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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ohn Taylor의 자서전 리뷰

(John) Taylor는 운전면허증을 따기 전부터도 틴아이돌이었다. 그가 마침내 운전면허 시험을 보러 갔을 때, “회색 양복 차림의 시험관은 잠시 뜸을 들이더니 .. 그에게 말했다. ‘자. 테일러 씨. 난 당신이 누구란 사실을 알고 있다는 사실을 알려줍니다. 사실 내 딸이 제 방에다가 온통 당신 사진들을 붙여 놓았어요. 그러나 그게 어쨌든 이 시험에 영향을 미치진 않을 겁니다. 그 점을 이해하기 바랍니다. 이제 시간 여유를 가지고 천천히 움직여서 저 앞 도로를 따라가세요.’ 난 합격했어요.”

John Taylor의 자서전 ‘In the Pleasure Groove’에 대한 뉴욕타임스의 리뷰 중에서

Power Station

요즘 이들의 음악이 좋다. Robert Palmer의 기름진 목소리, 락적 요소가 많이 가미된 연주, 리드미컬한 드러밍. 공연을 보거나 합주를 하면 정말 재밌을 것 같은 곡들을 만들었던 그룹이다. 다시 재결합해서 한국에 공연을 올 수 있을까? 설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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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werstation publicityphoto” by http://www.duran2.net/eng/gallery.htm. Licensed under Wikipedia.

수퍼그룹 Power Station은 Duran Duran의 John Taylor와 Andy Taylor, Chic의 드러머였던 Tony Thompson, 그리고 싱어 Robert Palmer로 구성되었다. 처음에 그것은 John의 아이디어였다. John은 그룹을 조직하기 전부터 Robert Palmer의 친구였고 그의 음악 스타일을 마음에 들어했다. 그의 당초 Power Station에 대한 오리지날 컨셉은 한 앨범에 여러 명의 싱어들이 노래하는 일종의 객원싱어 개념이었지만 단기간내 그런 프로젝트가 성사될지는 미지수였다.

한편 그 당시 John은 연인인 Bebe Buel이 T. Rex의 Bang a Gong (Get It On)을 리메이크했으면 하고 바랬다. 그래서 그들은 그 곡을 훵키버전으로 만들기 위해 Tony Thompson과 합류하였다. 그러나 John과 Bebe가 연인관계가 깨져버려 이는 무산되었다. 한편 John과 Andy는 이미 Some Like It Hot과 Murderess의 데모작업을 진행하였는데 Some Communication이라는 곡의 싱어로 Robert Palmer가 초대되었다. 마침내 Bernie Edwards는 전앨범에 Robert Palmer가 싱어로 참여할것을 제의했다.

1985년 2월 Power Station은 Saturday Night Live에서 데뷔무대를 가졌다. 3월말 Some Like It Hot이 영국챠트에 등장해 14위까지 올랐다. 그리고 미국에선 6위까지 올랐다. 앨범은 4월에 영미 챠트에 첫등장하였다. 그리고 이어 6월에는 Bang a Gong (Get It On)을 히트시켰다. 세번째 싱글은 Murderess였다.

애초 Power Station은 공연을 하지 않을 심산이었다. 그러나 연이은 상업적 성공으로 인해 공연에 대한 유혹은 너무 커져갔다. 그러나 Palmer는 다른 생각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공연 10일째 되던 날 공연단을 떠났다. 공연투어의 싱어는 Silverhead란 그룹의 싱어였던 Michael Des Barres로 대체되었다. 그 당시 John은 이 프로젝트가 그리 맘에 들지 않았다. 당초 Duran Duran 의 Alter Ego의 개념으로 출발한 그룹이 너무 커져버렸기 때문이다.

가을에 그룹의 마지막 싱글인 Communication이 발매되었다. 미국에서는 Top 40에 들었지만 영국에서는 75위까지 오르는데 그쳤다. 전작의 성공에 비해서는 매우 실망스러운 것이었다. 공연도 차츰 시들어졌고 마침내 그룹은 그 종착점에 도달하였다. John Taylor는 Duran Duran으로 돌아갔지만 Andy Taylor는 솔로 활동을 위해 Duran Duran에 합류하지 않고 Sex Pistols의 기타리스트였던 Steve Jones와 공동작업에 들어갔다.

디스코그래피
1985 The Power Station 33 1/3 Capitol
1985 The Power Station Capitol
1996 Living in Fear Chrysalis

링크
Fan Page

Michael Jackson의 죽음에 대한 John Taylor의 느낌

His music and his legend will live on. His life is an inspiration to us all but also a caution. I’m very very sorry he’s not with us anymore, but for my Madonna tears I’ll probably have to wait until ‘Rock With You’ catches me unawares one evening, alone on a motorway somewhere.. By then I’ll be really missing him.

John Taylor와의 인터뷰

그들이 요트위를 거닐건 또는 그들의 비데오클립 Wild Boys를 위하여 로드워리어처럼 행세를 하건 Duran Duran은 뮤직비데오를 일종의 상상력의 포스트모던 놀이터로 재해석했다. 키타리스트 John Taylor가 어떻게 해서 그들이 의도하지 않았던 선구자가 되었는지에 대해서 회상한다.

 

VH1: Duran Duran은 처음에 뮤직비데오를 만들기를 꺼려했나요?

John Taylor: 그것은 우리가 원하기전에 이미 존재했었어요. 그러나 그건 대단한 도구였죠. 밴드는 히트곡을 선전하기 위해 전세계를 돌아다닐 필요도 없었어요. 그래서 그 비데오들은 미국에서는 효과만점이었죠. 우린 우리가 하는 모든 인터뷰마다 왜 사람들이 비데오에 관해 언급하는지 이해가 되지 않았어요. “Hungry Like The Wolf”나 “Rio”같은 노래는 당신들은 비데오로 먼저 접했지요. 그 음악과 비주얼한 면은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동전의 양면이지요. 그들은 우리가 비데오를 만드느라 몇달을 고생하는줄 알고 있어요. 그러나 우리는 그걸 12시간내에 찍을 수 있었죠.

 

VH1: Duran Duran의 비데오에서의 모습에 영향을 준것은 무었인가?

Taylor: ’80년대 초에 나에게 최고의 비데오는 “제3의 인물” – 오손웰즈의 영화를 말하는듯(역주) – 에게 초점을 맞춤으로써 천재적인 영화에 경의를 표했었던 Ultravox의 “Vienna”였었어요. 우리는 그러한 방식을 “Hungry Like The Wolf”에 도입했었죠. 그 당시에 모든 사람들이 Apocalypse Now(프랜시스코폴라 감독의 지옥의 묵시록) 에 열광하고 있었기 때문에 우리는 거기에서 한두가지 아이디어를 따왔어요. 사실 그 노래의 콘텍스트도 거기서 따왔죠.

 

VH1: Duran Duran은 그런 비데오들을 위해 어떤 기여를 했나요?

Taylor: 꼭 그렇진 않아요. 난 음악가이지 영화제작자는 아니니까요. 우린 Russell Mulcahy와 일했는데 그는 뮤직비데오에 관한 책을 썼었죠. 그는 언제나 우릴 깜짝 놀라게 했어요. 그러나 우린 많은 레코드를 만들고 있었어요. 우린 가만히 앉아서 창조적으로 우리 비데오를 만들고 있을 시간이 없었어요. “Wild Boys”는 비데오를 위해 곡을 쓴 최초의 케이스라고 할 수 있네요. 우린 그때문에 Russell과 William Burroughs(네이키드런치의 작가) 의 책 Wild Boys에 관해 이야기를 했었습니다. 그는 그걸 full-length 의 작품으로 만들기를 원했죠. 그는 그것을 위해 노래 한곡을 쓸것을 요구했죠. 우린 곡을 썼고 그가 그 비데오를 위해 고안해낸 아이디어를 집어넣었어요. 그게 우리가 비데오에서의 모습이 어떻게 될까 생각하며 쓴 최초의 곡이었죠.

 

VH1: 당신은 MTV가 팝뮤직을 어떻게 변화시켰다고 생각하십니까?

Taylor: MTV 정말 고마워요! MTV는 차트에 새로운 차원의 에너지를 공급했죠. 젊음이 매우 중요한 요소가 되었어요. MTV는 새로운 아젠다를 요구했어요. 왜냐하면 더이상 라디오에서 연주하는 방식으로는 노래를 연주할 수 없게 되었기 때문이죠. Air Supply나 Christopher Cross의 뮤직비데오에서 그들은 연주는 할 수 있지만 존재하진 않는거에요. 그래서 그들은 새로운 음악을 접해야 했죠. Duran Duran이나 UItravox같은 이들말이죠.(우하~ 뭉게는군요. 못생겼다고…)

VH1: Duran Duran의 성공에 뮤직비데오가 얼마나 기여했다고 생각하십니까?

Taylor: 뮤직비데오는 우릴 수백만의 미국인의 가정에 전파했어요. 그러나 우리 역시 비데오에도 좋았어요 – 자신들이 뮤직비데오의 발전에 기여했다는 말인것 같음(바보역자주) – . 우린 어떤 밴드가 어떻게 미디어를 통해 자신들을 프로모트하는가에 대한 텍스트북 케이스였죠. 그리고 우린 매우 빠르게 진화했어요.

 

VH1: 뮤직비데오가 그들의 경력에 해가 된다고 생각해서 뮤직비데오를 거부하는 어떤 행동과 마주친적이 있나요?

Taylor: The Stones, Rod Stewart 또는 David Bowie같이 이미 명성있는 아티스트들은 그렇게 해야했죠. 그러나 만약 당신이 생존자라면 이 새로운 아이디어에 순응하여야 했죠. 비데오를 만들지 않는것은 매우 인디적인 자세입니다. George Michael은 그의 두번째 앨범 제작시 비데오를 만들지 않으려고 했다고 말하더군요. 그러나 그걸 만들기 전까지는 누구도 그걸 – 두번째 앨범(?) – 사지않았아요. 누군가 성공을 원한다면 비데오를 만들어야 합니다. 그리고 성공을 원하지 않는다면 뭐하러 레코딩 스튜디오로 갑니까?

 

VH1: 당신들은 “Girls On Film” 비데오가 그렇게 야한데에 놀라지 않았습니까?

Taylor: 우린 그 비데오의 내용을 이미 정확하게 알고 있었어요. 만약 우리가 알지 못했다면 매니져라도 알고 있었겠죠. MTV가 일반화되기 전에 뮤직비데오를 볼 수 있는 유일한 곳은 락클럽이었어요. 우리 비데오 “Planet Earth”와 “Careless Memories”는 잘 나갔드랬죠. 그래서 우린 Playboy와 Hustler가 조우하는 “Girls on Film”을 만든거에요. 찍는것은 끔찍했어요. 재미도 하나 없었어요. 우린 그런 녀석들이 아니랍니다. 그거 아세요? 그러나 발매되자 마자 논란거리가 되었죠. 그리고? Thanks very muc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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