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볼만한 SF 몇 편

Rollerball(1975)


제임스 칸이 스포츠 스타 Jonathan E. 를 연기하고 노만 쥬이슨이 메가폰을 잡은 1975년 작으로 정치와 스포츠의 함수관계를 다룬 흔치 않은 소재의 작품이다. 이 영화에서 다루고 있는 미래의 지구는 국가도 없어지고 기업들도 기업전쟁(Corporate Wars)을 통해 하나로 통합되어 회사들은 고유명사가 아닌 그저 보통명사로 – 예로 ‘에너지 회사(Energy Corporation)’ 식으로 – 불리는 세상이다. 모든 것은 프로그래밍 되었고 더 이상 세상에 폭력은 존재하지 않는다. 기업의 임원들은 인간의 내재된 폭력성을 해소하기 위해 미래형 스포츠인 롤러볼을 창안하여 인기 스포츠로 키운다. 트랙을 돌면서 상대방에 대해 무자비한 폭력을 가하고 쇠로 만든 공을 골에 넣는 이 스포츠의 최고 스타는 ‘에너지 기업’ 이 이끄는 휴스턴 팀 소속의 Jonathan E. 다. 어느 날 기업간부 Bartholomew 는 기업의 결정이라며 Jonathan 이 선수생활을 그만둘 것을 명령한다. Jonathan 은 쉽게 수긍하지 못하면서 갈등은 시작된다. 물질적 풍요함도 자유의지에 대한 욕망을 꺾을 수 없다는 주제의식 측면에서 올더스 헉슬리의 ‘멋진 신세계’를 연상시키는 한편 스포츠 스타가 체제에 도전한다는 측면에서는 실존하였고 영화화되기도 했던 로마 시대의 검투사 스팔타쿠스를 연상시킨다.


The Invisible Man(1933)


프랑켄슈타인의 감독으로 유명한 James Whale 이 H.G. Wells 의 동명소설을 원작으로  만든 작품이다. 투명인간이 되어서 세상을 지배하겠다는 야심을 품게 되는, 그런 한편으로 다시 정상인으로 돌아오고자 애쓰는 폭력적이고 광기어린 인간 잭그리핀의 해프닝을 통해 인간의 나약함과 모순됨을 그리고 있다. 극중에서는 잭그리핀의 난데 없는 폭력적 성향을 투명인간 실험의 주재료인 신비의 약품 모노케인의 영향으로 설명하고 있다. 후에 ‘커밍아웃한’ 동성애자 감독으로서 – 이미 Gods And Monsters 라는 James Whale 에 관한 전기 영화에서 알아버린지라 – 자신의 마이너리티를 투영한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30년대 초반이라는 것을 감안할 때 특수효과는 대단히 인상적이다. 주인공 Claude Rains 가 영화 끝날 때야 한번 얼굴을 내비치는 희한한 케이스의 영화이기도 하다.


The Lost World(1925)


코넌 도일 경은 탐정소설 셜록 홈즈 시리즈를 통해 역사에서 지워질 수 없는 문학가로 이름을 날리고 있지만 다른 한편으로 SF 소설에도 남다른 애정을 지니고 있었다. 코넌 도일 경이 1911년 발표된 The Lost World 는 아마존 지방에 지각의 융기로 다른 세계와 격리된 세계가 있고 그 곳에 선사시대의 공룡이 산다는 줄거리의 소설이다. 이 작품이 1925년 무성영화로 제작되었다. 요즘 기준으로 보면 유치하다 치부될지 모르지만 그 당시로서는 획기적이었을 스톱모션 기법을 동원한 공룡의 묘사는 영화사에 큰 획을 긋는 기술의 발전이었고 이후 1933년 제작된 King Kong 에서도 같은 기법이 사용되었다. King Kong 을 비롯하여 쥬라기 공원 등 유사한 영화에 큰 영향을 미친 이 괴수 SF영화는 불행하게도 오리지널 필름이 거의 폐기될 정도로 손상되었으나 후에 62분짜리 필름으로 복원되었다고 한다.


La Jetee(1962)


영화라기보다는 한편의 영상소설처럼 느껴진다. 주인공이 사랑했던 여인의 잠자리 장면이 잠깐 동영상으로 비춰지는 순간을 제외하고는 모든 장면이 흑백 스틸컷으로 처리된 과감한 형식 때문이다. 그런데 놀랍게도 또 장르는 SF다. 서로간의 증오로 인해 지구를 파괴해버린 그 어느 미래. 아무것도 남겨진 것이 없는 세상에서 과학자들은 과거와 미래로 가서 그들에게 도움을 요청하고자 한다. 그 통로는 사람들의 꿈. 과학자들은 선택된 죄수들 중에서 그 임무를 수행시키려는 실험을 진행시키고 주인공은 과거와 미래를 오가며 그 임무를 수행한다. 그 임무 중에 만난 과거의 여인과 사랑에 빠진 주인공은 자신들의 세계로 오라는 미래의 인간들의 제안을 무시하고 과거로 돌아가 그녀와 재회하려 한다. 슬프기 그지없는 라스트신을 간직한 이 영화는 테리 길리엄에 의해 12Monkeys 라는 이름으로 부활한다.


Cat Women Of The Moon(1953)


예전에 감상한 정신없는 코미디 Amazon Woman On The Moon 이 이 영화를 패러디한 작품이라고 해서 호기심에 찾아본 영화. 역시 민망한 스토리, 민망한 연기, 민망한 특수효과의 3박자가 잘 갖춰진 50년대 ‘못 만들어진(Campy)’ 영화의 전형이었다. 인류최초로 다섯 명의 우주인들이 로켓을 타고 우주로 나가는데 성공한다. 그들의 목적은 달에 착륙하여 탐사를 하는 것. 그런데 홍일점인 Helen 은 달에 대한 이상한 꿈을 꾸었고 선장에게 달의 어두운 면에 가자고 우긴다. 그곳에 도착하여 일행은 이상한 경험을 하게 된다. 그곳에는 산소로 채워져 있었고, 거대한 거미도 있었고(좀 뜬금없긴 하다), 거기에다 이상한 고대문명의 흔적까지 있었다. 결정적으로 그곳에는 검은 옷차림의 고양이 여인들이 살고 있었다.


Cocoon(1985)


이 영화에 따르면 전설의 대륙 아틀란티스는 실존했던 대륙이었고 외계인들의 지구 전진기지였다. 영원한 삶을 영위하는 이 신비로운 외계인들이 어느 날 지구에 남겨진 그들의 외계인 동료(정확하게 말하자면 커다란 고치[cocoon]속에 잠들어 있는 외계생물체들)를 데려가기 위해 지구로 왔다. 그들은 배를 빌려 알을 건져내는 한편 그 알들을 임시로 얻은 저택의 수영장에 보관한다. 그런데 그 수영장은 이웃 양로원의 장난기심한 노인들의 놀이터였다. 이들 노인들은 새 주인에 아랑곳하지 않고 수영을 즐기는데 갑자기 원기가 왕성해지는 놀라운 경험을 하게 된다. 이로 인해 그들의 삶은 젊은이들의 삶에 못지않은 활기찬 삶으로 변신하게 된다. 인간이라면 누구나 꿈꾸는 영생의 꿈이 실현된다는 설정의 독특한 소재의 SF 영화이다.


Slaughterhouse-Five(1972)


Kurt Vonnegut Jr.가 썼다는 원작에 대한 사전정보도 없이 영화 첫 장면을 보는 순간 ‘뮤직박스’유의 2차 세계대전에 대한 과거와 이를 반추하는 현재가 교차되는 스타일의 영화이겠거니 생각했다. 처음 얼마간은 이러한 예상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았다. 약간 어리바리한 주인공 Billy Pilgrim 의 과거의 공간은 전쟁터 한가운데의 참호 속이었고 현재의 공간은 그러한 자신의 삶에 대한 회고록을 쓰고 있는 그의 집이었다. 그런데 영화가 진행됨에 따라 이러한 과거와 현재의 교차편집이 단순히 ‘Lone Star’에서 볼 수 있었던 솜씨 좋은 연출의 문제가 아님을 느끼게 되었다. 주인공 Billy 는 과거를 회상하는 게 아니라 실은 과거와 현재를 수시로 시간여행하고 있었던 것이다. 이런 재밌는 발상을 시작으로 영화는 종반으로 갈수록 트랠파마도어라는 황당한 행성의 등장 등 처음의 전쟁영화 장르에서 블랙코미디, SF 까지 잡탕으로 섞인 다양한 장르적 실험이 되어버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