Vis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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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isage cover” by The cover art can be obtained from Polydor Records.. Licensed under Wikipedia.

New Romantic 운동의 선구자인 Visage는 1978년 Punk 정신과 대비되는 네오글램의 선두에 서있는 런던의 Billy’s라는 클럽에서 첫모습을 드러냈다. 당시 Billy’s의 선구적인 초현대적인 감성의 엠뷸럼은 The Moors Murderers라는 펑크밴드에 몸담았었던 Steve Strange와 The Rich Kids의 드러머로 활동하였던 DJ Rusty Egan이었다. 그들은 클럽
에서 DJ로 활동하면서 클럽 나름의 고유한 음악을 찾아 헤맸는데 그들의 레퍼토리는 주로 David Bowie, Kraftwerk, 그리고 Roxy Music 등 이었다. 이 둘은 The Rich Kids의 앨범작업을 위해 들른 스튜디오에서 키타리스트 Midge Ure를 만났는데 이를 계기로 Visage의 첫싱글 In The Year 2525를 제작하였다. 이후 키보드 Billy Currie와 Dave Formula, 베이스 Barry Adamson, 키타 John McGeoch 등이 가세하여 본격적인 진용을 갖추었다. 1979년 이들은 Radar 레코드사와 계약을 맺고 이듬해 그들의 데뷔앨범을 내놓았다. 이 앨범에는 그들의 최대히트곡이라 할 수 있는 Fade To Grey가 담겨져 있다. 1982년 두번째 앨범 The Anvil을 발표한 그룹은 그러나 급격한 해체의 길을 걷게 된다. 처음에 Ure가 Ultravox의 결성에 그의 모든 정력을 쏟아부었다. 곧이어 Currie와 Formula가 대열을 헝클어뜨렸다. 1984년의 Beat Boys가 그들의 마지막 작품이 되었다.

디스코그래피
1980 Visage [One Way]
1982 The Anvil [One Way]
1984 Beat Boy [Polyd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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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usicfoli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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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exiconMagazine

Violent Femm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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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iolentfemmessydney90” by CasliberOwn work. Licensed under CC BY-SA 3.0 via Wikimedia Commons.

’80년대 미국의 대표적인 컬트밴드 Violent Femmes는 상업적으로는 큰 성공을 거두지 못했지만 음악적으로는 높이 평가받는 그룹이다. ’80년대 초반 Milwaukee에서 결성된 이들은 싱어/키타리스트 Gordon Gano, 베이스 Brian Ritchie, 퍼커션 Victor DeLorenzo 으로 구성되었다. The Pretenders의 James Honeyman-Scott의 눈에 띈 이들은 Slash와 계약을 맺고 1983년 셀프타이틀 앨범을 내놓았다. 이 앨범은 어린 청취자들의 심정적 동의를 얻어내기에 충분할만한 감성을 지닌 folk-punk 컬렉션이었다. 차트에 오른 곡은 한곡도 없지만 이 앨범은 틴아웃싸이더의 통과의례쯤으로 받아들여졌다. 십수년이 흐른후에 마침내 플레티넘을 기록하게 되었다.

1984년에 발표된 Hallowed Ground에서 Gano의 가사는 그의 뱁티스트적인 자세가 반영되어 있었다. 음악적으로는 보다 더 포크적이며 컨트리적인 면에 경도되어 있었다. Talking Heads의 Jerry Harrison이 프로듀스한 그들의 세번째 앨범 The Blind Leading the Naked는 이전 작품에 비해 보다 메인스트림 싸운드를 많이 도입하였다. T. Rex의 곡을 커버한 “Children of the Revolution”가 어느 정도 인기를 얻은 싱글이었다. 앨범이 발매된후 밴드는 잠정적으로 해산하였다. Gano는 1987년 그의 가스펠(!) 프로젝트인 The Mercy Seat와 함께 솔로앨범을 냈다. Ritchie역시 솔로앨범들을 발매하였다. 1989년 다시 뭉친 이들은 ’91년 Why Do Birds Sing?을 내놓았다. 이 앨범에서는 특이하게 Culture Club의 “Do You Really Want to Hurt Me?” 를 해체주의적인 관점에서 커버하였다.

1993년 컴필레이션 Add It Up을 발표하고 이번에는 DeLorenzo가 솔로앨범 작업에 열중하게 된다. 2001년 봄 The Femmes는 emusic.com을 통해 mp3로만 만들어진 앨범 Something’s Wrong을 발매하였다.

디스코그래피
1983 Violent Femmes Slash/Rhino
1985 Hallowed Ground Slash/Rhino
1986 Blind Leading the Naked Slash
1989 3 Slash
1991 Why Do Birds Sing? Reprise
1991 Debacle: The First Decade Slash
1994 New Times Elektra
1998 Rock!!!!! Cold Front
1999 Viva Wisconsin Beyond
2000 Freak Magnet

Vega, Suzann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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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uzanneVegaLebanonNH” by Mattge3Own work. Licensed under CC BY-SA 3.0 via Wikimedia Commons.

싱어/쏭라이터 Suzanne Vega는 뉴욕의 스패니쉬할렘에서 자라났다. 그리고 그녀의 노래 중 많은 부분은 바로 이 거대하고 다양한 문화적 지형을 가지고 있는 도시에서의 삶을 투영하고 있다. 그러나 정작 그녀의 명성은 영국의 뉴웨이브 아티스트들과 함께 한 작업에서부터였다. 1985년 발표된 그녀의 데뷔앨범은 미국의 비평가들로부터 주목을 받았다. 그러나 영국에서는 일반청중들로부터도 지지를 얻었다. 그녀의 앨범은 영국 앨범 차트 11위에까지 올랐다. 미국 청중들은 1986년 영화 Pretty in Pink에 그녀의 노래가 수록되고 나서야 그녀를 주목하기 시작하였다. 이듬해 4월에 발매된 그녀의 두번째 앨범 Solitude Standing은 아동학대를 주제로 한 싱글 Luka가 크게 히트하면서 탑20에 오르는 인기를 얻었다. 이 앨범에는 또한 그녀를 가장 유명하게 만들어준 Tom’s Dinner가 수록되어 있다. 이 노래는 발표 당시에는 소폭의 인기를 얻는데 그쳤으나 1990년 영국의 샘플링팀 DNA가 아카펠라인 원곡에 적절한 리듬과 연주를 삽입하여 영국과 미국에서 동시에 탑텐에 오르는 큰 인기를 얻게 되었다.

디스코그래피
1985 Suzanne Vega [A&M]
1987 Solitude Standing [A&M]
1990 Days of Open Hand [A&M]
1992 99.9?F. [A&M]
1993 In Concert [live] [One World]
1996 Nine Objects of Desire [A&M]
2001 Songs In Red and Gray [A&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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Ultravox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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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idge April84” by OhconfuciusOwn work. Licensed under CC BY 3.0 via Wikimedia Commons.

울트라복스(Ultravox)는 80년 초반 영국의 일렉트로-팝(Electro-pop) 음악의 물결에 커다란 영향을 끼친 그룹 중 하나이다. 74년에 결성된 이들은 초기에 보컬인 존 폭스(John Foxx), 기타의 스티브 쉬어즈(Steve Shears), 드럼의 워렌 캔(Warren Can), 베이스의 크리스 크로스(Chris Cross), 키보드, 신디사이저, 바이올린을 연주하는 빌리 커리(Billy Currie)로 구성되었다.

76년 레코드사와 계약 후 첫 앨범을 발표했는데, 브라이언 이노(Brian Eno)의 프로듀싱에도 불구하고 일반 대중에게 미친 영향은 매우 미미하였으나, 영국 팝 역사에 끼친 영향은 후대에 인정을 받게 된다. 기타의 자리가 로빈 사이먼(Robin Simon)으로 교체된 후 발표한 앨범 [Systems of Romance]는 실망스런 판매고를 기록하였고, 소속 레코드사와의 계약은 여기서 끝나게 되었다. 그룹의 핵심 멤버였던 폭스과 사이먼이 솔로 활동을 모색하던 중 남은 멤버들은 갈팡질팡했고 결국 그룹은 해체되었다. 한편 Midge Ure라는 인물을 우연히 만나게 된 커리는 서로 같은 생각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며, 전 멤버들과 함께 4인조의 울트라복스를 재건하기로 결심했다. 이들의 시도는 ‘Sleepwalk’와 ‘Passing Strangers’의 미약한 성공을 시작으로 하여 ‘Vienna’가 발표되면서 비로소 성공을 맛보게 되었다. 수수께끼 같은 영상과 함께 발매된 이 곡은 음울한 사운드를 들려주며 차트 2위까지 올랐다.

81년 ‘All Stood Still’, 82년 ‘Reap The Wild Wind’, 84년 ‘Dancing with Tears in My Eyes’ 등 이후 3년 동안 이들은 차트 20위 안에 연속적인 히트곡을 올려놓았다. 동시대의 듀란 듀란(Duran Duran)이나 스팬도 발레(Spandau Ballet)와 함께 로맨틱한 스타일을 들려주던 이들은 유럽 전역에서도 큰 인기를 모았지만, 미국에서는 유럽에서의 인기 수준을 확보하지는 못하였다. 이후 Ure의 솔로 활동은 성공적이었으나 그룹의 결속력은 약화되어가는 경향을 보였다. 앨범 [U-Vox](86) 발매 이후 이들은 5년 이상의 공백기간을 깨고 [Revelation](93) 앨범을 발표했으나 많은 이들의 외면을 당했다. 2년 후 [Ingenuity](95) 앨범을 발표하였다.

changg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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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지유어 전화인터뷰

신스 팝 그룹 ‘울트라복스’ 출신의 전천후 뮤지션

요즘 팝 팬들에겐 생소한 이름일 수밖에 없는 뮤지션이다, 미지 유어는. 그러나 80년대에 팝 음악을 열심히 들었던 세대에게 미지 유어는 그룹 울트라복스의 기타리스트 겸 보컬리스트로 기억에 남아있는 인물이다. 그는 울트라복스 외에도 많은 그룹을 거쳤으며 밥 겔도프와 함께 그 유명한 프로젝트 그룹 ‘밴드 에이드’를 결성했고 자선공연 ‘라이브 에이드’를 주도했으며 몇 편의 뮤직 비디오의 감독까지 맡은 바 있는, 전천후 아티스트라고 할 수 있다. 그 동안 4장의 솔로 앨범을 발표하며 자신만의 독특한 음악세계를 선보였던 미지 유어가 무려 4년 만에 솔로 앨범 MOVE ME를 발표했다. 자신만의 개성을 고수하면서도 일반 팬들이 듣기에도 부담이 없는 노래들을 담고 있는 앨범 MOVE ME 이야기, 이제까지의 음악 활동과 최신 근황 등을 미지 유어와의 전화 인터뷰를 통해 낱낱이 알아보았다.

– 먼저 새 앨범의 발매를 축하드립니다. 옛날 이야기부터 좀 시작하죠. ‘Salvation’이라는 밴드에서 처음 음악 생활을 시작했다고 하는데 처음 음악에 관심을 가진 것은 언제부터인지, 또 음악계에 본격적으로 뛰어들게 된 계기는 어떤 것이 있는지 좀 말해주세요.

프로페셔널한 음악을 시작한 것은 18세 때 ‘Salvation’에 들어가면서였지만 늘 음악과 가깝게 지냈습니다. 당시에는 기타리스트로 들어갔지만 곧 보컬이 탈퇴하면서 제가 보컬을 맡게 되었지요.

– ‘Salvation’이란 밴드가 ‘Slik’이라는 밴드로 바뀌었고 밴드의 음악적 성격이 바뀌게 되자 이에 반발해서 탈퇴했다고 들었습니다. 그 후 ’Sex Pistols’의 베이시스트인 글렌 매틀록이 이끌던 ‘Rich Kids’란 밴드에서 활동을 했는데 이 그룹에 가담하게된 계기는 무엇입니까?

‘Slik’는 10대 지향적인 그룹이었고 넘버 원 음악을 갖기도 하고 재미있었어요. Rich Kids에 가담하게 된 것은 정말 순식간에 이루어졌어요. 제가 글래스고에 있는데 런던으로 내려오라는 연락을 받았어요. 런던에 도착하자 그 자리에서 3곡을 녹음하고 그 날 밤 공연에 나갔지요. 심지어는 공연 중 불까지 나서 우리들은, 불로 축복받은 그룹이라고 느끼기도 했어요.

– 그룹 ‘Visage’를 거쳐 ‘Ultravox’에 가담했는데 당신의 음악 인생에 있어 ‘Ultravox’가 차지하는 의미는 어떤 것입니까?

울트라복스는 정말 뛰어난 밴드였고 좋은 기억만 남아 있지요. 울트라복스??? 당시 최초로 전통 악기들과 드럼 머신 같은 일렉트로닉 기술을 가미해서 ‘원더풀 사운드’를 만들어냈어요. 그 때 음악은 정말 특별한 음악이었어요.

– 당신이 가장 음악적으로 영향을 받은 인물은 누구입니까?

시기 별로 바뀌는데, 초기에는 60년대 밴드인 ‘Small Faces’가 있었고 그 다움은 데이빗 보위, 그리고 제가 기타에 관심을 쏟던 당시에는 지미 페이지와 에릭 클랩튼, 그리고 요즘은 ‘크라프트베르크’의 신서사이저에 푹 빠져 있어요.

http://music.kbsweb.co.kr/03_inter/ic0001152.htm#

디스코그래피
Vienna 1980
Rage In Eden 1981
Quartet 1982
Lament 1984
Rare, Vol. 1 1994
Rare, Vol. 2 1994
Future Picture 1995
Ingenuity 1996
Systems Of Romance 1997
Ultravox! 199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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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idge Ure

Trash Can Sinatras

스코틀랜드 출신 인디팝 밴드 Trash Can Sinatras는 싱어이자 키타리스트인 Frank Reader가 주축이 되어 1987년 결성된 5인조 밴드이다. 처음에는 커버밴드(다른 유명한 아티스트들의 곡들을 연주하며 생활하는 밴드)로 시작하였던 이들의 음악인생은 한 지방술집에서의 공연모습이 Go! Discs 레이블의 사장 Simon Dine의 눈에 띄면서 전환기를 맞이하였다. 그들의 뛰어난 첫싱글 “Obscurity Knocks”는 1990년에 발매되어 그들이 Aztec Camera, Orange Juice 등의 스코티쉬팝의 선배들을 이을 수 있는 뛰어난 적자임을 증명하였다. 두번째 싱글 “Only Tongue Can Tell”에 이어 그들의 데뷔 앨범 Cake가 발매되었다. 이 앨범은 영국과 미국 양쪽에서 모두 호응을 얻었는데 특히 대학가 래디오 방송에서 인기를 누렸다. 이 즈음 베이스를 맡았던 McDaid가 그룹을 떠났다. 1993년 그들의 두번째 앨범 I’ve Seen Everything이 발표되었지만 그 즈음 인디락계는 그런지가 지배하고 있었기 때문에 그들의 쟁글팝은 호응을 얻는데 실패했다.

라인업 : Frank Reader(v), John Douglas(g), Paul Livingston(g), George McDaid(b), Stephen Douglas(d)

디스코그래피
1990 Cake London
1993 I’ve Seen Everything Polygram
1996 A Happy Pocket Go Disc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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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apanese Fan Page COO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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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il Tuesday

‘Til Tuesday는 1985년 “Voices Carry”란 곡 하나로 MTV와 팝챠트를 강타하였다. 그러나 그들의 드라마틱한 데뷔는 결국 용두사미로 전락하고 말았다. 이후 발매된 두개의 싱글은 주목을 끄는데 실패했고 그들 역시 팬들의 뇌리에서 빠르게 잊혀져 갔다. 그룹의 간판스타였던 Aimee Mann은 보스턴에 있는 버클리 스쿨에서 수학한후 그 도시의 펑크씬에 뛰어 들었다. 그녀는 Young Snakes나 초기 시절의 Ministry와 함께 활동하였다.

1983년 그녀는 남자친구인 Michael Hausman (드럼)과 그의 친구들인 Joey Pesce (키보드), and Robert Holmes (키타)와 함께 ‘Til Tuesday를 조직하여 보스턴 지역에서 활동하였다. 이후 한 지방 래디오 방송국의 밴드 경연대회에서 우승하여 Epic 레코드사와 계약하는 행운을 거머쥐게 되었다. 그리고 1985년 데뷔싱글 Voices Carry를 녹음하였다. 이와중에 Mann과 Huasman은 연인 관계를 청산하였고 이후 쏭라이터 Jules Shear가 Mann의 새로운 연인이 되었다.

1986년 가을 그룹은 두번째 앨범 Welcome Home을 녹음하였다. 그러나 앨범은 히트곡을 내지 못하였고 Pesce가 그룹을 떠났다(그의 빈자리는 Michael Montes가 메꿨다). 그룹은 또한 키타리스트 Jon Brion과 Clayton Scobel을 보강하였다. Welcome Home이 발매된 즈음 Mann은 다시 Shear와의 연인관계를 끝냈다. 1988년 발매된 그룹의 세번째 앨범이자 마지막 앨범인 Everything’s Different Now에서는 Elvis Costello가 작곡에 참여하였다. 그러나 판매량은 Welcome Home에도 못미쳤다. 그러나 비평은 호의적이었는데 주로 Mann의 일취월장한 작곡솜씨에 초점이 맞춰졌다.

Aimee Mann은 80년대의 부시시한 헤어스타일로 그녀를 기억하는 사람들에게 새롭게 각인되기 위해 각고의 노력을 경주하였고 그 결과로 현재는 어느 정도 성공적인 솔로경력을 쌓게 되었다. 이러한 성공에는 그녀의 아름다운 보컬과 쏭라이터 능력이 겸비되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그녀의 솔로 작업은 P.J. Harvey, Tori Amos 또는 Liz Phair와 동등한 레벨로 인정받고 있다.

디스코그래피
1985 Voices Carry [Epic]
1986 Welcome Home [Epic]
1988 Everything’s Different Now [Epic]

링크
RollingStone.com의 ‘Til Tuesday관련 페이지
Aimee Mann Official Site

Tiffan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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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iffany-las-vegas-hilton-1993-04-24” by DtobiasOwn work. Licensed under CC BY-SA 3.0 via Wikimedia Commons.

어느 시대에나 ‘10대’라는 단어가 주는 의미는 생동감 혹은 반항적인 세대이다. 특히 대중문화가 사회전체의 문화의 한 축을 담당하게 되는 20세기, 그 중에서도 20세기 중반부터 본격적으로 꽃을 피운 대중음악계에서 10대는 가장 주요한 수요층으로 자리매김하게 된다. 그러함에 따라 자연스럽게 대중음악의 코드 역시 10대의 감수성에 초점을 맞추게 되었다.

그럼에도 대중음악의 생산자는 아직까지는 기껏해야 20대가 주축을 이루었는데 이는 10대가 정상적인 음악교육 등을 통해 대중음악의 주체적인 생산자로 나서기에는 부족한 면이 없잖아 있었기 때문이다. 그 때문에 80년대 전까지만 해도 10대의 대중음악인들은 극히 일부분을 차지하였다.

그러나 80년대에 들어와서는 서서히 그 기류가 바뀌기 시작하였다. 이른바 팝음악계의 거대 레이블의 등장과 이들의 철저한 사전기획에 의해 조련된 10대들은 이전에 거쳐야 했던 음악의 통과의례 없이도 기술의 발전과 마케팅으로 어느 정도 윤색이 가능했기 때문이다. 80년대에 이러한 10대 파워의 대표주자는 Debbie Gibson, Martika, New Kids on the Block, New Edition 등이 있었고 지금 소개하는 Tiffany 역시 대표적인 10대 파워였다.

Tiffany Renee Darwish 는 1971년 10월 2일 오클라호마에서 출생했다. 그녀는 어린 시절부터 노래를 즐겨 불렀고 LA의 한 컨트리클럽에서 노래를 부르다 우연히 컨트리뮤직의 베테랑인 Hoyt Axton 과 Mae Axton 의 눈에 띄게 된다. 이후 몇 년간 Tiffany 는 TV쇼나 Jerry Lee Lewis, George Jones 등 컨트리스타들의 오프닝공연에 출연하였다.

1986년 Tiffany 는 매니저 George Tobin 과 계약을 맺고 그의 도움으로 MCA 와 레코딩 계약을 맺게 된다(Tobin은 그녀를 독재적이라 하리만큼 철저히 관리했고 이것이 후에 갈등으로 이어진다). 1987년 데뷔앨범 Tiffany 가 나왔고 즉각 순회공연에 들어갔다.

즉각적인 반응은 없었지만 MTV가 그녀의 싱글 “I Think We’re Alone Now”를 틀어대기 시작하자 팬층은 빠른 속도로 늘어갔고 앨범은 팝차트 정상에 오르게 된다. 이어진 싱글 “Could’ve Been” 역시 큰 인기를 얻었다.

그러나 불행은 집안에서부터 시작되었다. Tiffany 의 어머니는 그녀가 실종되었다는 신고를 하는가 하면 매니저가 그녀를 착취하고 있다고 비난하였다. Tiffany 는 그런 어머니에 대항하여 법적자유를 주장하였고 매니저 Tobin 의 편을 들었다. 그 와중에도 the Beatles 의 커버 “I Saw Her Standing There” 가 차트 정상에 올랐다(그녀의 순회공연의 오프닝밴드로 한 무명의 10대 밴드가 기회를 잡았는데 그들이 바로 New Kids on the Block 이었다).

1988년 2집 Hold an Old Friend’s Hand 가 발표되었는데 시장의 반응은 냉담했다. 이미 Tiffany 의 팬층이 비슷한 스타일인 New Kids on the Block 으로 급격히 이동하였음을 의미하는 신호였다. 3집 New Inside 는 발매되자마자 바로 청중의 뇌리에서 사라져버렸다. 그럼에도 꾸준히 앨범을 내놓은 그녀는 2002년에는 플레이보이의 모델로 등장하기도 했다.

결론적으로 그녀의 번갯불과 같은 반짝 성공은 한편으로 허망하기도 하지만 반면에 많은 10대들에게, 그리고 그 10대를 활용하고자 하는 기획사에게 기회의 땅에 대한 이정표가 되기도 했다. 이후 90년대는 앞서의 경험을 교훈삼은 수많은 10대 가수들이 난무하게 된다. 물론 그 중에 살아남은 이들은 극히 소수이지만….

디스코그래피
1987 Tiffany MCA
1988 Hold an Old Friend’s Hand MCA
1990 New Inside MCA
2000 Dreams Never Die
2000 The Color of Silence Eureka

링크
Official Site
Online Fan Club

Thomson, Ali

1959년 Scotland의 Glascow에서 태어난 Ali Thomson은 지방 밴드에서 피아노와 노래를 부르며 그의 음악경력을 시작하였다. 70년대 중반 London을 근거지를 옮기는 그는 마운틴 레코드사를 위해 작곡을 시작하였다. Gary Wright이 그가 쓴 두 곡(Dream Weaver와 Really Wanna Know You)을 녹음하였다. California로 근거지를 옮긴 그는 그의 동생 Doug와 함께 A&M 레코드사의 오디션에 응모한다. 그의 데뷔앨범 Take A Little Rhythm이 나온 후 몇몇 사람은 이 앨범의 Paul McCartney의 것이라고 착각하였다. 이 앨범에서 타이틀곡이 차트 15위까지 Live Every Minute이 차트 42위까지 진출하였다. 두번째 앨범이 발표되었지만 실패하였고 그후 그들에 관한 소식은 한동안 들려오지 않았다. 같은 Scotland 출신인 Bay City Roller의 Billy Lyall이 두 앨범에 세션 뮤지션으로 참여하였다.
Ali Thomson은 이후 몇몇 신진 뮤지션들의 곡을 써주거나 아키라 이노우에라는 일본 뮤지션의 앨범(1987)에 프로듀서와 보컬로 참여하고, Boo Hewerdine라는 그룹의 앨범 Joke(1996)의 프로듀서로 참여한걸로 짐작된다.

디스코그래피
1980 Take a Little Rhythm [A&M]
1981 Deception Is an Art [A&M]

Thompson Twin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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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ompson Twins Feb84” by OhconfuciusOwn work. Licensed under CC BY 3.0 via Wikimedia Commons.

Thompson Twins가 처음 탄생한 것은 지난 1977년 전직 음악교사였던 Tom Biley가 당시 영국에서 새롭게 붐을 이룬 펑크 스타일에 레게와 아프리카 리듬을 섞은 사운드를 연주하는 7인조 그룹을 결성하면서, 이들의 역사는 시작되었다. 이들은 유럽에서 인기를 얻고 있던 ‘틴틴의 대모험’의 등장인물인 탐슨 쌍동히 형제의 이름을 따서 밴드의 이름을 지었다.

이들은 주로 댄스클럽에서 활동하기 시작하였는데 기대화는 달리 일부 댄스클럽에서만 인기가 있을 뿐 뚜렷한 활동을 보이지 못하고 있을 때, 영국 맨체스터 출신의 흑인 아티스트 조 리웨이(Joe Leeway)와 뉴질랜드에서 온 방송 기자 출신의 앨러나 커리(Allena Currie)가 가입하면서 그룹은 활기를 띄기 시작했다.

이 때부터 본격적인 활동을 개시한 이들은 1981년 데뷔 앨범 AProduction To Participation을 발표하였고 뒤 이어 82년에는 2집 Set을 발매했다. 이 때 멤버는 초창기와 달리 탐, 엘레나 그리고 조 리웨이의 트리오로 단축되어 있었다. 2집 Set에서 싱글로 발표한 In The Name Of Love가 미국과 영국의 댄스클럽에서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고 3집 Sidekicks에서는 토속적인 타악기에 신서사이저를 조화시킨 Lies를 전세계적으로 히트시키면서 일약 세계적인 뉴웨이브 그룹으로 부각되었다.

이어서 84년의 4집 Into The Gap에서는 더욱 많은 히트곡을 내놓았는데 특히 Hold Me Now, Doctor Doctor는 전세계의 방송가와 디스코텍에서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고 펑크 스타일의 독특한 의상을 입은 이들의 콘서트는 가는 곳마다 화제를 불러 일으켰다. 4장의 앨범 발표로 단단한 기반을 구축한 이들은 다섯 번째 앨범 제작 중 톰 베일리가 과로로 병원에 입원하는 불상사가 있었으나 Live Aid에서 훌륭하게 재기, 1985년에 5집 Here’s To Future Days를 발표했다. 비록 4집에 비해서는 그 열기가 조금 사라지긴 했지만 Lay Your Hands On Me가 히트하였다. 이를 기회삼하 그들은 다시 한번 세계 순회 공연에 나섰는데, 이 순회 공연 중에 조 리웨이가 탈퇴하는 불상사가 발생했고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엘레나 커리가 병원에 입원, 그룹의 공백기를 가지게 되었다.

이 후 루퍼트 파인이라는 프로듀서의 적극적인 지원 아래 6집 Close To The Bone을 발표하였으나 이전만한 인기를 회복하지는 못하였다.

디스코그래피
A Product Of…(1981)
Set (1982)
Quick Step And Side Kick (1983)
Into The Gap (1984)
Here’s To Future Days (1985)
Close To The Bone (1987)
Big Trash (1989)
Queer (1991)

링크
팬페이지

They Might Be Gian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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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y Might Be Giants March 25th, 2005” by Be3nOwn work. Licensed under CC BY-SA 3.0 via Wikimedia Commons.

전염성이 강한 멜로디에 기묘한 유머감각과 뉴욕 포스트펑크씬의 아방가르드 미학을 조합한 음악을 구사했던 They Might Be Giants는 ’80년대 말과 ’90년대 초 가장 예기치못했던 얼터너티브 밴드 성공스토리였다. 음악적으로 John Flansburgh와 John Linnell 듀오는 모든 것에서 그들의 음악적 아이디어를 차용하였다. 그러나 그들의 자유로운 절충주의는 그들의 불가사의하고 기괴한 유머감각에 의해 잘 버무려졌다. ’80년대 그들은 인디레이블에서의 싱글발표와 계속적인 투어를 통해 그들은 대학 캠퍼스에서 많은 추종자들을 거느렸다. ’90년대 메이져 레이블로 이적한 후 발표한 Flood는 MTV의 지원사격 등에 힘입어 골드앨범이 되는 등 상업적 성공가도를 달리게 된다. 이어 그들은 그런지가 도래하기 전까지 가장 성공적인 얼터너티브 밴드로 평가받게 된다.

그러나 그룹의 예측불가능한 행동으로 말미암아 ’90년대 중반에는 MTV를 뒤덮은 포스트그런지 그룹들과 모던락 래디오에서 외면당하는 결과로 이어지고 만다. 그리고 또다시 그들은 일종의 컬트로 남게 되었다.Flansburgh와 Linnell은 소년시절부터 친구였다. 고등학교 시절부터 노래를 쓰기 시작한 그들은 대학교에 들어간 후 본격적인 밴드생활을 시작하였다. 본격적인 음악적 경력의 무대를 부르클린으로 결정한 그들은 George C. Scott 주연의 영화에서 밴드의 이름을 차용하고 드럼머쉰을 이용하여 음악을 만들어내기 시작하였다. 그들은 곧 맨허튼 언더그라운드에서 실력자로 부상하였고 많은 팬들을 거느리게 되었다. 그러나 레코드 취입은 그리 만만치 않았기 때문에 이들은 앤써링머쉰에 노래를 녹음하는 방식을 시도하였고 이런 희한한 술수가 먹혀들어가 마침내 인디레이블인 Bar/None과 계약을 체결하게 되었다.

1986년 별도의 이름이 붙지 않은 데뷔앨범을 발매하였는데 대학가 라디오에서 인기를 얻게 된다. 싱글 “Don’t Let’s Start”의 기발한 비데오도 MTV의 전파를 타기 시작했다. 2집 Lincoln에서는 “Ana Ng”가 컬리지 히트싱글이 되었고 앨범차트 89위까지 오르는 성공을 거두었다. 이로 인해 메이저레이블의 주목을 받은 TMBG는 마침내 1990년 Elektra와 계약을 맺고 그 해 말 Flood를 내놓았다. 이 앨범에서는 “Birdhouse in Your Soul” 과 “Istanbul (Not Constantinople)”가 크게 히트하여 마침내 골드앨범의 영광을 누리게된다. 1992년에 발매된 Apollo 18은 전작에 비해 덜 성공적이었다. 앨범의 써포트투어에서 TMBG는 처음으로 완전하게 갖춰진 백밴드를 쓴다. 이 밴드에는 Pere Ubu의 베이시스트였던 Tony Maimone와 드러머 Brian Doherty가 가세하였다. 그러나 때마침 얼터너티브락 씬에 몰아친 그런지락의 기세로 말미암아 TMBG는 언론과 MTV의 주목을 받는데 실패하였다. 이후에 발표된 일련의 앨범들 역시 주류의 외면을 받았지만 미국 대학 캠퍼스에서는 여전히 많은 컬트팬들이 지지를 보냈다.

디스코그래피
1986 They Might Be Giants Restless-Bar/N
1989 Lincoln Restless-Bar/N
1990 Flood Elektra
1992 Apollo 18 Elektra
1994 John Henry Elektra
1996 Factory Showroom Elektra
1998 Severe Tire Damage [live] Restless
1999 Live BMG Special
1999 Long Tall Weekend They Might Be
2001 Mink Car Restless
2001 Holidayland Restles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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