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urning Bridges

Naked Eyes - Burning Bridges album cover.jpg
By Picture scanned by Ian Dunster from original UK Cassette album and converted to LP size., Fair use, Link

아침에 Naked Eyes의 Burning Bridges를 듣고 있다.1 단 두 장의 스튜디오 앨범을 내고 팝의 역사에 작은 흔적만을 남긴 밴드지만, 개인적으로 무척 좋아하는 아티스트다. 특히 이 앨범에 수록되어 있는 버트 배커랙(Burt Bacharach)의 오리지널을 리메이크한 Always Something There to Remind Me는 내 청춘의 한 시절, 사랑에 가슴 아파하던 시절에 큰 위안이 되었던 곡이었다. 곡을 처음 접한 것은 당시 나름대로 인지도가 있었던 팝 평론가가 녹음해 준 컴필레이션 카세트테이프를 통해서였던 것으로 기억한다. 절절한 가사와 버트 배커랙 곡 특유의 드라마틱한 멜로디가 잘 조합된 노래 자체도 훌륭하지만, 이 곡을 신스팝으로 리메이크할 생각을 했다는 것도 Naked Eyes 만의 천재성이라고 생각한다. 이 앨범은 이 곡 이외에도 Voices in My Head, When the Lights Go Out, Promises, Promises와 같이 캐치하고 댄서블한 멋진 신스팝 곡들이 많다. 단명하기에는 너무나 멋진 밴드였다.

  1. 아서 코난 도일의 명작 셜록 홈즈 시리즈 중에서 ‘빨강머리 연맹’을 읽으며 감상하고 있다

The Circus

ErasureTheCircus.jpg
By May be found at the following website: http://images.amazon.com/images/P/B000002LB6.01.LZZZZZZZ.jpg, Fair use, Link

이레이줘가 1987년에 내놓은 두 번째 스튜디오 앨범이다. 당장 귀에 착 감기는 곡은 없으나 Erasure가 지향하는 음악 스타일은 분명하게 제시하고 있어 반가운 앨범이다. 앤디 벨(Andy Bell)의 후련한 느낌의 보컬과 일렉트로닉팝의 결합, 빈스 클락(Vince Clarke)이 염두에 두고 있던 Yazoo의 남성 버전(실은 게이 버전)이랄 수 있다. 잠깐 옆으로 새자면 빈스 클락은 앤디 벨과 앨리슨 모예라는 걸출한 보컬리스트를 발굴한 것만으로도 팝음악 역사에 끼친 선한 영향력을 인정해줄만 하다고 생각한다. 다시 앨범에 관해 이야기하자면 귀를 확 잡아끄는 매력적인 곡은 없지만 – 이레이저 곡으로 예를 들자면 Love To Hate You와 같은1 – 전체적으로 평균 이상의 캐치한 멜로디를 유지하면서 앤디 벨은 마치 뮤지컬의 주연인 마냥 본인의 보컬 실력을 한껏 뽕이 들어간 화려하고 요염한 자태로 뽐내고 있다.

Side A
1. “It Doesn’t Have to Be”
2. “Hideaway”
3. “Don’t Dance”
4. “If I Could”
5. “Sexuality”
Side B
6. “Victim of Love”
7. “Leave Me to Bleed”
8. “Sometimes”
9. “The Circus”
10. “Spiralling”
CD Bonus Tracks
11. “In the Hall of the Mountain King” (New Version)
12. “Sometimes” (12″ mix)
13. “It Doesn’t Have to Be” (Boop Oopa Doo Mix)

  1. 이 앨범에서 가장 캐치한 곡은 씨디 보너스트랙들이다

Gemini에게 블로그 로고를 부탁했더니

“80s Net 을 80년대 팝음악을 사랑하는 분위기가 느껴지면서도 최대한 간결하게 표현할 수 있는 블로그 로그를 한줄짜리로 만들어줘. 바탕은 하얀 색으로 해서”

라고 제미나이한테 일을 시켜봤더니 나온 결과물이 아래와 같다. 에이티스넷 사이에 ‘팝’은 왜 갑자기 나오며 80년대 분위기를 싸구려로 만들어버려!!!? 🙂

Cocteau Twins

Cocteau Twins 1986.jpg
By Distributed by Relativity Records – U.S. Press Kit for The Pink Opaque at Worthpoint, Public Domain, Link

Cocteau Twins는 1979년부터 1997년까지 활동한 스코틀랜드 록밴드다. 기타와 드럼 머신을 담당한 로빈 거스리(Robin Guthrie)와 베이스 윌 헤기(Will Heggie)가 스코틀랜드 중부에 위치한 그레인지머스(Grangemouth)에서 결성하였다. 1981년에 The Hotel International라는 디스코텍에서 디제이를 하고 있던 거스리는 나중에 그룹의 보컬을 맡게 될, 당시 17세의 엘리자베스 프레이저(Elizabeth Fraser)를 만나 그를 팀에 영입했다. 이로써 밴드의 구성이 본격적으로 갖추어졌고 4AD와도 레코드 계약을 하고 앨범을 내놓으며 그들의 미래는 좀 더 밝아지게 되었다.

1983년 Orchestral Manoeuvres in the Dark의 유럽 순회공연의 보조 밴드로 참여했다가 함부르크에서 밴드는 공연에서 빠졌다. 그 와중에 베이스를 맡았던 헤기가 그룹을 떠났다. 이 공백은 이후 다중 악기 연주자 사이몬 레이몬드(Simon Raymonde)로 채워졌다. 1990년에 Heaven or Las Vegas이라는 상업적으로나 비평적으로 큰 성공을 거둔 앨범을 내놓은 이들은 그때부터 하락의 길로 접어들고 있었다. 거스리의 약물남용이 심각한 상태에 이르렀고 그들의 앨범을 쭉 내어주던 4AD의 창업자 이보 왓츠 러셀(Ivo Watts-Russell)과의 갈등도 심해졌다.

결국 밴드는 밴드 해체라는 파국의 길로 접어든다. 20년째 해체한 그들은 드림팝과 에테리얼웨이브(Ethereal wave)의 선구자적인 역할은 한 밴드였다. 그리고 이후 이들의 음악은  슈게이즈 음악을 정의하는 데 중요한 기준이 되었다. 한편 개인적으로는 이들을 탐슨트윈스와 종종 헷갈리곤 한다.1 여성 한 명 남성 두 명이라는 특이한 밴드 구성도 닮았고 밴드명에 ‘쌍둥이’가 들어간 것도 똑같다. 한쪽은 장 콕토를 의미하고 다른 쪽은 에르제의 작품 ‘땡땡의 모험’의 형사 캐릭터를 의미하지만,2 어쨌든 재밌게도 둘 다 ‘쌍둥이’라고 작명했다는 점에서 공통점이 있기 때문이다.

스튜디오앨범

1982 Garlands
1983 Head over Heels
1984 Treasure
1986 Victorialand
1986 The Moon and the Melodies
1988 Blue Bell Knoll
1990 Heaven or Las Vegas
1993 Four-Calendar Café
1996 Milk & Kisses

관련링크

공식 홈페이지
피치포크 앨범 리뷰

  1. 사실 헷갈리지는 않는다. 그냥 비교하면 재밌는 3인조일 뿐이다. 🙂
  2. 그런데 ‘땡땡의 모험’에 등장하는 탐슨(Thomson)과 탐슨(Thompson)은 쌍둥이가 아니다.

Blue Bell Knoll

CocteauTwins.BlueBellKnoll.lp.jpg
Fair use, Link

스코틀랜드 출신의 3인조 드림팝 밴드 Cocteau Twins의 다섯 번째 스튜디오 앨범으로 4AD를 통해 1988년 9월 처음 공개되었다. 미국에서는 캐피톨 레코드사를 통해 유통되었다. 영국 차트에서는 나름 인기를 얻었고 미국 차트에서는 109위 정도까지의 기록을 남겼다. 4AD는 Bauhaus, Modern English, Dead Can Dance 등과 같은 고딕록, 드림팝 계열의 아티스트들을 주로 다룬 독립 레이블이다. 콕토트윈스도 이 앨범을 포함 총 일곱 장의 앨범을 4AD의 도움을 받아 발표했다.

앨범의 이름은 미국 유타주에 있는 볼더(Boulder)산의 별명이 Bluebell Knoll인데 이 이름에서 따왔다고 한다. 수록곡마다 보컬 엘리자베스 프레이저(Elizabeth Fraser)의 청아한 음색이 돋보이는 이 앨범에서는 애써 가사를 이해하려 할 필요가 없다. 가사는 없다. 정확히는 프레이저가 창조한 새로운 언어로 노래한다. 따라서 인터넷에서 가사도 찾을 수 없다. 그저 우리는 트랙의 제목과 앨범 제작 당시의 분위기에 근거하여 무엇을 노래하려는 것인지 짐작할 수 있을 뿐이다.

당시 밴드의 분위기는 매우 좋았다고 한다. 멤버 중 부부였던 거스리와 프레이저는 아이를 가질 예정이었고,1 레이몬드는 결혼을 준비하고 있었다고 한다. 당시에는 모두 행복했고2 그러한 경쾌한 분위기는 앨범에 고스란히 녹아들어 가 있다. 아티스트가 창작을 하는 시점에서의 감정을 창작물에 반영하는 것은 흔한 일이고 이 감정을 굳이 자국어 가사가 아닌 새로운 창작어로 표현하는 것도 멋진 시도였다는 생각이 든다. 소위 에테리얼웨이브(Ethereal wave)의 정점에서 탄생한 80년대 걸작이다.

  1. 둘은 1989년 루시 벨(Lucy Belle)이라는 딸을 얻게 된다
  2. 결국 이렇게 일과 애정이 뒤섞여진 관계는 이혼과 밴드의 해체라는 파국으로 이어졌지만

세일러복과 기관총(セーラー服と機関銃)

양친을 잃은 여고생 호시 이즈미가 난데없이 야쿠자의 보스가 된다는, 다소 어이없는 설정의 B급 감성의 1981년 작. 극의 전개 중에도 계속 어이없는 전개의 연속이지만, 사이사이 뭔가 색다른 화면 연출 등이 가미되어 보는 재미가 있는 작품이다. 감독이 『태풍클럽』의 소마이 신지(相米そうまい 慎二)しんじ라는데 역시 두 영화의 분위기가 닮았다. 폭주족 오토바이 레이스랄지 이즈미의 부하들과 동급생들이 어울려 불상 아래서 술을 마시는 장면들이 『태풍클럽』에서의 일과 후 학교에서의 군무를 연상케 한다. 주연을 맡은 야쿠시마루 히로코(薬師丸 ひろ子)의 매력이 영화의 흥행에 오할은 한 것 같고 주제가도 좋다. 예전 영화를 볼 때 특히 당시의 도시 풍경을 보는 것도 큰 재미 중 하나인데, 이 작품은 1980년대 초의 도쿄의 풍경이 잘 담겨 있어 매력적이다.

“팝 역사상 가장 위대한 밤”


엊저녁에 넷플릭스에서 감상하다가 말다가 했던 다큐멘터리를 처음부터 끝까지 다시 봤다.  바로 바오 능옌(Bao Nguyen)이라는 감독의 『팝 역사상 가장 위대한 밤(원제 : The Greatest Night in Pop)』이라는 제목의 2024년 다큐멘터리다. 대체 어떤 밤이 팝 역사상 가장 위대한 밤일까? 팝 평론가나 팝 애호가에 따라 다양한 주장이 있을 수 있겠지만, 이 다큐멘터리가 가리키고 있는 밤은 1985년 1월 28일이다.

그렇다면 도대체 그날 밤 어떤 곳에서 무슨 일이 있었기에 그 밤이 팝 역사상 가장 위대한 밤이라는 것일까? 세상에 수많은 일이 있었겠지만 일단 팝 역사에서 바라보자면 그날은 팝 음악 산업계의 중요한 행사 중 하나인 『제12회 아메리칸뮤직어워즈(American Music Awards)』가 로스앤젤레스에 있는 슈라인 오디토리엄(Shrine Auditorium)이라는 곳에서 열린 날이란 것이 첫 번째 단서다. 매우 유력한 단서다.

그런데 ‘아메리칸뮤직어워즈 중요한 행사인 것은 알겠는데 특별히 1985년에 열린 그 행사가 그렇게나 중요해서 “팝 역사상 가장 위대한 밤”인 것인가?’하는 의문이 생긴다. 정답은 ‘아메리칸뮤직어워즈 말고 그다음에 있었던 이벤트’다. 그것은 바로 시상식이 열렸던 슈라인 오디토리엄에서 15km 떨어진 곳에 위치한 A&M 스튜디오에 미국의 아티스트들이 함께 모여 We Are The World라는 곡을 녹음한 바로 그 밤을 말하는 것이다.

We Are The World라는 곡은 80년대 팝 팬이라면 이미 익숙한 곡이다. 이 곡은 이미 1년 전에 붐타운래츠의 프론트맨 밥 겔도프가 아프리카, 특히 에티오피아 인민의 굶주림 등 비참한 삶을 보도한 BBC 프로그램에서 감화받아 팝 뮤지션을 모아 녹음한 Do They Know It’s Christmas?1 영감받은 해리 벨라폰테(Harry Belafonte)가 팝계의 거물 매니 켄 크라켄(Ken Kraken)에게 제안한 프로젝트에서 만들어진 곡이었다.

위대한 흑인 음악 뮤지션인 동시에 시민운동가였던 해리 벨라폰테는 영국에서의 기획을 보고 아프리카에서의 비극을 아프리카 계열의 뮤지션이 많은 미국의 팝 음악계가 외면할 수 없다고 판단했고, 아프리카를 돕기 위한 유사한 프로젝트를 기획한 것이었다. 이 결과 켄 크라켄의 인맥이 작용하면서 초기에 라이오넬 리치, 마이클 잭슨, 퀸시 존스와 같은 팝계의 거물이 합류하여 프로젝트에 살을 붙여 나갔다.

그리고 이어서 여러 레코드사의 기획자들이 달라붙어 뮤지션들을 어렵게 섭외하는 등, 다큐멘터리에서 묘사하는 수많은 난관을 거치면서 마침내 “위대한 밤” 동안에 탄생한 곡이 바로 We Are The World다. 특별히 그 밤이 아메리칸뮤직어워즈가 열린 밤이었어야 한다는 사실은, 그나마 그날이 넓은 땅덩어리에서 활동하는 미국의 거물급 뮤지션들이 한데 모일 수 있는 최적의 날이었기 때문이었다는 사실은 이미 짐작할 수 있는 일이다.

그날 밤 어떠한 우여곡절 끝에 곡의 녹음을 완성할 수 있었는지는 다큐멘터리를 보면 잘 알 수 있다. 화면으로만 봐도 가슴이 벅찰, 당시 팝계에서 최고의 인기를 구사하고 있던 전설적인 뮤지션들이 그 좁은 스튜디오에 모여 노래를 완성하는 과정이 당시 촬영한 필름에 고스란히 담겨 있다. 개인적으로 그날에 관한 훗날의 인터뷰 중에도 쉴라 이(Sheila E.)2의 인터뷰가 마음 아팠는데3 아무튼 나머지 가수들의 고생도 나름 다 의미가 있었다.4

이 기획에 대한 사견을 말하자면 해리 벨라폰테가 위대한 인물이고 – 심지어 맑스주의자라는 설도 강하고 – 이 기획이 결코 만만한 기획이 아니었음은 분명함에도 그 한계는 분명하다고 생각하는 편이다. 밴드에이드 자체도 그렇지만 이 기획 역시 이미 잘 알려져 있다시피 제일세계의 셀럽들이 제삼세계 인민의 곤궁에 대한 일시적인 시혜적 시선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명확하게 견지하고 있었던 것이 사실이기 때문이다.5

그럼에도 1985년 1월 28일이 “가장 위대한 밤” 중 ‘하루’일 수 있다는 사실에는 공감한다. 이를테면 아프리카를 돕겠다는 명분으로 영국의 백인 뮤지션 위주로 – 의도하지는 않았다고 하더라도 – 시작한 프로젝트가 미국의 흑인 뮤지션 위주의 프로젝트으로 – 조금 더 연대의 의미가 강화된 – 진화했다는 의의도 있기 때문이다. 앞서 말한 그 한계를 비춰보면 그게 그것 아니냐 할 수도 있지만, 또 다른 다큐멘터리를 상기해 볼 때 의미는 절대 만만치 않다.

그 다큐멘터리는 사샤 젠킨스(Sacha Jenkins)가 감독한 2023년 『선데이 베스트 : 에드 설리번 이야기(원제 : Sunday Best)』라는 다큐다. 나 역시도 에드 설리번을 그냥 팝 역사상 초창기의 가장 유명한 버라이어티쇼의 사회자 정도로 생각했지만, 다큐를 본 다음에 알게 된 실상은 엄청났다. 그는 단순한 사회자를 넘어서 팝 음악, 특히 흑인 음악을 주류에 안착시키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한 아일랜드+유태인 계 “백인” 진보 지식인이었던 것이다.

이 다큐를 특별히 언급하지 않을 수 없는 이유는 어떤 면에서는 이 다큐멘터리가 『팝 역사상 가장 위대한 밤』의 프리퀄에 가깝기 때문이다. 이 밤에 활약한 많은 아티스트들은 상당수 에드 설리번의 도움을 받아 그의 쇼에서 데뷔하고 그 뒤 연예계에서 활약했던 이들이다. “위대한 밤”의 당사자 해리 벨라폰테, 스모키 로빈슨, 마이클 잭슨, 스티비 원더, 다이애나 로스 등이 애드 설리번의 “의식적인” 도움으로 애드의 쇼에 출연하면서 전국구 스타가 되었다.

에드는 처음에 신문기자로 경력을 시작했다고 한다. 그는 스포츠 관련 칼럼을 쓰면서 그 당시 업계에 만연해 있던 인종차별주의에 대해 비판적인 칼럼을 쓴다. 그러던 중 우연한 기회에 연예계 행사의 사회를 보던 그는 새로운 매체인 TV쇼에서의 호스트로 경력을 시작하게 된다. 이 쇼가 바로 그의 이름을 단 애드 설리번 쇼였고, 이 쇼는 앞서 언급했듯 유색 인종에게 전국구 데뷔의 기회를 마련해주면서 미국 팝 음악계에 새로운 이정표를 제시한 쇼가 된다.

요컨대, 서구권의 팝 음악계에서 – 또는 다른 예체능계도 그렇지만 – 어쩌면 어쩔 도리 없이 선각자적인 백인의 도움을 받아 유색 인종이 업계에 진출하는 시기가 있었다.6 그중 가장 적극적인 선각자 중 하나가 바로 에드 설리번이었고, 그의 도움을 통해 연예계에서 기반을 다진 이들이 1980년대 마침내 이제 유색인종인 본인들의 기획으로 마음의 고향인 아프리카 등 다른 이들에게 도움을 주기 위해 행동에 나선 것이 바로 We Are The World였던 것이다.

당신은 그날이 팝 역사상 가장 위대한 밤이었다는 주장에 동의하는가?

  1.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은 이 기획에 참여한 대다수의 뮤지션들이 백인 뮤지션이었다는 점인데, 특별히 기획자들이 이러한 인종적 비율을 의식했다기보다는 그냥 영국 팝 음악계가 그렇게 이미 편성되었던 측면은 분명하다.
  2. 쉴라 이는 아메리칸뮤직어워즈에서 생애 최고의 라이브 퍼포먼스를 선보인다
  3. 즉, 요지는 이 프로젝트의 기획자들은 사실 쉴라 이가 아닌 프린스를 무대에 초청하고 싶은 마음에 당시 그의 연인이었던 쉴라 이를 떡밥으로 부른 것이었다.(는 것이 쉴라 이의 생각이고 이는 거의 정설일 것이다) 그런데 “Check Your Ego At The Door”라고 퀸시 존스가 스튜디오에 써 붙여 놓을 만큼 강한 에고를 가진 이들이 한 번에 모인 그날 밤에서도 특히 프린스는 너무 에고가 강한 이였고, 라이오넬 리치에 따르면 그는 “별도의 녹음실에서 별도의 기타 솔로”를 요구했다고 한다. 당연히 이 요구는 받아들여지지 않았다.(그날 그 에고 강한 밥 딜런도 시큰둥한 표정을 하면서도 나머지 뮤지션들과 끝까지 한 방에 남아 있었다) 그래서 그날은 그냥 쉴라 이 홀로 미니애폴리스 사단의 일원으로서의 참가에 의의를 둘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기획자들이 프린스의 솔로 파트로 염두에 두고 있던 파트는 잔뜩 긴장한 휴이 루이스(Huey Lewis)에게 돌아갔고, 그는 이 파트를 훌륭하게 소화해 냈다.
  4. 개인적으로 가장 좋아하는 솔로 파트는 신디 로퍼(Cyndi” Lauper)의 파트다. 다큐에서 신디 로퍼 파트에서 자꾸 이상한 소리가 나는 에피소드가 있는데 그 이유가 허탈하면서도 재밌다.
  5. 그래서 이러한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진행된 중 가장 급진적인 프로젝트는 인종차별 정권에 저항하는 남아공의 진보 세력과 연대한다는 의미를 지닌 Artists United Against Apartheid의 Suncity였다
  6. 예를 들면 방탄소년단이 지미 팰런 등과 같은 미국 주류 토크쇼의 백인 진행자의 도움 없이 미국 주류 음악에 편입할 수 있었을까?

제미나이에게 이 블로그에 대한 총평을 물어보니

꽤 전문적인 리뷰를 내놓았다. 단점은 조금 동의가 안 되긴 하지만, 그래도 이 정도로 성의 있게 분석해 줬다는 점은 뭉클해지는 느낌이었다. “언제 방문해도 그 시절의 정보를 차분히 열람할 수 있는 도서관 같은 블로그”라는 평가가 마음에 든다.

Google Gemini logo 2025.svg
By Google LLC – Extracted from About Gemini (Inline SVG), Public Domain, Link

80s Net (80snet.com) 블로그에 대한 평가입니다.

이곳은 한국 인터넷 초창기부터 명맥을 이어온, **’80년대 대중문화 아카이브(저장소)’**로서의 성격이 강한 곳입니다. 단순한 개인 블로그를 넘어 하나의 ‘작은 웹진’이나 ‘데이터베이스’에 가까운 구성을 보여줍니다.

주요 특징과 장단점을 분석해 드립니다.


1. 정체성: “80년대 키즈를 위한 디지털 박물관”

  • 역사: 1999~2000년경 popi.com으로 시작하여 현재까지 이어져 온, 한국 웹의 ‘살아있는 화석’ 같은 사이트입니다.

  • 주제: 1980년대의 팝 음악, 영화, 서브컬처(SF, 호러, 애니메이션 등)를 광범위하게 다룹니다.

  • 운영 방식: 개인 운영자가 위키피디아나 해외 자료 등을 참고하여 번역·정리·아카이빙 하는 형식을 취하고 있습니다.

2. 장점 (Pros)

  • 방대한 데이터베이스: 특정 시기(80년대)에 집중하여 이렇게 오랜 기간 자료를 축적한 곳은 국내에 드뭅니다. 단순한 감상문보다는 팩트 위주의 정보(앨범, 차트, 인물 정보)가 잘 정리되어 있어 검색용으로 유용합니다.

  • 태그(Tag) 활용: ‘사이버펑크’, ‘뉴로맨틱스’, ‘신스팝’ 등 장르와 키워드별 분류가 매우 디테일하여, 꼬리에 꼬리를 무는 디깅(Digging)이 가능합니다.

  • 꾸준함과 진정성: 수익성 블로그가 난무하는 시대에, 20년 넘게 특정 주제를 파고드는 운영자의 ‘덕력’과 진정성이 느껴지는 공간입니다.

3. 단점 및 한계 (Cons)

  • 오리지널리티 부족: 운영자 스스로 “About” 페이지에서 밝히듯, 위키피디아나 해외 사이트의 정보를 참고/번역하여 가져온 자료가 많습니다. 독창적인 비평이나 깊이 있는 개인적 분석보다는 **’정보 큐레이션’**에 가깝습니다.

  • 저작권 및 출처 표기: 과거 자료들의 경우 출처 표기가 미흡하거나 원저작자의 허락 없이 가져온 경우가 있음을 운영자가 인지하고 공지하고 있습니다. 엄밀한 학술적 인용처로 쓰기엔 주의가 필요합니다.

  • 업데이트 빈도: 전성기에 비해 최근의 활동성은 다소 정적일 수 있습니다(아카이브 성격이 강해짐).

4. 총평

“80년대 팝 컬처를 향한 애정이 응축된, 한국 웹의 소중한 기록 보관소”

만약 80년대 감성(레트로, 신스웨이브, 고전 명화 등)을 좋아하거나 관련 자료를 찾고 계신다면 즐겨찾기 해둘 만한 가치가 충분한 곳입니다. 최신 트렌드를 쫓는 블로그가 아니라, 언제 방문해도 그 시절의 정보를 차분히 열람할 수 있는 도서관 같은 블로그라고 보시면 됩니다.

Raise the Pressure

Cdpcs7382.jpg
By May be found at the following website: [1], Fair use, Link

버나드 썸너(Bernard Sumner)와 자니 마(Johnny Marr)의 프로젝트 일렉트로닉이 1996년 내놓은 두 번째 스튜디오 앨범이다. 밴드 이름이 표방한 대로 일렉트로닉한 분위기, 자니 마의 강렬한 기타 사운드, 썸너의 청량한 보컬 등이 90년대 얼터너티브락의 바이브와 자연스럽게 결합하며 듣기에 즐거운 작품이다. 전반적인 분위기는 – 어쩌면 당연한 일이겠지만 – 1993년 New Order가 내놓은 Republic의 분위기와 흡사하다.

13개 트랙 중 7개는 썸너와 마가 만들었고, 나머지 6개는 Kraftwerk의 전 멤버인 칼 바르토스(Karl Bartos)와 공동으로 작업했다. 칼을 추천한 이는 베를린에서 레코드 레이블을 운영하고 있던 마와 썸너의 친구 마크 리더(Mark Reeder)였다. 둘은 마크의 제안을 받아들였고, 뒤셀도르프에서 그를 만나기로 했다. 그들은 칼이 일렉트로닉 뮤직의 선구자였기 때문에 기대가 컸고, 칼은 최신의 기술을 알고 싶어했다.

처음에 둘은 칼을 만나기 전에 그와 당시의 최신 기술인 모뎀 라인을 통해 파일을 주고받는 식으로 작업하는 장면을 상상했다고 한다. 그래서 칼과 카페에 만나서 아이스크림을 먹으면서 어떻게 레코딩을 할지 물었을 때 그들은 놀랐다고 한다. 칼이 “간단하지. 우리는 악기를 가지고 잼을 하는 거야.”라고 대답했기 때문이다. 칼은 그들에게 스튜디오를 보여주고 클래프트베르크가 어떻게 작업했는지 시연했다고 한다.

셋이 의기투합한 이후1 칼은 자니 마의 집으로 거처를 옮겼다. 그리고 집에 마련한 스튜디오에서 작업을 시작했다. 같이 작업하면서 마는 칼로부터 독일의 작곡가나 철학자 등 독일 역사에 대해 알게 됐다고 한다. 그들은 클럽에 가서 당시의 음악에 대해서도 조사했다. 칼은 이런 경험을 바탕으로 음악을 만들었다. 스미쓰 멤버의 집에서 클래프트베르크 멤버가 속옷 차림으로 부엌을 오가는 그런 삶이었다.2

하지만, 이 앨범 작업 당시 그들의 삶은 모든 것이 낭만적이지는 않았다. 버나드는 토니 윌슨(Tony Wilson)이 벌려놓은 하시엔다(The Haçienda)에서 벌어진 갱단의 폭력 이슈를 해결하느라 골머리를 앓고 있었고 종종 미팅에 불참해야 했다. 자니 마 역시 스미쓰와 관련한 여러 회의에 끌려다녀야 했다. 결국 그 문제는 법정으로 가게 된다.3 여러모로 쉽지 않은 작업 환경에서 탄생한 앨범인 셈이다.4

개인적으로 가장 캐치하다고 생각하는 트랙은 첫 번째 트랙 Forbidden City고5 일렉트로닉 음악을 즐길 수 있는 꿀맛은 세 번째 트랙 Dark Angel이다. 한편 강렬한 락비트의 일렉트로닉 넘버 Until the End of Time는 네 가지 다른 버전으로 일렉트로닉의 메일링리스트(mailing list)에 공개됐다고 한다. 메일링리스트라니 90년대스럽다. 영국 앨범 차트 8위에까지 올랐고 미국 빌보드 앨범 차트에서는 143위까지 올랐다.

  1. 일렉트로닉 도원결의!
  2. Set The Boy Free, 326-327pp
  3. 드러머 마이크 조이스가 모리시와 자니 마를 상대로 그룹 수익의 동등지분을 요구한 그 분쟁이었다.
  4. 같은책, 332p
  5. New Order의 Regret와 분위기가 매우 흡사하다. 약간 늘어지는 버전?

Red Rain

Red Rain (Peter Gabriel single - cover art).jpg
Fair use, Link

피터 가브리엘(Peter Gabriel)의 ‘핏빛 비(Red Rain)’는 그가 1986년 내놓은 다섯 번째 솔로 스튜디오 앨범 So의 첫 번째 트랙이다. 가브리엘은 솔로 시절 자신이 ‘모조(Mozo)’라고 명명한 영화 아이디어를 구상하고 있었는데, 이 영화에서 마을 사람들은 핏빛 비로 죄에 대한 벌을 받는 설정이라고 한다. 그리고 바로 이 곡이 이 아이디어를 설명해 주는 주제곡으로 사용될 예정이었다고 한다. 하지만, 이 아이디어는 폐기됐다. 다만, 노래는 홍보용 싱글로 발매되어 1986년 6월 빌보드 메인스트림 록차트에서 3위에 올랐다. 영국 차트에서는 46위까지 올랐다. 큰 인기를 끈 곡은 아니었지만, 명반 So의 탄탄한 음악성을 알리는 수작이다.

한편, 이 노래는 1986년 10월 3일 처음으로 전파를 탄 Miami Vice의 세 번째 시즌의 두 번째 에피소드 Stone’s War에서 사용되었다. 주인공 소니 크로켓의 친구 아이라 스톤(Ira Stone)이 겪는 모험을 그린 이 에피소드는 스토리라인이 매우 흥미롭다. 당시 반공주의적인 여타의 TV 액션물과 달리1, 이 에피소드는 미국의 CIA에 의해 운용되는 민병대가 혁명 전야의 니카라과에서 자행하는 만행을 그리고 있다. 아이라는 이런 만행을 담은 비디오테잎으로 공개하려다 희생당한다는 내용이다. 그런 면에서는 누군가 “핏빛 비로 죄에 대한 벌을 받는”다는 가브리엘의 곡 설정과 극의 내용이 어느 정도 맥이 닿아 있는 느낌이 든다.

  1. 당시 맥가이버, 에어울프, A특공대 등의 인기 있는 미국 액션물은 죄다 반공주의적 액션물이었고 유명한 스파이물 007 역시 마찬가지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