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Lexicon of Lo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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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The cover art can be obtained from the record label., Fair use, Link

1980년대 영국 신쓰팝이 빚어낸 최고의 작품 중 하나다. 아니 어떤 면에서는 신쓰팝을 넘어서 80년대 대중문화가 만들어낸 최고의 상품 중 하나라고 생각한다. 시대의 아이콘이었지만, 오히려 너무나 신쓰팝스럽지 않았고 너무나 범세계적이었기에, 하나의 장르로 규정할 수 없는 호환성을 지녔기에 상대적으로 간과된 느낌의 작품이다.

데뷔 앨범이라고는 믿어지지 않는 완성도를 자랑하는 이 앨범의 곡은 밴드 ABC의 공동 작업물이다. 애초 밴드의 기타를 맡고 있던 마크 화이트(Mark White)은 색소폰 연주자 스티븐 싱글턴(Stephen Singleton)과 함께 Vice Versa라는 밴드로 활동하고 있었는데 마틴 프라이(Martin Fry)가 이들과 결합하여 밴드 이름을 ABC로 바꿨다.1

밴드의 싱어 마틴 프라이는 곡을 쓰면서 “펑크(punk)의 태도와 디스코의 세련미”를 융합하고 싶었다고 밝혔다고 한다. 프로듀서는 Buggles의 프론트맨이었던 트레버 혼(Trevor Horn)이다. Video Killed the Radio Star라는 희대의 명곡을 만들었던 혼이 밴드 생활을 접고 프로듀서로 나선 계기는 그의 회고록에 자세히 서술되어 있다.

이미 Dollar를 프로듀스한 바 있는 혼과 그의 아내 질 싱클레어(Jill Sinclair)는2 어느 날 저녁 TV 앞에 앉아서 Top of the Pops를 감상하고 있었다. 그 프로에서는 ABC라는 이름의 밴드가 등장하여 Tears Are Not Enough라는 곡의 공연을 펼쳤다. 질은 혼에게 “이 밴드가 당신이 다음에 프로듀스해야 할 밴드다.”라고 단언했다.3

포노그램(Phonogram)과 계약을 맺은 ABC는 Tears Are Not Enough를 1981년 첫 번째 싱글로 내놓았고 막 차트에서 성공의 맛을 보고 있는 상황이었다. 그리고 곧 Poison Arrow가 다음 주자로 등장할 즈음이었다. 그리고 혼이 후에 알게 됐는데 ABC가 그는 그들의 프로듀서로 쓸 사람 중 만난 열네 번째 후보 중 하나였다.

트레버 혼이 이 앨범의 프로듀서를 맡게 된 결정적인 계기는 흥미롭게도 혼과 밴드 멤버들의 서브컬처에 대한 애정이 일치했기 때문이라고 한다. 혼의 회상에 따르면 그 서브컬처는 레슬링, 총, 문신이었다. 이에 대한 그들의 취향이 비슷했다는 이유로 그들이 혼을 프로듀서로 선택했다는 것이다. 기이하고 긱(geek)스러운 스토리다.4

첫 작업으로 혼은 Poison Arrow를 녹음한 후 트랙에서 어떠한 흠결도 발견하지 못했으나 뭔가 찝찝함이 남았다. 그는 “Chic을 원했는데 영국의 인디 밴드처럼 들렸다”고 회상했다. 그에게 “오케이로는 충분하지 않았다”. 그래서 뭔가 다른 시도를 하고 싶었다. 그래서 그는 정확하고 댄서블한 사운드의 드럼 연주를 위해 TR-808 드럼머신을 사용했다.5


트레버 혼 회고록(127쪽)의 오타. 1992가 아니라 1982다.

그리고 이를 다시 실력파 드러머인 데이빗 팔머(David Palmer)에게 연주하게 했다. 혼은 그에게 “그냥 똑같이 연주해라. 드럼머신이 하는 그대로 연주해달라”라고 요구했고 그는 그렇게 했다. 혼은 사람들이 춤을 출 때 그 비트의 반복성과 정확성에 의존하기 때문에 이렇게 작업했고 데비잇은 그런 혼의 요구에 적합한 실력파 드러머였다.6

혼은 키보드 작업을 위해서 앤 더들리(Anne Dudley)를 데려왔다. 그는 멋진 연주 실력을 보여주었다. Poison Arrow의 최종 믹스는 훌륭했다. 탑오브더팝스에서는 심지어 사회자가 이 곡을 트레버 혼이 프로듀스했다고 소개하기까지 한다.7 Poison Arrow가 좋은 결과물을 낸 덕분에 혼은 밴드와 나머지 트랙들도 함께 프로듀스하기로 계약했다.8

이 앨범은 또한 신쓰팝이라는 장르의 앨범에서도 예외적으로 대형 오케스트라를 사용한 앨범이다. 오케스트라 작업은 웨스트엔드에 있는 워너의 ‘디 레인 리아(De Lane Lea) 스튜디오’에서 이루어졌다. 전반적인 작업은 혼과 상의 하에 앤이 도맡았다. 그 외에 당시에는 혁신적인 신디사이저인 Fairlight CMI 프로그래밍도 도입되었다.9

이 앨범을 작업하면서 파생된 하나의 프로젝트밴드가 있다. 바로 트레버 혼, 앤 더들리, 엔지니어링을 맡은 개리 랑간(Gary Langan), Fairlight CMI 개발자 J. J. 젠찰릭(J. J. Jeczalik)이 앨범 발매 1년 후 의기투합하여 결성한 Art of Noise다. 그리고 이 작업들은 ZTT 레이블의 초석이 되었다. 한 앨범이 또 하나의 멋진 밴드와 레이블을 탄생시킨 것이다.10

또한 개인적으로는 이 앨범의 커버를 좋아한다. 마치 크라임스릴러 연극의 한 장면과 같이 연출된 이 앨범 커버의 사진은 제레드 맨코위츠(Gered Mankowitz)의 작품이다. 앞 커버의 사진이 마틴이 여인을 껴안은 채 누군가에게 총을 겨누는 장면인데 후면을 보면 나머지 멤버들이11 이 연극의 스텝으로 분장하고 찍은 사진이어서 마음에 든다.

2009년 ABC는 – 1982년 당시의 멤버로는 마틴 프라이 홀로 – 런던의 로얄알버트홀(Royal Albert Hall)에서 전체 앨범을 공연했다. 이 공연에서는 앤 더들리의 지휘 하에 BBC콘서트오케스트라(BBC Concert Orchestra)가 협연하였다. 트레버 혼은 무대인사로 등장하였다. 이후 몇차례 오케스트라와 함께 영국 각지에서 앨범 전체 공연을 선보였다.

1. “Show Me”
2. “Poison Arrow”
3. “Many Happy Returns”
4. “Tears Are Not Enough”
5. “Valentine’s Day”
6. “The Look of Love” (part one)
7. “Date Stamp”
8. “All of My Heart”
9. “4 Ever 2 Gether”
10. “The Look of Love” (part four)

  1. 마크는 90년대 초반까지, 싱글턴은 80년대 중반까지 밴드에 남아있었고, 이후 사실상 밴드는 마틴의 일인밴드가 되었다
  2. Buggles가 해체될 당시 남편 트레버 혼의 매니저로 일하기 시작했다. 그녀는 Horn이 음악 제작에 집중하도록 설득했고 Dollar, ABC 등과 그의 첫 번째 제작 계약을 맺었다. 그리고 ZTT 레코드의 공동 설립자가 되었다.
  3. Adventures in Modern Recording, 108p
  4. 같은책, 109p
  5. 같은책, 111p
  6. 같은책, 112p
  7. 아래 뮤직비디오 참조
  8. 같은책, 114p
  9. 같은책, 121p
  10. 이 레이블은 Frankie Goes to Hollywood, Propaganda 등의 앨범을 내놓으며 영국 음악의 새로운 중흥기를 이끌었다.
  11. 등장인물은 마크 화이트(Mark White), 스티븐 싱글턴(Stephen Singleton), 마크 리클리(Mark Lickley)로 추측된다

우리는 어떻게 만들었나

The Lexicon of Love라는 신쓰팝의 명반이 어떻게 만들어졌는지에 대해 ABC의 멤버인 당사자들이 쓴 글을 삼번함(원문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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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BC-Lexicon” by The cover art can be obtained from the record label.. Licensed under Wikipedia.

Martin Fry, 싱어송라이터

1982년에 디스코는 입에 올려서는 안 되는 말이었다. 하지만 난 Chic 앨범의 선율들을, 그리고 Earth, Wind &Fire의 모든 음악세계를 사랑했다. The Cure와 Joy Division과 같은 이들과 융화한 것은 우리가 추구했던 것이었다. – 우리 기타리스트였던 Mark White는 한 영화의 사운드트랙의 분위기를 부여하고 싶어 했다. 매우 극장과 같은 분위기의 표지에 끝내주는 고전 영화인 The Red Shoes의 터치를 가미하기도 했다. 실제보다 더 강렬하고 감정적이었다. The Lexicon of Love는 어느 정도는 그러했다. 난 팔세토 창법을 많이 썼다. 부분적으로 사랑에 빠진 것의 롤러코스터 탑승을 – 우쭐함과 절망 – 전달하기 위해서.

우리의 첫 싱글 Tears Are Not Enough는 1981년에 탑20곡이 되었다. 그리고 이후의 앨범은 보다 다듬어졌다. Dollar’s의 파노라마와 같은 넓은 화면과 같은 사운드인 Hand Held in Black and White를 듣고, 우리는 프로듀서 Trevor Horn과 접촉하였다. 그는 우리가 추구하려던 것을 즉시 이해했다. 우리는 아이디어가 가득했고 락앤롤을 바꿀 수 있으리라 – 셰필드에서 실직수당을 받으며 노래를 막 시작한 이에게는 매우 야심 찬 – 생각했다.

가사적으로 나는 Gary Numan과 OMD의 것을 사랑했었지만, 내 노래들을 Rodgers and Hammerstein이나 Cole Porter의 라인처럼 보다 감정적으로 고양시키고 싶었다. 그 당시에 누군가를 진정으로 사랑하거나 미워하는 것에 관한 노래가 드물었다. 펑크는 매우 중독적임에도 여성들은 그들의 존재감을 Lexicon에서 부각시켰다. 선율을 그렇게 두드러지게 특징 지우는 것은 통상적인 것이 아니었다. 당신이 Cilla Black이나 Cliff Richard가 아니라면 말이다. 4위까지 오른 The Look of Love는 무그 베이스라인에 모든 피치카토 어레인지먼트가 담겨 있었다. 반면 All of My Heart (No 5)는 매우 Bridge Over Troubled Water 스러웠다.

이미지적 관점에서 황금색 라메 수트와 디너 재킷은 우리를 펑크와 달리 보이게 했다. 야심적이고 코스모폴리탄적인, James Bond와 같은 요소를 가득 담고 있었다. 30년에 걸쳐 나는 이 노래들을 오케스트라와 공연하여 왔다. 나는 내 삶을 살아왔고 이제 두 아이가 있다. 그래서 All of My Heart로 돌아가는 것은 – 그리고 소년답게 라기보다는 남자답게 부르는 것은 흥미로운 일이다.

Anne Dudley, 키보드, 어레인저

ABC는 키보드 연주자가 없었다. 그래서 Trevor Horn이 영입했다. The Look of Love를 녹음하는 도중에 그는 진짜 현악과 관악 부문이 필요하다고 결정했다. 젊은이의 확신으로 경험은 일천했지만 내가 어레인지먼트를 하겠다고 자원했다. 우리가 애비로드에서 30개의 현악 섹션을 녹음했을 때, 나는 종종 그 방에서 가장 어렸다. 나는 Gamble and Huff의 디스코 클래식 The Sound of Philadelphia에서의 오케스트라의 풍부함을 언제나 사랑했었다. 이게 주된 영감이 되었고 또한 Bee Gees의 날아오르는 듯 하지만 단순한 현악 라인이 보태졌고 심지어 거기에는 Vaughan Williams도 약간 가미되었다.

The Look of Love의 믹스를 듣고 Trevor가 얼마나 시끄럽게 현악을 만들어냈는지를 알고 놀랐던 기억이 난다. 이것은 ABC의 색을 선명하게 만들었다. 그것은 미안해할 것도 없이 호사스럽고 서사적인 앨범이 될 것이었다. 그 이후로 우리는 많은 트랙들에 현악을 가미할 것이었고 앨범의 독특한 사운드를 개발해 나갈 것이었다. – 최신의 기술, 일렉트로닉 사운드와 실제 악기의 조화. 그 이후로 내가 추구해오던 조합이다.

솔직히 난 All of My Heart가 처음엔 좀 약하다고 생각했다. Trevor가 “all of my heart”의 가사를 부르기 전에 드라마틱한 멈춤과 코러스로의 결말을 첨가할 때까지 말이다. 우리는 그 다음에 팀파니를 조금 더 넣었다. 반면 페이드아웃은 내게 영국의 목가적인 순간을 가질 수 있는 기회를 부여했다. 결론적으로 그건 아마도 Martin의 최고의 보컬 퍼포먼스일 것이다. 그리고 그것은 두드러진 곡이 되었다. 그러나 트랙들은 모두 두드러졌다. Martin의 재치 있고 쉬운 가사는 젊은 사랑의 시도를 요약하고 있다. The Lexicon of Love는 1위를 기록했고 난 이 앨범이 30년간 어떻게 비쳐지는지에 관해 즐거울 따름이다. 그리고 내 젊은 날의 노력이 그다지 부끄럽지는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