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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peche Mod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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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ierecke dm“. Via Wikipedia.

인구 20만명에 극장이라고 하나 밖에 없던 변두리마을에서 데뷔앨범의 수록곡 대부분을 작곡한 빈스가 디페쉬모드를 나가겠다고 하자 주변사람들은 혹시 그룹이 깨지는 것은 아닐까 하는 염려를 했지만 그 는 “나보다 더 뛰어난 송라이터 마틴이 있으니 그런 걱정은 필요가 없다”고 우려를 잠재웠다.사실 그의 말대로 디페쉬 모드는 오늘날까지 건재하다. 빈스는 이후에 1982년 Yazoo를 결성하여 활동 하다가 1983년 다시 해산,1985년도에 오늘날의 Erasure란 그룹을 탄생시켜서 활동중에 있다.

앤디가 그룹을 탈퇴하고 나온후 디페쉬모드의 음악은 마틴의 독특한 작곡법으로 오늘날까지의 많은 히트를 거두어 왔다.디페쉬모드는 곧 새 키보드플레이어 앨런와일더(Alan Wilder)를 영입하여 다시금 진용을 갖춘다.당시만 해도 앨런와일더는 임시 멤버같은 처지였지만 이후 그가 리코일 (Recoil)이란 프로젝트 활동을 하기 위해 잠시 탈 퇴한 것을 빼면 최근까지 세 멤버들과 희노애락을 같이 해오게된다.

팝적인 단순미를 선호하는 빈스 클락의 취향과과는 현격히 차이를 보이는 앨런 와일더의 셈세한 감각은 1982년의 두번째 앨범’A broken Frame’과 다음해 발표한 세번째 앨범 ‘Construction Time Again’그리고 “People are People”의 세계적인 히트로 유명해진 앨범 ‘Some Great Reward'(review)에 이르기 까지 마틴 고어의 드라마틱한 작곡이나 데이빗 간의 깊고 어두운 목소리와 함께 신스 팝의 새로운 지 평을 얻었다.특히 ‘Some Great Reward’는 “People are People”외에도 “Blasphemouse Rumours”, “Master And Servant”등의 싱글들로 팬들로부터 많은 사랑을 받고 있는 앨범이기도 하다. 연이은 앨범들 즉 ‘Black Celebration’,’Music For The Masses’는 디페쉬 모드의 전성기를 장식한 작품들 이다.

1986년에 발표된’Black Celebration’은 그다지 상업적으로는 큰 성공을 거두지 못했지만 마치 한편의 멜로드라마와 같은 멋진 구성미를 갖추어 그들의 프로그레시브한 면을 두드러지게 보여주었다. 이듬해의 ”Music For The Masses’는 그때까지 가장 커다란 상업적 성과를 거둔 작품이었다. 초창기 앨범들의 곡을 썼던 빈스의 활발한 댄스음악적 스타일에 비해 마틴이 맡게 된 디페쉬 모드 의 사운드는 진지하고 엄숙해지기 시작했고 그것이 오늘날 디페쉬모드의 음악적 개성이 되었다.

80년대 중반까지 매년 1장씩 꾸준히 전개되었던 이들의 사운드는 나날이 발전해 가는 새로운 기종의 신서사이저 덕으로 보다 커진 스케일의 새로운 곡들을 포스트 모더니즘적인 표현법으로 선보여왔다. 이들의 계속되는 실험적인 전자사운드는 많은 비판과 사춘기 소년 소녀들을 노리는 음악으로까지 평가절하 되기도 하였는데 90년 초에 발표한 역작 ‘Violator’는 그런 이미지를 단번에 일축해 버렸다.

다니엘 밀러 대신 플러드(Flood)와 함께 제작했던 ‘Violator’에서는 “Policy Of Truth”, “Personal Jesus”, “Enjoy the Silence”, “World In My Eyes”등이 싱글로 사랑을 받았다. 예전의 작품들과는 전혀 색다른,세련되고 어두운 분위기와 뉴 웨이브 모델로 새로운 팬들을 끌어 들이기도 한 ‘Violator’의 세계적인 성공은 이후 1993년 발표한’Songs of Faith & Devotion’ 을 발매 첫주 빌보드 차트의 정상에 올려놓는데 큰 공헌을 하였다.”I Feel You”, “Walking In My Shoes”,”In Your Room”등의 메가 히트로 ‘Songs Of Faith & Devotion’은 비틀즈의 첫번째 앤솔로지 앨범이 나오기 이전까지 1993년 유일하게 미국 차트에서 넘버원을 기록한 영국앨범이었다.

그러나 커다란 성공뒤에 그들은 몇가지 위기를 겪게 되는데, 1993년에서 다음해로 이어지는 ‘Devotion Tour’로 고어와 플레처는 지칠대로 지쳤고 임시 멤버로 들어와 눌러앉아서는 그들과 13년간 이나 함께 생활해 온 앨런 와일더는 탈퇴를 선언했다. 데이빗 간 역시 정서적으로 문제가 심각해져서 자해를 하거나 약물과다복용으로 경찰에 연행되는 등 안좋은 일들은 연달아 일어난다라는 속설을 입증이라도 하듯 악재가 이어졌다.

불행 중 다행으로 1996년 데이빗 간이 약물에서 벗어났다는 공식적인 발표와 함께 그들은 새앨범에 대한 소식을 전했다. 통산 12번째 앨범인 ‘Ultra’는 4년간의 스튜 디오 작업의 결과물이다. 프로듀서는 또한번 바뀌 었는데, 수년간 디페쉬 모드의 곡들을 리믹스해왔던 밤 더 베이스(BAMB THE BASS)의 배후세력 팀 심논(Tim Simenon)이 바로 그이다. 힙합 리듬을 차용하여 또 한번 새로운 모습을 보여주는 첫 싱 글 “Barrel Of A Gun”에서 특히 팀의 역량은 십분 드러난다. 기발매된 이 싱글의 리믹스들 중 두개는 언더월드(UNDERWORLD)에 의해 만들어지기도했다.사근사근한 댄스 비트에 드라마를 싣고 있는 “It’s No Good”이나, 신비로운 흐름을 가진 “Uselink” 와 “Useless” 의 연결, 그리고 페달 스틸 기타가 한껏 애수를 느끼게 하는 “The Bottom Line”, “Home”, “Free- state”, “Insight”등 지금까지 토탈3천만장 이상의 앨범 판매고를 기록한 베테랑답게 이번 앨범에서도 그들은 그 어둡고 깊은 아름다움을 자유롭게 펼쳐내고 있다.

이들의 히트곡들은 영국을 비롯한 유럽의 인기있는 수많은 그룹들에 의해서 다시 리메이크되어서 Tribute Album형태로 나오기도 했는 데 이앨범에 참가한 그룹들을 보면,Smashing Pumpkins,The Cure,Rammstein등의 소위 잘나가고 있는 쟁쟁한 그룹들이 참가하였고 인터뷰에서도 DM의 영향을 받았음을 인정하고 있다. 한편 98년10월에 이들의 3번째 베스트 앨범격이 되는 ’86-98 싱글베스트’ 앨범을 내놓고 다시 새 로운 관심을 불러모으고 있다. 최근발표한 이 베스트 앨범에선 그야말로 히트중의 히트곡만을 모아 놓은듯하며 여태까지 DM의 앨범을 단 한장도 갖고 있지 않더라도 이앨범 한장이면 충분할것으로 보 일만큼 팬들에게 만족스런 앨범이 될것이다.

2001년 Exciter와 함께 돌아온 그들이 이제는 어느새 거장의 소리를 듣는 위치에 올라섰다는 것을 아무도 부정할 수 없게 되었다.

디스코그래피
1981 Speak and Spell Sire
1982 A Broken Frame Sire
1983 Construction Time Again Sire
1984 People Are People [US] Sire
1984 Some Great Reward Sire
1986 Black Celebration Sire
1987 Music for the Masses Sire
1990 Violator Sire
1991 We Just Can’t Get Enough [live] MTT
1993 Songs of Faith & Devotion Sire
1993 Songs of Faith & Devotion Live Sire
1995 Depeche Mode Mute
1997 Ultra Reprise
1998 Speak & Spell [Germany] EMI
2001 Exciter Warner
2005 Playing The Angel Sire/Reprise/Mute
2006 Touring the Angel: Live in Milan [CD/DVD] Reprise / Wea
A Broken Frame [10 Tracks] Mute
2009 Sounds of the Universe Capito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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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uran Dur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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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uran Duran 2011” by Jason PersseFlickr: Duran Duran. Licensed under CC BY-SA 2.0 via Wikimedia Commons.

’60년대의 컬트 공상과학 영화 Barbarella에서 밴드의 이름을 따온 Duran Duran은 일련의 감각적인 synth-pop 스타일의 음악과 비주얼한 이미지, 그리고 많은 공을 들인 뮤직비디오 – MTV의 취향에 더없이 잘 매치되는 – 를 이용해 ’80년대 세계적인 명성을 쌓은 영국 밴드이다. 좋은 의미에서 이들은 뮤직비디오의 덕을 톡톡히 본 밴드인데 그들의 패션모델을 연상시키는 수려한 외모와 이국적인 무대를 배경으로 하는 그들의 뮤직비디오가 없었더라면 그들의 pop-funk – 소위 Sex Pistols와 Chic의 조우라고 일컫어졌던 – 는 그토록 큰 성공을 거두지 못했을 것이다. 밴드의 오리지날 라인업은 보컬 Simon Le Bon (1958년 10월 27일생), 키보드 Nick Rhodes (본명 Nicholas James Bates, 1962년 6월 8일생), 키타 Andy Taylor (1961년 2월 16일생), 베이스 John Taylor (본명 Nigel John Taylor, 1960년 6월 20일생), 그리고 드럼 Roger Taylor (1960년 4월 26일생)으로 구성되었다.

1978년 Rhodes와 John Taylor에 의해 구성된 초기 라인업에는 베이스와 클라리넷을 맡은 Simon Colley, 보컬 Stephen ‘Tin Tin’ Duffy (1960년 5월 30일생), 보컬 Andy Wickett, 키타 Alan Curtis (guitar), 그리고 Jeff Thompson 등이 참여했었다. 그들은 버밍햄에 있는 The Rum Runner라는 클럽 – 이 클럽의 주인 Michael Berrow와 Paul Berrow는 그룹의 첫 매니저이기도 했다 – 에서 수습기간을 마친후 1980년 후반 Hazel O’Connor와 함께 순회공연을 치뤘고 곧 EMI와 계약을 체결하였다.

New Romantic의 선두주자로써 그들은 이듬해 데뷔싱글 “Planet Earth”와 “Careless Memories”를 영국 차트에 올려놓는 성공을 만끽하였다. 이어진 싱글 “Girls On Film”은 누드모델을 등장시킨 무척이나 야한 비디오 등의 지원을 받아 밴드 활동중 처음으로 영국 차트 5위안에 드는 괴력을 과시했다. 곧이어 “‘Hungry Like The Wolf”, “Save A Prayer”, “Rio” 등이 연속적으로 발매되었다. 1983년까지 그들은 미국차트에 세번 진입하면서 미국시장에 초석을 다졌다. “Is There Something I Should Know?”라는 캐치한 노래가 영국 차트 1위에 오를 즈음 그들은 탄탄한 팬층을 다지게 된다.

이제 Duran Duran은 의심할바없이 영국 최고의 틴아이돌로 자리잡게 되었다. 이후 “Union Of The Snake”, “New Moon On Monday”, “The Reflex” (영미차트 1위), “The Wild Boys”, “A View To A Kill” 등이 영미 대륙을 아우르며 전세계적으로 인기를 얻었다. 이러한 정상의 인기속에서 그들은 돌연 또다른 프로젝트 – Power Station과 Arcadia – 를 추진하기 시작하였다. 그 와중에 Le Bon은 ’86년 요트 사고로 거의 죽을 뻔 하여 전세계 틴에이저들의 가슴을 애태우기도 했다.

Roger Taylor와 Andy Taylor를 빼놓은채 Nile Rodgers의 프로듀싱으로 녹음된 Notorious는 타이틀트랙 “Notorious”가 크게 히트하는 등 그들의 변함없는 인기를 확인하는 앨범이 되었지만 상당수의 오리지날 팬들이 그들 곁을 떠난 상태였다. 이어진 싱글 “Skin Trade”와 “Meet El Presidente”는 빼어난 세련미에도 불구하고 영미차트 공히 탑20 진입에 실패하였다. 남은 셋은 밴드활동을 지속하였으나 그룹의 미래는 그리 밝지 못하였다.

1989년 6월 Notorious에서부터 참여하여 왔던 키타리스트 Warren Cuccurullo (Missing Persons의 멤버였던)과 Sterling Campbell이 그룹의 정식 멤버가 되었다. Sterling은 2년후 Cyndi Lauper와 David Bowie 등과의 작업을 위해 그룹을 떠났다.

1993년 “Ordinary World”가 발표되자 그룹은 또다시 조명을 받게 된다. 이어진 싱글 “Come Undone”은 미국 차트 7위까지 오르는 인기를 얻었다. 또한 일련의 작품들로 그들은 비평가들로부터도 기존의 편향된 인식을 바꾸는 계기를 만드는 등 제2의 전성기를 구가하게 된다. 1995년 밴드의 음악에 영향을 준 선배 아티스트들의 노래를 커버한 Thank You가 발매되었다. 2년후 John이 그룹을 떠났고 Le Bon과 Rhodes는 Cucuurullo와 함께 계속 작업을 해나갔다. 이 즈음 밴드의 EMI와의 계약은 만료가 되었고 레코드사는 ’80년대 음악의 리바이벌 붐과 함께 그들의 히트곡 모음집이 인기리에 팔려나갔음에도 불구하고 영국에서의 새앨범(Medazzaland)의 발매를 거부하였다. Pop Trash가 Hollywood 레이블에서 발매되었고 Le Bon과 Rhodes는 이 앨범에서 오늘의 그들이 있게 해준 팝튠을 의도적으로 벗어나고자 하였다.

21세기가 시작된 2001년 예전의 다섯 멤버들이 다시 뭉쳐 새앨범을 작업하고 있어 그들의 새로운 시대를 예고하고 있다.

디스코그래피
1981 Duran Duran Capitol
1982 Rio Capitol
1983 Seven and the Ragged Tiger Capitol
1984 Arena [live] Capitol
1986 Notorious Capitol
1988 Big Thing Capitol
1990 Liberty Capitol
1993 Wedding Album [Japan] Alex
1993 Duran Duran [The Wedding Album] Capitol
1995 Thank You Capitol
1997 Medazzaland Capitol
2000 Pop Trash Hollywood
2000 Playing with Uranium, Vol. 1 Edel Germany
2000 Playing with Uranium, Vol. 2 Edel Germany
2001 Last Day on Earth Avex Japan
2004 Astronaut Epic
2007 Red Carpet Massacre
2011 All You Need Is Now
2012 A Diamond in the Mind: Live 2011
2015 Paper Gods

관련링크

official website
http://www.duran2.net/

Dream Academ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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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Dream Academy” by http://www.geocities.com//patmil007/aprill849.JPG, Copyright : Warner Music UK, Ltd., 1991. Licensed under Fair use of copyrighted material in the context of The Dream Academy“>Fair use via Wikipedia.

Dream Academy는 Psychedelic Revival Movement의 선봉에 섰던 영국 팝트리오이다. 트리오의 멤버 Gilbert Gabriel, Kate St. John, 그리고 Nick Laird-Clowes는 60년대에 아직 어린 아이들이었다. 1950년대 후반 런던에서 태어난 이들은 아마도 Woodstock에 관심을 기울이기에는 너무 어린 나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이들은 그들의 음악에 JFK, The Beatles 등 60년대의 풍경을 충실히 담아내려 했다. 밴드의 꿈꾸는 듯한 스타일과 오케스트라를 동원한 음악은 80년대 Synth-Pop 씬에서는 좀처럼 찾아볼 수 없던 시도였다. Kate St. John은 오보에와 섹쓰폰을 맡았는데 밴드의 음악에 필수적인 요소였다. 60년대에 대한 모티브는 그들의 외모에서도 발견할 수 있는데 네루 컬러(Nehru Collar : 칼라가 크고 긴 60년대 스타일), 자유롭게 풀어헤친 긴머리 등에서 이러한 흔적을 찾아볼 수 있다. 그리고 이러한 60년대로의 향수의 하이라이트는 그룹의 앨범을 공동 프로듀스한 David Gilmour(Pink Floyd)이라는 사실이다. 1985년 발표한 데뷔앨범에서는 운치있는 싱글 Life in a Northern Town이 크게 히트하였다. 이들의 이어진 싱글 The Love Parade는 프렌취팝을 연상시키는 깔끔한 수작임에도 불구하고 관심을 끄는데 실패했다.

디스코그래피
1985 The Dream Academy Reprise
1987 Remembrance Days Reprise
1990 A Different Kind of Weather Repris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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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an Page

Dooleys, The

The Best of The Dooleys.jpg
The Best of The Dooleys” by The cover art can be obtained from GTO Records.. Licensed under Fair use of copyrighted material in the context of The Best of The Dooleys“>Fair use via Wikipedia.

미국에서는 “BEEGEES” 를 필두로 마이클잭슨을 중심으로한 “JACKSONS” , 스웨덴에서는 “ABBA” , 영국에서는 “THE DOOLEYS” 와 “NOLANS” 등 가족으로 구성된 크고 작은 그룹들이 70~80년대 초반에 세계팝송계의 지도를 수놓고 있었는데, 그중에서도 “JACKSONS”와 “THE DOOLEYS” 등은 대가족으로 구성된 보기드문 그룹이다.특히 어린이부터 어른까지 온가족이 다같이 즐길수있는 소박하고 품위있는 영국출신의 그룹 “THE DOOLEYS”는 우리와는 너무도 친근한 8명(8명중 6명이 친남매간이고 , 1명이 의형제간)으로 구성된 음악가족이다. 음악을 좋아하는 양친 밑에서 자라난 “THE DOOLEYS”는 어릴때부터 음악가가 되기를 희망하였고 1974년부터는 본격적인 스테이지에서 활약하였다.이들의 음악은 듣기에 부담이 없이 편한 스타일이고 대중적이며 한국인들의 정서에 맞을만한 그런 노래들을 많이 불렀다…. 1976년에는 영국 아티스트로는 처음으로 동독과 소련을 여행하여 30여만명의 관객을 동원하였다. 1977년에 [GTO]레코드사와 계약하여 데뷔작으로 “THINK I’M GONNA FALL IN LOVE WITH YOU” 를 발표, 짧은 기간에 영국인기챠트 20위에 올랐으며, 계속 다섯곡의 싱글 히트곡을 내어 스타로서의 지위를 굳혔다.1979년엔 드디어 앨범 “THINK I’M GONNA FALL IN LOVE WITH YOU” 로 골드 디스크를 획득하였다. 이 첫앨범외에 우리에게 잘알려진 “BODY LANGUAGE” 가 두번째 앨범이고 “THE POP FANTASIA” 가 세번째 앨범이다. 이들의 곡중 [WANTED], [BODY LANGUAGE], [I SPY], [WHISPERS] 등의 곡들은 국내 팬들에게도 많은 사랑을 받았었던 노래들이다.

디스코그래피
Dooleys –
Tracks:- Love of my life/Absolutely wild over you/Don’t let me be the last to know/A rose has to die/Better off without you/Hands across the ocean/Think I’m gonna fall in love with you/Stone walls/What’s gonna happen to our love?/You make my heart beat faster/Forever/Don’t take it lyin’ down
Full House –
Tracks:- Love patrol/Growing pains/Let’s make believe/Operator/Don’t turn the feeling down/You bring out the best in me/One kiss away/I spy/Body language/Chosen few/Whispers/Don’t cry for me Argentina/now that the party is over/Love/Meet me halfway/In a riddle

The Chosen Few –
Tracks:- The Chosen few/Whispers/One kiss away/Don’t turn the feeling down/If I didn’t know you better/Love/Growing pains/You bring out the best in me/Let’s make believe/Wanted/Now that the party is over

The Best of The Dooleys –
Tracks:- Wanted/Love of my life/A rose has to die/Hands across the sea/Stand up like a man/Sad old Spanish guitar/Think I’m gonna fall in love with you/Honey I’m lost/Don’t take it lyin’ down/What’s gonna happen to our love?/Stone walls/Don’t let me be the last to know

Secrets –
Tracks:- And I wish/The Dancer/Tip of my tongue/What you got?/Love trap/Love me, love me do/Tokyo feeling/One way loving/In real life/Sooner or later/Will we still be dancing?/Secrets

In Car Stereo – 1985
Tracks:- Put me on ice/Flavour of the month/In car stereo/I don’t want you hanging round no more/Casualty/Can’t dance/Wherever you’re going (others – lost album at time of writing!)

Greatest Hits (same as Best of but on the spot budget label and new cover)
Tracks:- Wanted/Love of my life/A rose has to die/Honey I’m lost/Stand up like a man/What’s gonna happen to our love?/Think I’m gonna fall in love with you/Hands across the sea/Don’t take it lyin’ down/Sad old Spanish guitar/Stone walls/Don’t let me be the last to know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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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olby, Thomas

Thomas Dolby at TED.jpg
Thomas Dolby at TED” by Erik Charlton from Menlo Park, USA – Blinded by Science. Licensed under CC BY 2.0 via Wikimedia Commons.

Thomas Dolby는 70년대 말 독일의 Kraftwerk로 시작되어 80년대 들어 절정을 이루었던 일렉트릭 사운드로 일약 세계적인 스타덤에 오른 이집트 출신 아티스트이다. 레코딩 엔지니어로서 그리고 신서사이저 주자, 작편곡자로서 명성을 날리던 그는 1983년 She Blinded Me With Science, Europa And The Private Twins를 연속적으로 히트시키면서 화려한 데뷔를 장식, 이듬해인 1984년 Hyperactive를 히트시키면서 아티스토서의 기반을 다진 가수이다.

영국인 고고학자를 아버지로 둔 그는 유럽 각지를 여행하며 유년 시절을 보내다가 1970년대 중반 영국의 조그만 보아 레스트로아에서 재즈 피아노를 치면서 음악생활을 시작하게 되었는데 1977년에서 1980년까지 영국의 펑크 뉴웨이브 밴드들의 투어에 동참하여 키보드를 연주하는 한편, 싸운드 엔지니어로서의 캐리어도 쌓았다.

1981년 자신의 레이블인 Venice In Peril Records를 설립하여 솔로로서의 활동을 시작하였다. 첫싱글 Urges/Leipzing을 발매하여 평론가들의 관심을 끈 돌비는 포리너의 앨범 4와 Joan Amatrading의 Walk Inder Ladders에서 신서사이저 연주를 맡아 호평을 받았다. 그리고 1983년 마침내 그의 데뷔앨범 The Golden Age Of Wireless를 발표하기에 이르렀다.

하워드존스와 함께 원맨밴드의 시초라 불릴만한 그의 싸운드는 신서사이저, 컴퓨터 뮤직으로 대변되는 80년대 초반 일렉트로닉 뮤직의 과학적인 낭만주의에 그 기반을 두고 있다. 이러한 그의 음악은 이후 소위 테크노 싸운드로의 발전에 많은 영향을 미쳤다. 또한 약간은 우스꽝스러운 그의 헤어스타일과 건반악기를 걸머진채 무대를 뛰어다니던 그의 무대 매너 역시 80년대식 미래파의 자화상이라 할 수 있다.

디스코그래피
1983 The Golden Age of Wireless (Capitol)
1984 The Flat Earth (Capitol)
1987 Gothic Soundtrack (Virgin)
1988 Aliens Ate My Buick (EMI-Manhattan)
1992 Astronauts & Heretics (Giant)
1994 Gate to the Mind’s Eye (Giant)
1999 Hyperactive [EMI] (EMI)
1999 Hyperactive [Disky] (Disky)

Dire Straits

70년대 후반, 후기 펑크시대에 등장했지만, 펑크음악과 거리가 먼 펍 록(pub rock)에 기초를 두고 심지어 멜랑꼴리한 느낌마저 주는 영국 그룹 다이어 스트레이츠(Dire Straits)는 주류에 휩쓸리지 않고 자신들만의 음악을 고수해 온 것으로 잘 알려져 있다. 보컬리스트이자 기타리스트인 마크 노플러(Mark Knopfler)가 이끄는 다이어 스트레이츠는 제이제이 케일(J. J. Cale)의 블루스 록에 기반을 둔 사운드를 구사했고, 때때로 재즈와 컨트리 음악, 심지어 프로그레시브 록의 서사적인 구조도 답습했다.

1977년에 마크 노플러와 데이비드 노플러(David Knopfler, 기타) 형제가 주축이 되어 마크의 친구 존 일슬리(John Illsley, 베이스)와 함께 그룹을 결성한 이들은 드러머 픽 위더즈(Pick Withers)를 영입해 데모 테입을 만들었다. 로큰롤 고전인 ‘Sustans of Swing’으로 라디오 방송국을 통해 대단한 인기를 얻어 토킹 헤즈(Talking Heads)의 오프닝 밴드로 투어를 하게 된 이들은 78년 워너사(Warner)와 계약을 맺고 셀프타이틀의 데뷔 앨범을 발표한다.

데모 버전으로 인기를 끌었던 ‘Sustans of Swing’으로 톱 텐 진입을 하게 된 다이어 스트레이츠는 미국과 영국에서 커다란 성공을 거두게 되고, 이어 발표한 두 번째 앨범 [Communique](79)도 전세계적으로 3백만 장의 판매고를 올리는 쾌거를 기록하였다. 데이비드가 솔로활동을 위해 밴드를 탈퇴하고 이전 달링(Darling)의 멤버였던 할 린즈(Hal Lindes)로 교체되면서 발표한 3번째 앨범 [Making Movies](79)는 음악적으로 완성도가 높지 못하다는 비평에도 불구하고 MTV 히트곡인 ‘Romeo and Juliet’, ‘Skateaway’에 힘입어 가볍게 골드를 기록했다.

한동안 휴식기를 가진 다이어 스트레이츠는 82년 장중한 실험곡들로 이루어진 [Love Over Gold]를 발표했다. 싱글 ‘Private Investigations’가 UK 차트 2위에 오르면서 앨범은 영국 차트 톱에 4주 동안 머물렀으며 미국에서도 골드를 기록하는 성공을 거둔다. 이후 마크는 영화음악을 작곡하거나 밥 딜런(Bob Dylan), 아즈텍 카메라(Aztec Camera), 티나 터너(Tina Turner) 등 다른 뮤지션들에게 곡을 선사하는 등 한동안 밴드 활동을 접는다.

84년 다시 활동을 재개하여 라이브 더블앨범 [Alchemy]를 발표한 다이어 스트레이츠는 새 키보디스트 가이 플리처(Guy Fletcher)를 맞이해 다섯 번째 앨범 [Brothers in Arms](85)를 발표, 세계적인 스타로 부상하게 된다. 컴퓨터 애니메이션이 가미된 뮤직 비디오로 반향을 일으킨 ‘Money for Nothing’에 힘입어 900만 장의 판매고를 올리며 앨범은 미국 차트 정상의 자리를 9주 동안이나 지켰고, 영국에서는 80년대 최고 판매고를 올린 앨범이 되었다. 연속해서 ‘Walk of Life’와 ‘So Far Away’로 86년까지 계속해서 차트를 지키며 200회가 넘는 공연을 강행한 이들은 다시 프로듀서로, 영화음악 작곡가로 활동하게 된 마크에 의해 잠정적으로 활동을 중단하게 된다.

89년 컨트리 록 그룹인 낫싱 힐빌리즈(Nothing Hillbillies)를 결성한 마크는 [Missing… Presumed Having A Good Time](90)을 발표한 후 다시 다이어 스트레이츠로 돌아와 [On Every Street](91)를 발표한다. 그러나 팬들의 큰 기대를 충족시키지 못한 이들의 앨범은 단 한 장의 히트 싱글도 내지 못했을 뿐더러, 영국에서는 차트 40위에도 진입하지 못했고 미국에서 플래티넘을 기록한 것에 그쳤다. 이후 93년 라이브 앨범인 [On the Night]를 발표한 밴드는 다시금 휴식기에 들어가게 되고, 96년 마크는 그의 첫 솔로 앨범인 [Golden Heart]를 발표한다. 비록 밴드의 핵심인 마크 노플러에 의해 좌우되어 밴드 활동에 영속성을 보이지 못하는 다이어 스트레이츠지만, 진보적이며 다분히 혁명적인 음악으로 에릭 클랩튼(Eric Clapton), 필 콜린즈(Phil Collins), 스티브 윈우드(Steve Winwood)와 함께 베이비 붐 세대들에게 최고로 어필했던 80년대 후반의 베테랑 로큰롤 밴드로 평가받고 있다.

디스코그래피
1978 Dire Straits Warner
1979 Communiqu Warner
1980 Making Movies Warner
1982 Love over Gold Warner
1984 Alchemy: Dire Straits Live Warner
1985 Brothers in Arms Warner
1991 On Every Street Warner
1993 On the Night Warner
1995 Live at the BBC Warner

Dexy’s Midnight Runners

Dexy’s Midnight Runners가 ’80년대 초반 인기의 절정을 달리고 있을 때 싱어/쏭라이터인 Kevin Rowland는 아이리쉬 포크, 뉴웨이브, 그리고 락음악을 한데 뒤섞은 그의 독특한 음악스타일 덕분에 영국에서 거의 천재 대접을 받고 있었다. 그들의 데뷔앨범 Searching for the Young Soul Rebels에서 Rawland의 뛰어난 작곡실력은 평론의 찬사를 얻었다. 그러나 상대적으로 미국에서는 그리 큰 주목을 얻지 못했다. 이 앨범 이후 세명의 멤버가 팀을 이탈하여 The Bureau를 결성하였다. 2집에서 밴드는 아일랜드적이면서도 켈틱한(Celtic : 기원전 유럽을 휩쓸던 켈트족적인 성향을 나타내는 말로써 라이벌이었던 로마의 영향권에서 상대적으로 멀었던 아일랜드와 스코틀랜드 북부 지방에 켈트족의 문화가 가장 온건히 보존되어 있었기 때문에 아일랜드인들은 그들을 켈트족의 후예로 생각하는 경향이 있음) 스타일에 좀더 집착하게 된다. 국제적인 히트곡이 된 “Come on Eileen” 이 이 앨범의 마지막 곡을 장식하고 있다. 그의 지나치게 큰 성공에 갈피를 못잡은 것인지 Rawland의 능력이 3집에서는 거의 드러나지 않는다.

디스코그래피
1980 Searching for the Young Soul Rebels EMI
1982 Too-Rye-Ay Mercury
1983 Geno EMI
1985 Don’t Stand Me Down Mercury
1995 BBC Radio 1 in Concert [live] Windsong
1996 It Was Like This EMI
1998 Too Rye Ay [Germany] Polygram

링크
spiritonline.com/dexy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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