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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역] 40년이 지난 후, Talking Heads의 가장 가치 있는 멤버는 여전히 가장 낮게 평가받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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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ean-Luc – originally posted to Flickr as Talking Heads, CC BY-SA 2.0, Link

Carrie Courogen(원문 보기)

당신이 토킹헤즈의 대표곡들을 들을 때면 그 음악에는 하나의 두드러진 공통점이 있다. : 티나 웨이마우스(Tina Weymouth)의 훵키하고 멜로디 넘치는 베이스라인. 그가 없었다면 “Psycho Killer”나 “Burning Down The House”, 그리고 “Once in a Lifetime”이 없었을 것이다. 즉시 알아들을 수 있는 그루부는 곡의 가사가 사라지는 순간에도 우리의 뇌 속에 스며들어 있다. Jay-Z에서부터 최근에는 셀레나 고메즈(Selena Gomez)에 이르기까지 계속 샘플로 사용되고 다시 수면위로 떠올랐던 것은 웨이마우스의 베이스라인이지만 이것들을 창작해낸 그의 역할은 아직까지 거의 논의되고 있지 않다.

웨이마우스의 기념비적인 “Psycho Killer”의 리프에 기초해서 만든 고메즈의 “Bad Liar”가 발매되자마자 평론가들은 데이빗 번(David Byrne)이 그 영향력있는 샘플에 기여한 바가 없음에도 불구하고 그의 공식적인 승인에 초점을 맞추었다. 카리스마 넘치는 프론트맨을 뒷받침했던 여성이 종종 그러했던 것처럼 웨이마우스에 대한 평가 역시 일종의 부가적인 영역이었다.

66살의 웨이마우스 또한 명성을 추구하지 않는다. “난 그런 것에 대해 내 자신이 별로 개의치 않는다고 생각해요. 내가 그렇다는 것을 알고 있죠.” PAPER와의 전화 인터뷰에서 웨이마우스가 한 발언이다. “난 여전이 여기 있고 내 할 일을 해요. 결론적으로는 그게 진정한 모든 것이라고 생각해요. 사람들이 당신을 어떻게 인식하는가가 아니라요.”

최근의 인터뷰에서 토킹헤즈의 드러머인 (그리고 웨이마우스의 남편) 크리스 프란츠(Chris Frantz)는 “토킹헤즈에서 티나 웨이마우스가 없었더라면 우리는 그저 또 다른 어떤 밴드였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래서 왜 그가 그렇게나 중요한 역할을 했던 어떤 밴드의 유산에서 그는 서서히 배제된 것처럼 보이는 것일까?

평론가들은 종종 웨이마우스가 킴 고든(Kim Gordon)에서 에스터 하임(Este Haim)에 이르기까지 많은 여성 베이스 연주자들에게 영향을 미쳤다고 언급하곤 한다. 그러나 다른 더 많은 이들에게는 아니다. 사람들은 그가 (프란츠와 함께) 번의 난해한 아이디어를 리듬 섹션의 범위 내에서 캐치하고 상징적인 팝뮤직으로 변환하는 비법을 발견했다는 사실에도 불구하고 그의 프로파일을 심도 있게 적지 않는다.

그의 베이스라인은 밴드의 맥박이 되고 다운타운 펑크를 새로운 어떤 사운드로 만들어냈다. : 팔리아먼츠(Parliament)와 제임스 브라운(James Brown)의 쏘울이 넘치고 훵키한 즉흥곡과 캐롤 케이(Carol Kaye)의 견실한 락음악의 춤추기 쉬운 컴비네이션. 이 사운드는 확실하게 쭉 뻗어나가는 멜로딕 훵크에서 아프리카에 영향받은 복합적인 리틈의 댄스 음악에 기초한 날카로운 그루브에 이르기까지의 넓은 스펙트럼을 커버했다. – 그와 프란츠가 후에 그들의 영향력있는 그룹 Tom Tom Club으로 개발했던 그 사운드.

그러나 웨이마우스에 대해 쓸 때에 그는 기껏해야 유머 감각 없이 잔소리가 심한 여자에서 심지어 번에 초점을 맞춘 이들에 의해 “락의 레이디 맥베쓰”에 이르기까지 다양하게 묘사되면서도 그의 음악가적 기질은 무시되어 왔다. 이러한 수사는 드문 것이 아니다. – 단지 그들이 창출하는데 기여했던 역사로부터 지워지고 있는 여성 아티스트들의 더 커다란 문제의 징후에 불과하다. 그들은 자주 흑과 백의 극단적인 개성으로 묘사되곤 하고, 그들의 성별(gender)이 언급되고 – 여성임에도 불구하고 재능 있는 – 혹은 남성 평론가들의 렌즈를 통해 철저한 관찰된 중에 제대로 형성된 남성 동료들의 그늘 속의 배역으로 정의된다.

데이빗 바우맨(David Bowman)의 2002년 전기 This Must Be The Place : The Adventure of Talking Heads in the 20th Century를 보자. 그는 번을 이 이야기에서 겸손하고 친근한 주창자(protagonist)이자 진정한 영웅으로 묘사하면 반면, 웨이마우스를 묘사하길 적대자(antagonist), “다소 예민한”, “카톨릭 성인의 분위기가 나는, 또는 비극적으로 다리를 저는 프리마 발레리나. 또는 앤디 워홀을 저격했던 발레리 솔라니스(Valerie Solanis).”1 이 정도는 바우먼이 친절한 것이다. 나중에 그는 그를 “로체스터(Rochester)의 아내, 미친 인간”으로 비유하고 그의 기억들을 “유해하다”고 규정했다.

평론가들은 종종 디테일을 대충 묘사한다. 번이 밴드에서의 그의 역할을 위해 그를 세 번 오디션했다고 한다. – 다른 멤버들에게는 요구하지 않았던 것. 2015년의 다큐멘터리 Girls in Bands에서 그는 번이 그에게 “여성에게 위험한 곳이기에 이 큰 세상에서 진정한 여성의 역할은 없다”고 말했다고 회상했다.

일이 꼬일 때마다 번은 웨이마우스를 탓했다. “데이빗이 불안해할 때마다 내가 그의 괴롭힘 대상이었다. 그가 일이 잘 안 풀릴 때마다 그에 대해 날 괴롭히곤 했어요. 내내 내겐 고통이었죠.” 그는 바우먼에게 자세히 이야기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마도 티나 웨이마우스는 그가 대체로 그의 다른 여성 등료들과 다르게 그렇게 확신을 주는 인물이 아니어서 충분한 신뢰를 얻지 못했을지도 모른다. “나는 내가 잘 해낸 것, 음악을 연주하는 것의 더 이상을 능가하고 싶지 않아요.” 1979년 Creem에서 그가 한 말이다. “난 여성임을 이용하지 않았는데 그런 것들을 아껴두는 편이 더 낫기 때문이죠.”

그는 임신 중에도 토킹헤즈의 공격적인 세계 공연에 따라나섰던 여성이고, 진통 중에도 베이스 트랙을 녹음했다. 데이빗 번의 그늘에서 라이브를 하는 것과 같은 거친 진실 앞에서 물러서지 않았던 여성이다. : “몇 해 동안” 로스엔젤레스타임스에 그가 한 말이다. “사람들은 내게 데이빗에 대해서만 물어봤고, 난 대답을 잘 했었죠.”

그는 가혹하도록 충성을 했고 대단히 신뢰할 만 했으나 팡파레를 원하지 않았다. 밴드를 하는 것은 프란츠의 꿈이었다. 그가 도쿄의 레드불뮤직아카데미(Red Bull Music Academy)에서의 2014년 강연에서 회고하길 그는 거의 2년 동안 베이스 주자를 찾아 헤맸다. 결국 아무도 나서지 않았고 웨이마우스는 밖에 나가서 거의 그만큼 큰 베이스를 사왔다. 그리고 밴드에 끼어들었다.

“밴드가 첫 라이브를 할 때까지 난 단지 5개월 동안 베이스를 연주했어요.” 같은 강연에서 그가 설명했다. “난 정말 펑크였던 셈이죠. 철저한 독학자였어요. 수업을 듣지도 않았죠. 아무도 어떻게 연주하는지 가르쳐주지 않았어요.”

그는 구멍을 발견하고 어떻게 다른 사람의 요구를 충족시켜줄 수 있는지를 알고 있었다. 여성들이 몇 세기동안 보답을 바라지 않고 해온 일이다. 밴드 멤버들이 그들의 초기 시절을 회상할 때 그들은 그가 번과 프란츠와 함께 온방이나 목욕탕도 없는 상업용 다락에서 살며, 그들에게 음식을 만들어주고, 머리를 잘라주고, 공연장까지 운전을 해주고, 베이스 주자와 로드 매니저라는 이중의 역할을 수행했다고 회고한다.

티나 웨이마우스는 선구자였고 그 영향력은 특히나 여성들에게 오늘날까지 지속적으로 남아있다. 그는 그만의 길을 지치지 않고 나아가고 있고, 프란츠와 새 음악을 만드는 와중에 멘토역을 하거나 더 젊은 아티스트들과 협업하는 것을 멈추지 않는다.

“돌이켜보면 좋았던 것 하나는 내가 여성이어서 겪었던 문제에 대해 한번도 이야기하지 않은 것이에요.” 1981년 The Face에서 그가 한 말이다. “나는 똑 같은 아이디어를 가지고 있는 다른 이들을 의기소침하게 하고 싶지 않았어요. 난 그 길이 오르막을 오르는 수레처럼 보이게 하고 싶지 않았어요. 실제론 그랬지만요.”
여성은 때로 자신만의 이야기를 가지고 있어야 한다. 비록 웨이마우스가 스스로 주목받는 것이나 여성으로서의 시도에 대해 말하기를 꺼려했던 것이 상황을 복잡하게 하긴 했지만 말이다. 이것은 일종의 캐치22(catch-22)다. “나는 언제나 페미니스트였어요.” PAPER에서 그가 한 말이다. “난 단지 언제나 그 질문을 받는 것이 싫었어요. 그건 나를 ‘날 바라볼 때 생각나는 것이 그게 다에요? 여성으로서? 날 아티스트로 보지 않아요? 날 뮤지션으로 보지 않아요?’라는 질문에 가두는 것이에요.”

침묵을 지키는 것은 제자들이 그를 베끼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는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러나 이는 또한 그를 또 하나의 미스터리로 만든다. 그래서 그 앞에 지나갔던 많은 여성들처럼, 그 역시도 편견에 사로잡힌 비평가들의 투사와 남성들의 속 좁은 생각을, 그의 영향력이 단지 하나의 주석으로 축소되는 것을 참아왔다. 늘 그랬으니까.(Same as it ever was)

  1. 미국의 급진적 여성주의자. 앤디 워홀 미수사건의 범인으로 유명하다.

여섯 개의 상징적인 앨범 커버에 관한 뒷이야기 : Talking Heads의 Speaking In Tongu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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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것은 고전적인 커버라기보다는 예술계의 괴짜에 가깝다. 그렇지만 이것이 오늘날의 채색으로 인쇄되어 제공되곤 하는 특판 레코드에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에 대해서는 그리 어렵지 않게 이해할 수 있다. 그래미상을 수상한 Talking Heads의 Speaking In Tongues의 예술작업은 청록색, 심홍색, 노란색으로 인쇄된 파운드 사진들(found photos)로 점재(點在)되어 있다. 모든 것들은 라우센버그(Rauschenberg)1가 1967년 내놓은 조각 “리볼버”를 근거로 하였는데, 이 작품은 관람자가 스위치를 켜면 중심축을 중심으로 도는 다섯 개의 플렉시글래스 디스크로 구성되어 있다. 제조상의 어려움 때문에 LP는 5만 개 한정판으로 인쇄됐고 높은 가격의 수집품목이 됐다. Byrne은 많은 이들이 도움으로 그 앨범을 디자인했다.

겹치는 작업의 비주얼 효과를 얻기 위해 라우센버그는 보프리(Beaupré)가 “있는 그대로 그리고 비유적으로 농축적인 화려한 색채의 비닐 레코드”라고 정의한 바, 아세테이트2위에 콜라주 작업이 된 사진들을 인쇄했다. 문자 파편들은 거친 패턴들을 별도의 섹션으로 분할하였고, 각각의 부분을 다음 것들로부터 구분하기 어렵게끔 이상한 각도로 형태들이 교차한다. David Byrne의 음악 스타일과 많이 유사하게도 결과는 혁신적이었으며 손쉬운 범주화를 거부하는 테크닉의 혼합이었다. Byrne은 타임스에 “Bob 주위에 있는 것은 종종 어떤 종류의 황홀한 약물 상태에 있는 것과도 같아요. 그는 그의 주위에 이들에게 상자 바깥을 생각하도록 영감을 줄 뿐 아니라 상자의 존재 그 자체에 대해서도 질문을 던지게 하죠.”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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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팝아트 예술가 Robert Rauschenberg
  2. 투명 플라스틱 필름

David Byrne의 토킹헤즈 재결합에 대한 최근 견해 급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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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킹헤즈가 1991년 영원히 해산한 이후 이 미국의 락커들의 완전체로서의 재결합은 가능성이 낮거나 거의 없는 것이었다. 2002년의 분기별 락앤롤 명예의 전당의 사전 행사에서의 운좋은 출연자로서의 짧은 공연과 제리 해리슨, 크리스 프란츠, 티나 웨이마우스의 재결합에 대한 관심에도 불구하고 프론트맨이었던 데이빗 번은 지속적으로 경멸 섞인 톤으로 이를 거부하고 있다. 그러나 The Creative Independent 와의 새 인터뷰에서 이 주제에 대한 번의 입장은 다소 부드러워졌다. 그는 인터뷰 하는 이가 그 주제를 꺼내지도 않았는데 잠정적인 재결합의 장단점에 대해 언급하였다.

“내가 하고자 하는 다양한 일을 바라보고 있는 이들을 위해 경계를 늦추지 않을 필요가 있다고 말하고 싶어요. 예를 들어 토킹헤즈의 재결합은 어떤 세대에 있어서는 또는 많은 다른 세대들에게 있어서는 믿을 수 없이 성공적인 것이겠지요.” 그는 설명을 이어갔다. “돈도 많이 벌 수 있을 테고 관심도 얻겠죠. 또한 아마도 많은 다른 일을 하고 있던 어떤 이에게는 하고 있는 것만큼이나 멀리 퇴보하는 일이기도 해요.” 그러한 상대적인 모호함에도 불구하고 번은 궁극적으로 긍정적인 면을 취하지 않았다. “내 생각에는 무언가를 희생해야 합니다. 돈이 되었든 명성이 되었든 내가 하고자 하는 것을 좀 많이 하기 위해 가질 수 있는 그 무엇인가가 되었든 말입니다.” 그는 말을 이었다. “달리 말하자면 당신은 모든 것을 가질 수는 없어요.” 그래서 이제 어느 곳으로도 향하지 않는 길(a road to nowhere)이 되었다. 불행하게도.

플래쉬백 : 토킹헤즈가 톰톰클럽의 1989년 공연에서 재회하다

롤링스톤의 2016년 6월 16일자 기사를 삼번하다

Talking Heads 는 1989년 뉴욕에서 열린 Tom Tom Club 콘서트에서 ‘Psycho Killer’를 공연하기 위해 짧은 동안 재결합했었다. Talking Heads는 공식적으로는 1991년 해체를 선언했지만, 이 공연이 밴드의 느리지만 슬픈 죽음의 마지막 몸짓이었다. 그보다 칠 년 전에, 그들은 Jonathan Demme의 명민한 1984년 작 Stop Making Sense에 필름으로 담기기도 했던 성공적인 Speaking in Tongues 투어를 마무리했었다.

그들은 스튜디오에서의 작업을 위해 잠시 멈춰 섰고 1985년 Little Creatures를 녹음했는데, 이 앨범에서는 “And She Was”와 “Road to Nowhere”가 인기를 얻었다. 그러나 앨범을 위한 공연은 없었다. 사실 그들은 그 뒤 전혀 순회공연을 갖지 않았는데, David Byrne이 밴드의 일원으로 있다는 것에 빠르게 흥미를 잃어갔기 때문이었다.

그룹은 1986년의 실망스러운 True Stories(David Byrne의 초현실적인 동명의 영화의 주제 앨범)와 1988년의 Naked 등을 통해 다리를 절 듯 질질 앞으로 나아갈 뿐이었다. 그러나 이때쯤이면 밴드가 내파될 위기라는 사실이 명확해진다. 운 좋게도 드러머 Chris Frantz와 베이스 Tina Weymouth는 거점으로 삼을 Tom Tom Club이라는 사이드 프로젝트가 있었다. “Wordy Rappinghood”와 “Genius of Love” 가 1981년 크게 인기를 얻었기에 라디오 전파를 타기 위해 David Byrne이 필요한 것은 아니었다.

The Tom Tom Club은 그들의 새 앨범 Boom Boom Chi Boom Boom의 홍보를 위해 1989년 7월 17일 뉴욕의 리츠에서 공연을 가졌다. 이 공연에서 관중을 흥분으로 몰아넣었던 상황은 David Byrne과 Talking Heads의 기타를 맡은 Jerry Harrison이 몇 곡을 같이 부르기 위해 무대에 등장한 것이었다. 이때 공연한 곡이 “Psycho Killer”다.

“우리는 우리가 아직 밴드도 결성하기 전인 아트스쿨 학생일 때 그 곡을 함께 만들었어요.” Weymouth의 증언이다. 익숙한 오프닝 베이스 라인을 연주하기 전에 그녀가 첫 가사를 부르고 Byrne이 마이크로 그녀를 도와 곡을 더 부르기 시작한다.

그 당시엔 누구도 이것이 공식적인 콘서트에서의 Talking Heads 의 마지막 순간이란 사실을 몰랐다. 여하한의 기회에 그들이 함께 했던 다른 순간은 2002년 the Rock and Roll Hall of Fame 에서의 순간이었다. 세상의 거의 모든 팬들이 David Byrne이 거론되지 않은 재결합 공연은 원치 않을 것이지만, 그게 이루어질 것 같지는 않다.

“David Byrne 에게 물어봐야 할거에요.” Weymouth가 2013년 롤링스톤에게 한 말이다. “우린 결코 우리 스스로 Talking Heads를 끝낸게 아니에요. 전적으로 그의 결정이죠. 우린 결코 싸우지 않았어요. 난 재결합해서는 안 될 이유를 모르겠어요. 한편 인생은 흘러가는 것이기에 숨죽이고 있지는 않을 거예요. 인생은 너무 짧기에 어땠어야 한다든지 등에 대해 읍소하며 앉아 있을 수는 없죠. 우린 연락을 하고 있고 그렇게 하는 것을 좋아하지만, David 없이 하지는 않을 거예요.”

Talking Heads 재결합 소문에 관한 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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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ean-Luc – originally posted to Flickr as Talking Heads, CC BY-SA 2.0, https://commons.wikimedia.org/w/index.php?curid=6109291

Talking Heads의 재결합 소문이 너무 과열되기 전에 기타리스트 Jerry Harrison과 드러머 Chris Frantz가 재빨리 진화에 나섰다. 해리슨은 밴드가 여덟 곡 정도를 녹음하고 세계공연에 나설 것이라는 한 매체의 보도에 대해 이메일을 통해 간결하게 “그 소문은 거짓입니다.” 라고 말했다. 나중에 프란츠가 글을 통해 “나는 그게 사실이었으면 좋겠어요. 그러나 데이빗이 맘 먹을 때만 가능한 일이에요.”라고 말했다. [기사 전문 보기]

스트리밍 서비스 시대가 초래한 불공정한 게임

레이블들은 그들의 수입의 일정비율(간혹 15% 정도)을 지불한다. 이 비율은 스트리밍 음악이 제조, 파손에 의한 피해, 그리고 손상을 보상하기 위한 레이블의 별도의 물리적 비용 등이 포함된 것이라면 말이 된다. 그러나 그렇지 않다. LP나 CD 생산과 비교할 때에 스트리밍은 레이블에게 비교도 안 되는 높은 마진을 안겨준다. [중략] 나는 애플 뮤직에 맛보기 기간 동안의 저작권료 계산법을 설명해달라고 요청했다. 그들은 그 계산법은 저작권 보유자(즉 레이블)에게만 공개된다고 말했다. 나는 내 레이블을 가지고 있고 내 앨범 중 몇 개의 저작권도 가지고 있다. 그러나 내가 내 배급사에게 얼굴을 돌리자 그의 답은 “당신은 계약을 볼 수 없습니다. 그렇지만 당신이 당신 변호사가 우리 변호사에게 전화를 걸게 하면 몇몇 질문에 답은 해드릴 수 있습니다.”였다. 상황은 더 나빴다. 한 업계 정보통은 내게 메이저 레이블들이 스트리밍 서비스를 통해 벌어들이는 수입을 그들의 카탈로그에 있는 아티스트들에게 언뜻 보기에도 제멋대로의 기준으로 배분하고 있다고 말했다. [중략] 레이블들은 세 곳의 또 다른 수입원이 있는데, 이는 모두 아티스트들에게는 감춰진 것들이다. 그들은 스트리밍 서비스에 대한 선금을 받고, 오래된 노래들에 대한 카탈로그 서비스에 대해 지불받고, 스트리밍 서비스 자체의 주식을 받는다.[Open the Music Industry’s Black Box]

80년대의 전설적인 뉴웨이브 밴드 Talking Heads의 프론트맨이었고 현재 솔로로 활동하면서 미술작품 제작 및 저작 등 활발한 활동을 벌이고 있는 David Byrne이 최근 뉴욕타임스에 기고한 글이다. 스포티파이, 판도라, 유투브, 애플 뮤직 등 스트리밍 서비스가 음악 산업의 핵심부문으로 자리잡아가고 있는 상황에서, 그 자신이 음악가이자 레이블 소유자이기도 한 Byrne은 스트리밍 서비스의 계약과정에서 소외되고 있는 음악가들의 입장을 대변하고 있다.

얼마 전 Taylor Swift가 애플 뮤직과의 지상 논쟁을 통해 음악가들에게 불공정한 것으로 보이는 처사를 취소하게 했던 해프닝도 있었던 바, 음악가들에게 있어 스트리밍 서비스의 현재와 앞날은 초미의 관심사가 된지 오래다. 그리고 Byrne은 Taylor Swift의 항의에 한발 더 나아가 스트리밍 서비스 업체와 레이블 – 특히 메이저 레이블 – 간에만 비밀스럽게 진행되는 계약에 대한 – Byrne은 이 계약을 “블랙박스”라 칭하고 있다 – 투명한 공개를 요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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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vid Byrne by Ron Baker” by Ron Baker – http://www.flickr.com/photos/kingsnake/2948571996/in/faves-24788065@N02/. Licensed under CC BY-SA 2.0 via Commons.

David Byrne이 기타 연주하는 모습

스스로가 레이블 소유자인 Byrne이 애플 뮤직이나 배급사 등으로부터 스트리밍 서비스에 대한 여하한의 정보를 얻어내지 못했다는 것이 사실이라면 지금 이 시장은 철저한 과점 시장이다. 그 과점 업체는 상위 3위의 레이블인 Sony, 유니버설, 그리고 Warner다. 이들 3개 업체는 Byrne이 짐작하길 서비스에 대한 선금과 주식 등을 배정받아 이미 서비스 업체와의 특수 관계가 되었고 음악가는 물론이고 독립적인 레이블들을 계약 과정에서 배제시키고 있다.

요컨대 스트리밍 서비스는 ▲ 음악소비 행태를 바꿔놓았고 ▲ 레이블은 더 이상 CD와 같은 물리적 상품을 이전처럼 대규모로 생산하지 않아도 되었는데 ▲ 그럼에도 이들의 저작권에 대한 대가는 이전과 같은 비중 혹은 비밀스러운 계약과정을 통한 더 많은 이익을 독점하고 있다는 것이 Byrne의 관찰기다. 다시 말해 제조업에서 유통업으로 바뀐 음악 산업에서, 자본은 저작권이라는 고정자본을 마모시키지 않으면서도 잉여가치를 계속 착취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음악이 산업화되어온 역사를 거칠게 보자면 초기에는 일종의 서비스업이자 유통업으로써 공연을 하는 생산자가 수입의 대부분을 갖는 형태였을 것이다. 근대에 이르기까지 상류층이 소비하는 고전음악의 생산자는 왕족이나 귀족의 후원이나 보수, 악보 판매 등의 수입으로 살아갔다. 현대로 접어들며 LP의 대량생산 시대부터 생산자는 레이블에 속해 이익을 공유했다. 그리고 이제 음악 산업이 제조업에서 유통업으로 회귀하며 생산자는 은밀한 거래에서 소외되고 있다.

True Stori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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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alking Heads – True Stories -1986-“. Licensed under Public Domain via Wikipedia.

Talking Heads가 1986년 같은 제목의 영화와 함께 내놓은 – 사운드트랙이라 하기에는 좀 애매한 – 스튜디오 앨범이다. Talking Heads의 스튜디오 앨범 중에서 비평적으로는 비교적 박한 평가를 받는 앨범이다. 하지만 다른 앨범이 그렇듯 이 앨범에도 그들의 쟁쟁한 싱글들이 포진해 있는데 대표적인 곡이 상업적으로 큰 인기를 얻은 Wild Wild Life(빌보드 핫 100 차트 25위)다. 이 곡 이외에도 수퍼밴드 Radiohead가 이름을 짓는데 기여한 동명의 곡, 사랑이 상업적으로 사용되고 있는 세태를 비판한 앨범 첫머리 곡 Love For Sale, 서정적인 컨트리 풍의 멜로디가 일품인 Dream Operator 등이 앨범에 수록되어 있다. 앨범 전체적으로는 영화의 내용과 조응한다기보다는 앨범 자체로 꿈에 대해서 이야기하기도 하는 등의 독립적인 주제를 가지고 있다.

Here where you are standing
The dinosaurs did a dance
The indians told a story
[중략]
The indians had a legend
The Spaniards lived for gold
The white man came and killed them
City of Dreams 중에서

Talking Heads의 가사의 성격을 잘 말해주는 곡의 일부라서 소개한다. 공룡이 춤을 추는 우스꽝스러운 장면과 스페인 사람들이 인디언을 죽이는 장면이 거부감 없이 배치되어 오랜 기간의 수많은 역사적 장면이 주마등처럼 스쳐지나가는 듯한 효과를 거두고 있다. 1960년대 언더그라운드 만화가 Robert Crumb의 만화의 한 에피소드가 연상되는 부분이다. 우리는 오늘도 그렇게 콘크리트 아래에 그러한 도시의 꿈을 묻어둔 채 살아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