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테고리 보관물: 스릴러

Rear Window

히치콕의 제작 의도는 명백해 보인다.

“너희들도 훔쳐보고 싶잖아. 그치?”

문명이 발전하면 할수록 사회는 짐짓 점잔을 빼며 남의 일에는 참견하는 것이 아니라는 일종의 Privacy 의 개념을 발전시켜왔다. Curiosity Killed The Cat, Nono Of Your Business 등과 같은 영어 관용구는 이러한 문화를 반영한 것이다. 그런데 인간에게 – 또는 동물에게 – 호기심은 어쩔 수 없는 본능이다. 붐비는 거리 한 가운데서 누가 하늘을 바라보고 있으면 너도 나도 하늘을 쳐다보고야 마는 그 억제할 수 없는 본능이 누구에게나 내재해있다. 영화는 이러한 인간의 본능을 남의 프라이버시를 침해함이 없이 충족시켜주는 적절한 매체이다. 작품 속 주인공인 L.B. Jeffries(James Stewart)은 다리를 다쳐 깊스를 하는 바람에 영화를 보러가거나 하는 그런 욕구분출구가 없었다. 그래서 옆집의 안방을 슬금슬금 훔쳐보기 시작했다. 관객은 주인공의 눈을 통해 이 훔쳐보기에 동참했다. 때마침 그의 훔쳐보기를 정당화시켜줄만한 일이 벌어졌다. 살인사건이 벌어진 것이다. 옴짝달싹할 수 없는 Jeff 는 몸이 달아 이 상황을 애인에게 알리고 애인(Grace Kelly)은 그의 발을 대신해 살인현장에 잠입한다. 한정된 공간과 주인공의 한정된 능력이라는 설정은 스릴러의 긴장감을 극대화시키는데 한 몫 한다. 결국 살인사건을 해결하게 됨으로써 주인공은 영웅이 되었지만 그의 훔쳐보기는 Michael Powell 의 1960년 작 Peeping Tom 의 주인공의 그 음란한 훔쳐보기에 비해 도덕적으로 우월할 것이 없다. 훔쳐보기란 애당초 사건해결로 정당화될 수 없는 일종의 원죄로 낙인찍힐 수밖에 없는 어쩔 수 없는 본능인 것이다. Brian De Palma 감독이 Body Double에서 이러한 설정을 오마쥬했다.

Klute

Alan J. Pakula 의 ‘패러노이아 삼부작’ 중 가장 이른 1971년 제작된 스릴러물. John Klute (Donald Sutherland) 어느 날 갑자기 실종된 친구 Tom Gruneman 을 찾아 나서기로 결심한다. 그의 유일한 단서는 Tom 이 편지를 보내곤 했다던 뉴욕의 콜걸 Bree Daniels (Jane Fonda). 남성에게 적대적인 그녀를 설득하여 Tom 의 흔적을 찾으려 애쓰지만 상황은 점점 꼬여져만 간다. 형식은 스릴러이지만 실제로는 무뚝뚝한 존과 세상과 담을 쌓고 살았던 브리와의 사랑이야기에 가깝다. 묘한 인연으로 만난 둘이지만 점차 서로를 아끼게 되는 전개과정이 제법 귀엽게(?) 그려지고 있다. 특히 과일가게로 둘이 쇼핑하러 간 장면에서의 제인폰다의 애틋한 표정연기와 존의 옷자락을 잡고 걸어가는 모습은 극의 품격을 높여주는 아름다운 장면이었다. 이 시기 베트남전에 대해 소리 높여 비난했던 제인폰다는 반전운동과 여성해방운동의 심볼로 부상되었고 극 중에서도 남성으로부터 독립하고자 몸부림치는 도시여성의 모습을 잘 그려내고 있다. 이 덕분에 그녀는 그해 아카데미와 골든글로브에서 여우주연상을 수상했다.

The Parallax View

정치적 음모론을 기반으로 한 정치 스릴러의 귀재인 Alan J. Pakula 가 그의 전성기였던 1974년에 완성한 작품이다. 케네디의 암살사건에서 영감을 받았음이 분명한 이 작품은 호쾌하게 펼쳐지는 화면 안에서 거대한 악의 세력과 삼류신문기자 조 프래디의 대결이 긴장감 있게 펼쳐진다. 시애틀의 전망대인 스페이스니들에서 유망한 정치가가 총격에 쓰러진다. 다른 이가 그를 쏘았음이 분명하지만 엉뚱한 친구가 저격범의 누명을 뒤집어쓰고 비명횡사한다. 조사위원회는 아무런 배경도 없는 단독범행이라고 발표하지만 당시 사건현장에 있던 목격자들이 하나둘씩 의문사 한다. 마침내 음모집단의 존재를 눈치 챈 조 프래디는 현장탐방에 나서고 우연히 Parallax Corporation 이라는 이상한 회사의 존재를 알게 된다. 감독은 관객에게 스릴러 특유의 묘미인 반전의 기회를 제공하지 않는다. 오히려 관객을 더욱 혼란스럽게 만든다. 이를 통해 정치적 음모집단이 어느새 우리 곁에 얼마나 가까이 다가와 있는지, 그럼으로써 얼마나 자주 우리를 기만하는지를 각성시키고자 한다. 이러한 감독의 주장이 사실인지는 알 수 없다. 하지만 적어도 자신의 주제를 각인시키고자 하느 그의 형식실험은 성공을 거둔 것으로 보인다.

Kiss Me Deadly

장뤽 고다르나 프랑수아 트뤼포 같은 누벨바그 감독들의 열렬한 지지를 받은 바 있는 로버트 알드리치 감독의 1955년작. 느와르 필름의 최전성기에 만들어진 걸작으로 꼽히고 있다. 미키 스필레인 원작의 인기 탐정 마이크 해머 소설을 영화화한 작품으로 미스테리한 미녀의 죽음, 구사일생한 터프가이 탐정,그 터프가이를 배신하는 또다른 미스테리의 여인,그리고 그의 섹시한 여비서 등 거칠고 을씨년스러운 하드보일드 스릴러의 공식을 충실히 따르고 있다(안티히어로에 팜므파탈이 동시에 등장하니 뭐 더 할말이 없다). 정신병원에서 탈출하였다는 크리스티나라는 여인을 태워준 탐정 마이크 해머는 그녀를 뒤따르던 악당들에게 죽을 뻔한 위기를 넘기고 난후 ‘나를 기억해 달라’는 크리스티나의 마지막 말을 힌트삼아 사건을 역추적 한다. 이 와중에 정체모를 악당들은 그를 을러대고 주위 사람들은 하나둘씩 죽어간다. 서로 죽고 죽이는 와중에 욕심 많은 여인의 호기심이 빚은 비극이 끔찍하면서도 자못 희극적이다.

p.s. 1) 이 영화의 일어제목은 어이없게도 『키스로 죽여줘キッスで殺せ!』 라고 한다.
2) 한편 한 영화사가에 따르면 미국개봉 판과 유럽개봉 판의 마지막 장면이 다르다고 한다.

Family Plot

만일 당신에게 일면식도 없는 백만장자 친척이 유산을 물려주겠다며 당신을 찾아 나섰다면 어떤 기분일까? 또는 어떻게 대응할 터인가? 영화는 이렇게 시작된다. 엉터리 주술사가 백만장자의 속사정을 알고 상속자를 찾아주면 거금의 수수료를 주겠다는 제안을 받는다. 그 상속자를 찾아 나섰는데 그는 공교롭게도 ‘악의 화신’에 가까운 범죄자. 그런 사실을 모른 채 주술사와 그의 애인은 그를 찾아 나섰다가 곤욕을 치른다. 세상 바르게 살라는 메시지. 히치콕의 작품치고는 그 분위기가 충분히 음모스럽지 못한 탓인지 올무비의 평가는 그리 후하지 않은 편이다.

Body Heat

어렸을 적 이 영화의 포스터가 동네에 붙여져 있었을 때 당연히 ‘야한’ 영화일거라고 생각했다. 어설픈 영어솜씨라도 Body 라는 단어와 Heat 라는 단어의 뜻은 대충 알았고 ‘몸이 뜨겁다는’ 것이 무엇을 은유하는지도 어렴풋이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포스터의 스틸도 제법 야했다.

사실 야한 영화이긴 하다. 스릴러에 초점을 두고 있지만 끈적끈적한 날씨와 치명적인 매력의 캐서린터너가 결합되면서 묘한 에로틱한 분위기가 영화 전편에 걸쳐 뿜어나기 때문이다.

영화의 플롯은 스릴러 고전 Double Indemnity 와 흡사하다. 팜므파탈 캐릭터의 여주인공이 남자주인공의 지적능력을 활용하기 위해 일부러 접근하여 음모를 꾸민다는 점에서 그렇다. 어찌 보면 Double Indemnity 의 오마쥬일지도 모르겠다. 그렇다면 로렌스캐스단은 무슨 배포로 Double Indemnity 를 리메이크 혹은 오마쥬 하였을까? 자칫 반전이 묘미인 스릴러를 어설피 베끼다가는 본전도 못 건질 텐데 말이다. 그는 자신의 감독으로서의 능력과 캐서린터너의 능력을 믿었던 것 같다. 그리고 그 믿음은 성공적이었음이 증명되었다.

우리는 비록 이미 Double Indemnity 를 감상한 상태였다 하더라도 아무런 저항감이나 지루함 없이 이 영화를 감상할 수 있다. 그만큼 박진감 넘치고 그만큼 묘한 Body Heat 만의 매력이 있다. 그 당시 막 연기생활을 시작한지 얼마 안 된 윌리엄허트와 캐서린터너는 이 영화에서 보여준 호연으로 인해 스타로 발돋움하였다.

The Conversation

Francis Ford Coppola 가대부1편을 완성하고대부2편을 만들기 전에 미켈란젤로 안토니오니의 Blow Up 에 대한 일종의 오마쥬로 만든 스릴러다. 형식상으로 스릴러의 구조를 지니고 있지만 엄밀히 말해 이 영화는 일종의 심리드라마이다. 도청을 밥벌이로 하는 한 중년사내 Harry Caul (진해크만)는 어느 거대기업으로부터 도청 의뢰를 받는다. 그러나 이 의뢰가 기업이 저지를 범죄와 연관이 있다는 의심을 하게 된 해리는 도청내용을 의뢰자에게 건네지 않는다. 이후 도청내용을 넘겨받으려는 기업 실무자 Martin Stett(해리슨포드)과 해리 간의 갈등이 폭력적인 양상을 띠기 시작한다. 결국 예상치 못한 반전의 지적쾌감을 선사한다는 점에서 스릴러로써의 미덕을 갖추고 있지만 그 지적쾌감이 통상적인 스릴러의 구도를 따르지 않는다는 점에서 이 영화가 보다 한 차원 높은 작품성을 지니고 있다고 평할 수 있다. 훔쳐보기의 은밀한 매력에 대한 잔혹한 대가를 적나라하게 드러낸 작품.

Le Boucher / The Butcher

프랑스 뉴웨이브 영화제작자들은 단지 오락거리로만 취급되었던 헐리우드의 몇몇 감독들의 예술성을 간파하고 이를 재해석하는 데에 기여하였다. 대표적으로 서부극의 존포드, 멜로드라마의 새뮤엘플러, 코미디의 하워드혹스 등이 있다. 이러한 운동의 선두주자였던 끌로드채브롤 Claude Chabrol 은 이 영화에서 노골적으로 알프레드히치콕의 코드를 (일종의 오마쥬로써) 차용한다. 한 시골의 여교사로 취임하는 주인공과 그녀를 사랑하는 푸줏간 주인, 그리고 이들을 둘러싸고 벌어지는 연쇄살인이 극의 주요흐름이다. 작품은 철저히 히치콕적(的)인 정신의학적 스릴러이다. 그래서 마치 프랑스어로 더빙한 히치콕의 작품을 보는 것 같은 느낌이다. 비록 이렇듯 노골적으로 히치콕을 차용하였다 하더라도 여전히 이 작품은 수준 높은 웰메이드 스릴러임에는 틀림없다.

Peeping Tom

고디바는 11세기 영국 코벤트리 지방에서 막강한 권력을 가진 영주의 어린 부인이었다. 그녀는 주민들이 과중한 세금에 시달리는 것을 시정해달라고 남편에게 간청하였다. 남편은 알몸으로 말을 타고 시장을 한 바퀴 돌면 세금을 감면해주겠다고 말했다. 부인이 포기할 것이라고 생각한 것이다. 그러나 부인은 정말 나체가 된 채로 말을 타고 시장을 돌았고 부인의 갸륵한 마음을 하는 주민들은 창밖으로 그녀를 쳐다보지 않았다. 그러나 탐이라는 친구만은 그녀를 몰래 보았고 이에 천벌을 받았는지 후에 맹인이 되었다. 이것이 관음증을 가리키는 Peeping Tom 이라는 표현의 기원이 되었다.

마이클 파웰 Michael Powell 의 1960년작 Peeping Tom 은 너무나 유명한 이 표현을 제목으로 앞세워 작품의 주제를 명확히 내세우고 있다. 어렸을 때부터 냉정한 과학자 아버지 아래에서 일종의 실험표본의 취급을 받으며 성장한 마크가 관음증적 증상에 시달리며 급기야 자신이 살인하는 여인의 마지막 모습을 카메라에 담는 취미에 탐닉하게 된다. 그러한 그를 진정으로 아껴주는 여인이 나타나지만 이미 그는 자신의 악취미에서 빠져 나오기에는 회복불능의 경지까지 타락해 있었다.

같은 해 만들어진 알프레드히치콕의 Psycho 에 필적할 만큼 왜곡된 성장배경으로 인하여 삐뚤어진 삶을 살게 될 운명에 처한 인물을 그려낸 스릴러의 걸작이지만 발표 당시에는 소재의 선정성에 집착한 평단으로부터 차가운 몰매를 맞아야 했다. Psycho 가 실제로 어머니의 편향된 보육으로 인해 살인마가 된 Ed Gein 을 모델로 한만큼 마크라는 변태적 인물의 현존 가능성도 얼마든지 개연성이 있는 문제이지만 오히려 평단이 그러한 리얼리티를 따라가지 못한 것이리라.

Strangers on a Train(1951)

미스터리 소설이나 영화로 밥 먹고 사는 이들이라면 늘 어떻게 범죄를 완벽하게 저지를 것인가에 대해 – 물론 상상 속에서 뿐이지만 – 강박적으로 고민할 것이다. 알프레드히치콕의 이전 작품 Shadow Of A Doubt에서 은행원 가장은 이웃집 사람과 매일 저녁 완전범죄의 플롯에 대해서 고민하는 장면이 나오는데 알프레드히치콕과 지인들의 대화는 이와 비슷할지도 모르겠다.

이 영화 역시 Rope처럼 완전범죄를 꿈꾸는 한 괴짜의 제안에서부터 시작된다. 프로 테니스 선수인 가이헤인즈가 열차 안에서 우연히 만난 브르노안토니로부터 교차살인 제안을 받는다. 즉 서로가 죽이고 싶어 하는 이들을 서로가 죽여주자는 제안이었다. 이에 대한 근거로는 완전히 타인인 상대의 적을 죽이면 경찰수사가 혼선에 빠지지 않겠냐는 것이었다. 터무니없는 소리라고 일축해버리지만 그 이후 가이헤인즈에게 불행이 잇따른다.

레이몬드챈들러의 원작을 바탕으로 만들어진 1951년작.

완전범죄, 교차살인, 열차 등의 소재가 상황은 다르지만 완전범죄를 한 젊은이가 어떤 열차에 타고 있는 유명정치인을 암살하기 위해 서로 교차하게 될 반대노선의 열차 안에 시한폭탄을 장치한다는 모리무라세이지의 소설을 연상시킨다.

참고사이트 : http://hitchcock.tv/mov/strangers_on_a_train/train.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