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Purple Rose of Cairo

관객이 영화 속으로 들어가 캐릭터들과 어울린다는 Sherlock Jr.의 아이디어를 반대로 뒤집으면 이 영화가 된다. 1930년대 대공황으로 지치고 팍팍한 삶을 살고 있는 한 빈민가정의 주부(미아패로우)는 남편의 술주정과 폭력에서 탈피하고자 영화관을 찾는다. 그리고 The Purple Rose of Cairo 라는 영화의 주인공(제프다니엘스)을 흠모한다. 그런데 영화를 보는 도중 갑자기 이 주인공이 영화 밖으로 뛰쳐나오고 어찌어찌해서 미아패로우와 사랑에 빠진다. 영화는 주인공의 탈출로 인해 진척이 안 되고 나머지 캐릭터는 하릴없이 주인공을 기다린다. 이에 영화사는 주인공 역할의 배우를 현지에 파견한다. 뒤죽박죽 섞이는 스토리에서 현실과 판타지의 경계에서 현실탈피를 꿈꾸는 한 여인의 감정을 전하는 이 영화는 우디알렌이 미아패로우를 주연배우로 쓰던 시기의 피크를 이루었던 작품이다.

Sherlock Jr.

버스터키튼 Buster Keaton 은 그 천재성과 영화사에서 있어서의 중요성에도 불구하고 동시대의 또 다른 천재 희극인 찰리채플린의 빛에 가려 영원한 2인자 신세로 전락하고만 – 희극계의 트로츠키? – 불운한 배우라 할 수 있다. 그래서 그의 트레이드마크인 무뚝뚝한 표정은 어쩌면 자신의 영화인으로서의 위치를 예감한 표정이 아닌가 싶기도 하다. 이 영화는 1924년에 만들어진 코미디라는 외피를 뒤집어쓰고 있기는 하지만 그 형식적이거나 내용적인 측면에서 동 시대의 영화를 뛰어넘는 위대한 영화이다. 셜록홈즈와 같은 훌륭한 탐정이 되는 것이 소원인 한 젊은이가 영화에 직접 들어가 극중 캐릭터와 함께 사건을 풀어간다는 초현실주의적인 착상은 영화 속의 영화보기라는 묘한 쾌감을 관객들에게 선사하는 동시에 영화의 본질이 무엇인가 하는 문제에 대한 철학적 고찰이라 할 수 있다. 우디알렌은 후에 The Purple Rose of Cairo에서 이 아이디어를 그대로 차용한다(물론 같은 아이디어로 만들어진 라스트액션히어로라는 어이없는 작품도 있다).

Mon Oncle

찰리채플린에 필적할만한 프랑스의 희극배우이자 영화감독인 자끄타티 Jacques Tati 가 자신만의 캐릭터 윌롯 Hulot (자끄타티)을 내세워 만든 그의 첫 칼라필름. 선량하지만 각박한 현대문명에는 도무지 적응을 못하는 밉지 않은 캐릭터 Monsieur Hulot은 감독의 53년작 Les Vacances De Monsieur Hulot에서 처음 등장한 이후 감독의 또 다른 자아(alter ego)의 역할을 담당하였다. 영화는 감독의 첫 칼라필름이라는 사실이 믿기지 않을 만큼 아름다운 색채로 칠해져 있다. 그리고 이러한 색채감은 윌롯의 형 부부가 사는 초현대적인 집을 묘사하는데 더없이 잘 활용되었다. 이들 부부는 전형적인 부르주아로 경제학자 베블렌이 묘사한 “과시적 소비”의 표본으로 사용해도 좋을만한 속물들이다. 이에 반해 윌롯은 우스꽝스러운 집단주택에 살면서 현대의 기계문명에 적응하지 못하는, 어린 조카를 마중 나가는 것이 삶의 기쁨인 천진난만한 인물이다. 감독은 이러한 대비를 통해 어린 시절의 순수함과 부르주아의 속물근성을 잘 대비시키고 있다. 아기자기한 에피소드와 익살이 나른한 토요일 오후와 잘 어울리는 영화.

영화소개

Le Boucher / The Butcher

프랑스 뉴웨이브 영화제작자들은 단지 오락거리로만 취급되었던 헐리우드의 몇몇 감독들의 예술성을 간파하고 이를 재해석하는 데에 기여하였다. 대표적으로 서부극의 존포드, 멜로드라마의 새뮤엘플러, 코미디의 하워드혹스 등이 있다. 이러한 운동의 선두주자였던 끌로드채브롤 Claude Chabrol 은 이 영화에서 노골적으로 알프레드히치콕의 코드를 (일종의 오마쥬로써) 차용한다. 한 시골의 여교사로 취임하는 주인공과 그녀를 사랑하는 푸줏간 주인, 그리고 이들을 둘러싸고 벌어지는 연쇄살인이 극의 주요흐름이다. 작품은 철저히 히치콕적(的)인 정신의학적 스릴러이다. 그래서 마치 프랑스어로 더빙한 히치콕의 작품을 보는 것 같은 느낌이다. 비록 이렇듯 노골적으로 히치콕을 차용하였다 하더라도 여전히 이 작품은 수준 높은 웰메이드 스릴러임에는 틀림없다.

High Anxiety

한 유명한 정신병원에 원장으로 취임한 쏜다이크 박사(멜부룩스)를 중심으로 펼쳐지는 음모를 그린 코미디영화다. 이 영화는 알프레드히치콕의 작품들을 여러 개 패러디했는데 대표적으로 – 제목에서도 짐작할 수 있듯이 – Vertigo 가 있고 이외에 Psycho, The Birds 등도 멜브룩스에 의해 재해석되었다. 영화에서 그려지는 정신병원은 요지경 세상이다. 정신병원의 환자들은 최고의 의료진으로부터 남부러울 것 없는 치료를 받는 듯 보이지만 실은 그 의료진들 자체가 이미 정신병자이거나 신경쇠약에 시달리고 있다. 게다가 그들은 부당이득을 위해 이미 치료가 끝난 환자들마저도 계속 병원에 가둬놓고 있다. 그런 병원에 원장으로 취임한 쏜다이크 박사는 이미 기득권 세력들에게 눈의 가시 같은 이였고 그를 제거하려는 음모가 진행된다.

멜브룩스는 이 영화로 1978년 골든글로브 남우주연상을 수상하였다.

Tron

On the center of a circle, a man releasing a disc upwards into the air, with a woman standing next to him. A beam of light descends upon the disk with another light coming out from the background. A caption reads: "A world inside the computer where man has never been. Never before now."
By Copied from http://impawards.com/1982/tron.html web site, and intellectual property owned by Buena Vista Pictures., Fair use, Link

소위 사이버스페이스와 전자오락을 소재로 한 선구자적인 영화. 제프브리지스 Jeff Bridges 가 자신이 프로그래밍한 게임 속으로 들어가 악의 세력과 맞서 싸운다는 현실감은 없지만 눈요기는 되는 작품이다. 선악의 구도는 너무 명확하여 유치할 정도이다. 하지만 사이버스페이스와 현실이 혼재하여 갈등구조가 진행된다는 점에서 The Matrix 와 같은 비슷한 장르의 영화의 선구자격으로 영감을 주었고, 픽셀과 네온빛의 그래픽 역시 이후 유사한 영화에 영감을 주었다. 80년대 막 전자오락이 사람들의 여가활용의 한 방법으로 등장하였던 시기에 시의적절하게 시대정신을 반영한 영화이지만 정작 흥행은 신통치 않았다 한다. 포스터의 인물은 당시 TV 스타로 이름 날리던 브르스박스라이트너 Bruce Boxleitner

Amarcord

영화 제목 Amarcord 는 “나는 기억한다”를 의미하는 이탈리아어 “Mi Ricordo”를 소리나는대로 적은 시적인 표현이라고 한다. 이탈리아의 거장 페데리코 펠리니 Federico Fellini 의 반(半)자서전적인 이 영화는 1974년 발표되어 아카데미 최우수 외국어 영화상을 수상하였다. 무솔리니 시절의 이탈리아의 한 해안가 마을의 풍경을 담은 이 영화는 소년의 정욕, 여인들의 밉지 않은 허영, 파시즘에 대한 이탈리아인의 복잡한 심정, 정신병에 시달리는 삼촌의 에피소드 등이 병렬적으로, 동시에 애정 어린 시선으로 그려지고 있다. 따뜻한 영화.

로마, 무방비 도시(Roma, Città Aperta / Open City)

로베르토로셀리니의 1945년 작품인 이 영화는 마치 에릭홉스봄의 20세기 역사를 다룬 명저 ‘극단의 시대’를 영상으로 보는 것 같은 느낌이다. 파시즘과 나찌즘이 극에 달하던 시기 로마에서 저항운동을 펼치던 공산주의자들의 투쟁을 그린 이 영화는 형식적인 측면에서나 내용적인 측면에서 이탈리아식의 사회주의 네오리얼리즘의 큰 축을 이룬 걸작으로 꼽히고 있다.

<주의 : 이하 스포일러 있음>

극의 줄거리는 크게 반독 항쟁을 벌이고 있는 공산주의자 만프레디, 저항활동을 후원하는 돈피에트로 신부 – 무신론적 공산주의와 보수적 카톨릭 사이의 갈등은 보편적인 현상이었지만 둘 모두 천년왕국에 대한 확신이 있으며 집단윤리에 익숙하다는 점에서 본질적인 친화성도 무시할 수 없으며 평사제들의 공산주의에 대한 호의감도 충분한 개연성을 가질 것이다 – , 그리고 만프레디를 사랑하는 배우 마리나를 중심으로 진행된다.

“그는 1928년에 그의 아내가 죽을 때까지 10년 동안 결코 그녀와 살지 않았다. 여자를 멀리하는 것은 혁명가의 철칙이다.” – 칼파나 두트

마치 사제서품을 눈앞에 둔 성직자의 각오를 연상케 하는 이 주장의 옳고 그름을 떠나 이 주장에서 언급되는 혁명가의 연애관은 만프레디와 마리나의 연인관계는 만프레디의 비극적인 운명을 암시한다. 투사도 인간일진데 사랑이라는 감정에 휩쓸릴 수 있는 것이 당연한 권리이지만 적어도 이 영화에서만큼은 그 대가가 얼마나 참혹한 것인가가 극명하게 드러난다. 혁명과 욕정은 적어도 이 영화에서만큼은 화해할 수 없었나보다.

페데리코 펠리니가 시나리오 작업에 참여한 이 영화는 이후 “전화의 저편”, “독일 영년”과 함께 로베르토 로셀리니의 3대 전쟁 영화이기도 하다.

Hannah and Her Sisters

뉴욕이라는 공간을 배우에 버금가는 주요배역으로 격상시킨 우디알렌이 애니홀과 맨하탄 등에 이어 또 한 번 뉴욕과 뉴욕에 거주하는 사람들에 관한 이야기를 영화화하였다. 서로가 물고물리는 애정관계는 때로는 유치하게 때로는 강박적으로 서로를 구속하고 서로를 애태우고 또 서로를 성숙시키기도 한다. 몰라도 아는 척 알아도 모르는 척 가족이라는 뗄 수 없는 유대관계를 지키기 위해 때로는 자신의 자존심을 지키기 위해 등장인물들은 위험한 줄타기를 반복한다. 누가 도덕적으로 더 옳은 것인가 하는 도덕적 판단기준은 이 영화에서 주된 포인트가 아니다. 하지만 영화 말미에 우디알렌에게 닥친 시련 – 일종의 반전? – 은 “사랑이란 원래 그렇게 허무한 것이야” 라고 가벼운 충고 한마디로 치유 가능한 것일까? 마이클케인이 우유부단한 한나의 남편 역을 잘 소화해주었고 대배우 맥스폰시도우 Max von Sydow 가 자존심강한 화가 역으로 출연한다.

Peeping Tom

고디바는 11세기 영국 코벤트리 지방에서 막강한 권력을 가진 영주의 어린 부인이었다. 그녀는 주민들이 과중한 세금에 시달리는 것을 시정해달라고 남편에게 간청하였다. 남편은 알몸으로 말을 타고 시장을 한 바퀴 돌면 세금을 감면해주겠다고 말했다. 부인이 포기할 것이라고 생각한 것이다. 그러나 부인은 정말 나체가 된 채로 말을 타고 시장을 돌았고 부인의 갸륵한 마음을 하는 주민들은 창밖으로 그녀를 쳐다보지 않았다. 그러나 탐이라는 친구만은 그녀를 몰래 보았고 이에 천벌을 받았는지 후에 맹인이 되었다. 이것이 관음증을 가리키는 Peeping Tom 이라는 표현의 기원이 되었다.

마이클 파웰 Michael Powell 의 1960년작 Peeping Tom 은 너무나 유명한 이 표현을 제목으로 앞세워 작품의 주제를 명확히 내세우고 있다. 어렸을 때부터 냉정한 과학자 아버지 아래에서 일종의 실험표본의 취급을 받으며 성장한 마크가 관음증적 증상에 시달리며 급기야 자신이 살인하는 여인의 마지막 모습을 카메라에 담는 취미에 탐닉하게 된다. 그러한 그를 진정으로 아껴주는 여인이 나타나지만 이미 그는 자신의 악취미에서 빠져 나오기에는 회복불능의 경지까지 타락해 있었다.

같은 해 만들어진 알프레드히치콕의 Psycho 에 필적할 만큼 왜곡된 성장배경으로 인하여 삐뚤어진 삶을 살게 될 운명에 처한 인물을 그려낸 스릴러의 걸작이지만 발표 당시에는 소재의 선정성에 집착한 평단으로부터 차가운 몰매를 맞아야 했다. Psycho 가 실제로 어머니의 편향된 보육으로 인해 살인마가 된 Ed Gein 을 모델로 한만큼 마크라는 변태적 인물의 현존 가능성도 얼마든지 개연성이 있는 문제이지만 오히려 평단이 그러한 리얼리티를 따라가지 못한 것이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