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raftwerk / Trans – Europe Expres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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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rans-Europe Express German” by The cover art can be obtained from Kling Klang.. Licensed under Wikipedia.

크라우트록(Krautrock)… 캔,파우스트,노이 등의 실험적 혹 음악은 `아트 록’이 반드시 거장적 연주를 위해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웅변하고 있다 그러나 뒤셀도르프 출신의 크라프트베르크가 `록 음악`을 한 기간은 그리 길지 않았다. `미래는 전자 음악의 시대이다’라고 확신한 이들은 전자 악기 및 전자기기만을 사용한 음악을 만을 사용한 음악을 만들기 시작했다. 이들의 승부수는 로보틱(Robotic)하고 강박적인 일렉트로닉 펄스(Electronic Pulse)에 기포한 감정 없고 비인간적인 사운드였다. 8비트의 규칙적이고 반복적인 리듬, 일렉트로닉 키보드의 리프(혹은 시퀀스)는 자칫 단조롭게 들리기 쉽다. 그러나 22분이라는 오랜 시간을 지속하면서도 이런 단조로운을 떨쳐 버린다. 갖가지 음향효과가 양념처럼 들어가고 특유의 몰환적 기타 사운드는 최면적 효과를 발휘한다. ‘테크놀로지 속의 스피리추오리티'(Spirituclity in technology)라는 후대의 테크노 씬의 맹아는 이미 여기부터 존재한다. 그들의 미래주의적 프로젝트는 멋지게 성공한 듯이 보인다. 그들이 주 영향은 협의의 록 음악분만 아니라 록의 외부까지 멀리 환장된다. 뉴로맨틱스, 알렉토로신서 캅, 하우스, 테크노ㅡ 인더스트리얼, 앰비언트에 이르기까지 크라프트베르크의 유산은 지대하다. 독자는 그들의 초기 작품이 정말 실험적인 록 음반이라고 주장할 지도 모른다. 그렇지만 독일의 록음악이 이 앨범이 없었다면 이렇게 세계적으로 알려졌을까? 나는 이 질문에 대해 회의적인 사람에 속한다.(신 현 준)

Elvis Costello / My Aim Is Tru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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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yAim isTrue” by The cover art can be obtained from Stiff / Columbia / Demon/Rykodisc / Rhino / Hip-O.. Licensed under Wikipedia.

이 인텔리겐차 펑크 로커에 대한 국내에서의 지명도는 처절할 정도로 미약하다. `엘비스`의 이름에 `우디 앨런`의 외양을 한 코미디언 쯤으로 치부하는 사람들 조차 있을 정도이니 할말이 있을리 없다. 그러나, 주지하다시피 엘비스 코스텔로는`70년대를 출발하여 80년대를 거쳐 90년대 중반을 넘긴 현재까지도 활동의 고삐를 늦추지 않고 있는 (허울만이 아닌)존경스런 고장 뮤지션이며 지칠줄 모르는 로커이다. 이 앨범은 `77년 발표된 그의 `역사적` 인 첫 번째 앨범 중 하나로 꼽히고 있다 문화적이고 위트가 넘치는 그의 문장들은 평크 록의 수준을 한 단계 성숙시킨 것으로 평가받고 있으며 동시에 그 자신의 입지를 펑크 록의 한계로부터 끌어 올리는 역할을 하였다. 이 라스트에 그의 앨범이 세장이나 포진하고 있다는 사실은 결코 우연에서 비롯된 것이 아니다(박 은 석)

Roxy Music / Sire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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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oxysiren” by The cover art can be obtained from the record label.. Licensed under Fair use via Wikipedia.

‘아트 록과 글램 록의 사생아’라는 또 하나의 세평을 만들어낸 이 밴드가 와해되기 직전(물론 뒤에 재결합했지만) 발표한 이 앨범은 그들 특유의 복잡 미묘한 분위기를 대폭 간소화했다. 브라이언 페리(Brian ferry)는 이전의 그 미래주의적이고 데카당스한 지향을 거두고 그 대신 상큼하고 유쾌한 크루닝을 전면에 부각시킨다. 당시의 빅 히트작인 디스코풍의 Love Is Drug,이완된 컨트리 풍의 End Of The Line만 들어도 충분하다. 그 점에서 이 앨범은 당시의 데이빗 보위(David Bowie)의 앨범과 더불어 지극히 ‘1970년대적’이다. 때는 ’60년대의 낭만적인 잔치가 끝나고 잔칫상에는 날이 갈수록 파리만 들끓고 있을 때다. 물론 아트 록과 헤비 메탈로 가득찬 잔치를 이어나가고 있었다. 록시 뮤직은 이 복잡 미묘한 시기를 한편으로 경배하고 한편으로 비웃었고, 이제 드디어 맥이 빠졌다. 기타, 드럼, 베이스 뿐만 아니라 신서사이저, 바이올린, 색소폰, 오보에 등이 줄지어 등장하는 이들의 마지막 ‘지성적 키치’가 그 맥빠짐의 증거인가? 그렇게 생각하면 많은 이들이 이 앨범을 ’70년대 록의 고전’으로 꼽는 이유도 어렴풋이 이해된다.(신현준)

@표지속의 저 인어는 Mick Jagger의 동거녀인 Jerry Hall양이다.(아직도 같이 사는진 모르겠지만….)

ZZ To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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ZZ Top Live” by Craig ONeal – originally posted to Flickr as ZZ Top Live. Licensed under CC BY-SA 2.0 via Wikimedia Commons.

지지 탑(ZZ Top)의 음악에 대해서 정의를 내린다면? 정답은 블루스와 록이다. 또한 텍사스와 멤피스이다. 모래 바람과 말발굽 소리, 싸구려 선글라스와 딱 달라붙는 블루진을 입은 남자, 아름다운 여인들과 빠르고 멋진 자동차… 이 정도면 여러분도 대충 짐작이 될 것이다. 그렇다. 이 모든 것이 빌리 기븐스(Billy Gibbons)의 기타와 더스티 힐(Dusty Hill)의 베이스, 그리고 멤버 중 유일하게 긴 수염을 가지고 있지 않은 프랭크 비어드(Frank Beard)의 드럼이 조화롭게 녹아있는 그들의 앨범 안에 들어있다. 70년 말, 데뷔 앨범인 [ZZ Top’s First Album]을 포함해 2000년 현재까지 총 12장의 정규앨범과 3장의 베스트 앨범, 한 장의 블루스 컴필레이션 앨범을 발표하는 동안 많은 음악적 변화를 모색하려 시도했던 그들은 94년 발표한 [Antenna]에서 다시금 70년대의 지지 탑을 연상케 하는 부기우기 사운드로 돌아간 [Rhythmeen]의 연장선상에 있는 [XXX]까지 그들의 트레이드마크인 텍사스 사운드를 충실히 들려주고 있다. 지지 탑은 76년 발표한 앨범 [Tejas]부터 새로운 음악적 모험을 시도했었는데, 83년 발표한 앨범 [Eliminator]에서는 신서사이저 사운드를 도입하기 시작해 댄스, 팝적인 세련된 사운드를 들려주었으나, 90년 발표한 앨범 [Recycler]에서는 너무나도 일렉트로닉적 사운드 메이킹에 집착하는 경향을 보여 지지 탑의 팬들을 실망시키는 결과를 낳고 말았다. 다시 초기의 지지 탑 사운드로 돌아온 빌리 기븐스는 이점에 대해 “우리들은 여러 음악 스타일을 노래하려 하였으나, 앨범을 발표할 때마다 지지 탑만의 개성을 증명할 수 있는 요소를 삽입해 달라는 팬들의 요청에 따라 계속해서 동일한 요소들을 지켜왔다”고 말하고 있다.

changgo.com에서 전재

사족 : 이들의 트레이드마크는 아무래도 두 기타리스트의 기다란 턱수염이다. 그런데 정작 턱수염을 기르지 않은 드러머가 “턱수염”(Beard)이라는 이름을 쓰고 있다.

디스코그래피
1970 ZZ Top’s First Album Warner
1972 Rio Grande Mud Warner
1973 Tres Hombres Warner
1975 Fandango Warner
1976 Takin’ Texas to the People London
1976 Tejas Warner
1979 Deguello Warner
1981 El Loco Warner
1983 Eliminator Warner
1985 Afterburner Warner
1990 Recycler Warner
1994 Antenna RCA
1996 Rhythmeen RCA
1999 XXX RCA

링크
Fan Page
ZZ Top Cover Band
famoustexans.com
Lyrics
ZZ Top Liveband
ZZ Coverband

Young, Pau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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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ul Young by Zoran Veselinovic” by Zoran Veselinovic (note the photographer’s name is corrected here) – http://www.flickr.com/photos/56492970@N07/5705650710/in/photostream. Licensed under CC BY-SA 2.0 via Wikimedia Commons.

“Hey! If we can solve any problem”

로 시작되는 잔잔한 발라드 Every time You Go Away 를 Hall & Oates 의 곡으로 기억하는 이는 별로 없을 것이다. 그 노래는 원래 Paul Young 의 노래인 것이다. 날카로운 송곳 머리와 뾰족한 턱과 코가 인상적이었던 영국 젊은이 Paul Young 은 그렇게 다른 사람들이 불렀던 잊혀진 오리지널을 다시 살려내어 자기만의 색깔을 입힘으로써 명성을 얻은 가수이다.

그는 영국에서 Simply Red 의 Mick Hucknall 과 함께 소위 “파란 눈의 쏘울(blue-eyed soul/pop)” 분야에서 가장 인정받는 가수였다. 그의 가장 큰 재능은 – 자신이 직접 곡을 쓰기도 했지만 – R&B 클래식 중 팬들의 뇌리 속에서 잊혀진 곡들을 발굴해내어 새 생명을 불어넣는 데에 있었다. 앞서 언급한 Every time You Go Away 가 대표적인 경우였고 그의 또다른 히트곡 I’m Gonna Tear Your Playhouse Down 역시 Ann Peebles 의 흘러간 곡을 춤추기 알맞게 리메이크한 곡이다.

1959년 1월 17일 런던에서 출생한 Paul Young 의 첫 음악경력은 여러 로컬밴드에서의 베이스 혹은 키타 담당이었다. 그가 처음 보컬로 나선 것은 The Streetband 라는 뉴웨이브 밴드에서 였고 1978년 Toast 라는 곡이 영국에서 인기를 끌었다. 밴드가 해체된 뒤 Young 은 Q-Tips 라는 쏘울밴드를 조직했다.

1982년 그들은 CBS와 계약을 체결했는데 회사의 관심은 Young 의 쏠로활동이었고 이로 인해 Q-Tips 의 해체는 가속화되었다. 결국 팀은 해체되었고 The Royal Family 라는 Young 의 백밴드가 새로이 구성되었다. 그의 솔로 싱글 Iron Out the Rough Spots 가 1982년 말 발표되었고 연이어 Nicky Thomas 의 레게팝 히트곡인 Love of the Common People 의 리메이크를 발표했다. 두곡의 반응은 그리 신통치 않았으나 Marvin Gaye 의 그리 알려지지 않았던 곡인 Wherever I Lay My Hat (That’s My Home) 가 인기를 얻었고 이로 인해 데뷔앨범 No Parlez 의 판매도 호조를 보였다. 1984년 Young 은 유명한 프로젝트 밴드 Band Aid 에 참가하여 Do They Know It’s Christmas? 를 부른다. 이 곡은 국제적인 인기를 누렸고 이 기세를 몰아 Young 은 I’m Gonna Tear Your Playhouse Down 으로 연예계에 본격적으로 복귀하였다. 1985년 2집 The Secret of Association 이 발매되었고 이 앨범에는 그의 최고의 히트곡 Every time You Go Away 가 수록되어 있었다. 이 곡은 1980년 발매된 Hall & Oates 의 앨범에 수록된 곡이었다. 불과 5년 전에 발표된 곡을 리메이크(!)해서 확실한 자신의 곡으로 만든 것이다.

그러나 그에게는 일종의 콤플렉스가 있었던 모양이다. Young 은 3집부터는 자신만의 곡을 쓰는데 주력했고 1986년 Between Two Fires 를 내놓았다. 그러나 이 앨범은 메이저 히트곡을 배출하지 못했다. 그의 화려한 나날들이 점점 색을 바래갔다. 이후 1990년 새 앨범을 내놓기까지 나머지 80년대는 그에게 있어서는 침묵의 시기였다.

디스코그래피
1983 No Parlez Columbia
1985 The Secret of Association Columbia
1986 Between Two Fires Columbia
1990 Other Voices Columbia
1993 Crossing Columbia
1995 Reflections Vision Music
1997 Paul Young East/West
2003 Love Will Tear Us Apart Columbia

링크
Official Site
Fan Site

Yellow Magic Orchestra

YMO after playing a 2008 concert in London. From left to right: Ryuichi Sakamoto, Yukihiro Takahashi, Haruomi Hosono
By YMO2008.jpg: The_Junes of Flickr.comderivative work: Solid State Survivor (talk) – YMO2008.jpg, CC BY 2.0, Link

굳이 YMO를 이야기하는 이유 두가지. 작년 가을에 일본에 갔을 때 놀란 일이 있다. 타워 레코드에서 신보들을 구경하고 있는데 귀에 익은 음악이 들렸다. YMO의 [Rydeen]이었다. 나온지 십년도 넘은 음악이 갑자기 나오는 이유가 뭐지, 란 생각이 들었다. 알고 보니 YMO의 베스트 음반이 새로 발매된 탓이었다. 일본 젊은이들은 여전히 그들을 일종의 ´전설´로 여긴다. 일본 대중음악인으로선 미국과 유럽 등지의 음악인에게 영향을 준 최초의 그룹이었으니까. 두 번째는 얼마전 국내 발매된 사카모토 류이치의 음반 [BTTB] 탓이다. [Tong Poo]이라는 타이틀의 음악이 사카모토 류이치의 피아노 연주로 흘러나오고 있다. 기억하는 사람이 있을지 모르지만 YMO 시절에 사카모토 류이치가 만들었으며 YMO의 대표곡 중 하나로 꼽히는 곡이다. 새로운 감흥을 자아내는 것이다.

사카모토의 국내 공연이 예정되어 있어선지 요즘 그에 대한 이야기들이 간헐적으로 들려오는 것도 작은 이유다. YMO는 키보드의 사카모토 류이치, 베이스와 키보드의 호소노 하루오미, 그리고 드럼과 키보드의 다카하시 유키히로로 구성된 3인조 그룹이었다. 도쿄 대학 출신의 사카모토 류이치는 전형적인 인텔리 음악인이며 그룹의 리더였던 호소노 하루오미는 음악 제작과 연주를 겸했으며 다카하시는 록 음악인으로 활동하던 인물이다. YMO는 80년대 일본 음악의 지형도를 완전히 바꿔놓았다. 엔카와 댄스, 그리고 록으로 삼분되어 있던 일본 음악계에 테크노라는 새로운 장르를 들이밀었던 것이다. YMO 멤버들은 차갑고 정형화된 음악을, 공연장에서 마치 로봇 같은 매너로 연주했다. 중국의 인민군복을 입고 무대에 등장해 세간에 충격을 던지기도 했다. 이들은 노래의 제목을 장 뤽 고다르의 영화제목에서 빌어오는 등 혁신적인 대중음악을 들려줬다. 그리고 미국으로 발걸음을 향했다.

이들이 외국무대로 향한 것은 [솔리드 스테이트 서바이버 Solid State Survivor]라는 앨범을 발표한 직후였다. YMO의 무개성적인 테크노음악은 당시 록 음악의 대안을 찾고 있던 서양 젊은이들에게 어필했으며 미국 시장에서 앨범을 발매한 YMO는 일본 대중음악인으로선 최초로 세계순회 공연을 하는 활발한 활동을 벌인다. 80년대 초반, 일본에선 ´YMO붐´이라는 현상이 일어나기도 했는데 그만큼 청년들에게 폭발적인 반응을 얻었던 셈이다. 83년에 해산을 한 YMO는 이후 1993년에 멤버들이 다시 모여 신작 앨범을 녹음하기도 했는데 전성기 만큼 열광적인 반응을 얻진 못했다. 이미 음악계의 판도가 댄스풍의 테크노음악으로 바뀌어버린 뒤였기 때문이다. 이들의 음악은 더 이상 젊은 층에 어필할 무엇인가를 상실하고 있었다. 아쉽게도. YMO에 대한 객관적 평가는 다를 수 있다. 이들은 시기적으로 운이 좋은 셈이었다. 전자악기의 보급에 발맞춰, 테크노 음악이라는 새로운 가능성을 들고 나온 셈이었으니까.

하지만 YMO 덕에 이후 일본에서 테크노 음악이 계속적인 흐름을 만들 수 있었으며 그 정신적 자양분을 YMO가 제공하였음엔 의문의 여지가 없다. 이번 공연에서 사카모토 류이치가 [Tong Poo]를 연주할까. 만약 그렇다면, 이미 20여년 전에 일본에서 음악적 신화를 구축했던 세 음악인의 자취를 흐릿하나마 다시 접할 수 있을 것 같다. 사족 한가지. 일본의 젊은이들이 YMO에 갖는 대단한 존경심과 애정을 확인하고 싶은 분은 국내에서 출판된 일본의 판타지 만화 [가면 속의 수수께끼]를 꼭 찾아서 보길 바란다. 이 만화를 그린 작가는 YMO의 대단한 매니아인 듯한데 만화 곳곳에 그들의 음반 자켓과 음악인들 캐릭터를 재치있게 그려넣었다. 그 재미가 쏠쏠하다.

<글: 김 의 찬> 출처 http://www.odemusic.co.kr/(주의 : 현재는 야동 사이트로 연결됨)

디스코그래피
1978 Yellow Magic Orchestra EMI
1979 Solid State Survivor EMI
1980 Public Pressure [live] Alfa
1980 Xoo Multiplies EMI
1981 BGM EMI
1981 Technodelic EMI
1983 Naughty Boys Restless
1983 Service Restless
1984 After Service [live] Restless
1993 Technodon EMI
1997 Yellow Magic Orchestra [Import Bonus Tracks] Sony Music
2003 Zosyoku Japanese Import
2003 Yellow Magic Orchestra: U.S. Edition Sony Music

Yazo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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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ince Clarke and Alison Moyet of Yazoo (1982)” by http://www.yazooinfo.com/photos.html. Licensed under Wikipedia.

1982년 영국에서 결성된 Yazoo는 Vince Clark과 Alison Moyet으로 구성된 2인조 혼성 듀엣이다. 빈스클락은 야주를 결성하기 전에 Depeche Mode에서 리더로 활동하던 뮤지션이다. 그는 이 그룹에서 많은 히트곡을 작곡하기도 했다. 그러나 그는 전공 분야가 컴퓨터였으므로 자신의 컴퓨터에 관한 지식을 활용한 음악을 만들기 위해 그룹을 탈퇴하고 앨리슨모엣과 함께 야주를 만들어 그만의 음악세계를 만들어 갔다.

Alison Moyet은 학창 시절부터 리듬앤블루스에 심취해서 고등학교를 졸업한 후에 본격적인 음악 수업을 위해 London College Of Furniture에 입학하여 자신의 음악성을 정립시켰던 맹렬 여성이었다. 이와 같이 다른 길을 걸어 온 두 사람이지만 1982년 데뷔앨범 Upstairs At Eric’s를 발표하여 유럽 최고의 일렉트로닉 팝 그룹으로 명성을 쌓았다. 개성있는 듀오로 출발하여 환호를 받은 이들은 1982년 유럽 최우수 여성 보컬리스트로 Alison Moyet이 선정되었다. 또한 데뷔 앨범에서 싱글 커트된 Don’t Go는 유럽 챠트에서 넘버 1을 차지했던 최고의 히트 싱글이었다.

미주 지역에서는 1982년 9월부터 이들이 소개되기 시작해서 Situation이 빌보드 챠트에 랭크되어 미국 시장에서도 좋은 반응을 보였다. 미국에서는 이들의 이름이 Yaz로 소개되었는데 미시시피 주에 있는 리듬앤블루스 음반을 제작하는 Yazoo라는 작은 레이블과 이름이 같아 상표권 문제로 이름을 바꾸었다고 한다.

1983년 3월 9일자 빌보드 챠트에 Only You가 67위에 등장하여 한 장의 앨범에서 세 곡이 히트되는 쾌거를 거두었고 앨범 또한 앨범 부문에서도 30주 이상 챠트에 머무르면서 성공의 기쁨을 한 껏 누렸다. 이들은 1983년에 발표된 두 번째 앨범 You & Me Both를 발표한 후에 이들은 해체되었다.

디스코그래피
Upstairs At Eric’S 1982
You & Me Both 1983

링크
팬페이지

Yankovic, Weird A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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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lYankovicByKristineSlipson” by Kristine Slipson – Own work. Licensed under CC BY 3.0 via Wikimedia Commons.

Yankovic이란 이름이 낯선 사람일지라도 그의 음악을 들어보면 어디선가 많이 들어본 그런 친숙함을 느낄 것이다. 그도 그럴것이 우리의 엽기 카피머쉰 “Weird Al”(이름부터 엽기 코드를 채택하고 있음) Yankovic은 자신의 오리지널곡 보다는 이미 차트에서 명성을 날린 바 있는 곡들을 교묘하게 변조하여 부름으로써 – 심지어는 뮤직비디오마저 엽기적으로 모방함으로써 – 그 정체성을 창조해낸 가수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그의 스타일은 흔히 Comedy Rock 또는 Song Parody라 불리우는데 굳이 패로디라는 형식상의 특징이 아니라면 그는 Frank Zappa나 Denis Leary와 같은 weird한 음악계열과 동류로 분류할 수 있을 것이다. 또한 일곱살부터 아코디언을 연주하기 시작한 그는 폴카스타일 – 보헤미안 음악에서 비롯된 매우 빠른 박자의 춤곡 스타일 – 의 스타인 Frank Yankovic(인척관계 없음)의 전통의 계승자라고도 할 수 있다.

Alfred Matthew Yankovic이 본명인 Yankovic은 1959년 10월 23일 캘리포니아에서 출생하였다. 어린 시절부터 데모테잎을 제작하는 등 음악 캐리어를 쌓아나가던 그는 대학에 입학한 후 – 건축전공 – 한 캠퍼스 라디오 방송국에서 활동하면서부터 “Weird Al”이라는 별명을 사용하기 시작하였다. 1979년 The Knack의 히트곡 My Sharona에서 영감을 받은 그는 My Bologna라는 패로디곡을 제작하였다. 이 곡은 의외의 호응을 얻으면서 – 심지어 The Knack 의 멤버들조차 맘에 들어했단다 [국내 어느 탑아티스트와 비교되네] – 그의 본격적인 음악인생이 시작되었다.

1980년 대학을 졸업하면서 Yankovic은 Another One Rides the Bus을 내놓았다(오리지널이 어떤 곡인지는 이미 짐작하셨으리라…). 이어지는 I Love Rocky Road를 내놓은 후 그는 Scotti Bros와 계약을 체결하고 1983년 데뷔앨범 “Weird” Al Yankovic을 내놓았는데 이 앨범에서는 Toni Basil의 히트곡 Mickey를 패로디한 Ricky가 인기를 얻었다. 이어 내놓은 뮤직비디오도 MTV에서 좋은 반응을 얻었다.

그의 성공은 무었보다도 뮤직비디오의 효율적인 활용에서 기인한다. 그는 음악에서뿐 아니라 뮤직비디오에서도 익살스러운 패로디(사실 풍자라고 해석하기에는 좀 뭐하고 메이저가 교묘하게 뒤틀리는 일탈적 모습에 쾌감을 느끼는 마이너적인 감성에 호소한 측면이 많다)로 원작을 교묘하게 비틈으로써 MTV의 주요단골 메뉴가 되었다는 점이 그에게는 큰 이득이었다. 또한 MTV는 그의 개인적인 페르소나를 적극적으로 활용하였는데 그의 하와이언셔츠와 긴 곱슬머리, 그리고 약간은 어벙벙한 그의 표정은 그만의 코믹한 트레이드마크로 십분활용되었다. Michael Jackson이 Beat It으로 큰 인기를 얻은 후 Yankovic은 곧장 Eat It을 대항(?)하였는데 코믹한 뮤직비디오는 엄청한 인기를 얻게 되고 싱글 또한 차트의 상위에 오랜 기간 머물러 있었다.Eat It이 담겨져 있는 앨범 In 3-D에는 이외에도 Police, Greg Kihn Band 등의 곡을 패로디한 곡과 Polkas on 45 등이 인기를 얻었다.

이후에도 그의 창작욕(?)은 끊일 줄 몰라 여전히 왕성한 활동을 펼치고 있다. 개인적으로는 그의 유머는 잘 봐주어도 Naked Gun류의 휴지통 유머에 가까우나 의외로 그를 사랑하는 팬들도 꽤 있는 것 같아 급기야 Yankovic Box Set를 사고야 말겠다는 사람까지 목격한 적이 있다. 🙂

디스코그래피
1983 Weird Al Yankovic Scotti
1984 In 3-D Scotti
1985 Dare to be Stupid Scotti
1986 Polka Party Scotti
1988 Even Worse Scotti
1989 UHF Rock ‘n Roll
1990 Peter & the Wolf/Carnival of The Animals,… Columbia
1992 Off the Deep End Scotti
1993 Alapalooza Scotti Bros.
1995 The TV Album Scotti Bros.
1996 Bad Hair Day Scotti Bros.
1999 Running with Scissors Volcano

링크
Yankovic.org

XT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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XTC bandphoto” by Jean-Luc Ourlin – http://www.flickr.com/photos/jlacpo/5034883/. Licensed under CC BY-SA 2.0 via Wikimedia Commons.

매력적인 멜로디와 생명력이 깃든 포스트 펑크 (post punk)를 선사했던 XTC는 Talking Heads와 함께 “생각하는 사람들의 밴드”로 묶일수도 있었지만 두 그룹의 스타일은 비교할 수 없었다. 그룹은 70년대 후반과 80년대 초반에 영국에서 많은 인기를 얻었다. 멤버들은 대부분 영국 Swindon 지방의 노동자 계층으로 성장했는데 그곳에서는 모두들 정규교육을 팽개치고 팝 음악으로 경력을 쌓으려는 시도를 좋아했다.

Andy Patridge는 말타의 Mediterranean 섬에서 태어났지만 어렸을때 가족은 영국으로 이주했고 15살까지는 학교에 있었다. 그후 신문사에서 “Teaboy”로 일했고 그후에는 지방 기술대학에서 예술수업을 받았으며 남는 시간에는 집에서 혼자 기타를 배웠다. 거의 같은 시기에 Patridge와 같은 블럭에 살고있던 Colin Moulding은 우유배달 조합원, 일일노무자, 그리고 지방자치회에서 일하는 틈틈이 베이스 기타를 배우고 있었다. 드러머는 Terry Chambers로 정해졌는데 그는 15살때 독한 사과주를 너무 많이 마신 사건 때문에 학교를 뛰쳐 나왔다. 그 나이또래 아이들처럼 건설자재 상인이나 서판인쇄공 등의 여러가지 직업을 거쳐 일하면서도 음악적 성공에 대한 꿈을 갖고 있었다.

1976년 셋이 모여 XTC를 결성하기 이전에는 Star Park, The Helinum Kids, Skyscraper 그리고 Snakes 같은 다른 밴드에서 때로는 함께 때로는 떨어져서 연주를 했다. 그룹의 키보드 연주자로 Barry Andrews를 합류해 4인조로 활동했다. 1977년초, 그들은 Swindon 지역에서 지지기반 세력을 확보했다. 이러한 반응과 지방 비평가들이 쓴 호의적인 평론, 즉 열악한 10대 고용원들의 환경을 유머와 신랄한 비평을 조화시킨 밴드에 대한 칭찬에 힘입어 Patridge와 그의 친구들은 당시 펑크의 기세가 가득했던 영국으로 진출해야 될 때라고 느꼈다.

1977년 중반, Virgin Records와 계약을 맺고 10월에 데뷰싱글 “3 DEP”를 발표했고 이어서 79년에는 영국에서 Top 20 안에 든 “Making Plans For Nogel“을 비롯해 5곡의 싱글을 더 발표했다. 78년, Virgin Records는 밴드의 첫 앨범이자 2장의 영국식 앨범 White Music과 Go2를 발매했고 둘 다 영국순위 Top 30을 기록했다.

밴드는 이 앨범들을 영국에서 시작해 일본, 호주, 뉴질랜드, 베네주엘라, 유럽대륙 드리고 종국에는 미국에까지 이어지는 거의 쉴틈없이 진행된 순회공연으로 홍보했다. 밴드가 미국에서 데뷔하게 된것은 1978년 새해전야에 Talking Heads가 참가하는 프로그램에서였다. 청중들의 반응은 79년 초에는 몇배로 늘어날 것이라는 전망을 하기에 충분한 것이었다. 또 레코드사에서는 그해말에 게획한 훨씬 야망있는 순회공연과 때를 맞춰 밴드의 미국시장 첫 앨범인 Drums And Wires가 나왔다. 그런일들이 있기전에 밴드는 Andrews가 탈퇴를 결심하자 재결성을 위해 잠시 Swindon에 돌아가야 했다. 그의 자리는 예전에 밴드와 함께 키보드를 연주했던 적이 있는 Dave Gregory가 넘겨받았다. 그의 전력은 Dean Gabber와 그의 Gabberdines에서 기타리스트와 키보디스트로 활동한 것을 꼽을수 있다.

새로운 결성도 여전히 영국 비평가들에게는 칭찬을 얻었다. New Musical Express에 기고한 Paul Morley는 “재치와 우아하고 다각적인 음악을 만드는… 그들의 음악은 새로운 형용사를 요구한다.” 라며 박차를 가하고 있는 밴드를 격려했다. Melody Maker의 John Orme는 Drums & Wire를 복합성, 대조, 풍부함 그리고 유머까지 XTC는 껍질을 부수고 새로운 땅을 개척했다.”라며 일컬으며 인상적인 작품이라고 했다. Patridge는 레코드사 약력에 이렇게 썼다. “난 환각의 시간에 대한 음악에 심취했고 그것을 마법이라 생각한다. 그것은 R&B에 마술을 섞은 종류의—이것이 진짜 우리가 하는 일이다… 난 사람들이 ‘오! 맙소사! 저게 뭐야?’라고 생각하는 음악을 좋아한다. XTC는 언제나 사람들이 ‘맙소사’ 라고 말하게 하고 그 모든것이 타당한 이유라고 본다.” 미국에서 가졌던 실황공연에 힘입어 앨범 Drums And Wires 는 밴드를 알고 있는 상당수의 미국 팬들을 확보했다. 뒤이은 걸작 Black Sea는 50위까지 올라갔다.

1981년 말이 되자 라이브를 계속 할 수 없는 몇가지 징조들이 밴드 멤버들 사이에 나타난다. Patridge의 경우에는 모든 종류의 군중들을 선천적으로 강하게 혐오하는 증세를 고치려고 애썼다. 밴드의 새앨범 English Settlement는 영국과 미국에서 동시 발매 됐는데 고향인 영국에서는 반응이 좋았으나 Black Sea가 얻었던 호응을 얻지 못했고, 아마도 그 이유를 공연홍보의 부족으로 여기는 듯했다. 1982년말, Terry Chambers는 활도의 빈곤함에 불만을 품고 호주의 새로운 목장을 찾아 그룹을 떠났다. 나머지 멤버들은 3인조로 활동할 것을 결정했다. 83년에 그들은 또다른 스튜디오 앨범을 제작하는데 어쿠스틱 연주가 강조된 것이었다. Murmur는 미국의 새로운 레이블인 Geffen Records에서 발매됐다. 앨범은 영국과 미국차트에 오르는데 그다지 많은 시간을 들이지 않았고 팬들 가운데에는 이전의 앨범에 비해 부드러운 톤에 당혹해 할것이라는 의견도 있었다.

1984년 밴드는 새로운 스튜디오 앨범을 편집하기 위해 햇병아리 시절의 Hard-Blues를 다시 추구하기 시작했다. Patridge는 “우리의 새앨범과 더불어 저도 심기일전하고 싶었어요. 음악은 훨씬 흥겨운 기분이 들겁니다. Murmer의 가사는 저희집 뒷뜰 크기에 대한 아주 작은 목표를 담고 있어요. 새앨범 The Big Express는 우리에게 다시 세상을 둘러보게 한 더욱 Hard한 앨범입니다.”라고 말했다. 그 앨범은 1984년 10월 미국의 Geffen에서 발매 되었는데 이것은 흥미는 있었지만 골수팬들을 빼고는 구매자들의 구미를 다시 돋구진 못했다. (1985년 <25 O’Clock>은 영국에서만 발매되었다.) Geffen의 간부들은 밴드의 중요성을 레이블처럼 다수의 록팬들에게 인식시켜야 한다는 확신을 표명하고 1986년에 새로운 앨범 Skylarking을 발매했다. 영국밖에서 그룹의 문제점들이 크게 부각되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Patridge는 항상 낙천주의를 고수하고 있었다.

그는 Kristine McKenna(Los Angeles Times, 1982년 4월 4일자)와의 대담에서 이렇게 표현했다. “팝음악은 즐거움과 대학살로 가득합니다. 마이크를 구부리고 셔츠를 잘라 블라우스로 만들어 입죠. 우린 그런 행동은 하지 않았는데 우리가 특별히 잘 생기지 않거나 셔츠를 잘라 만든 블라우스 타입이 아니라서가 아니라 우리에게 다른 목표가 잇었기 때문입니다. 음악이 문명을 바꿀수는 없지만 희망을 줄 수 있다고 믿습니다. 아마 내가 고지식해서 그렇게 믿고 있는지도 모르겠습니다만 그것이 제가 바라는 일입니다.”

Punk 77.com

디스코그래피
White Music (1978)
Go2 (1978)
Drums And Wires (1979)
Black Sea (1980)
English Settlement (1982)
Mummer (1983)
The Big Express (1984)
Skylarking (1986)
Oranges And Lemons (1989)
Nosuch (1992)

링크
팬페이지
Weiv의 Skylarking Review
Lyrics
Italian Fan Page

Wire

Wire sept 2013.jpg
Wire sept 2013” by Fergus Kellyhttp://www.flickr.com/photos/55867717@N00/10017094715/. Licensed under CC BY-SA 2.0 via Wikimedia Commons.

1977년의 데뷔앨범 Pink Flag으로 이미 거장밴드로 등극한 Wire는 동시대의 펑크밴드들이 흉내내기 어려운 독특한 면을 가지고 있었다. 이 앨범에는 인스트리얼과 미니멀리즘적인 분위기를 강렬히 풍기는 Lowdown에서 초기 락앤롤의 명랑함이 담겨져 있는 파워팝 넘버 Mannequin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음악적 지형을 40분이라는 짧은 플레이시간에 담아내는 뛰어난 음악적 역량을 선보였다. 이어진 Chairs Missing과 154은 전작만큼의 성과를 얻어내진 못하였지만 그들은 그룹의 음악적 역량을 꾸준히 확장시키고 세련되게 만들어갔다. 그룹의 컬트팬들이 점차 늘어가고 있는 와중인 1979년 Wire는 그들의 아이디어가 고갈되었다며 돌연 해체를 선언한다. 다양한 솔로 프로젝트로 여러 해를 보낸 밴드 멤버들은 1986년 재결성하여 다음 몇년동안 일련의 실험적인 팝레코드 시리즈를 내놓는다. 1987년 The Ideal Copy는 이전 작품과 다르게 신쓰팝적인 요소와 디지털 텍스춰가 본격적으로 도입되었다. 사운드적으로는 인상적인 기타리프와 그루브한 리듬파트가 New Order의 그것과 상당히 유사하다. 비평은 호의적이었지만 이전만큼 열광적이진 않았다. 이때쯤 그들을 향한 컬트적인 호응은 점차 사그라들었고 Gotobed가 1991년 그룹을 떠났다. 남은 멤버들은 그룹의 이름에서 e를 뺀 Wir란 이름으로 활동하다가 조용히 세간의 관심에서 물러났다. 그리고 돌연 2001년 그들은 다시 스튜디오에 나타났고 2002년 6개의 트랙이 담긴 앨범 Read & Burn 01을 내놓았다.

1995년 Elastica는 그들의 힛싱글 Connection에 Wire의 곡 Three Girl Rhumba를 샘플링하기도 하였다.

멤버 : Art students Colin Newman (guitar, vocal), Bruce Gilbert (guitar), Graham Lewis (bass, vocal), and Robert Gotobed (b. Mark Field; drums)

디스코그래피
1977 Pink Flag [Restless]
1978 Chairs Missing [Restless]
1979 154 [Restless]
1981 Document and Eyewitness [live] [Mute]
1987 The Ideal Copy [Mute]
1988 A Bell Is a Cup…Until it Is Struck [Mute]
1989 It’s Beginning To & Back Again [Enigma]
1990 Manscape [Restless]
1991 The First Letter [Mute]
2002 Read and Burn, Vol. 1
2002 Read & Burn 01 [Pink Flag]

링크
Official Site
Wireviews
Pink Flag 전곡 가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