랩의 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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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as-01-mika” by MikamoteOwn work. Licensed under CC BY-SA 3.0 via Wikimedia Commons.

랩은 어떻게 시작되어 어떤 변천과정을 거쳤는가. 랩의 탄생은 DJ들로부터 비롯된다. 1970년대 미국, 특히 뉴욕시에는 Disco열풍이 불어서 많은 DJ들이 흑인빈민가 등지의 거리에서 댄스파티를 열곤 했다. 이들은 DJ Smokey, Kool DJ D같은 DJ들이었는데, 랩의 탄생에 큰 역할을 한 DJ는 바로 Kool DJ Herc였다. Kool DJ Herc는 다른 DJ들같이 Disco레코드를 틀어주는 대신, 자신이 보유하고 있던 R&B 또는 Funk Dance레코드를 주로 틀어주었다. 그런데, Herc가 특이했던 것이, 그는 노래를 트는 대신에, 간주부분(Break-beat)을 계속 반복하여 틀어주곤 했다. 그 간주부분에 사람들은 춤을 추기 시작 했고, 이들을 Herc는 “b-boys”, 또 그들이 추는 춤을 “b-boying”, 또는 “Break-Dancing”이라고 불렀다. 한편, Kool DJ Herc는 자신의 파티에 항상 MC를 데리고 다녔는데, Coke La Rock라는 이름의 이 MC의 역할은 음악 중간 중간에 마이크로 춤을 추는 사람들의 흥을 돋구는 말을 하는 것이었다. 이것이 곧 “MC’ing”이었고, 나중에 “rapping” 이라 불리게 되었던 것이다. 즉, 랩의 탄생이다. 참고로, 같은 시대에 DJ Hollywood 또한 Kool DJ Herc와 같은 스타일로 DJing을 했는데, 그는 자신이 MC역할도 했다.

그런데, 그가 MCing을 하던 중, 반복했던 말들중 하나가 “..hip, hop..”이어서, “hip hop”이 랩을 지칭하는 표현들 중 하나로 쓰이게 되었다고 한다. 아무튼, Herc의 뒤를 이어 많은 DJ들과 MC들이 Herc의 스타일 을 발전시키며 랩의 발전에 이바지 했다. 이들중에는 유명한 Afrika Bambaataa(아프리카어매리컨의 해방을 꿈꾸었던 라스파타리아니안)도 있어서, 그는 자신의 Zulu Nation을 형성 하여, 랩과 DJing을 발전시켰다. 랩이 본격적으로 시작된 시기는 1970년대 후반, 1978년 Suger Hill Gang이 “Rapper’s Delight”란 첫 랩싱글을 발표하면서 부터이다.다음해에 Sequence는 “Funk You Up”이라는 노래로 랩을 더욱 대중화 시켰고, 1980년 Kurtis Blow는 “The Breaks”란 노래로 랩으로서는 첫 Gold를 기록했다.1982년에 Afrika Bambaataa는 그의 Soul Sonic Crew와 함께 “PlanetRock”을 시작으로 신디사이져와 드럼머신에 전적으로 의존하다시피 하는 Electro Funk 시대(그는 이러한 시도를 멀리 바다 건너 독일의 Kraftwerk의 스타일을 차용한 것인다. 그 당시 많은 이들은 Kraftwerk의 음악을 일종의 써커쓰 정도로 치부하고 있을 시기였다.)를 시작하였다. 특히 Afrika Bambaataa는 sampling을 그의 “Looking for the Perfect Beat”에서 처음 본격 적으로 사용하기도 하였다.

역시 1980년대를 장식하였던 래퍼로 Run-DMC를 빼놓을 수 없다. 그들은 “It’s Like That”이란 노래로 랩에 도시 빈민가 흑인들의 힘든 삶을 본격적으로 묘사하기 시작했으며, 1986년에는 락가수Aerosmith와 “Walk This Way”를 발표하면서 랩의 대중화에 기여했다(이 노래는 당시 타이틀곡이라는 개념이 없었던 랩음반에 처음 타이틀곡이라는 개념을 도입한 곡의 의미를 가지고 있기도 하다). 랩의 대중화에 기여한 또다른 그룹은 바로 Beastie Boys이다. 그들은 “Licensed To Ill”앨범을 발표함으로써 백인들사이에도 랩 음악을 퍼뜨리기 시작했다.

1980년대 후반에 서부에서 등장한 랩스타일이 바로 갱스터랩이다. 이 스타일의 랩은 먼저 가사에서 LA 중심부의 갱들 싸움(Gangwar) 과 힘든 삶을 표현했으며, Gangsta Rap의 시작은 N.W.A.의 1988년 도 앨범 “Straight Outta Compton“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당시 동부 랩의 대표주자인 Public Enemy는 미국사회에서 흑인은 철저한 약자이며 갱스터라는 존재부여 자체가 어불성설이라고 주장하였다. 이에 반해, 1980년대 말부터 1990년대 초에는 파티풍의 춤추기 좋은 랩스타일도 그 발전을 보았으니, 그 대표적인 래퍼는 MC Hammer의 “U Can’t Touch This”나, 백인 래퍼 Marky Mark and the Funky Bunch 의 “Good Vibration”, Vanila Ice의 Ice Ice Baby, 또는 Kriss Kross의 “Jump”를 들 수 있다. 특징적인 것은 이들은 과거 히트곡의 샘플링을 통하여 부수적인 이익을 노리려는 상업적인 속셈이 눈에 두드러졌다.

1990년대에 들어서 랩은 그 스타일의 다양성과 가사의 내용에 있어서 많은 발전이 있었고, 또 그 과격함에 대해 미국사회로부터 많은 비난도 받 게 되었다. 주 공격대상은 가사의 과격함, 폭력조장, 여성비하 표현등이었으며, Ice-T의 노래 “Cop Killer”는 미국사회에 큰 물의를 일으켰고, 경찰관을 쏜 사건에서 범인 십대소년이 2Pac의 “2Paclypse Now”앨범을 듣고있었다는 데에 당시 부통령 Dan Quayle이 2Pac과 랩 전반에 대해 비난했고, 2 Live Crew는 1989년도 앨범 “As Nasty As They Wanna Be”로 Florida주에서 외설혐의로 조사를 받기도 했다. 1990년대 중반에는 2Pac과 Notorious B.I.G.간의 마찰이 2Pac이 출소후 Deathrow음반사로 옮기면서 결국은 Deathrow사와 Badbay사,그리고 East Coast와 West Coast간의 마찰로 번져, 한동안 랩계에 큰 문제로 인식되었으며, 이는 두 래퍼 2Pac과 Notorious B.I.G.의 죽음 으로 일단락되었다고 볼 수 있다. 물론 두 래퍼의 죽음이 East와 West의 마찰에서 비롯되었다는 증거는 없지만, 음악적 갈등이 음악외적 갈등으로 확산되어 많은 폭력이 오간것은 사실이다.

1990년대에는 위와같이 많은 문제와 논란이 있었지만, 음악적으로는 그 어느 시대에 비교될 수 없는 발전을 보았다. 매년 발매되는 랩앨범의 발매량은 물론, 많은 래퍼들의 등장, 대중적 선호도등, 모든 방면에서 랩은 전성기를 맞고 있다고 할 수 있다. 동부의 Wu-Tang Clan이나 서부의 Dr. Dre같은 대표적 래퍼들이 등장하여 그들의 레이블을 키웠고, 또, 독특한 스타일의 많은 실력있는 래퍼들이 등장하여, 앞으로도 랩의 전성기는 계속될 것이라고 본다.

출처불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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