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페쉬모드의 성장 과정과 그룹 결성

다음은 딜런존스(Dylan Jones)의 Sweet Dreams : The Story of the New Romantics에서 Depeche Mode에 관한 이야기를 발췌한 내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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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Brianhphoto자작, CC BY-SA 4.0, 링크

Stephen Dalton(저술가) : 빈스 클락(Vince Clarke)은 송라이터였고 소리 제작의 뒤에서의 추진력이었습니다. 그러나 수줍어하는 프론트맨이었어요. 하루는 데이브 간(Dave Gahan)이 보위의 “영웅들”을 학교 연습실에서 부르는 것을 듣고 그에게 자신의 그룹에서 노래해 달라고 요청했습니다.[262쪽] 디페쉬모드의 창립 멤버들은 모두 노동계급의 동네에서 종교적인 가족 속에서 자랐죠. 고어와 간은 당시 계부의 슬하에서 컸어요. [중략] 그들은 글램락과 쏘울을 들으며 자랐어요. 데이빗 보위(David Bowie), 게리 글리터(Gary Clitter), 스팍스(Sparks), 크래프트베르크(Kraftwerk). 그러나 펑크가 배질던(Basildon)을 강타하자 모든 것이 바뀌었어요. 새로운 염가의 신디사이저들 덕분에 제한적인 음악적 능력을 갖춘 노동계급의 십대들이 갑자기 예술적이고 아방가르드한 팝을 만들게 된 거죠.[262-263쪽]

Martin Gore : 우리에게 신디사이저는 펑크(punk) 악기였어요. 즉각적이고, DIY(do-it-yourself) 도구였어요. 왜냐하면 그건 여전히 새롭고 한계가 없을 것 같은 가능성이 있었기 때문이죠.[262쪽] 나는 정말 배질던이 싫었어요. 거기서 하루빨리 탈출하고 싶었죠. 밴드에 들어가는 것이 일종의 도피였어요. [263쪽]

Dave Gahan : 난 그저 주목받고 싶었어요. [중략] 하루는 경찰차가 집밖에 섰어요. 엄마가 “너한테 온 거야?”라고 물었고 나는 “네.”라고 대답했죠. [263쪽] 솔직히 말해 음악이 날 구원했어요. The Clash를 보고 이렇게 생각했죠. ‘나도 할 수 있어.’ 난 언제나 늘 과시적인 사람이었어요. 아주 어릴 적에 이모들이 오면 믹 재거나 게리 글리터를 흉내내며 엄마를 즐겁게 해줬었죠. [264쪽]

Andy Fletcher : 우리는 열한 살 때부터 매년 거대한 크리스찬 락페스티발이 열리는 그린벨트에 가곤 했어요. 사실 거기서 U2를 1980년에 한 번 봤어요. 솔직히 그건 교회와 음악의 사회적 영향력보다 더 컸죠. 그건 엄청나게 거대한 사회적 현상이었어요. 그리고 배질던은 할 게 없었어요. 차를 훔치거나 교회에 가는 것 빼고는.[264쪽]

요즘 보는 미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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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BO – http://www.impawards.com/tv/succession_ver2.html, Fair use, Link

요즘 쿠팡플레이에서 석세션(Succession)을 보고 있다. 어제 시즌 2의 첫 번째 에피소드를 봤다. 로간 로이(Logan Roy)라는 독재적인 성향의 인물이 일군 미디어제국의 권력이 그의 자식들로부터 도전을 받는 시점부터 시작하는 작품인데, 유명한 미디어 재벌 루퍼트 머독 일가의 실제 모습을 많이 참고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실제로 루퍼트 머독 일가는 석세션처럼 지금도 치열하게 권력 투쟁 중이다) 공간적 배경인 (언젠가 다시 가보고 싶은) 뉴욕 맨해튼을 묘사하는 차가운 톤의 역동적 촬영이 극에서의 냉정한 인간관계와 잘 어울려 재밌게 보고 있다.

어쨌든 자본은 지금은 각종 엄밀한 법률적 장치와 절차에 의해서 그 지분(equity)이 합리적으로 통제받는 것으로 인식되지만, 이 작품을 보면 사실은 그 자본 안에서는 여전히 봉건적이고 매우 인간적인 (도덕적이거나 합리적 우열을 가리려는 호불호에 상관없이) 기제가 작동하고 있다는 사실을 잘 보여준다. 과 같은 초미래의 시대를 설정한 작품에서조차 그러하듯이 여전히 권력 내에서의 작동 기제는 중세 혹은 더 거슬러 올라가는 권력에서의 그것이 그러하듯이 협잡과 윽박지름과 합종연횡의 줄타기를 통해 관철되고 있다. 한마디로 기싸움이다.

로간 로이 역의 브라이언 콕스(Brian Cox)는 제이슨본 시리즈의 본아이덴티티(The Bourne Identity)에서 악역으로 출연하였을 때의 연기로 인상이 깊었던 배우인데, 막무가내 재벌 1세의 캐릭터가 너무 잘 어울리는 배우다. 로간에 대항해서 열심히 반항하는 아들 켄달 로이 역의 제레미 스트롱(Jeremy Strong) 캐릭터도 인상적이다. 애사심에 아버지에 대항하는 척하면서도 결국 억제할 수 없는 권력에로의 본능을 드러내는 뽕쟁이 재벌2세의 캐릭터를 잘 소화해내고 있다. 이외의 조연들의 호연도 극을 재밌게 감상할 수 있는 매력포인트다.

그중 특히 흥미로운 캐릭터/배우는 권력 의지 없는 맏형 코너 로이(Connor Roy)역의 앨런 럭(Alan Ruck)이다. ‘어디서 많이 봤다’ 생각하며 보다보니 알아차린 건데 개인적으로 좋아하는 80년대 코미디 ‘페리스의 해방’에서 역시 삶의 의욕이 없는 부잣집 외아들 캐머런 프라이(Cameron Frye) 역으로 – 의욕 없는 부잣집 아들 역이 종특? – 나온 배우다. 아버지의 재력에 빌붙어먹는 한량이 현재까지 본 중 딱 한번 좌파 상원의원인 길 이비스(Gil Eavis)를 만나 적대감을 드러내며 권력의지를 드러냈다. 대통령이 되겠다고. 🙂

Nu Shooz / Poolside [198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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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The cover art can be obtained from Atlantic Records., Fair use, Link

Nu Shooz라는 밴드가 있었다. 아마도 ‘새 신발(New Shoes)’를 폼나게 표현한 밴드명이 아닐까 싶다.1 나를 비롯한 대다수 사람들은 원히트원더(one-hit wonder) 밴드로 기억하지만, 의외로 이들은 1982년 Can’t Turn It Off를 시작으로 2016년 Bagtown에 이르기까지 일곱 장의 스튜디오앨범을 내놓은 나름 장수 밴드다. 우리의 시야에서는 사라졌지만, 나름 열정을 가지고 꾸준히 음악 활동을 한 끈기있는 뮤지션이라는 생각이 든다. 하지만 어쨌든 그들의 최고 히트 싱글은 I Can’t Wait고 그 노래가 수록되어 있는, 그들이 가장 상업적으로 성공한 앨범은 지금 소개하는 1986년 작 Poolside다.

위키피디어는 이들 음악 장르를 프리스타일(Freestyle)이라고 정의하고 있다. 프리스타일 또는 라틴 프리스타일은 주로 흑인 미국인, 히스패닉계 미국인, 이탈리아계 미국인 사이에서 뉴욕 대도시권, 필라델피아, 마이애미 에서 등장한 일렉트로닉댄스 음악의 한 형태다. 중요한 선구자로는 Planet Rock을 내놓은 Afrika Bambaataa와 Let the Music Play를 내놓은 Shannon이 거론되는데, 대충 겹치는 이미지가 있다. 인종적으로 섞여 음악적 교류가 잦은 뉴욕이라는 대도시에서 브레이크댄스 팬들이 춤추기에 알맞은 신디싸이저가 주조를 이루는 댄스음악이 인기를 끌었고 이를 프리스타일로 범주화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엉뚱하게도 Nu Shooz는 뉴욕의 반대편인 서부에 위치한 오리건주의 포틀랜드 출신이다. 주류 음악의 본거지와 거리가 멀다보니 이들의 성공 경로는 제법 험난했다. 1985년 I Can’t Wait를 발표했고 지역의 라디오 방송국에서 인기를 얻었지만, 전국적 인기와는 거리가 멀었다. 그런데 희한하게도 이 노래가 네덜란드에 수출되고 거기서 리믹스 버전이 만들어졌고 “Dutch Mix”라 알려진 이 버전이 아틀랜틱레코드사의 귀에 들려 레코드 계약을 하게 되었다고 한다. 그래서 Poolside에 수록된 우리가 알고 있는 버전은 오리지널보다 도입부가 보다 더 매력적인 Dutch Mix 버전이다.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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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 screen cap from a Miami Vice episode, Fair use, Link

이들의 음악이 지역적으로 어디와 가장 잘 어울릴까 생각해보면 개인적으로는 그들의 고향 포틀랜드도 아니고 프리스타일의 본고장 뉴욕도 아니고 바로 풀사이드라는 앨범명이 가장 잘 어울리는 따가운 햇볕이 이글거리는 마이애미다. 80년대 미드 마이애미바이스에서 주인공 크로켓(Crockett)과 텁스(Tubbs) 형사가 풀장이 딸린 대저택에 살고 있는 악당을 찾아갔을 때에, 풀사이드에서 선탠을 즐기며 이들을 무심한 눈초리로 바라보는 비키니 차림의 미녀들을 줌인할 때 배경음악으로 쓰면 딱 좋을 스타일이다. 동북쪽 끝에서 탄생한 장르를 활용해 서북쪽 끝에서 만든 음악이 서남쪽 끝 스타일의 음악이 된 셈이다.

앨범에서는 역시나 스티비 닉스의 1986년의 히트곡과 같은 이름의 I Can’t Wait가 가장 매력적인 곡이지만, 두 번째 싱글로 내놓은 Point of No Return도 나름 매력적인 곡이다. 어떤 면에서는 약간 코맹맹이 소리가 섞인 보컬 Valerie Day의 매력이 이곡에서 더 두드러지는 느낌이다. 재밌게도 I Can’t Wait처럼 Point of No Return도 같은 제목으로 80년대 한번 더 히트를 기록하는데 1987년 Exposé가 발표한 동명의 히트곡이 있다. 또 하나 맘에 드는 점은 이 히트곡이외에도 나머지 트랙들도 꽤 준수한 수준의 곡들이라는 점이다. 그래서 그런지 AllMusic은 이 앨범에 별 네 개 반을 선사했다.


I Can’t Wait 무대 공연 영상. 영상 시작 부분에 난데없이 Patsy Kensit이 등장한다. 막 인터뷰를 마치는 시점에서의 장면인 듯.

  1. 생각해보니 케이팝 걸그룹 뉴진스와 이름이 비슷하다
  2. 편곡이 얼마나 중요한 작업인가 하는 것은 A-ha의 Take On Me의 초기 버전이후의 버전을 들어보면 잘 느낄 수 있다.

Double / Blue [1985]

Double의 데뷔 앨범 Blue에 관한 정보를 찾기 위해 서핑을 하던 중 재밌는 사실을 발견했는데 AllMusic에서 올려놓은 앨범의 이미지는 흥미롭게도 한국에서 발매된 더블의 앨범 이미지라는 점이다. “유니버설 뮤직 마스터피스 시리즈 34”로 타이틀을 달고 발매된 이 앨범의 홍보 문구도 재밌다. “팝과 휴전재즈의 명쾌한 결합으로 세련되고 독창적인 라운지 뮤직의 새로운 지평을 이뤄낸 희귀작. 국내 유일 재발매반.”이 바로 이 앨범이다. 라운지 뮤직은 아마도 Lounge Music 장르(?)를 의미하는 것으로 보이는데, 과문하지만 라운지에서 가볍게 들을 수 있는 팝계열에 여러 장르를 섞은 음악으로 이해하고 있다. 대표적으로 일본의 피치카토파이브(Pizzicato Five) 등이 활약한 시부야게나 좀 더 깊이 들어가면 스테레오랩(Stereolab) 정도까지 스펙트럼이 넓다, 어쨌든 크게 힘 안 들이는 것 같으면서도 다른 통속적인(?!) 장르보다는 좀 더 있어 보이는 장르라고 할 수 있을 것 같다.

그런 점에서 바라보면 더블을 라운지 뮤직이라 해도 크게 틀리지는 않은 것 같다. 위키피디어나 디스콕스에서 정의하는 이들의 음악 장르는 소피스티팝, 신스팝, 일렉트로닉, 째즈팝 정도다. 모두 맞는 말인 것 같다. 이들의 음악은 누가 뭐래도 도회적인 이미지를 담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수록곡 중에는 Urban Nomads라는 제목의 트랙도 있다.) 거기에 색소폰과 같은 통상의 팝이나 락에서 잘 안쓰는 악기를 전면에 배치하고 있고 멜로디의 변화도 이색적이지만, 째즈라고 정의하기에는 지나치게 팝적이다. 어쨌든 팝은 팝인데 스위스와 독일을 기반으로 활동한 밴드라 그런지 영미권과는 조금은 다른 분위기의 팝음악을 선보였다는 점이 매력이다. 앨범에서 가장 매력적인 곡은 가장 크게 사랑받은 The Captain of Her Heart지만, 개인적으로는 차트 진입에 성공하지 못한 앨범의 마지막 트랙 Tomorrow도 못지않게 사랑스러운 곡이라고 생각한다.

Michael Stipe와 Morrissey의 만남

A close-up of Stipe holding a microphone
By Kris Krug @ https://www.flickr.com/photos/kkhttps://www.flickr.com/photos/kk/2332841534/, CC BY-SA 2.0, Link

(R.E.M.의) 마이클 스타이프(Michael Stipe)가 캐롤린플레이스(Carolin Place)에 나타났고, 우리는 퀸세이 식당들의 똥 냄새가 공기를 오염시키는 가운데 뒷마당에서 차를 마셨다.
“이 동네가 싫어요.” 내가 마이클에게 말했다.
“그럼 왜 여기 사세요?” 그가 물었다.
“모르겠어요.” 내가 대답했다.
“처음 Everyday is like Sunday를 들었을 때 정말 부러웠어요.”
그는 계속해서 자신도 솔로 활동을 하고 싶다고 말했다.
“나는 솔로 활동하고 싶지 않았어요.” 내가 말했다. “나는 The Smiths가 최소 30장 정도는 냈을 거라고 생각했어요.”

[모리시 자서전, 227~228쪽]

Scarlett and Black / Scarlett and Black [1987]


이미지 출처 : 소피스티팝 계열 앨범인데 커버가 너무 침울하다

Scarlett and Black은 Robin Hild와 Sue West로 구성된 영국 출신의 팝 듀오다. 로빈 힐드는 이전에 the Big Supreme의 키보드 연주자였고 , 수 웨스트는 Doctor and the Medics의 전 백킹 보컬리스트였다. 그들은 1987년 버진 레코드 에서 셀프타이틀 앨범을 발매했다. 이 앨범은 1988년 빌보드 탑 200 에서 107위에 오르는 등 미국에서 약간의 성공을 거두었다. 싱글 You Don’t Know는 같은 해에 빌보드 핫 100 에서 20위에 오르는 히트곡이 되었고, 어덜트컨템포러리(13위)와 댄스(핫 댄스/클럽 플레이 32위, 핫 댄스 싱글 41위) 차트에 올랐다. 하지만, 이후 제대로 된 후속 앨범을 내놓지 못하면서 Scarlett and Black은 원히트원더로 남게 되었다.

You Don’t Know는 처음 들었을 때 ‘Tears For Fears의 곡이 아닐까’하는 의심이 들만큼 TFF와 분위기가 – 표절의 의혹은 아니고 – 유사하다. 이들의 정규 앨범은 이 한곡으로도 충분히 어필을 할만 했지만, 나머지 곡들도 그렇게 허술하지 않고 상당한 퀄리티를 지니고 있는 것이 이 앨범의 장점이다. 특히 앨범의 백미는 세 번째 트랙 Dream Out Loud다. 이 곡의 분위기는 이번에는 한 시대를 풍미한 또 다른 혼성 듀오 Roxette의 분위기와 – 이 역시 표절 의혹 제기가 아니고 – 유사하다. You Don’t Know에 못지않게 캐치한 멜로디의 팝발라드지만 상업적 성공은 거두지 못했다.

앨범 전체적으로는 1980년대 후반 흥했던 소피스티팝 장르에 충실하게 유려한 멜로디가 차고 넘치는 작품이다. 같은 해에 BreatheAll That Jazz가 발매되었고 Curiosity Killed the Cat의 Keep Your Distance가 발매되었고 Swing Out SisterIt’s Better to Travel가 발매되었다. 영국 전역에서 걸작 소피스티팝 앨범이 쏟아지던 시기였다. 안타까운 것은 Swing Out Sister를 제외하고는 나머지 밴드들이 수명이 그리 길지 못하였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중에서도 Scarlett and Black의 수명은 특히 짧았다. TFF와 견주어도 Roxette과 견주어도 그 상업적인 잠재력은 별로 뒤지지 않았던 이 듀오는 왜 후속작을 내지 못했는지는 잘 모르겠다.

Duran Duran / Notorious [198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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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The cover art can be obtained from EMI., Fair use, Link

지금도 기억나는 순간이 Duran Duran의 신곡이라며 Notorious가 라디오에서 흘러나왔을 때의 당혹감이다. 이전의 곡들과 무척 달라진, 즉 Seven and the Ragged Tiger 시절의 통통 튀는 사운드가 아닌 보다 절제되고 락비트가 강화된 듯한 곡진행이 상당히 낯설었던 느낌이다. 앨범 커버 역시 그들의 잘생긴 외모는 여전했지만, 색도 흑백 톤으로 바뀌었고 옷차림도 수트 차림에 진중한 포즈였고 심지어 멤버도 두 명이 보이지 않았다! 드러머 로저 테일러 와 기타리스트 앤디 테일러는 앨범이 발매될 당시 둘 다 탈퇴한 것이었다. 당시 로저의 탈퇴 이유는 연이은 일정 강행으로 인한 피로 누적이었고 앤디는 헤비한 락음악을 추구하는 본인의 음악적 노선과 그룹의 생각이 다르다고 여겼기 때문이라고 한다.

앨범의 프로듀싱에는 나일 로저스(Nile Rodgers)가 참여했다. 이는 그룹의 음악이 이전의 백인 스타일의 신스팝에서 좀 더 펑키한(funky)한 사운드가 강화된다는 것을 의미했다. 실제로 앨범 수록곡이 전반적으로 나일 로저스의 특유의 분위기가 느껴진다는 점이 흥미롭다. 먼 훗날 나일이 작업에 참여했던 다프트펑크의 Random Access Memories와 비교해서 들어도 상당한 유사성이 느껴진다. 그러한 점에서는 듀란듀란은 확실히 틴팝에서 벗어나 좀 더 성숙한 음악노선을 확립하고자 하는 목표를 나일 로저스 등 새로운 뮤지션들의 도움으로 원활하게 달성한 앨범이라 할 수 있다.

앨범의 수록곡 중에서 많이 알려지지는 않았지만, 여섯 번째 트랙 Vertigo (Do the Demolition)는 그룹의 이러한 달라진 음악성이 잘 응축되어 있는 곡이라 생각된다. 5인조의 분열을 암시하는 듯한 가사의 이 노래에서는 펑키함이 강화된 리듬 파트와 여성 백보컬 등이 락이라기보다는 펑크 댄스에 가까운 장르의 곡을 선보이고 있다. 이번 앨범의 또 하나의 특징은 관악기의 전폭적인 채용인데 이런 특성을 잘 느낄 수 있는 곡은 일곱 번째 트랙 So Misled다. 전주에서부터 화려한 관악기 파트가 참여하여 곡 전체에서 힘 있는 연주로 곡의 바탕을 다져주고 있다. 어쨌든 개인적으로 가장 좋아하는 곡은 세 번째 트랙 Skin Trade다. 늘 의미를 알 수 없는 수수께끼 같은 가사로 되어 있는 듀란듀란의 노래에 무슨 불순한 의도를 읽었는지 앨범 발매 당시 우리나라에서는 금지곡이었던 이 곡은 그런 비밀스럽고 불순함에 어울리는 주술을 읊조리는 듯 한 보컬과 센슈얼한 멜로디가 매력적이기 때문이다.

Depeche Mode / Some Great Reward [198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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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The cover art can be obtained from Mute Records., Fair use, Link

Some Great Reward1Depeche Mode의 네 번째 스튜디오 앨범으로 1984년 9월 24일 Mute Records 를 통해 발매되었다. 이 앨범이 무엇보다도 특별한 이유는, 이 앨범에 DM의 모든 역대 싱글 중 가장 인상적인 곡 중 하나인 People Are People이 수록되어 있다는 점이다. 개인적으로도 DM의 존재를 처음 알게 된 곡이 바로 이 곡이다. 예전에 어떤 글에선가 고인이 된 신해철 씨도 어린 시절 이 곡을 듣고 큰 충격에 빠졌다는 내용을 읽은 기억이 나는데 어쨌든 그만큼 이 곡을 포함한 DM의 음악은 기존의 다른 락음악과는 다른, 신개념의 “악기”인 샘플러 Synclavier를 전폭적으로 활용한 새로운 음악의 형식과 멜로디로 신선한 충격을 안겨주기에 충분했다.

이 앨범에는 또 하나의 소중한 곡이 있는데 바로 Somebody. 데이브간(David Gahan) 대신에 마틴고어(Martin Gore)가 부른 이 곡은 DM의 곡들을 통틀어서도 그렇고 팝역사를 통틀어서도 그렇고 가장 아름다운 팝발라드 중 하나로 꼽아도 손색이 없는 명곡이다. 너무 반전(反轉) 없는 지고지순한 가사라는 점이 흠이기도 하지만, 또한 동시에 그게 매력이기도 하다. 개인적으로 사회생활을 시작한 첫 직장에서 이른바 “원어민” 교사로부터 영어수업을 들은 적이 있는데 팝송을 듣고 리스닝을 하는 수업에서 이 곡을 선곡한 적이 있어 인상적이었던 기억이 난다. 빼어난 미모의 코리안어메리칸 여자 교사였는데 나중에 회사에서 잘 나가던 한 엘리트 직원과 결혼했다.2

또 하나의 명곡이 Somebody 바로 다음에 나오는데 바로 Master And Servant. 귀의 좌우를 때려주는 리듬감있는 전주와 “Forget all about equality”라는 가사 등이 인상적인 이 곡은 주인과 하인이라는 관계설정이 연인관계에도 적용되는 그런 상황이 그려지는 노래다. 다만, 데이브간은 그런 취지로 생각하긴 했는데 마틴고어와 알란와일더는 단순히 섹스에서만 국한되는 것이 아닌 일반적인 상하관계에서의 지배에 관한 노래라고 설명하기도 했다고 한다. 이러한 직설적인 내용 때문에 발표 당시 우리나라에서 금지곡이었던 것으로 기억하는데 금지곡이든 아니든 어차피 DM의 음반이 우리나라에 라이센스로 발매되는 경우가 희귀했으니 큰 차이는 없었다.

앨범의 커버는 방금 결혼식을 마친 듯 정장과 웨딩드레스를 갖춰 입은 남녀가 커다란 공장으로 보이는 곳에 서있는 사진이 쓰였다. 이들은 Somebody에서의 가사처럼 지고지순한 사랑을 맹세하며 건전하고(?) 아름다운 결혼생활을 이어갈 커플일 수도 있을 것이다. 양념으로 Master And Servant처럼 뭔가 익사이팅한 게임을 즐길 수도 있을 것이다. 여담으로 최근 Mad Men이라는 미드를 즐겨보는데 여기에서 주인공 Don Draper 부부가 어쩌면 그런 외줄을 아슬아슬하게 타고 있는 커플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너무나 매력적이어서 모두가 이상적인 남편감이라 생각하는 Don, 그만큼 유혹도 많고 그는 그걸 뿌리치지 못한다(뿌리치지 않는다). 또 하나의 완벽한 아내인 Betty는 그런 남편의 외도에 대해 감을 잡지만, 그의 치명적인 매력 때문에 그를 뿌리치지 못하는 상황이 현재까지 내가 본 에피소드에서의 상황이다. 삶이란 그렇게 복잡하다.

앨범은 DM의 본국인 영국에서조차 BBC와 교회로부터 신성모독이라는 논란에 휩싸였던 Blasphemous Rumours3로 막을 내린다. 이곡에서 가장 흥미로운 가사는 “I don’t want to start any blasphemous rumours. But I think that God’s got a sick sense of humour.”다. 우리가 좀더 유머 감각을 가지고 세상을 바라보면 풀 수 있는 일이 많이 있을 텐데 그러지 못해서 금지곡도 지정되고 연인관계도 파탄이 나고 관세로 인한 상호파멸도 이어지고 있는 상황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해본다. 신이시여 유머 감각을 키우시길.

  1. 앨범 제목은 앨범 두 번째 트랙 Lie To Me의 가사 일부에서 따왔다.
  2. 정작 그 직원은 영어 수업을 듣지 않았다. 카풀을 해주며 친해졌다는 후문.
  3. 개인적으로 blasphemy 라는 단어의 발음이 주는 느낌을 좋아한다

Talking Heads / Speaking in Tongues [198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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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ay be found at the following website: http://www.discogs.com/viewimages?release=2188727, Fair use, Link

걸작 Remain In Light을 내놓은 뒤 Talking Heads는 한동안 꿀맛같은 휴지기를 가졌다. 이 시기에 데이빗번은 브라이언이노와 함께 1981년 My Life in the Bush of Ghosts라는 제목의 앨범을 내놓았다. 데이빗 개인적으로는 The Catherine Wheel이라는 앨범 작업도 했다. 우연히도 나머지 멤버들도 같은 해 자신들만의 창작물을 냈다. 즉, 크리스프란츠는 티나웨이머스와 함께 Tom Tom Club이라는 밴드를 조직하여 셀프타이틀 앨범과 Under the Boardwalk를(1982년) 내놓았는데, 첫 번째 앨범에서 발매된 싱글 Genius Of Love가 크게 인기를 얻었다. 제리해리 역시 The Red and the Black이라는 솔로 앨범을 내놓았다.

물론 밴드 활동도 이어지고 있었다. 1982년 밴드의 라이브 앨범 The Name of This Band is Talking Heads가 발매되었다. 스튜디오앨범 사이의 간극을 메우기 위해 만들어진 감도 없지 않지만, 이 앨범은 그 나름대로의 그간의 밴드의 음악적 성과가 차곡차곡 담겨진 뛰어난 라이브앨범이라고 할 만하다. 그리고 밴드는 “확장한 토킹헤즈”와 함께 일본 및 유럽을 포함한 순회공연도 – 라이브 앨범을 홍보하는 라이브! – 가졌다.1 이렇듯 밴드 멤버는 음악적으로나 상업적으로나 만족스러운 기간을 보내고 있었다.

이 기간이 이후의 활동에 있어 가지는 특별한 의미는 각자의 사이드프로젝트를 통해 멤버들이 점점 더 흑인음악의 다양한 면을 그들의 음악에 녹여내는 목표를 추구하였고 많은 성과가 있었다는 점이다. 특히 개인적으로는 밴드의 리듬 섹션끼리 모여 만든 탐탐클럽의 펑키(funky) 댄스팝 사운드가 대중에게 먹혔다는 점이 나머지 멤버들에게도 깊은 인상을 주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2 이러한 사실은 바로 1983년 밴드의 이름으로 발표한 Speaking in Tongues가 백인 락과 흑인 댄스팝의 결합이라는 점에서 확인할 수 있다.3

악상의 작업은 롱아일랜드에 있는 크리스의 아파트 등에서 진행되었고, 몇몇 기본 트랙은 뉴욕의 Blank Tapes에서 녹음했다. 본격적인 앨범의 녹음은 바하마에서 이루어졌다. 이노는 이제 프로듀싱에 더 이상 참여하지 않았다.4 그렇게 되면서 프로듀서의 이름은 Talking Heads가 되었다. “확장한 토킹헤즈” 멤버중 상당수는 이번에는 앨범 작업에서부터 참여했다. Bernie Worrell은 Girlfriend is Better에서 신디사이저를 맡았고, Nona Hendryx과 Dolette McDonald는 유사(類似) 가스펠곡과도 같은 Slippery People에서 쏘울풀한 보컬을 맡아주었다. Steve Scales는 Burning Down the House 등에서 퍼커션을 연주했다.

특징적인 세션 뮤지션은 Wally Badarou와 Alex Weir다. Level 42와 함께 활동했던 왈리는 이 앨범에서 세 곡의 신디사이저 연주를 맡아서 앨범의 그루브를 책임졌다.5 R&B 밴드 The Brothers Johnson의 멤버였던 알렉스는 Adrian Belew 대신에6 기타를 연주했다. 알렉스는 어이없게도 라이브앨범 The Name of This Band is Talking Heads의 홍보를 위한 라이브 투어에서부터 참여했는데,7 더 많은 흑인 뮤지션의 참여는 더 많은 흑인 음악이 가미되었음을 의미한다. 그런 결과로 Rolling Stone의 David Fricke은 “예술적인 백인 팝음악과 딥 블랙 펑크(funk)를 구분하는 얇은 선을 마침내 무너뜨린 앨범”이라고 극찬했다. 물론 이미 그 얇은 선은 탐탐클럽이 부순 상황이었고 이 앨범은 그 후속작이다.

A yellow plastic case with clear vinyl albums inside that have red and blue photographs stamped onto the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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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버트 라우첸버그(Robert Rauschenberg)가 디자인한 앨범 아트

앨범 아트는 데비잇의 작품이다. 이전 작품의 커버 아트에 비해 많이 밝은 톤이라는 느낌인데 당시 밴드는 (토킹헤즈의 팬이기도 했던) 장미쉘바스키아(Jean-Michel Basquiat)나 데이빗 호크니( David Hockney)와 같은 팝아트 예술가들이 주최하고 동석했던 파티에 가는 등 당대의 화가들과 많은 교류가 있었기 때문에, 데이빗도 이런 작풍에 영향을 받은 것이 아닌가 하는 것이 개인적인 생각이다. 또한 로버트 라우첸버그(Robert Rauschenberg)가 디자인한 이 앨범의 한정판의 디자인도 못지않게 밝은 톤인데 같은 맥락이 아닐까 싶다. 다만, 이 창작 과정에는 약간의 사연이 있는데 원래는 라우첸버그의 디자인이 정식 버전이 될 예정이었으나 너무 복잡한 작품 구성 때문에 대량생산이 어려워서 한정판이 되었다. 그래서 데이빗이 임시로 로스엔젤레스의 선셋마퀴스(Sunset Marquis) 호텔에 있던 의자를 넘어뜨려 찍은 사진을 조합한 커버를 만들게 된 것이다.8

이 앨범은 월스트리트저널에서도 리뷰를 써줄 정도로 상업적인 인기를 얻었다. 밴드의 작품으로는 처음으로 미국에서만 백만장 이상의 카피가 팔리며 RIAA로부터 플래티넘 인증을 받았다. 특히 카셋테잎의 판매가 두드러졌는데 십대 사이에서의 소니의 워크맨 열풍이 이러한 트렌드를 가속화하였다. 레코드사는 테잎에는 오리지널보다 더 긴 리믹스 곡을 수록할 수 있었는데 이 앨범에서도 Moon Rocks를 포함한 다섯 곡이 테잎 버전이 LP 버전보다 길다. 이런 변주를 통해 회사는 소비자에게 더 많은 즐거움을 제공할 수 있게 되었고, 이는 더 많은 수익으로 이어지게 된 것이다.9

대세가 된 MTV의 존재도 앨범과 싱글의 인기에 한몫했다. 도시 외곽의 평범한 이층집의 벽과 도로에 데이빗의 얼굴이 줌인된 영상이 비춰지고, 전부 하얀 색의 의상을 입은 밴드 멤버들이10 아이, 뚱뚱한 남자, 늙은 여자 등으로 교체가 되는, 토킹헤즈 특유의 수수께끼 같은 Burning Down the House11의 뮤직비디오가 MTV에서도 인기를 얻으면서 밴드의 인기도 덩달아 올라갔다. 요컨대 스피킹인텅은 워크맨과 MTV라는 시대적 조류에 잘 적응한 한 아트락 밴드의 성공담이라고 할 만하다.

이 앨범이 개인적으로 보다 각별한 이유 하나는 내게 토킹헤즈라는 존재를 처음 알려준 노래가 앨범의 첫 번째 트랙이자 밴드의 가장 큰 히트곡이라 할 수 있는 Burning Down the House이기 때문이다. 당시 이 노래가 좋아서 시내 레코드 가게에 가서 그들의 앨범을 구입하였다. 그런데 사들고 온 앨범은 알고 보니 밴드의 후속작 Little Creatures였다. 토킹헤즈의 앨범중 국내에 유일하게 라이센스로 나온 앨범은 그 앨범뿐이었고 가게 점원은 그 앨범을 내게 안겨준 것이었다.

이렇게 나를 토킹헤즈의 파리지옥에 빠져들게 만든 곡이 수록된 앨범, 그게 바로 음악적 “방언(Speaking in Tongues)”이 터져 나오는 이 앨범이다. 이 앨범이 특히 맘에 드는 점은 흑인 음악으로의 지향점을 보다 명확히 하면서도 전작 Remain In Light을 의식하여 보다 더 아방가르드한 방향으로 진행시키지 않았다는 점이다. 오히려 팝적인 요소를 한층 가미하여 본인들도 의식하지 않았을 상업성과 음악성의 얇은 선 사이에서 마음껏 하고 싶은 음악을 했다는 점이 대단하다고 생각한다.

이 앨범은 앨범의 홍보를 위한 공연은 1984년 조나단 드미(Jonathan Demme)가 감독하여 만든 음악 역사상 가장 뛰어난 공연 기록물로 간주되는 Stop Making Sense로 이어졌으며, 같은 이름의 라이브 앨범이 탄생하는 등 이어지는 토킹헤즈의 창작물에 지속적으로 영향을 미치게 된다. 재밌는 점은 개인적으로 좋아하는 토킹헤즈와 The Smiths가 스튜디오 앨범 수에서 2배의 차이(각각 8개와 4개)가 나는데, 딱 이 앨범이 토킹헤즈의 다섯 번째 앨범이라는 점이다. 즉, 스미쓰는 이 마수걸이를 넘지 못했고 토킹헤즈는 어렵사리 그 작업을 했기에 스미쓰의 2배의 스튜디오 앨범을 만들어 낸 것이다.

  1. 일본에서 데비잇과 제리는 아델르 루츠(Adelle Lutz)라는 시세이도 모델과의 염문에 휩싸이기도 한다. 삼각관계의 승자는 데이빗에 가깝다.(This Must Be The Place, 234-236쪽)
  2. 제리도 이에 대해 같은 의견이었는데 그는 “탐탐클럽이 성공했기 때문에 토킹헤즈의 경쟁적인 정신을 다시 촉발할 수 있고 우리는 더 오래 살아남을 수 있다고 생각했다”고 발언했다.(This Must Be The Place, 2396쪽)
  3. 펑키함을 유지하는 것은 중요했다. 한 예로 데이빗은 Making Flippy Floppy라는 곡의 가사를 쓰면서 flippy floppy가 무슨 의미인지도 생각하지 않았는데 다만 그 발음이 펑키(funky)했기 때문에 가사로 채택했다.(This Must Be The Place, 241쪽)
  4. 크리스에 따르면 이노는 이제 너무 많은 것을 요구했는데 예를 들면 그는 미국까지 콩코드를 타고 올 텐데 그 비용을 밴드가 부담하라고 했다고 한다.(Remain In Love, 290p)
  5. 당시 스물여덟 살이었던 왈리 역시 보렐처럼 클래식 음악의 영향을 받은 연주자였고 Level 42 이외에도 그레이스존스의 Warm Leatherette에서 곡을 쓰고 연주하는 등의 실력파 뮤지션이었다.
  6. 토킹헤즈의 전기 This Must Be The Place의 서술(234쪽)에 의하면 블루가 더 이상 밴드와 일하지 않게 된 계기는 그가 탐탐클럽과 같이 작업했는데 크리스와 티나가 제대로 정산을 해주지 않아서였다고 한다. 하지만 훗날 애드리안은 크리스와 티나를 만나면 언제나처럼 즐겁게 인사할 수 있다고 말하기도 했다.(같은 책 239쪽) 한편 크리스는 애드리안이 Robert Fripp 과 작업하기 위해 그들과 합류하지 않은 것으로 기억하고 있다.(Remain In Love, 291p)
  7. This Must Be The Place, 233p
  8. This Must Be The Place, 248p
  9. This Must Be The Place, 249-250p
  10. 흥미롭게도 일본의 락그룹 안전지대(安全地帯)도 이 영상에서 비슷한 디자인의 하얀 색 의상을 입고 공연을 하고 있다
  11. 크리스의 회고에 따르면 이 노래의 제목은 크리스가 관람했던 P-Funk 공연에서 관객들이 “Burn down the house”라고 외쳤던 상황을 밴드 멤버들 간의 잼에서 흉내 내면서 만들어진 것이라고 한다.(Remain In Love, 289p)

Cocteau Twins / Head over Heels [1983]

Cocteau Twins, Head Over Heels (Alternative cover).jp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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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2년 데뷔 앨범 Garlands, 두 개의 EP, Orchestral Manoeuvres in the Dark를 지원하는 유럽 투어에 이어 Cocteau Twins는 1983년 중반에 베이시스트이자 창립 멤버인 Will Heggie와 결별했고, Robin Guthrie와 Elizabeth Fraser는 어떻게 계속할지 확신하지 못했다. 그들은 듀오로 새로운 노래를 쓰고 새로운 앨범을 녹음하기 위해 스코틀랜드로 돌아갔다. 앨범의 대부분은 짧은 기간 동안 스튜디오에서 작곡되었으며, Guthrie는 이 과정을 “실제로 계획된 것은 거의 없었고, 노래가 매우 자연스럽게 모였습니다.”라고 설명했다.[위키피디아]

사실 콕토트윈스(Cocteau Twins)의 음악이 독특한 매력이 있다는 점은 익히 알고 있지만, 웬지 일부러 찾아듣고 싶지는 않게 되는 스타일이다. 포스트펑크 씬에서도 조금 더 외골수인 듯한 그들의 음악이 부담스러워서일지도 모르겠다. 그들의 대표음반 Head Over Heels를 듣고 있는 지금 이순간도 ‘난해하다’기보다는 ‘접근하기 어렵다’는 느낌이 든다. 차가운 톤의 음악 감상에 찐인 칵테일바에서 이 음반을 전곡으로 듣는다면 조금 더 접근하기 쉬울까 하는 생각도 든다. 보컬과 연주가 공기 중에 섞이는 듯한 재밌는 경험을 선사하는 앨범이라 그럴 수도 있겠다 싶다. 특별히 가사의 전달이 중요한 것은 아닌 것 같다. 보컬도 악기의 한 종류로 여겨진다. Siouxsie and the Banshees 가 리듬 파트를 좀 줄이고 노래를 마이크에서 조금 더 떨어져서 부르면 콕토트윈스랑 비슷할 것 같다. 어쨌든 스코틀랜드는 한때 참 좋은 뮤지션을 많이 배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