의 신도들의 대화처럼 부름-응답(call-and-response) 패턴으로 작용했어요. 나는 마치 설교를 하는 것처럼 가사를 발전시켜나갔지요.”

싱어는 또한 라디오에서의 선교사들이 반복하는 구절에서 영감을 얻었는데, 이를 통해 초월성이 반복되는 느낌을 주었다. 물을 기반으로 하는 표상 역시 노래 내내 현존하였는데, 인생과 시간의 멈출 수 없는 흐름을 반영한 것이다. “물을 제거하라, 물을 나르라.(Remove the water, carry the water)” 번은 우리를 격려한다. 그것은 불가능한 일이다. 그러나 프론트맨의 도움으로 거의 가능한 것처럼 여겨진다.

노래 내내 이어지는 무의식적인 일상에 대한 반복되는 상기 속에서 – “나날들을 보내면서(Letting the days go by)”라는 반복되는 후렴구에서, 그리고 상징적인 “늘 똑같아요(Same as it ever was)”에서 – 번은 우리에게 뚫고 나가라고 간청한다. ‘Once in a Lifetime’은 단순히 염세적인 노래가 아니라 활기찬 노래다. 모든 것이 늘 똑같다는 것은 번의 보다 긍정적인 선언과 즐거운 연주와 대조를 이룬다.

“시간은 멈춰있지 않아요. 시간은 우리를 뒤따르지 않아요.(Time isn’t holding up, time isn’t after us)” 그는 우리에게 확신시킨다. 그리고 그를 불신하기 쉽지 않다. “데이빗의 가사들이 환상적인 점은 그가 선교사의 열정에 찬 어조를 사용한다는 점이에요.” 이노가 Uncut에서 설명한다. “우리가 얼마나 환상적인 곳에서 살고 있는지 이야기하고 있어요. 함께 찬양합시다. 그건 모두가 절망하고 우울해하고 있을 때 할 수 있는 급진적인 행위에요!”

우리가 번을 믿어야 한다면, 우리가 아무 생각없이 사회적 기대를 만족시키고 우리의 성취가 우리를 스쳐지나가게 놔두는 동안 그 나날들이 흘러가게 놔두는 것은 유일한 선택이 아니다. 번이 제목의 단어인 “일생에 단 한번(Once in a lifetime)” 전달하면서 이 지점은 마침내 곡의 마지막 장면에서 집에 도달한다. 이는 삶의 덧없는 본질을 날카롭게 상기시킨다. 적어도 우리는 번에게 우리의 무의식적인 활동을 깨고 인생을 보다 자주 찬양해야 한다는 것에 대한 빚을 진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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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킹헤즈가 그 집을 태워버렸다. 서로 각자가 아니라

이 팬의 이름은 스파이크리다.

“역사상 최고의 콘서트 필름입니다!” 토론토 인터내셔널페스티벌에서 토킹헤즈의 새롭게 리마스터된 콘서트 다큐멘터리 스탑메이킹센스의 시사회에서 이 베테랑 감독이 선언했다. 리는 그룹이 이십여년만에 처음으로 대중에 전체 밴드의 모습으로 나타난 영상회와 질의응답 시간의 사회를 맡아줄 것을 요청받았다.

몇년 동안 팬들은 멤버인 데이빗번, 티나웨이마우스, 크리스프란츠, 제리해리슨에게 재결성해줄 것을 애걸해왔다. 그러나 월요일의 이벤트는 이 락커들이 서로 한 방에 모일 수는 있기나 한 것인지에 대한 테스트였을 것이다. 번과의 마지막 만남이 “20여년 전”이었다는 프란츠는 그가 2020년 내놓은 생동감있는 회고록 리메인인러브에서 회고하길 번은 그룹의 공동작업에 대해 반복적으로 단독의 작곡인 것으로 간주했었고, 1991년 모두를 놀라게 하는 밴드의 해산을 주도했다. 그리고 나머지의 바람과 반해서 EMI의 카탈로그에 완전한 소유권에 서명해버렸다. 한편 웨이마우스는 이전에 번을 “트럼프주의자”이자 “거래적”이라고 묘사했다.

그러나 TIFF에서 잠복해있던 드라마는 재빨리 잠재워졌다. 리의 사회 하에 상영 후의 인터뷰는 최대한 밝고 공손했다. “역사상 최고의 콘서트 필름입니다!” 그는 다시 선언해서 그룹이 그들의 음악과 영상의 유산을 축하며 미소짓게 만들었다.

“토킹헤즈는 너무나 뛰어난 밴드이고 우리가 라인업을 확장했을 때… 우리는 다른 차원으로 옮겨갔었습니다.” 프란츠가 말했다. “자화자찬해서 미안한데 우리 밴드 멤버가 오늘밤 다시 함께 한 것이 너무 좋아요.”

CBGB의 열기 속에서 구성된 토킹헤즈는 1970년대 뉴욕에서 협조적이고 매혹적이고 끊임없이 변화하는 사운드에 집중하는 거부할 수 없이 매력적인 라이브 연주로 경력을 시작했다. 이는 그들을 보다 전통적인 가사-코러스-가사 위주의 동료 뮤지션과 차별화하는 것이었다. 그들은 특히 피어오브뮤직(1979)에서 종합적인 텍스쳐를 락에 결합하고 차기작 리메인인라잇(1980)과 스피킹인텅스(1983)에서는 아프리카의 그루브에 영감을 받은 복합적인 리듬을 만들어내는 등 스튜디오 마술에 능숙한 솜씨를 보여주었다. 토킹헤즈는 비록 2021년이 되어서야 평생공로상으로 처음 그래미를 받기는 했지만 드물게도 비평과 흥행 모두에서 성공적이었다.

1984년 발표한 스탑메이킹센스는 그들의 카타르시스를 느끼게 하는 라이브 공연을 소중하게 담아냈다. 이 획기적인 필름은 당신을 토킹헤즈가 스피킹인텅스 투어로 3일 밤을 연주하는 로스엔젤레스의 판타지스 극장으로 데려간다. 당시 그룹은 쇼에서 라인업을 서서히 확장하면서 보다 풍부하게 실연하는 사운드나 장엄한 연출법 등을 선보였다.

당신이 스탑메이킹센스를 처음 접했든 반복적으로 시청을 했든 (해리슨이 감리를 맡은) 리마스트된 사운드를 포함한 복각판은 당신을 즉시 그들의 연주장으로 데려간다. IMAX에서 극단적으로 친밀한 경험을 맛볼 수 있다.(“그는 너무 땀이 흥건하네요!” 번의 근접 샷에서 내 이웃 하나가 말했다.) 극장의 팬들은 “버닝다운더하우스”에 원 모양으로 회전했고 “원스인어라이프타임”에서는 리는 좌석을 차고 일어난 이들에 합류했다. “라이프디어링워타임”의 연주 동안 번의 모습에에는 다시 한번 계단에서 달리기가 시작되었다.

“지금 이걸 봤을 때 난 이게 극장에 오는 이유야!라고 생각했어요.” 나중에 번이 “내 랩탑으로 보는 것과 다르다”라고 농담하기 전에 이야기했다.

상영회 이후 리는 동기부여 감독 역을 맡았다. “모두 환영해주세요. 전세계적으로 기록을 세울 예정입니다.” 토킹헤즈 101으로서 부분적으로 발매의 역할을 인지하고 있기에 리는 타임라인과 함께 1983년 어떻게 촬영했는지에서부터 밴드와 청중이 2023년 이를 어떻게 받아들였는지에 이르기까지 질의를 진행했다. 특별히 웨이마우스의 그의 베이스 스타일에 친밀감을 보이며 리는 그에게 이 필름에서 맘에 드는 연주가 무엇인지 물었다. “이봐요 스파이크” 그가 대답했다. “그건 마치 내 아이들 중 누구를 누구를 가장 사랑하느냐고 선택하라고 강요하는 것이나 같아요.”

토킹헤즈의 발언이나 팬의 질문은 – 예를 들면 “완전 새로운 관객에게 이 상징적인 영화를 상영하니 어떤 느낌인가요?”와 같은 – 이 방안에 하나의 단어를 남겼는데 ‘사랑’이다. 리는 다시 강조했다. “사랑!” 리는 항상 같은 정서를 공유한 것만은 아닌 이들 밴드 구성원을 위한 치료의 힘이 있는 주문이라도 되는양 소리쳤다. “영원하다!” 그는 그들의 유산에 대한 확신감으로 반복했다. “풍부하고 세심한 사운드!” 그는 그룹이 기뻐할 정도로 강조하였다.

“이 필름이 힘을 유지하는 이유 중 하나로 당신은 스테이지 위에서 우리가 무척 즐기고 있다는 사실을 볼 수 있을 것입니다.” 해리슨의 말이다.

“제가 거기에 사랑이란 단어를 다시 넣어도 될까요?” 리가 물었다. “사랑! 사랑!”

“사랑과 즐거움, 그리고 청중이 ‘당신도 이 중 하나야’라고 말하고 있어요.” 해리슨이 이어나갔다. “이 영화를 볼 때마다 당시의 놀라운 감정이 다시 떠오르곤 합니다.”

토킹헤즈는 리를 좀 더 자주 만나야 하고 이는 그들에게 좋은 일일 것이다.

게일블레커가 디자인한 아이코닉한 빅수트에 대해 이야기하면서 번은 일본에서 그의 친구와 저녁을 먹으면서 친구는 극장에서 동작과 부피에 이르기까지 모든 것이 실제 삶보다 크다고 이야기했다고 회상했다.

“그리고 난 생각했는데 오~! 내 양복도 역시 커야겠구나.” 번이 말하자 폭소가 터졌다.

“오늘은 정말 컸어요.” 프란츠가 대꾸했다.

웨이마우스는 필름을 찍기전에 “모든 곡의 악보를 따고, 각 연주자가 무엇을 하는지, 누가 움직이는지를 알기 위해” 밴드와 함께 몇주간 여행했던 비주얼 컨설턴트 샌디맥레오드에게 고마움을 표했는데 “내 생각에 그게 실제 촬영에서 굉장히 도움이 되었던 것 같아요.”라고 말했다. 밴드는 또한 팀의 노력으로 스탑메이킹센스의 감독으로 많은 신뢰를 받았던 조나단드미에게도 칭찬을 쏟아부었다.

“난 그가 이것을 일종의 합주 필름이라고 보고 있음을 깨달았어요.” 번이 고인이 된 감독에 대해 말했다. “당신은 많은 배우를 가지고 있어요. 당신은 하나하나의 캐릭터에 대해 알게 되죠. 그리고 당신은 그들이 서로 어떻게 관계하는지 바라봅니다. 나는 나많의 세상이 있다. 그러나 그는 거기에서 무엇이 어떻게 돌아가고 있는지를 본 것이라고 생각했었죠.”

프란츠가 덧붙였다. “조나달은 우리를 많이 신뢰했어요. 우리가 하는 것이 영화로 만들 가치가 있고 또한 그것이 미래에 기억될 가치가 있다고 느끼게 해줬죠.”

리는 아쉽게도 밴드 멤버들이 어떻게 이제 잘 지내게 됐는 지에 대해서나 라이브를 위한 재결합의 가능성에 대한 질문을 하지 않았다. 번은 다만 최근 사람들에게 그가 그룹을 끝내게 한 것에 대해 “후회”하고 있고 그것을 “꼴 사나운 해체”라고 하며 자신의 잘못을 인정했다고 한다. 토킹헤즈의 이전의 2002년 공개 석상에서 프란츠는 록앤롤 명예의 전당에게 밴드가 “행복한 끝맺음”의 기회를 준 것에 대해 감사한 바 있다. TIFF는 보다 행복한 것이 되었다.

“마술같아요.” 웨이마우스는 스탑메이킹센스에 대해 이야기했다. 그러나 이 감상은 그 밤 그 자체에게도 쉽게 적용될 것이다. “모든 것이 특별해요. 당신이 우리와 청중 사이에 대해 이야기한 그 사랑, 팀웍, 우리 동료, 영화를 찍은 동료. 모든 것이 멋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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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alking Heads, 2021년 그래미 특별공로상 수상 예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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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ource (WP:NFCC#4), CC BY-SA 4.0, Link

Talking Heads 가 2021년 그래미에서 특별공로상을 수상할 예정이다. 이 아트락의 선구자들은 평생공로상을 수상할 것이다. 이들과 함께 같은 상을 수상하는 이는 Selena, Salt-N-Pepa, Grandmaster Flash & The Furious Five, Lionel Hampton, Marilyn Horne 등이다. Talking Heads는 여태 두 번 수상 후보에 오른 적은 있지만 – 1983년 “Burning Down The House”로 베스트 락공연에, 그리고 “Storytelling Giants”로 베스트컨셉트뮤직비디오 부문에 – , 한 번도 그래미를 수상한 적이 없다. Talking Heads의 마지막 공식 공연은 2002년 락앤롤 명예의 전당에서의 공연이었다. 그래미 수상식은 2021년 1월 31일 온라인으로 진행될 예정이다. 사회는 Trevor Noah가 맡을 예정이다.

Remain In Light이 만들어지기 직전에 있었던 잼세션에 관한 일화


새로운 앨범을 만들어야 한다고 다른 멤버들을 부추기는 것은 보통 나의 일이었다. 티나는 준비되어 있었다. 제리는 준비되어 있었다. 나는 확실히 준비되어 있었다. 데이빗과 브라이언은 별로. 그들은 뉴욕으로 돌아왔지만, 분명 – 우리는 알 수 없지만 – 샌프란시스코에서 앨범을 만드는 동안에 그들 사이에 무슨 일이 있었다. 내가 데이빗에게 전화했을 때 그는 우리와 새 앨범을 만드는 것에 관심이 없다고 했다. 뭘 해야 하나? 티나, 제리, 그리고 나는 우리 집에서 즉흥연주를 시작했고 기록을 위해 우리의 소니 붐박스에 모든 것을 녹음했다. [중략] 티나가 아이디어를 냈다. 그는 브라이언에게 전화해서 “안녕 브라이언. 나 지금 크리스하고 제리와 여기 우리 집에서 잼세션을 하고 있는데 오지 않을래?” 라고 제안했다. [중략] 브라이언과 연주를 몇 개 한 후 방 안에는 좋은 에너지가 넘쳤고 모두는 근사한 시간을 보냈다. 그러자 티나는 데이빗에게 전화해서 “안녕 데이빗. 브라이언이 우리랑 연주 중인데 정말 근사해. 어서와!”라고 말했다. 데이빗은 하고 있던 일을 모두 내려놓고 한 시간도 안 돼서 기타를 손에 든 채 우리 집으로 왔다. 심리학은 재밌는 거야. 그렇지?[Chris Frantz, Remain In Love, 2020, St. Martin’s Press, p260에서 번역]

Psycho Killer의 가사에 일본어 가사가 들어갈 뻔한 사연

Chris Frantz의 회고록 Remain in Love에는 Psycho Killer가 만들어진 과정이 자세히 소개되어 있다. 책에 의하면 크리스와 티나가 졸업전을 위해 그들의 스튜디오에서 작업을 하고 있을 때 David Byrne이 어느 날 그들을 찾아와 당시 쓰고 있던 가사 작업을 도와달라고 요청했다고 한다. (번은 이 곡이 Alice Cooper 스타일이라고 주장했다고 한다!) 그가 크리스 일행에게 보여준 가사는 I can’t seem to face up to the facts로 시작하는 싸이코킬러의 첫 문단이었다. 그러면서 Byrne은 이 캐릭터의 싸이코적인 모습을 부각시키기 위해 브릿지로 일본어를 쓰기 위해 한 일본여성에게 도와달라고 요청했었다고 말했다 한다. 이때 크리스는 티나가 불어를 할 수 있으니 불어로 브릿지를 넣는 것은 어떠냐고 제안했다. それは何ですか 대신에 Qu’est-ce que c’est 가 가사에 삽입된 순간이었다. 좋은 충고를 해주신 크리스님 감사합니다.

스트리밍 서비스 시대가 초래한 불공정한 게임

레이블들은 그들의 수입의 일정비율(간혹 15% 정도)을 지불한다. 이 비율은 스트리밍 음악이 제조, 파손에 의한 피해, 그리고 손상을 보상하기 위한 레이블의 별도의 물리적 비용 등이 포함된 것이라면 말이 된다. 그러나 그렇지 않다. LP나 CD 생산과 비교할 때에 스트리밍은 레이블에게 비교도 안 되는 높은 마진을 안겨준다. [중략] 나는 애플 뮤직에 맛보기 기간 동안의 저작권료 계산법을 설명해달라고 요청했다. 그들은 그 계산법은 저작권 보유자(즉 레이블)에게만 공개된다고 말했다. 나는 내 레이블을 가지고 있고 내 앨범 중 몇 개의 저작권도 가지고 있다. 그러나 내가 내 배급사에게 얼굴을 돌리자 그의 답은 “당신은 계약을 볼 수 없습니다. 그렇지만 당신이 당신 변호사가 우리 변호사에게 전화를 걸게 하면 몇몇 질문에 답은 해드릴 수 있습니다.”였다. 상황은 더 나빴다. 한 업계 정보통은 내게 메이저 레이블들이 스트리밍 서비스를 통해 벌어들이는 수입을 그들의 카탈로그에 있는 아티스트들에게 언뜻 보기에도 제멋대로의 기준으로 배분하고 있다고 말했다. [중략] 레이블들은 세 곳의 또 다른 수입원이 있는데, 이는 모두 아티스트들에게는 감춰진 것들이다. 그들은 스트리밍 서비스에 대한 선금을 받고, 오래된 노래들에 대한 카탈로그 서비스에 대해 지불받고, 스트리밍 서비스 자체의 주식을 받는다.[Open the Music Industry’s Black Box]

80년대의 전설적인 뉴웨이브 밴드 Talking Heads의 프론트맨이었고 현재 솔로로 활동하면서 미술작품 제작 및 저작 등 활발한 활동을 벌이고 있는 David Byrne이 최근 뉴욕타임스에 기고한 글이다. 스포티파이, 판도라, 유투브, 애플 뮤직 등 스트리밍 서비스가 음악 산업의 핵심부문으로 자리잡아가고 있는 상황에서, 그 자신이 음악가이자 레이블 소유자이기도 한 Byrne은 스트리밍 서비스의 계약과정에서 소외되고 있는 음악가들의 입장을 대변하고 있다.

얼마 전 Taylor Swift가 애플 뮤직과의 지상 논쟁을 통해 음악가들에게 불공정한 것으로 보이는 처사를 취소하게 했던 해프닝도 있었던 바, 음악가들에게 있어 스트리밍 서비스의 현재와 앞날은 초미의 관심사가 된지 오래다. 그리고 Byrne은 Taylor Swift의 항의에 한발 더 나아가 스트리밍 서비스 업체와 레이블 – 특히 메이저 레이블 – 간에만 비밀스럽게 진행되는 계약에 대한 – Byrne은 이 계약을 “블랙박스”라 칭하고 있다 – 투명한 공개를 요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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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vid Byrne by Ron Baker” by Ron Baker – http://www.flickr.com/photos/kingsnake/2948571996/in/faves-24788065@N02/. Licensed under CC BY-SA 2.0 via Commons.

David Byrne이 기타 연주하는 모습

스스로가 레이블 소유자인 Byrne이 애플 뮤직이나 배급사 등으로부터 스트리밍 서비스에 대한 여하한의 정보를 얻어내지 못했다는 것이 사실이라면 지금 이 시장은 철저한 과점 시장이다. 그 과점 업체는 상위 3위의 레이블인 Sony, 유니버설, 그리고 Warner다. 이들 3개 업체는 Byrne이 짐작하길 서비스에 대한 선금과 주식 등을 배정받아 이미 서비스 업체와의 특수 관계가 되었고 음악가는 물론이고 독립적인 레이블들을 계약 과정에서 배제시키고 있다.

요컨대 스트리밍 서비스는 ▲ 음악소비 행태를 바꿔놓았고 ▲ 레이블은 더 이상 CD와 같은 물리적 상품을 이전처럼 대규모로 생산하지 않아도 되었는데 ▲ 그럼에도 이들의 저작권에 대한 대가는 이전과 같은 비중 혹은 비밀스러운 계약과정을 통한 더 많은 이익을 독점하고 있다는 것이 Byrne의 관찰기다. 다시 말해 제조업에서 유통업으로 바뀐 음악 산업에서, 자본은 저작권이라는 고정자본을 마모시키지 않으면서도 잉여가치를 계속 착취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음악이 산업화되어온 역사를 거칠게 보자면 초기에는 일종의 서비스업이자 유통업으로써 공연을 하는 생산자가 수입의 대부분을 갖는 형태였을 것이다. 근대에 이르기까지 상류층이 소비하는 고전음악의 생산자는 왕족이나 귀족의 후원이나 보수, 악보 판매 등의 수입으로 살아갔다. 현대로 접어들며 LP의 대량생산 시대부터 생산자는 레이블에 속해 이익을 공유했다. 그리고 이제 음악 산업이 제조업에서 유통업으로 회귀하며 생산자는 은밀한 거래에서 소외되고 있다.

True Stories

Talking Heads - True Stories.svg
By <a href=”https://en.wikipedia.org/wiki/Sire_Records” class=”extiw” title=”en:Sire Records”>Sire Records</a> – <a rel=”nofollow” class=”external text” href=”https://turnupthatvolume.files.wordpress.com/2017/09/theads.jpg”>Turn Up the Volume!</a>, Public Domain, Link

Talking Heads가 1986년 같은 제목의 영화와 함께 내놓은 – 사운드트랙이라 하기에는 좀 애매한 – 스튜디오 앨범이다. Talking Heads의 스튜디오 앨범 중에서 비평적으로는 비교적 박한 평가를 받는 앨범이다. 하지만 다른 앨범이 그렇듯 이 앨범에도 그들의 쟁쟁한 싱글들이 포진해 있는데 대표적인 곡이 상업적으로 큰 인기를 얻은 Wild Wild Life(빌보드 핫 100 차트 25위)다. 이 곡 이외에도 수퍼밴드 Radiohead가 이름을 짓는데 기여한 동명의 곡, 사랑이 상업적으로 사용되고 있는 세태를 비판한 앨범 첫머리 곡 Love For Sale, 서정적인 컨트리 풍의 멜로디가 일품인 Dream Operator 등이 앨범에 수록되어 있다. 앨범 전체적으로는 영화의 내용과 조응한다기보다는 앨범 자체로 꿈에 대해서 이야기하기도 하는 등의 독립적인 주제를 가지고 있다.

Here where you are standing
The dinosaurs did a dance
The indians told a story
[중략]
The indians had a legend
The Spaniards lived for gold
The white man came and killed them
City of Dreams 중에서

Talking Heads의 가사의 성격을 잘 말해주는 곡의 일부라서 소개한다. 공룡이 춤을 추는 우스꽝스러운 장면과 스페인 사람들이 인디언을 죽이는 장면이 거부감 없이 배치되어 오랜 기간의 수많은 역사적 장면이 주마등처럼 스쳐지나가는 듯한 효과를 거두고 있다. 1960년대 언더그라운드 만화가 Robert Crumb의 만화의 한 에피소드가 연상되는 부분이다. 우리는 오늘도 그렇게 콘크리트 아래에 그러한 도시의 꿈을 묻어둔 채 살아가고 있다.

The Name Of This Band Is Talking Heads

The Name of This Band Is Talking Heads.jpg
The Name of This Band Is Talking Heads” by Source. Licensed under Wikipedia.

1982년 3월 24일 Talking Heads의 다섯 번째 앨범이자 더블 라이브 앨범인 “The Name Of This Band Is Talking Heads”가 발매되었다. 이 앨범은 1977년 11월 17일 매사추세츠州 메이너드에 있는 ‘WCOZ 노던 스튜디오’, 1978년 8월 23일 일리노이즈州 시카고에 있는 ‘파크 웨스트(The Park West)’, 1978년 9월 16일 캘리포니아州 샌프란시스코에 있는 ‘보딩 하우스(The Boarding House)’, 1978년 12월 18일 오하이오州 클리브랜드의 ‘아고라(The Agora)’, 1979년 8월 24일 매사추세츠州 보스턴에 있는 ‘버클리 퍼포먼스 센터(Berklee Performance Center)’, 1979년 11월 17일 뉴저지州 파사익에 있는 ‘캐피톨 극장(The Capitol Theater)’, 1980년 8월 27일 뉴욕시에 있는 ‘센트럴 공원’, 1980년 11월 8일부터 9일까지 뉴저지州 체리힐에 있는 ‘에메랄드 시티’, 1981년 2월 27일 일본 동경에 있는 ‘썬플라자 콘서트 홀’에서 녹음되었다. 연주되는 곡들은 “Talking Heads: 77”, “More Songs About Buildings and Food”, “Fear of Music”, “Remain in Light” 등 그룹이 이전에 낸 스튜디오 앨범의 수록곡들을 중심으로 짜여 있다. 1977년 11월부터 1981년 2월까지의 라이브 공연에서 연주한 열일곱 곡을 담은 이 더블 앨범은 반절은 네 명의 밴드 멤버로, 나머지 반절은 게스트 뮤지션들의 도움을 받아 총 10명의 진용으로 진행된 공연을 담은 것이다. 게스트 뮤지션으로는 기타에 Adrian Belew, 키보드에 Bernie Worrell, 백보컬에는 Dolette McDonald와 Nona Hendryx 등의 도움을 받았다. 이 앨범의 카세트 버전에는 “Cities”가 보너스트랙으로 들어있다. 2004년 재발매된 앨범에서는 오리지널 LP에서 삭제되었던 트랙들이 대거 포함되면서 길이가 거의 배가 늘었다. 추가된 곡은 총 여덟 곡이다. 오리지널 앨범은 발매 당시 빌보드 탑200 차트에 31위까지 올랐고 영국 앨범 차트에는 22위까지 올랐다.

커밋이 부른 “Once In A Lifetim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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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ermit the Frog” by Disney.com. Licensed under Fair use via Wikipedia.

전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개구리 커밋이 토킹헤즈의 “Once In A Lifetime”을 불렀다. 밴드의 유명한 뮤직비디오를 그대로 흉내내면서. ㅋㅋㅋㅋㅋㅋ

전 세계에서 제일 유명한 개구리. 누구도 부정할 수 없는, 머펫 중 가장 유명한 존재. 머펫 세계의 유재석. 더 머펫 쇼의 스타이자 진행자이며, 세서미 스트리트에도 오랫동안 주연급으로 출연했으며, 짐 헨슨 컴퍼니의 로고이기도 했고 극장판에서도 주인공이고… 하여간 절대적인 주인공. 포켓몬으로 치면 피카츄, 디지몬으로 치면 아구몬, 루니 툰으로 치면 벅스 버니.(출처)

뮤직비디오 보기

‘Stop Making Sense’에 관한 Chris Frantz의 인터뷰

Rolling Stone이 Stop Making Sense에 관해 Chris Frantz와 인터뷰한 기사 Talking Heads on ‘Stop Making Sense’: ‘We Didn’t Want Any Bulls–t’을 번역했다(원문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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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op making sense poster original” by May be found at the following website: http://www.moviegoods.com/movie_poster/stop_making_sense_1984.htm. Licensed under Fair use via Wikipedia.

“우리는 엉터리를 원하지 않았어요.” Talking Heads의 드러머였던 Chris Frantz가 밴드의 영향력 있는 1984년의 콘서트 필름 Stop Making Sense에 대해 입을 열었다. “우리는 클리쉐를 원하지 않았어요. 우리는 그들이 기타 솔로를 할 때 사람들의 손가락의 클로즈업을 원하지 않았습니다. 우리는 시선이 오래 머물러 있는 카메라를 원했어요. 그럼으로써 당신은 뮤지션들에 대해 조금 더 알게 될 수 있습니다.”

그룹이 추가적인 퍼커션, 키보드, 기타 등의 확대된 라인업으로 Speaking In Tongues의 순회공연을 하는 와중에 할리우드의 팬터지스(Pantages) 극장에서 가진 세 번의 쇼를 필름에 담은 것은 1983년 겨울이었다. 그 영화에서 – 후에 ‘양들의 침묵’으로 오스카를 수상한 Jonathan Demme가 감독한 – 그룹이 원하는 한가지는 당시 MTV에서의 여하한의 것들에 완전히 반대되는 다른 것이었다. 이 필름은 뮤지션의 얼굴들을 길고 오랜 클로즈업으로 구성되어 있고, 청중을 거의 보여주지 않으며, 안무를 과장하기 위해 드라마틱한 조명을 썼다. Frantz, 보컬 David Byrne, 기타/키보드 Jerry Harrison, 그리고 베이스 Tina Weymouth로 구성된 그룹은 자금의 대부분을 그들 스스로 조달했고 Stop Making Sense가 출시될 즈음 이러한 집요함은 히트로 보상받았다. 팬들은 영화가 상영되는 동안 문자 그대로 복도에서 춤을 추고 있었다.

지난 주, Stop Making Sense가 디지털로 나온 지 30주년이 되었고 또한 미국의 다양한 극장에서 재발매 되었다. 롤링스톤은 최근 여전히 그의 아내 Tina Weymouth와 Tom Tom Club이라는 이름으로 레코딩 활동을 하고 있는 드러머와 함께 하며 이 필름이 어떻게 30년이나 유지되고 있는지에 대해 알아보았다.

당신이 Stop Making Sense를 마지막으로 봤을 때 어떤 느낌이 들었나요?

Talking Heads에 관해 사람들이 이야기하는 모든 칭찬들? 영화는 그 모든 발언들이 사실임을 증명했다.[웃음] 우리는 그 작업에 일했던 이들이 너무나 멋지게 작업을 수행했다는 점에서 무척 행운이었다. 난 그 쇼를 보기 위해 1,000 불이라도 지불하겠다.[웃음]

어쨌든 그 영화를 위한 아이디어들이 어떻게 나왔나요?

우리는 모두 그 특별한 투어를 기록해두는 것이 좋을 것이라고 생각했어요. 우리는 그 공연을 배우기 위해 약 한달 간 연습했어요. 우리가 여정에 오를 바로 그 시점에, Jonathan Demme가 그의 당시 여자친구 Sandy McLeod와 우리 공연에 와서 “우린 이 쇼의 영화를 만들고 싶어요.”라고 말했어요. 그리고 우리는 “멋진데”라고 생각했죠. Jonathan Demme는 당시 신인 감독이었죠. 그는 우리가 매우 좋아하는 Melvin and Howard라는 영화를 마쳤어요. Jonathan은 우리보다 그리 더 많이 나이먹지도 않았고 당시에 매우 핫했어요. 적어도 이론적으로는요.

Jonathan은 어떻게 장면을 구성했죠?

당시에 그는 Swing Shift라는 Goldie Hawn을 위한 영화의 작업을 하고 있었어요. 그 영화의 첫 장면을 본 후 그녀는 그녀가 등장하는 모든 씬을 완전히 다시 찍기로 결정합니다. 그래서 밴드를 쫓아다니면서 밴드 멤버들이 무엇을 하는가, 언제 카메라가 그들을 담아야 하는 가에 대해 노트를 만드는 것은 Sandy McLeod의 일이었죠. 그녀는 Jonathan이 Goldie랑 씨름을 하고 있을 동안 우리를 몇 달이나 따라다녔어요.

당시 당신들은 워너 브로스의 지원을 얻었나요?

아무도, 특히 우리 싱어 David Byrne이, 언급하지 않은 한가지는 영화 제작은 밴드가 지불했다는 사실입니다. 네. 우리는 워너 브로스에게 빚을 냈어요. 그러나 이는 우리의 로열티가 아니었어요. 그래서 우리 넷은 그 돈을 게워낸 것입니다. 우린 당시 저축도 많지 않았어요. 그래서 우리는 기본적으로 이 영화에 우리의 노후대비 저축을 쏟아 부은 것이고 우리는 기꺼이 그렇게 했고 그런 행동을 기꺼워했죠. 우리는 그 돈을 다시 찾았을 뿐 아니라 위대한 영화를 가질 수 있었기 때문이죠.
또한 넓은 개방공간 대신 시골의 작은 대학극장이나 아트하우스에서 상영한다는 것도 밴드의 결정이었어요. 그것이 실행되었을 뿐 아니라 성공적이었던 것이 한 이유죠. 영화는 아트 상영관에서 장기 상영할 수 있었어요. 청중이 계속 찾아올 거에요.

밴드가 개인적으로 나온다는 아이디어는 언제 나온 것인가요?

그것은 투어가 시작되기 전에 다 결정된 거에요. 그것은 일종의 실제 삶에서 일어나는 일의 재생이죠. 내 생각에 David이 하고 싶었던 것은 David으로 시작해서 그가 밴드에 Tina가 합류하도록 초대하고 Chris를 초대하고 Jerry를 초대하고 Steve Scales를 초대하는 등의 것이 아니었을 거에요. 그라나 그렇지는 않았죠. 실제 벌어진 상황은 Tina, David, 그리고 내가 뉴욕으로 옮긴 후 밴드를 시작하자는 생각을 갖게 된 거죠. 난 David에게 이게 좋은 아이디어라고 확신시켰어요. 난 Tina에게 밴드에 합류하라고 요청했죠. 내가 Jerry Harrison에게 밴드에 합류하라고 요청했고요. 그러니 그것 일종의 재생이에요. 그러나 그것은 영화의 내러티브로써 아주 잘 작동했어요.

드럼 루프에 맞춘 “Psycho Killer” 연주에서의 David 의 인트로에 대해 어떤 것이 기억나십니까?

David이 그 작업을 혼자 힘으로 했어요. 난 어떤 일에도 관여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누구에게도 요청하지 않았는데, 마치 “내가 이 일을 할거야”라 하는 것 같았죠. 그건 잘 됐어요.

당신이 무대에 오를 때 잠시 헤드폰을 듣던데요. Jonathan이 지시한 것인가요?

아뇨. 헤드폰으로 난 템포를 듣고 있었어요. 우리는 사흘 동안 찍고 있었기 때문에 우리는 각 노래가 같은 템포로 시작하는 것을 확인하고 싶었죠. 그래서 나는 처음에 들을 수 있는 일종의 딸깍 거리는 트랙을 고안해냈죠. 때때로 라이브를 할 때 당신은 조금 빨라질 수 있어요. 특히 펑크, 뉴웨이브 스타일에서는 말이죠. 청중은 햄머링을 좋아하고 생생한 공연을 하는 것을 좋아하죠. 그래서 우리는 너무 생생하지 않도록 확인해야만 했어요.

영화는 밴드 멤버의 얼굴을 자주 클로즈업합니다. 어떤 것이 당신이 좋아하는 장면이죠?

Tina는 영화 내내 진짜 천사 같고 위대해 보입니다. 그리고 Bernie Worrell이 무엇을 하는지 아는 이를 이상하게 흘겨보는 장면을 사랑합니다.[웃음] Bernie는 바라보기에 유쾌한 친구입니다. David은 내내 놀라웠어요.

David이 “Life During Wartime“을 부를 때 드럼 쪽으로 와서 놀랐습니까?

그가 전혀 떨어지지 않아서 놀랐습니다. 그는 많이 움직였어요. 알다시피. 그는 진정 대단한 퍼포머입니다. 또는 적어도 그때는요.

그룹은 어떻게 안무를 연습했나요?

모두가 각자의 것을 연습했습니다. [백업 싱어들은] 대단했죠. Edna [Holt], Lynn [Mabry]는 정말 놀라웠어요. 그들은 자신들의 의상에 열광하지는 않았어요. 알다시피 그들은 멋진 흑인 여성들이고 한껏 차려 입는 것을 좋아했기 때문이죠. 그러나 David은 그들을 마치 요가 옷 같은 것을 입혔어요. 그들은 익숙해졌고 난 근사했다고 생각해요.

의상에 관련된 배경은 무엇인가요?

David이 말하길 “난 모든 사람이 중성적인 색으로 입었으면 좋겠는데 누군가가 지나치게 튀는 것을 원치 않기 때문이에요.”라고 했어요. 그리고 그는 당신 인생에서 볼 수 있는 가장 큰 흰색 양복을 입고 나타났죠.[웃음]

그게 놀라웠나요?

우리는 그가 그렇게 입을 것이라는 것은 알고 있었어요. 하지만 그 양복이 실제로 만들어질 때까지 어떻게 생길 것이라는 것은 몰랐죠. 놀라웠어요. 정말 웃겼죠.[웃음]

양복에 관한 아이디어는 뭐였나요?

우리는 투어 전에 일본에 간 적이 있어요. 그리고 David은 언제나 그게 주인공이 굉장히 큰 사각형 옷을 입는 일본의 노 극장 의상에 기초한 것이라고 말했죠. 기모노 스타일이라는 것을 제외하고는 그의 양복과 비슷한.

그래서 Jonathan Demme은 지시를 많이 했나요?

아뇨. 그는 담기만 했어요. 우리에게 지시한 유일한 이는 기술적으로 프로듀서였던 Gary Goetzman으로부터였어요. Gary는 “카메라를 쳐다보지 말고 빌어먹을 코 후비지마.”라고 말했죠. 그가 우리 받은 지시였어요.[웃음]

왜 청중 장면은 영화의 처음과 끝에만 등장하나요?

그 아이디어는 마치 관람자가 극장에서 가장 좋은 좌석을 차지하는 것처럼 관람자에게 상영된다는 것입니다. 극장에서의 최고의 좌석은 청중이 보이지 않는 것이죠. 우리는 우리가 밴드에서 보고 싶어하는 것처럼 콘서트를 보는 것 같을 것이라 생각했어요.

상영됐을 때 사람들이 극장에서 춤을 춘다는 것을 듣고 놀랐나요?

난 그 장면을 실제로 보고 “와 멋지다. 라고 생각했습니다. 이런 것은 Rocky Horror Picture Show이후로[웃음] 처음 보는 것이었죠. 많은 청중의 참여가 있었지만 다른 종류의 것인.

영화에서의 Tom Tom Club 부문은 순회공연의 정기적인 레퍼토리였나요?

네. 당시 “Genius of Love“가 큰 인기였어요. 그게 또 David이 그의 큰 양복으로 갈아입을 기회를 주기도 했죠.

그리고 당신이 마이크를 쓸 기회도 줬고요.

네. 내가 영화에서 유일한 바람이라면 나에게 마이크를 좀 더 줬더라면 하는 것이었어요. 하지만 알다시피 난 그저 흥분했을 뿐이에요. 무슨 말을 하겠어요.

한 Talking Heads 웹사이트는 당신이 싸인한 Stop Making Sense 블루레이 카피를 사은품으로 주던데요. 지금 당신들은 다들 사이가 좋나요?

Tina와 나는 사이가 좋고요.[웃음] Jerry와도 사이가 좋고요. David과는 내 짐작에 “이메일 친교”라고 할 수 있을 거에요. 사실은 꽤 오랫동안 그를 개인적으로는 보지 못했어요. 그건 나의 결정이 아니라 그의 결정이고요. 그는 이메일로 유지하는 것을 좋아하고 어쨌든 난 그 게임을 할 수 있어요.[웃음] 난 이메일에 답장을 할 수 있어요. 우리가 하나의 밴드 안에서 활동할 수 없을지라도 여전히 때때로 함께 이야기할 거리가 있죠. 그들은 우리에게 블루레이를 보냈고 우리는 싸인을 해서 되돌려보냈죠.

음악적으로 당신과 Tina의 다음 작업은 무엇인가요?

새로운 앨범을 위한 Tom Tom Club 기본 트랙이 여섯 개 정도 있어요. 그리고 우리는 독일 식으로 “Chris und Tina”로 부르는 프로젝트를 시작하는 것에 관해 이야기 중이죠. 음악은 록앤롤이나 펑크(funk)와 반대인 완전한 일렉트로닉이고 독일풍입니다. Kraftwerk 의 영향을 받았죠. 그게 현재 우리가 생각중인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Theme”이라는 이전에 발표되지 않았던 연주곡이 온라인에 떠돌던데요. 그 곡에 대해 어떻게 기억하고 계신지요?

멋진 노래죠. Beach Boys의 영감을 받아 만든 곡이에요. 아마 Talking Heads가 존재하던 당시의 첫 6개월 간 연주했던 것 같아요. 그리고 적절한 레코딩 스튜디오에서 녹음한 적은 없습니다. 그러나 The Shirts 에 있던 한 친구의 작은 지하실에 스튜디오 녹음한 것은 있어요. 우리는 녹음을 많이 한 적이 없기 때문에 녹음을 연습했어요. 그래서 우리는 로어이스트사이드에서 부르클린으로 가서 The Shirts 덕택에 그들의 작은 지하실 스튜디오를 이용할 수 있었죠. 우리는 그 곡 말고도 몇 곡 더 녹음했어요. 나는 최근에 테잎들로 구워서 그것들을 디지털로 변환했어요. 그리고 그것들은 놀랍도록 좋아요.

그것들을 발매할 예정인가요?

아마도 언젠가는요. 현재까지는 계획이 없어요. 그러나 그럴 수도 있고요. 그것들을 위해 많은 시간을, 우리가 결코 발표하지 않았던 이유는 우리는 그게 그렇게 좋다고 여기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당신이 40년 후에 그것들을 듣고 당신은 이렇게 생각하는 거죠. “빌어먹을 그렇게까지 나쁘지는 않네. 굉장히 좋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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