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teve McQueen

Stevemcqueen.jpg
Stevemcqueen“. Licensed under Wikipedia.

Steve McQueen 은 영국의 팝밴드 Prefab Sprout이 1985년 6월 내놓은 그들의 두 번째 스튜디오 앨범이다. 이 앨범의 제목은 미국에서는 법적분쟁의 이슈로 인해 Two Wheels Good 이라는 이름으로 판매되었다(‘스티브 맥퀸’이라는 이름이 훨씬 근사함은 두말할 나위 없다). 앨범 커버에는 스티브 맥퀸이 사랑하던 Triumph 모터사이클을 – 1963년 그가 주연한 ‘위대한 탈출(The Great Escape)’에서도 이 모터사이클을 타고 탈출을 시도한다 – 타고 있는 멤버들이 등장한다. 앨범은 영국 차트에서는 21위, 빌보드200 에서는 180위에 오르는 성적을 거두었다. 비평적으로는 앨범의 진가를 더욱 인정받았다 할 수 있는데 NME가 1985년 말 실시한 최고의 앨범 투표 Pazz & Jop 투표에서는 4위에 선정되기도 했다. 이후 The Times가 1993년 실시한 투표에서는 47위, Mojo가 1995년 실시한 투표에서는 90위, The Guardian이 1997년 실시한 투표에서는 61위에 선정되는 등 시대를 뛰어넘어 꾸준한 사랑을 받고 있다. 지금 들어보아도 히트 싱글 When Love Breaks Down을 비롯한 수록곡 모두가 빼어난 멜로디에 – 작곡은 모두 밴드의 리더 Paddy McAloon이 맡았다 – 고급스럽게 프로듀스된 – 프로듀서는 Thomas Dolby가 맡았다 – 소피스티팝(Sophisti Pop)의 정수를 선보이고 있다는 점에서 이러한 팬들의 – 특히 영국팬 – 애정이 유난스러워 보이지 않는다.

Loopified

Dirty Loops - Loopified (2014, US version album cover).jpg
By Dirty Loops – Amazon.com, Fair use, Link

Dirty Loops(공식 홈페이지)는 스웨덴 스톡홀름 출신의 3인조 밴드다. 보컬과 피아노를 맡고 있는 Jonah Nilsson은 클래식 이론을 전공하였고 베이스의 Henrik Linder와 드럼 Aron Mellergårdh은 째즈를 공부했다. 어릴 적부터 음악을 배워왔고 전문학교에서의 수업을 통한 탄탄한 이론적 배경을 가진 이들은 올해 첫 앨범 Loopified를 냈지만 이미 2008년에 결성된 고참 밴드다. 밴드 결성 이후 스웨덴에서 활동하다가 미국시장으로의 접근에 나선 밴드가 2012년 저명한 프로듀서인 David Foster를 만나고 유니버살 뮤직의 계열사인 Verve와 계약을 맺으며 스웨덴을 벗어났다. 이후 David Foster와 함께 “David Foster & Friends Tour”라는 이름으로 중국, 인도네시아, 태국 등을 돌며 연주를 선보였다. 특히 John은 Chaka Khan과 듀엣으로 노래하기도 했다. 이러한 경력 때문인지 앨범의 면면을 들어보면 신인의 앨범이라기보다는 이미 앨범을 한 서너 장 낸 분위기가 풀풀 풍긴다. – 물론 이런 존잘 밴드야 많습니다만 – 복잡한 코드진행의 째즈퓨전을 구사하면서도 귀에 감기는 멜로디와 현란한 강렬한 락연주가 매력적인 이 앨범에서는 Hit Me(뮤직비디오 : 여유있게 앉아서 온갖 현란한 연주를 해대는 베이스를 보는 맛이 일품), It Hurts 등이 두드러진 트랙이다. 상업적으로는 스웨덴 차트에서 19위, 미국 차트에서는 86위까지 오르는 성적을 거두었다. 올해 4월 16일 최초로 일본에서 발매된 이후 여러 나라에서 발매하면서 트랙리스팅은 부분적으로 다르다. 현재까지 개인적으로 꽂힌 곡은 Sayonara Love(뮤직비디오). 무손실 음원을 들을 수 있는 기기를 가지신 분이라면 네이버 뮤직에서 고음질의 음원을 구입할 것을 권한다. 11월 30일 내한공연도 내정되어 있다.

우리는 어떻게 만들었나

The Lexicon of Love라는 신쓰팝의 명반이 어떻게 만들어졌는지에 대해 ABC의 멤버인 당사자들이 쓴 글을 삼번함(원문보기)

ABC-Lexicon.jpg
ABC-Lexicon” by The cover art can be obtained from the record label.. Licensed under Wikipedia.

Martin Fry, 싱어송라이터

1982년에 디스코는 입에 올려서는 안 되는 말이었다. 하지만 난 Chic 앨범의 선율들을, 그리고 Earth, Wind &Fire의 모든 음악세계를 사랑했다. The Cure와 Joy Division과 같은 이들과 융화한 것은 우리가 추구했던 것이었다. – 우리 기타리스트였던 Mark White는 한 영화의 사운드트랙의 분위기를 부여하고 싶어 했다. 매우 극장과 같은 분위기의 표지에 끝내주는 고전 영화인 The Red Shoes의 터치를 가미하기도 했다. 실제보다 더 강렬하고 감정적이었다. The Lexicon of Love는 어느 정도는 그러했다. 난 팔세토 창법을 많이 썼다. 부분적으로 사랑에 빠진 것의 롤러코스터 탑승을 – 우쭐함과 절망 – 전달하기 위해서.

우리의 첫 싱글 Tears Are Not Enough는 1981년에 탑20곡이 되었다. 그리고 이후의 앨범은 보다 다듬어졌다. Dollar’s의 파노라마와 같은 넓은 화면과 같은 사운드인 Hand Held in Black and White를 듣고, 우리는 프로듀서 Trevor Horn과 접촉하였다. 그는 우리가 추구하려던 것을 즉시 이해했다. 우리는 아이디어가 가득했고 락앤롤을 바꿀 수 있으리라 – 셰필드에서 실직수당을 받으며 노래를 막 시작한 이에게는 매우 야심 찬 – 생각했다.

가사적으로 나는 Gary Numan과 OMD의 것을 사랑했었지만, 내 노래들을 Rodgers and Hammerstein이나 Cole Porter의 라인처럼 보다 감정적으로 고양시키고 싶었다. 그 당시에 누군가를 진정으로 사랑하거나 미워하는 것에 관한 노래가 드물었다. 펑크는 매우 중독적임에도 여성들은 그들의 존재감을 Lexicon에서 부각시켰다. 선율을 그렇게 두드러지게 특징 지우는 것은 통상적인 것이 아니었다. 당신이 Cilla Black이나 Cliff Richard가 아니라면 말이다. 4위까지 오른 The Look of Love는 무그 베이스라인에 모든 피치카토 어레인지먼트가 담겨 있었다. 반면 All of My Heart (No 5)는 매우 Bridge Over Troubled Water 스러웠다.

이미지적 관점에서 황금색 라메 수트와 디너 재킷은 우리를 펑크와 달리 보이게 했다. 야심적이고 코스모폴리탄적인, James Bond와 같은 요소를 가득 담고 있었다. 30년에 걸쳐 나는 이 노래들을 오케스트라와 공연하여 왔다. 나는 내 삶을 살아왔고 이제 두 아이가 있다. 그래서 All of My Heart로 돌아가는 것은 – 그리고 소년답게 라기보다는 남자답게 부르는 것은 흥미로운 일이다.

Anne Dudley, 키보드, 어레인저

ABC는 키보드 연주자가 없었다. 그래서 Trevor Horn이 영입했다. The Look of Love를 녹음하는 도중에 그는 진짜 현악과 관악 부문이 필요하다고 결정했다. 젊은이의 확신으로 경험은 일천했지만 내가 어레인지먼트를 하겠다고 자원했다. 우리가 애비로드에서 30개의 현악 섹션을 녹음했을 때, 나는 종종 그 방에서 가장 어렸다. 나는 Gamble and Huff의 디스코 클래식 The Sound of Philadelphia에서의 오케스트라의 풍부함을 언제나 사랑했었다. 이게 주된 영감이 되었고 또한 Bee Gees의 날아오르는 듯 하지만 단순한 현악 라인이 보태졌고 심지어 거기에는 Vaughan Williams도 약간 가미되었다.

The Look of Love의 믹스를 듣고 Trevor가 얼마나 시끄럽게 현악을 만들어냈는지를 알고 놀랐던 기억이 난다. 이것은 ABC의 색을 선명하게 만들었다. 그것은 미안해할 것도 없이 호사스럽고 서사적인 앨범이 될 것이었다. 그 이후로 우리는 많은 트랙들에 현악을 가미할 것이었고 앨범의 독특한 사운드를 개발해 나갈 것이었다. – 최신의 기술, 일렉트로닉 사운드와 실제 악기의 조화. 그 이후로 내가 추구해오던 조합이다.

솔직히 난 All of My Heart가 처음엔 좀 약하다고 생각했다. Trevor가 “all of my heart”의 가사를 부르기 전에 드라마틱한 멈춤과 코러스로의 결말을 첨가할 때까지 말이다. 우리는 그 다음에 팀파니를 조금 더 넣었다. 반면 페이드아웃은 내게 영국의 목가적인 순간을 가질 수 있는 기회를 부여했다. 결론적으로 그건 아마도 Martin의 최고의 보컬 퍼포먼스일 것이다. 그리고 그것은 두드러진 곡이 되었다. 그러나 트랙들은 모두 두드러졌다. Martin의 재치 있고 쉬운 가사는 젊은 사랑의 시도를 요약하고 있다. The Lexicon of Love는 1위를 기록했고 난 이 앨범이 30년간 어떻게 비쳐지는지에 관해 즐거울 따름이다. 그리고 내 젊은 날의 노력이 그다지 부끄럽지는 않다.

_hello world

Insoc Hello World album cover.jpg
Insoc Hello World album cover” by Information Society – http://informationsociety.bandcamp.com/album/hello-world. Licensed under Wikipedia.

Information Society가 2014년 9월 23일 신보 _hello world를 내놓았다. 2007년 내놓은 Synthesizer 이후 7년만의 작업이자 Kurt Harland/Paul Robb/James Cassidy의 오리지날 라인업의 작업으로는 1992년의 Peace and Love, Inc. 이후 처음이다. 첫 싱글로는 Land Of The Blind(뮤직비디오)가 올해 3월 다양한 믹스 버전을 함께 담아 발매되었었다. 전체적으로 안정적인 그들 특유의 신쓰팝 사운드가 세월의 풍파(?)에도 굴하지 않고 유지되고 있다. 7번 트랙 Beautiful World는 Devo의 오리지널 곡(뮤직비디오)을 리메이크한 것으로 Devo의 보컬리스트 Gerald V. Casale까지 초대하여 함께 만들었다. 개인적으로는 스팀펑크스러운 아트워크도 맘에 든다. CD슬리브 뒷면은 멤버들이 특유의 중2병스러운 포즈를 취하고 서있다.

들국화

들국화 - 들국화.jpg
By 로엔엔터테인먼트, 공정 이용, 링크

1985년 9월 10일 발표된 들국화데뷔 앨범이 한국 대중음악에서 차지하는 지위는 확고하다. 이 앨범은 2007년 8월 경향신문과 음악전문 웹진 가슴네트워크가 공동으로 기획하여 선정한 ‘한국대중음악 100대 명반’에서 선정위원으로부터 최다 추천을 받아 유재하의 유작을 제치고 1위에 올랐다. 대중음악의 음반에 아직도 “건전가요”가 의무적으로 들어가야 하는 엄중한 80년대에1 들국화는 반체제적인 메시지를 담지 않았으면서도 그 몸짓만으로도 반체제적인 언더그라운드의 에너지를 뿜어내며 난데없이 한국 대중음악의 전면에 등장했다. 그들이 선보인 음악은 지금 생각해봐도 당시 서구의 최신 대중음악 조류와 가장 많은 접점을 가지고 있던 음악이었다. 또한 TV출연이 아닌 라이브 공연으로 음악활동을 했다는 점에서도 이례적이고 진지한 시도였다. 개인적으로는 헤비메탈이 아니면서도 – 실제로 이들은 앨범 커버도 오마쥬할 정도로 비틀즈의 팬이다 – 이전에 느껴보지 못했던 깊은 박동이 느껴지는 앨범의 첫 곡 ‘행진’을 처음 들었을 때의 생동감이 아직도 어렴풋이 기억이 난다. 이어지는 ‘그것만이 내 세상’, ‘세계로 가는 기차’, ‘매일 그대와’ 등의 곡들은 저마다의 개성과 완성도를 뽐내며 앨범의 예각을 한층 벼리고 있다. 특이하게 ‘오후만 있던 일요일’은 멤버가 아닌 이병우 씨가 만든 수록곡인데 이 씨가 멤버로 있던 ‘어떤날’의 1집 작업 중 들국화 멤버들이 맘에 들어 해서 어떤날의 앨범과 들국화의 앨범에 같이 수록된 것이라 한다.2 많은 이들이 아직도 들국화의 활동 재개를 원할 테지만 – 서태지 말고 – 집안 사정으로 인해 음악활동을 접고 미국행을 해야만 했던 조덕환 씨가 2000년대 중반 귀국해서 들국화의 재림을 시도했지만 그때는 이미 동력이 많이 소진했을 때였다고 한다. 라이브로 승부했던 밴드니만큼 이들 음악의 진미는 라이브에서만이 느낄 수 있을 테지만 요즘의 팬들에게는 그게 요원한 숙제로 남으리라는 불안감이 잔상으로 남는다.

엔하위키미러의 앨범 소개

  1. 이 앨범에는 ‘우리의 소원’이 건전가요로 수록되었다
  2. 두 버전 모두 명곡이다

Depeche Mode의 팬싸인회 모습

Dave Gahan DM.jpg
Dave Gahan DM” by ASK – deWiki. Licensed under CC BY-SA 3.0 via Wikimedia Commons.

Dave Gahan의 어린 시절

2005년 10월 18일 뉴욕 소재의 타워레코드사에서 있었던 디페쉬모드의 팬싸인회 모습이다. 바로 그 전날 그들의 열한 번째 스튜디오 앨범 Playing The Angel이 발매되었고 이 싸인회는 그 앨범의 홍보를 위해 기획된 것이다. 햇수로 치면 벌써 9년이나 된 이벤트니 – 내년이면 10주년! – 격세지감을 느낀다. 한국 팬들은 언제나 이들의 라이브공연을 볼 수 있게 될는지.

Tower Records In-Store – October 18th, 2005 from Depeche Mode on Vimeo.

Bitches Brew & The Inner Mounting Flame

Miles Davis의 Bitches Brew와 Mahavishnu Orchestra의 The Inner Mounting Flame.

Bitches brew.jpg
Bitches brew” by The cover art can be obtained from Columbia Records.. Licensed under Wikipedia.

MahavishnuOrchestraInnerMountingFlamealbumcover.jpg
MahavishnuOrchestraInnerMountingFlamealbumcover” by The cover art can be obtained from Records.. Licensed under Wikipedia.

요즘 집중적으로 듣고 있는 앨범들이다. 두 앨범은 각각 1970년과 1971년 발표되어 당시의 째즈 음악계에 일대풍파를 일으킨 앨범들이다. 이미 째즈의 거장이었던 마일스 데이비스는 Bitches Brew를 통해 일렉트릭 피아노나 기타 등을 사용하면서 매우 실험적인 째즈를 선보였다. 당시에는 비전통적인 시도 때문에 엇갈린 평가를 받았지만 오늘날에는 음악계의 역대 명반 중 하나로 확고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 신비로운 분위기의 앨범 커버와 20분에 달하는 첫 곡 Pharaoh’s Dance를 듣고 있으면 마일스 데이비스라는 인물의 거대한 아우라랄까 하는 매력이 느껴진다. 한편 이 앨범에서 기타를 맡은 John McLaughlin이 만든 프로젝트가 바로 Mahavishnu Orchestra다. 이들은 Weather Report 등과 함께 소위 째즈퓨전과 째즈락이란 장르를 선진적으로 개척한 밴드다. 밴드의 데뷔 앨범인 The Inner Mounting Flame은 ‘지미 헨드릭스가 째즈를 한다면 이렇게 하지 않을까’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락적인 냄새가 강하다. 이미 Bitches Brew에서 그 실력을 인정받은 John McLaughlin의 압도적인 기타 플레이가 이 앨범에서는 한층 더 기세등등하다. 모호한 멜로디와 리듬으로 가득 찬 Bitches Brew보다는 정돈된 느낌이지만 그렇다고는 해도 소위 “째즈퓨전”에 대해 사람들이 가지고 있는 편견처럼 편안한 까페에서 느긋하게 즐길 정도로 편안한 음악은 아니다. 끊임없이 청취자를 긴장시키며 음악적 각성을 일깨우는 상황이 연출되는 것이 이 앨범과 Bitches Brew의 공통점이다.

Miles Davis의 Pharaoh’s Dance 듣기
Mahavishnu Orchestra의 Vital Transformation 듣기

The Stone Roses: Made of Stone

Stone Roses-17-07-2012 Milan.JPG
Stone Roses-17-07-2012 Milan” by Alfio66Own work. Licensed under CC BY-SA 3.0 via Wikimedia Commons.

The Stone Roses데뷔 앨범이 우리나라에 정식으로 거의 시차 없이 발매되었다는 사실은 참 흥미롭다. Madchester 운동은 고사하고 펑크락에 대한 인지도조차 현저히 떨어지는 우리의 음악청취 풍토에서 좀 느닷없는 면이 있었다. 당시에 어떤 광팬의 입김에 의한 것인지 몰라도 여하튼 이러한 사소한 에피소드는 당시 돌장미가 얼마나 큰 인기를 얻었던가를 잘 보여주는 한 사례라 할 수도 있을 것이다.

60년대 음악을 펑크적으로 풀어내고 싶지만 ‘60년대 밴드도 아니고 펑크밴드도 아닌 80년대 밴드’일 뿐이라는 이언 브라운의 자평에 딱 들어맞게 그들의 음악은 80년대 풍이면서도 당시 어느 밴드와도 견줄 수 없는 그들만의 개성이 담겨 있었다. 사이먼앤가펑클을 연상시키지만 명백히 그들은 포크밴드가 아니었고 매드체스터의 그루브를 담고 있었지만 동시대 매드체스터 밴드와는 또 다른 감수성을 지니고 있었다.

겨우 겨우 1994년 2집 Second Coming을 내놓았지만 매니지먼트를 비롯한 온갖 문제 등 때문에 해체의 길을 걸어야 했던 이 밴드는 그 후 팬들에게 일종의 전설로 남았다. 그리고 팬들은 그들의 음악을 육성으로 듣는 순간은 해체 이후 거의 16년이 되어가는 시점까지 기다려야 했다. 2011년 10월 14일 The Sun은 돌장미가 일련의 라이브 공연을 위한 계약을 체결했다는 소식을 전했고 이 소문은 그 해 사실이 되었다.

2013년 6월 발표된 The Stone Roses: Made of Stone은 밴드의 재결합을 기념하여 만든 다큐멘터리다. This is England라는 영국 사회의 속살을 거침없이 드러냈던 영화를 감독한 바 있는 Shane Meadows가 이 다큐의 감독을 맡았다. 다큐는 밴드의 과거와 현재를 교차하여 보여주며 밴드가 어떤 음악을 추구했고 팬들은 그들의 어떤 모습을 사랑하는지를 조명한다. 재결합 공연의 팬들의 설렘, 감동도 생생하게 보여준다.

다큐는 일본 공연 즈음에서 막을 내리지만 밴드는 여전히 현재진행중이다. 개인적인 의견으로는 밴드가 스스로를 향수어린 7080밴드로 남을지 아니면 21세기에도 여전히 흥행력을 가지고 있는 밴드임을 증명할지를 고민하고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대중음악은 21세기에 그리 많은 발전이 없어 음악계는 여전히 U2나 Prince와 같은 뮤지션 들로부터 수혈을 받아야 할 상황이니 만큼 후자를 택해야 하지 않을까?

커밋이 부른 “Once In A Lifetime”

Kermit puppet.jpg
By Pattie – https://www.flickr.com/photos/piratealice/5105827005/, Public Domain, Link

전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개구리 커밋이 토킹헤즈의 “Once In A Lifetime”을 불렀다. 밴드의 유명한 뮤직비디오를 그대로 흉내내면서. ㅋㅋㅋㅋㅋㅋ

전 세계에서 제일 유명한 개구리. 누구도 부정할 수 없는, 머펫 중 가장 유명한 존재. 머펫 세계의 유재석. 더 머펫 쇼의 스타이자 진행자이며, 세서미 스트리트에도 오랫동안 주연급으로 출연했으며, 짐 헨슨 컴퍼니의 로고이기도 했고 극장판에서도 주인공이고… 하여간 절대적인 주인공. 포켓몬으로 치면 피카츄, 디지몬으로 치면 아구몬, 루니 툰으로 치면 벅스 버니.(출처)

뮤직비디오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