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ope

완전범죄는 가능한가? 전도유망한 두 젊은이가 이 과제에 도전한다. 이들은 친한 친구를 죽여 방 한가운데 궤짝에 시체를 넣은 후 천역 덕스럽게 그 친구의 부모, 여자친구, 자신들의 옛 스승(제임스스튜어트)을 불러 파티를 연다. 뭔가 의심쩍은 일이 진행되고 있다는 스튜어트의 직감에 의한 예리한 질문으로 살인자들은 점점 궁지에 몰린다. 영화 전체가 살인이 일어난 방안에서만 진행되는 연극과 같은 포맷으로 진행되는 미니멀리즘 스타일의 영화. 알프레드히치콕의 첫 칼라영화다. 만인을 속일 수는 있어도 자기 자신을 속일 수 없는 법이다.

28 Days Later

좀비 영화는 손에 꼽을 수 없을 만큼 많다. B급 공포영화 감독들은 틈만 나면 무덤에서 잘 쉬고 있는 엄한 좀비를 깨워 – 주로 여름에 – 사람들을 고함지르게 했다. 주목할 만한 좀비 영화로는 역시 조지로메로의 일련의 좀비시리즈, 데이빗크로낸버그의 스캐너스, 그리고 존랜디스가 감독한 마이클잭슨의 스릴러 등이 있다.

이렇듯 흔해빠진 소재를 재기발랄한 대니보일이 손댄 까닭은? 그래도 재밌으니까. 예전에 전설의 고향이 아무리 욕을 먹어도 여름만 되면 구미호 이야기를 재탕하듯이 좀비는 언제 흔들어 깨워도 깨워볼만한 가치가 있는 것들이다. 얼굴은 짓이겨져 썩은 것들이 엉금엉금 기어 다니는 꼴은 소름끼치기도 하고, 지저분하기도 하고, 한편 우습기도 하고…. 요컨대 구미가 당기는 캐릭터다.

그래서 결국 관건은 좀비영화의 한계를 어떻게 뛰어넘는가 하는 것인데 개인적인 의견을 말하자면 대니보일은 그 한계를 가볍게 뛰어넘은 것으로 판단된다.

스토리는 말할 것도 없이 좀비에 의해 세상은 점령당했고 그들에게 대항하는 소수의 인간들이 서로에게 연락을 취하면서 모이려고 한다. 수많은 난관을 뚫고 도착한 그 곳에는 좀비보다 무서운 인간(!)들이 버티고 있다는…. 무시무시한 결말이 기다리고 있다.

상황은 조지로메로의 Day of The Dead 와 흡사하다. 하지만 나름의 오리지날리티도 있다. 현재 후속작 28 Weeks Later 가 2007년 개봉예정이라 한다.

Local Hero(1973)

다국적석유기업이 스코틀랜드의 어느 어촌에 직원 맥맥캔타이어를 파견시킨다. 목적은 석유기지 건설을 위해 어촌 전체를 매입하는 건. 한편 그룹의 회장 펠릭스하퍼(버트랭카스터)는 맥캔타이어에게 하늘을 잘 살피라는 이상한 주문을 한다. 현지에서 어수룩한 회사동료 대니올슨과 함께 찾은 마을은 대도시의 휘황찬란함과는 거리가 먼 고요한 마을이었다. 그렇게 조용하던 동네가 맥캔타이어의 등장으로 소란스러워지고 모두들 한몫 잡을 수 있다는 생각에 마음이 들떠있는데 엉뚱한 곳에서 장애물이 등장하게 된다. 영화는 분명히 장르는 코미디로 분류되지만 딱히 웃음을 억지로 유발시키고자 하는 장치 없이 차분하게 진행된다. 덕분에 영화를 감상하며 짓게 되는 웃음은 파안대소가 아니라 엷은 미소이다. 특별한 반전이랄 것도 없고 큰 감정의 고저 없이 진행되면서도 단단한 바위처럼 탄탄한 진행을 보이는 것이 이 영화의 미덕이다. 마크노플러의 사운드트랙도 극의 분위기를 상승시키는데 한몫하고 있다. 휴그랜트의 The Englishman Who Went up a Hill But Came Down A Mountain 과 비교하여 봐도 좋을 듯

Spaceballs

멜브룩스가 한번 웃어보자고 작정하고 만든 영화다. 스타워즈를 자근자근 씹으며 패러디한 이 영화에서 가장 빛나는 캐릭터는 다스베이더를 흉내낸 다크헬멧(릭모라니스)이다. 자그마한 키에 어울리지도 않게 엄청나게 큰 헬멧을 쓰고 다니면서도 광선을 쏘아대는 반지로 부하들에게 공포의 대상이 되는, 그러면서도 혼자 있을 때는 인형놀이에 광분하는 사랑스러운(?) 캐릭터다. 이외에도 스타워즈의 각각의 캐릭터가 멜브룩스의 천재적인 영도력(!)하에 재탄생하여 그렇지 않아도 코미디인 스타워즈를 한층 폭소도가니로 만들어놓은 멜브룩스판 스타워즈, 스페이스볼스가 탄생하였다.

The Quiet Earth

아침에 눈을 떴는데 세상에 나만 홀로 살아남아있는 경우를 상상해 본적이 있는가? 이 영화가 그렇다. 과학자 Zac Hobson 이 어느 날 눈을 떠보니 평온한 기운과 달리 무언가 달라져있었다. 주변에 인기척이 없는 것이다. 거리에도 상점에도 그가 근무하는 연구소에도……. 지구상의 생명체는 흔적도 없이 사라진 것이다. 원인은 바로 자신이 실험했던 새로운 에너지 발굴실험 탓이었다.

이제 그는 어떻게 해야 하는가. 당황한 그는 이리저리 인간을 찾아 헤매다 이내 단념하고 혼자뿐인 세상에서 물질적 욕구를 폭식하는 쪽을 택한다. 그러나 그마저 이내 질려버리고 또다시 헤매다 결국 한 여인과 – 그가 사랑에 빠진 – 경계심이 강한 남자를 만난다.

세상에 셋 뿐인 인간관계. 그 기묘한 관계 속에서 서로 갈등하고 반목하고 사랑하다가 결국 Zac Hobson 은 지구를 온전히 원 상태로 돌려놓는 도전을 감행한다.

과학맹신주의에 대한 비판의 메시지보다는 찰튼헤스턴의 ‘혹성탈출’이나 대니보일의 ‘28일 후’ 처럼 인간이라는 존재의 부재에 의한 공포감을 극대화하는 쪽에 더 강조를 한 작품이라는 것이 감상포인트다.

악마는 프라다를 입는다

이 영화의 원작이 베스트셀러였다는 사실, 악마로 불린 패션잡지 편집장이 실제인물을 모델로 했다는 사실 등 이 영화에 대한 기초적인 사실을 모른 채 감상하였다. 애초에 패션 쪽에 대해서는 문외한이지만 영화속잡지 이름이 제법 즐겨보았던 리얼리티쇼 ‘프로젝트 런웨이’와 같다는 점, 프라다의 창업주 이하 그 가문이 전통적으로 공산당 지지자라는 곁가지 가십거리만을 안 채 영화를 보았다.

영화 자체는 킬링타임용으로 손색이 없었다. 악마와 순진한 소녀라는 설정은 고전동화에서 익숙한 설정이었고 워커홀릭과 그 배우자와의 갈등은 젠더가 전도되었을 뿐 통상의 드라마에서 흔히 보던 구도였기 때문에 각 에피소드의 소결론을 짐작하는데 방해되는 요소도 없었고 역시나 예상했던 바대로 이야기는 결말을 맺는다. 또 여주인공 앤헤더웨이의 처진 눈매가 그녀의 패션과 제법 잘 어울린다는 것도 영화를 흥겹게 볼 수 있는 매력포인트였다.

다만 군데군데 감상의 흐름을 막는 억지스러운 설정이 눈에 거슬렸는데 특히나 결국 패션업계가 속물 부르주아지의 사행심을 갉아먹고 사는 산업일 뿐이라는 결말부분에 대해서는 다소 의아한 느낌이 들기도 했다. 전문가로서의 자부심으로 똘똘 뭉친 편집장 머랜더도 일갈하였듯이 패션업계의 선구자들이 갈고닦아놓은 미적감각이 결국 패션 문외한의 취사선택에 일조하였고 기왕에 옷을 입을 바에야 가격의 높고 낮음을 떠나서 당초의 앤헤더웨이의 촌스런 패션보다 나중에 입은 패션들이 훨씬 사람을 돋보이게 하는 것이 사실인데, 단순히 패션계 한 거장의 추한 모습 때문에 패션계 전체가 싸잡아 욕을 먹어야 하는 것인지에 대해서는, 그리고 결말이 이러할 영화에 패션업체들이 왜 옷을 협찬했을까 등의 의문점이 남았다. 결국은 그녀가 선택하는 언론계 역시 양아치도 많고 속물도 많은 세상 아닌가? 언론계에 입문한다고 다시 촌스러운 패션으로 회귀할 필요가 있는가?

요컨대 이 영화에서 나름 펼치려 했던 ‘정치적 올바름’ 철학이 남자 배우자에게의 사과라는 남존여비적인 화해 – 차라리 이 남자배우의 혐오스러운 헤어스타일과 구리구리한 티셔츠가 더 짜증난다 – , 패션계에서 일했던 나름의 노하우에 대한 철저한 부정으로 굳이 표현되어야 하는지에 대해서는 별로 공감이 되질 않았다.

차라리 머랜다를 떠나서 자신만의 패션레이블을 만든다는 결말은 어땠을까? 동대문에 점포라도 하나 내서 새로 시작하는 결말도 나쁘지 않을 것 같다.

A Hard Day’s Night

한 시대의 팝아이콘이 되어버린 비틀즈에 관한 영화중 대표적인 수작. 비틀즈의 TV쇼 공연 중에 일어나는 해프닝을 비틀즈 멤버들을 직접 출연시켜 점프컷, 뮤직비디오적인 편집 등을 통하여 경쾌하게 그리고 있다. 곳곳에 배치된 에피소드들에서 인기있는 뮤지션으로서의 나름의 고충, 매니저와 뮤지션의 긴장감 등 일반인들이 쉽게 접할 수 없는 음악산업의 이면도 살짝 건드리고 있다. 또한 흥미로운 것이 비틀즈 멤버들간에 암묵적인 세력관계랄지 각 멤버들의 성향 등도 은근히 드러나고 있다. 비틀즈 팬이라면 놓쳐서는 안될 영화고 그들의 팬이 아니더라도 가벼운 마음으로 즐길 수 있는 수작.

Cachorr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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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lareleasingbearcub” by Poster scan.. Licensed under Wikipedia.

스페인산 퀴어 영화다. 일단 퀴어 영화도 흔치 않은 소재인데다 스페인산이라니 스페인의 동성애자들은 어떻게 사나 궁금할 법도 하다. 첫 장면부터 충격적이다. 제법 살집이 있는 – 이 영화의 영어제목 Bear Club에서 Bear는 살집이 있으신 동성애자들을 가리키는 말로 그쪽으로도 제법 시장(?)이 크다고 한다 – 두 남자가 벌이는 섹스신에 고스란히 노출되는 성기, 거침없는 마약문화의 노출 등 제법 하드코어하게 나간다. 그렇지만 그러한 낯선 문화만 제쳐놓고 본다면 그리 거부감 없는 일상적인 드라마다. 사고뭉치 누나로부터 떠맡은 조카, 서먹함을 극복하고 같은 핏줄의 애정을 확인하는 순간부터 닥치는 시련, 이에 대한 극복 등 게이코드라는 배경을 깔고 일상에서 벌어질법한 일을 무리 없이 그려낸 수작이다. 감독은 이런 잔잔한 드라마를 통해 동성애도 우리네 나머지 삶의 구성요소 중 특별할 것 없는 하나임을 말하고자 하였던 것 같다.

M.A.S.H

도널드서덜랜드의 이미지는 한마디로 반골 스타일이다. 영화에서 그의 별명은 Hawkeye, 즉 매의 눈이다. 그의 외모상의 특징을 잘 말해주는 한편으로 그의 영화이력에서의 캐릭터를 잘 표현해주는 단어가 아닌가 싶다. 이 영화에서도 그가 아니면 누가 Hawkeye 역을 맡았을까 할 정도로 딱이다. 때는 한국전쟁, 공간은 바로 그 전쟁터 한국. 주요참전국인 미국의 야전병원(M.A.S.H : Mobile Army Surgical Hospital)에서 벌어지는 해프닝을 다룬 이 영화는 뒤에 TV시리즈로도 큰 인기를 얻은 코미디다. 한국전쟁을 소재로 다루었다는 점에서, 그럼에도 한국이라는 보다 크게는 아시아라는 제3세계의 모습을 희화화하거나 고증이 부정확했다는 점에서 – 이 영화에서도 거리에서 베트남식의 복장을 하고 다니는 이들이 자주 눈에 띈다. 하지만 Remo 처럼 아예 한민족의 무술을 배워 수퍼히어로가 된다는 액션영화에서의 어설픈 한국에 대한 묘사보다는 낫다. – 해당 지역의 영화팬에게는 별로 좋은 인상을 주지 못했지만 혁명적이거나 반전의 메시지는 담지 않았더라도 체제 안에서의 전쟁에 대한 조롱, 자유주의적이거나 나아가서는 가치전복적인 뉘앙스 때문에 온전히 이 영화의 가치를 부정할 수는 없는 영화사적 가치를 지니고 있다. 때로는 방종으로 보일만큼의 장교들의 반항적 문화, 근본주의적 기독교에 대한 조롱 등 정치적 메시지가 어느 정도 삽입되어 있지만 앞서도 말했듯이 로버트알트만이 특별히 이 영화를 통해 급진적인 정치성향을 표현하고 싶은 생각은 없었음에 틀림없다. 그저 시대와 공간이 어쩌다보니 그렇게 된 것이다. 이러한 면에서 같은 해 나온 마이크니콜스의 Catch 22 보다는 격이 떨어진다.

Pink Flamingos

이 영화에 대한 느낌을 한마디로 표현하자면 “어이없음”이다. ‘이런 스토리로 영화를 만들 수 있구나’, ‘정말 이렇게까지 막가도 되는 거야?’라는 물음이 자연스럽게 나온다. 세계에서 가장 못생기고 야비한 것을 자랑스러워하는 디바인, 계란을 너무 너무 좋아하고 아기침대에서 하루를 보내는 뚱뚱이 엄마, 디바인보다 더 못되기 위해 디바인을 처치하려는 악당 부부 등. 어찌 보면 백설 공주 엽기 판이 아닌가도 생각되는 이 영화는 ‘영화의 펑크락 버전’이라 할만하다. 이야기의 흐름은 끊임없이 비틀거리고 관객의 시선은 느닷없는 엽기로 인해 혼란스럽다. 파티에서의 스트립쇼(?) 부분에 가서는 드디어 “세상에!!!”라는 탄식이 절로 나온다. 이 영화 이전에 봤던 존워터스의 다른 작품 크라이베이비는 정말 양반이다. 그래서 아직도 나는 그의 다른 작품을 보기를 망설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