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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트리밍 서비스 시대가 초래한 불공정한 게임

레이블들은 그들의 수입의 일정비율(간혹 15% 정도)을 지불한다. 이 비율은 스트리밍 음악이 제조, 파손에 의한 피해, 그리고 손상을 보상하기 위한 레이블의 별도의 물리적 비용 등이 포함된 것이라면 말이 된다. 그러나 그렇지 않다. LP나 CD 생산과 비교할 때에 스트리밍은 레이블에게 비교도 안 되는 높은 마진을 안겨준다. [중략] 나는 애플 뮤직에 맛보기 기간 동안의 저작권료 계산법을 설명해달라고 요청했다. 그들은 그 계산법은 저작권 보유자(즉 레이블)에게만 공개된다고 말했다. 나는 내 레이블을 가지고 있고 내 앨범 중 몇 개의 저작권도 가지고 있다. 그러나 내가 내 배급사에게 얼굴을 돌리자 그의 답은 “당신은 계약을 볼 수 없습니다. 그렇지만 당신이 당신 변호사가 우리 변호사에게 전화를 걸게 하면 몇몇 질문에 답은 해드릴 수 있습니다.”였다. 상황은 더 나빴다. 한 업계 정보통은 내게 메이저 레이블들이 스트리밍 서비스를 통해 벌어들이는 수입을 그들의 카탈로그에 있는 아티스트들에게 언뜻 보기에도 제멋대로의 기준으로 배분하고 있다고 말했다. [중략] 레이블들은 세 곳의 또 다른 수입원이 있는데, 이는 모두 아티스트들에게는 감춰진 것들이다. 그들은 스트리밍 서비스에 대한 선금을 받고, 오래된 노래들에 대한 카탈로그 서비스에 대해 지불받고, 스트리밍 서비스 자체의 주식을 받는다.[Open the Music Industry’s Black Box]

80년대의 전설적인 뉴웨이브 밴드 Talking Heads의 프론트맨이었고 현재 솔로로 활동하면서 미술작품 제작 및 저작 등 활발한 활동을 벌이고 있는 David Byrne이 최근 뉴욕타임스에 기고한 글이다. 스포티파이, 판도라, 유투브, 애플 뮤직 등 스트리밍 서비스가 음악 산업의 핵심부문으로 자리잡아가고 있는 상황에서, 그 자신이 음악가이자 레이블 소유자이기도 한 Byrne은 스트리밍 서비스의 계약과정에서 소외되고 있는 음악가들의 입장을 대변하고 있다.

얼마 전 Taylor Swift가 애플 뮤직과의 지상 논쟁을 통해 음악가들에게 불공정한 것으로 보이는 처사를 취소하게 했던 해프닝도 있었던 바, 음악가들에게 있어 스트리밍 서비스의 현재와 앞날은 초미의 관심사가 된지 오래다. 그리고 Byrne은 Taylor Swift의 항의에 한발 더 나아가 스트리밍 서비스 업체와 레이블 – 특히 메이저 레이블 – 간에만 비밀스럽게 진행되는 계약에 대한 – Byrne은 이 계약을 “블랙박스”라 칭하고 있다 – 투명한 공개를 요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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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vid Byrne by Ron Baker” by Ron Baker – http://www.flickr.com/photos/kingsnake/2948571996/in/faves-24788065@N02/. Licensed under CC BY-SA 2.0 via Commons.

David Byrne이 기타 연주하는 모습

스스로가 레이블 소유자인 Byrne이 애플 뮤직이나 배급사 등으로부터 스트리밍 서비스에 대한 여하한의 정보를 얻어내지 못했다는 것이 사실이라면 지금 이 시장은 철저한 과점 시장이다. 그 과점 업체는 상위 3위의 레이블인 Sony, 유니버설, 그리고 Warner다. 이들 3개 업체는 Byrne이 짐작하길 서비스에 대한 선금과 주식 등을 배정받아 이미 서비스 업체와의 특수 관계가 되었고 음악가는 물론이고 독립적인 레이블들을 계약 과정에서 배제시키고 있다.

요컨대 스트리밍 서비스는 ▲ 음악소비 행태를 바꿔놓았고 ▲ 레이블은 더 이상 CD와 같은 물리적 상품을 이전처럼 대규모로 생산하지 않아도 되었는데 ▲ 그럼에도 이들의 저작권에 대한 대가는 이전과 같은 비중 혹은 비밀스러운 계약과정을 통한 더 많은 이익을 독점하고 있다는 것이 Byrne의 관찰기다. 다시 말해 제조업에서 유통업으로 바뀐 음악 산업에서, 자본은 저작권이라는 고정자본을 마모시키지 않으면서도 잉여가치를 계속 착취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음악이 산업화되어온 역사를 거칠게 보자면 초기에는 일종의 서비스업이자 유통업으로써 공연을 하는 생산자가 수입의 대부분을 갖는 형태였을 것이다. 근대에 이르기까지 상류층이 소비하는 고전음악의 생산자는 왕족이나 귀족의 후원이나 보수, 악보 판매 등의 수입으로 살아갔다. 현대로 접어들며 LP의 대량생산 시대부터 생산자는 레이블에 속해 이익을 공유했다. 그리고 이제 음악 산업이 제조업에서 유통업으로 회귀하며 생산자는 은밀한 거래에서 소외되고 있다.

True Stori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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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alking Heads – True Stories -1986-“. Licensed under Public Domain via Wikipedia.

Talking Heads가 1986년 같은 제목의 영화와 함께 내놓은 – 사운드트랙이라 하기에는 좀 애매한 – 스튜디오 앨범이다. Talking Heads의 스튜디오 앨범 중에서 비평적으로는 비교적 박한 평가를 받는 앨범이다. 하지만 다른 앨범이 그렇듯 이 앨범에도 그들의 쟁쟁한 싱글들이 포진해 있는데 대표적인 곡이 상업적으로 큰 인기를 얻은 Wild Wild Life(빌보드 핫 100 차트 25위)다. 이 곡 이외에도 수퍼밴드 Radiohead가 이름을 짓는데 기여한 동명의 곡, 사랑이 상업적으로 사용되고 있는 세태를 비판한 앨범 첫머리 곡 Love For Sale, 서정적인 컨트리 풍의 멜로디가 일품인 Dream Operator 등이 앨범에 수록되어 있다. 앨범 전체적으로는 영화의 내용과 조응한다기보다는 앨범 자체로 꿈에 대해서 이야기하기도 하는 등의 독립적인 주제를 가지고 있다.

Here where you are standing
The dinosaurs did a dance
The indians told a story
[중략]
The indians had a legend
The Spaniards lived for gold
The white man came and killed them
City of Dreams 중에서

Talking Heads의 가사의 성격을 잘 말해주는 곡의 일부라서 소개한다. 공룡이 춤을 추는 우스꽝스러운 장면과 스페인 사람들이 인디언을 죽이는 장면이 거부감 없이 배치되어 오랜 기간의 수많은 역사적 장면이 주마등처럼 스쳐지나가는 듯한 효과를 거두고 있다. 1960년대 언더그라운드 만화가 Robert Crumb의 만화의 한 에피소드가 연상되는 부분이다. 우리는 오늘도 그렇게 콘크리트 아래에 그러한 도시의 꿈을 묻어둔 채 살아가고 있다.

The Name Of This Band Is Talking Head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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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Name of This Band Is Talking Heads” by Source. Licensed under Wikipedia.

1982년 3월 24일 Talking Heads의 다섯 번째 앨범이자 더블 라이브 앨범인 “The Name Of This Band Is Talking Heads”가 발매되었다. 이 앨범은 1977년 11월 17일 매사추세츠州 메이너드에 있는 ‘WCOZ 노던 스튜디오’, 1978년 8월 23일 일리노이즈州 시카고에 있는 ‘파크 웨스트(The Park West)’, 1978년 9월 16일 캘리포니아州 샌프란시스코에 있는 ‘보딩 하우스(The Boarding House)’, 1978년 12월 18일 오하이오州 클리브랜드의 ‘아고라(The Agora)’, 1979년 8월 24일 매사추세츠州 보스턴에 있는 ‘버클리 퍼포먼스 센터(Berklee Performance Center)’, 1979년 11월 17일 뉴저지州 파사익에 있는 ‘캐피톨 극장(The Capitol Theater)’, 1980년 8월 27일 뉴욕시에 있는 ‘센트럴 공원’, 1980년 11월 8일부터 9일까지 뉴저지州 체리힐에 있는 ‘에메랄드 시티’, 1981년 2월 27일 일본 동경에 있는 ‘썬플라자 콘서트 홀’에서 녹음되었다. 연주되는 곡들은 “Talking Heads: 77”, “More Songs About Buildings and Food”, “Fear of Music”, “Remain in Light” 등 그룹이 이전에 낸 스튜디오 앨범의 수록곡들을 중심으로 짜여 있다. 1977년 11월부터 1981년 2월까지의 라이브 공연에서 연주한 열일곱 곡을 담은 이 더블 앨범은 반절은 네 명의 밴드 멤버로, 나머지 반절은 게스트 뮤지션들의 도움을 받아 총 10명의 진용으로 진행된 공연을 담은 것이다. 게스트 뮤지션으로는 기타에 Adrian Belew, 키보드에 Bernie Worrell, 백보컬에는 Dolette McDonald와 Nona Hendryx 등의 도움을 받았다. 이 앨범의 카세트 버전에는 “Cities”가 보너스트랙으로 들어있다. 2004년 재발매된 앨범에서는 오리지널 LP에서 삭제되었던 트랙들이 대거 포함되면서 길이가 거의 배가 늘었다. 추가된 곡은 총 여덟 곡이다. 오리지널 앨범은 발매 당시 빌보드 탑200 차트에 31위까지 올랐고 영국 앨범 차트에는 22위까지 올랐다.

커밋이 부른 “Once In A Lifetim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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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ermit the Frog” by Disney.com. Licensed under Fair use via Wikipedia.

전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개구리 커밋이 토킹헤즈의 “Once In A Lifetime”을 불렀다. 밴드의 유명한 뮤직비디오를 그대로 흉내내면서. ㅋㅋㅋㅋㅋㅋ

전 세계에서 제일 유명한 개구리. 누구도 부정할 수 없는, 머펫 중 가장 유명한 존재. 머펫 세계의 유재석. 더 머펫 쇼의 스타이자 진행자이며, 세서미 스트리트에도 오랫동안 주연급으로 출연했으며, 짐 헨슨 컴퍼니의 로고이기도 했고 극장판에서도 주인공이고… 하여간 절대적인 주인공. 포켓몬으로 치면 피카츄, 디지몬으로 치면 아구몬, 루니 툰으로 치면 벅스 버니.(출처)

뮤직비디오 보기

‘Stop Making Sense’에 관한 Chris Frantz의 인터뷰

Rolling Stone이 Stop Making Sense에 관해 Chris Frantz와 인터뷰한 기사 Talking Heads on ‘Stop Making Sense’: ‘We Didn’t Want Any Bulls–t’을 번역했다(원문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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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op making sense poster original” by May be found at the following website: http://www.moviegoods.com/movie_poster/stop_making_sense_1984.htm. Licensed under Fair use via Wikipedia.

“우리는 엉터리를 원하지 않았어요.” Talking Heads의 드러머였던 Chris Frantz가 밴드의 영향력 있는 1984년의 콘서트 필름 Stop Making Sense에 대해 입을 열었다. “우리는 클리쉐를 원하지 않았어요. 우리는 그들이 기타 솔로를 할 때 사람들의 손가락의 클로즈업을 원하지 않았습니다. 우리는 시선이 오래 머물러 있는 카메라를 원했어요. 그럼으로써 당신은 뮤지션들에 대해 조금 더 알게 될 수 있습니다.”

그룹이 추가적인 퍼커션, 키보드, 기타 등의 확대된 라인업으로 Speaking In Tongues의 순회공연을 하는 와중에 할리우드의 팬터지스(Pantages) 극장에서 가진 세 번의 쇼를 필름에 담은 것은 1983년 겨울이었다. 그 영화에서 – 후에 ‘양들의 침묵’으로 오스카를 수상한 Jonathan Demme가 감독한 – 그룹이 원하는 한가지는 당시 MTV에서의 여하한의 것들에 완전히 반대되는 다른 것이었다. 이 필름은 뮤지션의 얼굴들을 길고 오랜 클로즈업으로 구성되어 있고, 청중을 거의 보여주지 않으며, 안무를 과장하기 위해 드라마틱한 조명을 썼다. Frantz, 보컬 David Byrne, 기타/키보드 Jerry Harrison, 그리고 베이스 Tina Weymouth로 구성된 그룹은 자금의 대부분을 그들 스스로 조달했고 Stop Making Sense가 출시될 즈음 이러한 집요함은 히트로 보상받았다. 팬들은 영화가 상영되는 동안 문자 그대로 복도에서 춤을 추고 있었다.

지난 주, Stop Making Sense가 디지털로 나온 지 30주년이 되었고 또한 미국의 다양한 극장에서 재발매 되었다. 롤링스톤은 최근 여전히 그의 아내 Tina Weymouth와 Tom Tom Club이라는 이름으로 레코딩 활동을 하고 있는 드러머와 함께 하며 이 필름이 어떻게 30년이나 유지되고 있는지에 대해 알아보았다.

당신이 Stop Making Sense를 마지막으로 봤을 때 어떤 느낌이 들었나요?

Talking Heads에 관해 사람들이 이야기하는 모든 칭찬들? 영화는 그 모든 발언들이 사실임을 증명했다.[웃음] 우리는 그 작업에 일했던 이들이 너무나 멋지게 작업을 수행했다는 점에서 무척 행운이었다. 난 그 쇼를 보기 위해 1,000 불이라도 지불하겠다.[웃음]

어쨌든 그 영화를 위한 아이디어들이 어떻게 나왔나요?

우리는 모두 그 특별한 투어를 기록해두는 것이 좋을 것이라고 생각했어요. 우리는 그 공연을 배우기 위해 약 한달 간 연습했어요. 우리가 여정에 오를 바로 그 시점에, Jonathan Demme가 그의 당시 여자친구 Sandy McLeod와 우리 공연에 와서 “우린 이 쇼의 영화를 만들고 싶어요.”라고 말했어요. 그리고 우리는 “멋진데”라고 생각했죠. Jonathan Demme는 당시 신인 감독이었죠. 그는 우리가 매우 좋아하는 Melvin and Howard라는 영화를 마쳤어요. Jonathan은 우리보다 그리 더 많이 나이먹지도 않았고 당시에 매우 핫했어요. 적어도 이론적으로는요.

Jonathan은 어떻게 장면을 구성했죠?

당시에 그는 Swing Shift라는 Goldie Hawn을 위한 영화의 작업을 하고 있었어요. 그 영화의 첫 장면을 본 후 그녀는 그녀가 등장하는 모든 씬을 완전히 다시 찍기로 결정합니다. 그래서 밴드를 쫓아다니면서 밴드 멤버들이 무엇을 하는가, 언제 카메라가 그들을 담아야 하는 가에 대해 노트를 만드는 것은 Sandy McLeod의 일이었죠. 그녀는 Jonathan이 Goldie랑 씨름을 하고 있을 동안 우리를 몇 달이나 따라다녔어요.

당시 당신들은 워너 브로스의 지원을 얻었나요?

아무도, 특히 우리 싱어 David Byrne이, 언급하지 않은 한가지는 영화 제작은 밴드가 지불했다는 사실입니다. 네. 우리는 워너 브로스에게 빚을 냈어요. 그러나 이는 우리의 로열티가 아니었어요. 그래서 우리 넷은 그 돈을 게워낸 것입니다. 우린 당시 저축도 많지 않았어요. 그래서 우리는 기본적으로 이 영화에 우리의 노후대비 저축을 쏟아 부은 것이고 우리는 기꺼이 그렇게 했고 그런 행동을 기꺼워했죠. 우리는 그 돈을 다시 찾았을 뿐 아니라 위대한 영화를 가질 수 있었기 때문이죠.
또한 넓은 개방공간 대신 시골의 작은 대학극장이나 아트하우스에서 상영한다는 것도 밴드의 결정이었어요. 그것이 실행되었을 뿐 아니라 성공적이었던 것이 한 이유죠. 영화는 아트 상영관에서 장기 상영할 수 있었어요. 청중이 계속 찾아올 거에요.

밴드가 개인적으로 나온다는 아이디어는 언제 나온 것인가요?

그것은 투어가 시작되기 전에 다 결정된 거에요. 그것은 일종의 실제 삶에서 일어나는 일의 재생이죠. 내 생각에 David이 하고 싶었던 것은 David으로 시작해서 그가 밴드에 Tina가 합류하도록 초대하고 Chris를 초대하고 Jerry를 초대하고 Steve Scales를 초대하는 등의 것이 아니었을 거에요. 그라나 그렇지는 않았죠. 실제 벌어진 상황은 Tina, David, 그리고 내가 뉴욕으로 옮긴 후 밴드를 시작하자는 생각을 갖게 된 거죠. 난 David에게 이게 좋은 아이디어라고 확신시켰어요. 난 Tina에게 밴드에 합류하라고 요청했죠. 내가 Jerry Harrison에게 밴드에 합류하라고 요청했고요. 그러니 그것 일종의 재생이에요. 그러나 그것은 영화의 내러티브로써 아주 잘 작동했어요.

드럼 루프에 맞춘 “Psycho Killer” 연주에서의 David 의 인트로에 대해 어떤 것이 기억나십니까?

David이 그 작업을 혼자 힘으로 했어요. 난 어떤 일에도 관여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누구에게도 요청하지 않았는데, 마치 “내가 이 일을 할거야”라 하는 것 같았죠. 그건 잘 됐어요.

당신이 무대에 오를 때 잠시 헤드폰을 듣던데요. Jonathan이 지시한 것인가요?

아뇨. 헤드폰으로 난 템포를 듣고 있었어요. 우리는 사흘 동안 찍고 있었기 때문에 우리는 각 노래가 같은 템포로 시작하는 것을 확인하고 싶었죠. 그래서 나는 처음에 들을 수 있는 일종의 딸깍 거리는 트랙을 고안해냈죠. 때때로 라이브를 할 때 당신은 조금 빨라질 수 있어요. 특히 펑크, 뉴웨이브 스타일에서는 말이죠. 청중은 햄머링을 좋아하고 생생한 공연을 하는 것을 좋아하죠. 그래서 우리는 너무 생생하지 않도록 확인해야만 했어요.

영화는 밴드 멤버의 얼굴을 자주 클로즈업합니다. 어떤 것이 당신이 좋아하는 장면이죠?

Tina는 영화 내내 진짜 천사 같고 위대해 보입니다. 그리고 Bernie Worrell이 무엇을 하는지 아는 이를 이상하게 흘겨보는 장면을 사랑합니다.[웃음] Bernie는 바라보기에 유쾌한 친구입니다. David은 내내 놀라웠어요.

David이 “Life During Wartime“을 부를 때 드럼 쪽으로 와서 놀랐습니까?

그가 전혀 떨어지지 않아서 놀랐습니다. 그는 많이 움직였어요. 알다시피. 그는 진정 대단한 퍼포머입니다. 또는 적어도 그때는요.

그룹은 어떻게 안무를 연습했나요?

모두가 각자의 것을 연습했습니다. [백업 싱어들은] 대단했죠. Edna [Holt], Lynn [Mabry]는 정말 놀라웠어요. 그들은 자신들의 의상에 열광하지는 않았어요. 알다시피 그들은 멋진 흑인 여성들이고 한껏 차려 입는 것을 좋아했기 때문이죠. 그러나 David은 그들을 마치 요가 옷 같은 것을 입혔어요. 그들은 익숙해졌고 난 근사했다고 생각해요.

의상에 관련된 배경은 무엇인가요?

David이 말하길 “난 모든 사람이 중성적인 색으로 입었으면 좋겠는데 누군가가 지나치게 튀는 것을 원치 않기 때문이에요.”라고 했어요. 그리고 그는 당신 인생에서 볼 수 있는 가장 큰 흰색 양복을 입고 나타났죠.[웃음]

그게 놀라웠나요?

우리는 그가 그렇게 입을 것이라는 것은 알고 있었어요. 하지만 그 양복이 실제로 만들어질 때까지 어떻게 생길 것이라는 것은 몰랐죠. 놀라웠어요. 정말 웃겼죠.[웃음]

양복에 관한 아이디어는 뭐였나요?

우리는 투어 전에 일본에 간 적이 있어요. 그리고 David은 언제나 그게 주인공이 굉장히 큰 사각형 옷을 입는 일본의 노 극장 의상에 기초한 것이라고 말했죠. 기모노 스타일이라는 것을 제외하고는 그의 양복과 비슷한.

그래서 Jonathan Demme은 지시를 많이 했나요?

아뇨. 그는 담기만 했어요. 우리에게 지시한 유일한 이는 기술적으로 프로듀서였던 Gary Goetzman으로부터였어요. Gary는 “카메라를 쳐다보지 말고 빌어먹을 코 후비지마.”라고 말했죠. 그가 우리 받은 지시였어요.[웃음]

왜 청중 장면은 영화의 처음과 끝에만 등장하나요?

그 아이디어는 마치 관람자가 극장에서 가장 좋은 좌석을 차지하는 것처럼 관람자에게 상영된다는 것입니다. 극장에서의 최고의 좌석은 청중이 보이지 않는 것이죠. 우리는 우리가 밴드에서 보고 싶어하는 것처럼 콘서트를 보는 것 같을 것이라 생각했어요.

상영됐을 때 사람들이 극장에서 춤을 춘다는 것을 듣고 놀랐나요?

난 그 장면을 실제로 보고 “와 멋지다. 라고 생각했습니다. 이런 것은 Rocky Horror Picture Show이후로[웃음] 처음 보는 것이었죠. 많은 청중의 참여가 있었지만 다른 종류의 것인.

영화에서의 Tom Tom Club 부문은 순회공연의 정기적인 레퍼토리였나요?

네. 당시 “Genius of Love“가 큰 인기였어요. 그게 또 David이 그의 큰 양복으로 갈아입을 기회를 주기도 했죠.

그리고 당신이 마이크를 쓸 기회도 줬고요.

네. 내가 영화에서 유일한 바람이라면 나에게 마이크를 좀 더 줬더라면 하는 것이었어요. 하지만 알다시피 난 그저 흥분했을 뿐이에요. 무슨 말을 하겠어요.

한 Talking Heads 웹사이트는 당신이 싸인한 Stop Making Sense 블루레이 카피를 사은품으로 주던데요. 지금 당신들은 다들 사이가 좋나요?

Tina와 나는 사이가 좋고요.[웃음] Jerry와도 사이가 좋고요. David과는 내 짐작에 “이메일 친교”라고 할 수 있을 거에요. 사실은 꽤 오랫동안 그를 개인적으로는 보지 못했어요. 그건 나의 결정이 아니라 그의 결정이고요. 그는 이메일로 유지하는 것을 좋아하고 어쨌든 난 그 게임을 할 수 있어요.[웃음] 난 이메일에 답장을 할 수 있어요. 우리가 하나의 밴드 안에서 활동할 수 없을지라도 여전히 때때로 함께 이야기할 거리가 있죠. 그들은 우리에게 블루레이를 보냈고 우리는 싸인을 해서 되돌려보냈죠.

음악적으로 당신과 Tina의 다음 작업은 무엇인가요?

새로운 앨범을 위한 Tom Tom Club 기본 트랙이 여섯 개 정도 있어요. 그리고 우리는 독일 식으로 “Chris und Tina”로 부르는 프로젝트를 시작하는 것에 관해 이야기 중이죠. 음악은 록앤롤이나 펑크(funk)와 반대인 완전한 일렉트로닉이고 독일풍입니다. Kraftwerk 의 영향을 받았죠. 그게 현재 우리가 생각중인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Theme”이라는 이전에 발표되지 않았던 연주곡이 온라인에 떠돌던데요. 그 곡에 대해 어떻게 기억하고 계신지요?

멋진 노래죠. Beach Boys의 영감을 받아 만든 곡이에요. 아마 Talking Heads가 존재하던 당시의 첫 6개월 간 연주했던 것 같아요. 그리고 적절한 레코딩 스튜디오에서 녹음한 적은 없습니다. 그러나 The Shirts 에 있던 한 친구의 작은 지하실에 스튜디오 녹음한 것은 있어요. 우리는 녹음을 많이 한 적이 없기 때문에 녹음을 연습했어요. 그래서 우리는 로어이스트사이드에서 부르클린으로 가서 The Shirts 덕택에 그들의 작은 지하실 스튜디오를 이용할 수 있었죠. 우리는 그 곡 말고도 몇 곡 더 녹음했어요. 나는 최근에 테잎들로 구워서 그것들을 디지털로 변환했어요. 그리고 그것들은 놀랍도록 좋아요.

그것들을 발매할 예정인가요?

아마도 언젠가는요. 현재까지는 계획이 없어요. 그러나 그럴 수도 있고요. 그것들을 위해 많은 시간을, 우리가 결코 발표하지 않았던 이유는 우리는 그게 그렇게 좋다고 여기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당신이 40년 후에 그것들을 듣고 당신은 이렇게 생각하는 거죠. “빌어먹을 그렇게까지 나쁘지는 않네. 굉장히 좋아.”

트레일러 보기
Stop Making Sense 보기

Life During Wartim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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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ife During Wartime Talking Heads“. Via Wikipedia.

“Life During Wartime“은 미국의 뉴웨이브 밴드 Talking Heads의 곡이다. 이 곡은 1979년 발표된 그들의 세 번째 스튜디오 앨범 Fear of Music의 첫 싱글로 발매되어 빌보드 빌보드 핫100 차트 80위까지 올랐다. David Bowman이 쓴 Talking Heads에 관한 전기에 보면 David이 이 곡을 어떻게 쓰게 되었는가에 대해 나온다. 책에 따르면 David은 당시 애비뉴에이(Avenue A)1에 있는 아파트에서 곡을 썼다고 한다. 그는 ”바더마인호프2, Patty Hearst3, 톰킨스 스퀘어4을 생각했어요. 이것은 알파벳 시티5에 살아가는 것에 관한 노래입니다.“라고 이야기했다. 노래의 화자는 좌익 조직의 조직원으로 추측되며, 그는 ”세 개의 패스포트와 두어 개의 비자를 가지고 있고 진짜 이름조자 모르는“ 이로 묘사되고 있다. 또한 그는 ”헤어스타일을 하도 많이 바꿔서 자신이 어떻게 생겼는지도 모르는“ 이다.6 정말 전쟁 중이 아님에도 전쟁 중인 삶을 살아가고 있는 불행한 이다. 한편 가사 중에는 ”이것은 디스코가 아니다(This ain’t no disco)“라는 뉴웨이브 운동의 아이콘 비슷하게 간주되는 유명한 구절이 있다.7 후에 David은 The Best of Talking Heads의 라이너 노트에 이 가사 때문에 자신들이 ”反디스코 운동의 기수“로 여겨진 것이 너무 웃겼다고 전했다. 이 곡은 또한 1983년 만들어진 그들의 공연 필름 Stop Making Sense에서도 공연 버전으로 수록되었다. 공연 비디오에서는 David Byrne의 에어로빅댄스나 조깅을 연상시키는 독특한 안무가 인상적이다. 록앤롤 명예의 전당 측에서 ”록앤롤을 만든 500곡의 노래“에 포함시키기도 했던 이 위대한 노래의 기타 코드는 Am과 E가 다다.

뮤직비디오

  1. 뉴욕 맨해튼에 위치한 거리
  2. 서독의 적군파(赤軍派)
  3. 신문재벌 윌리엄 랜돌프 허스트의 손녀이자 상속자로 심바이어니즈 해방군이라는 좌익 조직에 납치되었다가 그들의 뜻에 동조해 조직에 가입하기도 했던 여인
  4. 뉴욕 맨해튼 알파벳시티 구역에 있는 공공공원
  5. 뉴욕 맨해튼 이스트빌리지 내에 있는 근린
  6. 이러한 도망자의 흔들리는 정체성은 시드니 루멧이 감독한 1988년작 Running on Empty에서 잘 묘사되고 있다.
  7. 때문에 이 구절을 제목으로 하는 뉴웨이브 앨범 커버로 구성된 책도 나왔다.

(Nothing But) Flower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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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othingbutflowers” by here.. Licensed under Wikipedia.

Talking Heads는 1988년 그들의 마지막 스튜디오 앨범 Naked를 내놓는다. “(Nothing But) Flowers”는 이 앨범에서 가장 인상적인 곡 중 하나다. David Byrne 특유의 블랙유머스러운 가사와 서정적인 멜로디가 잘 결합된 이 곡의 백보컬에는 Kirsty MacColl, 기타에는 Johnny Marr가 참여하는 등 유명인들의 협업도 인상적이었다. 가사는 현대사회의 도시 풍경이 정치적 운동 또는 기근으로 말미암아 자연의 상태로 돌아가는 상황을 그리고 있다. 이런 정서는 Joni Mitchell이 “Big Yellow Taxi”에서 “그들은 천국을 도로 포장해버렸다.”란 구절과 통한다 할 수 있다. 노래 가사 중 일부는1 Bret Easton의 소설 American Psycho에 인용되기도 했다. Kevin Smith가 감독한 2008년 작 Clerks II 에서는 오픈 크레딧에 이 곡을 사용하기도 했다. 그래픽 디자이너 Tibor Kalman이 시도한 혁신적인 타이포그래피가 사용된 뮤직비디오 또한 호평을 받았다. 이 곡은 영국 싱글 차트 79위에 올랐다.

뮤직비디오

  1. “And as things fell apart/Nobody paid much attentio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