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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Lost World

코넌 도일 경은 탐정소설 셜록 홈즈 시리즈를 통해 역사에서 지워질 수 없는 문학가로 이름을 날리고 있지만 다른 한편으로 SF 소설에도 남다른 애정을 지니고 있었다. 코넌 도일 경이 1911년 발표된 The Lost World 는 아마존 지방에 지각의 융기로 다른 세계와 격리된 세계가 있고 그 곳에 선사시대의 공룡이 산다는 줄거리의 소설이다. 어릴 적 이 소설을 일본에서 발간되고 번역된 SF 소설 모음집에서 읽은 기억이 난다. 그 소설집에는 이 소설과 함께 역시 코넌 도일 경의 작품으로 기억되는 높은 창공에 펼쳐지는 또 다른 세계를 소재로 한 소설 등이 실려 있었다.

여하튼 이 작품이 1925년 무성영화로 제작되었다. 영화 첫머리에는 코넌 도일의 동영상도 소개되고 있다. 극의 구성은 앞서 간단히 언급하였듯이 아마존 지역에 존재하는 공룡들의 서식지를 찾아가는 모험담을 줄기로 하고 있다. 이 모험에는 공룡의 존재를 주장하는 비주류 과학자 George Challenger, 약혼녀에게 용기를 과시하려는 젊은 기자 Edward J Malone, 아마존 오지에서 아버지를 잃어버린 아름다운 여인 Paula White, 그리고 그녀를 연모하는 사냥꾼 John Roxton 경 등이다. 결국 이들은 공룡을 발견하지만 그 서식지는 화산폭발로 인해 흔적을 감추었다. 하지만 그들은 우연히 살아남은 브론토사우루스를 발견하였고, 공룡을 영국으로 수송하였지만 항구에서 공룡이 탈출하는 바람에 런던 시내는 아수라장이 되고 만다.

요즘 기준으로 보면 유치하다 치부될지 모르지만 그 당시로서는 획기적이었을 스톱모션 기법을 동원한 공룡의 묘사는 영화사에 큰 획을 긋는 기술의 발전이었고 이후 1933년 제작된 King Kong 에서도 같은 기법이 사용되었다. King Kong 을 비롯하여 쥬라기 공원 등 유사한 영화에 큰 영향을 미친 이 괴수 SF영화는 불행하게도 오리지널 필름이 거의 폐기될 정도로 손상되었으나 후에 62분짜리 필름으로 복원되었다고 한다.

Chelovek S Kinoapparatom(카메라를 든 사나이, The Man With a Movie Camera)

Man with a movie camera.jpg
Man with a movie camera” by This file is lacking author information. – Movie post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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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거 참 괴물같은 영화다.

훨씬 후대에 만들어진 Koyaanisqatsi 를 연상시키는 작품이긴 한데 오히려 그보다 훨씬 혁신적이다. 촬영팀이 찍은 20년대 소비에트의 이런 저런 모습들을 모자이크식으로 엮어놓았는데 이를 통해 영화, 다시 말해 활동사진에서 느낄 수 있는 원초적인 즐거움, 즉 사진이 움직이는 것을 보는 데서 오는 (뤼미에르가 주고자 했던) 쾌감을 느낄 수 있다. 또한 이러한 화면의 연결이 어떻게 이른바 영화에서 볼 수 있는 은유, 비유, 치환, 상징 등 모든 영화문법의 알레고리로 옮겨가는지에 대한 단초도 제공하고 있어 즐거움이 더하다.

여전히 극적 구성을 띠고 있는 것은 아니지만 간간히 일종의 에피소드라 할만한 장면들이 눈에 들어오는데 그 중에서 필름을 편집하는 한 여인의 모습은 영화는 한편으로 ‘편집의 예술’임을 느끼게 하는 장면이다. 또한 영사기가 마치 로봇이라도 되는 양 움직이는 장면이 나오는데 이는 나중에 클레이애니메이션에서 쓰이는 방식을 통해 제작된 장면으로 유머러스하면서도 신선한 충격을 안겨주고 있다.

음악 또한 날도깨비 같다. 그 당시의 헐리웃 영화에서 들을 수 있던 유의 음악이 아니다. 훗날 존케이지나 필립글래스, 그리고 반젤리스 등에서 들을 수 있던 혁신적인 전자음악을 연상시키는 배경음악은 너무나 미래주의적이면서도 어색하지 않아 – 프로그레시브라는 레벨을 달고 있는 음악 중에 오늘날 들으면 촌스러운 음악들도 많다 – 귀가 딱 벌어질 정도다. 특히 첫 트랙은 귀에 쏙 들어올 정도로 마음에 든다. 음악은 영상과 완전히 매치가 되어 살아있는 유기체마냥 꿈틀거린다.

한마디로 이질적인 경외감을 선사하는 작품이다. 하늘에서 그냥 뚝 떨어진 것 같다.

The General

각종 소품의 활용에 있어 천재적인 솜씨를 지닌 Buster Keaton 이 기차를 가지고 화려한 마법을 펼친 1927년 산 작품이다. 1924년 또 하나의 걸작 The Navigator에서 배를 활용하여 극적효과를 극대화시킨 경험을 가지고 있는 Buster Keaton 은 남북전쟁 당시 실제로 있었던 한 사건을 소재로 하여 이 초유의 액션 영화를 창조하였다.

기관차 General 의 기관사인 Johnny Gray(Buster Keaton)는 남북전쟁이 발발하자 군대에 지원하려 하지만 기관사로서의 역할이 더욱 쓸모 있다는 징병기관의 판단에 따라 지원을 거부당한다. 거부사유를 모르는 Johnny 는 이 사실로 인해 애인 Annabelle Lee 에게 조차 겁쟁이로 비난받는다. 어느 날 Johnny는 Annabelle까지 탄 기차를 몰고 가는데 북군 첩자들이 이 기차를 Annabelle 을 인질로 삼은 채 탈취한다. Johnny 는 홀로 그들을 추격하고 여러 아찔한 상황을 맞으며 마침내 남군 지역으로 기차를 가져오고 북군의 습격계획까지 알리는 등 공을 세운다. 당연히 오해가 풀린 애인과의 입맞춤으로 해피엔딩.

Buster Keaton 은 Charlie Chaplin 과 비교할 때 정치적 올바름이랄지 페이소스랄지 하는 보다 심오한 부분에서는 뒤쳐질지 몰라도 그것이 그의 천재성을 폄하시키지는 못한다. 당시로서는 누구도 생각할 수 없는기가 막힌스턴트 – 모든 스턴트는 그가 직접 하였다 – 와스펙터클한 장면의과감한 도입 등- 열차가 다리로 떨어지는 장면은 실제 열차로 찍었는데 무성영화 시절 최고의 제작비가 들었다 한다 – 최고의 퀄리티를 뽑아낸 그의 노력과 이를 뒷받침한영화적 상상력은 이후 수많은 영화인들의 교과서가 되었기 때문이다(그의 절대 팬인 성룡을 비롯하여).

Sherlock Jr.

버스터키튼 Buster Keaton 은 그 천재성과 영화사에서 있어서의 중요성에도 불구하고 동시대의 또 다른 천재 희극인 찰리채플린의 빛에 가려 영원한 2인자 신세로 전락하고만 – 희극계의 트로츠키? – 불운한 배우라 할 수 있다. 그래서 그의 트레이드마크인 무뚝뚝한 표정은 어쩌면 자신의 영화인으로서의 위치를 예감한 표정이 아닌가 싶기도 하다. 이 영화는 1924년에 만들어진 코미디라는 외피를 뒤집어쓰고 있기는 하지만 그 형식적이거나 내용적인 측면에서 동 시대의 영화를 뛰어넘는 위대한 영화이다. 셜록홈즈와 같은 훌륭한 탐정이 되는 것이 소원인 한 젊은이가 영화에 직접 들어가 극중 캐릭터와 함께 사건을 풀어간다는 초현실주의적인 착상은 영화 속의 영화보기라는 묘한 쾌감을 관객들에게 선사하는 동시에 영화의 본질이 무엇인가 하는 문제에 대한 철학적 고찰이라 할 수 있다. 우디알렌은 후에 The Purple Rose of Cairo에서 이 아이디어를 그대로 차용한다(물론 같은 아이디어로 만들어진 라스트액션히어로라는 어이없는 작품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