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이팝

들어가며

일반인 내가 하이텔의 동성애 모임인 “또사모”에 과감하게 가입하기까지는 하나의 작은 사건(?)이 원인이 되었다. 내가 몸담고 있던 음악동호회에서 여름을 맞이한 여름 특집감상회를 어떤 주제로 할까 고민하던 차에 내가 제안했던 ‘게이 아티스트 특집’이 의외의 반발에 부딪쳐 무산된 것이 계기가 되었다. 한국이 문화적 폐쇄주의 사회라는 것은 철들기 시작한 사춘기 시절부터 체험하고 있었지만 대다수가 X세대라 일컬어지는 20대 초반, 더욱이 외국의 음악을 폭넓게 접해오며 좀더 개방적인 생각을 가진 사람들로 구성되었다고 생각한 그 모임에서마저 “사회에 민감한 문제로 우리 동호회의 이미지에 문제가 생길 수도 있다”는 반대 주장이 만연되어 있다는 사실은 나로서는 받아들이기 어려운 큰 충격이었다.

어려서부터 가요보다는 팝 음악을 좋아했던 나는 1980년대 전 세계를 휩쓸었던 뉴웨이브에 매료되었고, 전세계 소녀 팬들의 연인이었던 듀란듀란(Duran Duran), 컬처클럽(Culture Club) 역시 나의 우상이며 연인이었다. 1980년대 뉴웨이브의 유행은 유니섹스(Unisex)의 열풍을 몰고 왔었다. 빨간 립스틱, 짙은 마스카라, 하얗게 화장한 얼굴, 나풀거리는 블라우스 등은 그 당시 뉴웨이브 밴드들의 트레이드 마크였다. 10대 초반부터 이러한 뉴웨이브 밴드에 관심을 가졌던 나는 그래서인지 어려서부터 동성애에 대한 놀라움이나 반감이 없었다. 계속 음악에 관심을 기울이고 정보를 수집하면서 뛰어난 음악성으로 인정받는 많은 영국 아티스트들 중에 상당수가 동성애자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고 개인적으로 그들이 동성애자라는 사실보다는 그들이 자신의 섹슈얼리티를 밝히고 난 직후의 매스컴이나 팬들의 반응이 더 흥미로웠던 것이 사실이다.

팝 음악계 게이 아이콘의 역사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 가장 대표적인 영국의 게이 아이콘(Gay Icon)을 꼽는다면 1960년대 후반 영국에서 빛을 보기 시작한 글램락에서부터 시작한 데이비드 보위(David Bowie)를 들수 있다. 호리호리한 몸매, 뚜렷한 윤곽의 얼굴, 짙은 화장, 몸매가 드러나는 원피스도 마다하지 않는 그의 과감함은 그 당시 기성세대들에게 큰 충격이었고 젊은 세대들에게는 신선한 충격과 선망의 대상이었다. 그의 이러한 이미지는 1980년대 뉴웨이브 밴드들에 의해 좀더 과감한 형태로 재창조되기도 했다. 데이비드 보위는 Bisexual로 알려져 있다. 지금은 에티오피아의 국민영웅인 세계적인 슈퍼모델 ‘이만’의 남편이지만 그는 첫번째 부인(첫번째 부인도 양성애자로 알려져 있다)과의 사이에서 현재 20대 중반의 장성한 아들을 하나 두고 있기도 하다. 과거 영국의 주간지에 부인과 함께 주말이면 게이 바에 함께 손잡고 들어가서 나올 때는 따로따로 동성 파트너와 손잡고 나와서는 하루 밤을 따로 보낸 후 아침에 집으로 귀가한다는 기사가 실린 적도 있었고, 그의 부인이 남편과 믹 재거(Mick Jagger. 롤링스톤즈 리드보컬)가 한 침대에 있는 것을 목격했다고 기자들에게 토로하기도 할 정도였다. 데이비드 보위와 더불어 동성애자(혹은 이성애자)로 알려져 있는 영국의 거물급 아티스트로는 엘튼 존(Elton John), 조지 마이클(George Michael), 그리고 그룹 퀸(Queen)의 리드보컬 프레디 머큐리(Freddie Mercury)등이 있다.

1960-70년대의 대표적인 Gay Icon이 데이비드 보위였다면 1980년대에는 ‘여자보다 더 예쁜’ 컬쳐클럽의 보이 조지(Boy George)를 빼놓을 수 없다. 컬쳐(Clture Club)의 드러머와 연인 사이였던 그는 데뷔 후 몇 년간은 공식석상에서 동성애자가 아니냐는 질문에 “I never sleep with man”이라는 강한 어조로 동성애자임을 적극 부인하고 나섰으나 그래미 시상식에서 최우수 신인상을 수상한 직후의 인터뷰에서 수줍으나 상기된 표정으로 “I love you America! You realize a real drag-Queen when you see one.”라는 한마디 말로서 자신이 동성애자임을 공식석상에서 밝힌 셈이 되었다. 후에 그는 자신의 본 모습을 숨기고 살아야 했던 힘들었던 시간을 회상하며 세상에 공개한 후의 홀가분함을 인터뷰에서 밝히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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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esbian Angels” by Diricia De Wet from Johannesburg, South Africa – Lesbian Angels
Uploaded by ZH2010. Licensed under CC BY 2.0 via Wikimedia Commons.

1980년대 후반의 변화

1980년대 초반의 뉴웨이브가 겉치장을 위주로 음악에 담겨진 메시지와는 상관없이 ‘보여주는’ 게이 문화를 대표했다면, 1980년대 후반에서 현재까지 이어져 오는 영국의 synth-pop(일렉트릭 기타, 드럼, 베이스보다는 프로그래밍 된 드럼과 신디사이저를 주로 사용한 팝)을 구사하는 몇몇 게이밴드들은, 외모로 보여주는 것보다는 노래에 담긴 메시지로서 Gay-pop의 한 주류를 형성해 왔다고 할 수 있다. Gay-pop을 정의함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것은 아티스트 자신들과 그 아티스트와 그들의 음악을 추종하는 팬들의 섹슈얼리티에 있다. 아티스트 자신이 게이임을 밝힌 경우 그들의 음악을 gay-pop으로 분류하는 것은 물론이고 어느 아티스트의 팬들의 대다수가 게이라면 그들의 음악은 Gay-pop으로 분류된다. 대표적으로 예쁜 외모와 매력적인 몸매가 음악성보다 강조되어졌던 소년 그룹(‘테이크뎃’이나 ‘보이존’)들은 멤버들의 섹슈얼리티와는 상관없이 겉으로 드러나는 열광적인 소녀 팬들 이외에 20세 이상의 남성 게이 팬들도 상당한 숫자였기에 Gay-pop으로 분류되기도 한다.

이렇게 아티스트 자신이나 그들의 팬들의 섹슈얼리티 외에 중요한 음악 자체에도 나름대로의 특징을 가지고 있는데 그 특징이라면 런던의 언더그라운드 게이클럽이나 바에서 단골로 흘러나오는, 춤추기에 적당하고 부담스럽지 않을 정도의 빠른 템포, 서정적이며 흥겨운 분위기의 멜로디, 무겁지 않은 베이스라인, 뛰어난 가창력이라고는 할 수 없지만 군더더기 없는 깔끔한 보컬 등이 대표적인 특징이라 할 수 있겠다. 주목할 만한 사실로 Gay-pop그룹의 대부분은 자신들이 게이라는 사실을 대중에게 공개해왔다는 것이다. 대다수의 기존 팬들은 자신들이 좋아하는 아티스트가 게이라는 사실을 거부감 없이 받아들였고, 이러한 대중 앞의 공개는 오히려 새로운 팬들을 확보하는 촉매 역할을 하기도 했지만 그들이 게이라는 사실만으로 하루아침에 등을 돌리는 팬들도 물론 있었다(이러한 예는 남성 팬들에게 많이 나타난다고 한다). 대표적인 Synthpop그룹으로 자신들이 게이임을 밝히고 활발히 활동하는 펫 샵 보이즈(Pet Shop Boys), 이라주어(Erasure)등은 대표적인 영국의 Gay-pop 아티스트들로 손꼽힌다.

섹슈얼리티에 상관없이 전 세계적으로 사랑 받고 있는 대표적인 그룹인 펫 샵 보이즈는 엘튼존, 퀸의 프레디 머큐리와 더불어 ‘거물급’ 게이 뮤지션에 속한다. 닐 테넌트와 크리스 로우의 Pet Shop Boys는 한때 두 멤버 사이의 염문설도 있었으나 인터뷰에서 서로가 서로의 취향이 아니라는 농담조의 발언으로 자연스럽게 그 염문설을 부인하기도 했다. 솔직하고 담담한 가사로 삶과 사랑뿐만 아니라 전쟁, 기아 등의 사회문제를 노래하기도 하는 펫 샵 보이즈 음악의 큰 특징은 오케스트레이션과 신디사이저를 기본으로 한 친숙하며 흥겨운 멜로디에 묻어 나오는 서정성과 우울함이다. ‘흥겨움과 우울함’, 이 두 가지가 자연스럽게 공존하기란 어려운 일인데 이들은 이 두 가지를 그들의 음악 속에 자연스럽게 조화시키고 있다.

게이 이미지의 보편화

Gay의 영어 사전적 뜻은 Light-hearted, cheerful, brightly coloured. 즉 ‘흥겨움, 즐거움, 밝음’이다. 선진사회의식의 대표 격인 영국 사회에서조차도 동성애자들은 기득권을 쥐고 있는 이성애자들 중심의 기존 사회로부터 눈에 보이는, 혹은 보이지 않는 외면, 멸시, 차별 등을 받아 왔음은 쉽게 상상할 수 있는 일이다. 이러한 것으로 미루어 볼 때 Pet Shop Boys의 ‘즐거우나 서정적이고 우울한’ 분위기의 음악은 이러한 사회성향에 비추어 자연스레 형성된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현 시대 예술의 여러 분야에서 팝 음악처럼 다양한 섹슈얼리티를 큰 저항이나 거부감 없이 폭넓게 수용하는 분야도 드물다. 아티스트 개인의 섹슈얼리티와는 상관없이 Homosexual, Bisexual, Transsexual의 이미지는 매우 보편화 되 있다. 특히 최근 제작되는 뮤직비디오에서는 이러한 성향이 뚜렷하게 보여진다. 팝 음악은 여러 가지 문화 형태 중에서 가장 효과적으로 시대별로 그 당시 진보적인 젊은이들의 기성세대에 대한 불만과 욕구를 표출하는 도구로서의 역할을 해왔다. 그러한 의미에서 이미 팝 음악의 큰 줄기로 떳떳하게 자리 잡고 다른 분야에까지 영향을 끼치고 있는 Gay-pop은 단지 음악으로서 뿐만 아니라 아직까지도 ‘소수’로 차별대우를 받는 전 세계 동성애자들의 작은 목소리를 크게 높일 수 있는 효과적인 매체로서 주목할만한 가치가 있다고 생각한다.

출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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