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 BEST ALBUMS OF THE EIGHTIES

출처 : Rolling Stone誌

순위 아티스트 앨범제목 발표연도
100 Artists United Against Apartheid Sun City 1985
99 Was (Not Was) What Up, Dog? 1988
98 UB40 Labour of Love 1983
97 Graham Parker The Mona Lisa’s Sister 1988
96 Culture Club Colour by Numbers 1983
95 John Cougar Mellencamp Scarecrow 1985
94 New Order Power, Corruption & Lies 1983
93 Luther Vandross The Night I Fell in Love 1985
92 Tom Petty Full Moon Fever 1989
91 Lyle Lovett Lyle Lovett 1986
90 Sting …Nothing Like the Sun 1987
89 Aretha Franklin Who’s Zoomin’ Who? 1985
88 Jackson Browne Lives in the Balance 1986
87 Rolling Stones Steel Wheels 1989
86 Bruce Springsteen The River 1980
85 Neil Young Freedom 1989
84 George Michael Faith 1987
83 David Bowie Let’s Dance 1983
82 Squeeze East Side Story 1981
81 Van Halen 1984 1984
80 Suzanne Vega Suzanne Vega 1985
79 Steve Earle Guitar Town 1986
78 The Human League Dare 1981
77 Robbie Robertson Robbie Robertson 1987
76 PiL Second Edition 1980
75 Cyndi Lauper She’s So Unusual 1983
74 Prince Sign “?” the Times 1987
73 Don Henley Building the Perfect Beast 1984
72 Marshall Crenshaw Marshall Crenshaw 1982
71 Crowded House Crowded House 1986
70 Traveling Wilburys Traveling Wilburys, Vol. 1 1988
69 LL Cool J Radio 1985
68 The Specials Specials 1979
67 Randy Newman Trouble in Paradise 1983
66 The Neville Brothers Fiyo on the Bayou 1981
65 10,000 Maniacs In My Tribe 1989
64 Living Colour Vivid 1988
63 Gang of Four Entertainment! 1979
62 Def Leppard Pyromania 1983
61 Captain Beefheart and The Magic Band Doc at the Radar Station 1980
60 Lou Reed The Blue Mask 1982
59 George Clinton Computer Games 1982
58 Various Artists The Indestructible Beat of Soweto 1986
57 Pete Townshend Empty Glass 1980
56 Joy Division Closer 1980
55 John Fogerty Centerfield 1985
54 Talking Heads Speaking in Tongues 1983
53 John Hiatt Bring the Family 1987
52 Dire Straits Making Movies 1980
51 Run-D.M.C. Run-D.M.C. 1984
50 Madonna Madonna 1983
49 The Feelies Crazy Rhythms 1980
48 XTC Skylarking 1986
47 Tina Turner Private Dancer 1984
46 Peter Gabriel Peter Gabriel 1980
45 Sonic Youth Daydream Nation 1988
44 Bob Dylan Oh Mercy 1989
43 Bruce Springsteen Nebraska 1982
42 Robert Cray Strong Persuader 1986
41 R.E.M Document 1987
40 U2 War 1983
39 ZZ Top Eliminator 1983
38 Elvis Costello and The Attractions Imperial Bedroom 1982
37 Marvin Gaye Midnight Love 1982
36 Anita Baker Rapture 1986
35 Metallica Kill ‘Em All 1983
34 The Rolling Stones Tattoo You 1981
33 Husker Du Zen Arcade 1984
32 John Cougar Mellencamp Uh-Huh 1983
31 Roxy Music Avalon 1982
30 Los Lobos How Will the Wolf Survive? 1984
29 John Lennon & Yoko Ono Double Fantasy 1980
28 Janet Jackson Control 1986
27 Guns n’ Roses Appetite for Destruction 1987
26 AC/DC Back in Black 1980
25 Bruce Springsteen Tunnel of Love 1987
24 X Los Angeles 1980
23 Black Uhuru Red 1981
22 The Smiths The Smiths 1984
21 Tom Waits Rain Dogs 1985
20 Pretenders Pretenders 1980
19 Lou Reed New York 1989
18 Prince Dirty Mind 1980
17 The Police Synchronicity 1983
16 Prince 1999 1982
15 The Replacements Let It Be 1984
14 Peter Gabriel So 1986
13 Midnight Oil Diesel and Dust 1987
12 Public Enemy It Takes a Nation of Millions to Hold Us Back 1988
11 Elvis Costello and the Attractions Get Happy!! 1980
10 Tracy Chapman Tracy Chapman 1988
9 Richard & Linda Thompson Shoot Out the Lights 1982
8 R.E.M. Murmur 1983
7 Michael Jackson Thriller 1982
6 Bruce Springsteen Born in the U.S.A. 1984
5 Paul Simon Graceland 1986
4 Talking Heads Remain in Light 1980
3 U2 The Joshua Tree 1987
2 Prince and The Revolution Purple Rain 1984
1 The Clash London Calling 1979

London Calli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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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ClashLondonCallingalbumcover” by The cover art can be obtained from Epic Records.. Licensed under Wikipedia.

BBC의 2차 대전 당시 전 세계를 대상으로 하는 방송의 호출 신호에서 이름을 딴 The Clash의 세 번째 앨범 London Calling을 녹음할 당시 밴드는 빚에 쪼들리고 관리해주는 사람도 없었다. 그들 주위에는 경기침체로 인한 실업, 인종적 갈등, 약물 남용 등으로 고통 받는 이들로 가득 차 있었다. Joe Strummer의 이야기다. “우리는 투쟁 중이라고 생각했어요. 경사지나 뭐 그런 것에서 막 미끄러져 내려가는, 손톱으로 움켜쥐고 있는. 그리고 거기엔 우릴 도울 사람이 아무도 없었죠.” 음악은 마치 밴드가 전쟁터로 행진해나가는 듯하다. 기타를 친다기보다는 두드린다는 느낌에 가까웠고 베이스 역시 전투적이었다. 앨범 제목과 같은 타이틀 송은 묵시록적이고 반사회적인 분위기를 한껏 풍겼고, 보컬을 맡은 Strummer는 여러 재난에 대해 노래하는데 특히 “nuclear error”는 1979년 펜실베니아 스리마일섬에서 실제로 발생했던 원자력 사고를 의미한다. Strummer는 마지막 가사로 “I never felt so much a-like …”를 읊조리고 노래는 모르스 부호가 울리며 끝난다. Don Letts이 감독한 비디오에서 밴드는 비에 젖은 테임스 강위의 보트에서 노래를 부른다. 롤링스톤誌는 이 노래를 ‘가장 위대한 500곡’ 중에서 14위 곡으로 선택한다.

AllMusic 리뷰
위키피디어 곡 소개
뮤직비디오

Let’s Hear It For The Bo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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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niece Williams the Boy” by The cover art can be obtained from Columbia Records.. Licensed under Wikipedia.

1984년 5월 26일 Deniece Williams가 부른 “Let’s Hear It For The Boy”가 빌보드 핫100 싱글차트 1위에 올라 2주간 머물렀다. 클럽플레이 차트에는 같은 해 5월 19일 1위에 올라 1주간, 같은 해 6월 2일에는 R&B 싱글 차트 1위에 올라 3주간 머물렀다. 그리고 영국 싱글 차트에는 2위까지 올랐다. Tom Snow와 Dean Pitchford가 만든 이 곡은 Deniece Williams에게는 세 번째 R&B 차트 탑 싱글이 되었다. 영화 Fame으로 오스카 상을 수상한 경력이 있는 작곡가 Dean Pitchford는 새 영화 “Footloose”의 사운드트랙을 위해 Deniece Williams와 프로듀서 George Duke의 도움을 요청했다. Duke는 처음에는 반응이 시큰둥했지만 Denice가 함께 일하자고 설득했다. Duke는 Paul Jackson, Jr.(기타), Paulinho da Costa(퍼커션)와 같은 뮤지션을 불러 모은 뒤, 스스로 신디싸이저와 린드럼 프로그래밍을 담당하여 곡을 완성했다. Pitchford는 첫 결과물을 들어보고는 그 트랙을 맘에 들어 하지 않았다. Denice가 “너무 귀염을 떨면서” 노래를 부른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필름에 이 노래를 삽입해야 하는 시기가 다가오자 그는 직접 L.A.로 날아가 그녀의 목소리를 다시 녹음했다. 녹음은 스튜디오에서 불과 20분이 걸렸을 뿐이었다. 1984년 3월 싱글로 발매되었고 같은 사운드트랙에서의 Kenny Loggins의 타이틀곡에 이어서 큰 인기를 얻게 되었다. 비디오는 영화의 주인공이 몸치인 친구에게 춤을 가르치는 상황이 익살스럽게 묘사되고 있다.

뮤직비디오

Single

우리의 음반 시장에서 익숙하지 않은 것이 있다면 바로 “싱글”일 것이다. 정식 앨범(LP)의 수록곡 중 인기를 얻을만한 곡을 따로 뽑아 싱글로 발매하는 것이 일반적인 서구 음반시장과 달리 우리나라는 음반 시장의 협소함 등으로 인해 싱글 시장이 거의 형성되지 못했다. 하지만 아직 음반 시장이 큰 규모를 유지하고 있던 시절 싱글 음반 시장은 음악 산업의 발달에 많은 기여를 했다. 싱글은 일반적으로 앨범 수록곡 중 한두 곡을 골라 A면에 담고 B면에는 미발표곡이나 리믹스 버전 등을 담는 형식이었다.

싱글의 역사는 19세기까지 거슬러 올라갈 수 있다. 그 시기는 대략 상업적 음악 시장에서 축음기 음반(gramophone record)원통형 축음기(phonograph cylinders)를 대체하기 시작하면서부터라 할 수 있다. 초기 축음기의 디스크는 다양한 속도와 다양한 크기로 만들어졌다. 그러나 1910년 쯤 78 rpm의 10인치(25cm) 셸락 음반 형식이 거의 표준이 되었다.


1920년대 에디슨 레코드사의 싱글

음반의 표준이 일반화되어 가는 과정에서 작곡가들과 연주자들은 자신의 곡을 이러한 새로운 형식에 부합하도록 만들었다. 마이크로그루브 녹음과 개선된 마스터링 기술이 가능해진 1960년대에는 곡의 길이가 라디오 방송에 친화적인 3분 내외인 것이 일상화되었다. 그러던 중에 Bob Dylan의 “Like a Rolling Stone“이 레코드 업계에 새로운 전기를 마련했다. CBS는 6분 13초에 달하는 이 곡을 쪼개서 양면에 담으려고 했는데, Dylan과 팬들은 한 면에 그 곡을 담고 라디오 방송국도 이 곡의 전 곡을 방송할 것을 요구했다. 이 곡의 성공 덕으로 음악 산업에서 곡의 길이에 대한 새로운 시각이 생긴 셈이다.

현대에 들어 싱글은 7인치(18cm), 10인치(25cm), 12인치(30cm) 비닐 레코드 – 대부분 45 rpm의 속도인 -, 10인치(25cm) 셀락 디스크(78rpm), 카셋, 3.5인치 CD 싱글 등 다양한 형태로 발매되었다. 드물게 DVD와 LD의 형태로도 싱글이 발매되었다. 이중에서도 가장 인기를 끌었던 포맷은 45rpm의 7인치 싱글이었다. 이 형식의 레코드는 1949년 RCA가 처음 도입했다. 양면 녹음이 일반화되고 스테레오 녹음이 가능해지면서 1970년대에 45rpm 레코드가 본격 생산되었다.


45rpm 레코드

12인치 싱글은 1970년대부터 디스코텍의 DJ들에게 인기를 얻었는데 보다 긴 연주시간 덕분에 다양한 익스텐디드 댄스 리믹스를 담는데 용이했기 때문이다. 싱글 시장이 거의 형성되지 않은 우리나라에서 그나마 1980년대부터 12인치 싱글이 청계천 음반 상가 등을 중심으로 인기를 얻었는데 바로 당시 큰 인기를 끌었던 디스코텍의 DJ들이 수요자로 나섰기 때문이다. 최근 인기가 식긴 했지만 여전히 12인치 싱글은 댄쓰곡의 표준으로 간주되고 있다.

싱글 판매는 서구 대부분의 나라에서 탑40의 형식으로 선정되고 기록으로 남기고 있다. 차트 진입이 가능하려면 레코드 회사는 차트를 만드는 회사가 요구하는 형식에 맞게 음반을 제작해야 했다. 싱글은 특히 신생 뮤지션들의 가장 어린 팬들에게 파고들기 좋은 소재였다. 그들은 지불여력이 적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값이 싼 싱글을 구입해서 음악에 대한 갈증을 풀 수 있기 때문이다. 싱글의 전성기는 아마도 락뮤직의 초기 시절 45rpm의 싱글이 융성했던 1950~60년대 일 것이다.

60년대 중반쯤 되자 뮤지션들은 통일된 주제의 곡들이 담긴 정식 앨범에 가치를 부여하기 시작했다. The Beatles이 Sgt. Pepper’s Lonely Heart Club Band처럼 말이다. 그리고 CD가 일반화되고 디지털 다운로드가 새로운 시장을 형성하며 사실상 싱글 시장은 돌이킬 수 없는 상황에 이른다. 이에 따라 차트를 만드는 회사도 싱글 차트 진입의 기준을 바꿔야만 했다.

Wikipedia를 참고하여 작성

Hunting High And Low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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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unting High and Low” by The cover art can be obtained from Warner Bros. Records.. Licensed under Fair use via Wikipedia.

1985년 6월 1일 a-ha라는 독특한 이름의 노르웨이 출신 3인조가 데뷔앨범 “Hunting High And Low”를 내놓았다. John Ratcliff, Tony Mansfield, Alan Tarney 등이 프로듀스한 이 앨범은 런던에 있는 일파이(Eel Pie) 스튜디오와 랑데부 스튜디오에서 1984년 6월부터 1985년 3월 사이에 녹음됐다. 아하는 1984년 초, 워너브러더스 사의 미국 지사와 계약을 체결하였다. 이후 런던에서 그들의 첫 앨범에 대한 작업에 들어갔는데 그들의 매니저 John Ratcliff를 비롯하여 Naked Eyes나 The B-52’s 등과 함께 일한 Tony Mansfield, 그리고 Cliff Richard, Leo Sayer 등과 함께 일한 Alan Tarney 등 세 명의 프로듀서를 기용했다. 이 앨범에서는 혁신적인 뮤직비디오로 보다 유명해진 빌보드 핫100 싱글 차트 1위곡 “Take On Me”를 비롯하여 여러 곡의 히트곡이 쏟아졌다. 싱글은 “Take on Me”, “Love Is Reason”, “The Sun Always Shines on T.V.”, “Train of Thought”, “Hunting High and Low” 등 다섯 개의 싱글이 발매되었다. 이 앨범은 빌보드 탑200 차트 15위까지 진출했으며 아하는 1986년 그래미상 시상식에서 ‘최고의 신인’상을 수상한다. 아하는 이 상의 후보에 오른 최초의 노르웨이 뮤지션이 되었다. 또한 “Take On Me” 비디오는 1986년 MTV 비디오 뮤직 어워드에서 ‘최고의 신인’상을 포함하여 6개 부문의 상을 수상했다. 2010년 리마스터 버전의 두 개의 CD로 재발매되었다. 이 앨범에는 당초 수록곡 이외에도 몇몇 곡의 초기 데모 버전, 미발표 트랙, “Take On Me”와“Hunting High And Low”의 12인치 싱글 리믹스 버전 등이 수록되어 있다.

루노라쿠스의 Take On Me 이야기 (1) (2)

Cool It Now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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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air use, Link

“Cool It Now“는 R&B/팝 그룹 New Edition의 1984년 히트곡이다. 그들의 두 번째 앨범에서 싱글 커트된 이 곡은 1985년 2월 빌보드 핫100 싱글 차트 4위까지 오르는 인기를 얻었다. 이전에 독립 레이블에서 데뷔 앨범을 취입했던 그룹은 두 번째 앨범을 위해 MCA 레코드사와 계약을 맺었고 회사는 이 노래의 성공을 위해 대대적인 홍보 전략을 구사했다. 그 덕택에 이 곡은 그룹의 첫 탑10 팝 싱글, 그리고 두 번째 R&B 탑싱글이 되었다. 이 곡은 톡톡 튀는 신디싸이저 연주와 함께 변성기가 아직 도래하지 않은 십대의 미성으로 열병과도 같은 풋사랑의 경험을 노래하는 전형적인 틴팝의 형식을 갖추고 있다. 이 곡의 인기로 그들은 ”80년대의 잭슨5“라는 별명을 얻게 된다. 이 노래는 중간에 리드싱어 Ralph Tresvant가 멤버들의 이름을 “Ronnie, Bobby, Ricky, and Mike.”라고 차례차례 부르는 장면이 유명한데, 나중에 Johnny Gill이 마지막 멤버로 가세하자 그를 다섯 번째로 호명하거나 Bobby와 교체해 부르는 버전으로 바뀐다. New Edition의 인기는 그리 오래가지 않았지만 멤버들의 약진은 눈부셨다. Bobby는 80년대 말 팝/R&B 시장을 좌우하는 Bobby Brown이 되었고, Ricky Bell, Michael Bivins, Ronnie DeVoe 셋은 Bell Biv DeVoe를 결성하여 Poison을 히트시킨다. 리드싱어였던 Ralph Tresvant 역시 90년대 솔로 앨범을 발표해 인기를 얻었다. Robbers on High Street이라는 뉴욕 출신의 인디밴드가 이 곡을 2008년에 인디락 풍으로 리메이크했다.

뮤직비디오

Sgt. Pepper’s Lonely Hearts Club Ban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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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gt. Pepper’s Lonely Hearts Club Band” by Resampled from digital copy included on The Beatles USB Box Set. Licensed under Wikipedia.

1967년 6월 1일 영국의 4인조 밴드 The Beatles의 여덟 번째 스튜디오 앨범 “Sgt. Pepper’s Lonely Hearts Club Band”가 출시되었다.(미국에서는 같은 해 6월 2일) George Martin이 프로듀스를 담당한 이 앨범은 1966년 12월 6일부터 1967년 4월 21일까지 런던에 있는 애비로드 스튜디오에서 녹음됐다. 이 앨범을 통해 밴드는 이전의 혁신적인 “Revolver”앨범에 이어 다시 한 번 대중음악의 새로운 지평을 넓혀갔다. 이 앨범은 비틀즈 멤버들 이외에도 다양한 수준급의 뮤지션들이 기용되었으며 사운드를 윤색할 수 있는 스튜디오의 다양한 첨단 기술이 적용되었다. 이 앨범을 만들기 전, Paul McCartney는 투어에서 돌아오는 비행기에서 ‘에드워드 7세 시대의 군악단’이라는 아이디어를 생각해냈고, 비틀즈가 스스로 일종의 알터이고로서 당시 군인의 모습을 지닌 “Sgt. Pepper” 분장을 한다는 개념을 구체화시켰다. 녹음을 하는 와중에 Paul은 동료들에게 이 상상의 밴드가 앨범의 노래를 연주한다는 개념으로 작업을 할 것을 제안하였고, 채택된 아이디어를 통해 그룹은 음악적으로나 비주얼 적으로나 보다 많은 재량과 실험정신을 구현할 수 있었다. 스튜디오에서 약 400시간을 보낸 후 탄생한 결과물은 역사상 가장 위대한 대중음악 음반이라는 평가로 귀결되었다. 가장 널리 알려진 앨범 커버랄 수 있는 이 앨범의 커버는 Michael Cooper의 사진작품을 가지고 Peter Blake와 Jann Haworth가 디자인했다. 이 작품에는 비틀즈가 앨범의 가운데 군복을 입고 서있는 와중에 많은 유명인들의 사진이 콜라주로 주위에 배치되어 있다. “Pepper”는 1968년 그래미상 시상식에서 7개 부문에 후보에 올라서 “그 해의 앨범”을 포함, 4개 부문을 수상한다. 이러한 수상결과는 그래미가 락 음악을 본류의 음악으로 받아들였음을 의미하는 것이었다. 음악적으로 “Pepper”는 프로그레시브락, 앨범락, 사이키델리아 등 이 후 출발하는 많은 락 장르에 심대한 영향을 미쳤다. 앨범은 상업적으로도 크게 성공했는데 빌보드 탑200 차트 1위에 15주간, 영국 차트에서는 1위에 22주간 머물렀다. 2014년 현재까지는 전 세계적으로 3천만장 이상이 팔린 것으로 추산된다.

That’s Entertainmen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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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am-thatsentertainment1” by Derived from a scan of the single cover (creator of this digital version is irrelevant as the copyright in all equivalent images is still held by the same party). Copyright held by the record company or the artist. Claimed as fair use regardless.. Licensed under Wikipedia.

“That’s Entertainment”는 영국의 펑크-모드 리바이벌 그룹 The Jam의 통산 다섯 번째 앨범 Sound Affects에 수록된 1981년 곡이다. 롤링스톤이 2004년 선정한 500 Greatest Songs of All-time에서 313위에 선정된 이 곡은 영국에서는 싱글로 발매된 적이 없는 곡이다. 하지만 라이브 버전으로 된 수입음반이 들어와 차트 21위에까지 오른다. 1983년 다시 영국에서 정식 발매되어 60위에 오르고 1991년 다시 발매되어 50위에 오른다. 이 곡은 전적으로 어쿠스틱 기타에 의존하면서 가벼운 퍼커션만 가미되었다. 일렉트릭 기타 연주는 이 곡에서 거꾸로 연주되는 방식으로만 잠깐 쓰였다. 이 미니멀리스트 적인 노래는 영국 노동계급의 일상을 파편적으로 다루고 있다. “경찰차와 소리지르는 사이렌”, “아기는 울고, 들개는 울부짖는다” 등등. 그리고는 역설적으로 “그것은 여흥”이라고 코러스를 넣는다. 리드 싱어 Paul Weller는 “그 곡을 쓸 당시 런던에 있었는데 곡 쓰기가 참 쉬웠어요. 왜냐하면 모든 이미지들이 다 내 손안에 있었으니까요.” 결과적으로 롤링스톤에 따르면 그는 그 곡을 단 10분 만에 썼다고 한다. 이 노래는 Morrissey나 Billy Bragg이 리메이크할 만큼 뮤지션들 사이에서도 많은 인기를 끌었다.

뮤직비디오

William, It Was Really Nothi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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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illiamitwasreallynothing UKorig” by The cover art can be obtained from Rough Trade.. Licensed under Wikipedia.

1984년 그가 벌거벗을 것을 본 마지막 사람이 누구냐는 질문에 Morrissey는 “나를 잔인한 세계로 끌어들인 그 의사임이 확실하다”고 말했다. The Smiths의 많은 초기 싱글들이 그렇듯이 “William, It Was Really Nothing” 역시 트라우마를 유발하는 십대의 성경험에 관한 이야기다. 이 노래의 경우에는 따분한 동네에서 벌어지는 삼각관계에 관한 이야기다. 알려지기로는 Associates의 리드 싱어 Billy Mackenzie와 Morrissey와의 짧은 인연에 관한 노래라 여겨지기도 한다. 1984년 8월 24일 싱글로 발매된 이 곡은 “Please, Please, Please, Let Me Get What I Want” 과 “How Soon Is Now?” 의 B면에 수록되어 영국 싱글 차트에서는 17위까지 올랐다. 밴드가 Top of The Pops에서 이 노래를 부를 때에 Morrissey가 셔츠를 열어젖혔는데 그의 가슴에는 “Marry Me”라고 적혀 있었다. 이 노래의 가사 중 일부다. 후에 The Smiths의 컴필레이션 앨범인 Hatful of Hollow와 Louder Than Bombs에 수록되었다. The Smiths의 엄청난 팬인 OutKast의 André 3000은 한번은 이 곡을 자신이 가장 좋아하는 곡이라고 언급하기도 했다. 롤링스톤은 이 곡을 500 GREATEST SONGS OF ALL TIME에서 431위에 선정했다.

뮤직비디오

Funkytow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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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ipps-Inc” by http://www.last.fm/music/Lipps,+Inc./+images/10348593`. Licensed under Wikipedia.

1980년 5월 31일 Lipps Inc. 의 Funkytown이 빌보드 핫100 차트 1위에 올라 4주간 머물렀다. 클럽플레이 차트에는 같은 해 3월 8일에 올라 역시 4주를 머물렀고, R&B 싱글 차트에는 같은 날 2위에 올랐다. Steven Greenberg가 만들고 프로듀스한 이 곡은 미네아폴리스 출신의 이 그룹에게는 최고의 히트곡이자 유일한 탑40 곡이 되었다. 그룹은 싱어 Cynthia Johnson1과 뮤지션 Steven Greenberg으로 구성되어 Greenberg가 데뷔 앨범에서 거의 모든 악기를 담당하였다. 그들의 첫 앨범을 자체적으로 제작한 Lipps Inc.는 이 앨범을 들고 여러 레코드 레이블을 찾아갔지만 디스코의 쇠퇴기인지라 모두 그들을 외면하였다. 마침내 그들은 카사블랑카 레코드사와 계약을 체결하고 싱글을 발매할 수 있었다. 1980년 3월 29일 89위로 핫100 차트에 진입한 Funkytown은 전 세계적인 히트곡이 되었다. 싱글은 미국에서만도 3백만장 이상이 팔렸고 앨범 “Mouth To Mouth”도 빌보드 탑200 차트 5위까지 올랐다. 호주 출신의 뉴웨이브 밴드 Pseudo Echo가 1986년 이 곡을 리메이크해서 자국 차트 1위에 오르는 등 그들의 가장 큰 히트곡이 되기도 했다. 2000년에는 디스코 시대의 모습을 담은 같은 제목의 영화가 개봉되기도 했었다.

Lipps Inc. 버전
Pseudo Echo 버전

  1. 그는 이 그룹에 합류하기 전에는 미네아폴리스 경찰서에서 비서로 일했었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