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ew Order 東京 공연 後記

사실 당초 보려던 공연은 도쿄 부도칸에서 열릴 예정이던 스톤로지스의 공연이었다. 하지만 6월 2일로 – 그러고 보니 바로 내일 – 내정되어있던 공연이 취소되었다는 메일이 티켓 판매 사이트로부터 온 것이 2주쯤 전이다. 이메일에는 공식 취소 사유도 적혀 있지 않았는데, 밴드의 드러머인 Remi가 갈비뼈를 다쳐 당분간 휴식을 취해야 한다는 것이 유력한 공연 취소 사유였다. 실의에 빠진 나에게 천사 같은 아내가 제의한 것은 뉴오더 공연이었다.

물론 그들의 공연도 당기지 않는 것은 아니었지만 스톤로지스와 겹치는 시즌이었고 내한공연도 즐긴 터라 생각하지 않고 있던 옵션이었다. 어쨌든 그들의 공연은 당초 5월 25일과 5월 26일 연속으로 진행될 예정이었던 것 같다. 하지만 어떤 이유에선지 두 번째 공연이 5월 27일 금요일로 연기되었고 나는 그들의 공연을 보기 위해 하루만 휴가를 내면 되는 다소 편한 상황이 되었다. 그래서 큰 맘 먹고 공연 티켓을 지르고 도쿄로 향하기로 했다.

공연장인 신키바스튜디오코스트는 도쿄 시내에서 다소 떨어진, ‘공연이 아니라면 관광객이 이리 올 일이 있을까’하는 생각이 드는 신키바라는 휑한 지역에 있었다. 공연장 전면에는 뉴오더의 공연을 알리는 가지런한 폰트의 네온사인이 나를 반겼다. 공연장 입장 30분 전쯤에 도착한지라 사람들은 많아야 사오십 명 정도로 한가했다. 그들 중 몇몇은 다양한 뉴오더 셔츠를 입고 있어 ‘나도 저런 셔츠 하나 입었어야 하나’란 팬심도 슬슬 작동했다.

입장을 하는 과정에서 재미있는 것은 스탠딩 티켓도 각각 번호가 있어 그 번호 순서에 따라 차례차례 입장을 한다는 점이었다. 먼저 산 사람이 먼저 입장하는 시스템이니 공연장 앞쪽이 욕심나는 이라면 서둘러 티켓을 구매했을 것이었다. 난 티켓 번호가 502번이었으니 꽤 기다린 후에야 입장했다.. 공연장이 부린 한 가지 꼼수는 음료수 매장의 쿠폰을 의무적으로 구입해야 하며 이를 위해 500엔을 따로 받는다는 점이었다. 안 살 수가 없는 야메!

  • 사진에서 DJ 오른 편에 보이는 모자 쓴 것처럼 보이는 아저씨는 초로의 남성이었는데 뮤직컴플리트 두건에 티셔츠까지 갖춰 입으시고 신나게 춤추며 노시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쿠폰으로 산 맥주를 복도에서 들이켜고 슬슬 공연장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크지도 작지도 않은 규모의 공연장에선 벌써 몇몇이 오프닝 공연을 맡은 DJ가 믹싱하는 연주음악에 맞춰 춤을 즐기고 있었다.. 나이 지긋해 보이는 한 남성분은 두건에서부터 셔츠까지 이번 신보의 로고를 맞춰 입고 춤을 추고 계셨다. 믹싱에 쓰인 샘플링 음악은 역시 스톤로지스, 808 State, Kon Kan과 같은 80년대 음악이었다. 그 공연이 7시 반까지 이어졌다.

7시 반에 등장한 뉴오더는 오리지널 멤버인 버나드 썸너, 스테판 모리스, 질리안 길버트 이외에 두 기타 연주주자가 함께 했다.(위키를 찾아보니 Phil Cunningham과 Tom Chapman이라고 한다) 새 앨범의 두 번째 트랙 Singularity로 시작한 공연은 주로 새 앨범의 트랙을 위주로 진행되었다. 1 신보 홍보를 위해서이니 당연한 이야기겠지만 이런 고참 밴드가 신보 수록곡만으로 공연의 열기를 유지시킬 수 있다는 점은 분명 대단한 역량이었다.

청중의 반응이 가장 뜨거웠던 곡은 당연히 Bizarre Love Triangle이었다. 그렇지만 나머지 곡들 역시 – 꽤 많은 관중이 20~30대로 보였음에도 불구하고 – 관객의 “떼창”이 지속될 만큼 뜨거운 반응으로 이어졌다. ‘일본 관객은 웬만한 공연에도 뜨뜻미지근하게 공연을 감상한다’라는 한국인의 편견이 통하지 않는 반응이었다. 몇 년 전 내한 공연과 비교했을 때에도 확실히 양국간 밴드의 인기에 대한 온도차가 다름을 알 수 있는 상황이었다.

개인적으로 좋아하는 싱글들을 – Round & Round나 World In Motion 등 – 들을 수는 없었고 음향 상태도 썩 훌륭하다 할 수 없었지만, 어쨌든 가장 좋아하는 밴드 중 하나인 뉴오더의 공연을 다시 볼 수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충분히 흥분되는 저녁이었다. 버나드 아재가 선보인 아재개그와 아재댄쓰, 스테판 아재의 열정적인 드러밍, 질리언 아지매의 무심한 표정의 키보드 연주… 2016년 5월 말, 도쿄에서 머문 한 한국인에게 안겨준 그들의 선물이었다.


  1. 앵콜곡까지 총 18곡 중에서 3분의 1인 여섯 곡이 신보 수록곡이니 꽤 많은 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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