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censed To Ill

A painting of the rear end of a Boeing 727, in an American Airlines livery. The "Beastie Boys" logo is printed on its tai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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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7년 3월 7일 Beastie Boys의 데뷔 앨범 “Licensed To Ill”이 빌보드 탑200 차트 정상에 올라 7주간 머물렀다. 1986년 11월 15일 발매된 이 앨범은 최초로 빌보드 차트 정상을 차지한 랩LP로써 빌보드 R&B 차트 2위까지 오르기도 했다. Rick Rubin과 Beastie Boys가 프로듀스한 이 앨범은 1985년 초에서 1986년 말까지 뉴욕에 있는 Chung King House Of Metal에서 녹음됐다. 이 앨범은 당시 막 인기를 얻고 있던 힙합, 랩 등과 락음악의 샘플링을 혼합하여 이 서브장르를 메인스트림으로 끌어올리는데 기여하였다. 발매되자마자 큰 인기를 끌어 첫 2주 동안 백만 장이 팔려나간 이 앨범에서는 많은 히트곡이 쏟아져 나왔는데 “(You Gotta) Fight For Your Right (To Party)”과 “Brass Monkey” 등이 특히 큰 인기를 끌었다. “No Sleep To Brooklyn”에서는 Slayer의 Kerry King이 가세하여 리드기타를 연주하였고 뮤직비디오에서도 글램메탈을 패러디하는 식으로 등장한다. 이 제목은 Motörhead의 “No Sleep ‘til Hammersmith” 앨범에 대한 조롱이다. King이 이 곡에 참여한 것은 당시 Rick Rubin이 Slayer의 앨범도 프로듀스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룹은 원래 이 앨범의 제목을 “Don’t Be A Faggot”으로 하고 싶어 했다. 하지만 컬럼비아 레코드사는 이 제목이 동성애 혐오적이라는 이유로 거절했다(후에 밴드의 멤버 Adam Horovitz는 그 제목에 대해 사과했다). 앨범의 유명한 커버는 David Gambale (aka “World B. Omes”)의 작품인데 산허리에 추락하고 있는 보잉 727 제트기의 일러스트레이션이다.(실제로 1986년 3월 멕시코의 시에라마드레오리엔탈 산에서 보잉 727 추락사고가 있었다) 비행기의 끝부분에 등록번호 “3MTA3”이 적혀 있는데, 이는 사실 트릭으로 거울에 비추어 보면 “EAT ME”를 의미하는 일종의 암호다.

Love Supreme

이코노미스트에서 지금으로부터 50년 전에 발매된 재즈 명반 “Love Supreme”에 관한 칼럼이 게재되어 여기에 번역해서 올려둔다.

A blue-tinted black-and-white photograph of Coltrane's face looking to the left, with the logo "A Love Supreme/John Coltrane" written in white bold Arial across the top.
John Coltrane – A Love Supreme” by Source. Licensed under Wikipedia.

재즈에서 가장 유명한 징과 함께 시작한다. 몇 초 후, 더블베이스가 4노트의 “Love Supreme” 주제를 이어받는다. John Coltrane은 강렬한 색소폰 솔로를 시작한다. 그리고 30분 뒤, 모든 것이 끝난다. 그러나 여전히 50년 전에 그랬던 것처럼 신선하게 들린다.

재즈의 가장 위대한 인물 중 하나였던 Coltrane은 1967년 그의 나이 40살에 간암으로 사망하였다. 그는 간혹 한 해에 여러 장의 앨범을 녹음하기도 하는 다작의 아티스트였다. 1965년 2월에 발매된 “A Love Supreme”은 그의 가장 유명한 작품이자 비평가로부터 가장 큰 주목을 받았던 작품이다.

“Supreme”에 관해서는 과장이 좀 있다. 이 작품은 그 시기의 Coltrane의 다른 작품들보다 더 압도적으로 뛰어난 작품은 아니다.(예를 들어 “Sun Ship”이나 “Crescent”와 같은 작품들) 그 명성은 아마도 몇몇 다른 이유 때문일 것이다. 첫째, 이 작품은 1960년대 중반의 그의 작품 중에서 가장 접근하기 쉽다. “Supreme”은 Coltrane의 기술적인 힘이 최고조에 달한 시기에 발매되었다. 그러나 또한 그가 조성(調聲)에 흥미를 잃기 시작한 시기이기도 하다. 이 시기의 그의 앨범 다수는 재즈 클럽에서의 “해프닝”의 결과물로써 고도로 추상적이다. 익숙하지 않은 귀로는 몇몇은 거의 감상하기 어렵다.(“Live at the Village Vanguard Again!”을 시도해보라) “Supreme”은 숙달된 기술과 1960년대 Coltrane의 지성주의가 잘 결합되어 있다. 그러나 또한 상당히 이지리스닝인 것이다.

“Supreme”은 또한 Coltrane에게 있어 가장 종교적인 앨범이다. 그리고 이러한 이유로 가장 헌신적인 재즈 팬이 아닐지라도 그들이 진정으로 아는 것을 느낄 수 없는 이들에조차 어떤 영감을 준다. 그는 요절했다. 그는 맹렬하게 연습했는데, 하루 12시간 씩 했다고 하고, 이는 아마도 가장 기술적으로 많은 성취를 이룬 색소폰 연주자가 되게 하였을 것이다. Charlie Parker나 Miles Davis와 같은 다른 재즈 거인들과 달리 그에게는 섹스와 관련된 짓궂은 일화가 거의 없다. 그래서 Coltrane의 팬들은 이 사람에 대해 아는 바를 조각조각 모아야 한다.

1950년대 후반의 마약중독에서 회복되는 동안 Coltrane은 깊은 신앙심을 갖게 되었고 “Supreme”은 명백하게 종교적인 함축이다. 라이너노트에서 그는 이 작업을 “그에게 바치는 변변치 않은 제물”이라고 칭했다. 첫 악장 “Acknowledgment”에서 Coltrane은 가스펠과도 같은 투로 “A Love Supreme”이란 가사를 되뇐다.(어떤 사람들은 그가 실은 “Allah Supreme”이라고 말하고 있다고 여긴다. – 진지한 재즈 학자들조차 전적으로 믿을 만 하다고 여기지는 않는 주장)

제 4악장 “Psalm”은 Coltrane이 그의 색소폰과 말을 “주고받은” 시에 대한 낭송이다. 당신은 여기에서 그 대화를 들을 수 있다(꽤 감동적이다). 이 작품은 빛나는 색채로 끝을 맺는다. Coltrane은 두 번째 색소폰으로 오버덥 작업을 했다.

마지막으로 “Supreme”은 발매된 그 맥락 때문에 중요하다. Coltrane은 발매 이후 몇 달 후에 사망한다. 이후 어떤 색소폰 주자도 그 정도의 인기와 비평적 찬사를 얻지 못했다. “Supreme”이 나올 즈음 재즈의 인기를 폭락하기 시작했다. 락밴드가 치명적인 위협이었다. 디너 재킷과 작은 클럽이 곁들여진 재즈는 앰프가 가미된 기타와 화려한 의상에 비해서 매우 쿨하지 않은 것이 된 것처럼 보였다. 많은 재즈 뮤지션들이 새롭고 어린 청중에게 어필하기 위해 극적으로 자신들의 스타일을 바꿨다. “Supreme”이 나온 3년 후, Davis는 “Miles in the Sky”(명백하게 비틀즈에 대한 고개 끄덕거림이 담긴)이라는 앨범을 내놓는다. 그는 Jimi Hendrix와 함께 연주했다. Herbie Hancock은 전통적인 재즈를 거의 전적으로 생략하였다. 일그러뜨린 기타 사운드, 전자 베이스들, 락 리듬, 그리고 큰 썬그래스가 음악적인 이행기에 함께 했다.

그러한 의미에서 “Supreme”에 대한 광범위한 숭배는 부분적으로 지금 의미하는 것에 의해 설명된다. 그것은 대부분의 사람들이 대중적으로 어필했던 “적정한” 재즈라 여기는 마지막 앨범이었다. 그것은 죽어가는, 그리고 다시는 회복되지 않은 한 예술 형식의 최후의 일제사격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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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urmur

A train trestle covered in thick kudzu with "R.E.M. / MURMUR" written in blue
R.E.M. – Murmur” by Source. Licensed under Fair use via Wikipedia.

Murmur는 미국의 칼리지락 밴드 R.E.M.이 1983년 내놓은 그들의 데뷔앨범이다. 이 앨범은 싱어 Michael Stipe의 암호와도 같은 가사(예를 들어 Talk About The Passion은 집 없는 이들에 관한 노래라고는 하는데 가사만 읽어봐서는 짐작하기 어렵다), 기타 Peter Buck의 쟁글거리는 연주 스타일, 베이스 Mike Mills의 멜로딕한 베이스라인 등 R.E.M.을 특징짓는 모든 요소를 골고루 보여준 작품이다. 밴드는 이 앨범을 1982년 12월부터 녹음하기 시작했다. 프로듀서로는 Stephen Hague를 기용하였는데 그의 기술적 완벽성에 대한 강조는 밴드의 성격과는 그리 맞지 않았다고 한다. 예를 들어 그는 “Catapult” 트랙에서 드러머 Bill Berry의 기를 꺾기도 했고 보스턴의 싱크로 사운드 스튜디오에서 그 트랙을 완성했다. 심지어 그는 밴드의 허락 없이 이 트랙에 키보드 파트를 보태기도 했다. Orchestral Manoeuvres in the Dark, Pet Shop Boys, New Order 등과 일한 경력의 프로듀서였던 그로서는 당연한 일이겠으나, 어쨌든 이에 화가 난 밴드는 이전에 밴드와 함께 일했던 보다 어쿠스틱 친화적인 프로듀서 Mitch Easter와 함께 작업하게 해달라고 레이블인 I.R.S. 에 요청했고 레이블은 시험적으로 함께 일하는 것을 허락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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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itch michael scott” by Shot by Robert Toren 1986 San Francisco, California – English Wikipedia. Licensed under Attribution via Wikimedia Commons.

밴드는 북캘리포니아로 가서 Easter와 다른 프로듀싱 파트너 Don Dixon과 함께 “Pilgrimage”를 녹음했다. 이 트랙을 들어본 레이블은 그들과 함께 녹음하는 것을 허락했다. 밴드는 1983년 1월 북캘리포니아에 있는 리플렉션 스튜디오에 들어가서 이전의 순회공연에서 부른 많은 곡들을 녹음하기 시작했다. Hague와의 나쁜 추억 때문에 밴드는 락뮤직의 클리쉐와도 같은 기타 솔로랄지 당시 인기 있었던 신디싸이저의 사용을 거부했다. Easter와 Dixon은 많은 부분에서 불간섭 정책을 취했으며 다만 보컬이 수준 이하로 여겨질 때에만 재녹음을 지시했다. 이러한 작업의 결과 Murmur는 미국 얼터너티브락의 보다 조용하고 내면적인 부분을 반영하는 앨범으로 특징지을 수 있게 되었다. 발매된 해에 앨범은 빌보드 앨범 차트 36위까지 올랐다. 첫 싱글 “Radio Free Europe”의 재녹음 버전은 싱글 차트 78위까지 올랐다. 하지만 전체적인 앨범 판매량은 비평적 찬사에 못 미쳐 약 20만 장 가량 팔렸다. 앨범은 1991년에 가서야 50만 장이 팔려 골드 앨범이 될 수 있었다.

트랙리스트

Side one
1.”Radio Free Europe” – 4:06
2.”Pilgrimage” – 4:30
3.”Laughing” – 3:57
4.”Talk About the Passion” – 3:23
5.”Moral Kiosk” – 3:31
6.”Perfect Circle” – 3:29

Side two
7.”Catapult” – 3:55
8.”Sitting Still” – 3:17
9.”9-9″ – 3:03
10.”Shaking Through” – 4:30
11.”We Walk” – 3:02
12.”West of the Fields” (Berry, Buck, Mills, Stipe, and Neil Bogan) – 3:17

Michael Jackson의 머리카락이 불붙었던 사고

Michael Jackson이 그래미상 시상식을 휩쓸던 1984년 2월 28일 The Jacksons가 출연한 펩시 광고가 방송을 타기 시작했다. “Beat It”, “Say, Say, Say”를 감독한 바 있는 Bob Giraldi가 감독을 맡은 이 광고는 1984년 1월 27일 로스엔젤레스에 있는 슈라인 오디토리움(Shrine Auditorium)에서 촬영됐다. 이 촬영에서는 사고가 있었는데 발광탄이 잘못 작동하는 바람에 Michael Jackson의 머리카락에 불이 붙었다. 그는 바로 병원으로 수송되었고 2도 화상을 입어 치료를 받게 되었다. 펩시는 Jackson가 합의를 통해 150만 달러의 손해배상금을 지급했고 Jackson은 이 돈을 그의 부상을 치료했던 브롯맨(Brotman) 의료센터에 기부했다. 당시 그 광고의 제작을 맡은 광고기획사의 임원이었던 Phil Dusenberry는 2005년의 저작 Then We Set His Hair on Fire: Insights and Accidents from a Hall of Fame Career in Advertising에 이 사고를 언급하기도 했다.

Kyri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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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r. Mister“. Licensed under Wikipedia.

1986년 3월 1일 미국의 팝/락밴드 Mr. Mister가 부른 “Kyrie”가 빌보드 핫100 차트 정상에 올라 2주간 머물렀다. 1985년 말 발매된 이 싱글은 밴드의 대표 앨범 Welcome to the Real World의 수록곡이다. 이 곡은 또한 빌보드 락 차트 정상에 1주간 머물렀고 영국 차트에는 1986년 4월 11위까지 올랐다. “Kyrie”의 가사는 작사가 John Lang이 썼다. 작곡은 Richard Page와 Steve George의 합작의 결과물인데. 이들이 Adam Ant와 함께 순회공연을 하는 도중에 만든 작품이다.

“Kýrie, eléison, down the road that I must travel
Kýrie, eléison, through the darkness of the night”

후렴구에 등장하는 Kýrie, eléison은 ‘신이시여 자비를.’이라는 뜻의 그리스어로 기독교의 많은 예배 의식에 쓰이는 문구다. 이런 후렴구에서 짐작할 수 있듯이 Page에 따르면 곡 자체가 하나의 기도라고 한다. 일설에 따르면 싱어이자 작곡가인 Richard Page가 불의의 공격을 받아 병원에 누워 있는 동안에 쓴 것으로 알려졌으나, 작사가 John Lang은 그런 공격을 받은 이는 자신이고 그 공격과 노래는 아무 상관이 없다고 말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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謹弔 Steve Stran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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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isage cover” by The cover art can be obtained from Polydor Records.. Licensed under Wikipedia.

1980년대 Synth Pop 의 초석을 다진 팝그룹 Visage의 리드싱어이자 프론트맨이었던 Steve Strange가 최근 유명을 달리하셨다. 최근 이집트의 샴엘쉐이크(Sharm el-Sheikh)에서 머물렀던 그는 지난 2월 12일 심장마비 증세를 보였고 병원으로 옮겨졌으나 하루만에 사망하였다. 그의 레코드 회사였던 오거스트데이 레코딩스의 레이블 매니저인 Marc Green이 그의 죽음을 공식적으로 확인하였다. 트위터에서는 Boy George, Billy Idol, Samantha Fox, Ultravox, Matyn Ware, Holly Johnson, Marc Almond, Pet Shop Boys 등 수많은 팝스타들이 그의 죽음을 애도하는 트윗을 남겼다. 특히 Spandau Ballet은 “그가 없었다면 자신들의 음악도 없었을 것”이라며 트윗을 하는 날 예정된 “공연을 Steve Strange에게 헌사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최근 신보 Shameless Fashion을 내놓으며 화려했던 전성기를 연상시키는 음악을 신세대에 선보였고 트위터에서도 재기 넘치는 트윗을 남기기도 했던 그인지라 더욱 아쉬움을 더하는 죽음이라 하지 않을 수 없다. 부디 영면하시길.

The Guardian의 애도 칼럼


Visage 의 대표곡 Fade To Grey

Straight Outta Compton

The members of N.W.A. look down to the camera and Eazy-E points a gun to i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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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raight Outta Compton은 미국의 힙합 그룹 N.W.A,의 첫 스튜디오 앨범으로 1988년 8월 8일, 그룹의 멤버인 Eazy-E의 레코드 레이블인 Ruthless 레코드사를 통해 발매되었다. 타이틀의 Compton은 그룹 멤버들의 고향인 캘리포니아의 Compton시를 의미한다. 프러덕션은 Dr. Dre이 DJ Yella와 Arabian Prince 등의 도움을 받아 진행했다.1 이 앨범은 지극히 외설적이고 폭력적인 표현으로2 점철되어 있는, 소위 “갱스터랩”의 선구적인 앨범으로 간주된다. 그리고 이러한 경향은 웨스트코스트힙합(West Coast hip hop)의 특징을 형성시키는 데 기여했다. 하지만 이 앨범은 이러한 상업적 성공으로 이어지기에는 어려운 제약조건에도 상업적으로도 크게 성공했다. 이 앨범은 방송의 도움이 없이도 – 방송에 나갈 처지가 안 되니.. 가사를 죄다 삑~ 처리할 수도 없고 – 300만장 이상이 팔리는 성공을 거두었다. 이런 성공은 사실 FBI가 앨범 트랙 중 하나인 “Fuck tha Police”에 대한 불편한 심기를 담은 편지를 레코드사에 보낸 사실 등이 오히려 광고가 된 측면도 있다. 가사적인 측면에서 흑인의 흑인에 대한 범죄를 미화한 측면이 있는 평가도 있지만 전반적으로는 흑인들의 도시 생활의 현실을 풍자했다는 평가도 우세하다. 앨범은 돈만 밝히는 여성에 대한 비난도 있는가 하면 – 물론 성차별적인 뉘앙스도 있다 – , 앞에서는 “노 드럭”을 외치며 쇼가 끝나면 마약을 찾는 위선적인 뮤지션에 대한 풍자, 방송국의 검열로 인한 뮤지션들의 어려움 등의 내용을 담고 있다.

“내가 들은 중 가장 뛰어난 랩 레코드입니다. 물론 사람들이 왜 가사에 불쾌함을 느끼는지 알아요. 하지만 공인으로서가 아니라 한 인간으로서 나는 전혀 불쾌하지 않았어요.” Sinéad O’Connor

Express Yourself 뮤직비디오

  1. 당시로서는 최고 수준의 프러덕션이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
  2. 가사는 주로 Ice Cube와 MC Ren이 만들었다

Graham Parker and the Rumour – Squeezing Out Sparks(197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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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queezing out sparks cover“. Licensed under Wikipedia.

Squeezing Out Sparks는 Graham Parker and the Rumour가 1979년 내놓은 그들의 네 번째 공식 앨범이다. The Rumour는 사실상 Graham Parker의 백업 밴드의 성격이 강했기 때문에 사실상의 Graham의 솔로앨범으로 간주되기도 한다. Graham Parker는 Elvis Costello, Joe Jackson 등과 함께 뉴웨이브 운동의 초기 주요 뮤지션으로 자리매김하고 있지만 우리나라에서의 지명도는 마이너인 Elvis Costello 만도 못한 것이 현실이다. 하지만 초기 뉴웨이브 뮤직의 정수를 관통하고 있는 이 앨범은 롤링스톤誌가 선정한 ‘500개의 위대한 앨범’에서 335위에 선정될 정도로 명반으로 인정받고 있다. 이 앨범은 락앤롤의 단순함의 미학을 잘 구현한 앨범이다. 타이틀곡 Discovering Japan을 비롯하여 이어지는 Local Girls, 그리고 Protection 등의 앨범 트랙들은 심오한 멜로디나 현학적인 연주가 없이도 락앤롤을 감칠 맛나게 즐길 수 있게 만드는 매력이 있다. 70년대의 다소는 규모가 지나치게 커져버린 락앤롤의 두터운 양념을 제거시켜 오히려 락앤롤의 본질을 맛보게 해주는 단순함의 미학이 구현되어 있다고 할 수도 있을 것이다. 이러한 단순화는 Graham Parker 자신의 디스코그래피에서도 구현되었다는 점도 흥미롭다. 즉, 당초 Graham Parker의 음악은 쏘울 뮤직의 영향이 강했던 지라 관악기 섹션이 풍부하게 가미되었었지만 이 앨범의 프로듀서인 Jack Nitzsche 는 보다 원초적인 소리를 선호했다. 우연히도 당시의 인기 펑크 밴드인 The Clash는 그들의 사운드를 보다 풍부하게 하려는 등 반대의 과정을 거치고 있었다. 그래서 The Rumour의 리듬앤블루스 섹션의 연주자들은 The Clash의 세 번째 앨범 London Calling의 녹음에 가세하게 되었다. 두 명반의 조금은 다른 길이 흥미롭게 교차되는 지점이었던 셈이다. 2001년 이 앨범은 두 개의 라이브 트랙과 함께 – 그 중 하나는 Jackson 5의 I Want You Back의 리메이크 – 영국에서 재발매 되었다.

Local Girls 뮤직비디오 보기

(I’ve Had) The Time Of My Lif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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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ill Medley & Jennifer Warnes – (I’ve Had) The Time of My Life alternate single cover“. Licensed under Wikipedia.

1987년 11월 28일 Bill Medley와 Jennifer Warnes가 함께 부른 “(I’ve Had) The Time Of My Life”가 빌보드 핫100차트 1위에 올라 1주간 머물렀다. 어덜트컨템포러리 차트에는 간은 해 11월 21일 1위에 올라 4주간 머물렀다. Franke Previte, John DeNicola, Donald Markowitz가 함께 만든 이 곡은 영화 “Dirty Dancing”의 사운드트랙에서 가장 상업적으로 성공한 곡이 되었다. 이 영화의 음악을 담당하게 된 Jimmy Ienner는 예전에 자신이 수하에 두고 있었던 락밴드 Franke & The Knockouts의 리더 Franke Previte에게 작품을 의뢰했다. 처음에 Previte는 밴드의 레코드 계약을 추진하고 있었기에 이 제안을 거절했는데 Ienner의 지속적인 요구에 마침내 제안을 수락했다. 그리고 그는 역시 사운드트랙에 수록된 “Hungry Eyes”를 비롯한 몇 곡을 작곡하였다. 노래를 만든 후 Previte는 어떻게 하모니가 이루어지는지를 선보이기 위해 자신과 Rachele Capeli가 함께 부른 데모를 만들었다. 후에 이 곡을 부르는 이들로 Donna Summer와 Joe Esposito가 지목되었지만 그들은 이 제안을 거절하고 최종 가수는 Bill Medley와 Jennifer Warnes로 정해졌다. 한편 이 곡이 피날레를 장식하게 된 것은 안무가 Kenny Ortega와 Miranda Garrison의 결정이었다. 1987년 9월 싱글로 발매된 후 이 곡은 빠르게 차트에 진입하였다. 9월 26일 핫100 차트 73위에 데뷔한 이후 9주 만에 차트 정상을 차지했다. 영화 역시 큰 성공을 거두었고 앨범은 전 세계적으로 3천2백만 장이 넘게 팔렸다. “(I’ve Had) The Time Of My Life”는 아카데미상 시상식에서 베스트오리지널송을 수상하는 등 수많은 영화제 관련 상을 수상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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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irty Loops 내한 공연 後記

12월 첫날인 오늘 한해의 마지막달이라는 사실을 상기시키듯 서울 한복판에 짧은 폭설이 쏟아졌지만, 11월의 마지막 날인 어제 Dirty Loops의 공연이 있었던 홍대 앞에는 부슬부슬 가랑비가 내렸다. 공연장인 V홀은 홍대의 중심가 상가의 지하3층에 위치해있었다. ‘화재 등 사고가 발생하면 어떻게 대처할 수 있을까’하는 의문이 드는 장소였다(한국인 특유의 안전 불감증으로 이내 이런 불안감은 사라졌다). 공연장을 중심으로 좁고 길게 스테이지, 스탠딩, 좌석 등이 배치되어 있는 구조였다. 스탠딩 티켓은 구매 순서대로 입장을 시키겠다는 것이 당초의 약속이었으나 이런 약속이 지켜질 것이라 생각도 하지 않았고 공연장 도착도 공연시간인 6시에 겨우 30분 전인지라 이미 앞쪽은 관객들로 채워져 있었다.

어수선한 분위기 속에 들려오는 음악은 예열 음악은 Steely Dan. 역시 째즈-휴전 계열의 뮤지션의 공연이란 것을 감안한 것일까? 기다리는 와중에 들려오는 두 백인 청년의 대화가 인상적이었다. 마크 저커버그를 닮은 친구가 Dirty Loops를 모르는 듯한 청년에게 그들에 대해 소개를 하고 있었다. 저커버그는 밴드의 싱어가 “젊은 프레디 머큐리”라고 칭찬했다. 그러자 친구가 “프레디 머큐리가 누구냐”고 반문했고 놀란 저커버그는 “퀴이이인~~”하고 면박을 주었다. 각설하고 Tenacious D의 내한 공연 소식 등이 스크린에 몇 개 소개된 후, 공연은 거의 정확히 6시에 시작되었다. 밴드의 등장음악은 좀 생뚱맞게 80년대 액션 드라마 맥가이버의 테마 음악. 무대에는 3인조 이외에 추가적으로 신디싸이저 연주자 한 명이 더 있었다.

연주자가 무대에 올라오자마자 시작된 공연은 잠깐 동안의 멤버의 인사말과 농담들을 제외하고는 – 보컬 조나 닐슨의 소개에 의하면 어제의 서울 공연이 그들 투어의 마지막 공연이었다고 한다 – 한 시간을 조금 넘는 시간 동안 빽빽하게 이어졌다. 그들의 데뷔 앨범 Loopified를 중심으로 한 선곡에 새로운 프로젝트의 신곡도 섞여 있었다. 사운드는 베이스가 강조되는 와중에 간간히 벙벙거리는 소리가 들렸고 보컬이 간혹 묻히는 상황을 제외하고는 전체적으로 맘에 들었다. 연주와 보컬은 스튜디오 앨범을 그대로 옮겨 놓은 듯이 안정적이었다고 할 수 있을 정도였다(물론 이런 상황은 이제는 프로그래밍이라고 표현하며 정당화되는 신디싸이저 등을 활용한 사전녹음도 한몫 할 것이지만).

간간히 들려주는 각각의 멤버들의 즉흥 연주는 역시 세션맨 출신이라는 경력에 어울리게 신기에 가까운 연주들이었다. 애초에 이들의 공연을 기다리며 기대한 즉흥 연주는 Hit Me 뮤직비디오에서 6현의 베이스를 자유자재로 놀려대는 장면이 인상적이었던 베이스 주자 헨릭 린더의 연주였으나 – 물론 그의 현란한 베이스 연주는 아주 맘에 들었다 – 정말 맘에 들었던 즉흥 연주는 드러머 아론 멜러가드의 드럼 연주였다. 통상의 배치와 달리 무대 오른 쪽 상단에 위치한 드럼 키트를 거의 다 박살내버리겠다는 듯이 두드려대는 신명나는 드러밍에 감탄할 수밖에 없었던 상황. 역시 드럼머쉰보다는 이러한 드러밍이 더욱 음악을 신명나게 하는 요소라는 사실을 다시 한 번 일깨워주는 장면이었다.

앞서 이야기했듯이 안정적인 퍼포먼스가 이어진 것에는 당연히 보컬의 역할이 컸다. 키보드와 보컬을 맡은 조나 닐슨은 이번 서울 공연이 투어의 마지막 공연이라고 말했었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거의 막힘없는 놀라운 보컬 실력을 공연 내내 유지했다. 특히 머라이어 캐리의 특기로 유명한 돌고래 소리를 거의 어려움 없이 계속 뽑아낼 정도로 인상적인 성대의 소유자였다(지난 번 머라이어 캐리의 공연에 실망했던 이들이 왔으면 좋았을 것을). 한 시간 정도 공연을 하고 내려간 이들은 관중의 앵콜 연호에 크게 애태우지 않고 1분여 만에 바로 올라와 앵콜곡을 선보였다. 마지막 곡은 예상대로 그들의 최대 히트곡 Hit Me.

오늘은 당초 어제로 예정되었던 CHVRCHES의 공연이 있을 예정인 만큼 시절이 좋아져서 데뷔 앨범을 내놓은 밴드들이 실시간으로 단독 내한 공연을 가지게 되고 외국에서의 공연과 크게 다르지 않은 밴드 구성을 유지할 수 있게 된 것도 – 물론 이럴 수 있는 것은 신디싸이저의 덕택도 크지만 – 한국의 음악 구매력이 어느 정도는 해외 공급업자의 요구를 충족시키기 때문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해봤다. 어쨌든 당초 처치스와 더티룹스와의 공연 스케줄이 겹칠 때 잠시 고민하다가 더티룹스로 선택한 이유는 그들의 라이브가 더 박력 있을 것이라 생각했기 때문이고 이러한 기대를 충족시켜주었다는 점에서 그들의 공연에 별 다섯 개를 주고 싶다. 2집에서는 과연 어떤 모습을 보여줄지 기대되는 밴드 중 하나다.


예상대로 누군가 어제 공연의 비디오를 찍어 이미 유투브에 올렸다(신인이라 그런지 비디오 촬영을 전혀 말리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