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w-Lif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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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The cover art can be obtained from Factory Records., Fair use, Link

1985년 5월 13일 팩토리 레코드사를 통해 New Order의 세 번째 스튜디오 앨범 “Low-Life”가 발매되었다. 이 앨범은 1984년 중반 Jam 스튜디오와 Brittania 스튜디오에서 녹음되었다. 이 앨범에서 밴드는 신디사이저, 시퀀서, 샘플러 등의 활용을 강화하여 그들의 전통적인 악기를 기반으로 하는 포스터-펑크 사운드로부터의 변화를 꾀했다. 이른바 댄스뮤직으로의 전환이라 할 수 있는데, 이 시기는 음악적으로뿐만 아니라 상업적으로도 큰 성공을 거두는 전환기라 할만하다. 이 앨범에서는 “The Perfect Kiss”1와 “Sub-culture”가 인기를 얻었다. 영국에서 발매된 오리지널 LP는 밴드의 이름이 새겨진 투명한 커버로 되어있고, 그 안에 멤버들의 사진들이 들어있는 – 제일 앞에는 드러머 Stephen Morris의 사진이 들어있다 – 독특한 디자인으로 되어 있다. “Low-Life”는 영국 앨범 차트에서 7위, 빌보드 탑200에서 94위에 오르는 성적을 거두었다. Q 매거진은 2000년 이 앨범을 ‘가장 위대한 영국 앨범 100위’에서 97위로 선정하였고, ‘당신이 죽기 전에 들어야할 1001개의 앨범’이란 책은 밴드의 또 다른 작품 Technique와 함께 “Low-Life”를 선정하였다.

트랙리스팅
1. “Love Vigilantes” 4:16
2. “The Perfect Kiss” 4:51
3. “This Time of Night” 4:45
4. “Sunrise” 6:01
5. “Elegia” 4:56
6. “Sooner Than You Think” 5:12
7. “Sub-culture” 4:58
8. “Face Up” 5:02

  1. 이 곡의 뮤직비디오는 Jonathan Demme가 감독했다

Lost Siren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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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ew Order – Lost Sirens” by The cover art can be obtained from Rhino Entertainment.. Licensed under Wikipedia.

New Order 의 신보 – 엄밀히 말해서는 미발표곡 모음집Lost Sirens가 이달 중순부터 아마존, 아이튠스 등을 통해 판매되고 있다. 음원의 형식은 mp3, CD, LP 등의 형태로 다양하게 내놓았다. 그동안 New Order표 그루브에 목말라 하시던 분들에게 한줄기 광명의 빛이 될 음반.

New Order의 새 앨범 소식

New Order가 그들의 마지막 앨범 Waiting for the Sirens’ Call(2005년)을 만들 동안에 녹음해두었던 미발표 트랙 8곡을 묶어 The Lost Sirens라는 이름의 앨범으로 내놓을 계획이다. 원래 2011년 말에 내놓을 계획이었지만, Peter Hook과의 문제와 저작권 분쟁으로 인해 발표가 지연되어 왔다. 이제 법적인 문제가 해결되어 2013년 1월 14일 발매될 예정이라고 한다. 그리고 이 앨범에서 베이스 연주는 당연히 Peter Hook의 솜씨다.

“[조이디비전의 프로듀서였던] 마틴 헤넷이 한번은 레코드를 만들어 정원에 묻어 버리는 아이디어를 내놓았어요. 그러면 언젠가 누군가 그걸 파내는 거죠. 타임캡슐처럼요. 우리는 우리 레코드를 컵보드에 넣어두었다가 다시 꺼내는 것 뿐이에요.”

드러머 Stephen Morris의 말이다.

The Lost Sirens 트랙리스트
1. “I’ll Stay With You”
2. “Sugarcane”
3. “Recoil”
4. “Californian Grass”
5. “Hellbent”
6. “Shake It Up”
7. “I’ve Got A Feeling”
8. “I Told You So”

보다 자세한 소식 보기

아름다운 여름밤의 어느 공연

올해 우리나라에서 열린 각종 락페스티벌은 영국팝을 좋아하는 나이든 음악팬들에게는 특히 반가운 행사였을 것이다. 지산에서는 Radiohead와 Stone Roses, 펜타포트에서는 Manic Street Preachers, 슈퍼소닉에서는 Tears For Fears 와 New Order 등등. 이들의 전성기는 아니지만 직접 해외 공연장을 찾아가지 않는 한, 육안으로 그 존재를 확인할 수 없을 거라 생각했던 인물들이 남한땅에 속속 투척되었기 때문이다.

개인적으로 가장 보고 싶었던 이들은 Stone Roses와 New Order. 하지만 노구(!)를 이끌고 모든 공연을 쫓아다닐 수는 없는 노릇이나 불가피하게 여러 함수를 고려하여 선택을 해야만 했다. 그 결과 도심에서 공연하고 단시간 내에 좋은 공연을 집중적으로 즐길 수 있는 슈퍼소닉을 선택했다.(Ian Brown 형 다시 와야 돼!) 이틀에 걸쳐 진행된 페스티벌에서 New Order가 공연을 하는 스테이지는 8월 15일의 슈퍼스테이지.

이 스테이지가 특히 맘에 들었던 이유는 우리나라에서 공연을 볼 수 있으리라 기대하지 않았던 또 하나의 밴드 Tears For Fears와 신진 일렉트로닉 그룹 중 가장 맘에 드는 밴드인 Foster The People을 함께 즐길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 앞에 고고스타란 밴드와 The Vaccines란 밴드들의 공연이 있었지만 체력안배를 위해 이들 밴드들은 패스하고 5시 20분부터 시작한 Foster The People 공연부터 관람했다.

Foster The People 의 공연은 한마디로 젊은 혈기의 활기참이 느껴지는 공연이었다. 특히 리드싱어는 타악기, 건반, 기타, 샘플링, 춤 등 보컬 이외에도 다양한 악기들을 직접 연주하며 독보적인 존재감을 과시했다. 이들의 히트곡 Helena Beat, Houdini 등이 포함된 공연은 역시 또 다른 인기곡 Pumped Up Kicks로 막을 내렸다. 히트곡과 나머지 곡들의 수준편차가 있는 게 흠이었지만 실력이 탄탄한 밴드라는 것을 증명한 공연이었다.

Tears For Fears. Curt Smith가 트위터 활동을 열심히 하는 관계로 괜스레 가깝게 느껴지는 추억의 밴드. 처음에는 약간 빈 듯한 느낌의 퍼포먼스였지만 시간이 갈수록 Roland Orzabal의 압도적인 보컬실력이 무대를 꽉 채워나갔다. 오랜 음악활동만큼이나 많은 히트곡들 덕에 Foster 와는 다른 레벨의 공연이었는데, 특히 새삼 TFF의 멜로디가 무척이나 아름답고 드라마틱하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고마워요 TFF.

체력안배를 위해서 Foster 는 2층의 관람석에서 봤고 TFF는 스탠딩으로 내려왔지만 앞에 커다란 서양친구가 버티고 있는 바람에 그리 시야가 좋지 않았다. 그래서 New Order 공연 전에는 일찌감치 반대편 스탠딩으로 갔는데, 놀란 것이 10대 소녀팬들이 잔뜩 스탠딩의 펜스를 차지하고 있었다는 사실이다. 물론 일생일대의 공연이니만큼 New Order의 골수팬들이 모여들었겠지만 10대 소녀팬들의 존재는 개인적으로 생소한 느낌이었다.

New Order의 공연은 같이 간 아내도 같은 의견이었지만 이전 두 공연을 압도하는 파워 있는 공연이었다. Bernard Sumner 옹은 공연 내내 기타를 연주하였으며, 그 포지션에 맞게 New Order 의 곡들 중에서도 기타연주가 많이 포함된 초기와 후기 노래를 적절히 섞어 불렀다. 그런 관계로 하우스 음악을 선보였던 Technique앨범에선 선곡이 되지 않았다(개인적으로 아쉬운 부분). 하지만 명불허전 새질서의 공연은 감동의 도가니였다.

이전의 두 공연을 다음 공연을 의식한 탓인지 1시간 정도의 짧은 공연에 앵콜도 없었다. 하지만 New Order 공연은 1시간 반 정도 진행되었고 공연이 끝난 후에도 관객의 환호에 답하여 두 곡의 앵콜곡을 선물했다. 앵콜곡은 그들의 마음의 고향 Joy Division의 곡들 Transmission과 Love Will Tear Us Apart. 자막에는 “Forever Joy Division”이란 문구가 뜨는가 하면 Ian Curtis의 사진이 떠 변함없는 그들의 우정을 표시했다.

아름다운 여름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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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연장 바깥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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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oster The People 공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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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식시간 중 야외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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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ears For Fears 공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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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ernard Sumn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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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콜 장면

뒤늦게 알리는 수퍼밴드들의 공연소식

이미 많은 분들이 아실텐데 명색이 “80년대 팝음악 블로그”인데 소식을 전하는게 좀 늦었다. 올해는 그야말로 추억의 명그룹들이 ‘언제 또 이럴까?’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정신없이 한국을 찾는다. 이미 Morrissey 님은 오셨다 가셨고 지산 락페스티발에는 이름만 들어도 눈물이 날 것 같은 Stones Roses 께서 오신다.(멤버의 가족 장례식 때 함께 모여 회포를 풀다가 서로의 오해를 풀고 재결합하기로 했다고) 개인적으로 더 놀라운 소식은 바로 수퍼소닉에서 터졌는데 New Order 와 Tears For Fears의 내한소식이다.

살아 생전에 New Order의 공연을 볼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을 시린 무릎을 두드려가며 하곤 했었는데, 그게 현실로 다가온 것이다. 게다가 Tears For Fears라니! 트위터에서 커트스미쓰를 졸졸 따라다니며 ‘언제 한국에 오실거냐?’고 안 되는 영어로 졸라대도 개무시하던 분이 언제 소리소문 없이 주최측과 이야기를 하신건지? 게다가 맘에 드는 라인업이 하나 더 있는데 최근 신인 밴드 중에 가장 좋아하는 Foster The People까지 있다는 사실. 티켓으로 4개의 공연을 볼 수 있다니 위의 셋은 반드시 집어넣을 예정이다.

이외에도 펜타포드에서는 Manic Street Preachers가 온다고 한다. Pulp가 온다면 그 공연까지 봐야 하나 라고 진지하게 고민했을 법한데, 매닉스는 쪼끔 약해서 그리고 고민하고 있지 않다. 문제는 지산인데 이마저 사실 벅차다. 주최측이 이미 스톤로지스를 일요일 오밤중의 헤드라이너로 배정한 것 같아서 서울에 사는 이 방망이깎는 노인에게는 벅찬 일정이 될 것 같아서다. 그들의 공연을 보면 눈물이 날 것 같지만 가지 못한 회한 때문에 집에서 눈물을 흘릴 것 같다.

New Order 재결성 소식

뉴오더가 피터훅 없이 재결합한다. 이 前 베이시스트는 별다른 언급이 없었고, 밴드는 남은 라인업으로 10월에 영화제작자 Michael Shamberg를 위한 두 번의 자선공연에서 연주하기 위해 재결합할 것이라고 밝혔다.

[중략]

뉴욕에서 팩토리레코드를 운영한 이외에도, 샴버그는 상을 받았던 True Faith를 포함하여, 뉴오더 비디오 몇 개를 프로듀스했었다. “마이클은 처음부터 우리와 함께였어요.” 썸너의 말이다. “그는 매우 아프고 지속적인 의료치료를 요합니다. 우리는 그를 돕고 싶어요. 그리고 이 쇼는 그의 지속적인 치료를 위한 재정적 지원에 기여할 것입니다.”

뉴오더는 훅이 밴드를 떠나면서 2007년 해산했다. 처음에 그룹은 이어나갈 것이라고 주장했지만, 베이시스트는 이에 맞서 싸웠다. “너희들은 나 없이는 더 이상 뉴오더가 아니다!”라고 그는 마이스페이스에 쓰기도 했다. “너희들은 2/3를 가질 수도 있지만, 너희가 ‘뉴오더적인’ 어떤 것의 권리를 가지고 있다고 생각하지 마라. 법정에서 보자!”

[후략]

출처

팩토리 레코즈의 컴필레이션 발매

FAC. DANCE

http://consequenceofsound.net/2011/08/strut-issues-factory-records-compilation-fac-dance/

이런 근사한 게 나온답니다.

1980년부터 1987년가지 팩토리 레코즈 소속 음악가들의 곡을 모은 컴필레이션인데요, 12인치 믹스랑 희귀곡이 주가 된답니다. 팩토리의 아트디렉터였던 피터 새빌의 아트워크도 수록된다니까 팩토리 팬들에겐 좋은 선물이 되겠어요. 미니멀한 커버아트부터가 정말 멋집니다.
+ 뉴오더가 피터 훅 없이 재결성한답니다ㅠㅠ 아저씨 아주머니들 (질리언 길버트도 돌아온대요!) 재결합하시는 거야 반갑지만 후키 옹 없는 뉴오다라니 상상이 안 가요ㅠㅠ
수록곡

CD 1
01. Section 25 – “Looking From A Hilltop (Megamix)”
02. A Certain Ratio – “Wild Party”
03. Quando Quango – “Love Tempo”
04. 52nd Street – “Express”
05. Swamp Children – “Little Voices”
06. Biting Tongues – “Boss Toyota Trouble”
07. The Durutti Column – “For Belgian Friends (Valuable Passages version)”
08. Royal Family & The Poor – “Art On 45″
09. A Certain Ratio – “Knife Slits Water (12-inch version)”
10. Section 25 – “Dirty Disco”
11. Blurt – “Puppeteer”
12. X-O-Dus – “See Them-A-Come”
CD 2
01. New Order – “Confusion (Original 12″ mix)”
02. Shark Vegas – “Pretenders Of Love”
03. 52nd Street – “Cool As Ice (Jellybean Mix)”
04. Streetlife – “Act On Instinct (Hot Swedish Mix)”
05. The Hood – “Salvation! (Nitromix)”
06. Abecedarians – “Smiling Monarchs”
07. Quando Quango – “Atom Rock (Mark Kamins Mix)”
08. Marcel King – “Reach For Love (New York Remix)”
09. 52nd Street – “Look Into My Eyes”
10. Quando Quango – “Genius”
11. Swamp Children – “You’ve Got Me Beat”
12. The Durutti Column – “Madeleine”

Thieves Like Us

오랜만에 아마존에서 CD 몇 장을 주문했다.

Passion Pit – Chunk of Change
Thieves Like Us – Play Music
Neon Indian – Psychic Chasms

이들 중에서 특히 주목하고 있는 밴드는 Thieves Like Us. 밴드 명에서 확 냄새나는 것은 New Order 필의 밴드가 아니냐 하는 것이다. 알다시피 밴드 명이 New Order 의 히트곡 중 하나와 같기 때문이다.(실제로 Radiohead는 밴드명을 그들이 존경하는 Talking Heads의 히트곡 제목에서 따왔다) AllMusic을 찾아보니 역시 짐작대로  New Order 의 곡에서 밴드명을 따온 것 같다. 노래 역시 New Order와 매우 흡사한 분위기다. 일렉트로닉에 기반을 둔 리드미칼한 멜로디, 약간은 떨리는 듯한 여린 보컬 – 얼핏 일렉트로닉한 Belle & Sebastian 이란 느낌도 난다 – 이 영락없이 어린 New Order의 분위기다. 그들의 곡 중 개인적으로 가장 맘에 드는 곡은 Drugs in My Body인데 예의 New Order의 분위기가 물씬 풍긴다. 한편으로 후렴구가 Wire의 Eardrum Buzz의 일부분과 유사하긴 한데 한번 비교해보시길.

디스코그래피
2008 Play Music Shelflife
2010 Again & Again Shelflife

Drugs in My Body
Wire – Eardrum Buzz
홈페이지

피터 훅(Peter Hook)의 80년대

Peter Hook & The Light performing in Germany in 2018
By Stefan Bollmann, Attribution, Link

2007년 8월호 모조 부록에 실렸던 피터 훅과의 짧은 인터뷰.

Interviewed by Pat Gilbert

나의 80년대피터 훅

약물, , 맨체스터의 천재적 펑크 디스코정말이지 대단한 10년이었다니까!

당신은 리스트에 두 번 올랐습니다, 조이 디비전 Closer와 뉴 오더의 Low-Life로요. 그들이 그렇게 출중한 이유는 무엇입니까?

우리는 우리 자신을 만족시키는 것들을 만들었어요. 우리는 예술적 자유를 전적으로 보장받을 수 있었죠. Blue Monday 10분짜리 곡이었어요, 하지만 우리는 그걸 싱글로 내놨죠; Love Will Tear Us Apart는 앨범에 [Closer] 수록되지도 않은 곡이었습니다. 다른 밴드들은 회사가 시키는 대로 해야만 했었어요. 그리고 우리는 팩토리와 5050으로 수익을 나눴습니다. 덕분에 앨범을 만장 판 정도로도 1년은 먹고 살 수 있었어요수지 앤 더 밴시스는 아마 십만장은 팔아야 했을 겁니다.

라이브 에이드로부터 제의를 받은 적 있나요?

아뇨. 나는 밥 겔도프가 나를 좋아하지 않았다는 걸 알고 있습니다. 제의가 들어오지 않았다는 사실은 꽤나 모욕적이었죠. 그걸 거절한 사람이 있다는 소린 들어본 적이 없거든요.

80년대 최고의 순간은 언제였습니까?

[Blue Monday] 1983년 톱 오브 더 팝스에 출연했을 때였죠. 우리 세대에겐 거기에 출연하는 것이 최고로 여기지곤 했어요.

Totp logo 1986.jpg
By BBC – BBC, Public Domain, Link

최악의 순간은요?

이언 커티스의 자살입니다. 이언은 1980 5월에 죽었어요, 그러니까 우리는 80년대를 그 사건과 함께 시작한 거나 다름없어요. 그런 재앙적인 출발이 어디있겠습니까, 안 그래요?

가장 정신나간 순간은 언제였죠?

그건 너무 많군요우리는 미국에 빨리 진출한 편이었죠. 거긴 사람을 다루는 법을 압니다. 클럽 앞에서 우리가 뉴 오더라고 하면 사람들이 특별한 방으로 끌고 들어가서 약이고 술이고 할 거 없이 잔뜩 앵겨줬죠. 영국에서라면 귓방망이를 흠씬 맞았을 겁니다. 미국에서 우린 쾌락을 찾았고 정신나간 세계에 입성했어요. 그리고 애시드 하우스와 함께 80년대가 종언을 고했죠… 80년대는 정말이지 빌어먹게 좋았습니다.

어떤 음악을 듣곤 했나요?

바우 와우 와우, 헤이지 팬테이지, 맬컴 맥라렌의 모든 작품들. 애덤 앤트는 엄청난 아이콘이었고 마르코 피로니는 끝내주는 기타리스트였죠. 씨어터 오브 헤이트, 데쓰 컬트, 플레이 데드와 같은 80년대의 골수 고딕적 면모도 좋았습니다. 미국에서 디제잉을 많이 했는데 그들은 죄다 80년대에 빠져있어요. 그 시기의 곡이라면 뭐든지 열광하더군요.

80년대가 당신에게 부를 가져다줬습니까?

그렇죠, 헌데 하시엔다에 대해선 좀 할 말이 있습니다. 그걸 6번이나 말아먹었거든요. 결국 하시엔다와 팩토리에 6백에서 9백만 정도의 돈을 쏟아 부었죠

My ’80s- Peter Hook

 Drugs, Booze, genius Manc punk disco – worra decade!

You’re in the list twice, for Joy Division’s Closer and New Order’s Low-Life. What made those groups so special?

We did stuff to make us happy. We were allowed complete artistic freedom. Blue Monday was 10 minites long, but we put it as a single; Love Will Tear Us Apart wasn’t on the album [Closer]. Everyone else was doing what they were told. Also, we had a 50/50 split with Factory so we could live for a year by selling 10,000 albums- Siouxsie & The Banshees would have had to sell 100,000.

Were you approached to Live Aid?

No. I take it Bob Geldof didn’t like us. You felt quite affronted that you weren’t asked. I’ve never heard anyone say they turned it down.

High point of the decade?

Appearing on Top Of The Pops in 1983 [with Blue Monday]. Doing that progranne was a dream for my generation.

Low point?

The suicide of Ian Curtis. Ian died in May 1980, so the ’80s were all up for us after that. It couldn’t have started out more fucking disastrously, could it?

Craziest moment?

There were so many… we got to America quite quickly, and they knew how to treat you over there. If we were outside a nightclub, when we said we were New Order they’d drag you in, put you in a special room and fill you full of drugs and alcohol. In England all you’d get was a thick ear. In Amercia we discovered hedonism and entered that whole mad world, then to finish the decade with acid house… the ’80s was fucking great for us.

What were you listening to?

Bow Wow Wow, Haysi Fantayzee, all that stuff that felt it had come from Malcolm Mclaren. I thought Adam Ant was a great character and Marco Pirroni was a fantastic guitarist. Theatre Of Hate, Death Cult, Play Dead – the serious goth side of it was good. I DJ in America a lot and they’re fucking obsessed with the ’80s. Play anything from that time and they go mental.

Did the decade make you millionaire?

Yeah, but thanks to the Hacienda I lost it – six times over. We worked out that we lost between six and nine million on that club and Factory…

 

80년대 뉴웨이브에 관한 Moby와의 인터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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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lkivar (www.alkivar.com) – Transferred from en.wikipedia to Commons. (transferred to commons by Dryke), CC BY-SA 2.5, Link

조류에 거슬러 헤엄쳐 올라가는…. 여러분들은 아마 그의 메가히트곡 Play로 그를 기억할 것이다. 그러나 Moby는 이미 ’80년대 말부터 Acid House의 붐에 편승하여 그의 싱글을 내놓았던 전력이 오랜 아티스트이다. 음악 전문가들은 그를 하나의 아티스트로 만들어낸 New Wave에 대해 재고하고 있다.

VH1: 당신은 어떤 밴드가 뉴웨이브로 분류된다고 생각하시나요?

Moby: 그당시에 New Wave와 Punk사이에 엄격한 이분법이 존재하였기 때문에 참 대답하기 어려운 질문이네요. Black Flag, Bad Brains, Dead Kennedys는 펑크밴드였습니다. New Order, Depeche Mode, Duran Duran, Flock of Seagulls는 New Wave 밴드였습니다. 개인적으로는 Flock of Seagulls, Missing Persons, 또는 the Go-Go’s 등이 생각나네요. New wave는 클래식락과 같은 사운드가 아니면서도 씬써싸이저가 개입된 음악을 추구하는 짧은 머리를 한 아티스트들이 만들어내는 음악을 의미했었죠. 이제와서 생각해보면 경솔한 정의지요.

VH1: 그런 아티스트들이 어떻게 광범위한 팬층을 형성할 수 있었나요?

Moby: 그건 접근용이성과 멜로디에 관련된 흔히들 하는 질문이지요. The Dead Kennedys는 위대한 노래들을 만들어냈어요. 그러나 펑크는 자세, 에너지, 공격성과 더 많은 관련이 있었지요. 뉴웨이브는 언제나 “귀에 쏙 들어오는(Catchy)” 특징을 가지고 있었어요. 당신이 정말 뛰어난 멜로디에 드럼머쉰과 씬써싸이저를 입히면 새로운 싸운드가 태어나죠. 그러나 결국 요는 사람들이 좋아하고 쉽게 다가설 수 있는 훅(Hook : Catchy, Groove 등과 함께 우리말로 표현하기 참 어려운 단어중 하나)이었지요.

VH1: 그 당시엔 정말 키타보다 씬써싸이저를 많이들 채용하였나요?

Moby: ’80년대 중반에 키타 연주자와 씬써싸이저 연주자, 그리고 드러머와 드럼머쉰을 조작하는 사람들간에 전쟁이 벌어지고 있었죠. 그 당시 음반가게에 가면 아마도 당신은 드러머의 장점과 드럼머쉰의 장점에 대해 열띤 논쟁을 벌이고 있는 장면을 목격했을거에요. 그렇지만 그 전쟁에서 죽은 사람은 없었죠. 그러나 사람들은 정말 심각했어요.

VH1: 전형적인 뉴웨이브 아티스트의 패션은 어떠했죠?

Moby: 헤어젤 또는 헤어스프레이, 얇은 안경, Doc Maartens(Dr. Martens라는 브랜드를 의미하는듯함:역자주), 뽀족한 부츠, Converse(유명한 미국의 스포츠화:역자주), 달라붙는 검은 바지 또는 블랙진 정도가 뉴웨이브 아티스트들의 필수품목이었죠. 1981년 The Specials르 봤던 기억이 나네요. 사람들의 절반은 핑크와 블랙의 컴비네이션을 입고 있었어요. 그때 전 14살이나 15살이었는데 “와우~ 정말 근사하군.”하고 생각했었죠.

VH1: 그당시 팝차트에 머물던 곡들과 얼터너티브락은 어떤 차이가 있었죠?

Moby: ’80년대의 팝차트는 Prince, Michael Jackson, 헤어밴드들에 의해 점령되어 있었죠. 나중에 얼터너티브락은 Mission of Burma, R.E.M., the Pixies, 그리고 나중에 Jane’s Addiction 등에 의해 등장했어요. ’80년대 헤비메틀은 폭발적이었죠. 드럼은 무슨 폭발음같았어요. 씬써싸이저는 모든 것을 장식적으로 만들었죠. R.E.M.을 듣고 있자면 그건 보다 절제되고 기본적인 맛이 났어요. 키타는 키타 소리가 났었고 드럼은 드럼소리가 났죠. 마치 발가벗겨 진것처럼 말이죠. 1985년에 Husker Du나 R.E.M.은 무명 셔츠와 진을 입고 있었어요. 반면 The Time은 수트를 차려입고 헤어스타일은 무척이나 화려했었죠. 그들 모두가 과도기적인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반면에 하나의 교재였죠.

VH1: ’80년대 말 당신은 익사이팅한 시대를 살았다고 생각했었습니까?

Moby: 난 어쩌면 전혀 다른 시대를 살았다는 느낌입니다. 난 코네티컷에서는 14살짜리 펑크락커였고 뉴욕에서는 25살짜리 하우스 뮤직 열광자였으니까요. 많은 것들이 변화했죠. Charles Dickens를 인용하자면 정말 최고의 시대이자 최악의 시대였습니다.

VH1: ’80년대 어떤 유산을 남겼나요?

Moby: 그 시대에 많은 장르들이 탄생했죠. 그러나 그들은 길거리에 내팽겨쳐졌습니다. New Order같은 밴드를 보면 한편으로 New Wave 밴드였고 다른 한편으로 디스코 그룹이었습니다. 또다른 한편으로는 팝그룹이죠. 사람들이 디스코텍에 가서 음악을 듣고 그 노래가 차트에 올라가는 식이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그 음악은 실험적입니다. 다행히 그 유산들은 여전히 남아있어요. 사람들이 음악을 듣는 방식, 그리고 어떤 장르인지 개의치 않고 이 음악이 맘에 드는지 안드는지 자문하는 방식 등이라 할 수 있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