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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lternative Danc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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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ernard-sumner-berkeley-1987.png. Licensed under CC BY 2.0 via Wikimedia Commons.

Alternative Dance는 Alternative 혹은 Indie Rock의 예민하고 멜로딕한 곡구조와 일렉트로닉 비트, 씬써싸이저, 샘플러와의 결합에 의해 생성되었다. 또한 포스트디스코 댄쓰뮤직씬에서 클럽을 기반으로 한 장르이다. 팝에 기반을 둔 많은 Alternative 가수들이 몇년에 걸쳐 이러한 음악스타일을 실험하였는데 이는 클럽문화의 형성에 많은 영향을 미쳤다. 이 스타일은 주로 영국에서 많이 시도되었는데 ’80년대 초반 Kraftwerk 스타일의 Synth-pop과 음울한 포스트펑크의 결합이 그 선구적 시도였다면 ’80년대 말의 Manchester 씬과 EMF, Jesus Jones등의 Punk’ N Roll은 그 절정기라 할 수 있다. 그리고 ’90년대 들어서는 Acid House, Trip-Hop 등으로 파생해나갔다.

주요 앨범들
The Stone Roses: Stone Roses [1989]
EMF: Best of EMF: Epsom Mad Funkers [2001]
Electronic: Electronic [1991]
Wolfgang Press: Legendary Wolfgang Press & Other Tall Stories [1985]
Pop Will Eat Itself: This Is the Day…This Is the Hour…This Is This! [1989]

AllMusic 참조

Jangle Pop

jan·gle
- v. (-gled, -gling) v.i.
1 땡그랑거리다, 시끄러운 소리를 내다.
2 <古> 입씨름하다, 말다툼하다.
-v.t.
1 …을 땡그랑[시끄럽게] 울리다.
2 <신경·감정 등을> 곤두서게[안달나게] 하다, 괴롭히다.
-n.
1 [U] 귀에 거슬리는 소리, 가락이 맞지 않는 소리, 땡그랑[쨍그랑]거리는 소리; 소음, 시끄러움.
2 <古> 말다툼.

Jangle Pop은 ’60년대의 찰랑거리는 키타연주와 팝멜로디를 차용한 ’80년대 중반의 미국 포스트펑크 무브먼트 와중에서 자라난 스타일이다. R.E.M의 등장으로 불붙은 Jangle Pop은 또한 포크락적인 요소도 일정정도 내포하고 있다. 그러나 기본적으로는 팝에 기초한 포맷을 지니고 있다. Jangle Pop은 메인스트림은 아니었다. 가사는 때로 고의적으로 불가해했으며 그들의 싸운드는 때로 거칠고 아마추어리즘적 – 소위 do-it-yourself적인 작품생산을 추구하며 – 이었다. Jangle Pop은 1984년과 1987년의 기간동안 그 절정기를 맞이하였는데 R.E.M, Let’s Active와 같은 Southern-Pop 밴드와 더불어 웨스트코스트의 언더그라운드를 기반으로 하며 보다 싸이키델릭한 밴드들이 활동하고 있었다. ’80년대 후반에 이르자 서로 분간하기도 어려울만큼 비슷한 스타일의 밴드들이 판을 치자 인기가 서서히 잦아들기 시작했다. 그러나 그 와중에도 R.E.M은 가까스로 메인스트림에 진입하게 되었지만 많은 그룹들이 ’90년대가 되자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Camper Van Beethoven: Telephone Free Landslide Victory [1985]
Let’s Active: Cypress/Afoot [1989]
Guadalcanal Diary: 2X4 [1987]
Game Theory: Tinker to Evers to Chance (Selected Highlights 1982-1989) [1990]
Rain Parade: Emergency 3rd Rail Power Trip [1983]
Marti Jones: Used Guitars [1988]
The Soft Boys: Underwater Moonlight [1980]

AllMusic 참조

Madchest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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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adch” by Mike Colvin – http://www.flickr.com/photos/mikecolvin82/124404117/. Licensed under CC BY 2.0 via Wikimedia Commons.

Madchester는 ’80년대 말과 ’90년대 초 영국락계를 뒤흔드는 주요한 힘이었다. acid-house의 댄쓰리듬과 멜로디팝의 혼합을 통해 태어난 Madchester는 짧게 연속적으로 끊어치는 리듬, 싸이키델릭하면서도 장식적인 연주와 코러스 등으로 특징지울 수 있다. 노래의 구조는 매우 친근한 반면 음악의 배열과 자세는 매우 모던하면서도 때로는 레트로적인 분위기 – 즉, 찰랑거리는 키타싸운드, 소용돌이치는듯한 올갠 등 – 를 풍기기도 했다. Madchester를 대표하는 두 밴드가 있었는데 The Stone Roses와 Happy Mondays가 그들이다. The Stone Roses는 전통적인 키타팝 밴드이다. 그들의 노래는 느슨한 비트에 의해 뒷받침되는 팝튠에 가깝다. 그들의 노래는 어떤 면에서는 ’60년대 팝 – 그들이 Simon & Garfunkel의 노래를 리메이크하였다는 사실을 상기할것 – 의 현대화 작업이라 할 수 있다. Happy Mondays는 래퍼의 쌤플링에 비틀즈풍의 코러스와 음습한 싸이키델릭 댄쓰를 뒤섞었다. 이런 전혀 다른 접근법에도 불구하고 두 밴드는 acid-house의 음악과 문화에 대한 애정을 공유하고 있었다. 그룹의 인기가 높아져감에 따라 영국 언론들은 이 두 밴드를 – 그리고 비슷한 마인드를 가지고 있었던 The Charlatans와 Inspiran Carpets을 묶어서 – “Madchester”라 이름지었다.(밴드 멤버들이 다소 헐렁한(baggy) 옷들을 즐겨입었기 때문에 “Baggy”로 알려지기도 했다) Madchester는 수년간 영국에서 폭발적인 인기를 누렸다. 그러나 그뒤 이들 밴드들의 레코드사와의 계약문제로 인한 앨범 발표 지연, 마약문제 등으로 인하여 서서히 인기가 식어가기 시작했다. 한편 미국에서는 이들의 영향력을 거의 찾아볼 수 없었다.(심지어 얼터너티브씬에서조차) 그러나 Madchester의 후손들은 – 컨템포러리와 클래식팝의 격돌에 영향받은 Oasis, Pulp, Blur 등 – ’90년대 중반 국제적인 스타가 되었다. 

Brit Po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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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eady Eye collage” by Liam_Gallagher6.jpg: Will Fresch from San Diego, CA, United States and GAC_Oasis_live_in_HK_2009.jpg: Jase Lam from Hong Kong, China
derivative work: FotoPhest (talk) – Liam_Gallagher6.jpg and GAC_Oasis_live_in_HK_2009.jpg. Licensed under CC BY-SA 2.0 via Wikimedia Commons.

브릿팝(Brit Pop)이란? 원어로 Brit이란 영국본토를 나타내는 British를 말하고, pop이란 모두 알고 있듯이 오늘날의 팝음악… Popular Music의 준말이다. 음악을 조금 들었던 사람들에겐 “브릿팝”하면 RadioHead를 가장 많이 떠올릴 것이다. 그러나 Radio Head는 브릿팝이라고 할 수 없다. 이유는 Radio Head는 Made in U.S.A. 제품이기 때문이다. 워낙 밴드의 분위기가 영국밴드와 비슷하고 영국팬들에게 사랑받고 있기 때문에 착각하는 사람이 많다(비슷한 예로 Smashing Pumpkins도 영국밴드가 아닌 미국밴드이다).

브릿팝은 90년대 초반 복고풍과 다시 부상한 비틀즈의 열풍에 의해 인기를 얻기 시작했으며(오아시스 같은 경우는 드러내놓고 ‘우리는 비틀즈를 베꼈다’라고 말할 정도) 리듬보다는 가벼운 멜로디가 중심으로 만들어진 <영국>노래를 말한다. 하지만 브릿팝은 음악적 형식이 아닌 음악의 국적에 비중을 두고 있기 때문에 그 장르속에 아주 다양한 형식을 포괄하고 있다. RichardIII로 97년 최고의 앨범으로 선정된 Supergrass는 아주 강한 음악을 선보이며, Pulp는 댄스음악(?)으로 주류에 입장했다. 또, Blur는 사회성 강한 노래를 부르고, Suede는 Glam Rock을 적절히 교배시킨 음악을 선보이고 있다.

브릿팝이라는 집합속에는 이처럼 다양한 원소가 있다. 단지 주의할 점이 있다면 Blur와 Oasis만을 브릿팝의 전부로 보지 말아 달라는 것이다. 근래에 들어 심화되기 시작한 록이라는(아니 심화되기 시작한지 꽤된) 테두리 안에 서의 장르 나눠먹기는 그 정도가 너무나 심각하여 눈만뜨면 새롭다라는 미명 아래 우후죽순처럼 솟아나는 장르의 홍수사태를 경험하고 있다. 이런 현상은 과거에도 몇차례에 걸쳐 있었던 일이었지만 극히 적은 시일내에 수십가지 장르의 탄생을 맞이하는 이 상황은 음악 매니아들에게 있어선 굉장한 호김심 또는 부담감이 될 수도 있다는 점에서 중요한 사실이 아닐 수 없다.

이러한 사태(?)에 빌미를 제공케한 이름에 책임을 묻는다면 당연히 브릿팝을 떠올리게 된다. 이 여러가지 음악들이 광위의 대중들 사정권 안에 노출되기 시작하면서 모던 록 혹은 뉴 웨이브라는 음악적 범주안에 모든 것을 묶어놓기에는 그 형평성을 잃어버리기 시작하였다. 이때 보다넓은 개념으로 정리할 수 있는 영국 음악의 현상을 지칭하여 브릿팝이라 부르기 시작 하였는데, 아마도 블러의 등장과 그에 따른 아류급 밴드들에게서 사전적이나마 정형성을 찾아 볼 수 있지 않을 까 싶다.

뭐 사전적이든. 주관적이든간에 각각의 정의가 있겠지만. 개인적인 소견으로는 브릿팝이란 개념의 등장은 얼터너티브의 탄생 배경과 별반 차이가 없다고 하고 싶다. 얼터너티브 역시 하나의 촛점을 가질 수 없는 젊은 사람들이 즐겨 듣는 록을 포괄하기 위한 의미였으며 얼터너티브라는 표현속에는 이미 가까운 시대에 영화를 누렸던 뉴웨이브나 펑크의 개념이 도입되어 있기 때문이다. 얼터너티브가 미국쪽 개념이라면 인디 록이나 모던 록은 영국적인 성격이 다분한 표현이다. 얼터너티브가 그런지나 하드코어. 멜로디 코어 등의 신종 장르를 아우르는 상위 개념이라면 브릿 팝 역시 모던록, 인디록, 테크노를 포괄하는 보다 큰 개념으로 받아들여야 할 듯 싶다.

단, 반드시 유념해야할 부분은 얼터너티브가 영미권 모두의 복고 사운드의 전통을 베이스로 깔고 있다는데 반하여 브릿팝은 다분히 영국적인 사운드를 강조하고 있다는 점이다. 그렇기에 영국 밴드인 Bush나 Spacehog가 그렇게 성공했으나 절대로 브릿팝이라는 표현을 사용하지 않는 다는 것은 어찌보면 당연한 것이다. 브릿팝을 영국 음악의 대안이라고 보는 관점도 브릿팝은 영국 음악의 현재이며. 과거와 미래를 이어주는 교각 역할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또한, 브릿팝이라는 복합적이고 거대한 품안에서 새 생명을 가진 여러 장르들이 잉태하고 있다는 점에서 현재 관심의 촛점이 되고 그 지명도가 높아지고 있다는 사실은, 결코 너무 후한 관심으로 그들을 평가한다고 얄미운 눈으로 쳐다볼 일이 아닌것이다.

이렇듯. 모든걸 다 포함하고 있는 둥글둥글한 뭉텅이에서 “영국”이라는 딱딱한 껍질로 무장한채 .그 속에서 빠져나와 이젠 또다른 그들까지 잉태해내고 있는 전사들 – 그게 바로 브릿팝이다.

출처불명

힙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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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usta rhymes breaks it down for the mobile geeks” by Nabeel Hyatt – originally posted to Flickr as busta rhymes breaks it down for the mobile geeks. Licensed under CC BY-SA 2.0 via Wikimedia Commons.

1970년대 전반에 DJ들에 의해 힙합이 탄생한 후 본격적 발전은 1978년 Sugerhill Gang의 “Rappcr’s Dehght” 싱글레코드의 발매로 시작되었다. 당시 대표적인 흑인음악 레이블인 Sugcrhill Rccords가 새워졌고 첫 여성 그룹인 Scqucnce의” Funk You Up” 싱글이 발매되기도 하였다 바로 랩의 탄생과 레코드 발매 통한 대중 속으로의 본격적 발전이 이루어진 시기였던 것이다.

1980년대

그룹/래퍼들이 모두 레코드 레이블과 계약을 맺고 음반을 발매하기 시작했다. 샘플리 사용시법과 신디사이저/드림머신으로 이루어진 비트는 Miami Bass로 발전, 오늘날까지 영향을 미치고 있다. Run-DMC는 1983년 싱글을 발표하면서 사회 비판적인 가사로 주위를 끌면서 대중적으로 크게 성공하게 되었다. 백인힙합그룹 Beastie Boys는 앨범 “Licensed to lll”을 발표하여 백인사회에까지 힙합의 인기를 퍼뜨렸다. KRS-One의 Boogie Production, Gang Starr등의 등장으로 랩은 큰 발전을 보게 되었다. 특히 Eric B. and Rakim은 수준 높은 가사로 높은 인정을 받았으며 Public Enemy는 흑인인권운동적 가사와 짙은 정치적 성향으로 많은 시선을 끌었다. 그러나 1980년대 후반은 무엇보다 도 West Coast(미국서부)에 서의 힙합의 발전으로 특징지어진다. 동부에서 탄생한 힙합은 서부로 중심이 건너가기 시작해 소위 갱스터랩(Gangster Rap)의 형태로 90년대 초반까지 주도권을 잡게 된다. 1988년 앨범 straight outta compton은 캘리포니아 LA 갱스터 스타일의 랩을 소개했으며 또 후에 N.W.A를 탈퇴한 lce cude도 서부의 갱스터랩을 대중에게 널리 알렸다.

1990년대 초

1990년대 초반에는 두 가지 상반된 스타일과 랩이 인기를 끌었는데, 바로 “댄스랩” 과 갱스터랩이다. Jamaica dancehall 계통의 음악은 크게 히트하고 카리브해안과 연계로 힙합에 또 다른 생기를 불어 넣었다. 수많은 dancehall 아티스트들이 힙합 뮤지션과 합작하거나 솔로 앨범을 낸다. snoop doggy dogg와 같은 갱스터래퍼들의 등장을 불러왔다. 이와 같은 갱스터랩의 공격적이고 여성비하적인 가사는 흑인사회 안밖으로부터의 비판을 받게 되었다.

1990년대 중반

90년대 중반으로 들어서면서 다시 동부쪽 그룹들이 랩의 주도권을 가지게 되었다. JAZZ와 Funk의 요소를 이용한 곡들을 선보였으며 QBC스타일을 소개한 Mobb Deep과 Nas 그리고 데뷔 앨범 ready to aie를 발표한 notorious B.I.G등이 모두 인기를 얻었다. 그런데 곡들을 발표로 거칠어진 두 실력있는 래퍼간의 싸움은 결국 두 레이블간의 분쟁, 양 코스트간의 분쟁으로 변하여 결국 Tupac과 notorious B.I.G의 안타까운 즉음으로 막을 내렸다.

현재

힙합의 주류이던 갱스터랩, 그리고 동부의 어둡고 무거운 분위기의 랩들 대신 이제 Puff daddy의 독특한 프로듀싱을 거친 다소 가볍고 빠르고 파티풍의 음악이 많은 인기를 끌기시작했다.샘플링에 크게 의존하는 Puff daddy의 프로듀싱기법은 랩의 많은 부분에 영향을 주었다. 많은 스타일의 랩이 모두 동시에 존재하면 대중적으로 도 큰인기를 얻고 힙합의 전성시대라고 할수있다. 힙합은 즉 이 시대의 재즈인 것이다. 자신들의 틀안에서만 머물지 않고 다은 장르와의 융합을 활발히 시도하고 있다.

출처불명

랩의 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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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as-01-mika” by MikamoteOwn work. Licensed under CC BY-SA 3.0 via Wikimedia Commons.

랩은 어떻게 시작되어 어떤 변천과정을 거쳤는가. 랩의 탄생은 DJ들로부터 비롯된다. 1970년대 미국, 특히 뉴욕시에는 Disco열풍이 불어서 많은 DJ들이 흑인빈민가 등지의 거리에서 댄스파티를 열곤 했다. 이들은 DJ Smokey, Kool DJ D같은 DJ들이었는데, 랩의 탄생에 큰 역할을 한 DJ는 바로 Kool DJ Herc였다. Kool DJ Herc는 다른 DJ들같이 Disco레코드를 틀어주는 대신, 자신이 보유하고 있던 R&B 또는 Funk Dance레코드를 주로 틀어주었다. 그런데, Herc가 특이했던 것이, 그는 노래를 트는 대신에, 간주부분(Break-beat)을 계속 반복하여 틀어주곤 했다. 그 간주부분에 사람들은 춤을 추기 시작 했고, 이들을 Herc는 “b-boys”, 또 그들이 추는 춤을 “b-boying”, 또는 “Break-Dancing”이라고 불렀다. 한편, Kool DJ Herc는 자신의 파티에 항상 MC를 데리고 다녔는데, Coke La Rock라는 이름의 이 MC의 역할은 음악 중간 중간에 마이크로 춤을 추는 사람들의 흥을 돋구는 말을 하는 것이었다. 이것이 곧 “MC’ing”이었고, 나중에 “rapping” 이라 불리게 되었던 것이다. 즉, 랩의 탄생이다. 참고로, 같은 시대에 DJ Hollywood 또한 Kool DJ Herc와 같은 스타일로 DJing을 했는데, 그는 자신이 MC역할도 했다.

그런데, 그가 MCing을 하던 중, 반복했던 말들중 하나가 “..hip, hop..”이어서, “hip hop”이 랩을 지칭하는 표현들 중 하나로 쓰이게 되었다고 한다. 아무튼, Herc의 뒤를 이어 많은 DJ들과 MC들이 Herc의 스타일 을 발전시키며 랩의 발전에 이바지 했다. 이들중에는 유명한 Afrika Bambaataa(아프리카어매리컨의 해방을 꿈꾸었던 라스파타리아니안)도 있어서, 그는 자신의 Zulu Nation을 형성 하여, 랩과 DJing을 발전시켰다. 랩이 본격적으로 시작된 시기는 1970년대 후반, 1978년 Suger Hill Gang이 “Rapper’s Delight”란 첫 랩싱글을 발표하면서 부터이다.다음해에 Sequence는 “Funk You Up”이라는 노래로 랩을 더욱 대중화 시켰고, 1980년 Kurtis Blow는 “The Breaks”란 노래로 랩으로서는 첫 Gold를 기록했다.1982년에 Afrika Bambaataa는 그의 Soul Sonic Crew와 함께 “PlanetRock”을 시작으로 신디사이져와 드럼머신에 전적으로 의존하다시피 하는 Electro Funk 시대(그는 이러한 시도를 멀리 바다 건너 독일의 Kraftwerk의 스타일을 차용한 것인다. 그 당시 많은 이들은 Kraftwerk의 음악을 일종의 써커쓰 정도로 치부하고 있을 시기였다.)를 시작하였다. 특히 Afrika Bambaataa는 sampling을 그의 “Looking for the Perfect Beat”에서 처음 본격 적으로 사용하기도 하였다.

역시 1980년대를 장식하였던 래퍼로 Run-DMC를 빼놓을 수 없다. 그들은 “It’s Like That”이란 노래로 랩에 도시 빈민가 흑인들의 힘든 삶을 본격적으로 묘사하기 시작했으며, 1986년에는 락가수Aerosmith와 “Walk This Way”를 발표하면서 랩의 대중화에 기여했다(이 노래는 당시 타이틀곡이라는 개념이 없었던 랩음반에 처음 타이틀곡이라는 개념을 도입한 곡의 의미를 가지고 있기도 하다). 랩의 대중화에 기여한 또다른 그룹은 바로 Beastie Boys이다. 그들은 “Licensed To Ill”앨범을 발표함으로써 백인들사이에도 랩 음악을 퍼뜨리기 시작했다.

1980년대 후반에 서부에서 등장한 랩스타일이 바로 갱스터랩이다. 이 스타일의 랩은 먼저 가사에서 LA 중심부의 갱들 싸움(Gangwar) 과 힘든 삶을 표현했으며, Gangsta Rap의 시작은 N.W.A.의 1988년 도 앨범 “Straight Outta Compton“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당시 동부 랩의 대표주자인 Public Enemy는 미국사회에서 흑인은 철저한 약자이며 갱스터라는 존재부여 자체가 어불성설이라고 주장하였다. 이에 반해, 1980년대 말부터 1990년대 초에는 파티풍의 춤추기 좋은 랩스타일도 그 발전을 보았으니, 그 대표적인 래퍼는 MC Hammer의 “U Can’t Touch This”나, 백인 래퍼 Marky Mark and the Funky Bunch 의 “Good Vibration”, Vanila Ice의 Ice Ice Baby, 또는 Kriss Kross의 “Jump”를 들 수 있다. 특징적인 것은 이들은 과거 히트곡의 샘플링을 통하여 부수적인 이익을 노리려는 상업적인 속셈이 눈에 두드러졌다.

1990년대에 들어서 랩은 그 스타일의 다양성과 가사의 내용에 있어서 많은 발전이 있었고, 또 그 과격함에 대해 미국사회로부터 많은 비난도 받 게 되었다. 주 공격대상은 가사의 과격함, 폭력조장, 여성비하 표현등이었으며, Ice-T의 노래 “Cop Killer”는 미국사회에 큰 물의를 일으켰고, 경찰관을 쏜 사건에서 범인 십대소년이 2Pac의 “2Paclypse Now”앨범을 듣고있었다는 데에 당시 부통령 Dan Quayle이 2Pac과 랩 전반에 대해 비난했고, 2 Live Crew는 1989년도 앨범 “As Nasty As They Wanna Be”로 Florida주에서 외설혐의로 조사를 받기도 했다. 1990년대 중반에는 2Pac과 Notorious B.I.G.간의 마찰이 2Pac이 출소후 Deathrow음반사로 옮기면서 결국은 Deathrow사와 Badbay사,그리고 East Coast와 West Coast간의 마찰로 번져, 한동안 랩계에 큰 문제로 인식되었으며, 이는 두 래퍼 2Pac과 Notorious B.I.G.의 죽음 으로 일단락되었다고 볼 수 있다. 물론 두 래퍼의 죽음이 East와 West의 마찰에서 비롯되었다는 증거는 없지만, 음악적 갈등이 음악외적 갈등으로 확산되어 많은 폭력이 오간것은 사실이다.

1990년대에는 위와같이 많은 문제와 논란이 있었지만, 음악적으로는 그 어느 시대에 비교될 수 없는 발전을 보았다. 매년 발매되는 랩앨범의 발매량은 물론, 많은 래퍼들의 등장, 대중적 선호도등, 모든 방면에서 랩은 전성기를 맞고 있다고 할 수 있다. 동부의 Wu-Tang Clan이나 서부의 Dr. Dre같은 대표적 래퍼들이 등장하여 그들의 레이블을 키웠고, 또, 독특한 스타일의 많은 실력있는 래퍼들이 등장하여, 앞으로도 랩의 전성기는 계속될 것이라고 본다.

출처불명

Hous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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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wedish House Mafia and Benny Benassi” by Peter SalankiFlickr: Swedish House Mafia and Benny Benassi. Licensed under CC BY-SA 2.0 via Wikimedia Commons.

하우스는 80년대초 디스코의 번성으로 활성화된 클럽 문화의 산물에 의해 디스코 리듬은 점차 다른 양상으로 변화하여 ‘하우스(house)’를 형성한다. ‘웨어하우스(warehouse)’라는 댄스 클럽의 명칭에서 유래했다. 디스코가 팝 친화적인 양상이었던 것에 반해 하우스는 보다 기계적인 비트와 심도 있는 베이스 그루브 도입과 신스-팝(synth-pop), 라틴 소울(latin soul), 덥 레게(dub regge), 랩(rap), 재즈(jazz) 등의 다양한 요소와의 접목이 시도되고 보이스(voice)채널 역시 유명 가수의 싱어송(singer song)아닌 주로 무명 싱어의 의미 없는 멜로디가 단순 반복된다. 80년대말 하우스는 시카고, 뉴욕, 런던 등지에서 언더 그라운드클럽을 탈피하여 차트에 진입하기 시작하고 특히 영국을 중심으로 한 유럽에서 두각을 나타내면서 팝 차트를 공략함과 동시에 변종화가 진행되어 hip-house, ambient house, acid house와 같은 다양한 서브장르를 탄생시켰다. 90년대에 하우스는 몇몇 멋진 음악들을 생산해냈다. 그러나 여전히 이들 음악은 주로 클럽에서 인기를 얻었다. 세기말에 Daft Punk, Basement Jaxx, 그리고 House of 909와 같은 진보적인 뉴웨이브 아티스트들이 새로운 하우스의 전기를 마련하였다.

주요 앨범들

Mr. Fingers: Introduction [1992]
Farley Jackmaster Funk: House Music Movement [1998]
LFO: Frequencies [1991]
808 State: Utd. State 90 [1990]
Moby: Everything Is Wrong: The DJ Mix Album [1996]
Adonis: No Way Back [1986]
Larry Heard: Parrains de la House [1998]

AllMusic 참조

훵크/훵키 (Funk/Funk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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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ames-Brown 1973” by Heinrich Klaffs – http://www.flickr.com/photos/heiner1947/4430588088/in/set-72157623613839496/. Licensed under CC BY-SA 2.0 via Wikimedia Commons.

최근 팝 뮤직이나 가요계에서 빈번하게 사용되는 용어로 펑크, 펑키란 말이 있다. 그런데 매스컴에서 Funk도 펑크, Punk도 펑크로 표기하는 바람에 웬만한 전문가가 아니고서는 어떨 때 Funk를 쓰고 어떨 때 Punk를 사용하는지 혼란을 초래한다. 그 이면에는 교육부에서 시달돈 외래어 표기법에 의하면 P는 물론 ㅍ(피읖)으로 발음하게 돼있기 때문에 Funk나 Punk가 모두 펑크로 표기할 수 없기 때문에 오는 폐단이 발생한 것이다.

우선 Punk는 철저히 백인들에 의해 1970년대 생성된 록의 한 분파로서 중산층 및 상류층에 대한 반항과 기존 록 음악에 대한 반항적인 이념의 소산으로 생긴 장르인 반면 Funk는 순전히 흑인 소울 가수들에 의해서 표현되기 시작한 음악으로 원래 발음대로 훵크 또는 훵키라고 해야 타당하다고 간주된다. 그래야만 장르에서 오는 음악의 뜻을 쉽게 이해할 수 있는 것이다. 훵크(Funk)란 흑인들의 속어로 성(性)적인 흥분이 고조에 달했을 때 풍기는 냄새를 말한다. 명사로 ‘악취’라는 뜻의 이 말의 형용사가 훵키(Funky)로서 블루스, 재즈 또는 록의 감각적인 성질에 관해서 말할 때 사용된다.

즉 50년대 초반 이후 재즈 피아니스트 호레이스 실버와 드러머 아트 블레이키가 하드 밥 계열의 음악을 블루스나 거스펄과 결합시키면서 현대적인 하모니가 가미되고 후에 소울(Soul)분위기가 적당히 조화를 이뤄 더욱 강렬하고 흥겨운 리듬 감각으로 표출한 흑인 음악이다. 이 음악은 특히 60년대 소울 뮤직이 사양길에 들어서고 70년대 디스코 음악이 고개를 쳐들던 시기에 생겨난 새로운 R&B 음악의 형태라고 풀이 할수 있다. 록에서 훵크의 시작은 60년대에 제임스 브라운이 개척자로 활약했다. 훵크를 논할 때 가장 중요하게 거론되는 인물은 이 음악을 구체화 시킨 조지 클린턴은 ‘훵크 음악의 대부’로 불릴만큼 그는 가사의 표현이 너무 퇴폐적이라는 지적에도 불구하고 훵크 음악을 가장 훵키하게 만들 때 대중들에게 보

급시킨 인물이다. 한편 제임스 브라운의 음악적 영향을 받아 70년대 초반, 9인조 그룹 쿨 앤 더 갱은 뛰어난 기량으로 펼치는 풍성한 사운드를 바탕으로 한 독특한 분위기의 음악을 구사하였다. 이어서 보다 훵키한 감각을 가진 훵크 뮤직과 록이 결합된 훵크 록 (Funk Rock)이 훵커델릭, 부치즈, 러버밴드, 파러멘트 등에 의해 소개 됐고 재즈계에서도 훵키 재즈(Funk Jazz)가 등장했다. 훵크의 특징은 약동적인 일렉트릭 베이스와 고음을 추구하는 리듬 기타, 신나는 브라스 사운드와 흥청거리는 분위기가 돋보인다. 또 다른 특징으로는 기선을 제압하는 딱딱 끊어지는 스타카토 리듬에 라틴 퍼커션의 요소가 첨가된 댄스용 음악이라는 것이다. 최근 가요계에서도 특히 댄스뮤직과 재즈에서 훵크의 바람이 강하게 불고 있는데, 대표적인 곡으로 김건모의 <스피드>가 있다.

출처불명

펑크 Dictionary

Sex Pistols in Paradiso - Johnny Rotten & Steve Jones.jpg
Sex Pistols in Paradiso – Johnny Rotten & Steve Jones” by Nationaal Archief, Den Haag, Rijksfotoarchief: Fotocollectie Algemeen Nederlands Fotopersbureau (ANEFO), 1945-1989 – negatiefstroken zwart/wit, nummer toegang 2.24.01.05, bestanddeelnummer 928-9663 – Nationaal Archief. Licensed under CC-BY-SA-3.0-nl via Wikimedia Commons.

100 Club
– 영국 런던에 위치한 전설적 펑크 클럽.’76년 런던 펑크의 태동기에 섹스 피스톨즈(Sex Pistols),클래시(The Clash), 댐드(The Damned),바이브레이터즈(The Vibrators),수시 앤 더 밴시즈(Siouxie & The Banshees)등이 출연한 수일간의 걸 친 펑크 페스티벌을 개최한 것으로 유명해짐.
77 Style/77 Spirit
– 라몬즈(Ramones),섹스 피스톨즈,클래시 등 펑크 초창기의 가장 단순한 3코드 원론주의 펑크 사운드, 혹은 그러한 원론주의 자체를 지칭(see also Punk Proletariat)
Anarchism
– 무정부주의. 니힐리즘과 더불어 초기 펑크의 사상적 근간 이 되었으며 섹스 피스톨즈에 의해 빛을 보게 되었으나 스스로 지닌 한계성 때문에 소멸하게 되었고, 현재는 춤바왐바(Chumbawamba),토털 케이스(Total Chaos)정도가 그 명백을 유지하고 있는 밴드들.(see also Nihilism)
Art School Punks / Art School Trendies
– 아트스쿨 출신의 예술학도들이 결성했던 펑크 밴드들, 혹은 그들의 음악. 런던에서는 섹스 피스톨즈의 해산 이후, 뉴욕에서는 그보다 1~2년 먼저 붐을 이룸. ‘Art School Trendies’ 한 명칭은 펑크 인민주의자들이 이들을 격하해 불렀던 표현.
(see also Punk Vanguard)
Attitude
– 굳이 우리말로 번역하자면 ‘태도’ 혹은 ‘자세’. 관습과 권위를 부정하는 펑크의 기본 이념을 대변하는 단어
-Aussie Punks
호주에 기반을 둔 펑크 밴드를 일컫는 말. 애드버츠(The Adverts),라디오 버드맨(Radio Birdman)등이 유명.
-Bat Cave
런던의 유명한 고스(goth)클럽.
-Blank Generation
뉴욕의 전설적 펑크 밴드 보이도이즈(Richard Hell & The Voidoids)의 앨범 타이틀이자 그들의 대표곡. 명실상부한
뉴욕 펑크의 송가(anthem).
-Bored Generation
X 세대라는 표현이 유행하던 당시 캘리포니아 부근의 펑크 밴드/팬들을 일컬어 저널리스트들이 붙인 명칭. 동명의 컴필레이션도 발표됨.
-CBGB’s
뉴욕의 유서 깊은 펑크락 클럽. ’76년 무렵의 오리지널 뉴욕 펑크 밴드들로부터 시작하여 현재는 하드코어 밴드들에게 까지 중요한 무대를 제공하고 있다.
-Cockney
원래는 노동자 계층 출신 부랑아들을 얕잡아 일컫는 표현이었으나 점차 이 계층의 소년들 스스로 자랑스럽게 자신을 일컫는 용어로 자리잡게 되었다. 이들이 사용하는 독특한 억양의 영어를 코크니 라이밍 슬랭(Cockney Rhymin’Slang)이라 부른다.
-Crustcore
디스차지(Discharge)로부터 연유된 명칭.’80년대 중후반부터 시작된 영국 하드코어 세력중 특히 스트레이트/헤비하고 스피디한 성격을 강조한 일군의 밴드들 혹은 그들의 음악을 일컬음. 검은 가죽 의상과 금속 장식,스파이크 헤어 등의 패션을 애용하는 것도 특징의 하나. 이후 영국에서보다는 북유럽권의 하드코어 신과 미국의 스래시/데스 메탈 밴드들에 지대한 영향을 주었음.
-D.I.Y
‘네 스스로 하라(Do It Yourself)’의 약자. 펑크의 주된 애티튜드의 하나. 자주 레이블(Independent
Lable)의 정신과도 일맥상통한다.
-Facist Core / Nazi Core
’80년대 중후반 영국에서 노동계급 펑크가 인기를 끌게 되자 극우정당이던 국가 전선(National Front)에서 만들
어낸 일련의 극우 펑크/하드코어 밴드들 혹은 그 무브먼트를 지칭. 네오나치즘/네오 파시즘에 충실하며 주로 영
국,독일,프랑스,이탈리아등 유럽을 세력권으로 하였음. ’90년대 들어와 거의 사라진 듯 보였으나 얼마 전부터
동구권 및 나미,일본을 중심으로 다시 창궐하는 분위기임.
-Fanzine / Zine
광고를 주 수입원으로 하는 기존의 음악 매체와는 달리 순수한 팬의 입장에서 제작되는 비영리성 잡지. 인디
레이블,클럽과 합께 펑크 신을 받쳐주는 3대 하부 요소로 불리움.
-Glam Punk
짙은 화장과 블라우스,과장된 헤어 스타일 등 패션에 상 당히 신경을 썼던 펑크 밴드들을 일컬음. 단지 외양적인
측면에서의 표현일 뿐 사운드 자체는 팀마다 모두 제각각이었음에 유의할 것. 그다지 많은 팀들이 활동하지는 않았
으나 그중에서도 하노이 록스(Hanoi Rocks)나 아담 앤 디앤츠(Adam & The Ants)의 밴드들은 유명함. 댄스 그룹으로 명성을 달렸던 데드 오어 얼라이브(Dead Or Alive)역시 무명시절에는 글램 펑크 밴드였다고.
-Goth / Gothic Punk
포스트 펑크의 많은 세력들중 가장 빛을 보지 못한 일파중 하나. 말 그대로 고딕적인 펑크를 추구했으나 시간이 지나
면서 점차 인더스트리얼 계열로 흡수되어가게 됨. 밴쉬즈,바우하우스(Bauhaus),에이리언 섹스 핀트(Alien Sex
Flend),크리스천 데스(Christian Death),시스터즈 오브 머시 (Stisters Of Marcy)등이 대표적. ’90년대 들어 인더스트리얼 / 다크 웨이브(Dark Wave)계열의 밴드들이 창궐하게 되는 원동력을 제공.
-Hardcore
사전적 의미로는 ‘극단’ 혹은 ‘과격’ 정도의 의미. 문화적으로는 장르르 막론하고 그 분야에서 가장 과격하고 거친 형태의 스타일을 일컬음.(예:Hardcore Porno,Hardcore Rap…)펑크에서 하드코어라 함은 스피드와 가사에 있어서의 극단을 추구했던 무리 혹은 그들의 음악을 이야기함. 일반적으로 하드코어 펑크는 영국,캘리포니아,뉴욕(및 동부지역)의 세 지역을 중심으로 부흥을 맞이했다고 보고 있음.하드코어는 이후 스래시 메탈과 얼터너티브에 많은 영향을 주었다고 평가하고 있음.스스로의 음악을 일컬어 최초로 하드코어라는 표현을 사용한 것은 캐나다 출신의 밴드 D.O.A.였다고.
-Hardcore Thrash
하드코어 펑크가 ’80년대 중후반 미국에서 창궐하였던 스래시 메탈 무브먼트와 만나 생긴 새로운 조류.대체로 초창기 스래시 밴드들의 음악을 생각하면 이해가 빠를듯. 크립틱 슬로터(C- ryptic Slaughter),크루시픽스(Crucifix),크로-맥스(Cro-Mags) 등의 밴드들이 대표적이며 스래시 메탈 밴드로 널리 알려진 앤스랙스(Anthrax)나 뉴클리어 어설트(Nuclear Assult)같은 밴드들.심지어는 슬레이어(Slayer)같은 밴드들 역시 하드코어 스래시의 영향력 아래에 있던 밴드였다고 볼 수 있음.
-Horror Punk
’50년대 B급 호러 무비를 연상케하는 분장과 무대장치,가사 등 을 전격적으로 차용해 스스로를 특화했던 일군의 펑크 밴드들, 혹은 그들의 음악을 일컫는 표현. 댐드(The Damned)를 원조격 밴드라 부를 만 하며 미스피츠(Misfits),로킷 프롬 더 크립트(Rockets From The Cypt),일본의 발작(Balzac)과 애브노멀즈(The Abnormals)등이 활동중.
-Indie Label / Independent Label
대자본의 영향력에서 벗어나 최소한의 자본으로 자신들의 음반을 제작하기 위해 생겨난 레코드 레이블. 자주 레이블,혹은 독립레이블이라고도 불리움. 인디 레이블의 시작은 펑크 밴드들과 함게였다고 보는 것이 정설임. 이언 멕케이(Ian McKaye:Minor Religion)의 에피타브(Epitaph)등이 유명. 현재까지도 수많은 인디 레이블이 존재하지만, 예전의 건전한 의미는 많이 퇴색한 상태.
-Kraut Punks
독일의 펑크 밴드들. 디 토텐 호젠(Die Toten Hosen),욥스(The Yobs)등이 유명.
-Krishnacore
힌두교,특히 크리시나 사상에 입각한 펑크/하드코어를 추구하는 일련의 세력을 일컫는 표현. 육식과 음주를 금하며 ‘지고의 깨달음’을 얻고자 하는 애티튜드를 지님. 유스 오브 투데이(Youth Of Today)를 전신으로 하는 셸터(Shelter)가 대표적.
-Los Punkeros
라틴 문화권의 펑크 밴드들을 일컫는 말. 순수 펑크 밴드들보다는 Oi!크러스트 코어,하드코어 등의 과격파 밴드들이
많음. Oi!밴드로는 이탈리아의 클라스 크리미날(Klasse Kriminale)가 대표적이며 브라질의 하드코어 밴드인 R.D.P와
티타스(Titas)는 세풀투라(Sepultura)에 의해 전세계로 알려지게 되었음.
-Mahawks / Mohicans / Spike
마치 아파치 인디언을 연상시키는 뾰족하게 세운 헤어 스타일,혹은 그러한 헤어 스타일을 애용하는 사람들을 일컫는
말. 주로 영국의 노동계급 펑크/하드코어 밴드들에게 사랑받았음.
-Max’s Kansas City
CBGB’s와 함께 뉴욕 펑크 클럽의 대명사였던 업소.
-Melocore / Melodic Punk
미국 캘리포니아,특히 LA지역을 중심으로 ’90년대 초반부터 활발히 전개된 펑크 사운드를 일컬어 일본 저널리즘에서
붙인 별명. 말 그대로 하드코어의 스피드에 좋은 멜로디를 접목시킨 사운드가 특징으로 배드 릴리전을 대부로 하는
애피타프 레이블 출신의 밴드들(Pennywise,NOFX,Offspring..) 과 <룩아웃! 레코즈(Lookout! Records)>를 기반으로 한 밴드들(Operation Ivy,Green Day,Queers…)의 양대 세력으로 나누어 생각해 볼 수 있음. 그린데이와 오프스프링의 성공으로 인해 잠시 메인스크림으로 진입하는가 싶었으나 현재는 다시 언더그라운드에서 고군분투하고 있는 모습.
-Neo Punk
멜로코어라는 명치이 주로 ’90년대 캘리포니아 지역의 펑크사운드를 지칭하는 좁은 표현인 것에 비해 네오펑크라는 표현은 ’90년대 초중반의 팝화된 펑크 사운드를 넓게 지칭한다는 점에서 차이점을 보임. 팝 펑크라는 표현과도 일맥상통.
-N.Y.C.H.C
‘New York City Hardcore’의 약자. 마찬가지로 B.C.H.C는 ‘Boston City Hardcore’,D.C.H.C는 Washington D.C. Hardcore’의 의미.
-Nihilism
19세기 러시아 문학계에서부터 기원한 허무주의 사조를 일컫는 말. 초창기 펑크의 사상적 근원이 되었음. 넓은 의미로는 무정부주의를 일컫기도 함.
-Oi!
영국 노동계층 청소년들이 ‘Hi!’나 ‘Hello’대신에 사용하던 인사말로부터 기원한 표현. ’80년대 초반 시작된 영국 노동계층 청소년들의 스트리트 펑크,혹은 그러한 밴드들을 일컫는 표현이다.
-Pogo
’77년 무렵 런던 펑크 클럽에서 유행하던 춤. 특별한 스타일이 있는 것이 아니라 그냥 미친 듯이 온몸을 뒤흔들어대면
된다. 섹스 피스톨즈의 자니 로튼(Johnny Rotten)이 대유행시켰다.
-Psychobilly / Punkabilly
펑크의 열풍이 가실 무렵 유럽을 중심으로 탄생한 새로운 형식의 펑크. 주로 펑크와 로커빌리,컨트리 & 웨스턴,서프
뮤직 등을 혼합한 형태의 사운드를 띈다. 독일 출신의 매드신(Mad Sin)이 유명하며 우리에게는 뉴웨이브 그룹으로 알려진 스트레이 캐츠(Stray Cats)도 한때는 사이코빌리 밴드로 불리웠다.
-Pub Rock
펑크라는 표현이 유행하기 이전 런던의 노동계급 술집을 중심으로 활동하던 일군의 밴드들이 행하던 음악을 일컬음. 일반적으로 초기 펑크 사운드라고 인식되고 있음. 101ers,에디 엔 더 핫 로즈(Eddie & The Hot Rods),붐타운 래츠(Boomtown Rats)등이 대표적.
-Punk Proletariat / Punk Populist
펑크 인민주의자. 이름 그대로 런던 노동계급 출신의 스트리트 밴드들로서 라몬즈-섹스 피스톨즈를 원형으로 하는 펑크의 ’77년 정신과 사운드에 충실하려는 펑크의 순수성/원초성을 강조. 샴 69(Sham 69)를 대부로 하여 이후 생겨난 Oi!무브먼트로 폭발하였고,이후 브리티시 하드코어 신을 형성하게 됨. 일부는 스카 신으로 흡수되기도. 대표적 밴드는 익스플로이티드(The Exploited).
-Punk Vanguard
섹스 피스톨즈의 해산 이후 아트스쿨 뮤지션들이 결성한 펑크 밴드들을 일컬어 사회학자들이 붙인 명칭. 펑크의 신화성을 깨뜨리고자 했으며 이에 따라 기존 펑크 스타일,특히 사운드적 측면에서의 해체/재창조를 실험하였음. 갱 오브 포(Gang Of Four)가 대표적. 이후 영국보다는 주로 LA의 초기 얼터너티브 신에 지대한 영향을 주게 됨. 펑크 인민주의자들에게 사상적으로 공격당하는 일이 잦았음.
-Rustic
펑크에 스카,마리아치,컨트리 & 웨스턴,러시아 민요 등의 이질적인 사운드를 대폭 첨가하여 독특한 사운드를 내는 새로운 조류. 악기 편성도 기존의 기타/베이스/드럼 진용에서 탈피하여 밴조,어크디언,우드 베이스,트라이앵글,카주 등을 전격적으로 사용한다는 점이 특이함. ’90년대 후반에 들어와서는 일본 세력이 상당히 강한 편으로 도쿄 스컹크스(Tokyo Skunx),바나나 세이크스(Banana Shakes)등이 맹활약중.
-Ska Punk / Ska Core
말 그대로 스카와 펑크,혹은 스카와 하드코어를 결합한 형태의 음악. 스카 펑크는 주로 캘리포니아 지역의 멜로코어 밴드들과 연계되는 경향이 강하고 스카 코어는 캘리포니아 보다는 미국 동부 지역을 기반으로 해왔음. 대표 밴드로는 오퍼레이션 아이비(Operation Ivy),랜시드(Rancid),레스 댄 제이크(Less Than Jake),릴 빅 피시(reel Big Fish),골드핑거(Goldfinger), 마이티 마이티 보스톤즈(Nighty Mighty Bosstones),부두 글로 스컬즈(Voodoo Glow Skulls)등이 있음.
-Skanking
‘스카를 연주하는’,혹은 ‘스카를 들으며 춤을 추는’이라는 뜻을 지닌 형용사.
-Skinheads / Skins
서구의 노동계층 청소년들중 머리를 짧게 깎고 다니던 무리를 일컫는 표현. 일반적으로 영국의 스킨헤드들은 Oi!를, 미국의 스킨헤드들은 하드코어를 자신들의 음악적 취향으로 하였다고 보는 것이 정설. 종종 우익 단체들에게 이용되어 네오 나치즘과 연계되기도 하였지만 사실 정치색은 없는 집단이라고 보는 편이 옳을 듯.
-Skoi!
스카와 Oi!가 만나 형성된 새로운 펑크 무브먼트. ’90년대 들어 <래디컬(Radical)>및 <문 스카(Moon Ska)>레이블을 중심으로 한 뉴욕 스카 신에서 최고의 전성기를 누리게 되었으며 스캘로윈(Skalloween)이라 불리는 페스티벌을 개최한 것으로도 유명. 스코이대츠(Skoidats)가 대표 밴드.
-Slam / Slam Dancing
하드코어 공연장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과격한 형태의 집단무용(?). 서로 어깨와 등을 강하게 맞부딛히며 관중들 사이
의 일체감을 획득하는 의미를 지닌다. 모싱(Moshing)과 혼용되어 사용되기도 한다.
-Stage Diving
하드코어 공연장에서부터 기원한 독특한 무대 매너. 예전의 공연장이 밴드/관중이라는 이분법적 구조로 나뉘어 있던 것과는 달리 연주 도중 밴드 멤버가 관중들에게 다이빙해 들어감을 통해 둘 사이의 거리감을 없앨 수 있는 장점을 지니지만,종종 사고의 원인이 되기도 하여 많은 공연장에서 이를 금하고 있기도 하다. 현재는 펑크/하드코어 뿐만 아니라 얼터너티브,헤비메탈 공연장에서가지 일상적으로 볼 수 있는 광경이 되었다.
-Straight Edge
워싱턴 DC의 마이너 스레트(Minor Threat),뉴욕의 유스 오브 투데이와 고릴라 비스키츠(Gorilla Biscuits)를 중심으로 ’80년대 중후반 미국 동부지역에서 일어난 새로운 하드코어 무브먼트. 동시대의 펑크/하드코어 밴드들의 니힐리즘과 폭력성에 반대하며 방탕한 생활을 배격하는 동시에 ‘정치적으로 올바른(Politically Correct:PC)’노선을 추구하였음. 현재는 거의 명맥을 유지하는 정도.
-Two Tone Movement
’70년대 말~’80년대 초 영국의 <투 톤(Two Tone)>레이블을 중심으로 일어난 스카-펑크 믹스추어 무브먼트. ‘스카 제 2 의 물결’이라고도 불리움.셀렉터(Selector),스페셜즈(Specials),베드 매너즈(Bad Manners),잉글리시 비트(English Beat) 등이 대표적이며 클래시 같은 밴드도 이러한 영향권 내에 존재했다고 볼 수 있음.

(발췌:’98년 월간 GMV 6월호)

Ska

The Specials.JPG
The Specials” by Robman94Own work. Licensed under CC BY-SA 3.0 via Wikimedia Commons.

스카가 처음 출현한 것은 59년 또는 60년 자마이카에서였다. Derrick Morgen 이라는 가수가 59년에 처음으로 스카 음반을 녹음했다고 알려져 있다. 스카에 관해 논할때는 Prince Buster -Cecil Campbell이라 알려져 있다.-라는 이름을 언급하지 않을수 없다. 그는 당시로선 새로운 것이라 보여지는 리듬비트 방식을 선보였다. 어떻게 본다면 원초적인 흑인 게토 사운드와 같은 것이었다. 그는 자신의 밴드에 있던 기타리스트에게 리듬을 바꾸어 달라는 주문을 여러 차례에 걸쳐서 했고그 기타리스트는 애프터 비트에 액센트를 두는 싱코페이션을 리듬 비트에 자주 배치하기 시작했다. 이러한 연주방식은 얼마안가 ‘스카부비’라는 슬랭으로 통하기 시작했다. 스카의 기원도 이 스카부비에서 찾을 수 있다. 이것은 버스터의 음악을 특징짓는 대표적인 것이 되었고 얼마후엔 자메이카를 대표하는 음악 스타일로 자리했다. 스카의 스타였던 Jimmy Cliff는 Leslie Kong 이 이끈 Beverley라는 레이블에서 음악적 경력을 쌓기 시작했다. 그러나 당시의 진정한 왕은 데릭 모건 이었다. 64년 세션 뮤지션이었던 색스폰 주자 Tommy MeCook은 몇몇 연주인들을 받아들여 The Skatalites라는 밴드를 출범 시켰다. 이들은 65년에 해산하고 수십여년이나 지난 83년 재결성 되었다. 이들은 재즈와 스카의 형식이 교묘히 결합된 스카 이스트루멘틀의 고전 “Gun Of Navarone”을 제작해 주목을 끌었고 이 곡은 이후의 스카 음악인들에게 ‘스카란 이렇게 연주해야 한다.”라는 기준을 제시했다. 그러나 스카라는 것이 본국인 자메이카에서만 즐기기에는 너무 벅찼다. 국민의 생활수준이나 오락산업 등에서 낙후된 이 곳에서는 스카가 상업 주의로 포장되기에는 머나먼 이야기였기 때문이다. 이러한 음악이 먹힐수 있는 가장 큰시장은 영국이었다. 2차 세계대전 이후 자메이카 사람들 다수가 리즈, 버밍험, 런던 등으로 이주해버려 영국의 몇몇 지역에서는 자메이카적인 경향들이 유행하고 있었다. 프린스 버스터의 음악도 이즈음에 영국에 그 모습을 드러냈다. 그리고 일련의 영국 모드족들이 이것에 흥미를 갖고 자신들의 음악에 반영해 갔다. 이렇게 해서 스카는 영국 고유의 브리티시 사운드와 만나게 된 것이다. 미국에서의 스카는 2-Tone 레이블에서 시작되었다. 뮤지션들로는 The Specials, Selecter, Madness등이 대표적이다. 미국의 스카는 아메리칸 뮤직 고유의 R&B와 만나며 그루브를 더 한층 잘살리는 사운드를 만들어 내었다. 90년대로 들어와 스카는 또한번 변화를 겪게된다. 원래의 오리지널리티가 많이 상실된채로 댄스나 그외의 영역들과 어울리며 대중적인 인기를 얻어갔던 것이다. 물론 자메이카적인 정통 스카를 연주하는 밴드들이 클럽에 산재해 있었으나 이들 정통 스카의 얄범들은 전혀 팔리질 않았다. 결국, 스카는 상업화, 팔리는 쪽의 대세로 기울며 변질 또 변질 되어갔다. 원래 스카 연주자들은 재즈적인 기반이 있었음에도 미국음악계에서는 스카 음악인들이 결코 재즈쪽으로 진출하지 못하고 말았다. 엉뚱하게도 팝이나 댄스의 영역으로 진출해 Rock Ska 또는 Pop Ska 를 만들어내었던 것이다. 이제 스카는 그 자체의 스타일을 거의 상실하다시피 했다. 스카를 연주하는 음악인들은 생계도 벅찰 정도이다. 반면 이것을 상업주의에 적절히 이용하는 밴드들은 거대한 성공을 맛 보았다. 우리가 듯는 스카록 또는 스카팝은 진정한 스카가 아닌 ‘변질된’ 스카인 것이다.  

http://my.dreamwiz.com/jachunhi/rock6.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