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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stello, Elvis

Elvis Costello 1978.jpg
Elvis Costello 1978” by Jean-Luc Ourlin – http://www.flickr.com/photos/jlacpo/4646227/. Licensed under CC BY-SA 2.0 via Wikimedia Commons.

엘비스 코스텔로는 가수 겸 작곡로서 소위 New Wave라고 하고 하는 새로운 경향을 주창한 영국의 아티스트들 중에서 평론적인 측면에서든지 상업적인 측면에서든지 최고의 성공을 거둔 록계의 거장이다. 그의 연주에서 그는 힐문하듯 하는가 하면 초연한 듯한 자세를 취함으로써 불가사의한 모습을 보여주는 코스텔로는 과다한 제작 과정을 거친 디스코풍의 음악과는 완전히 대조적이며, 신선한 맛을 풍기는 신랄한 곡들을 작곡하여 그의 독절적이고도 격분한 자세를 반영하고 있다.

엘비스 코스텔로의 경력도 그 초기에는 역시 보잘 것 없는 것이었으며, 확실한 것은 본명이 Declan Patric MacManas이며 리버풀에서 자라났다는 것뿐이다. 아마도 그는 어린 나이에 키타와 작곡을 시작하였을 것이고, 수개월이 아니면 수년 후에 레코드 제작 계약을 맺었을 것이다. 코스텔로는 1976년에 설립된 한 조그만 영국 레코드사인 스티프사에 데모테잎을 보낸 첫번재 아티스트였다. 그의 첫 앨범은 타구역인 마린카운티에 거점을 둔 클로버 밴드와 녹음을 하였으며, 1977년 5월에 영국에서 발매되었다.

그 해 가을에 코스텔로는 어트랙션스라는 펑크 그룹과 함께 첫 영국 순회 공연을 마쳤는데, 그 그룹은 드러머 피터 토마스와 베이스 부르스 토마스, 그리고 키보드 주자 스티브 나이브로 구성되어 있었다.

1977년 스티프 레코드사의 설립 동업자들이 분열되자 코스텔로는 곧 콜럼비아 레코드사로 이적하였고 거기서 샌프란시스코의 올드 왈도프에서 가질 그의 미국 데뷔 공연을 앞두고 My Aim Is True라는 그의 첫 앨범을 발매하였다. 닉 로우에 의해서 제작된 그 앨범은 ‘뉴웨이브’ 앨범으로서는 처음으로 미국의 챠트에서 히트하였는데 거기에는 Less Than Zero, Waiting For The End Of The World, 그리고 그 앨범에는 걸맞지 않는 사랑의 발라드인 Alison이 포함되어 있다. 이 발라드는 1978년에 린다 론스태드의 앨범 Living In The USA에도 수록되었다.

단 하나의 히트 싱글도 없는 코스텔로는 1977년 말과 1978년 초에 미국 순회 공연을 감행하였는데, 그 결과 언더그라운드에서 그를 따르는 추종 세력이 생기게 되었다. 그의 불가사의한 명성은 어트랙션스와 함께 녹음하였고 닉 로우가 제작한 앨범 This Year’s Model로써 더욱 더 강화되었는다.

이 후 3년만에 발표한 세번째 앨범 Armed Forces은 그의 앨범들 중에서 가장 잘 팔렸으며 또 그의 첫번째 골드 수상 앨범이 되었다. 무려 20곡이 담겨 있었던 Get Happy앨범이 나온 바로 직후에 Taking Liberties가 나왔는데 거기에는 B면에 영국과 미국의 싱글들이 포함되어 있었고, 이전에 발매되지 않았던 Girls Talk와 린다 론스테드가 녹음한 Talking In The Dark, 그리고 컨트리 스타인 조지 존스가 녹음한 Stranger In The House 등의 곡들이 포함되어 있었다.

Watch Your Step이 타티틀곡으로 되어 있는 Trust앨범을 낸 후에 엘비스 코스텔로는 Almost Blue에서 컨트리 스타일의 성향을 보였는데 비정통파 컨트리곡인 Tonight The Bottle Let Me Down같은 곡들이 실려 있다. 이후 꾸준히 정력적인 활동을 펼치고 있는 그는 째즈 등 다양한 음악세계를 편력하고 있으며 국내에는 영화 삽입곡 She로 늙은 발라드 가수로 알려져 있다.

디스코그래피
1977 My Aim Is True
1978 This Year’s Model
1978 Live at El Mocambo
1979 Armed Forces
1980 Taking Liberties
1980 Get Happy!!
1981 Trust Rykodisc
1981 Almost Blue: Elvis Introduces His Favorite…
1982 Imperial Bedroom
1983 Punch the Clock
1984 Goodbye Cruel World
1986 King of America
1986 Blood & Chocolate
1989 Spike
1991 Mighty Like a Rose
1993 The Juliet Letters
1994 G.B.H.
1994 Brutal Youth
1995 Kojak Variety
1995 Deep Dead Blue, Live at Meltdown
1996 Jake’s Progress (Original Music from the…
1996 All This Useless Beauty
1997 Terror & Magnificence
1998 Painted from Memory [US]
1999 The Sweetest Punch: The Songs of Costello…
1999 Painted from Memory [UK Bonus CD]
2000 Painted from Memory [Import Bonus Tracks]
2001 King of America [UK Bonus Disc]
2002 Blood & Chocolate [Expanded]
2002 Brutal Youth [Expanded]
2002 This Year’s Model [Expanded]
2002 When I Was Cruel
2002 When I Was Cruel [UK Bonus Track]
2002 Armed Forces [Expanded]
2002 Imperial Bedroom [Expanded]
2002 Mighty Like a Rose [Expanded]
2002 When I Was Cruel [Bonus CD]

링크
공식 싸이트

Cole, Lloyd

postpunk 시대에 가장 명석한 작곡자 중 하나로 인정받았던 Lloyd Cole은 The Commotions과의 밴드활동에서나 솔로활동 양면에서 모두 성공적인 업적을 남긴 아티스트이다. 1961년 영국 벅스턴에서 태어난 그는 1982년 The Commotions를 조직하였다. 애초에 제법 큰 규모의 쏘울밴드였으나 결국에는 Cole을 포함하여 Blair Cowan(k), Neil Clark(g), Lawrence Donegan(b), 그리고 Stephen Irvine(d)의 5인조로 재편되었다. 1984년 영국 Polydor와 계약을 맺은 이들은 Jules and Jim, Simone de Beauvoir, Norman Mailer, On the Waterfront 등에 대한 노골적인 애정을 표현한 가사에 쟁글 키타 싸운드가 곁들여진 이 앨범인 Rattlesnakes로 데뷔하였다. 이 앨범은 영국 차트 30위까지 올랐다. 히트제조기 Alan Winstanley와 Clive Langer가 프로듀스한 2집 Easy Pieces는 “Lost Weekend”와 “Brand New Friend”와 같은 싱글이 발매되었고 두 곡 모두 얼터너티브 래디오에서 인기를 얻었다. 1987년 발매된 Mainstream을 발표할 즈음 Cole은 The Commotions를 해체하였다. 그리고 뉴욕으로 근거지를 옮겨 솔로 아티스트의 길을 쌓아가기 시작하였다. 거기에서 그는 여러 실력있는 아티스트들을 규합하여 1990년 솔로 데뷔 앨범을 발표한 것을 시작으로 21세기인 2001년에 들어서까지 꾸준한 활동을 보이고 있다.

디스코그래피
1984 Rattlesnakes Capitol
1985 Easy Pieces Capitol
1987 Mainstream Capitol
1990 Lloyd Cole Capitol
1991 Don’t Get Weird on Me Babe Capitol
1993 Bad Vibes Rykodisc
1995 Love Story Rykodisc
2000 The Negatives What Are?
2001 2001 Collected Recordings Megaworld
2001 Plastic Wood Megaworld
2001 Etc. Megaworld
2001 Loaded: Live in New York Megaworld

링크
Official Site
Fan Page

Clash, The

Clash 21051980 12 800.jpg
Clash 21051980 12 800” by Helge Øverås, http://www.helgeoveras.com/concertphoto.shtmlOwn work. Licensed under CC BY 2.5 via Wikimedia Commons.

The Clash는 Sex Pistols의 데뷔 앨범이 발매되어 세상을 온통 떠들썩하게 만들던 1976년에 결성 되었다. 소위 얼터너티브 록이 세상에 알려졌을 때 너바나와 펄 잼이 양대 산맥을 이루었듯이 섹스 피스톨스와 클래시는 런던 펑크를 대표하는 밴드로 주목을 받았다. 피스톨스가 펑크의 전형적 스타일을 주도함으로 해서 부각되었다면 클래시는 보다 음악적인 면에서 각광을 받았다. 당시 영국의 노동자 계층의 젊은이들에게 유행하던 래개와 스카 사운드가 클래시의 주된 색체였고, 흥겨운 로커빌리 사운드에 펑크 특유의 과격함과 유쾌함을 담기도 했다. 그들은 데뷔작에서부터 5집 Combat Rock에 이르기까지 음악적 완성도를 더해 나갔으며 다양한 시도를 계속했다. 자신의 음악에 대한 노력은 클래시가 피스톨즈에 비해 오래 존속할 수 있었던 힘이 되었다. 또한 인종, 실업 문제, 전쟁 등 당시의 젊은 프롤레타리아의 정서를 나타내는 정치적인 가사를 썼다. White Riot에서 클래시는 체제 순응적인 백인들의 각성을 촉구했고, Tommy Gun에서는 반전 메시지를 담았다. 그들은 거대자본이 만들어낸 록 비즈니스에 대한 반감을 숨기지 않았으며, 그것은 펑크록이 탄생했을 당시의 정서이기도 했다. 클래시의 데뷔앨범에 수록되어 있는 Whiteman In Hammersmith Palais에서 그들은 새로운 밴드들이 반항을 돈으로 바꾸고 있다고 비난했다. London Calling에 수록된 Death Or Glory에서는 자본의 힘에 쉽게 무너지지 않고 끝까지 싸우겠다는 의지를 과시하였다. 이례적으로 트리플 앨범으로 발매한 4집 Sandinista! 때는 레코드 회사의 강한 거부에도 불구하고 트리플 앨범 발매를 강행하였으며, 레코드사에서 책정한 가격이 비싸다는 이유로 밴드와 레코드사가 마찰을 빚기도 했다. 한편, 클래시의 정치적이고 실천적인 메시지는 의식있는 밴드로서의 명성을 가져다 주었으나, 그로인해 지나치게 영웅시되거나 과대포장 되기도 했다. 하지만 이 점에 있어서는 피스톨즈가 무정부주의자라서 무정부주의를 부르짖은 것이 아닌 것과 같이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로스앤젤레스 타임스와의 인터뷰에서 밴드의 리더 죠 스트러머는 “사람들이 우리를 체 게바라 쯤으로 여기는 것에 대해 종종 걱정스럽다.”고 말한 바 있다. 하지만 밑바닥 인생을 통해 만들어진 그들의 메시지들은 보이지 않는 권력에 대한 본능적인 혐오를 드러내었고, 수많은 록 팬들의 공감을 얻었다. (from Clash on the web)

세상을 등진 Joe Strummer의 명복을 빕니다.

디스코그래피
THE CLASH – UK Version(1977)
GIVE’EM ENOUGH ROPE(1978)
THE CLASH – US Version(1979)
LONDON CALLING(1979)
SANDINISTA!(1980)
COMBAT ROCK(1982)
CUT THE CRAP(1985)
THE STORY OF THE CLASH(1988)
CLASH ON BROADWAY(1991)
SUPER BLACKMARKET CLASH(1993)
LIVE : FROM HERE TO ETERNITY(1999)

China Crisis

’80년대 초반 New Romantics 진영에서 활동했던 China Crisis는 그들의 노래에 정치적 주석과 블루지한 또는 레게적인 리듬을 반영하곤했다. 대부분의 활동기간동안 보컬이자 키보드를 맡았넌 Gary Daly와 키타를 맡았던 Eddie Lundon의 듀오의 형태를 유지했던 이 그룹은 1979년 Liverpool에서 결성되었다. 그들의 첫싱글 “African and White”는 1982년 발표되었다. 이 싱글로 말미암아 그들은 Virgin에 픽업되었고 영국차트에 진입하였다. 멤버보강의 필요성을 느낀 Daly와 Lundon은 베이스 Gazza Johnson과 드러머 Kevin Wilkinson을 영입하였다. 이어 그들은 데뷔앨범 Difficult Shapes & Passive Rhythms를 발표하였다. 또다른 싱글 “Christian”이 차트 12위까지 진출하였다. China Crisis의 전성기는 1984년에서 85년까지였다. 이 시기 그들은 차트를 누비고 다녔는데 그들의 첫 탑텐 히트 “Wishful Thinking”도 이 시기에 발표된것이다. 세번째 앨범 Flaunt the Imperfection은 Jazz Rock 밴드 Steely Dan에서 활동했던 Walter Becker가 프로듀싱을 담당하였고 이 앨범에서 “Black Man Ray”, “King in a Catholic Style” 등이 히트하였다. 이후 그들의 작업은 비평은 호의적이었으나 상업적으로는 큰 호응을 얻지 못한다.

디스코그래피
1982 Difficult Shapes & Passive Rhythms, Some… Virgin
1983 Working with Fire and Steel Possible Pop… Warner
1985 Flaunt the Imperfection Warner
1986 What Price Paradise? A&M
1989 Diary of a Hollow Horse A&M
1994 Warped by Success Stardumb
1995 Acoustically Yours Telegraph
1998 Wishful Thinkin’ Recall

링크
Fan Page

Chicag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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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icagothebandmillbrook lar” by TristanbOwn work
“I botched up a bit when I removed the crowd. I didn’t ruin anything that wasn’t already block by people’s heads, so anyone else is welcome to try touching it up. The filename was cropped by photoshop. It was *_large.jpg.”. Licensed under CC BY-SA 3.0 via Wikimedia Commons.

Chicago는 Beach Boys 다음으로는 유일하게 두번째로 가장 성공한 미국 락 밴드이다. Chicago는 공식적으로 67년 2월 15일에 그 이름을 따온 도시에서 조직되었다. 밴드의 멤버들은 이 당시로는 새로운 아이디어였던 완전한 호른 섹션(금관악기편성)을 가진 락 그룹을 출범시키려 하였다. 그래서 원래의 라인업은 색소폰과 우드윈드를 맡은 Walter Parazaider 트럼펫을 맡은 Lee Loughnane, 기타와 보컬을 맡은 Terry Kath, 드럼을 맡은 Danny Seraphine, 트럼본을 맡은 James Pankow, 오르간과 보컬을 맡은 Robert Lamm 으로 구성된 6인조였다.

초기에는 그 그룹은 베이스 연주자 없이 활동하려 하였다. 하지만 67년 12월에 베이시스트이자 보컬인 Peter Cetera가 라이벌이었던 the Exceptions로부터 옮겨오게 되었다. 그들에게 Chicago Transit Authority라는 이름(진짜 C.T.A-시카고 통행국-이 반대를 하여 나중에는 Chicago로 바뀌었다.)을 붙여 준, 매니저이자 프로듀서였던 James William Guercio의 지도하에 LA로 옮겨서 Columbia 레코드와 계약하고 67년 1월에 데뷔 앨범 Chicago Transit Authority을 레코딩했다. 그 앨범은 2백만장 넘게 팔렸고 60년대 말까지 계속되는 거대한 히트들의 연속을 시작하는 4개의 차트 싱글을 낳았으며 각 앨범들은 Chicago 로고와 연속적인 로마숫자를 다양하게 변화시켜갔다.(Chicago II, Chicago III, …)

이 숫자는 나중에 일상적인 숫자로 바뀌게 되었다. Chicago의 음악은 하드락에서 가벼운 팝까지의 스타일의 혼합이었고 재즈와 클래식의 요소들을 종합하는 것이었다. 하지만 Cetera의 If You Leave Me Now가 76년의 gold-selling 넘버1 히트가 되자 로맨틱 발라드로 특징지워지게 되었다.

시카고는 77년에 Guercio와의 결별, 78년의 Kath의 갑작스런 사망 이후에 쇠퇴하게 되었다. 그러나 82년에 Hard To Say I’m Sorry 로 다시 일어섰으며 Chicago 16앨범은 밀리언셀러가 되었으며 85년 Cetera의 솔로로의 출발에도 불구하고 새로워진 인기를 지탱할 수 있게 되었다. 수년간의 히트 이후에 올디스쪽으로 물러났기 때문에 Chicago의 인기는 90년 대초에 들어서면서 줄어들게 되었다.

디스코그래피
1969 Chicago Transit Authority Chicago
1970 Chicago II Chicago
1971 Chicago III Chicago
1971 At Carnegie Hall, Vols. 1-4 (Chicago IV) [live] Chicago
1972 Chicago V Chicago
1972 Live in Japan 1972 Chicago
1973 Chicago VI Chicago
1974 Chicago VII Chicago
1975 Chicago VIII Chicago
1976 Chicago X Chicago
1977 Chicago XI Chicago
1978 Hot Streets Chicago
1978 Chicago Transit Authority: Live in Concert… Magnum
1979 Chicago 13 Chicago
1980 Chicago XIV Chicago
1982 Chicago 16 Full
1984 Chicago 17 Full
1984 Toronto Rock ‘n’ Roll Revival 69 [live] Design
1986 Chicago 18 Full
1986 Live Chicago Castle
1988 Chicago 19 Full
1989 Beginnings Live Peter Pan
1991 Twenty 1 Full
1993 In Concert [live] Pilz
1994 Live in Concert Happy Bird
1995 Night and Day: Big-Band Giant
1995 Chicago Live Intercontinent
1996 Live [Richmond] Richmond
1996 Live in Toronto Magnum
1997 Great Chicago in Concert [live] Goldies
1998 Chicago’s First Christmas Chicago
1998 Chicago Transit Authority: Live in Concert… Ornyx
1998 Chicago 25: The Christmas Album Chicago
1999 I’m a Man [live] Hallmark
1999 Beat the Bootleggers: Live 1967 Griffin Music
1999 Chicago XXVI – The Live Album Chicago
1999 Live! [Columbia River] Columbia River
1999 Rock In Toronto [live] Cleopatra
2000 Live ’69 Prism

Charlene

Soul의 전당인 Motown에서는 매우 드문 백인 여성 싱어였던 Charlene(본명 : Charlene Marilynn D’Angelo) 은 곱상한 미모와 달리 꽤 어려운 삶을 살았던 아티스트였다. 할리우드에서 태어난 그는 16세에 학교를 중퇴 후, 17세의 어린 나이에 결혼했지만 마약에 중독 되어 수감되는 등 거친 나날을 보내기도 했다. 그렇게 괴로운 시기를 보내던 중 그는 어릴 적 꿈이었던 가수가 되어 고통스런 삶에서 벗어날 결심을 하게 된다.


그리고 마침내 1973년에 Motown에서 그의 데모 테이프를 인정하여 계약을 체결했고, 1976년에 데뷔앨범을 내놓았다. 싱글이 Hot100에 진입하기는 했지만 큰 성공을 거두지는 못하였고 가수의 꿈도 그렇게 사그라지는 듯 했다. 하지만 1982년 플로리다의 라디오 방송국에서 임신중절을 소재로 다룬 그의 곡 I’ve Never Been To Me를 틀어댔고 이것이 기폭제가 되어 Top3에 진입하는 대히트를 기록하여 Charlene 은 다시 음악계에 부활할 수 있었다.


하지만 그 행운도 잠시여서 이 히트의 직후 AOR 앨범 Used To Be, 84년에도 Hit & Run Lover를 내놓았지만 흥행에 실패하여 결국 1985년 Motown을 떠나고 만다. 한편 I’ve Never Been To Me는 동성애를 다룬 영화 프리쉴라의 사운드트랙에 쓰이면서 또 한번 주목을 받기도 했다.

디스코그래피
1982 I’ve Never Been to Me Motown
1982 Sky Is the Limit Chapel Lane
1982 Used to Be Motown
1984 Hit & Run Lover Motown

링크
eririn80
아티스트 정보
I’ve Never Been To Me 감상&가사

Charlatans

80년대 초반 등장하여 영국 전역을 초토화시킨 더 스미스는 맨체스터 출신이었다. 스미스의 출현이후 단지 대규모 공업지대에 지나지 않았던 맨체스터는 음악적으로 중요한 하나의 조류-일명 매드체스터-를 형성하는 지역이 되었다. 80년대 후반부터 90년대 초반까지 소위 매드체스터라고 불리는 일군의 음악적 흐름을 조성했던 네 밴드-스톤 로지스,해피 먼데이스,인스파이럴 카펫츠,샬라탄스 -는 60년대 비틀즈에 기반한 정통 기타팝과 사이키델릭 사운드,그당시 클럽가에서 유행하던 애시드 하우스 뮤직 등을 융합한 독특한 형태의 음악을 제시하였고 이들의 음악은 80년대 후반 영국의 사회적 상황과 맞물려 큰 인기를 끌게 되었다. 매드체스터 씬의 후발 주자로 매드체스터 씬이 최고의 절정을 이루고 있을때 시장에 뛰어든 샬라탄스는 스톤 로지스나 해피 먼데이스 등 배기 사운드의 선배 들과는 조금 다른-댄서블한 비트에 하몬드 오르간의 사이키델릭한 사운드를 접목 한-음악을 선보였다.


지금까지도 활동을 계속하고 있는 매드체스터의 마지막 보루 샬라탄스는 88년 말에 맨체스터 남부의 노스위치에서 결성되었다.초기의 라인업은 존 브룩스(D),마틴 블런 트(B),롭 콜린스(K),존 베이커(G),바즈 케틀리(V)이었다.스톤 로지스의 오프닝 밴드 로 활동하던 이들은 좀더 카리스마를 가진 보컬을 찾아나서게 되고 결국 오디션에 합격된 새로운 보컬은 ‘믹재거의 입술을 가진 남자’라고 불리는 팀 버제스가 되었다.


팀 버제스가 보컬로 영입된 후 샬라탄스는 89년 데뷔 싱글 ‘INDIAN ROPE’를 발표한 다.팀 버제스의 독특한 보컬과 하몬드 오르간을 전면에 배치한 새로운 사운드로 평 론가들의 지지를 받으며 처음 발매한 싱글이 2만 5천장이라는 경이로운 판매고를 기 록한 후 샬라탄스는 여러 메이저 레코드사로부터 계약 제의를 받지만 결국 자신들의 활동에 편리한 밴 한대를 받는 것을 추가 조건으로 하고 인디 레코드 회사인 베가스 뱅큇과 계약을 맺는다.


새로운 싱글’THE ONLY ONE I KNOW’는 싱글차트 9위에 진입하고 데뷔 앨범’SOME FRIE ND’는 차트 1위에 오르는 기염을 토하게 된다.그러나 기타리스트인 존 베이커가 음 악적 견해 차이로 탈퇴를 하게되고 한때 인스파이럴 카펫츠의 운전수로 일한 적이 있는 마크 콜린스가 새로운 기타리스트로 영입된다.


새로운 라인업으로 발표한 ‘WEIRDO’라는 유명한 싱글이 들어있는 2집 ‘BETWEEN 10TH AND 11TH’는 1집 때보다 좀더 팝적인 성향이 강한 스타일의 앨범으로 샬라탄스 사 운드의 핵이었던 롭 콜린스의 유려한 하몬드 오르간 사운드가 주목할만하다. 2집의 상업적 성공 이후 3집 앨범 녹음 작업중 키보디스트 롭 콜린스가 무장강도 혐의로 감옥에 가게 되는데 이때문에 샬라탄스는 3집을 키보드를 제외한 부분을 먼 저 녹음하고 롭의 출소를 기다린뒤 앨범을 완성하게 된다.이렇게 우여곡절 끝에 탄 생한 3집 앨범’UP TO OUR HIPS’는 전의 앨범들보다 좀더 테크노에 가까운 형태를 보여준다.


3집을 발표한 이후 영국 음악계에는 변화가 생긴다.기존의 매드체스터 씬은 서서히 소멸해가고 있었고 오아시스를 필두로 한 새로운 음악적 흐름이 조성되고 있었던 것 이다.소위 ‘브릿팝’이라고 뭉뚱그려 표현하는 이 기타팝의 부상은 매드체스터 씬의 마지막 보루였던 샬라탄스에게도 자극이 되었고 95년 발표한 4집 앨범’CHARLATANS’ 는 기존의 키보드 사운드보다는 기타가 중시된 형태가 되었다.롤링스톤즈의 정통 락 과 애시드 하우스를 적절히 조화시켰다는 평단의 호의적인 태도와 함께 이 앨범은 앨범 차트 정상을 차지하기도 했다. 그렇지만 이러한 성공에 이어 찾아온 큰 시련이 샬라탄스를 덮쳤다.키보디스트 롭 콜린스가 교통사고로 사망하게 된 것이다.샬라탄스 사운드를 만들어 냈다고해도 과언이 아닐만큼 팀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던 롭 콜린스의 사망은 샬라탄스 에게 굉장한 위기였다.팀의 해체 문제를 심각하게 고려하던 멤버들은 어찌되었건 작 업을 하고 있던 앨범을 마무리지었고 키보드는 프라이멀 스크림의 마틴이 대신 녹음 을 해주게 되었다.


이렇게 발매된 5집’TELLIN’STORIES’는 롭 콜린스를 애도하는 듯한 인상을 주는 자켓을 달고 발매되었고 많은 팬들과 음악 잡지의 우려와는 달리 별로 변하지 않은 바로 그 ‘샬라탄스 사운드’를 들려주었다.이 앨범 역시 발매 첫주에 앨범 차트 정상을 차지했다. 그동안 몸담았던 베가스뱅큇 레이블과 결별한 샬라탄스는 MCA와 새롭게 계약을 맺었 으며 토니 로저스가 새로이 키보드에 영입되었다.롭을 위해서라도 결코 밴드를 해산 시키지 않겠다던 밴드의 다짐이 현실화된 것이다. 현재 샬라탄스는 특별한 움직임을 보이지 않고 있으며 올해 베가스뱅큇에서 그동안 발매된 샬라탄스의 싱글들과 앨범 수록곡들을 모아 베스트 앨범을 발매했다. Written by 오키스(유니텔 뮤직플러스)(1998. 9.17)


디스코그래피
댄서블한 리듬 위에 얹힌 팝적인 멜로디, 60년대를 연상시키는 고풍스런 올갠 사운드, 간간히 눈에 띄는 도취적인 사이키델리아 등을 담고있던 샬라탄스의 음악은 맨체스터 붐속에 자연스럽게 녹아들어갔으며 이 인상적인 데뷔앨범은 영국차트 1위에 올랐다. 이들은 [Between 10th And 11th](92), [The Charlatans](95) 등의 수작들을 비롯해 베스트앨범 [Melting Pot](97)을 계속해서 발표하며 브릿팝씬을 주도해 나갔다. 본작을 발표하기 직전 미국에 동일한 이름의 밴드가 있다는 것을 알고 밴드명을 ‘Charlatans UK’라고 개명했다.

1990 Some Friendly Beggars
1992 Between 10th and 11th Beggars
1994 Up to Our Hips Beggars
1995 The Charlatans [UK] Beggars
1997 Tellin’ Stories MCA
1999 Us and Us Only Uptown/Univers
2000 Us and Us Only [Import Bonus Tracks] Universal

링크
공식 홈페이지

Chapman, Tracy

Tracy Chapman 3.jpg
Tracy Chapman 3” by Hans HillewaertOwn work. Licensed under CC BY-SA 3.0 via Wikimedia Commons.

흑인 여가수라면 뚱뚱한 체구에 쏘울풀한 가스펠을 불러 젖히거나 섹시한 몸을 흔들며 댄스팝을 들려주리라는 선입견을 가지고 있다. 다시 말해 가수가 흑인에다가 여성이라면 소위 ‘지성’보다는 ‘감성’에 의존할 것이라고 치부해버린다는 사실이다. 물론 상당수의 흑인 여가수가 그러한 현실이 사실이지만 여기 소개하는 Tracy Chapman 은 그러한 선입견에 정면으로 배치되는 인물이다.

사실 그녀의 걸어온 삶을 살펴보면 교회에서 성가대로 활동하다가 뛰어난 실력을 인정받아 가수로 데뷔하였다는 흔해 빠진 흑인 여가수의 성공스토리와는 사뭇 다른 구석이 있다. 클리블랜드의 노동계급의 동네에서 자란 그녀는 어린 시절 기타를 배우며 자신의 곡을 쓰기 시작했다. 고등학교를 졸업한 후 Tufts 대학에 진학한 그녀는 인류학과 아프리카학을 배웠다. 대학에서 포크락에 매료된 그녀는 커피하우스에서 자신의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다. 이후 학우의 우연찮은 도움으로 레코드 관계자의 눈에 띈 그녀는 Neil Young, Joni Mitchell 등과 일한바 있는 Elliot Roberts와 매니저 계약을 맺고 1987년 Elektra와 레코드 계약을 체결하게 되었다.

80년대 후반 싱어-송라이터의 포크적 전통을 회복한 그녀의 데뷔앨범의 엄청난 성공은 아무도 예측하지 못했던 사건이었다. 그녀는 이 앨범에서 심플한 멜로디에 선명성을 띈 가사에 실어 자신의 생각을 매우 신선하고 파워풀하게 전파하였다. 이 앨범에서는 “Fast Car”가 싱글차트 6위에 까지 오르는 성공을 거두었다. 이듬해 그래미는 그녀에서 최우수 신인상을 비롯한 4개의 트로피를 안겨주어 그녀와 그녀의 앨범을 한껏 칭송하였다.

그녀가 앨범을 낼 당시에 Tracy와 같이 프로패갠더적 행동가를 자처하는 가수는 거의 씨가 말라 있었다. 그러한 상황에서 그녀의 성공은 90년대 10,000 Maniacs나 R.E.M. 기타 컬리지락 씬에서 활동하던 소위 ‘정치적으로 올바른’ 가수들 의 상업적 성공의 가능성을 한껏 고무시키는 계기가 되었다.

그러나 1집에서 너무 많이 꿀맛을 본 가수들이 의례 그렇듯이 그녀 또한 이어지는 앨범들에서 상업적으로 큰 성공을 거두지 못하였고 – 여전히 비평은 호의적이었지만 – 1996년 네 번째 앨범에서 탑텐싱글 “Give Me One Reason”을 히트시키며 차트 일선에 복귀하였다. 그리고 지난해인 2002년에도 신보 Let It Rain을 내며 시들지 않는 왕성한 생명력을 과시하고 있다.

디스코그래피
1988 Tracy Chapman Elektra
1989 Crossroads Elektra
1992 Matters of the Heart Elektra
1995 New Beginning Elektra
2000 Telling Stories Elektra
2001 Telling Stories [Bonus CD] WEA
2002 Let It Rain Elektra
2002 Let It Rain [Australian Bonus Track] WEA

링크
About Tracy Chapman
Fan Page

Cars, The

The Cars.jpg
The Cars” by http://i.ebayimg.com/10/!BTqw+BgBGk~$(KGrHgoOKicEjlLmZ3G2BKJr,gih,!~~_1.JPG, Copyright : Rhino Entertainment Company/Elektra Records, 1984, 2001. Licensed under Wikipedia.

결성 : 1976년 보스턴
해체 : 1988년
멤버 : Ric Ocasek, Elliot Easton, Greg Hawkes, Benjamin Orr, David Robinson

Cars는 개성이 다른 다서 명의 멤버들이 모여 창조적이고 진취적인 뉴웨이브 싸운드를 들려주었던 그룹으로 후기 비틀즈와 데이비드 보위, 락시뮤직, 벨벳언더그라운드 등으로부터 영향을 받은 재치있는 밴드이다.

1972년 오하이오주 어느 파티 삭상에서 릭 오케이섹과 벤자민 오어가 우연히 만나 서로 악기 연주를 해본 것이 인연이 되어 일주일 뒤 듀오를 결성했는데 이것이 Cars의 기원이 되었다. 이들 듀오는 보스턴으로 진출하여 오리지널 곡을 연주하며 대중의 관심을 끌었다. 보스턴에서 1년 반이 지난 1974년 볼티모어 출신의 키보드, 관악기, 피리 등 다양한 악기 연주자 그리그 호크스와 뉴욕 출신의 왼손잡이 키타리스트 엘리엇 이스튼을 그룹에 가담시켰고 1976년 말 보스턴에 거점을 둔 DMZ 출신의 데이빗 로빈슨이 Cars에 가입함으로써 진용을 갖추게 되었다.

1977년 이들은 Just What I Needed라는 곡의 데모테잎을 만들어 보스턴의 한 방송국에 보냈는데 이 곡은 보스턴 전 지역에서 크게 히트했다. 이렇게 알려진 이들은 그 해 12월 일렉트러 어사일럼 레코드사와 계약을 맺고 로이 토마스 베이커와 손을 잡았다.

이듬 해인 1978년 1월 런던 순회 공연을 마치고 돌아와 데뷔 앨범 The Cars를 발표해 싱글 커트된 Just What I Neede와 My Best Friend’s Girl그리고 Good Times Roll이 연속하여 히트하였다. 앨범 또한 크게 히트하여 영국과 미국에서 플래티늄을 기록했다.

데뷔앨범의 히트로 유럽 순회 공연을 성공리에 끝내고 돌아온 이들은 1979년 초에 실시된 그래미상 시상식에서 최우수 신인상을 받았다. 같은 해 7월에 이들은 두번째 앨범 Candy-O를 발표해 싱글 Let’s Go와 It’s All I Can Do의 히트로 더블플래티늄 앨범이 되었지만 1980년 10월에 발표된 세번째 앨범 Panorama는 싱글 Touch And Go이외엔 큰 성과를 거두지 못했다.

그러나 1981년 말에 발표된 이들의 네번째 앨범 Shake It Up은 타이틀 송의 빅히트에 힘입어 또다시 플래티늄을 기록했고 계속해서 Since You’re Gone이 뒤를 이어 히트했다. 이 앨범으로 더욱 명성을 얻은 이들은 비정한 도시 생활을 주제로 한 명쾌한 로큰롤 작품으로 뉴웨이브의 주류에서 주요한 역할을 하는 그룹이 되었으며 이 후 리더 릭 오케이섹의 1983년 솔로 앨범을 발표했다.

디스코그래피
1978 The Cars
1979 Candy-O
1980 Panorama
1981 Shake It Up
1984 Heartbeat City
1987 Door to Do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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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amper Van Beethoven

1985년에 데뷔한 Camper Van Beethoven는 펑크, 포크, 스카, 그리고 월드뮤직이 조화롭게 섞인 음악을 선물한 밴드이다. 그들 스스로는 자신들의 음악을 “초현실주의적이고 부조리주의적인 포크”라고 칭하였다. 이들은 싱어송라이터인 David Lowery, Chris Molla(호호 몰라라는 성이 있군요), Chris Pedersen이 각각 활동하고 있던 밴드를 그만둔 후에 산타크루즈를 기반으로 결성되었다. 이후 Victor Krummenacher가 베이스에, Greg Lisher가 키타에, 그리고 Jonathan Segel이 바이올린/키보드/만돌린에 가세했다. 얼터너티브가 아직 본격적으로 수면으로 드러나기도 전이고 인디락이라는 명칭 자체도 아직 낯선 시절이었지만 Segel의 바이올린 사운드는 그룹의 이미지를 확실히 각인시켜주는 특징이었다.

1985년부터 1989년까지 다섯장의 앨범을 선보였던 이들은 컨트리에서 펑크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장르의 음악을 자신들만의 색채로 꾸며 내놓았고 이러한 퍼스낼리티와 음악성은 평론가들로부터 호평을 얻었다. 이 기간 동안과 그 이후에도 몇 번의 멤버교체와 부침을 겪으며 지난 2002년에는 Tusk 라는 앨범을 내놓기도 했다.

디스코그래피
1985 Telephone Free Landslide Victory IRS
1986 II & III IRS
1986 Camper Van Beethoven IRS
1988 Our Beloved Revolutionary Sweetheart Virgin
1989 Key Lime Pie Virgin
2002 Tusk Pitch A Ten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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