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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ook Shar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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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끔 보면 데뷔앨범이라고는 해도 신인답지 않게 너무 매끈하게 잘 뽑혀 나온, 여유 만만한 데뷔앨범을 종종 만날 수 있다. 예를 들면 The Stone Roses의 셀프타이틀 데뷔앨범이 그랬고 지금 소개하는 Joe Jackson의 데뷔앨범 Look Sharp!(1979)도 그런 데뷔앨범이다. 물론 서구 뮤지션들은 싱글 발매나 라이브를 통해 오랜 습작기간을 거쳐 정식 LP를 내놓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그런 데뷔앨범이 나온다 해서 별로 이상할 것은 없지만, 아무래도 뭔가 풋풋한 그런 데뷔앨범의 맛은 없다는 단점(?)도 있다. 그런 풋풋함을 느낄 수 있는 데뷔앨범을 들자면 Duran Duran의 데뷔앨범이 그랬고, 의외로 Bob Dylan의 데뷔앨범도 그렇다.

앨범을 플레이하면 첫 곡 One More Time부터 일찌감치 – 앨범 수록곡 모두가 그러하듯 – 이 한곡에 록, 스카, 펑크, 뉴웨이브가 자연스럽게 화학적으로 융화되어 있음을 느낄 수 있다. 어긋한 애정관계를 노래한 첫 곡에 이은 Sunday Papers는 소란스러운 영국 언론에 대한 Joe Jackson의 냉소를 읽을 수 있다. 다음 곡 Is She Really Going Out With Him?은 제목에서 싱글로 발매되어 가장 큰 성공을 거둔 작품이다. 흥미롭게도 앞서 언급한 세 곡은 모두 싱글로 발매되었는데, 발매 순서는 앨범 수록곡 순서와 반대다.

이외에도 앨범에는 이 세곡의 음악적 깊이와 거의 대등한 곡들로 – 오리지널 CD는 총 11곡 – 채워져 있다. 앞서 암시했듯 Joe Jackson은 이미 데뷔앨범 이전부터 자신만의 밴드를 이끌고 공연을 하며 수입을 얻고 있었는데, 이 앨범은 거기에서 마련된 돈으로 만들어졌다. 하지만 처음 세 싱글과 앨범이 나왔을 때만 해도 반응은 미지근했다. 전기가 마련된 것은 Is She Really 싱글이 재발매 되었을 때다. 싱글이 차트에 올랐고 앨범도 덩달아 인기를 얻게 되었다. 앨범은 오히려 본국에서보다 미국에서 더 높은 순위에 올라갔다.

Crocodiles

An album cover showing four men amongst some trees at night. In the top left-hand corner of the cover is the band's name and the album's name is in the top-right corner, both are in yellow text.
Echo & the Bunnymen Crocodiles” by Source. Licensed under Fair use of copyrighted material in the context of Crocodiles (album)“>Fair use via Wikipedia.

Crocodiles는 영국의 포스트펑크 밴드 Echo & the Bunnymen의 데뷔앨범이다. 1978년 리드 싱어 Ian McCulloch를 중심으로 결성된 이 밴드는 “The Pictures on My Wall”을 데뷔 싱글로 내는 등의 음악활동을 하다가 1980년 6월 그들의 데뷔앨범 작업을 위해 스튜디오로 들어가 불과 3주 만에 녹음을 끝냈다. 밴드의 매니저 Bill Drummond와 The Teardrop Explodes의 키보드 주자였던 David Balfe가 프로듀스한 이 작품은1 영국에서는 1980년 7월 18일에, 미국에서는 같은 해 12월 17일에 발매되었고 영국 차트 17위까지 오르는 성적을 거두었다. “Pictures on My Wall”과 “Rescue“가 싱글로 발매되었다.

음악은 전반적으로 어둡고 음울하다. 영국의 음악잡지 NME는 McCulloch의 가사가 “슬픔, 분노, 체념이라는 주제로 흩뿌려져 있고, 주제가 격렬한 동물/性的 이미지로 보강되었다”라고 평했다. 실제로 McCulloch는 “Pride”에서 “엄마가 말하길, 누나가 말하길, ‘널 비웃어도 되겠지?’”라고 읊조리는가 하면, “Stars Are Stars”에서는 “넌 하늘로 침을 뱉는다. 왜냐하면 그건 비어있고 공허하기 때문이지”라고 노래한다. 이런 체념적인 태도는 McCulloch의 가녀리게 떨리는 보컬 때문에 그 불안한 기운이 더해진다. 앨범 커버마저 우울한 기분을 자아내게 하는 이 앨범은 Joy Division 으로 대표되는 포스터 펑크의 문법에 완벽하게 조응하는 셈이다.

앞서 언급했듯이 앨범 발매 이전에 “Pictures on My Wall”이 그들의 최초의 싱글로 먼저 발매되었고 “Rescue”도 5월 5일 발매되었다. 이 곡은 영국 싱글 차트 62위에 올라 밴드 최초의 히트곡이 되었다.

  1. 다만 싱글 Rescure는 Ian Broudie가 프로듀스했다

Clos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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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oy Division Closer” by Source. Licensed under Fair use of copyrighted material in the context of Closer (Joy Division album)“>Fair use via Wikipedia.

Closer는 영국의 포스트펑크 밴드 Joy Division의 두 번째이자 마지막으로 발매된 스튜디오 앨범이다. 1980년 7월 18일 레코드 레이블 Factory를 통해 발매된 이 앨범은 리드 싱어 Ian Curtis가 자살로 생을 마친 두 달 후에 발매되어 그의 유작이 되었다.(그의 삶과 죽음은 Anton Corbijn의 영화 Control을 통해 재조명되기도 했다) 유명한 앨범 재킷은 Martyn Atkins와 Peter Saville이 맡았다. 사진은 Bernard Pierre Wolff의 작품으로 이탈리아 제노아에 있는 한 가족 묘지를 찍은 사진이다. 묘지 사진을 쓰자는 아이디어는 Peter Saville의 아이디어로 Ian의 죽음을 전해들은 Peter가 그의 죽음을 기리고자 낸 아이디어였다고 한다. Martin Hannett이 프로듀스한 이 앨범은 오프닝 트랙의 제목이기도 한 J.G. Ballard의 소설 The Atrocity Exhibition의 영향을 받은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하지만 Ian은 사실 그 소설을 읽기 전에 이미 대부분 곡의 가사를 다 썼다고 한다. 어쨌든 이 앨범은 그룹의 짧은 경력에도 불구하고 그들을 대중음악의 역사에서 지워질 수 없는 존재로 만들어준 걸작 앨범이 되었다. 한 평론가가 “고딕락의 어둠의 일격(dark strokes of gothic rock)”이라고 표현한 이 앨범은 이후 고딕락, 이모(emo), 인디 뮤지션들에게 수많은 영감을 주는 앨범으로 남게 되었다. 12인치 LP로 발매된 앨범은 영국 앨범 차트 6위까지 올랐고 호주에서는 4주간 1위에 머물렀다.

Songs of the Fre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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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ofsotf” by The cover art can be obtained from Warner Bros... Licensed under Fair use of copyrighted material in the context of Songs of the Free“>Fair use via Wikipedia.

Songs of the Free는 포스트펑크 운동을 주도한 것으로 인정받는 영국 리즈(Leeds) 출신의 밴드 Gang of Four1의 세 번째 스튜디오 앨범이다. 1982년 발매된 이 앨범의 곡은 그룹의 핵심 멤버인 기타리스트 Andy Gill과 싱어 Jon King이 만들었고 프로듀스에는 이들 이외에 Mike Howlett이 가세했다. 앨범에서는 Jon King의 강렬한 샤우트 창법이 인상적인 “I Love a Man in a Uniform“이 같은 해 싱글로 발매되어 인기를 끌었다. 이 곡은 영국 싱글 차트에서는 65위, 빌보드 클럽플레이 싱글스에서는 27위에 올랐다. 이 곡은 Call Me Up과 함께 앨범에서 가장 두드러진 곡이다. 앨범은 빌보드 팝앨범스 차트에 175위까지 올랐다. Infinite Zero Archive/American Recordings 레이블이 1996년 이 앨범을 2개의 보너스 트랙과 함께 CD로 발매했다. 이 앨범은 순서가 약간 바뀌었고2 “I Love a Man in a Uniform”을 “I Love a Man in Uniform”이라고 잘못 표기했다. EMI는 2008년 CD를 재발매했는데 원래 앨범의 순서를 지켰고 보너스 트랙은 뺐다. 피치포크 미디어는 이 앨범은 1980년대 가장 위대한 앨범 중 99위에 선정했다.

Side one
1.”Call Me Up” – 3:35
2.”I Love a Man in a Uniform” – 4:06
3.”Muscle for Brains” – 3:17
4.”It Is Not Enough” – 3:27
5.”Life! It’s a Shame” – 5:06
Side two
1.”I Will Be a Good Boy” – 3:52
2.”The History of the World” – 4:40
3.”We Live as We Dream, Alone” – 3:37
4.”Of the Instant” – 4:58
1996 bonus tracks
1.”The World at Fault” – 3:38
2.”I Love a Man in a Uniform (dub)” – 4:48

  1. 밴드의 이름은 잘 알려진 중국의 四人幇에서 따왔다.
  2. “Muscle for Brains”와 “We Live as We Dream, Alone”의 순서를 바꾸었다

Fall, Th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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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fall1984” by Original uploader was Kekslover at en.wikipedia – Transferred from en.wikipedia. Licensed under CC BY-SA 3.0 via Wikimedia Commons.

1977년, 알베르 까뮈의 소설 제목에서 힌트를 얻은 이름으로 맨체스터에서 결성되고 1979년 첫 앨범을 낸 이래 작년인 2011년까지 정규 스튜디오앨범만도 29장을 발표한 엄청난 장수그룹이다. 포스트펑크 밴드가 이토록 생명력이 긴 사례는 아마 극히 희귀할 것이다. 밴드라고는 해도 사실은 Mark E. Smith의 개인 프로젝트라 해도 과언이 아닐 것 같다. 그의 껄렁하게 읊조리는 것 같은 – 일종의 백인 랩이라고 해야 할까? – 스타일의 보컬이 밴드의 음악의 색깔을 결정하는데 너무나 선명하고, 실제로 그 외에는 멤버들이 계속하여 교체되었기 때문이다. 그룹은 몇 개의 히트곡이 있긴 하지만 활동 기간 내내 사실상의 컬트밴드라 할 수 있다.

Discography(Studio Albums)
Live at the Witch Trials (1979)
Dragnet (1979)
Grotesque (After the Gramme) (1980)
Slates (1981)
Hex Enduction Hour (1982)
Room to Live (Undilutable Slang Truth!) (1982)
Perverted by Language (1983)
The Wonderful and Frightening World of The Fall (1984)
This Nation’s Saving Grace (1985)
Bend Sinister (1986)
The Frenz Experiment (1988)
I Am Kurious Oranj (1988)
Extricate (1990)
Shift-Work (1991)
Code: Selfish (1992)
The Infotainment Scan (1993)
Middle Class Revolt (1994)
Cerebral Caustic (1995)
The Light User Syndrome (1996)
Levitate (1997)
The Marshall Suite (1999)
The Unutterable (2000)
Are You Are Missing Winner (2001)
The Real New Fall LP (Formerly Country on the Click) (2003)
Fall Heads Roll (2005)
Reformation Post TLC (2007)
Imperial Wax Solvent (2008)
Your Future Our Clutter (2010)
Ersatz GB (2011)

Links
페이스북의 Mark E. Smith 페이지
인터뷰
2011년 새 앨범을 발표할 즈음의 뉴요커의 소개글
2011년 새 앨범을 발표할 즈음, Mark E. Smith를 만나 인터뷰한 인디펜던트의 글

XT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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XTC bandphoto” by Jean-Luc Ourlin – http://www.flickr.com/photos/jlacpo/5034883/. Licensed under CC BY-SA 2.0 via Wikimedia Commons.

매력적인 멜로디와 생명력이 깃든 포스트 펑크 (post punk)를 선사했던 XTC는 Talking Heads와 함께 “생각하는 사람들의 밴드”로 묶일수도 있었지만 두 그룹의 스타일은 비교할 수 없었다. 그룹은 70년대 후반과 80년대 초반에 영국에서 많은 인기를 얻었다. 멤버들은 대부분 영국 Swindon 지방의 노동자 계층으로 성장했는데 그곳에서는 목두들 정규교육을 팽개치고 팝 음악으로 경력을 쌓으려는 시도를 좋아했다.

Andy Patridge는 말타의 Mediterranean 섬에서 태어났지만 어렸을때 가족은 영국으로 이주했고 15살까지는 학교에 있었다. 그후 신문사에서 “Teaboy”로 일했고 일했고 그후에는 지방 기술대학에서 예술수업을 받았으며 남는 시간에는 집에서 혼자 기타를 배웠다. 거의 같은 시기에 Patridge와 같은 블럭에 살고있던 Colin Moulding은 우유배달 조합원, 일일노무자, 그리고 지방자치회에서 일하는 틈틈이 베이스 기타를 배우고 있었다. 드러머는 Terry Chambers로 정해졌는데 그는 15살때 독한 사과주를 너무 많이 마신 사건 때문에 학교를 뛰쳐 나왔다. 그 나이또래 아이들처럼 건설자재 상인이나 서판인쇄공 등의 여러가지 직업을 거쳐 일하면서도 음악적 성공에 대한 꿈을 갖고 있었다.

1976년 셋이 모여 XTC를 결성하기 이전에는 Star Park, The Helinum Kids, Skyscraper 그리고 Snakes 같은 다른 밴드에서 때로는 함께 때로는 떨어져서 연주를 했다. 그룹의 키보드 연주자로 Barry Andrews를 합류해 4인조로 활동했다. 1977년초, 그들은 Swindon 지역에서 지지기반 세력을 확보했다. 이러한 반응과 지방 비평가들이 쓴 호의적인 평론, 즉 열악한 10대 고용원들의 환경을 유머와 신랄한 비평을 조화시킨 밴드에 대한 칭찬에 힘입어 Patridge와 그의 친구들은 당시 펑크의 기세가 가득했던 영국으로 진출해야 될 때라고 느꼈다.

1977년 중반, Virgin Records와 계약을 맺고 10월에 데뷰싱글 “3 DEP”를 발표했고 이어서 79년에는 영국에서 Top 20 안에 든 “Making Plans For Nogel”을 비롯해 5곡의 싱글을 더 발표했다. 78년, Virgin Records는 밴드의 첫 앨범이자 2장의 영국식 앨범 White Music과 를 발매했고 둘 다 영국순위 Top 30을 기록했다.

밴드는 이 앨범들을 영국에서 시작해 일본, 호주, 뉴질랜드, 베네주엘라, 유럽대륙 드리고 종국에는 미국에까지 이어지는 거의 쉴틈없이 진행된 순회공연으로 홍보했다. 밴드가 미국에서 데뷔하게 된것은 1978년 새해전야에 Talking Heads가 참가하는 프로그램에서였다. 청중들의 반응은 79년 초에는 몇배로 늘어날 것이라는 전망을 하기에 충분한 것이었다. 또 레코드사에서는 그해말에 게획한 훨씬 야망있는 순회공연과 때를 맞춰 밴드의 미국시장 첫 앨범인 Drums And Wires가 나왔다. 그런일들이 있기전에 밴드는 Andrews가 탈퇴를 결심하자 재결성을 위해 잠시 Swindon에 돌아가야 했다. 그의 자리는 예전에 밴드와 함께 키보드를 연주했던 적이 있는 Dave Gregory가 넘겨받았다. 그의 전력은 Dean Gabber와 그의 Gabberdines에서 기타리스트와 키보디스트로 활동한 것을 꼽을수 있다.

새로운 결성도 여전히 영국 비평가들에게는 칭찬을 얻었다. New Musical Express에 기고한 Paul Morley는 “재치와 우아하고 다각적인 음악을 만드는… 그들의 음악은 새로운 형용사를 요구한다.” 라며 박차를 가하고 있는 밴드를 격려했다. Melody Maker의 John Orme는 Drums & Wire를 복합성, 대조, 풍부함 그리고 유머까지 XTC는 껍질을 부수고 새로운 땅을 개척했다.”라며 일컬으며 인상적인 작품이라고 했다. Patridge는 레코드사 약력에 이렇게 썼다. “난 환각의 시간에 대한 음악에 심취했고 그것을 마법이라 생각한다. 그것은 R&B에 마술을 섞은 종류의—이것이 진짜 우리가 하는 일이다… 난 사람들이 ‘오! 맙소사! 저게 뭐야?’라고 생각하는 음악을 좋아한다. XTC는 언제나 사람들이 ‘맙소사’ 라고 말하게 하고 그 모든것이 타당한 이유라고 본다.” 미국에서 가졌던 실황공연에 힘입어 앨범 Drums And Wires 는 밴드를 알고 있는 상당수의 미국 팬들을 확보했다. 뒤이은 걸작 Black Sea는 50위까지 올라갔다.

1981년 말이 되자 라이브를 계속 할 수 없는 몇가지 징조들이 밴드 멤버들 사이에 나타난다. Patridge의 경우에는 모든 종류의 군중들을 선천적으로 강하게 혐오하는 증세를 고치려고 애썼다. 밴드의 새앨범 English Settlement는 영국과 미국에서 동시 발매 됐는데 고향인 영국에서는 반응이 좋았으나 Black Sea가 얻었던 호응을 얻지 못했고, 아마도 그 이유를 공연홍보의 부족으로 여기는 듯했다. 1982년말, Terry Chambers는 활도의 빈곤함에 불만을 품고 호주의 새로운 목장을 찾아 그룹을 떠났다. 나머지 멤버들은 3인조로 활동할 것을 결정했다. 83년에 그들은 또다른 스튜디오 앨범을 제작하는데 어쿠스틱 연주가 강조된 것이었다. Murmur는 미국의 새로운 레이블인 Geffen Records에서 발매됐다. 앨범은 영국과 미국차트에 오르는데 그다지 많은 시간을 들이지 않았고 팬들 가운데에는 이전의 앨범에 비해 부드러눙 톤에 당혹해 할것이라는 의견도 있었다.

1984년 밴드는 새로운 스튜디오 앨범을 편집하기 위해 햇병아리 시절의 Hard-Blues를 다시 추구하기 시작했다. Patridge는 “우리의 새앨범과 더불어 저도 심기일전하고 싶었어요. 음악은 훨씬 흥겨운 기분이 들겁니다. Murmer의 가사는 저희집 뒤뜰크기에 대한 아주 작은 목표를 담고 있어요. 새앨범 The Big Express는 우리에게 다시 세상을 둘러보게 한 더욱 Hard한 앨벙입니다.”라고 말했다. 그 앨범은 1984년 10월 미국의 Geffen에서 발매 되었는데 이것은 흥미는 있었지만 골수팬들을 빼고는 구매자들의 구미를 다시 돋구진 못했다. (1985년 <25 O’Clock>은 영국에서만 발매되었다.) Geffen의 간부들은 밴드의 중요성을 레리블처럼 다수의 록팬들에게 인식시켜야 한다는 확신을 표명하고 1986년에 새로운 앨범 Skylarking을 발매했다. 영국밖에서 그룹의 문제점들이 크게 부각되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Patridge는 항상 낙천주의를 고수하고 있었다.

그는 Kristine McKenna(Los Angeles Times, 1982년 4월 4일자)와의 대담에서 이렇게 표현했다. “팝음악은 즐거움과 대학살로 가득합니다. 마이크를 구부리고 셔츠를 잘라 블라우스로 만들어 입죠. 우린 그런 행동은 하지 않았는데 우리가 특별히 잘 생기지 않거나 셔츠를 잘라 만든 블라우스 타입이 아니라서가 아니라 우리에게 다른 목표가 잇었기 때문입니다. 음악이 문명을 바꿀수는 없지만 희망을 줄 수 있다고 믿습니다. 아마 내가 고지식해서 그렇게 믿고 있는지도 모르겠습니다만 그것이 제가 바라는 일입니다.”

Punk 77.com

디스코그래피
White Music (1978)
Go2 (1978)
Drums And Wires (1979)
Black Sea (1980)
English Settlement (1982)
Mummer (1983)
The Big Express (1984)
Skylarking (1986)
Oranges And Lemons (1989)
Nosuch (1992)

링크
팬페이지
Weiv의 Skylarking Review
Lyrics
Italian Fan Page

They Might Be Giants

They Might Be Giants March 25th, 2005.jpg
They Might Be Giants March 25th, 2005” by Be3nOwn work. Licensed under CC BY-SA 3.0 via Wikimedia Commons.

전염성이 강한 멜로디에 기묘한 유머감각과 뉴욕 포스트펑크씬의 아방가르드 미학을 조합한 음악을 구사했던 They Might Be Giants는 ’80년대 말과 ’90년대 초 가장 예기치못했던 얼터너티브 밴드 성공스토리였다. 음악적으로 John Flansburgh와 John Linnell 듀오는 모든 것에서 그들의 음악적 아이디어를 차용하였다. 그러나 그들의 자유로운 절충주의는 그들의 불가사의하고 기괴한 유머감각에 의해 잘 버무려졌다. ’80년대 그들은 인디레이블에서의 싱글발표와 계속적인 투어를 통해 그들은 대학 캠퍼스에서 많은 추종자들을 거느렸다. ’90년대 메이져 레이블로 이적한 후 발표한 Flood는 MTV의 지원사격 등에 힘입어 골드앨범이 되는 등 상업적 성공가도를 달리게 된다. 이어 그들은 그런지가 도래하기 전까지 가장 성공적인 얼터너티브 밴드로 평가받게 된다. 그러나 그룹의 예측불가능한 행동으로 말미암아 ’90년대 중반에는 MTV를 뒤덮은 포스트그런지 그룹들과 모던락 래디오에서 외면당하는 결과로 이어지고 만다. 그리고 또다시 그들은 일종의 컬트로 남게 되었다.Flansburgh와 Linnell은 소년시절부터 친구였다. 고등학교 시절부터 노래를 쓰기 시작한 그들은 대학교에 들어간 후 본격적인 밴드생활을 시작하였다. 본격적인 음악적 경력의 무대를 부르클린으로 결정한 그들은 George C. Scott 주연의 영화에서 밴드의 이름을 차용하고 드럼머쉰을 이용하여 음악을 만들어내기 시작하였다. 그들은 곧 맨허튼 언더그라운드에서 실력자로 부상하였고 많은 팬들을 거느리게 되었다. 그러나 레코드 취입은 그리 만만치 않았기 때문에 이들은 앤써링머쉰에 노래를 녹음하는 방식을 시도하였고 이런 희한한 술수가 먹혀들어가 마침내 인디레이블인 Bar/None과 계약을 체결하게 되었다.1986년 별도의 이름이 붙지 않은 데뷔앨범을 발매하였는데 대학가 라디오에서 인기를 얻게 된다. 싱글 “Don’t Let’s Start”의 기발한 비데오도 MTV의 전파를 타기 시작했다. 2집 Lincoln에서는 “Ana Ng”가 컬리지 히트싱글이 되었고 앨범차트 89위까지 오르는 성공을 거두었다. 이로 인해 메이저레이블의 주목을 받은 TMBG는 마침내 1990년 Elektra와 계약을 맺고 그 해 말 Flood를 내놓았다. 이 앨범에서는 “Birdhouse in Your Soul” 과 “Istanbul (Not Constantinople)”가 크게 히트하여 마침내 골드앨범의 영광을 누리게된다. 1992년에 발매된 Apollo 18은 전작에 비해 덜 성공적이었다. 앨범의 써포트투어에서 TMBG는 처음으로 완전하게 갖춰진 백밴드를 쓴다. 이 밴드에는 Pere Ubu의 베이시스트였던 Tony Maimone와 드러머 Brian Doherty가 가세하였다. 그러나 때마침 얼터너티브락 씬에 몰아친 그런지락의 기세로 말미암아 TMBG는 언론과 MTV의 주목을 받는데 실패하였다. 이후에 발표된 일련의 앨범들 역시 주류의 외면을 받았지만 미국 대학 캠퍼스에서는 여전히 많은 컬트팬들이 지지를 보냈다.

디스코그래피
1986 They Might Be Giants Restless-Bar/N
1989 Lincoln Restless-Bar/N
1990 Flood Elektra
1992 Apollo 18 Elektra
1994 John Henry Elektra
1996 Factory Showroom Elektra
1998 Severe Tire Damage [live] Restless
1999 Live BMG Special
1999 Long Tall Weekend They Might Be
2001 Mink Car Restless
2001 Holidayland Restless

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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