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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더그라운드, 인디펜던트, 하드코어

이는 대학 라디오 방송을 자주 타고 또 대학생들 사이에서 인기 있는 직업적 록 밴드나 뮤지tus의 음악을 가리킨다. 이 컬리지 록의 환경이 주류 팝/록 음악에 대해 적대적이었고 어떤 의미에서는 그에 대한 ‘대안’ 구실을 했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얼터너티브’라는 형용사가 붙은 것으로 보인다. 1980년대에 대학가에서 인기를 끈 록 음악은 상업 라디오 방송이나 MTV 등의 대중 매체를 거치지 않고, 메이저 음반사를 통한 음반 판매 및 배급망과는 전혀 다른 경로를 통해 유통되는 언더그라운드(혹은 인디펜던트) 뮤지션들의 음악이었다. 1980년대 초반 이후 미국에서는 하드코어 씬을 비롯한 인디 씬이 각 지방의 언더그라운드 하위 문화로 폭넓게 자리잡고 있었는데, 이들은 1970년대 펑크 운동의 음악적 영향과 에토스를 계승하면서 주로 지역 클럽에서의 공연을 통해 실력을 축적했고 자신들만의 독립 음반사(흔히 ‘인디 레이블’이라고 부르는)를 설립해 음반을 제작했으며, 주류 음반 시장과는 다른 독자적인 배급망을 수립하기도 했다. 

따라서 컬리지 록 방송, 언더그라운드 클럽, 인디 레이블, 하드코어 배급망, 이 네 가지의 접속이 얼터너티브 록의 모태라고 할 수 있다. 그렇게 본다면, 얼터너티브 록을 분류하면서 우리를 곤혹스럽게 만들었던 몇 가지 문제들을 이해할 수 있다. 예컨대, 얼터너티브 씬이 생기기 훨씬 전부터 활동했던 R.E.M.이나 U2 같은 밴드가 어째서 때로는 얼터너티브에 포함되거나 그 선조격으로 언급되곤 하는가라는 문제 같은 것인데, 이 두 밴드는 모두 1980년대 대학 라디오 방송의 인기 스타였으며, 특히 R.E.M.의 경우 1980년대 말까지는 클럽공연과 인디 레이블을 통한 음반 발매를 지속했던 ‘언더그라운드 밴드’에 속했기 때문에 이런 식의 분류가 아주 근거 없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대학가와 언더그라을드의 하위 문화로서 록은 단지 얼터너티브의 모태 이상의 것은 아니었다. 얼터너티브는 언더그라을드에서 지상으로 을라왔을 때 비로소 출현했고, 그때서야 고립적인 하위문화의 경계를 넘어서게 되었다. 거기에 결정적인 역할을 수행한 것은 아이러니컬하게도 바로 1980년대 록을 ‘죽였던’ 상업주의의 화신 MTV였다.

로널드 레이건이 미국 대통령으료 취임한 해이기도 한 1981년에 설립된 MTV는 당대의 사회 분위기에 걸맞는 문화적 첨병의 기능을 충실히 수행했다. MTV의 가장 큰 관심사는 팝 음악에서 불쾌하고 거친 요소들을 깨끗이 쓸어 내는 것, 다시 말해 청년 문화를 근절시키는 것이었다. 일찍이 MTV를 장식했던 듀란 듀란, 컬처 클럽 등은 글램과 펑크의 이미지에서 거칠고 공격적인 요소를 거세한 채 적절히 팝적으로 조합한 것이다. MTV의 보수성이 단적으로 잘 드러나는 것은 혹인 및 흑인 음악에 대한 태도였는데, 심지어 마이클 잭슨조차 단지 피부색이 검다는 이유만으로 상당 기간 비디오 방영을 거부당하다가, 잭슨의 소속사인 CBS의 으름장에 못 이겨 간신히 방송을 탈 수 있었다 물론 잭슨의 대히트 덕분에 MTV는 일약 세계 최대의 대중 음악 매체로 부상할 수 있었고, 그의 인기가 시들해지고 있는 지금까지도 아낌없는 ‘충성’을 바치고 있긴 하지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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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dova REM concert July 22 2003 blue” by Flickr user Stark (Stefano Andreoli) – http://www.flickr.com/photos/scaccia/39502728/. Licensed under CC BY-SA 2.0 via Wikimedia Commons.

1980년대 내내 마이클 잭슨, 마돈나, 왬 등의 팝 스타들을 양산했던 MTV에 변화의 조짐이 보이기 시작한 것은 당시 미국에서 ‘유일하게’ 형성된 반 문화라고 할 수 있는 혹인 게토의 힙합 문화를 수용하면서부터였다. 그리고 1990년대에 들어서자 MTV는 니르바나 등 이른바 시애틀 그런지 밴드들을 필두로 한 얼터너티브 록을 본격적으로 보급하는 데 앞장서기 시작했다. 1980년대 보수주의와 주류 팝 문화의 선봉에 섰던 MTV가 1990년대에 ‘얼터너티브 네이션으로 변모한 까닭은 무엇일까? 한 가지 확실한 것은 이 새로운 록 음악이 대중에게 파고들어 돈벌이가 된다는 계산이 분명 깔려 있었다는 점이다. 하지만 그런 상업적 계산이야말로 너무나도 당연한 일이기 때문에 그런 식의 해답만으로는 만족할 수 없다. 즉, 문제는 왜 또다시 록 음악이 대중, 특히 청년 대중을 사로잡게 되었는가 하는 것이다.

이 문제를 풀기 위해서는 아마도 좀더 폭넓은 사회 문화적, 정치적 맥락에서 청년 문화가 차지한 위치로 시야를 넓힐 필요가 있다. 영미권의 1980년대가 사회, 정치, 경제, 문화적인 모든 측면에서 레이건-대처로 상징되는 신보수주의의 지배 아래 놓여 있었다는 것은 익히 알려진 사실이다. 록 음악 연구자 토니 커시너는 <대중 음악과 사회>라는 잡지에 기고한 논문에서 청년 집단 내부에서도 보수적 경향이 지배적이었으며 이는 신우익 운동과 청년 공화주의자 혹은 청년 레이건주의 집단으로 표상 되었다고 보았다. 그리고 그는 1980년대의 보수주의와 현란한 주류 팝 문화간에 어떤 직접적인 연관성이 존재한다는 명시적인 근거를 제시하지는 못하지만 다분히 그런 혐의가 있음을 암시하고 있다.

앞서 말한 하드로어 씬을 구성한 뮤지션들은 비교적 일찍부터 이런 보수주의-팝 문화에 반발했던 젊은이들에 속한다. 적어도 이들에게는 마이클 잭슨과 로널드 레이건이 동일선상에 놓여 있는 적이었음에 틀림없다. 따라서, 이들이 정치적 급진주의와 더불어 반 팝적인 이데올로기, 즉 듣기 편한 멜로디와 대중적인 스타덤을 강력 하게 거부하는 태도를 견지한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1980년대 중후반 이들의 국지적 출현은 억눌리고 소외당한 채 불만에 싸여 있는 젊은이들의 호응을 얻으면서 점차 팬들을 확보했지만, 대중적인 현상이 되기에는 아직도 여전히 고립 분산적인 활동의 한계를 넘어서지 못했다. 결국 그런 방식에 한계를 느낀 몇몇 밴드가 메이저 레이블과 계약을 맺고 주류 음반 시장으로 치고 올라왔다는 것, 그리고 사회 정치적으로는 공화당 정권으로 상징되는 보수주의가 후퇴하기 시작했다는 것이 맞물리면서 1990년대 록 음악과 청년 문화의 르네상스를 알리는 사건들이 속속 일어나게 된 것이다.

출처불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