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ore Songs About Buildings and Foo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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앨범 소개

1977년 4월 24일 토킹헤즈는 라몬즈의 오프닝공연을 위해 유럽을 방문했다. 그곳에서 밴드는 많은 인상적인 음악계 거물을 만나지만 그 중에서도 그들의 음악 여정에 돌이킬 수 없는 흔적을 남긴 인물을 만나게 된다. 브라이언 이노(Brian Eno). 이노는 그룹이 5월 14일 코벤트가든의 The Rock Garden에서 가진 공연을 John Cale 등과 함께 관람했다. 이노는 무대 뒤로 찾아가 멤버들과 인사를 나누면서 첫 만남이 이루어졌다.(참고) 이들이 영국에 머무는 동안 Byrne과 Jerry는 이노의 집에 몇 번 찾아가 음악을 듣고, 대화를 나누고, 책들을 읽으면서 친해지게 된다.1

1977년 12월 19일 토킹헤즈는 뉴욕으로 돌아왔다. 이노는 뉴욕의 8번가 아파트로 거처를 옮겨 자신의 새 앨범 Before and After Science를 위한 노래 King’s Lead Hat을 만들었다. 이 노래 제목은 Talking Heads라는 밴드명의 애너그램이었다. 그는 밴드에게 그들의 다음 앨범을 프로듀스해줄 수 있다고 말했다. 소속사 Sire는 긴장했다. 이노가 Bowie를 위해 만들어 그해 초에 나온 앨범 Low의 작업 시에 많은 문제가 있었기 때문이다. “우리는 이노를 쓰도록 스테인(사이어 레코드사의 사장 Seymour Stein)을 설득하기 위해 팔을 좀 비틀어야 했어요.” 크리스의 회상이다.2

3월 중순, 밴드는 바하마에 있는 콤파스포인트 스튜디오에 가서 녹음을 시작한다. 그들은 이 스튜디오를 이용했던 첫번째 밴드였는데 이후 3개의 TH 앨범과 2개의 Tom Tom Club 앨범, 그리고 Chris가 다른 밴드의 프로듀싱을 위해 사용했다. 3 Chris는 바하마의 스튜디오를 무척 마음에 들어 했다. 데뷔 앨범은 뉴욕의 조그만 녹음실에서 했는데, 이제 햇볕이 따사로운 바하마의 널찍한 스튜디오에서 그들의 우상이었던 브라이언 이노가 프로듀서와 녹음을 하게 된 것이다. 보조 엔지니어였던 현지인 벤지 암브리스터(Benji Armbriester)는 “여유를 가져요. 여기는 바하마고 삶을 서두를 필요가 없어요.”라고 말했다.4

수록곡으로 밴드가 이미 오래 전에 그들이 만들어 놓고 공연에서 썼던 곡들을 – 어떤 곡들은 Jerry가 합류하기도 전에 만들어진 – 재가공했다. 이노는 녹음 첫날 첫 앨범과 다른 사운드를 위해 앰비언트룸마이크를 사용하고 싶다고 말했다.5 는 티나의 베이스 연주에 공명을 좀 불어넣거나, 기타에 레이어를 쌓아 퍼커션처럼 들리게 하거나, 번의 목소리에 소리의 공간을 두어 외계인의 목소리처럼 들리게 하는 등의 효과를 가미했다. 그는 스튜디오에 있는 믹서기 MCI Mixer를 사랑했고 이를 잘 활용했다. “이노는 우리에게 스튜디오를 악기처럼 사용하는 방법을 알려줬어요.” 제리의 회상이다.6

앨범 제목은 처음에 번의 아이디어로 Tina and the Typing Pool7 이라 불렸다. 여러 의미없는 제안을 거듭하다가 티나가 탄식하며 “그냥 ‘건물들과 음식(Buildings and food)’이라고 부르면 어때?”라고 제안했다. 제리는 “그래 그게 제목이네”라고 답했다.8 앨범 커버는 전작에 비해 더 복잡했는데, 앞면은 밴드의 초기 작품의 사진을 담당하곤 했던 지미데사나(Jimmy De Sana)9의 529개의 폴라로이드 사진을 모은 모자이크 작품이다. 이 사진들은 롱아일랜드시티에 있는 한 빌딩 옥상에서 찍은 것들이다. 앨범의 뒷면 커버는 NASA와 GE가 내셔널지오그래픽을 위해 우주에서 컬러로 찍은 북미 대륙 사진의 모자이크 작품이다.

마침내 More Songs About Buildings and Food은 사이어(Sire) 레코드사를 통해 1978년 7월 14일 발매되었다. 수록곡은 조금 더 춤추기 쉬운 곡들이 주류를 이뤘다. 당초의 사이어 임원들의 우려와 달리 이노가 프로듀서를 맡았음에도 이 앨범은 전 앨범보다 훨씬 뛰어난 상업적 성공을 거두게 된다. More Songs는 빌보드 앨범 차트에서는 29위까지 올랐고 영국 앨범 차트에서는 21위까지 오르는 성과를 올렸다. 또한 당시 크리스와 번이 열렬히 추종하던 Al Green이 1974년 녹음한 원작의 리메이크 싱글 “Take Me to the River”는 밴드의 첫 빌보드싱글차트 탑30위곡이 되었다.

트랙리스트

1. Thank You for Sending Me an Angel

두 번째 앨범의 포문을 여는 신나는 행진곡풍의 곡이다. 여기서 ‘천사’는 누구일까? 밴드 음악의 이정표를 만들어준 브라이언이노일까? 가사를 보면 어린 아이에 관한 이야기다. 토킹헤즈는 먼 훗날 같은 소재로 다시 한 번 Stay Up Late를 만든다.

With a little practice, you can walk, you can talk just like me

2. With Our Love

I won’t look
I’ve got other things to do now
I forgot what it was

다시 한 번 Byrne이 주의가 산만하다는 사실을 알 수 있는 곡? ‘to do now’ 부분에서 번은 ‘야이야이야~’와 같은 추임새를 넣는다. 그러한 부분이 토킹헤즈의 곡들에 새로운 생명력을 불어넣었던 애드립이었다고 생각한다. 곡을 끝낼 때도 그냥 끝내지 않고 뭔가 흐느끼는 풍으로 끝낸다.

3. The Good Thing

번은 이 곡을 중국 음악처럼 들리게 하고 싶었다고 한다. 아닌 게 아니라 익살스러운 중국풍의 멜로디가 느껴지기도 한다. 가사를 보면 마치 경영관리 이론에 대한 행정부적인 반응과 같이 생각되기도 한다.

As we economize, efficiency is multiplied
To the extent I am determined the result is the good thing

이 곡은 절정부에서 티나와 스튜디오 사무실에서 일하던 여성들의 합창이 인상적이다.

그리고 후반부

Watch me work
Watch me work

에서 기타를 후려치면서 끝내는 부분이 매력적인 곡이다.

4. Warning Sign

Warning sign, warning sign
I hear it, but I pay it no mind

번이 마치 마이크를 통해 노래하는 효과가 인상적인 이 곡은 주의를 기울이라고 누군가가 외치는데 역시 주의가 산만한 번은 별로 주의를 기울이지 않고 있다.

I move it around a lot, but I don’t care what I remember

5. The Girls Want to Be with the Girls

이곡은 레즈비언에 대한 찬가일까?

Well, there’s just no love
When there’s boys and girls

이 부분에서 약간 그런 의심이 가기는 하지만, 대체로 의식의 흐름대로 가사를 만드는 것 같은 가사 작업의 성격상 사실인지 아닌지는 잘 모르겠다. 그럼에도 여전히 여타 평크 밴드의 마초적 성향과는 확실히 다른 밴드의 성향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잘 알 수 있다.

6. Found a Job

Judy와 Bob이라는 이름의 부부가 TV가 볼게 없다며 직접 쇼를 만든다는 재밌는 설정의 곡이다. 랭킹에 오르기도 하고 스핀오프를 만들까 고민하기도 한다. DIY의 즐거움. 이 곡은 번이 그의 부모를 방문했다가 TV에서 뭘 볼지에 대해 다툰 후에 만들었다고 한다.

Bob never yells about the picture now, he’s having too much fun

7. Artists Only

개인적으로 이곡을 스튜디오앨범이 아닌 라이브앨범 The Name of This Band Is Talking Heads에서 먼저 접했다. 그 앨범에서는 후속곡 Stay Hungry와 절묘하게 이어지는 흥겨움을 느낄 수 있다. 이 앨범에서도 후반부에 긴장감 넘치는 기타와 키보드 연주가 매력적으로 배치되어 있다.

8. I’m Not in Love

1975년 5월에 발매된 유명한 10cc의 노래와 같은 제목이지만 분위기는 완연하게 다르다. 여하튼 1집에서는 Uh-Oh, Love Comes to Town으로 앨범의 포문을 열었던 토킹헤즈가 이번에는 ‘나는 사랑에 빠지지 않았다. 사랑에 빠지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라고 사랑을 부정하고 있다.

Take it easy, baby, don’t let your feelings get in the way
I believe someday we’ll live in a world without love

갑자기 존레논의 이매진이 떠오른다. 우리가 당연하다고 여겨지는 것이 없는 세상.

Imagine there’s no heaven
It’s easy if you try

9. Stay hungry

제목에서 대번에 Steve Jobs가 연상되지만, 사실 “Stay Hungry Stay Foolish”라는 문구가 유명해진 것은 훨씬 후의 일이고 이 제목은 크리스가 가판대에서 본 한 바디빌딩 잡지에서 본 문장에서 따온 것이라고 한다. 아무튼 앞 곡에서는 사랑 자체를 부정하더니 밴드는 다시 사랑을 알리기 위한 방법을 알려준다. ‘배고픈 채로 버텨라’!

I think we can signify our love now
Ooh, girl, you can initiate an impulse of love
Stay hungry, stay hungry, stay hungry

10. Take Me to the River

이 앨범의 최고 히트곡이자 토킹헤즈 통산으로도 가장 상업적으로 성공한 노래 중 하나. Al Green오리지널을 커버한 곡으로 1978년 빌보드핫100 차트에 26위까지 올랐다. 이노는 이 커버버전을 원곡의 그루브를 잃지 않으면서도 되도록이면 느리게 연주하라고 주문했고 결과는 만족스러웠다.10

11. The Big Country

화자는 비행기에서 해안가 지역의 풍경을 내려다보는 상황을 묘사하며 그곳에서 사는 사람들의 삶을 상상하고 있다. 그러면서도 화자는 그 곳에서 살고 싶지 않다고 말한다. 어쨌든 토킹헤즈는 뉴욕이라는 대도시의 아이들이다.

I wouldn’t live there if you paid me
I wouldn’t live like that, no sirree

하지만 2015년 Marc Maron과 가진 인터뷰에서 번은 그에 관한 대중의 이미지에 – 대도시에 사는 속물 – 대한 풍자였고 자신은 소도시에 사는 이들에 대한 깊은 존경심을 가지고 있다고 말한다.(인터뷰 듣기)

  1. David Bowman, This Must Be The Place, Harper Entertainment, 2001, 104p
  2. David Bowman, 같은 책, 116p
  3. 크리스의 회고록에 따르면 그는 바하마가 무척 마음에 거처까지 마련했고 그가 프로듀서를 맡은 해피먼데이스의 Yes Please! 작업 등 여러 작업을 그곳에서 하게 된다.(하지만 결과는 참담했는데 크리스는 작업 기간 내내 마약에 쩐 멤버들을 찾아 헤매야 했다고 한다)
  4. Chris Frantz, Remain in Love, St Martin’s Press, 2020, 233p
  5. Chris Frantz, 같은 책, 233p
  6. David Bowman, 같은 책, 127-129pp
  7. 위키피디아는 크리스의 회고록을 인용하며 The Good Thing에서 백보컬을 담당한 티나와 스튜디오에서 일했던 여성 노동자들을 가리키는 말로 이 표현을 쓰는데 선후관계가 어떻게 되는 지는 좀 정확하게 체크를 해봐야 할 것 같다.
  8. David Bowman, 같은 책, 132p
  9. 그의 작품 감상하기
  10. Chris Frantz, 같은 책, 233-234pp

Talking Heads: 77

A red cover with "TALKING HEADS: 77" written at the top in green
By Sire Records – Album Art Excahnge, Public Domain, Lin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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앨범 속지의 밴드 사진

앨범 설명

토킹헤즈는 1975년 6월 또 하나의 위대한 펑크밴드로 남게 될 Ramones 공연의 오프닝밴드로 토킹헤즈라는 이름을 알리는 첫 라이브 무대를 가졌다. 그런데 데뷔 앨범을 발매하기까지는 2년이 더 걸렸다. 크리스프란츠가 회고록에 쓴 바에 따르면 그들은 그동안 레코드사로부터 몇 건의 앨범 발매 제의를 받았지만, 충분히 실력이 성숙한 후에 앨범을 내겠다고 생각하고 있었기에 데뷔 앨범을 내기 위해 서두르지 않았다고 한다. 그리고 밴드는 Byrne, Frantz, Weymouth 삼인조에서 뛰어난 키보드 연주자이자 기타리스트였던 The Modern Lovers 출신의 Jerry Harrison을 보강하여 사인조의 탄탄한 사운드를 확립하였다.

녹음은 Ramones가 그들의 두번째 앨범 Leave Home의 녹음을 막 끝낸 선드래곤사운드(Sundragon Sound)에서 진행됐다고 한다. 프로듀서 Tony Bongiovi와 Lance Quinn이 공동 프로듀서였다. Jon Bon Jovi의 사촌이었던 본지오비는 Gloria Gaynor의 Never Can Say Goodbye와 Ramones의 최신작을 프로듀스했었다.1 밴드는 그의 전 작업을 마음에 들어 했지만, 크리스의 주장에 따르면 사실 대부분의 작업은 엔지니어 Ed Stasium이 맡았고 본지오비는 다른 사람과 전화통화를 하거나 잡지나 뒤척이다가 밴드의 녹음이 훌륭하게 진행되었음에도 재녹음을 요구하는 등 무례하게 굴었다고(특히 티나에게) 한다.2 스타슘과 퀸은 밴드에게 격려를 아끼지 않으며 작업을 진행했다고 한다.

어쨌든 그룹은 워너뮤직그룹(Warner Music Group)의 소유였던 Sire 레이블을 통해 발매된 이 앨범을 통해 “자신의 삶을 책임지는 것의 중요성에 대한 현대적인 메시지를 전달”하면서도 듣기에 즐거운 앨범을 만들고 싶어 했다. 로버트크리스트가우(Robert Christgau)는 이 앨범에 대해 “Sparks처럼 이들은 버릇없는 아이들이지만, 풋풋함이나 사춘기적 여성혐오는 없다. Yes처럼 그들은 겁쟁이지만 모호함이나 값싼 낭만주의는 없다.[중략] 결국 그들은 펑크라는 것을 의미한다.”라고 코멘트하며 평점에 인색한 그로서는 보기 드물게 A− 의 평점을 매겼다. 2012년 롤링스톤은 ‘역대 최고의 앨범 500개’에 이 앨범을 291위에 올렸다.(출처)

1977년에는 또 하나의 걸출한 펑크 앨범이 출시되었는데 바로 77 발매 한 달 후에 발매된 섹스피스톨스의 Never Mind the Bollocks, Here’s the Sex Pistols다. 음반업계에서는 아무도 이 펑크의 바람이 일시적인 유행이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토킹헤즈의 앨범 홍보를 맡은 워너브라더스는 Sire를 설득하여 The Saints, Dead Boys, Richard Hell & the Voidoids와 같이 보다 더 섹스피스톨스 스타일로 경도된 펑크 밴드를 홍보하도록 하였다. 밴드는 앨범 홍보를 위해 미전역을 돌며 공연을 하는 등 고군분투했지만, 상업적으로보다는 비평적으로 더 높은 평가를 받았다.

 

트랙리스트

1. Uh-Oh, Love Comes to Town

앨범의 포문을 여는 첫 곡인데 펑크밴드답지 않은 R&B 곡이다. 티나의 베이스라인은 James Jamerson의 “I Was Made To Lover Her”라는 곡의 베이스라인에서 영감을 얻은 듯하다.(참고글) 개인적으로 재미있다고 생각하는 가사는

Stock broker make a bad investment when love has come to town.

우리 모두 주식투자를 할 때에는 사랑을 멀리해야 할 것 같다.

2. New Feeling

한때 무척 자주 들은 토킹헤즈의 노래였다. 이 블로그의 초기 이름을 뉴필링으로 할 정도였다. 시건방지거나 몽환적인 기타 사운드가 무척 맘에 든다.

3. Tentative Decisions

번은 자신의 초기 작사 작업을 회고적으로 “화성에서 온 인류학자”를 떠올리게 한다고 묘사했다. 우리가 다소 당연하게 여기는 일상의 인간 행동을 분석하고 조사한 것이다.(출처) 행진곡 풍의 드러밍이 인상적인 이 노래는 앨범의 주요 주제중 하나인 ‘우유부단함’에 관한 곡이라 여겨진다. 결단력과 우유부단함.

Decide, decide, make up your mind
Decide, decide, I told you what to say

화자는 누구에겐가 빨리 결정을 하라고 다그친다.

4. Happy Day

한 평자는 Talking Heads의 첫 번째 앨범에서 가장 낙관적이고 따뜻한 노래라 여겼다.(출처) 개인적으로 이 노래는 토킹헤즈의 후반 작업에서 느껴지는 컨트리풍의 단초가 느껴진다.

5. Who Is It?

매우 심플한 곡이다. 가장 재치 있는 가사는

If you don’t love me I don’t know what I’m going to do.

날 사랑하지 않는다면 어찌할 바를 모르겠다는 다소 진부한 가사지만, 그럼에도 개인적으로 흥미로운 점은 비꼼과 의미모를 풍자가 특기인 토킹헤즈 가사 중에서도 드물게 솔직한 마음을 털어놓았기 때문이다.

6. No Compassion

이 곡은 토킹헤즈의 노래 중에서도 유난히 강렬한 하드락풍의 기타 인트로를 선보였다는 점에서 인상적이다. 그리고 곡 3분경에 강렬한 기타 연주 그리고 짧은 인터벌 이후 다시 몽환적으로 시작되는 연주가 압권이다. (한 유튜버의 기타 커버 영상)

아래 가사는 노래 제목만큼이나 화자의 자비로움이 전혀 느껴지지 않는다.

Go talk to your analyst, isn’t that what they’re paid for?
Be a little more selfish, it might do you some good

7. The Book I Read

I’m embarrassed to admit it hit the soft spot in my heart
When I found out you wrote the book I read

“내가 읽고 있는 책을 네가 썼다니!”라는 시기심에 가득한 화자의 질투심이 재미를 주는 곡이다.

8. Don’t Worry About the Government

이 노래는 풍자적인 가사인가?

내가 들어본 모든 해석은 풍자적이었습니다. 즉, “정부는 걱정하지 마!!”는 정부가 사람들이 정부에 대해 생각하기를 바라는 것입니다. 워터게이트와 베트남 전쟁 직후에 쓰여진 방식을 생각하면 이 측면에서 매우 타당합니다. 하지만 모두 듣는 사람에게 달려 있습니다.(출처)

9. First Week / Last Week… Carefree
차차 리듬, 귀라(Güira) , 마림바(Marimba)의 사용 등이 인상적인 곡이다. 이곡이 후에 번이 빠져든 월드뮤직으로의 추구 성향의 단초가 되었을지도?

10. Psycho Killer

이 앨범에서 유일하게 상업적으로 히트한(빌보드핫100 차트 92위) 곡이자 초기 그룹의 정체성에 묘한 분위기를 불어넣은 곡이다. 중간에 나오는 프랑스어 가사는 모친이 프랑스인이어서 프랑스어를 할 수 있는 티나의 공헌이다.(원래는 일본어로 가사를 넣으려했다는 비하인드스토리가!) 그 외에도 티나는 가사 작업에 또 다른 기여를 했는데

데이비드는 “가사가 필요해”라고 했고, 그래서 우리는 브레인스토밍을 했습니다. 저는 “음, 히치콕은 ‘너를 죽일 거야’라고 말했을 거야. 왜냐하면 너는 무례하고 예의 바르지 않으니까”라고 말했습니다. (2015년 BBC 다큐멘터리 Girl in a Band 중 티나와의 인터뷰 중에서)

11. Pulled Up

개인적으로 New Feeling에 이어 이 앨범에서 두 번째로 좋아하는 곡이다. 번의 창법은 언제나 뻔뻔하지만 이 노래에서 특히 더 뻔뻔하게 느껴진다. 좋아하는 부분은

Pulled me up, up, up, up, up, up, up, up!

이라고 업을 계속 외치는 부분과 2분 20초 경에

I got up ’cause you pulled me up

에서 you를 구성지게 길게 늘여 부르는 창법이 재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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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욕에 있어 1977년은 어려운 한 해였다. 경제적 폭락, 방화로 황폐해진 동네, 도시를 잠시 무정부 상태로 만든 정전, 그 전 여름에 외곽 자치구를 맴돌았던 연쇄 살인범의 그림자.(Pitchfork 의 앨범리뷰 중)

  1. Remain in Love, Chris Frantz, 2020, 127-128pp
  2. Byrne은 앨범을 녹음할 당시 본지오비를 아주 싫어했으나 20여년 후 한 인터뷰에서 “우리는 어떻게 앨범을 만들 줄 몰랐고 그는 우리가 더 접근 용이한 앨범을 만들 수 있게 해주려고 한 것이다”라며 그에 대해 너그러운 태도를 보였다(토킹헤즈의 전기 This Must Be the Place 111쪽 참고)

Brian Eno는 어떻게 80년대를 발명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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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VROFTA001018016 004 con.png Beeld En Geluid Wiki – Gallerie: Toppop 1974, CC BY-SA 3.0 nl, Link

브라이언 이노(Brian Eno)는 너무나 유명한 인물이라 그가 얼마나 많은 일을 했는지 기억하기 어려울 수 있다. “앰비언트 뮤직”이라는 용어를 만들어내고 이 장르의 첫번째 앨범으로 널리 알려진 앨범(앰비언트 1: 공항을 위한 음악)을 발매한 것만으로도 역사책에 이름을 올릴 만하다. 하지만 브라이언 이노가 U2, Coldplay, 피터 가브리엘(Peter Gabriel)을 포함한 아티스트를 위해 한 일은 그 자신의 일만큼이나 중요했다.

Roxy Music : 최초의 신스 밴드 중 하나

1970년, 록시 뮤직이 등장했다. 아마도 최초의 글램 록 밴드인 록시 뮤직은 가사, 의상, 자세, 사운드를 사용하여 새로운 아트록을 혼합한 예술학교 아이들로 구성되었다.

그들의 특징 중 하나는 ” Eno”라는 이름으로만 알려진 신스로 소리를 내는 가냘픈 대머리 인물이었다. 첫 번째 앨범 “Re-Make/Re-Model”의 첫번째 곡에서 그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는데, 이는 록 곡에 신스를 사용한 초기 사례다.

그는 나중에 록앤롤 명예의 전당에 Roxy Music의 일원으로 입성했지만, Eno는 밴드에서 많은 시간을 보내지 않았다. 그래도 그는 그 초기 레코드에 뚜렷한 매력을 더했다.

Devo : 신스가 메인스트림에 들어가다

Eno는 오하이오에 있는 New Wave 밴드 Devo의 첫번째 앨범을 프로듀싱했다. 첫번째 앨범을 프로듀싱하는 임무를 맡은 Eno는 “Mongoloid,” “Jocko Homo,” “Uncontrollable Urge”와 같은 바보같은 노래에 신스를 추가하도록 설득했다.

이전에는 펑크록 밴드로 여겨졌지만, 이로 인해 Devo는 80년대를 지배할 장르의 초기 사례 중 하나인 New Wave로 탈바꿈했다.

The Talking Heads : 새로운 질서(The New Order)

브라이언 이노는 멈추지 않고 Talking Heads의 경력에서 중요한 순간에 세 장의 앨범을 프로듀싱했다. 성공적인 데뷔를 앞두고 Eno는 가장 실험적인 시기의 프로덕션을 맡았다. More Songs About Buildings and Food, Fear of Music, 그리고 특히 Remain in Light 는 밴드를 미지의 영역으로 밀어붙였고, 마지막에는 서구의 청중에게 생소한 반복적이고, 최면적이고, 겹겹이 쌓인, 아프리카에서 영향을 받은 노래 구조의 노래가 많이 등장했다.

이 덜어낸 것(less-is)이 더 많은 접근 방식은 80년대를 지배할 Depeche Mode, New Order, Pet Shop Boys와 같은 단순화된 신스 중심 밴드를 위한 플로어를 비웠다.

No New York

하지만 모든 행동에는 정반대의 반응이 있다. New Wave의 꼬리에 바로 붙어 있던 것은 No Wave였다. 이 팝적이고 신스 중심의 노래에 의해 날카로움이 사라졌다는 것을 감지한 뉴욕의 예술 아이들은 펑크와 메탈을 받아들여 Sex Pistols의 애국가적 멜로디와 Black Sabbath의 귀에 맴도는 리프를 버렸다. 이런 음악 스타일은 Swans, Sonic Youth, James Chance and the Contortions, Teenage Jesus and the Jerks, Glenn Branca의 초기 레코드의 소음과 악의(malice)의 벽에서 들을 수 있다.

그리고 이 거친 사운드에 정통한 주류 음악가는 Brian Eno 자신뿐이었을까? 최첨단 음악의 팬인 Eno는 몇몇 유명한 No Wave 밴드의 레코드를 큐레이팅하고 제작했다. No New York은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이 장르를 처음 접하게 한 것이다. 그것은 80년대에 포스트 하드코어 메탈이 나아갈 방향에 큰 영향을 미쳤다.

BY CHRISTIAN FLYNN
JANUARY 9, 2025

원문보기

Bonzo Goes to Washington / Five Minutes

트럼프 2기에 들어서서 화가 많이 난 것 같은 롤링스톤이 ‘THE 100 BEST PROTEST SONGS OF ALL TIME’이라는 리스트를 발표했다. 다시 한번 프로테스트송이 차트를 뒤흔드는 상황을 바라는 의미일까? 100위에 토킹헤즈의 제리해리슨(Jerry Harrison)이 만든 프로젝트밴드의 곡이 선정돼서 소개한다. 이 100곡중 80년대 노래 리스트는 여기로.

핵 불안이 이렇게 펑키하게 들린 적은 없었다. 1984년 대선을 앞두고 등장한 수수께끼의 그룹 Bonzo Goes to Washington — 사실은 Talking Heads의 기타리스트 제리 해리슨(Jerry Harrison)과 P-Funk의 베이시스트 부츠 콜린스(Bootsy Collins)의 프로젝트 — 는 레이건 대통령의 한 발언을 조롱하며 완전히 미트파이로 조리해버렸다. 그 발언은 ‘친애하는 미국 국민 여러분, 오늘 저는 러시아를 영원히 불법화하는 법안에 서명했음을 기쁘게 알려드립니다. 우리는 5분 후 폭격을 시작합니다.’라는 그의 농담이었다. 이 곡은 이후 Sleeping Bag Records의 설립자이자 댄스 음악의 공상가인 아서 러셀(Arthur Russell )에 의해 리믹스되면서, 진정한 ‘상호 확증 파괴급’ 댄스 플로어 폭탄으로 거듭났다

토킹헤즈의 ‘Once in a Lifetime’이 말하고자 하는 바는 무엇일까?

Talking Heads c. 1980; left to right: David Byrne, Jerry Harrison, Tina Weymouth, Chris Frantz
By Distributed by Sire Records. Photographer uncredited. – , Archive , eBay listing two, , Public Domain, Link

토킹헤즈의 1981년 작 ‘Once in a Lifetime’이 역사상 가장 위대한 곡 중 하나라는 사실은 과장이 아니다. 곡의 발표후 40년 이상 Remain in Light의 이 리드싱글은 그 첫 발매이후 사랑받고 적절한 곡으로 기억되고 있다. – 그러나 그 가사는 어떠한 내용일까?

곡을 쓴 데이빗번에 따르면 이 곡은 무의식에 관한 노래다. “알다시피 우리는 비몽사몽간이나 자동 조종장치 위에서 움직이고 어쨌든 집 한 채, 가족, 직업, 그리고 그 외의 것을 가지게 됩니다. 그리고 우리는 계속 우리에게 자문합니다 ‘어떡하다 내가 여기에 있지?’” NPR에게 프론트맨이 한 말이다.

번은 곡의 첫 소절에서 일상생활에서의 자동 조종장치 루틴에 대해 요약한다. 1절에서의 각각의 가사는 다음과 같은 구절로 문을 연다. “그리고 넌 너 자신을 발견할 것이다.(And you may find yourself.)” 곡의 전체적인 메시지를 증류한 것 같은 다섯 단어다. 곧바로 번은 우리가 우리의 삶을 통제하고 있다고 가장된 인지에 초점을 맞춘다. – 너는 능동적으로 멋진 저택이나 아름다운 아내를 추구한 것이 아니다. 넌 단지 그것들을 가진 너 자신을 발견한 것이다.

1절에서의 이 구절의 반복은 우리 대부분이 맹목적으로 받아들이고 우리의 삶이 어떻게 변하는지에 대해 거의 관조하지 않는 단조로움을 반영한다. 다만 이는 파멸이나 의기소침을 의미하지 않는다. 번의 읊조림은 우리가 주변을 바라보도록 상기시켜 우리가 우연히도 얻게 되었을 성취와 아름다음을 찬양하고 스스로에게 자문하게 한다. “어떡하다 내가 여기에 있지?(How did I get here?)”

그가 우리를 계속해서 두 번째 인물로 안내하는 동안, 이 프론트맨의 무게감 있는 가사나 단호한 보컬은 번에 의해 의도적으로 스타일리스틱하게 선택한 어느 목사의 환영을 묘사한다. 코러스에 대한 브라이언 이노의 멜로디에 관해 말하자면, 그는 Uncut에 다음과 같이 설명했다. “이는 마치 설교자와 그의 신도들의 대화처럼 부름-응답(call-and-response) 패턴으로 작용했어요. 나는 마치 설교를 하는 것처럼 가사를 발전시켜나갔지요.”

싱어는 또한 라디오에서의 선교사들이 반복하는 구절에서 영감을 얻었는데, 이를 통해 초월성이 반복되는 느낌을 주었다. 물을 기반으로 하는 표상 역시 노래 내내 현존하였는데, 인생과 시간의 멈출 수 없는 흐름을 반영한 것이다. “물을 제거하라, 물을 나르라.(Remove the water, carry the water)” 번은 우리를 격려한다. 그것은 불가능한 일이다. 그러나 프론트맨의 도움으로 거의 가능한 것처럼 여겨진다.

노래 내내 이어지는 무의식적인 일상에 대한 반복되는 상기 속에서 – “나날들을 보내면서(Letting the days go by)”라는 반복되는 후렴구에서, 그리고 상징적인 “늘 똑같아요(Same as it ever was)”에서 – 번은 우리에게 뚫고 나가라고 간청한다. ‘Once in a Lifetime’은 단순히 염세적인 노래가 아니라 활기찬 노래다. 모든 것이 늘 똑같다는 것은 번의 보다 긍정적인 선언과 즐거운 연주와 대조를 이룬다.

“시간은 멈춰있지 않아요. 시간은 우리를 뒤따르지 않아요.(Time isn’t holding up, time isn’t after us)” 그는 우리에게 확신시킨다. 그리고 그를 불신하기 쉽지 않다. “데이빗의 가사들이 환상적인 점은 그가 선교사의 열정에 찬 어조를 사용한다는 점이에요.” 이노가 Uncut에서 설명한다. “우리가 얼마나 환상적인 곳에서 살고 있는지 이야기하고 있어요. 함께 찬양합시다. 그건 모두가 절망하고 우울해하고 있을 때 할 수 있는 급진적인 행위에요!”

우리가 번을 믿어야 한다면, 우리가 아무 생각없이 사회적 기대를 만족시키고 우리의 성취가 우리를 스쳐지나가게 놔두는 동안 그 나날들이 흘러가게 놔두는 것은 유일한 선택이 아니다. 번이 제목의 단어인 “일생에 단 한번(Once in a lifetime)” 전달하면서 이 지점은 마침내 곡의 마지막 장면에서 집에 도달한다. 이는 삶의 덧없는 본질을 날카롭게 상기시킨다. 적어도 우리는 번에게 우리의 무의식적인 활동을 깨고 인생을 보다 자주 찬양해야 한다는 것에 대한 빚을 진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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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킹헤즈가 그 집을 태워버렸다. 서로 각자가 아니라

이 팬의 이름은 스파이크리다.

“역사상 최고의 콘서트 필름입니다!” 토론토 인터내셔널페스티벌에서 토킹헤즈의 새롭게 리마스터된 콘서트 다큐멘터리 스탑메이킹센스의 시사회에서 이 베테랑 감독이 선언했다. 리는 그룹이 이십여년만에 처음으로 대중에 전체 밴드의 모습으로 나타난 영상회와 질의응답 시간의 사회를 맡아줄 것을 요청받았다.

몇년 동안 팬들은 멤버인 데이빗번, 티나웨이마우스, 크리스프란츠, 제리해리슨에게 재결성해줄 것을 애걸해왔다. 그러나 월요일의 이벤트는 이 락커들이 서로 한 방에 모일 수는 있기나 한 것인지에 대한 테스트였을 것이다. 번과의 마지막 만남이 “20여년 전”이었다는 프란츠는 그가 2020년 내놓은 생동감있는 회고록 리메인인러브에서 회고하길 번은 그룹의 공동작업에 대해 반복적으로 단독의 작곡인 것으로 간주했었고, 1991년 모두를 놀라게 하는 밴드의 해산을 주도했다. 그리고 나머지의 바람과 반해서 EMI의 카탈로그에 완전한 소유권에 서명해버렸다. 한편 웨이마우스는 이전에 번을 “트럼프주의자”이자 “거래적”이라고 묘사했다.

그러나 TIFF에서 잠복해있던 드라마는 재빨리 잠재워졌다. 리의 사회 하에 상영 후의 인터뷰는 최대한 밝고 공손했다. “역사상 최고의 콘서트 필름입니다!” 그는 다시 선언해서 그룹이 그들의 음악과 영상의 유산을 축하며 미소짓게 만들었다.

“토킹헤즈는 너무나 뛰어난 밴드이고 우리가 라인업을 확장했을 때… 우리는 다른 차원으로 옮겨갔었습니다.” 프란츠가 말했다. “자화자찬해서 미안한데 우리 밴드 멤버가 오늘밤 다시 함께 한 것이 너무 좋아요.”

CBGB의 열기 속에서 구성된 토킹헤즈는 1970년대 뉴욕에서 협조적이고 매혹적이고 끊임없이 변화하는 사운드에 집중하는 거부할 수 없이 매력적인 라이브 연주로 경력을 시작했다. 이는 그들을 보다 전통적인 가사-코러스-가사 위주의 동료 뮤지션과 차별화하는 것이었다. 그들은 특히 피어오브뮤직(1979)에서 종합적인 텍스쳐를 락에 결합하고 차기작 리메인인라잇(1980)과 스피킹인텅스(1983)에서는 아프리카의 그루브에 영감을 받은 복합적인 리듬을 만들어내는 등 스튜디오 마술에 능숙한 솜씨를 보여주었다. 토킹헤즈는 비록 2021년이 되어서야 평생공로상으로 처음 그래미를 받기는 했지만 드물게도 비평과 흥행 모두에서 성공적이었다.

1984년 발표한 스탑메이킹센스는 그들의 카타르시스를 느끼게 하는 라이브 공연을 소중하게 담아냈다. 이 획기적인 필름은 당신을 토킹헤즈가 스피킹인텅스 투어로 3일 밤을 연주하는 로스엔젤레스의 판타지스 극장으로 데려간다. 당시 그룹은 쇼에서 라인업을 서서히 확장하면서 보다 풍부하게 실연하는 사운드나 장엄한 연출법 등을 선보였다.

당신이 스탑메이킹센스를 처음 접했든 반복적으로 시청을 했든 (해리슨이 감리를 맡은) 리마스트된 사운드를 포함한 복각판은 당신을 즉시 그들의 연주장으로 데려간다. IMAX에서 극단적으로 친밀한 경험을 맛볼 수 있다.(“그는 너무 땀이 흥건하네요!” 번의 근접 샷에서 내 이웃 하나가 말했다.) 극장의 팬들은 “버닝다운더하우스”에 원 모양으로 회전했고 “원스인어라이프타임”에서는 리는 좌석을 차고 일어난 이들에 합류했다. “라이프디어링워타임”의 연주 동안 번의 모습에에는 다시 한번 계단에서 달리기가 시작되었다.

“지금 이걸 봤을 때 난 이게 극장에 오는 이유야!라고 생각했어요.” 나중에 번이 “내 랩탑으로 보는 것과 다르다”라고 농담하기 전에 이야기했다.

상영회 이후 리는 동기부여 감독 역을 맡았다. “모두 환영해주세요. 전세계적으로 기록을 세울 예정입니다.” 토킹헤즈 101으로서 부분적으로 발매의 역할을 인지하고 있기에 리는 타임라인과 함께 1983년 어떻게 촬영했는지에서부터 밴드와 청중이 2023년 이를 어떻게 받아들였는지에 이르기까지 질의를 진행했다. 특별히 웨이마우스의 그의 베이스 스타일에 친밀감을 보이며 리는 그에게 이 필름에서 맘에 드는 연주가 무엇인지 물었다. “이봐요 스파이크” 그가 대답했다. “그건 마치 내 아이들 중 누구를 누구를 가장 사랑하느냐고 선택하라고 강요하는 것이나 같아요.”

토킹헤즈의 발언이나 팬의 질문은 – 예를 들면 “완전 새로운 관객에게 이 상징적인 영화를 상영하니 어떤 느낌인가요?”와 같은 – 이 방안에 하나의 단어를 남겼는데 ‘사랑’이다. 리는 다시 강조했다. “사랑!” 리는 항상 같은 정서를 공유한 것만은 아닌 이들 밴드 구성원을 위한 치료의 힘이 있는 주문이라도 되는양 소리쳤다. “영원하다!” 그는 그들의 유산에 대한 확신감으로 반복했다. “풍부하고 세심한 사운드!” 그는 그룹이 기뻐할 정도로 강조하였다.

“이 필름이 힘을 유지하는 이유 중 하나로 당신은 스테이지 위에서 우리가 무척 즐기고 있다는 사실을 볼 수 있을 것입니다.” 해리슨의 말이다.

“제가 거기에 사랑이란 단어를 다시 넣어도 될까요?” 리가 물었다. “사랑! 사랑!”

“사랑과 즐거움, 그리고 청중이 ‘당신도 이 중 하나야’라고 말하고 있어요.” 해리슨이 이어나갔다. “이 영화를 볼 때마다 당시의 놀라운 감정이 다시 떠오르곤 합니다.”

토킹헤즈는 리를 좀 더 자주 만나야 하고 이는 그들에게 좋은 일일 것이다.

게일블레커가 디자인한 아이코닉한 빅수트에 대해 이야기하면서 번은 일본에서 그의 친구와 저녁을 먹으면서 친구는 극장에서 동작과 부피에 이르기까지 모든 것이 실제 삶보다 크다고 이야기했다고 회상했다.

“그리고 난 생각했는데 오~! 내 양복도 역시 커야겠구나.” 번이 말하자 폭소가 터졌다.

“오늘은 정말 컸어요.” 프란츠가 대꾸했다.

웨이마우스는 필름을 찍기전에 “모든 곡의 악보를 따고, 각 연주자가 무엇을 하는지, 누가 움직이는지를 알기 위해” 밴드와 함께 몇주간 여행했던 비주얼 컨설턴트 샌디맥레오드에게 고마움을 표했는데 “내 생각에 그게 실제 촬영에서 굉장히 도움이 되었던 것 같아요.”라고 말했다. 밴드는 또한 팀의 노력으로 스탑메이킹센스의 감독으로 많은 신뢰를 받았던 조나단드미에게도 칭찬을 쏟아부었다.

“난 그가 이것을 일종의 합주 필름이라고 보고 있음을 깨달았어요.” 번이 고인이 된 감독에 대해 말했다. “당신은 많은 배우를 가지고 있어요. 당신은 하나하나의 캐릭터에 대해 알게 되죠. 그리고 당신은 그들이 서로 어떻게 관계하는지 바라봅니다. 나는 나많의 세상이 있다. 그러나 그는 거기에서 무엇이 어떻게 돌아가고 있는지를 본 것이라고 생각했었죠.”

프란츠가 덧붙였다. “조나달은 우리를 많이 신뢰했어요. 우리가 하는 것이 영화로 만들 가치가 있고 또한 그것이 미래에 기억될 가치가 있다고 느끼게 해줬죠.”

리는 아쉽게도 밴드 멤버들이 어떻게 이제 잘 지내게 됐는 지에 대해서나 라이브를 위한 재결합의 가능성에 대한 질문을 하지 않았다. 번은 다만 최근 사람들에게 그가 그룹을 끝내게 한 것에 대해 “후회”하고 있고 그것을 “꼴 사나운 해체”라고 하며 자신의 잘못을 인정했다고 한다. 토킹헤즈의 이전의 2002년 공개 석상에서 프란츠는 록앤롤 명예의 전당에게 밴드가 “행복한 끝맺음”의 기회를 준 것에 대해 감사한 바 있다. TIFF는 보다 행복한 것이 되었다.

“마술같아요.” 웨이마우스는 스탑메이킹센스에 대해 이야기했다. 그러나 이 감상은 그 밤 그 자체에게도 쉽게 적용될 것이다. “모든 것이 특별해요. 당신이 우리와 청중 사이에 대해 이야기한 그 사랑, 팀웍, 우리 동료, 영화를 찍은 동료. 모든 것이 멋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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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alking Heads, 2021년 그래미 특별공로상 수상 예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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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alking Heads 가 2021년 그래미에서 특별공로상을 수상할 예정이다. 이 아트락의 선구자들은 평생공로상을 수상할 것이다. 이들과 함께 같은 상을 수상하는 이는 Selena, Salt-N-Pepa, Grandmaster Flash & The Furious Five, Lionel Hampton, Marilyn Horne 등이다. Talking Heads는 여태 두 번 수상 후보에 오른 적은 있지만 – 1983년 “Burning Down The House”로 베스트 락공연에, 그리고 “Storytelling Giants”로 베스트컨셉트뮤직비디오 부문에 – , 한 번도 그래미를 수상한 적이 없다. Talking Heads의 마지막 공식 공연은 2002년 락앤롤 명예의 전당에서의 공연이었다. 그래미 수상식은 2021년 1월 31일 온라인으로 진행될 예정이다. 사회는 Trevor Noah가 맡을 예정이다.

Remain In Light이 만들어지기 직전에 있었던 잼세션에 관한 일화


새로운 앨범을 만들어야 한다고 다른 멤버들을 부추기는 것은 보통 나의 일이었다. 티나는 준비되어 있었다. 제리는 준비되어 있었다. 나는 확실히 준비되어 있었다. 데이빗과 브라이언은 별로. 그들은 뉴욕으로 돌아왔지만, 분명 – 우리는 알 수 없지만 – 샌프란시스코에서 앨범을 만드는 동안에 그들 사이에 무슨 일이 있었다. 내가 데이빗에게 전화했을 때 그는 우리와 새 앨범을 만드는 것에 관심이 없다고 했다. 뭘 해야 하나? 티나, 제리, 그리고 나는 우리 집에서 즉흥연주를 시작했고 기록을 위해 우리의 소니 붐박스에 모든 것을 녹음했다. [중략] 티나가 아이디어를 냈다. 그는 브라이언에게 전화해서 “안녕 브라이언. 나 지금 크리스하고 제리와 여기 우리 집에서 잼세션을 하고 있는데 오지 않을래?” 라고 제안했다. [중략] 브라이언과 연주를 몇 개 한 후 방 안에는 좋은 에너지가 넘쳤고 모두는 근사한 시간을 보냈다. 그러자 티나는 데이빗에게 전화해서 “안녕 데이빗. 브라이언이 우리랑 연주 중인데 정말 근사해. 어서와!”라고 말했다. 데이빗은 하고 있던 일을 모두 내려놓고 한 시간도 안 돼서 기타를 손에 든 채 우리 집으로 왔다. 심리학은 재밌는 거야. 그렇지?[Chris Frantz, Remain In Love, 2020, St. Martin’s Press, p260에서 번역]

Psycho Killer의 가사에 일본어 가사가 들어갈 뻔한 사연

Chris Frantz의 회고록 Remain in Love에는 Psycho Killer가 만들어진 과정이 자세히 소개되어 있다. 책에 의하면 크리스와 티나가 졸업전을 위해 그들의 스튜디오에서 작업을 하고 있을 때 David Byrne이 어느 날 그들을 찾아와 당시 쓰고 있던 가사 작업을 도와달라고 요청했다고 한다. (번은 이 곡이 Alice Cooper 스타일이라고 주장했다고 한다!) 그가 크리스 일행에게 보여준 가사는 I can’t seem to face up to the facts로 시작하는 싸이코킬러의 첫 문단이었다. 그러면서 Byrne은 이 캐릭터의 싸이코적인 모습을 부각시키기 위해 브릿지로 일본어를 쓰기 위해 한 일본여성에게 도와달라고 요청했었다고 말했다 한다. 이때 크리스는 티나가 불어를 할 수 있으니 불어로 브릿지를 넣는 것은 어떠냐고 제안했다. それは何ですか 대신에 Qu’est-ce que c’est 가 가사에 삽입된 순간이었다. 좋은 충고를 해주신 크리스님 감사합니다.

스트리밍 서비스 시대가 초래한 불공정한 게임

레이블들은 그들의 수입의 일정비율(간혹 15% 정도)을 지불한다. 이 비율은 스트리밍 음악이 제조, 파손에 의한 피해, 그리고 손상을 보상하기 위한 레이블의 별도의 물리적 비용 등이 포함된 것이라면 말이 된다. 그러나 그렇지 않다. LP나 CD 생산과 비교할 때에 스트리밍은 레이블에게 비교도 안 되는 높은 마진을 안겨준다. [중략] 나는 애플 뮤직에 맛보기 기간 동안의 저작권료 계산법을 설명해달라고 요청했다. 그들은 그 계산법은 저작권 보유자(즉 레이블)에게만 공개된다고 말했다. 나는 내 레이블을 가지고 있고 내 앨범 중 몇 개의 저작권도 가지고 있다. 그러나 내가 내 배급사에게 얼굴을 돌리자 그의 답은 “당신은 계약을 볼 수 없습니다. 그렇지만 당신이 당신 변호사가 우리 변호사에게 전화를 걸게 하면 몇몇 질문에 답은 해드릴 수 있습니다.”였다. 상황은 더 나빴다. 한 업계 정보통은 내게 메이저 레이블들이 스트리밍 서비스를 통해 벌어들이는 수입을 그들의 카탈로그에 있는 아티스트들에게 언뜻 보기에도 제멋대로의 기준으로 배분하고 있다고 말했다. [중략] 레이블들은 세 곳의 또 다른 수입원이 있는데, 이는 모두 아티스트들에게는 감춰진 것들이다. 그들은 스트리밍 서비스에 대한 선금을 받고, 오래된 노래들에 대한 카탈로그 서비스에 대해 지불받고, 스트리밍 서비스 자체의 주식을 받는다.[Open the Music Industry’s Black Box]

80년대의 전설적인 뉴웨이브 밴드 Talking Heads의 프론트맨이었고 현재 솔로로 활동하면서 미술작품 제작 및 저작 등 활발한 활동을 벌이고 있는 David Byrne이 최근 뉴욕타임스에 기고한 글이다. 스포티파이, 판도라, 유투브, 애플 뮤직 등 스트리밍 서비스가 음악 산업의 핵심부문으로 자리잡아가고 있는 상황에서, 그 자신이 음악가이자 레이블 소유자이기도 한 Byrne은 스트리밍 서비스의 계약과정에서 소외되고 있는 음악가들의 입장을 대변하고 있다.

얼마 전 Taylor Swift가 애플 뮤직과의 지상 논쟁을 통해 음악가들에게 불공정한 것으로 보이는 처사를 취소하게 했던 해프닝도 있었던 바, 음악가들에게 있어 스트리밍 서비스의 현재와 앞날은 초미의 관심사가 된지 오래다. 그리고 Byrne은 Taylor Swift의 항의에 한발 더 나아가 스트리밍 서비스 업체와 레이블 – 특히 메이저 레이블 – 간에만 비밀스럽게 진행되는 계약에 대한 – Byrne은 이 계약을 “블랙박스”라 칭하고 있다 – 투명한 공개를 요구하고 있다.

David Byrne by Ron Baker.jpg
David Byrne by Ron Baker” by Ron Baker – http://www.flickr.com/photos/kingsnake/2948571996/in/faves-24788065@N02/. Licensed under CC BY-SA 2.0 via Commons.

David Byrne이 기타 연주하는 모습

스스로가 레이블 소유자인 Byrne이 애플 뮤직이나 배급사 등으로부터 스트리밍 서비스에 대한 여하한의 정보를 얻어내지 못했다는 것이 사실이라면 지금 이 시장은 철저한 과점 시장이다. 그 과점 업체는 상위 3위의 레이블인 Sony, 유니버설, 그리고 Warner다. 이들 3개 업체는 Byrne이 짐작하길 서비스에 대한 선금과 주식 등을 배정받아 이미 서비스 업체와의 특수 관계가 되었고 음악가는 물론이고 독립적인 레이블들을 계약 과정에서 배제시키고 있다.

요컨대 스트리밍 서비스는 ▲ 음악소비 행태를 바꿔놓았고 ▲ 레이블은 더 이상 CD와 같은 물리적 상품을 이전처럼 대규모로 생산하지 않아도 되었는데 ▲ 그럼에도 이들의 저작권에 대한 대가는 이전과 같은 비중 혹은 비밀스러운 계약과정을 통한 더 많은 이익을 독점하고 있다는 것이 Byrne의 관찰기다. 다시 말해 제조업에서 유통업으로 바뀐 음악 산업에서, 자본은 저작권이라는 고정자본을 마모시키지 않으면서도 잉여가치를 계속 착취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음악이 산업화되어온 역사를 거칠게 보자면 초기에는 일종의 서비스업이자 유통업으로써 공연을 하는 생산자가 수입의 대부분을 갖는 형태였을 것이다. 근대에 이르기까지 상류층이 소비하는 고전음악의 생산자는 왕족이나 귀족의 후원이나 보수, 악보 판매 등의 수입으로 살아갔다. 현대로 접어들며 LP의 대량생산 시대부터 생산자는 레이블에 속해 이익을 공유했다. 그리고 이제 음악 산업이 제조업에서 유통업으로 회귀하며 생산자는 은밀한 거래에서 소외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