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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Lady Vanishes

이 영화는 제목이 잘 지어진 사례로 뽑힐 만하다. ‘숙녀가 사라지다’라는 신문의 사건사고 헤드라인과 같은 제목은 극 초반부터 도대체 등장인물 중 어느 여인이 실종될 것인가 하는 궁금증을 자아내게 한다. 제목 하나로 극 초반의 서스펜스를 유지하는데 성공한 것이다. 생각해보면 히치콕의 영화는 애매하거나 상징적이기 보다는 ‘밧줄’, ‘새’, ‘이창’, ‘기차의 이방인’ 등 직선적이고 영화의 핵심이 되는 제목을 선호한다.

각설하고 기차 안에서의 실종사건의 미스터리와 로맨틱코미디가 적절히 가미된 이 코믹스릴러는 히치콕의 영국 체류기간의 말미를 장식한 작품 중 하나로 헐리웃의 시선을 끌 정도로 상업적 성공을 거두었다고 한다.

아름다운 예비신부 Iris Henderson (Margaret Lockwood)은 약혼자를 만나기 위해 기차에 올라탄다. 이 과정에서 친절한 중년의 여성 Miss Froy (Dame May Whitty)를 만나는데 잠깐 잠이 든 사이 Miss Froy 가 사라지고 없었다. Iris 는 그녀를 찾아 헤매지만 기차 안의 다른 사람들은 그녀를 본적조차 없다고 부인한다. 귀신이 곡할 노릇인데 우연히 호텔에서 다투었던 젊은 음악가 Gilbert (Michael Redgrave)가 그녀를 돕고 나선다.

중심이 되는 미스터리나 스크루볼코미디와 함께 히치콕 영화에서 흔히 볼 수 없는 총격장면도 볼거리다. 자신의 일이 아니면 끼어들길 꺼리는 영국인의 무뚝뚝함과 이기심이 신랄하게 비난받는 설정도 흥미롭다.

Amarcord

영화 제목 Amarcord 는 “나는 기억한다”를 의미하는 이탈리아어 “Mi Ricordo”를 소리나는대로 적은 시적인 표현이라고 한다. 이탈리아의 거장 페데리코 펠리니 Federico Fellini 의 반(半)자서전적인 이 영화는 1974년 발표되어 아카데미 최우수 외국어 영화상을 수상하였다. 무솔리니 시절의 이탈리아의 한 해안가 마을의 풍경을 담은 이 영화는 소년의 정욕, 여인들의 밉지 않은 허영, 파시즘에 대한 이탈리아인의 복잡한 심정, 정신병에 시달리는 삼촌의 에피소드 등이 병렬적으로, 동시에 애정 어린 시선으로 그려지고 있다. 따뜻한 영화.

로마, 무방비 도시(Roma, Città Aperta / Open City)

로베르토로셀리니의 1945년 작품인 이 영화는 마치 에릭홉스봄의 20세기 역사를 다룬 명저 ‘극단의 시대’를 영상으로 보는 것 같은 느낌이다. 파시즘과 나찌즘이 극에 달하던 시기 로마에서 저항운동을 펼치던 공산주의자들의 투쟁을 그린 이 영화는 형식적인 측면에서나 내용적인 측면에서 이탈리아식의 사회주의 네오리얼리즘의 큰 축을 이룬 걸작으로 꼽히고 있다.

<주의 : 이하 스포일러 있음>

극의 줄거리는 크게 반독 항쟁을 벌이고 있는 공산주의자 만프레디, 저항활동을 후원하는 돈피에트로 신부 – 무신론적 공산주의와 보수적 카톨릭 사이의 갈등은 보편적인 현상이었지만 둘 모두 천년왕국에 대한 확신이 있으며 집단윤리에 익숙하다는 점에서 본질적인 친화성도 무시할 수 없으며 평사제들의 공산주의에 대한 호의감도 충분한 개연성을 가질 것이다 – , 그리고 만프레디를 사랑하는 배우 마리나를 중심으로 진행된다.

“그는 1928년에 그의 아내가 죽을 때까지 10년 동안 결코 그녀와 살지 않았다. 여자를 멀리하는 것은 혁명가의 철칙이다.” – 칼파나 두트

마치 사제서품을 눈앞에 둔 성직자의 각오를 연상케 하는 이 주장의 옳고 그름을 떠나 이 주장에서 언급되는 혁명가의 연애관은 만프레디와 마리나의 연인관계는 만프레디의 비극적인 운명을 암시한다. 투사도 인간일진데 사랑이라는 감정에 휩쓸릴 수 있는 것이 당연한 권리이지만 적어도 이 영화에서만큼은 그 대가가 얼마나 참혹한 것인가가 극명하게 드러난다. 혁명과 욕정은 적어도 이 영화에서만큼은 화해할 수 없었나보다.

페데리코 펠리니가 시나리오 작업에 참여한 이 영화는 이후 “전화의 저편”, “독일 영년”과 함께 로베르토 로셀리니의 3대 전쟁 영화이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