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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ove Actually

대강의 스토리만으로도 영화의 작위성을 짐작할 수 있었기 때문에 한동안 볼 생각을 하지 않았다. 하지만 연말연시에는 뭔가 작위적이라도 가슴 따뜻한 영화를 봐줘야 좋지 않을까 하는 생각과 오랜만에 런던의 풍경을 배경으로 하는 영국 악센트의 영화를 보고 싶다는 생각에 고르게 되었다. 영화에 등장하는 사람들은 모두 애정의 방향이 어긋나 있었다. 죽은 아내를 그리워하는 남편, 비서를 사랑하게 된 수상, 전혀 말이 안 통하는 외국인을 사랑하게 된 작가, 가장 친한 친구의 아내를 사랑하게 된 남자 등등. 그리고 결과는 다들 예상하고 있다시피 해피엔딩이다. 극중 인물의 청혼에서 한 말처럼 우리는 이 작위적인 해피엔딩을 ‘크리스마스니까’ 용서해줄 수밖에 없다. 왜 크리스마스에는 누군가를 용서해줘야 하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Don’t Look Now

미래를 내다보는 능력(축복 또는 저주)을 지닌 한 남자와 그의 아내가 겪게 되는 초자연적인 경험을 소재로 한 심리 스릴러다. 익사사고로 딸을 잃은 존박스터(도널드 서덜랜드)와 로라 부부는 남편의 일 때문에 베니스를 찾는다. 실의에 빠져 있던 로라가 식당에서 우연히 딸의 존재를 느끼는 영매를 만나면서 이야기는 전개된다. 로라는 남편이 위험에 빠져 있다는 죽은 딸의 메시지를 전하는 영매의 말을 믿고 이를 남편에게 전하지만 존박스터는 미신으로 치부해버린다. 그러나 이어지는 공사장에서의 사고와 하나 남은 아들의 사고 등으로 인해 부부는 갈등에 처하게 된다. 물의 도시라는 베니스의 특성과 부부의 심적 상태가 묘한 화학적 반응을 일으키며 한 가족의 불안한 미래가 끊임없이 암시된다는 점에서 영화는 극적긴장감을 효과적으로 유발시키고 있다. 한편으로 극의 공포스러운 분위기와 대비를 이루는 베니스의 아름다운 풍경과 서정적인 배경음악은 오히려 시각적, 청각적 상승효과를 가져오고 있다.

구타유발자

이런 저런 잔가지들이 많으나 요는 폭력은 세습(?)된다는 내용의 영화. 이문식, 오달수 등 때려주고 싶게 생긴 배우들이 나와서 예상대로 엄청 얻어터진다. 그들이 얻어터지는 이유는 스포일러이므로 생략하기로 한다. 일단 시작은 존부어맨 감독의 Deliverance(우리나라 비디오 출시명 : 서바이벌게임)를 연상시킨다. 도시 놈들이 촌놈을 깔보다가 된통 당한다는 딜리버런스의 설정처럼 촌놈들을 깔보던 대학교수가 촌놈들에게 붙들려 요도가도 못하는 신세가 되고 만다. 그 와중에 왕따를 당하던 고등학생이 끌려와 아랫도리를 벗는 등 치욕을 당하다가 골뱅이(이문식)가 교수와 고등학생을 싸움을 붙이면서 극은 걷잡을 수 없는 방향으로 치닫는다. 최소의 로케이션과 배우들로 폭력의 사회학을 파헤치고 한 감독의 의도는 어느 정도 호소력이 있으며 반전 역시 나름의 기대치에 부합한다.

Cocoon 2 : The Return

1편을 보지 못하고 2편부터 봐버렸다. 덕분에 처음에 극의 흐름을 잘 이해하지 못하는 난독증 증세를 보이며 작품을 감상해야 했던 어려움이……. 1편은 대충 어느 날 나타난 외계인들이 노인들의 원기를 회복시켜주어 제2의 청춘을 살게 되고 결국 그들과 함께 영원히 늙지 않는 행성을 날아간다는 다소 특이한 소재의 에스에프 영화였다. 2편에서는 이런 그들이 지구에 남겨놓은 코쿤(외계생명이 자라나는 큰 알)이 위기에 처해있음을 알게 되고 다시 되돌아와 코쿤을 회수해나간다는 스토리다. 이 큰 줄기를 둘러싸고 가족의 재회, 지구로 돌아옴으로써 재발하는 노인들의 병, 지구에 남았던 다른 친구의 과거에 대한 완고함 등 노인들과 가족들 사이에서 생기기 마련인 인생사의 고민 등이 에피소드로 펼쳐진다. 전편의 후한 점수에 비해 이 작품은 좋은 점수를 받진 못했지만 노인들의 삶에 대한 노련함과 완고함, 죽음에 대한 여전한 두려움 등 세세한 감정들이 묘사되어 있어 드라마적 기반은 탄탄한 편이다. 연구원으로 등장하는 The Friends 의 히로인 Courteney Cox 의 젊은 시절도 감상할 수 있는 작품.

가족의 탄생

요즘 연기 좀 한다하는 배우들이 다 모였다. 문소리, 고두심, 엄태웅, 공효진, 봉태규, 유승범 등등.

가족에 시달리고 가족에 목매인 낯선 사람들끼리 모여서 가족을 형성하는 외로운 사람들에 관한 영화이다. 극은 마치 별로 개연성 없는 삼부작처럼 진행이 된다. 철없는 남동생 때문에 괴로워하는 누나, 철없는 엄마 때문에 괴로워하는 딸, 그리고 너무 정이 많은 애인 때문에 괴로워하는 남자. 서로가 현재의 가족, 또는 미래의 가족으로 인한 상실감으로 몸서리를 친다. 이들이 어떻게 가족을 이룰 것인가 하는 해법은 영화를 보는 이들의 몫으로 남겨놓는다.

연기 좀 한다하는 이들이 모인 덕택에 작품 감상은 매끄러운 편이다. 특히 철없는 동생 역을 맡은 엄태웅의 능청스러운 연기는 볼을 꼬집어주고 싶을 정도로 얄밉다. 그렇지만 후반 노년연기를 보여주는 일부 배우들의 어색함은 시야를 방해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단절하려야 단절할 수 없고 결국은 낯선 이들끼리라도 가족을 만들고자 하는 인간들의 너저분한 불완전함을 잘 서술해주고 있는 웰메이드 영화임에는 틀림없다.

예쁜 금자씨, 이제는 평안히 쉬소서

어제 모처럼 주말에 쉬었던 관계로 영화 한편 감상하였습니다.

감상한 영화는 ‘친절한 금자씨’ 영화 제목 자체가 심상치 않아 인구에 회자되고 ‘안녕 프란체스카’에서 ‘건방진 금자씨’로 패러디되기까지 했던 영화라 왠지 감상 전부터 이미 친숙해있던 영화였습니다.

하지만 영화를 보니 입소문에 비해 대중의 코드와는 괴리가 있는, 즉 흥행요소가 별로 없는 영화였다는 심증이 사실로 드러났습니다. 한마디로 이 영화의 장르를 표현하자면 ‘잔혹 여인극장 코미디 버전’이라고 할까요? 소싯적 오전 시간 라디오나 TV에서 종종 들려오던 목소리 기억하시죠? “금자씨는 제니의 그런 모습을 보고 더더욱 저며 오는 모성애를 부둥켜안고 울어야만 했다” 뭐 이런 유의 신파조의 읊조림 말이죠.

시대배경은 2004년 임에도 의도적으로 펼쳐지는 과장된 복고풍의 미장센, 화장, 그리고 의상은 비정상적인 캐릭터, 그리고 줄거리와 함께 영화를 더욱 비현실적으로 만들었습니다.

줄거리에 대해서 잠깐 이야기해볼까요? 이 영화는 줄거리를 이야기해봤자 특별히 스포일러랄 게 없을 만큼 처음부터 패를 까놓고 진행됩니다. 올드보이 식의 반전을 기대한다면 실망이 크실 겁니다. 다만 영화 중간 중간에 배치되어 있는 의외의 장면에 대한 당혹감으로 극적 긴장감을 채워가고 있죠. 복수심의 원천이 올드보이가 까닭모를 구속에 대한 호기심이었다면 금자씨에서는 모성애입니다. 복수심이 이성이 아닌 본능에서 연유하는 것이라면 모성애야말로 가장 큰 복수심의 원천이겠죠.(복수는 나의 것은 부성애였죠? 아마?)

그러나 역시 이 영화에서 줄거리보다 더 눈길을 끄는 것은 ‘스타일’입니다. 이영애가 어떻게 변하였는가?, 권총은 왜 그렇게 예쁘게 만들어야 했는가?, 복수를 끝낸 이들은 왜 핏빛 케익을 즐겼는가?(일종의 카니발 의식?) 등등이 영화의 관전 포인트라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중간 중간 등장하는 유머코드는 사실은 대중성을 의식한 감독의 타협이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현존 문명세계에서는 인간의 죄악을 사법체계에 의존하지만 영화라는 장르는 끊임없이 사적인 복수극에 유혹을 느낍니다. 더티해리 시리즈에서는 크린트이스트우드가 형사임에도 불구하고 법이 아닌 총에 의존하여 복수극을 감행하고, 스파이더맨이나 슈퍼맨같은 초능력자들도 법이 아닌 자신의 초인성을 수단으로 복수를 감행합니다. 금자씨 역시 감옥에서 다져진 냉철하고 초인적인 의지로 상황을 돌파해내죠.

결국은 복수를 통하여 카타르시스를 느끼지만 그 카타르시스는 배트맨의 복수극처럼 허망합니다. 복수를 끝낸 후 빨간 아이섀도를 지우면서 자신의 복면을 벗어버리지만 관객인 저로서는 ‘그래서 어쩌라고?’하는 아쉬움이 머릿속에 남아있습니다. 절대 악인 한 명이 지구상에서 사라졌지만 슈퍼맨 있다고 세상이 평화로워지지 않듯이 금자씨가 복수를 했다고 유괴라는 범죄가 이 세상에서 사라지지는 않습니다. 그렇다면 영화에서 남는 것은 배트맨이나 슈퍼맨에서 볼 수 있는 스펙타클 정도일 텐데 금자씨가 그나마 기대고 있는 것은 스타일과 블랙유머일뿐이죠. 금자씨는 올드보이에서 최민식이 보여줬던 막가파적 액션을 보여주기에는 너무… 예뻐서일까요?

Mon Oncle

찰리채플린에 필적할만한 프랑스의 희극배우이자 영화감독인 자끄타티 Jacques Tati 가 자신만의 캐릭터 윌롯 Hulot (자끄타티)을 내세워 만든 그의 첫 칼라필름. 선량하지만 각박한 현대문명에는 도무지 적응을 못하는 밉지 않은 캐릭터 Monsieur Hulot은 감독의 53년작 Les Vacances De Monsieur Hulot에서 처음 등장한 이후 감독의 또 다른 자아(alter ego)의 역할을 담당하였다. 영화는 감독의 첫 칼라필름이라는 사실이 믿기지 않을 만큼 아름다운 색채로 칠해져 있다. 그리고 이러한 색채감은 윌롯의 형 부부가 사는 초현대적인 집을 묘사하는데 더없이 잘 활용되었다. 이들 부부는 전형적인 부르주아로 경제학자 베블렌이 묘사한 “과시적 소비”의 표본으로 사용해도 좋을만한 속물들이다. 이에 반해 윌롯은 우스꽝스러운 집단주택에 살면서 현대의 기계문명에 적응하지 못하는, 어린 조카를 마중 나가는 것이 삶의 기쁨인 천진난만한 인물이다. 감독은 이러한 대비를 통해 어린 시절의 순수함과 부르주아의 속물근성을 잘 대비시키고 있다. 아기자기한 에피소드와 익살이 나른한 토요일 오후와 잘 어울리는 영화.

영화소개

Amarcord

영화 제목 Amarcord 는 “나는 기억한다”를 의미하는 이탈리아어 “Mi Ricordo”를 소리나는대로 적은 시적인 표현이라고 한다. 이탈리아의 거장 페데리코 펠리니 Federico Fellini 의 반(半)자서전적인 이 영화는 1974년 발표되어 아카데미 최우수 외국어 영화상을 수상하였다. 무솔리니 시절의 이탈리아의 한 해안가 마을의 풍경을 담은 이 영화는 소년의 정욕, 여인들의 밉지 않은 허영, 파시즘에 대한 이탈리아인의 복잡한 심정, 정신병에 시달리는 삼촌의 에피소드 등이 병렬적으로, 동시에 애정 어린 시선으로 그려지고 있다. 따뜻한 영화.

Hannah and Her Sisters

뉴욕이라는 공간을 배우에 버금가는 주요배역으로 격상시킨 우디알렌이 애니홀과 맨하탄 등에 이어 또 한 번 뉴욕과 뉴욕에 거주하는 사람들에 관한 이야기를 영화화하였다. 서로가 물고물리는 애정관계는 때로는 유치하게 때로는 강박적으로 서로를 구속하고 서로를 애태우고 또 서로를 성숙시키기도 한다. 몰라도 아는 척 알아도 모르는 척 가족이라는 뗄 수 없는 유대관계를 지키기 위해 때로는 자신의 자존심을 지키기 위해 등장인물들은 위험한 줄타기를 반복한다. 누가 도덕적으로 더 옳은 것인가 하는 도덕적 판단기준은 이 영화에서 주된 포인트가 아니다. 하지만 영화 말미에 우디알렌에게 닥친 시련 – 일종의 반전? – 은 “사랑이란 원래 그렇게 허무한 것이야” 라고 가벼운 충고 한마디로 치유 가능한 것일까? 마이클케인이 우유부단한 한나의 남편 역을 잘 소화해주었고 대배우 맥스폰시도우 Max von Sydow 가 자존심강한 화가 역으로 출연한다.

Poltergeist

1974년 ‘텍사스 전기톱 살인사건(>The Texas Chainsaw Massacre)’으로 단숨에 공포영화팬들의 간담을 서늘하게 했던 토브후퍼(Tobe Hooper)가 스티븐스필버그와 손잡고 만든 공포영화. 평화로운 한 중산층 공동주택 단지에 살던 가족에게 찾아 온 믿기 어려운 초자연적 현상과 이로 인한 가족의 고통을 다룬 영화. 그들 가족이 고통 받은 이유는 그 공동주택단지의 터가 원래 공동묘지였고 개발업자가 시체들은 이장을 해주지 않아서 그 유령들이 소동을 피운다는 다소 동양적인 감성을 지니고 있다.

개발업자야 이장비용으로 인해 사업타당성에 악영향을 미쳤을 테니 그런 짓을 했을 테고 유령들은 가족들이 무슨 죄가 있다고 괴롭혔는지 영화를 다 보고도 잘 이해가 되지 않았다. 괴롭히지 않고 잘 달래야 개발업자를 찾아가 이장을 해달라고 하든지 뭐라도 소원수리를 할 것 아닌가?

여하튼 영화는 꽤 흥행에 성공했고 속편이 3편까지 만들어졌다 한다. 그런데 희한하게도 이 영화에 출연한 큰 딸 역의 도미니크 던이나 작은 딸 역의 헤더오르크가 어린 나이에 죽는 등 영화의 출연자들의 의문의 죽음이 꼬리를 물어 ‘폴터가이스트의 저주’라는 말이 생기기도 했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