악마는 프라다를 입는다

이 영화의 원작이 베스트셀러였다는 사실, 악마로 불린 패션잡지 편집장이 실제인물을 모델로 했다는 사실 등 이 영화에 대한 기초적인 사실을 모른 채 감상하였다. 애초에 패션 쪽에 대해서는 문외한이지만 영화속잡지 이름이 제법 즐겨보았던 리얼리티쇼 ‘프로젝트 런웨이’와 같다는 점, 프라다의 창업주 이하 그 가문이 전통적으로 공산당 지지자라는 곁가지 가십거리만을 안 채 영화를 보았다.

영화 자체는 킬링타임용으로 손색이 없었다. 악마와 순진한 소녀라는 설정은 고전동화에서 익숙한 설정이었고 워커홀릭과 그 배우자와의 갈등은 젠더가 전도되었을 뿐 통상의 드라마에서 흔히 보던 구도였기 때문에 각 에피소드의 소결론을 짐작하는데 방해되는 요소도 없었고 역시나 예상했던 바대로 이야기는 결말을 맺는다. 또 여주인공 앤헤더웨이의 처진 눈매가 그녀의 패션과 제법 잘 어울린다는 것도 영화를 흥겹게 볼 수 있는 매력포인트였다.

다만 군데군데 감상의 흐름을 막는 억지스러운 설정이 눈에 거슬렸는데 특히나 결국 패션업계가 속물 부르주아지의 사행심을 갉아먹고 사는 산업일 뿐이라는 결말부분에 대해서는 다소 의아한 느낌이 들기도 했다. 전문가로서의 자부심으로 똘똘 뭉친 편집장 머랜더도 일갈하였듯이 패션업계의 선구자들이 갈고닦아놓은 미적감각이 결국 패션 문외한의 취사선택에 일조하였고 기왕에 옷을 입을 바에야 가격의 높고 낮음을 떠나서 당초의 앤헤더웨이의 촌스런 패션보다 나중에 입은 패션들이 훨씬 사람을 돋보이게 하는 것이 사실인데, 단순히 패션계 한 거장의 추한 모습 때문에 패션계 전체가 싸잡아 욕을 먹어야 하는 것인지에 대해서는, 그리고 결말이 이러할 영화에 패션업체들이 왜 옷을 협찬했을까 등의 의문점이 남았다. 결국은 그녀가 선택하는 언론계 역시 양아치도 많고 속물도 많은 세상 아닌가? 언론계에 입문한다고 다시 촌스러운 패션으로 회귀할 필요가 있는가?

요컨대 이 영화에서 나름 펼치려 했던 ‘정치적 올바름’ 철학이 남자 배우자에게의 사과라는 남존여비적인 화해 – 차라리 이 남자배우의 혐오스러운 헤어스타일과 구리구리한 티셔츠가 더 짜증난다 – , 패션계에서 일했던 나름의 노하우에 대한 철저한 부정으로 굳이 표현되어야 하는지에 대해서는 별로 공감이 되질 않았다.

차라리 머랜다를 떠나서 자신만의 패션레이블을 만든다는 결말은 어땠을까? 동대문에 점포라도 하나 내서 새로 시작하는 결말도 나쁘지 않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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