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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an Parrish – Hip Hop, Be Bop (Don’t Sto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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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ource, Fair use, https://en.wikipedia.org/w/index.php?curid=32827265

Simon Pegg의 Shaun of the Dead에서 주인공 숀이 애인인 리즈에게 차이고 난 후 에드와 함께 술에 취해 새벽에 집에서 디제잉 흉내를 내면서 나오는 노래. Man Parrish는 1958년 생의 미국 작곡가로 Yellow Magic Orchestra, Kraftwerk 등 당시의 많은 뮤지션들과 마찬가지로 일렉트로 음악을 규정하는데 기여했다. 재밌는 것은 영화에서 같이 사는 또 다른 친구가 “너희들이 트는 멍청한 힙합”이라고 소리치자 에드가 “힙합이 아니라 일렉트로야 바보 자식”이라고 중얼거린다. 어쨌든 제목은 힙합이란 점도 재밌다.

힙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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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usta rhymes breaks it down for the mobile geeks” by Nabeel Hyatt – originally posted to Flickr as busta rhymes breaks it down for the mobile geeks. Licensed under CC BY-SA 2.0 via Wikimedia Commons.

1970년대 전반에 DJ들에 의해 힙합이 탄생한 후 본격적 발전은 1978년 Sugerhill Gang의 “Rappcr’s Dehght” 싱글레코드의 발매로 시작되었다. 당시 대표적인 흑인음악 레이블인 Sugcrhill Rccords가 새워졌고 첫 여성 그룹인 Scqucnce의” Funk You Up” 싱글이 발매되기도 하였다 바로 랩의 탄생과 레코드 발매 통한 대중 속으로의 본격적 발전이 이루어진 시기였던 것이다.

1980년대

그룹/래퍼들이 모두 레코드 레이블과 계약을 맺고 음반을 발매하기 시작했다. 샘플리 사용시법과 신디사이저/드림머신으로 이루어진 비트는 Miami Bass로 발전, 오늘날까지 영향을 미치고 있다. Run-DMC는 1983년 싱글을 발표하면서 사회 비판적인 가사로 주위를 끌면서 대중적으로 크게 성공하게 되었다. 백인힙합그룹 Beastie Boys는 앨범 “Licensed to lll”을 발표하여 백인사회에까지 힙합의 인기를 퍼뜨렸다. KRS-One의 Boogie Production, Gang Starr등의 등장으로 랩은 큰 발전을 보게 되었다. 특히 Eric B. and Rakim은 수준 높은 가사로 높은 인정을 받았으며 Public Enemy는 흑인인권운동적 가사와 짙은 정치적 성향으로 많은 시선을 끌었다. 그러나 1980년대 후반은 무엇보다 도 West Coast(미국서부)에 서의 힙합의 발전으로 특징지어진다. 동부에서 탄생한 힙합은 서부로 중심이 건너가기 시작해 소위 갱스터랩(Gangster Rap)의 형태로 90년대 초반까지 주도권을 잡게 된다. 1988년 앨범 straight outta compton은 캘리포니아 LA 갱스터 스타일의 랩을 소개했으며 또 후에 N.W.A를 탈퇴한 lce cude도 서부의 갱스터랩을 대중에게 널리 알렸다.

1990년대 초

1990년대 초반에는 두 가지 상반된 스타일과 랩이 인기를 끌었는데, 바로 “댄스랩” 과 갱스터랩이다. Jamaica dancehall 계통의 음악은 크게 히트하고 카리브해안과 연계로 힙합에 또 다른 생기를 불어 넣었다. 수많은 dancehall 아티스트들이 힙합 뮤지션과 합작하거나 솔로 앨범을 낸다. snoop doggy dogg와 같은 갱스터래퍼들의 등장을 불러왔다. 이와 같은 갱스터랩의 공격적이고 여성비하적인 가사는 흑인사회 안밖으로부터의 비판을 받게 되었다.

1990년대 중반

90년대 중반으로 들어서면서 다시 동부쪽 그룹들이 랩의 주도권을 가지게 되었다. JAZZ와 Funk의 요소를 이용한 곡들을 선보였으며 QBC스타일을 소개한 Mobb Deep과 Nas 그리고 데뷔 앨범 ready to aie를 발표한 notorious B.I.G등이 모두 인기를 얻었다. 그런데 곡들을 발표로 거칠어진 두 실력있는 래퍼간의 싸움은 결국 두 레이블간의 분쟁, 양 코스트간의 분쟁으로 변하여 결국 Tupac과 notorious B.I.G의 안타까운 즉음으로 막을 내렸다.

현재

힙합의 주류이던 갱스터랩, 그리고 동부의 어둡고 무거운 분위기의 랩들 대신 이제 Puff daddy의 독특한 프로듀싱을 거친 다소 가볍고 빠르고 파티풍의 음악이 많은 인기를 끌기시작했다.샘플링에 크게 의존하는 Puff daddy의 프로듀싱기법은 랩의 많은 부분에 영향을 주었다. 많은 스타일의 랩이 모두 동시에 존재하면 대중적으로 도 큰인기를 얻고 힙합의 전성시대라고 할수있다. 힙합은 즉 이 시대의 재즈인 것이다. 자신들의 틀안에서만 머물지 않고 다은 장르와의 융합을 활발히 시도하고 있다.

출처불명

랩의 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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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as-01-mika” by MikamoteOwn work. Licensed under CC BY-SA 3.0 via Wikimedia Commons.

랩은 어떻게 시작되어 어떤 변천과정을 거쳤는가. 랩의 탄생은 DJ들로부터 비롯된다. 1970년대 미국, 특히 뉴욕시에는 Disco열풍이 불어서 많은 DJ들이 흑인빈민가 등지의 거리에서 댄스파티를 열곤 했다. 이들은 DJ Smokey, Kool DJ D같은 DJ들이었는데, 랩의 탄생에 큰 역할을 한 DJ는 바로 Kool DJ Herc였다. Kool DJ Herc는 다른 DJ들같이 Disco레코드를 틀어주는 대신, 자신이 보유하고 있던 R&B 또는 Funk Dance레코드를 주로 틀어주었다. 그런데, Herc가 특이했던 것이, 그는 노래를 트는 대신에, 간주부분(Break-beat)을 계속 반복하여 틀어주곤 했다. 그 간주부분에 사람들은 춤을 추기 시작 했고, 이들을 Herc는 “b-boys”, 또 그들이 추는 춤을 “b-boying”, 또는 “Break-Dancing”이라고 불렀다. 한편, Kool DJ Herc는 자신의 파티에 항상 MC를 데리고 다녔는데, Coke La Rock라는 이름의 이 MC의 역할은 음악 중간 중간에 마이크로 춤을 추는 사람들의 흥을 돋구는 말을 하는 것이었다. 이것이 곧 “MC’ing”이었고, 나중에 “rapping” 이라 불리게 되었던 것이다. 즉, 랩의 탄생이다. 참고로, 같은 시대에 DJ Hollywood 또한 Kool DJ Herc와 같은 스타일로 DJing을 했는데, 그는 자신이 MC역할도 했다.

그런데, 그가 MCing을 하던 중, 반복했던 말들중 하나가 “..hip, hop..”이어서, “hip hop”이 랩을 지칭하는 표현들 중 하나로 쓰이게 되었다고 한다. 아무튼, Herc의 뒤를 이어 많은 DJ들과 MC들이 Herc의 스타일 을 발전시키며 랩의 발전에 이바지 했다. 이들중에는 유명한 Afrika Bambaataa(아프리카어매리컨의 해방을 꿈꾸었던 라스파타리아니안)도 있어서, 그는 자신의 Zulu Nation을 형성 하여, 랩과 DJing을 발전시켰다. 랩이 본격적으로 시작된 시기는 1970년대 후반, 1978년 Suger Hill Gang이 “Rapper’s Delight”란 첫 랩싱글을 발표하면서 부터이다.다음해에 Sequence는 “Funk You Up”이라는 노래로 랩을 더욱 대중화 시켰고, 1980년 Kurtis Blow는 “The Breaks”란 노래로 랩으로서는 첫 Gold를 기록했다.1982년에 Afrika Bambaataa는 그의 Soul Sonic Crew와 함께 “PlanetRock”을 시작으로 신디사이져와 드럼머신에 전적으로 의존하다시피 하는 Electro Funk 시대(그는 이러한 시도를 멀리 바다 건너 독일의 Kraftwerk의 스타일을 차용한 것인다. 그 당시 많은 이들은 Kraftwerk의 음악을 일종의 써커쓰 정도로 치부하고 있을 시기였다.)를 시작하였다. 특히 Afrika Bambaataa는 sampling을 그의 “Looking for the Perfect Beat”에서 처음 본격 적으로 사용하기도 하였다.

역시 1980년대를 장식하였던 래퍼로 Run-DMC를 빼놓을 수 없다. 그들은 “It’s Like That”이란 노래로 랩에 도시 빈민가 흑인들의 힘든 삶을 본격적으로 묘사하기 시작했으며, 1986년에는 락가수Aerosmith와 “Walk This Way”를 발표하면서 랩의 대중화에 기여했다(이 노래는 당시 타이틀곡이라는 개념이 없었던 랩음반에 처음 타이틀곡이라는 개념을 도입한 곡의 의미를 가지고 있기도 하다). 랩의 대중화에 기여한 또다른 그룹은 바로 Beastie Boys이다. 그들은 “Licensed To Ill”앨범을 발표함으로써 백인들사이에도 랩 음악을 퍼뜨리기 시작했다.

1980년대 후반에 서부에서 등장한 랩스타일이 바로 갱스터랩이다. 이 스타일의 랩은 먼저 가사에서 LA 중심부의 갱들 싸움(Gangwar) 과 힘든 삶을 표현했으며, Gangsta Rap의 시작은 N.W.A.의 1988년 도 앨범 “Straight Outta Compton“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당시 동부 랩의 대표주자인 Public Enemy는 미국사회에서 흑인은 철저한 약자이며 갱스터라는 존재부여 자체가 어불성설이라고 주장하였다. 이에 반해, 1980년대 말부터 1990년대 초에는 파티풍의 춤추기 좋은 랩스타일도 그 발전을 보았으니, 그 대표적인 래퍼는 MC Hammer의 “U Can’t Touch This”나, 백인 래퍼 Marky Mark and the Funky Bunch 의 “Good Vibration”, Vanila Ice의 Ice Ice Baby, 또는 Kriss Kross의 “Jump”를 들 수 있다. 특징적인 것은 이들은 과거 히트곡의 샘플링을 통하여 부수적인 이익을 노리려는 상업적인 속셈이 눈에 두드러졌다.

1990년대에 들어서 랩은 그 스타일의 다양성과 가사의 내용에 있어서 많은 발전이 있었고, 또 그 과격함에 대해 미국사회로부터 많은 비난도 받 게 되었다. 주 공격대상은 가사의 과격함, 폭력조장, 여성비하 표현등이었으며, Ice-T의 노래 “Cop Killer”는 미국사회에 큰 물의를 일으켰고, 경찰관을 쏜 사건에서 범인 십대소년이 2Pac의 “2Paclypse Now”앨범을 듣고있었다는 데에 당시 부통령 Dan Quayle이 2Pac과 랩 전반에 대해 비난했고, 2 Live Crew는 1989년도 앨범 “As Nasty As They Wanna Be”로 Florida주에서 외설혐의로 조사를 받기도 했다. 1990년대 중반에는 2Pac과 Notorious B.I.G.간의 마찰이 2Pac이 출소후 Deathrow음반사로 옮기면서 결국은 Deathrow사와 Badbay사,그리고 East Coast와 West Coast간의 마찰로 번져, 한동안 랩계에 큰 문제로 인식되었으며, 이는 두 래퍼 2Pac과 Notorious B.I.G.의 죽음 으로 일단락되었다고 볼 수 있다. 물론 두 래퍼의 죽음이 East와 West의 마찰에서 비롯되었다는 증거는 없지만, 음악적 갈등이 음악외적 갈등으로 확산되어 많은 폭력이 오간것은 사실이다.

1990년대에는 위와같이 많은 문제와 논란이 있었지만, 음악적으로는 그 어느 시대에 비교될 수 없는 발전을 보았다. 매년 발매되는 랩앨범의 발매량은 물론, 많은 래퍼들의 등장, 대중적 선호도등, 모든 방면에서 랩은 전성기를 맞고 있다고 할 수 있다. 동부의 Wu-Tang Clan이나 서부의 Dr. Dre같은 대표적 래퍼들이 등장하여 그들의 레이블을 키웠고, 또, 독특한 스타일의 많은 실력있는 래퍼들이 등장하여, 앞으로도 랩의 전성기는 계속될 것이라고 본다.

출처불명

Run D.M.C.

Run-D.M.C. 는 사운드와 스타일면에서 랩음악의 기초를 다진 주요한 아티스트이다. 이들 트리오의 헤비메틀 음악을 이용한 샘플링과 강렬한 비트는 이전의 랩음악에 비해 보다 터프하고 위협적이었다. 음악의 내용 역시 Public Enemy처럼 보다 정치색을 띄고 있었다. 또한 그들은 처음으로 여러 곡이 빼곡히 들어찬 앨범을 발매함으로써 이전의 싱글 위주의 랩음악을 앨범위주의 음악스타일로 발전시켰다.

멤버들 셋은 당시 노동계급 출신 아이들에 의해 주도되던 힙합계에서는 특이하게도 뉴욕 자치구의 중산층 계급 출신들이었다. Run(본명 Joseph Simmons, 1964년 11월 14일생)은 ’80년대 초 힙합 매니지먼트 회사인 Rush 프러덕션을 운영하던 Russell Simmons과 형제간이다. Russell은 ’80년대 중반 Rick Rubin과 함께 Def Jam이라는 선구자적인 레이블을 만들었다. Russell은 그의 동생과 친구 Darryl McDaniel(1964년 5월 31일생)가 랩듀오를 결성하도록 격려하였다. 이들은 Run D.M.C.라는 이름으로 활동을 시작하였고 1982년 고등학교를 졸업한후 턴테이블을 스크래치하는 역을 맡을 친구 Jason Mizell(무대이름 Jam Master Jay, 1965년 1월 21일생)을 끌어들여 3인조로 진용을 갖추었다.

1983년 Run D.M.C. 는 첫싱글 “It’s Like That” / “Sucker M.C.’s”을 Profile 레코드사에서 발표하였다. 이 싱글은 그 당시의 다른 랩들과는 달리 파워풀한 비트와 대담한 보컬 – 각각이 서로의 라인을 마치고 오버랩시키는 형태로 녹음된 – 로 진행되는 곡이었다. 이 곡은 R&B 차트에서 인기를 얻었고 두번째 싱글 “Hard Times” / “Jam Master Jay.”역시 인기를 얻었다. 1984년초 “Rock Box”와 “30 Days”가 연이어 발표되었다. 이어서 그룹의 데뷔앨범 – 앨범명이 붙지 않은 – 이 발표되었다.

1985년 두번째 앨범 King of Rock이 발매될 즈음 Run D.M.C. 는 미국에서 가장 영향력있고 인기있는 래퍼들이 되어 있었다. 앨범명에서도 암시되고 있듯이 그들은 헤비메틀의 거칠고 두터운 드럼 루프 등을 그들의 음악에 도입함으로써 록앤롤과 랩의 장벽을 깨부수고 있었다. 이 앨범에서는 “King of Rock”, “You Talk Too Much”, “Can You Rock It Like This” 등이 R&B 차트에서 인기를 얻었다. 그룹은 또한 Krush Groove – Kurtis Blow, the Beastie Boys, the Fat Boys 등도 출연했던 – 라는 랩무비에도 출연하였다.

Run D.M.C.의 락과 랩을 넘나드는 휴전랩적인 시도는 1986년 발표된 세번째 앨범 Raising Hell을 통해 메인스트림에서도 인정을 받기 시작했는데 Aerosmith의 Steven Tyler와 Joe Perry가 녹음작업에 참여한 “Walk This Way”는 팝차트 4위까지 오르며 랩을 백인들의 가시권에 올려다 놓았다. “Walk This Way”의 성공으로 말미암아 Raising Hell은 R&B 차트에서 1위에 오른, 팝차트 10위에 진입한, 그리고 플래티넘을 기록한 최초의 랩앨범이 되었다. 결론적으로 Run D.M.C. 는 메인스트림에서 성공을 거둔 최초의 랩아티스트로 자리매김하게 된것이다.

이어진 앨범 Tougher than Leather(1987)은 Run D.M.C.가 주연을 맡은 동명의 영화가 제작되는 등 축제 분위기 속에서 발매되었다. 이 영화는 ’70년대 흑인영화(Blaxploitation films : 흑인관객을 대상으로 흑인이 주연을 맡은 B급 영화로 퀜틴타란티노가 이러한 경향의 영화에 열렬한 팬이었다 함. 그러한 애정의 표시로 그는 재키브라운이라는 영화를 찍었음)의 패러디였다. 그러나 이 즈음 랩의 트렌드는 바뀌어 가고 있었다. 대부분의 힙합 팬들은 Public Enemy와 같은 하드코어적이고 보다 정치적인 색채를 띈 래퍼들을 선호하고 있었다. 결론적으로 Run D.M.C. 와 같은 크로스오버적인 래퍼들은 아닌 것이다. 영화는 실패했고 앨범은 간신히 플래티넘을 기록했다. 히트싱글은 나오지 않았다.

Tougher than Leather의 2년 후 Run D.M.C. 는 Bank from Hell이라는 앨범으로 돌아왔다. 앨범은 플래티넘을 기록하지 못하였고 멤버들은 알콜 중독(Daniels), 강간(Simmons) 등 개인적인 문제로 고민이 많았다. Daniels가 술을 끊고 Simmons의 강간 혐의가 기각되자 둘은 크리스챤이 되었다. 1993년 Down with the King은 종교적 색채를 띈 가스펄 앨범이 되고 말았다. 여기엔 수많은 동료 랩아티스트들이 참여했는데 Public Enemy, EPMD, Naughty by Nature, A Tribe Called Quest, Neneh Cherry, Pete Rock, KRS-1 등이 그들이다. 타이틀트랙은 R&B차트 탑10에 진입하였다. 오랜 스튜디오 작업후에 2000년 그들은 Crown Royal로 팬들에게 다시 그들의 모습을 드러냈다.

디스코그래피
1984 Run-D.M.C. Profile/Arista
1985 King of Rock Profile/Arista
1986 Raising Hell Profile/Arista
1988 Tougher than Leather Profile/Arista
1990 Back from Hell Profile/Arista
1993 Down with the King Profile/Arista
1999 Crown Royal Arista

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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