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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ndless Lo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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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1년 8월 15일 Diana Ross와 Lionel Richie가 듀엣으로 부른 “Endless Love”가 빌보드 핫100 차트 1위에 올라 9주간 머물렀다. 또한 1981년 8월 22일에는 R&B 싱글 차트에 7주간 정상에 머물렀다. Lionel Richie가 작곡한 이 곡은 Brooke Shields가 주연을 맡은 같은 이름의 영화의 주제가였다. 당초 영화의 감독 Franco Zeffirelli와 프로듀서 Jon Peters는 Lionel에게 영화를 위해 연주곡을 만들어달라고 부탁했다. 하지만 후에 이들은 가사가 들어간 남녀 듀엣 곡으로 만들기로 마음을 바꿨다. 모타운의 임원 Suzanne DePasse는 막 모타운을 떠나 RCA로 적을 옮긴 Daina Ross를 추천한다. 곡을 들은 Diana는 듀엣으로 노래하는 것에 동의한다. 당시 Lionel은 The Commodores의 마지막 앨범 “In The Pocket” 작업에, Diana는 타호(Tahoe) 호수에서의 공연에 바빴지만 서로의 스케줄을 조정해서 Diana의 공연장인 카지노에서 조금 떨어진 네바다州의 리노에 있는 한 작은 스튜디오에서 만났다. 둘은 새벽 3시 반에 보컬을 녹음하기 시작하여 1시간 반 만에 작업을 마쳤다. 영화 자체의 반응은 신통치 않았지만 주제가는 큰 인기를 얻게 된다. 1981년 7월 11일 빌보드 핫100 차트에 54위로 진입한 이 곡은 5주 후에 정상을 차지하게 된다. 싱글은 그 해에 두 번째로 많이 팔린 싱글이 되었다.[1. 제일 많이 팔린 싱글은 Kim Carnes의 “Bette Davis Eyes”였다.] 듀엣은 1982년 오스카 시상식에서 함께 이 노래를 불렀다. 1994년 Luther Vandross와 Mariah Carey가 이 노래를 다시 불러 차트 2위까지 오르는 인기를 얻었다.

1982년 오스카 시상식에서의 공연

Culture Club / Colour By Number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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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ultureClubColourByNumbersAlbumcover” by Scan. Licensed under Fair use via Wikipedia.

마이클 잭슨의 <<드릴러>>는 마이클 매니아와 함께 ‘모타운 소울’의 부활을 몰고왔다. 대서양 저편의 영국가수들도 즉각 소울풀한 노래가 현재 팝계에서 가장 잘 먹힐 수 있는 스타일임을 간파했다. 보이 조지의 컬처클립, 유리스믹스, 왬 등이 모타운식 소울을 내걸며 미국 침공을 성공적으로 이끈 주역들이었다. 그들에 의해 팝음악의 주류 또한 뉴로맨틱 무브먼트의 신시사이저 팝에서 ‘팝화된 소울’로 넘어갔다.그중 컬쳐클럽(Culture Club)은 마이클 잭슨의 바로 뒤를 이어 <<드릴러>>와 인기 정상을 바톤터치한 그룹이었다. 음반 <<컬러 바이 넘버즈>>(Colour by numbers)가 나오고 얼마 지나지 않아 그룹의 상징인 보이조지(Boy George)는 “뉴스위크”지의 표지인물로 등장했다. 스스로 ‘성의 개척자’ 임을 자부한 그는 여장차림과 인형과도 같은 ‘미모’로 이해 84,85년 매스컴의 표적이 되어 집중적으로 카메라 플래시를 받았다. 그만큼 그와 컬터 클럽에게는 비디오적 측면이 중요하게 대두되었다.그 시절이 ‘오디오 + 비디오’의 이른바 AV시스템이 지배한 시대였음을 누구도 그들만큼 잘 설명해주지 못했다. 그는 비디오에 대한 강한 자신감으로 동시대 뮤지션 프린스를 “공중머리의 통으로 떨어진 난쟁이 같은 인물”이라고 비아냥댔고 마돈나를 두고 “마릴린 먼로에 그녀를 비교하는 것은 소피아 로렌과 버스의 후미(後尾)를 비교하는 것과 같다”고 비고기도 했다.그들의 음악을 “타임”지는 ‘모든 팝음악을 집어넣은 포켓’으로 설명했다. 여러 음악의 영향을 골고루 흡수해 그들만의 것으로 빚어냈다는 지적이었지만 그 음악 성격은 때로 논란거리가 되기도 했다. 재창조 차원이 아닌 모방, 즉 ‘표절’에 가까웠기 때문이었다. 이와 관련한 보이 조지의 주장 또한 당당했다. “표절은 내가 가장 좋아하는 어휘중의 하나다. 컬처 클럽은 현대음악에 있어서 표절의 가장 진지한 형태이다. 우리는 누구보다도 그것을 잘한다.” ‘모방은 창조의 어머니’임을 실증하듯 그들의 표절행위는 ‘발군의 재해석’으로 나타났다.보이 조지는 <그것은 기적>(It’s a miracle)의 경우 버트 오설리반의 곡 멜로디를 빌어왔다고 자인했다. 이밖에 <사악한 정신의 교회>(Church of the poison mind)는 스티비 원더의 <초조한>(Uptight) 과 유사했고 <숙명의 변덕자>(Karma chameleon)는 제임스 테일러의 <편한 남자>(Handy man)을 연상시켰으며 <그런거야>(That’s the way)는 엘튼 존 노래풍이었다. 보이 조지는 컬처클럽의 음악을 한마디로 ‘이미테이션 소울'(imitation soul)이라고 칭하기도 했다.이같은 후안무치의 비도덕적 행각에도 불구하고 앨범은 우수작으로 인정받는 의외의 성과를 올렸다. “타임”지는 이 음반을 84년 팝 베스트 10앨범 가운데 하나로 선정했다. 가벼운 팝소울을 선호한 시대의 혜택이 그만큼 크게 작용한 것이었다. 컬처 클럽은 “우리는 훌륭한 공식을 가지고 있었고 다른 그룹들은 분명그것에 착상하여 성공했다. 틀림없이 왬(Wham!)이 그러했다.”며 자신들의 지대한 영향을 강변했다. 그 공식이 무엇이든 간에, 또 후세에 어떤 영향을 미쳤든지 간에 그들은 유행 음악의 한계를 넘어서지 못하고 86년 이후 인기가 급전직하, 이듬해 해산을 선언하고 말았다.보이 조지는 93년 영화 ‘크라잉 게임’의 주제가를 히트시키기까지 재기하는 데 7년 이상의 세월을 보내야 했다.

Rockwell

강박증 환자가 불렀음직한 노래 “Somebody’s Watching Me”가 발표되었을 때 정작 곡 자체보다는 ‘코러스 부분에 Michael Jackson이 참가했다’, ‘Rockwell이 Motown 레코드사의 창립자인 Berry Gordy의 아들이다’ 와 같은 가쉽이 더욱 화제를 불러일으켰던 사실들을 기억하시는 분들도 있을 것이다. 본인도 이러한 사태를 미리 예견하였는지 이름을 아예 Rockwell – 그의 고등학교 시설 밴드의 이름이었다 한다 – 로 바꿔버렸지만 아무래도 자신이 원했던 것처럼 음악 그 자체로 평가받기에는 역부족이었던 듯 하다. 사실 그는 그의 아버지도 모르게 Motown과 계약을 체결하였다. 첫 싱글 “Somebody’s Watching Me”는 앞서 말했듯이 Micael Jackson이 코러스로 참여하여 화제가 되었던 곡이다. 마치 트왈라잇존의 주제음악을 연상시키는 기묘한 멜로디와 Rockwell의 강박적인 읊조림, 하이톤의 후렴구가 묘한 조화를 이룬 이 싱글은 싱글차트에서는 탑텐을, R&B 차트에서 1위를 기록하였다. 특이하게도 우리나라에서는 뒤이은 발라드 Knife가 커다란 인기를 얻게 되었는데 당시 우리나라 팝팬들의 정서에 맞는 가요 스타일의 멜로디가 공감을 불러일으켰기 때문으로 풀이된다(비슷한 이유로 우리나라에서 특히 인기를 얻었던 곡으로는 Falco의 Jeanny를 들 수 있다). 그러나 그의 성공가도는 여기까지였다. 뒤이은 싱글들은 외면을 받았고 앨범들 역시 마찬가지였다. 이른바 One Hit Wonders의 일원이 되어버린 것이다.

디스코그래피
1984 Somebody’s Watching Me [Motown]
1985 Captured [Motown]
1986 The Genie [Motown]

링크
Somebody’s Watching Me 비디오 리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