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Thing (From Another World)

몇몇 에스에프나 공포영화는 흔히 그 사회의 계층 간의 갈등을 은유적으로 표현하는 경우가 있다. 조지로메로의 ‘죽음의 날’ 이나 웨스크레이븐의 ‘공포의 계단’, 그리고 로버트와이즈의 ‘The DayThe Earth Stood Still’과 같은 경우가 이에 해당한다고 할 수 있다. The Big Sleep 의 감독 크리스찬나이비 Christian Nyby 가 1951년 선보인 The Thing 역시 외계인의 출몰로 인해 갈등하는 각 계층의 모습을 통해 지적쾌락을 선사하는 영화이다.

영화에 등장하는 직업군은 ‘죽음의 날’과 비슷하다. 이 영화는 좀비의 지구정복으로 인해 고립된 생존자들 중 과학자, 군인, 민간인 등의 갈등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다. 이 작품에서 군인은 생존자들의 권력을 쥐고 흔들려는 또 다른 적(敵)으로 묘사된다. 반면 The Thing 에서는 현존하는 분명한 위협인 가공할 괴력의 외계인을 상대로 냉정을 지키며 인간을 보호하려는 무리로 묘사된다. 반면 과학자 부류는 위험에는 아랑곳없이 외계생물체에 대한 과학적 탐구욕 때문에 사태를 호도하는 부류로 묘사된다.

어느 사회나 존재하는 혁신과 보수의 갈등에서 누구에게 상대적 도덕성을 부여하는가 하는 문제는 전적으로 영화를 만드는 이들이 사태해결 방안이 어느 관점에서 옳으냐에 대한 주관적 서술방식에 의존할 수밖에 없다. 이 작품에서 감독은 군인을 택했다. 그들은 호기심에 의해 동기부여가 되는 직업이 아니며 대화가 통하지 않는 ‘나쁜’ 괴물 외계인에게는 군인들의 보수성이 더 유효한 것이 분명하기 때문이다.

만약 외계인이 보다 우호적이었다면 명백히 군인들의 보수성이나 공격성은 호의적이지 않게 묘사되었을 것이다. 동시대 영화인 The Day The Earth Stood Still 이 바로 그 정반대의 경우에 해당하는데 지구에 평화의 경고 메시지를 전하러 온 Klaatu 를 적대적으로 공격한 것은 바로 군인이었다. 또한 정치인들은 그의 경고를 무시하였다. 이에 반해 과학자들은 Klaatu 의 지적능력에 공감하여 그의 경고메시지를 받아들인다. 결국 어느 사회나 위험을 받아들이느냐, 위험을 배척하느냐 하는 문제는 흑백논리로 명쾌하게 구분될 수는 없는 노릇이다.

어쨌든 군인이 과학자보다 올바른 판단을 하는 무리로 묘사되었다 하여 이 영화를 보수적이거나 반(反)진보적인 영화로 치부하는 것은 다소 무리가 있을 것이다. 외계인이 ‘악(惡)’한 캐릭터라는 기본상수를 깔고 들어갔으니 만큼 이에는 이, 눈에는 눈으로 나아가자면 어쩔 수 없는 노릇이기도 하다. 적어도 그 군사적 대응이 인디펜던스데이만큼 유치하지는 않으니까.

Desperate Living

추잡한 영화의 달인 John Waters 의 1977년 작이다. 핑크플라밍고에서 보여주었던 그의 ‘어이없음’이 일관되게 되풀이되는 영화이다. 흑인하녀의 엉덩이에 깔려죽는 남자, 용의자의 팬티를 뺏어 입고는 오르가즘에 몸부림치는 경찰, 여자 친구를 위해 성전환 수술을 했다가 여자 친구가 실망하자 가위로 성기를 잘라버리는 레즈비언, 흑인하녀와 동성애에 빠지는 여인 등 극단으로 치닫는 캐릭터들이 총집합하여 맥락도 없고 개연성도 없는 한판 해프닝을 벌인다. 다만 이야기 흐름상으로는 옷을 거꾸로 입고 거꾸로 걸어다니라는 둥 엉뚱한 소리만 해대는 여왕의부당한 압제에 맞서 변혁을 꿈꾸는 레즈비언 들의 혁명영화(?)로 해석될 수도 있다.중상류 계급 출신이지만 어릴 적부터 괴상한 취미에 맛을 들여 그의 전 영화인생을 이런 ‘뻘쭘한’ 영화 만들기에 전력을 쏟은 John Waters 의 악취미는 확실히 누구도 범접하지 못했던 영역 – 기껏해야 보다 얌전한(?) 스타일로 데이빗크로넨버그가 접근했다고 해야 할까? – 일 것이다.

영화소개

Poltergeist

1974년 ‘텍사스 전기톱 살인사건(>The Texas Chainsaw Massacre)’으로 단숨에 공포영화팬들의 간담을 서늘하게 했던 토브후퍼(Tobe Hooper)가 스티븐스필버그와 손잡고 만든 공포영화. 평화로운 한 중산층 공동주택 단지에 살던 가족에게 찾아 온 믿기 어려운 초자연적 현상과 이로 인한 가족의 고통을 다룬 영화. 그들 가족이 고통 받은 이유는 그 공동주택단지의 터가 원래 공동묘지였고 개발업자가 시체들은 이장을 해주지 않아서 그 유령들이 소동을 피운다는 다소 동양적인 감성을 지니고 있다.

개발업자야 이장비용으로 인해 사업타당성에 악영향을 미쳤을 테니 그런 짓을 했을 테고 유령들은 가족들이 무슨 죄가 있다고 괴롭혔는지 영화를 다 보고도 잘 이해가 되지 않았다. 괴롭히지 않고 잘 달래야 개발업자를 찾아가 이장을 해달라고 하든지 뭐라도 소원수리를 할 것 아닌가?

여하튼 영화는 꽤 흥행에 성공했고 속편이 3편까지 만들어졌다 한다. 그런데 희한하게도 이 영화에 출연한 큰 딸 역의 도미니크 던이나 작은 딸 역의 헤더오르크가 어린 나이에 죽는 등 영화의 출연자들의 의문의 죽음이 꼬리를 물어 ‘폴터가이스트의 저주’라는 말이 생기기도 했다고 한다.

Match Factory Girl

아키카우리마스키(Aki Kaurismäki)의 유머감각은 그의 고향 핀란드의 날씨만큼이나 냉소적이다. 성냥공장에서 일하며 빈둥거리며 세월을 죽이는 그의 부모를 공양하는 불쌍한 소녀가장도 욕정은 있다는 것이 이 영화의 주된 줄거리다. 예쁜 옷을 부모 몰래 사서 술집에 가서 남자들의 접근을 기다리는 그의 모습에서 우리는 연민보다는 차라리 유치함을 느낀다. 그렇지만 아무리 신분이 천하다 하여, 외모가 보잘 것 없다하여 그의 이성에 대한 낭만적 사랑의 열망이 폄하되어서는 안 될 것이다(꼬부랑 노인에게도 성욕은 당연한 권리이듯이). 그럼에도 그에게 접근하여 하루를 보낸 남자는 그를 하룻밤 여흥으로 치부해버리고 상황은 점점 꼬여간다. 대사가 하도 띄엄띄엄 있어서 적막감이 흐르는 영화다. 핀란드/스웨덴 공동작업으로 1989년 작.

When Worlds Collide

영화는 꽤 우울하게 시작된다. 외계행성이 지구와 조만간 충돌할 것이라는 사실에서 출발되기 때문이다. 요즘 영화 Deep Impact나 Armageddon 에서는 이러한 별들을 용감한 자원자들이 폭파하여 지구를 구하는 설정이었으나 당시 사람들에게 아직 그러한 방법은 너무 급진적이었나 보다. 아무튼 지구의 과학자들은 행성을 폭파하는 대신 거대한 우주선을 만들어 – 일종의 노아의 방주 – 다가오는 행성의 위성에 안착하는 것을 목표로 삼는다. 문제는 우주선의 수용인원이 수십 명에 불과할 정도로 너무 적다는 것이다. 극은 이로 인한 갈등과 희생정신, 그리고 주인공들 간의 삼각관계를 주요 에피소드로 삼고 있다. 그 당시로서는 꽤나 스펙터클한 영상을 선사하고 있지만 새로운 별에 우주선이 안착하여 바라본 풍경은 꽤나 유치한 그림임이 너무나 명확하여 웃음을 자아내게 한다. 그래도 ‘이 정도 하느라 수고했다’ 라는 느낌이다. Philip Wylie 와 Edwin Balmer 의 소설을 원작으로 한 1951년작.

The Road to Guantanamo

관타나모로 가는 다소 복잡한 경로에 관해 서술한 영화이다. 관타나모는 쿠바 동부에 위치한 지역으로 1903년 이래 미국이 자국의 해군기지로 사용하고 있으며, 소위 미국의 테러세력과의 전쟁 이후 불법적인 전쟁포로 수용소로 유명해진 지역이었다.관타나모 수용소 포로들에 대한 미국 당국의 불법감금, 폭력행사 등은 국제적으로 비난을 받았으나 미국 정부는 그 곳이 자국의 치외법권 지역이라는 해괴한 논리를 들어 각종 합당한 조치를 취하지 않아 구설수에 오르기도 했다.

영화는 파키스탄계 영국청년 네 명이 충동적으로 아프카니스탄에 들렀다가 부당하게 관타나모 기지에 2년여를 불법감금당하고 인권을 유린당한 실화를 바탕으로 진행된다. 극은 실제인물의 증언, 전문배우들의 재연, 그리고 각종 언론에 공개된 필름 등을 섞어서 일종의 다큐드라마 형식으로 진행된다. 역동적인 카메라는 마치 우리자신들이 그 현장에 있는 것 같은 착각을 불러일으키게 한다. 또한 이미 24 Hour Party People 등을 통해 음악에도 적지 않은 공력이 있음을 증명한 마이클윈터바텀은 자신만의 색깔을 지닌 음악사용을 최대한 자제하고 긴장감 조성만을 위한 음악을 화면에 깔아 사실성을 높이고 있다.

이 영화는 영국의 ‘채널4’에서 방영되어 영국 내 반전여론에 큰 몫을 담당하였다고 전해진다. 어쨌든 이 ‘순수한(innocent)’ 네 명의 영국청년의 기구한 운명은 제3세계의 인종적 ’운명‘을 지닌 이들이 아무리 제1세계에 편입되어도 결국은 얼마나 당연하게도 다양한 인종적 편견에 시달리고 있는지를 잘 설명해주고 있다. 최근 프랑스에서 일어난 알제리계 프랑스인들을 포함한 유색인종의 폭동 역시 그 나라 안에서조차 제3세계 인종은 내부식민지화 되어 있음을 잘 말해주고 있기에 이들의 에피소드는 그 사연이 좀 더 기구할 뿐 예외적인 경우로 치부할 순 없는 노릇이다.

그렇다면 좀 더 나아가서 관타나모 기지에 감금된 ‘불순한’ 젊은이들은 어떠한가? 그들은 작심하고 ‘성전(聖戰)’에 참여했기에 기꺼이 인권을 유린당하여도 정당한 것인가? 영화 속의 부시의 말처럼 “그들은 우리가 공유하고 있는 가치를 저버린 살인자”들인가? 이 질문은 여전히 현재진행형이다. 부시가 선거에서 참패하고 럼스펠드를 희생시켰다 할지라도 여전히 세상은 주류에 의해 주입된 편향된 가치가 지배하고 있다. 약자가 하면 ‘불순한’ 테러이고 강자가 하면 자위적 수단으로써의 ‘순수한’ 응징이 되는 것이 현실이다. 이 영화의 후속편으로 ‘불순한’ 젊은이들의 관타나모 여행기를 다뤄보면 어떨까 하는 생각도 해본다.

Terms of Endearment

태어나서 자라서 부모에게 반항하고 사랑하고 결혼하고 아이를 낳고 늙어가다 죽는 게 사람의 인생이다. 이 영화는 인간의 거의 예외 없는 이러한 삶을 엠마(데보라윙어)의 삶과 죽음을 통해 조명한다. 특별한 기교나 반전 없이 엠마와 그를 둘러싼 가족들의 변해가는 삶을 관찰하는 이 작품은 초반 엠마의 밝은 성격으로 말미암아 다소 가벼운 로맨틱코미디의 분위기로 흘러가다 어느 날 엠마가 우연히 병원에서 종양을 발견하며 신파조의 – 그렇다고 너무 청승맞지 않은 – 멜로물로 전환한다. 중간 중간 엠마의 엄마(셜리맥클레인)과 이웃집 남자(잭니콜슨)가 벌이는 애정싸움도 볼거리다. 엠마가 죽는 순간 이미 애정이 식어버린 남편이 잠이 들었다가 깨는 장면이 여운을 남긴다.

Koyaanisqatsi

이 작품을 어느 장르로 구분하느냐 하는 것은 참 어려운 일이다. 일반적으로 다큐멘터리로 분류하긴 하지만 어떤 의미에서 이 작품은 카메라로 쓴 시(詩)에 가깝다고 할 수 있다. 스토리도 없이, 등장인물도 없이 이 작품은 그저 인간이 사는 지구의 이런 저런 모습들을 필립베이스의 음악을 배경으로 깔고 장대하게 펼쳐 보인다. 몇 년간에 걸쳐 촬영한 필름들을 연속적으로 이어놓은 이 작품의 메시지는 인간이 지구를 파괴하고 있다는 교훈적 메시지라고들 하는데 하여튼 그냥 보고 있자면 작품을 만든 이들이 참으로 대단하다거나 또는 참 지독한 사람들이다라거나 하는 생각이 든다.

위키페디아의 영화소개

The Stepfather

못된 계모이야기는 많아도 못된 계부이야기는 흔치 않은데 바로 이 영화가 못된 계부에 관한 관찰기이다. 평소에는 인자하다가(?) 자신의 권위에 도전을 해온다는 느낌이 들면 살인마로 돌변하는 연쇄살인범의 이야기다. 영화의 시작이 바로 이 인간이 살인을 저지르고 태연히 수염을 깎는 장면부터 시작하므로 우리는 살인범의 정체를 처음부터 알고 있다. 이후 그가 다음 목표를 고르고 언제쯤 살인을 저지를 것인가 하는 것이 이 영화의 감상 포인트다. 과연 이번 살인도 성공할 수 있을까? 살인마가 착한 척 하고 만들어준 새집이 의외의 막판에 그에게 걸림돌이 된다. 후속작도 발표되었으나 전편만큼의 호평을 받진 못했다.

Dogfight(샌프란시코에서의 하룻밤, 1991)

Dogfight(개싸움)은 비행기 공중전을 가리키는 속어라고 알고 있다. 그렇다면 이 영화는 탑건류의 전쟁액션물? 아니다. 이 영화에서 개싸움은 또 하나의 의미를 가지고 있다. 혈기왕성한 군인들이 가장 못생긴 파트너를 데려오는 이에게 판돈을 몰아주는 이색파티의 명칭이 그것이다. 내일이면 베트남이라는 전쟁터로 떠나는 에디 버들레스(리버 피닉스 분)가 샌프란시스코에 도착해 친구들과 함께 개싸움 파티를 위해 뿔뿔이 흩어져 추녀들을 찾아 헤맨다. 그래서 엮은 여자가 로즈피니(릴리타일러). 결국 파티의 진실을 알게 된 로즈는 화를 내며 파티를 떠나고 에디는 그런 그녀에게 사과하러 그녀의 집을 찾아가서 마지막 밤을 함께 시내를 배회한다. 올 여름 샌프란시스코를 다녀온 터라 얼마 전의 두 번째 감상할 때에는 보다 더 시내의 풍경에 애정(?)을 가지고 봤던 작품. 이성에 대한 내면의 아름다움을 알게 된다는 결론은 만족스럽지만 전쟁에 대한 알듯말듯한 모호한 자세는 약간 삑사리. 리버피닉스여 편히 쉬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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