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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esus And Mary Chain, The

“누구나 튠도 멜로디도 없는 노이즈로 곡을 만들 수는 있다. 그러나 우리의 음악에는 멜로디가 있다.” The Jesus And Mary
Chain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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싱글 Upside Down이 나왔을 때 각 언론사들은 모처럼의 기사거리에 흥분하며 곧 두 분파의 글들을 써대기 시작했다. 극단적인 좋고 나쁜 평들은 시대를 앞서는 사건에 있어서 늘 행해왔던 일이 아니었던가… 보위가 그랬고 프린스 역시… 흐..–; 이처럼 로큰롤에 대한 새로운 정의로 불려질만한 크나큰 반향과 노이즈 기타의 선발주자로 누구도 넘볼 수 없는 위치를 마련, 그에 어울리는 무대 매너와 여러 시끄런 사건 등으로 독보적 아성을 지니고 있으면서 아이러니 하게도 팝의 위대함을 증명하는데 누구보다 앞장섰던 밴드, 수많은 관련 밴드에 직접적 영향을 끼쳤던 이들은 퍼펙트 멜로디를 지향하는 팝 그룹으로 불려지길 희망했다.

지독히 무례한 소음들, 공연장의 폭동야기 등이 전부 일 것이라는 비관적 관망에서도 섹스 피스톨스 이후의 충격이라는 그럴듯한 타이틀로 연일 논란의 대상이 되는 것은 신인 밴드에게는 그리 나쁘지 않은 결과일 것인데 어느 정도는 쇼 비즈니스 적 계획 이었음을 시인하고 초창기 제대로 연주가 가능했던 멤버가 없었다는 레이드형제의 황당한 발언도 어쩌면 수긍이 가는 말이기도 하다. 여하튼 인기와 명성을 거머쥐고 더해서 저주의 대상이었던 이들의 성공이 길게 이어지리라고는 누구도 장담하지 못했었다. 그런 와중에서도 남다른 멜로디 애호가였던 레이드형제의 주장(거의 자만심 가득한)이 먹혀들기 시작한 것이었다. 지금이야 이들의 사운드가 보편적으로 들리겠지만 이들이 이룩한 업적은 같은 맥락의 밴드에게는 교과서나 다름없는 애티튜드를 정의한 것이었고 슈게이징의 방향을 제시한 가장 큰 영향력 내의 밴드로 대접받고있는 실정이다.

80년대 초 스코틀랜드 이스트 킬브라이드 출신인 William Reid : 기타, 보컬 Jim Reid : 보컬, 기타 Douglas hart : 베이스 Murray Dalglish : 드럼 (드럼 파트가 좀 복잡한데, 초창기 멤버 머레이 댈글리쉬가 자동차 사고로 사망, 프라이멀 스크림의 바비 길레스피로 교체했으나 바비도 곧 본업이었던 자신의 밴드로 되돌아가 다시 John Moor교체되었다. 바비 길레스피는 첫 앨범 발표당시까지 밴드에 속해 있었음.)

4인조의 The Jesus And Mary Chain이라는 예수와 마리아 그리고 마리화나의 단어를 농담조로 대치한 밴드 명으로 활동을 시작한다. 마리화나와 지저스 그리고 하나의 감타사는 이들 음악에 가장 많이 등장하는 인용구이다. 84년 당시 런던의 한 클럽인 Living Loom에 출연하며 Alan McGhee의 눈에 들어 Creation레이블과 계약 최초의 싱글 Upside Down을 발표하게된다. 크리에이션의 대표였던 앨런 맥기는 지저스 앤 메리 체인 건만 봐도 알 수 있듯이 대단한 안목과 수완가로서 라이드, 슬로우다이브, 스워브드라이버, 마이 블러디 발렌 타인, 프라이멀 스크림, 부 래들리스, 심지어 초창기 오아시스마저도 이곳에 적을 두고있었으니 그 유명한 (What’s The Story) Morning Glory? 앨범도 물론 포함하고 있다. 레이블을 방문해 보면 더 많은 밴드들이 눈에 띄지만 앞의 예 만으로도 레이블의 색깔을 충분히 짐작했으리라 보면서….. Upside Down발표와 지나칠 정도의 피드백을 구사하던 이들은 곧바로 세간의 이목을 받으며 명성과 성공을 동시에 얻게되었고 큰 이상의 소유자였던 레이드형제의 레이블 이적으로 크리에이션과의 인연은 접는 듯 보인다.

워너 산하의 Blanco Y Negro레이블로 이적한 밴드는 곧바로 첫 앨범 Psychocandy로 결정타를 때렸다. 파열음으로 이루어진 사운드에 메마른 보이스는 드론과 허무, 자기파괴 등을 여과 없이 선보이며 무대 위에서는 내성적 밴드이미지로 고개를 떨군다던가 심지어 관중에게서 뒤돌아서 연주하는 모습 등… 하나같이 관심을 끌고도 남을 행동을 보여주었다.(사실 레이드형제는 매우 내성적이라 한다.)

무대에서 자신의 악기와 사운드스케이프에 대부분을 할애 할 뿐, 그런 모습을 보면 관중과의 교감은 안중에도 없어 보인다. 사실 슈게이징 (슈게이져)이란 말도 그런 모습을 비꼬는 대서 생겨난 말이라지만 밴드의 음악에 대한 자세로 생각해보면 오히려 좋게 평가해야 할 것이다. 슈게이징 음악을 한다는 것은 사운드의 질에 심혈을 기울이는 연주자의 태도로 보면 될 것이다. 그만큼 이들의 무대 매너에 대해서 이러쿵저러쿵 말할 여지가 없다. 어차피 음악은 사운드에 관련한 것이니까. 음악을 만들며 어떻게 보여 줄 것인지부터 생각하는 밴드가 (클럽, TV 등에 나오는.. 악기를 지녔건 춤을 추던 상관없이.) 대부분인 요즘의 세태를 생각해보면 그렇다는 말이다. 물론 요거시 나쁘다는 말이 아니며 어차피 공연에 대한 밴드 및 관중의 취향은 모두가 제각각 이니… 그래도 생각은 해볼 문제다.

암튼 지저스 앤 메리 체인의 필살의 노이즈와 무대매너의 결합체인 Psychocandy 앨범은 음악사적인 면과 기타플레잉의 새로운 형태를 논할 때면 그 시작으로 거론하고있다.

사운드를 살펴보자. 초기부터 첫 앨범까지는 그야말로 노이즈의 홍수다. 지저분하게만 들릴지 모르는 초기 사운드는 그들 나름의 섬머 팝적인 분위기가 전체를 이루고 있다 봐야할 것이고 팝적인 멜로디 라인도 여기서 찾아야 할 것이다. 스투지스와 비치보이스에 열광했었고 벨벳 언더그라운드 적 이미지도 노렸던 이들은 주술적, 환각적 로맨스 등을 표현했다 할 수 있겠는데 후반기로 갈수록 그 비중이 조금씩 커지고 있다. Psychocandy와 Darklands까지의 색깔은 기타의 피드백과 멜로디의 조화에서 오는 짜릿하고 혼란한 더해서 경쾌하기도 한 사운드이고 그다지 팝적인 멜로디 라인은 느껴지지 않고 있다. 이들의 두 번째 앨범 Darklands는 전채적으로 느려지고 사이키델리적 분위기로 말미암아 Psychocandy와는 이질감도 느껴지는 음악이지만 그 주제가 기타 노이즈 인 것만은 일치하고 있다.

이제 세 번째 앨범에 와서는 바로 팝적인 멜로디들을 많이 접할 수 있다. 이들이 데뷔작으로 끝나는 밴드가 아니란 걸 보여준 아주 중요한 앨범 Automatic은 경쾌한 로큰롤과 넘치는 멜로디, 노이즈와 멜로디의 결합은 이 앨범을 두고 하는 말일 것이다. 로큰롤 비트에 멜로디 훅으로 가득한 Blues From A Gun이나 Between Planets, Head On에서 느껴지는 경쾌한 노이즈록과 깔끔한 느낌의 Half Way To Crazy의 감미로운 멜로디 등 지저스 앤 메리 체인의 가장 팝적이라는 찬사를 받는 앨범이다. 같은 맥락에서 발표된 네번째 앨범 Honey’s Dead역시 유사한 분위기로 이루어져 있으며 히트 곡이며 댄스플로어에도 적용될 수 있는 그루브한 곡 Reverence를 포함하고있는 앨범이다. 이들의 리듬과 퍼펙트 멜로디에 대한 추구는 각각 슈거큐브스 와 콕토 트윈스에 가졌던 애정에서도 엿볼 수 있다. 이 두 앨범으로 레이드형제의 멜로디에 대한 주장과 확신에 가득 찼던 모습 등이 그저 호기가 아니었음을 증명하는 결과를 얻었다.

당시 이와 같은 컨셉의 음악이 얼마나 유행이었냐 하면 ‘퍼지 박스를 지니고 있다’라는 밴드가 생겨남은 물론 노이즈를 내세우는 슈게이징 밴드가 수도 없이 탄생했고 데이빗 보위마저도 그와 같은 분위기에서 틴 머신이란 밴드를 결성했다는 믿거나 말거나한 상황이었던 것이다. 노이즈로 가득했던 러쉬의 초기작품, 좀 늦었지만 블리치의 거친 기타 노이즈(Glind주법의), 그나마 조용조용한 스페이스멘 3, 전자와 비슷한 류의 스피리츄얼라이즈드, 그중 멜로디적이라 불려지던 라이드, Head On 을 커버했던 픽시스, 크리에이션과 베가스 뱅큇소속의 무수한 밴드들…. 이 당시 분위기가 이러했었다.

이제 Stoned & Dethroned에 와서는 정말이지 아름다운 사운드를 들려주고 있다. 첫 앨범 발표 후 꼭 10년이 되는 다섯번째 앨범으로 슈게이징에서 바라는 모든 것이 녹아있는 작품으로 개인적으로 200점의 점수를 갖는 앨범이다. 차분해진 구성과 나른함 그리고, 허무그 모든 표현은 아름다운 멜로디로 이루어져 있고 이제껏 이룩해 왔던 기타의 테크닉이 고스란히 들어있는 그야말로 수작이다. 이 앨범에선 암울한 이미지의 포크 곡들로 유명한 밴드, 마지 스타의 보컬리스트 Hope Sandoval과 함께 한 Sometimes Always의 사랑싸움이 내용인 곡과 윌리엄의 자전적 노래인 Between Us, These Days, 죽음이 소재인 Never Saw It Coming, Everybody I Know, 시적인 느낌의 God Help Me, You’ve Been A Friend, 나른함이 베어 나오는 Wish I Could, 상큼한 팝적감각이 돋보이는 Till It Shines 등 기타로 이루어진 컨트리와 포크, 블루스 필의 어느 곡하나 빼놓을 수 없는 앨범.

최근의 신보로는 98년에 발표한 Munki가 있으며 어느 정도 긴 공백기 이후에 완성된 앨범으로 Upside Down만을 발표하고 돌아섰던 크리에이션 레이블과의 새로운 계약하의 결과물로서 초기에 그들을 인정해주었던 레이블과의 만남을 뜻하는 것으로 많은 것들을 생각할 수 있겠다. 역시나 중 후반기보다는 초창기 사운드에 근접하는 분위기가 느껴지며 기타 피드백도 많아진 앨범이다.

15년이 넘도록 음악을 해오면서 센세이셔널한 이미지 등을 만들어 왔던 것이 이들의 행적이었다. 분노의 노이즈 사운드를 어떨 땐 환각적 피드백의 사이키델리아, 또는 허무와 드론의 느낌으로 표현되어온 이들의 음악에는 언제나 멜로디가 따라다니고 있었으며 노이즈를 위해서가 아닌 노이즈를 사용하는 방식을 택해 그 이상을 실현한 밴드였다. 레이드 형제는 계속 창작 활동을 할거라는 자신감으로 차있으며 그 결과 물들에 대한 자부심으로 충만해 있다. 원래도 아니었지만 더 이상의 논란에는 눈 하나 까닥하지 않으며 자신들의 음악을 만들겠다는 이들의 호언장담과 창의력을 난 믿는다.

지저스 앤 메리 체인은 실력과 명성이 일치하는 몇 안되는 슈게이징 밴드일 것이다.

-노모어- (천리안 두레마을) (2000. 3.31)

출처 : That Dogg

Jap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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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apan band” by Jean-Luc – originally posted to Flickr as Japan. Licensed under CC BY-SA 2.0 via Wikimedia Commons.

약간은 어설픈 glam-rock 밴드에서 스타일리쉬한 synth-pop 밴드로 변모한 Japan은 그들 시대에서 그런대로 성공적이고 매력적인 밴드이다. 1974년 런던에서 결성된 이들은 처음에 싱어쏭라이터인 David Sylvian, 베이시스트 Mick Karn, 키보디스트 Richard Barbieri, 드러머 Steve Jansen(David Sylvian의 동생), 그리고 키타리스트 Rob Dean, 이렇게 5인조로 시작하였다. 처음에 그들은 Daivid Bowie나 New York Dolls 스타일의 glam-rock을 흉내냈다. Sylvian의 보컬은 Bryan Ferry를 연상시켰으며 Japan은 자주 Roxy Music과 비교되곤 했다.

레이블이 후원하는 한 콘테스트에서 우승한뒤 그들은 독일의 Ariola-Hansa 레코드사와 1977년 계약을 체결했다. 그리고 이듬해 Adolscent Sex와 Obscure Alternatives로 데뷔했다. 이 앨범은 영국과 미국에서 그리 큰 주목을 받지 못했지만 일본 청중들로부터는 어느 정도 관심을 끄는데 성공했다.(그룹명 잘 지어야겠죠?) 1979년 Quiet Life로 그들은 보다 세련된 스타일과 그들만의 영역을 만드는데 어느 정도 성공했다. 이 앨범에서는 Smokey Robinson의 오리지널인 I Second That Emotion(예전에 영어강사에게 이 뜻을 물어봤는데 “동의합니다” 정도의 뜻이라 함)이 히트하였다.

1980년 Gentlemen Take Polaroids에서는 그들의 음악적 범위가 좀더 확대되었다. 이 앨범에서는 그들만의 운치있는 싸운드에 이국적인 색채가 좀더 더해졌다. 1981년 Tin Drum이 그룹의 절정기라 할 수 있다. 이 앨범에서 그들은 Funk, 중국풍의 연주, 중동 지역의 리듬과 같은 다양한 쏘스들을 덧칠하여 팝에서 보다 실험적인 톤과 텍스춰로 승부하였다. 영국에서는 싱글 Ghosts가 크게 성공하였다.

그러나 결국 Tin Drum이 그룹의 이별곡이 되고 말았다. 오랜동안 지속되어오던 그룹의 불화와 멤버간의 음악적 견해 차이로 인해 그룹은 결국 1982년 일본 나고야의 콘써트를 마지막으로 해체하고 말았다. 개개인은 신속하게 그들만의 프로젝트 작업에 착수하였다. Sylvian은 솔로커리어를 시작하였고 Ryuichi Sakamoto, Holger Czukay, Robert Fripp와 같은 이들과 작업하기도 하였다. Karn은 1982년 솔로앨범을 발매하였다. 이어 Bauhaus출신의 Peter Murphy와 짧은 기간 듀오를 하기도 하였다. Jansen과 Barbieri는 Dolphin Brothers라는 이름으로 1986년 Worlds in a Small Room을 발표하였다.

1987년 Karn이 Sylvian과 Jansen의 도움을 받아 Dreams of Reason Produce Monsters를 발매했고 이로 말미암아 그룹의 재결성에 대한 풍문이 나돌았고 결과적으로 1989년 4명의 주요멤버가 Rain Tree Crow라는 이름으로 다시 팀을 조직하였다. 1991년 이름조차 지어지지 않은 앨범이 발매되었다. 그러나 또다시 멤버들은 각자의 길로 선회하였다. Sylvian은 꾸준히 솔로활동을 펼치는 반면 Karn, Jansen, Barbieri는 솔로활동을 지속하면서도 다양한 프로젝트에서 함께 일하는 유연성을 보여주었다.

디스코그래피

1978 Adolescent Sex
1978 Obscure Alternatives
1979 Quiet Life
1980 Live in Japan
1980 Gentlemen Take Polaroids
1981 Tin Drum
1982 Japan [Virgin]
1983 Oil on Canvas [live]

링크
David Sylvian 웹사이트

James

소위 “제2의 The Smiths” 로 불린 최초의 그룹이 James 이다. 1982년 맨처스터에서 결성된 이들은 80년대와 90년대에 걸쳐 Sire 등 메이저레코드사에서 Rough Trade 와 같은 인디레이블에 이르기까지 여러 레이블과 계약을 맺으며 이른바 ”경쾌한 포크팝“을 선보였다. 그들의 활동기간 동안 James 는 자신들의 우상인 Morrissey 로부터 찬사를 얻었는데 – Morrissey 는 James 에게 그들의 오픈 공연을 맡겼다 – 이는 축복이자 동시에 저주였다. 그룹은 2등급의 The Smiths 로 자리매김 되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꾸준한 레코딩과 공연으로 그들만의 팬들을 확보하는데 성공하였다. 많은 영국 그룹들처럼 이들도 애시드하우스로부터 영향받은 ”baggy” 씬에서 활동하였고 이 계열의 스타일의 Sit Down을 녹음하였다. Sit Down 이후 그들은 Brian Eno 와 함께 작업하는 등 보다 실험적으로 변해갔다. 이때 만든 작품 Laid 는 그들 음반 중 미국에서 가장 성공한 음반이 되었다. 특이하게도 영국에서는 이 앨범이 외면을 당했다.

그러나 그 뒤로도 작곡가 Angelo Badalamenti (Twin Peaks, Blue Velvet)와 함께 작업하는 등 꾸준한 모습을 보여주다 2001년 프론트맨 Tim Booth 가 밴드를 떠나기로 하면서 밴드는 사실상 해체되고 말았다.

오리지널 라인 : Paul Gilbertson (guitar), Jim Glennie (bass), Gavan Whelan (drums), Tim Booth (vocals)

디스코그래피

1986 Stutter Blanco y Negro/Sire
1988 Strip-Mine Blanco y Negro/Sire
1989 One Man Clapping [live] One Man/Rough Trade
1990 Gold Mother Fontana
1991 James Fontana
1992 Seven Fontana/Mercury
1993 Laid Mercury
1994 Wah Wah [live] Mercury
1997 Whiplash Mercury
1999 Millionaires Mercury
2001 Pleased to Meet You Mercury
2002 Getting Away With It: Live Import

링크

Fan Page
Official Site

Jam, Th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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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jam” by Neil Twink Tinning, – www.thejamunseen.com.
importer de [1]. Licensed under CC BY 2.5 via Wikimedia Commons.

펑크의 선두주자라 할 수 있는 잼(Jam)은 당대의 섹스 피스톨즈(Sex Pistols), 클래쉬(Clash), 버즈콕스(Buzzcocks)와 더불어 브리티쉬 펑크록에 큰 영향을 끼치며 70년대 후반에서 80년대 초반에 걸쳐 큰 성공을 거두었던 그룹이다. 73년, 학교 동창인 폴 웰러(Paul Weller, vocals/guitar), 브루스 폭스턴(Bruce Foxton, bass/vocals), 릭 버클러(Rick Buckler, drums)에 의해 영국 브리티쉬 팝의 한 장르인 모드(Mod)에서 영향을 받은 록 트리오 잼은 결성된다.

77년 폴리더 레코드사(Polydor Records)와 계약을 맺고 클래쉬의 오프팅 밴드로 순회공연에 나서게 된 잼은 곧이어 ‘In the City’로 싱글 데뷔한다. 초기 후(Who)의 음악과 너무 유사하다는 비평에도 불구하고 UK 톱 차트 40위를 점하게 된 이들은 이어 ‘All Around the World’로 UK 20위에 진입했고, ‘News of the World’, 킹크스(Kinks)의 리메이크 곡 ‘David Watts’로 지속적인 인기몰이에 나섰다.

78년 ‘Down In the Tube Station At Midnight’라는 반 인종주의에 관련된 드라마틱한 곡을 발표한데 이어 [All Mod Cons]로 찬사를 받은 그룹은 컨셉 앨범인 [Setting Sons](79)를 발표, ‘Eton Rifles’를 UK 톱 텐의 자리에 올렸다. 곧이어 ‘Going Underground’를 UK 넘버원의 자리에 올리며 화려하게 80년대의 포문을 열며 그룹의 팬층을 공고히 한 잼은 ‘Start’, ‘Town Called Malice’로 UK 정상의 자리를 지켰다.

그러나 이미 77년 전미 순회공연에서 크게 실패했던 전적을 가진 이들의 영국 내에서의 지엽적인 인기는 미국 시장을 점유하기에는 부족함이 있었다. 82년 ‘The Bitterest Pill (I Ever Had To Swallow)’를 차트 2위로 끌어올리며 최고의 전성기를 누리는 가운데, 폴은 돌연 그룹의 해체를 선언하고 새로운 밴드인 스타일 카운실(Style Council)을 결성한다.

그룹의 싱글들이 여전히 히트하고 있고 최정상의 자리에 있는 상황에서 이런 돌연한 발표는 팬들에게는 크나큰 충격이었지만, 이들의 마지막 싱글인 ‘Beat Surrender’가 차트 1위를 차지한 것을 끝으로 그룹은 잼으로서의 굵고 짧았던 음악생을 마감하게 된다. 이후 새 그룹을 결성했던 폴은 솔로로 데뷔하게 되고, 릭과 브루스는 타임 유케이(Time U.K.)에서 함께 활동하다가 후에 브루스만이 스티프 리틀 핑거즈(Stiff Little Fingers)에서 음악활동을 하게 되고 릭은 음악계를 떠난다.

잼이 해체된 후 소속사인 폴리더는 이들의 싱글 13장을 재발매했고, 이 곡들은 모두 UK 톱 차트 100위 안에 진입해 팬들의 변함없는 사랑을 확인시켜주었다. 한때 폴이 인세관련 법정 소송으로 다른 멤버들로부터 고소를 당하는 수모를 겪기도 해 그룹의 명예가 실추되긴 했지만, 3분 짜리 전통 브리티쉬 기타 팝을 구사하며 8, 90년대 음악인들에게 펑크의 청사진을 제시한 잼의 음악적 영향력은 여전한 것으로 남아있다.

디스코그래피
1977 In the City (Polydor)
1977 This Is the Modern World [US] (Polydor)
1978 All Mod Cons (Polydor)
1979 Setting Sons (Polydor)
1980 Sound Affects (Polydor)
1982 The Gift (Polydor)
1982 Dig the New Breed [live] (Polydor)
1990 Peel Sessions [live] (Dutch East)
1990 This Is the Modern World [UK] (Polydor)

Jackson, Michae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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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agans with Michael Jackson” by White House photo by Jack Kightlinger – [1]. Licensed under Public domain via Wikimedia Commons.

80년대 팝의 황제로 등극해 여전히 자신의 입지를 지키고 있는 Michael Jackson(본명: Michael Joseph Jackson)은 1958년 8월 29일 미국 인디애나 州 Gary에서 태어났다. 그는 총 9남매 중 막내로 태어났으며, 그의 아버지 Joe Jackson은 The Falcons라는 무명 로컬 밴드에서 기타리스트로 활동했으며, 어머니 Catherine Jackson은 클라리넷을 연주했다. MIchael Jackson은 물론 Jackson 家의 다섯형제로 결성된 The Jackson 5도 아버지 Joe에 의해 결성된 것으로, 이들의 아버지는 자신이 이루지 못한 꿈을 대신하기 위해 어릴 때부터 자식들을 음악인으로 키우기 위해 혹독을 훈련을 시켰다.

모타운(Motown) 레코드사에서 활동하던 The Jackson 5에서 가장 재능 많은 소년으로 인정 받은 MIchael Jackson은 71년 첫 솔로 앨범 [Got to Be There]을 발표할 수 있었다. 이 앨범에서 71년 ‘Got to Be There’가 1위를 기록하며 히트했고, 뒤이어 같은 앨범의 수록곡 ‘Rockin’ Robin’과 ‘Ben’이 72년 히트를 기록하는 행운을 누리게 된다. 그러나 70년대 초 Jackson과 The Jackson 5의 운도 서서히 쇠퇴해 갔다. 그리하여 이들은 70년대 중반 모타운과의 계약을 해지하고 에픽(Epic) 레코드와 계약을 체결하며, Michael은 자신의 솔로 활동을 단념하고 The Jacksons로 개명한 자신의 형제 그룹에만 충실하게 된다.

이러한 노력으로 The Jacksons는 다시 예전의 인기를 회복하게 되며, Michael Jackson은 79년 당시 최고의 프로듀서 Quincy Jones를 만나게 되면서 솔로로서 앨범 [Off the Wall]을 발표하게 된다. Quincy Jones 후원으로 이 앨범에는 David Foster, Stevie Wonder, Patti Austin 등과 같은 최고의 뮤지션들이 참여해 앨범의 완성도를 한층 높여 줬다. 그리고 맑은 음성을 소유한 소년에서 변성기를 거친 청년으로 성장한 Michael Jackson은 이 앨범을 통해 ‘Don’t Stop ’til You Get Enough’와 같은 댄스곡과 감성적인 발라드 ‘She’s Out of My Life’와 같은 곡으로 변화된 모습을 보여줬다. 그리고 이 앨범은 이전의 솔로 시절이나 The Jackson 5 시절보다 더욱 많은 앨범 판매고를 기록, 차트 10위 권내에 4곡을 진입시키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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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ackson 5 tv special 1972” by CBS Television. Original uploader was We hope at en.wikipedia – Transferred from en.wikipedia; transferred to Commons by User:We hope using CommonsHelper.
(Original text : eBay item photo front
photo back). Licensed under Public domain via Wikimedia Commons.

그러나 Michael Jackson은 형제들을 저버리지 않고 다시 The Jacksons와 함께 앨범을 레코딩했으며, 공연했다. 그리고 82년 그의 최대 히트작이자 역사적인 앨범 [Thriller]를 발표한다. 이 앨범은 2000년이 되기 전까지만 해도 그래미 어워드의 최다 부문 수상작이었다. 물론 2000년 그래미 어워드에서 Santana가 역시 8개 부문을 수상했음으로 아직 동등한 기록을 지니고 있다고 할 수 있으나, 실질적으로 Santana가 9개 부문을 수상한 것과 다름없기 때문에 Michael Jackson으로서는 다소 아쉬운 마음이 들 법하다. 아무려나 [Thriller]는 역사적인 앨범이라는 수식어가 무색하지 않을 만큼 미국 내에서만도 2천만 장의 판매고를 기록했으며, 앨벌 수록곡 9 곡 중 무려 7 곡이 차트 10위 권내에 진입하는 기록을 낳기도 했다.

말할 것도 없이 Michael Jackson은 더 이상 형제들의 도움이 필요없을 만큼 팝계의 제왕으로 떠올랐으나 그는 84년 자신의 형제들과 함께 앨범을 발표하고 또 투어를 계속해 나갔다. 연이어 85년 그는 Lionel Richie와 공동으로 작곡한 ‘We Are The World’로, 아프리카 난민을 돕기 위한 모금 앨범인 [USA For Africa]에 참여하기도 했으며, 87년에는 새로운 솔로 앨범 [Bad]를 발표, ‘J Just Can’t Stop Loving You’, ‘Bad’, ‘The Way You Make Me Heel’과 같은 곡을 히트시키며, 미국 내에서 6백만 장의 판매고를 기록, 5곡을 차트 1위로 올려 놓기도 했다. 이 앨범을 통해 Michael Jackson은 거장 Martin Scorsese와 함께 17분에 이르는 뮤직 비디오를 제작해 이목을 끌었으며, 88년에는 자서전 ‘Moonwalk’를 발간했다가 자신의 아버지로부터 고소를 당하기도 했다.

91년 뉴 잭 스윙(New Jack Swing)의 창시자 Teddy Riley가 프로듀싱한 앨범 [Dangerous]로 다시 돌아온 Michael Jackson은 ‘Black And White’, ‘Remember The Time’, ‘In The Closet’, ‘Jam’을 히트시키며 4백만 장의 판매고를 기록한다. 특히 ‘Black Or White’는 120만 달러를 투자해 뮤직 비디오로 제작돼 화제를 낳았으며, 그는 MTV로부터 ‘King Of Pop’이라는 칭호를 받기도 한다. 이 앨범의 성공에 힘입어 Michael Jackson은 92년 7월 유럽을 시작으로 93년까지 계속되는 두번째 세계 투어를 갖게 됐으며, 94년 가을에는 Elvis Presley의 딸 Lisa와 결혼한다.

그러나 인기가 따르면 그 만큼의 루머(사실이든 아니든)가 따르듯 Michael Jackson은 성추행범으로 고소를 당하는 고역을 치뤄냈으며, 95년 원기회복하여 솔로 더블 앨범 [History]를 발표했다. 이 앨범에는 이미 발표했던 히트곡 15곡과 신곡 15곡이 수록됐으며, 여동생 Janet Jackson과 함께 한 뮤직 비디오에 4백만 달러를 투자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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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스코그래피
1972 Got to Be There Motown
1972 Ben Motown
1973 Music and Me Motown
1975 Forever, Michael Motown
1979 Off the Wall Epic
1982 Thriller Epic
1987 Bad Epic
1992 Dangerous Epic
2001 Bad [Bonus Tracks] Sony
2001 Thriller [Bonus Tracks] Sony
2001 Dangerous [Remastered] Sony
2001 Off the Wall [Bonus Tracks] Sony
2001 Invincible Epic

링크
Official Sit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