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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ndy McCluskey의 Unknown Pleasures에 관한 사연

OMD의 Andy McCluskey가 좋아하는 앨범 들에 관한 이야기 중 Joy DivisionUnknown Pleasures에 관한 사연을 번역하여 올린다

Unknown Pleasures Joy Division LP sleeve.jpg
By Source, Fair use, Link

Glasvegas의 첫 앨범 이전에, Unknown Pleasures는 역사상 가장 위대한 락 앨범이었다. 내 아들은 열다섯 살에 락음악에 빠져 들었는데 불행하게도 그는 미국에 살고 있었고 – 그의 엄마와 나는 헤어졌다 – 우리는 몇 년 전에 여행을 하기도 했다. 그는 위대한 Nirvana를 사랑했었고 전혀 문제될 게 없었다. 그러나 그는 또한 내게 Linkin Park와 Limp Bizkit을 들려주었고 나는 “왜?”라고 물었고 그는 “베이스와 드럼이 좋아요”라고 대답했다. 그래서 나는 그의 USB 케이블을 내 폰에 꽂아 Unknown Pleasures를 틀고서는 “이제부터 30년 전에 연주된 드럼과 베이스를 들을 텐데, 다 듣고 네가 빌어먹을 Limp Bizkit을 다시 듣고 싶다고 말한다면 난 너를 차 밖으로 걷어차 쫒아내겠다”라고 말했다. 그래서 그는 드럼부터 시작했는데 – 왜냐하면 그는 Stephen Morris를 정말 좋아했기 때문에 – Unknown Pleasures는 정말 드럼에 관한 모든 것이었다. 그건 당신의 기초적인 록 드러밍과 같지 않다. 그는 균열적인 패턴으로 드럼을 친다. Stephen Morris는 정말로 일종의 원형을 창조했다. 그 다음에 Hook의 베이스다. – 대부분 노래에서 빌어먹을 리드 베이스 기타인 – 이 앨범에서 사실상 Hook의 베이스 연주보다 더 좋은 것은 없다. Barney가 화낸 것이 이상할 것 없다. 왜냐하면 기타는 저 멀리 던져지고 적절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것은 보컬의 방해가 되었다. – 당신은 드럼과 베이스와 Curtis를 가지고 있다. 그리고 기타는 좌측과 우측에서 약간의 색조만 더할 뿐이다. 내 아들은 베이스 플레이어가 되었다. 그의 아버지가 베이스 주자여서가 아니라 Peter Hook이 너무 빌어먹게 쿨했기 때문이다. 너무 웃긴 게 Hook이 샌디에고에서 출판 싸인 행사를 가졌을 때 아들이 그를 보러 갔었다. James는 “엄마가 당신에게 안부 전해달래요.” 그는 이어나갔다. “네?”, “네. 당신이 엄마가 열일곱 살일 때 Pretty In Pink 시사회에서 그녀를 돌봤다는데요.” 겉으로는 Hook의 얼굴은 창백해졌고 그는 계속했다. “너 내 아들은 아니지 그지?” 그리고 내 아들은 “저는 Andy McCluskey의 아들이에요. 당신이 Pretty In Pink 시사회에서 그가 인터뷰를 하는 동안에 그 여자친구를 돌봤다는 이야기에요.” 그리고 Hook는 대답했다. “오 예!! 휴!!” [미친 듯이 웃었다]

[원문 보기]

Bleach

Nirvana-Bleach.jpg
Nirvana-Bleach” by May be found at the following website: http://www.endless-nameless.com/pictures/render/10/10.jpeg. Licensed under Fair use of copyrighted material in the context of Bleach (Nirvana album)“>Fair use via Wikipedia.

1989년 6월 15일 Nirvana의 데뷔 앨범 “Bleach”가 발매되었다. Jack Endino가 프로듀사한 이 앨범은 1988년 12월에서 1989년 1월 사이에 시애틀에 있는 레시프로칼 레코딩(Reciprocal Recording)에서 녹음됐다. 밴드는 이 앨범을 스튜디오 타임으로 36시간 만에 녹음했고 비용은 단지 606.17달러가 소요됐다. 이 돈은 앨범에서 연주는 하지 않은 Jason Everman이 댄 돈이었다. 그는 Nirvana의 데모를 듣고 깊은 인상을 받았고 그룹의 세컨드 기타리스트로 잠시 참여하기도 했었다. Everman은 앨범 슬리브에 기타리스트로 등재되어 있지만 실제로 레코드 연주에 참여하지는 않았다. 시애틀의 소규모 인디락 레이블인 Sub Pop 레코드사에서 발매된 앨범은 평론가들의 호평을 얻었지만 첫 발매 당시 판매량은 불과 4만장 정도였다. 하지만 밴드의 두 번째 앨범 “Nevermind”가 엄청난 성공을 거두게 되자 이 앨범도 다시 조명을 받아 Geffen 레코드사가 재발매했고 판매량이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했다. “Bleach”는 최종적으로 1992년 빌보드 탑200 차트 89위까지 올랐다. 80년대에 발매되었지만 아직 그런지를 받아들이기에는 팝적인 시대였던 것 같다.
Track Listing
Vinyl
1.”Blew” – 2:55
2.”Floyd the Barber” – 2:18
3.”About a Girl” – 2:48
4.”School” – 2:42
5.”Love Buzz” (Robbie van Leeuwen) – 3:35
6.”Paper Cuts” – 4:06
7.”Negative Creep” – 2:56
8.”Scoff” – 4:10
9.”Swap Meet” – 3:03
10.”Mr. Moustache” – 3:24
11.”Sifting” – 5:22
Cassette and CD bonus track
12.”Big Cheese” (Cobain, Krist Novoselic) – 3:42 (originally the B-side of the “Love Buzz” single)
CD only bonus track
13.”Downer” – 1:43

Nicky Wire가 뽑은 명반 10선

주) 지금은 문을 닫은 음악사이트 changgo.com에 올라왔던 글을 전재합니다.

Nicky Wire : Manic Street Preachers의 베이시스트

THE BEATLES
Revoler(Parlophone, 1966)

♬ 내가 비틀즈를 알게된 데에는 오랜 시간이 걸렸다. 그들의 곡들은 멜로딕하고 꽤 괜찮다. 당신이 더 극단적인 사운드를
원하더라도, 그들의 다양성과 거침없는 가사에 대해 점차적으로 깨닫게 된다. 나는 이 앨범이 이러한 장점을 완벽하게 모아놓았다고
생각한다. 물론 [The White Album]도 사랑하지만 그것은 다소 과대평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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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CLASH
London Calling(CBS, 1979)

♬ 본 작품은 전생을 통틀어 내가 가장 많이 들었던 앨범이다. 매닉 스트리트 프리처스의 사운드 색은 이 앨범의 영향을 받고 있다.
클래시는 전 세계적인 현상이었던 것 같다. 여기에는 그렇게 다양한 음악이 있고, 그렇게 잘 프로듀싱되었으며 환상적인 가사가
있다. 아트워크 또한 놀랍다. 그것은 롤링 스톤스(The Rolling Stones)의 [Exile On Main Street]
만큼이나 좋다. 하지만 우리가 [London Calling]을 들으며 자라왔기 때문에 이 앨범이 더 우위를 차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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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OY DIVISION
Unknown Pleasures(Factory, 1979)

♬ 웨일즈에서 사는 것은 가장 끔찍한 일일 것이다. 많은 비가 내리는 꽤 고립된 곳. 그들의 전작을 살펴보면 꽤 파워풀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언 커티스(Ian Curtis)는 놀라운 뮤지션이다. 앨범의 가사는 내가 결코 들어볼 수 없었던 것이었다.
그들은 많은 면에서 꽤 불안정하였다. 한계를 깨뜨리는 데 있어서 이언 커티스는 대부분의 락 싱어보다 훨씬 뛰어났다. 아트워크 또한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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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M
Fables Of The Reconstruction(IRS, 1985)

♬ 이것은 내가 어렸을 때부터 들었던 앨범이다. 잊혀진 R.E.M의 시대. 인터뷰에서 그들은 항상 자신들이 정말로 끔찍하다고
말했다. 그들은 그것을 싫어했지만 나는 ‘Driver 8’, ‘Maps And Legend’, ‘Green Grow The
Rushes’를 사랑한다. 다만 내가 자주 연주하는 것들. 사랑스런 앨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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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UNS N’ ROSES
Appetite For Destruction(Geffen, 1987)

♬ 퍼블릭 에너미, 건즈 앤 로지스는 모두 약 1988, 89년 정도에 우리에게 다가왔다. 그들은 서로 완전히 다른 음악색을 띠고
있었지만 모두 세계적인 인기를 얻었었다. 나는 마력적인 락큰롤을 하였던 건즈 앤 로지스를 사랑하였다. ‘Sweet Child
O’ Mine’, ‘Welcome To The Jungle’, ‘Paradise City’, ‘Rockeet Queen’….
그것들은 모두 나의 기억에 각인되어 있다. 워런트(Warrent), 포이즌(Poison), 머틀리 크루(Motley Crue)와
같은 소프트메틀 밴드들이 있던 미국에서 그들은 실제적인 락큰롤 밴드로서의 모습을 보여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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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STONE ROSES
The Stone Roses(Silvertone, 1989)

♬ 이 앨범은 나의 지난 대학시절을 회상하게 한다. 이 밴드는 몇몇 공연을 가졌고 레코드 계약을 무시하는 태도를 보였다. 그리고
앨범이 나왔을 때 우리는 완전히 다른 시대에 있었다! 이때에 놀라운 1960년대 사이키델릭 팝 앨범을 냈던 것이다. 당시 우리는
미친 듯한 펑크음악을 만들고 있었다! 우리는 항상 그것을 연주하였지만 그것을 싫어하는 것 같았다. 우리는 정말로 그것에 의해
따돌림을 당하는 느낌이었다. 그러나 그것이 중요하다는 것을 알았다. 우리를 더 노력하게 만들고 목적의식을 주었던 것이다. 그것은
하나의 문화적인 현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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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UBLIC ENEMY
Fear Of A Black Planet(Def Jam, 1990)

♬ 제임스는 항상 ‘It Takes A Nation Of Millions To Hold Us Back’을 사랑하였고 끊임없이
연주하곤 했다. 그러나 나는 ‘Fear Of A Black Planet’, ‘Who Stole The Soul’, 그리고 특별히
놀라운 곡들이라고 생각하는 [Burn Hollywood Burn] 만큼이나 그것에 빠져들진 않았다. 나는 이 두개의 앨범들이
NWA의 [Straight Outta Compton]과 함께 랩 역사상 중요한 작품이라고 생각한다. 당신이 어떤 밴드의 곡을
카피할 수 없다는 것은 그 밴드가 아주 훌륭한 밴드라는 증거일 수 있다. 그리고 누구도 퍼블릭 에너미를 카피하지 못할 것이다. 그
음악은 랩뮤직이라고 하기에는 너무 빠르고 환상적인 가사를 갖고 있다. 랩은 현재 꽤 엉성한 R&B로 변형되기도 하였고
매우 퇴폐적이 되었다. 70년대 락뮤직과 비슷하게 그것은 여자, 마약 돈으로 고개를 돌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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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IRVANA
In Utero(Geffen, 1993)

♬ [Nevermind]가 나의 베스트로 되었을 수도 있었다. 그러나 [In Utero]는 우리가 꽤 불안정한 어떤 것을 필요로
했던 때 우리의 삶의 한 때를 요약하고 있다. 사람들은 너바나의 사운드가 얼마나 놀라웠던가를 잊고 있다. 이 앨범에는 존
보남(John Bonham)이나 낼 수 있음직한 최고의 드럼사운드가 있다. ‘All Apologies’는 전생을 통틀은 나의
베스트 곡들 중 하나가 되었다. 커트는 락의 신이고 너바나는 90년대를 대표하는 미국 최고의 밴드라고 생각한다. 내가 그를 만나본
적이 있냐구? 아니다. 솔직히 나는 실망하는 경우가 생길까봐 존경하는 사람과 마주치는 것을 피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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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UPER FURRY ANIMALS
Fuzzy Logic(Creation, 1996)

♬ 나는 다만 이 앨범을 사랑한다. 내가 그것에 관해 말할 수 있는 모든 것은 환상적인 작품이라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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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ASSIVE ATTACK
Mezzanine(Vergin, 1998)

♬ 매시브 어택은 댄스라는 장르로 다루기에는 꽤 다른 모습이다. 대신 그들은 모든 종류의 음악과 모든 종류의 스타일을 섞어
놓았다고 생각한다. ‘Risingsun’은 가장 희귀한 곡이다. 많은 방면에서 1990년대의 대표급 밴드라고 말할 수 있다.
그들의 곡은 영국에서 진행되는 음악들을 절충하는 듯한 성격을 지니고 있다. 그들은 우리의 곡들을 믹스하기도 하였고
블러(Blur)의 데이먼(Damon)도 그들과 이와 같은 일을 하였다. 나는 그들이 다양한 영국문화의 환상적인 표현이라고
생각한다. 

다른 뮤지션이 말하는 너바나

Nirvana around 1992.jpg
Nirvana around 1992” by P.B. Rage from USA – More Kurt — too rad. Licensed under CC BY-SA 2.0 via Wikimedia Commons.

Thurston Moore (of Sonic Youth)

가장 인상에 남았던 너바나에 대한 경험은, 아마 처음으로 그들을 봤을 때였을 것이다. 그땐 5인조 밴드였으며 채드라는 소년이 드러머였다. 동해안에서의 첫 라이브였는데, 아직 SUB POP에서 싱글 한장밖에 발매하지 않았던 무렵이라서 별로 유명하지 않았고, 그래서 별
기대도 하지 않았었다. 흔히 보는 개리지(Garage) 밴드구나 하고…. 그런데, 정말 대단했다(웃음). 멋있고, 깔끔하고, 겉모습만 봐도 충격적이었다. 커트는 키가 작았고, 크리스는 엄청난 거구였고…. 세컨 기타리스트는 헤비메탈같은 사운드를 플레이했고. 아무튼 놀라웠다. 공연 막바지에는 기타를 빙빙 돌리거나 드럼세트를 때려부수기도 해서 깜작 놀랐다(웃음). 재밌고 거친 친구들이었다. 나중에 멤버들에게 『이렇게 기자재가 다 부서졌는데, 앞으로 투어를 어떻게 할 작정이냐?』하고 물었더니, 커트가 『음, 고쳐서 다시 쓰죠 뭐』하더라(웃음). 그리고 91년에 유럽투어를 했는데, 그때도 그들과 함께 순회했다. 그당시엔 그들에게 많은 변화가 있었다. 장발의 기타리스트는 해고되고, 새로운 드러머 데이브 그롤도 가입했다. 그래서 예전처럼 멋진 밴드가 되진 못하겠구나 하고 걱정되기도
했었는데, 투어 첫날밤 아일랜드에서의 공연에서 그들이 첫번째 연주하는 곡을 보고나서는, 그 걱정이 쓸데없는 기우라는 것을
깨달았다. 그전보다 10배정도는 멋있어졌던 것이다. 당시 그곡은 곧 나올 “NEVERMIND”에 수록된 노래였다. 그리고 그들은 대형 공연장에서 플레이하는 유명밴드가 되어갔다. 너바나는 어쨌든 솔직하고 거짓말을 못하는 진짜 밴드였다. 그래서 그들을 좋아했던 것이다. 그들은 당시 미국 젊은이들의 문화에서 누구도 표현하려 하지 않았던 부분을 표현했기때문이다. 당시엔 Guns N’ Roses같은 그룹이 큰 인기였는데(웃음), 그중에서 너바나는 리얼리티의 진수를 표현했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Guns N’ Roses들은 락계에서 잊혀져가는 존재가 되었다. 너바나가 이룬 가장 큰 업적은, 레코드 회사들이 획일적으로 만들어내는 락스타들의 넌센스적 구조를 일축했다는 것이다. 그것이 진짜 의미에서의 “얼터너티브”였다.

Elivs Costello

커트는 어쨌든 대단한 송라이터였고, 훌륭한 싱어이기도 했다. 그들의 힘은, 손길이 닿을 것 같으면서도 닿지 않는 곳에 있는 마음의 장벽을 부수고 손을 내미는 점이라고 생각한다. 노래와 가사를 수단삼아, 자신들에게조차 미지의 세계였던 눈앞의 정신세계로 들어가려고 했다. 그래서 그만큼 강력했던 것이다.

Ian Brown (of Stone Roses)

어쨌거나 커트의 노래는 훌륭했다. 존 레논 이래 최고의 보컬리스트가 아니었겠는가. 너바나와 STONE ROSES는 같은 Geffen레코드사 소속이었는데, 그가 사망한지 3일 뒤에 사무실에 갔더니 사람들이 모두 슬픔에 잠겨 있었다. 그정도로 사랑받았던 사람이 왜그렇게 고독감을 품고 살았는지 이해를 못하겠다. 내가 정말 화나는 이유는, 그런 어린 딸을 남겨두고 자살해버린 일이다. 진짜 그녀석을 한대 후려갈겨주고 싶을 정도다.

Roddy Frame (of Aztec Camera)

그들이 영국의 심야 음악방송에 출연했을 때가 생각난다. 이리저리 뛰어다니면서 기자재를 엉망진창으로 만들어버렸던 일이 인상적이었다(웃음). 그 후, 그들의 음악을 주의깊게 듣게 되었고,『괜찮은데!』하며 반하고 말았다. 그들이, 자신들이 일으켰던 현상에 탐닉하지 않았던 점에 상당한 호감을 가졌었다.

Moby

“NEVERMIND”가 마이클 잭슨을 밀어내고 1위가 됐을 때는, 정말 말도 아니었다. 세계가 바뀌었다는 걸 느낄 정도였으니까. 그런데 너바나가 나오기 전에 인기있던 그룹은 머틀리 크루, 밴 헤일런같은 장발 스타일의 밴드뿐이었다. 나머지는 팝계의 밀리 바닐리
정도였고. 그누구도 언더그라운드 음악이 그렇게 성공하리라고는 생각지도 못하던 와중에 너바나의 인기는 급상승했다.’허스커 듀’나 ‘픽시즈’같은 그룹들은 전혀 팔리지 않았음에도, 너바나가 정상으로 뛰어오르는 바람에, 음악계가 하룻밤새 바뀌었다는 생각까지 들었었다.


Badly Drawn Boy

“NEVERMIND”는 대단한 앨범이다. 너바나를 듣기 전에는 PIXIES를 좋아했던지라, PIXIES쪽이 너바나보다도 중요한 밴드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커트가 사망하고 나서부터, 역시 그의 존재가 전설로써 거대화되어 버렸다. 그러고보면 데이브 그롤도 멋진 친구다. FOO FIGHTERS에서 훌륭한 작품을 계속 만들고 있으니까. 유명한 밴드에 있었던 경력을 등에 업고, 그 후에도 멋진 작품을 계속해서 쏟아내고 있다. 커트가 인생의 고비를 넘을 수 없었던 것은 슬픈 일이지만, 너바나가 만들었던 레코드는 모든 세대의 사운드트랙이 됐지 않은가? 그것이 가능했던 밴드는 별로 많지 않다.

Noel Gallagher

커트 코베인은 엄청난 송라이터였다. 만약 그가 살아있다면, 제 2의 존 레논이 되어 있었을 것이다. 그가 음악에 대해 말했던 것, 음악업계에 대해 말했던 것은, 그 어떤 것이든 100% 다 들어맞았다. 실제로 그를 만나지 못했던
것은 정말 유감이다. 그래도 그와 나는 같은 왼손잡이였고(기타는 오른손잡이), 나와 마찬가지로 푸른 눈이었으며, 나와 같은 날에
태어났다. 그래서 커트 코베인은, 왠지 나와 무척 가까운 사이같이 느껴졌다. 어떤 점이 그들의 가장 큰 매력인지는 확실히 잘 모르겠지만, 아마도 노래가 아닐까. 아니면 커트 자신일지도. 나는 그가 충분히 존 레논이 될 수 있었다고 생각한다.

Liam Gallagher

커트가 사망하고나서야 조금 흥미가 있던 정도였다. 뭐 상관없지 않은가? MTV 언플러그드를 봤는데, 그게 처음으로 그들의 음악을
제대로 들었던 때였다. 알고는 있었지만, 빌어먹을 긴머리를 하고서 시끄러운 소릴 내뱉고, 구질구질한 옷을 입은 녀석들이라니. 난 비틀즈가 더 좋다. MTV에서 어쿠스틱 기타로 연주하는 것을 보고, 나름대로 멋있다고는 생각했다. 몇몇 곡은 그냥저냥 들을만 하다고 생각하지만, 단지 그뿐이다.

Anthony Kiedis (RHCP)

“Californication 에는, 우리가 커트를 사랑하는 마음을 담은 부분도 있다. 그녀석을 생각하면서 말이다. 그녀석은 여러가지 면에서, 나에게 있어서 무척이나 중요한 의미를 가진 녀석이었기 때문이다. 정말 그런 느낌으로 이곡을 쓰면서 커트를 생각했었다. 천국에 갔는지 안갔는지는 모르겠지만, 그녀석이 어느곳에 있던지간에 그곳에서 행복하게 지내길 바랬고, 만약 어딘가 다른 별에 산다면, 그별에서 만든 음악을 들려준다면 좋겠다고 생각했었다. 우리들은 운좋게도 너바나와 함께 투어를 하곤 했으니까…. 그땐 정말 대단했다. 그리고 커트가 『In Utero』를 썼을 무렵 살고 있던 헐리우드 거리가, 그녀석에게 적지않은 영향을 주었으리라고도 생각했었다.

Tim Wheeler (Ash)

1992년에 너바나가 벨파스트에 왔을 때 라이브를 본 적이 있다. 그것이 내인생을 커다랗게 바꾼 계기였다. 사실 그전에도 난 헤비메탈을 좋아했었는데, 너바나의 “NEVERMIND”를 듣고, 그때까지와는 다른 음악에 심취하게 되었다. 그 라이브가 끝난 후, 나는 커트와 코트니, 데이브 그롤에게 사인을 받았다! 근데 그걸 당시 사귀던 여자친구에게 줘버렸다(웃음). 그리곤 얼마 후 헤어졌지만(웃음). 사인을 받은 후, 거기 있던 한 젊은이가 입고 있던 스웨터를 본 코트니가 『커트, 저 스웨터 너무 멋있지 않아요? 우리한테 팔라고 하죠!』라고 말한 뒤 그남자에게 30파운드(약 6만원)를 주고 사는 장면을 바로 곁에서 봤다. 그게바로 저 유명한 적과 흑의 줄무늬 스웨터였다!

Beck

나는 너바나의 팬이었다. 그들이 성공하기 전부터였지만. 우리들사이에서는 좀더 메탈에 가까운 밴드로 인식되어 있었다고는 해도, 그당시 횡행했던 Guns N’ Roses스타일과는 다른, 좀더 예전의 Black Sabbath나 Cheap Trick 등과도 통하는 헤비한 메탈이었다. 게다가, 보다 더 예술지향주의였고…. 이른바 ‘아티스트’다운 면을 지니고 있었다. 단순하고 마초적인 락과는 근본적으로 틀린, 다른 종류의 좀더 비뚤어진 취향을 갖고 있었다. 우리들은 모두 그러한 매력에 푹 빠지게 된 것이리라. 그러던 어느날,『NEVERMIND』가 발매됐는데…. 거의 팝앨범같은 결과가 되어버렸고, 처음과는 너무나도 달랐기때문에 우리들은 약간 충격을 받았다. 하지만 그 결과조차도 받아들였고, 그리고 그들이 기폭제가 되어 돌파구를 열어주었다. 지금 생각해도 그들이 이룬 업적은 어찌 그리도 참신했는지 다시금 돌이켜보게 만든다.
우리들 세대는 철이 들 무렵부터 이미 몇년 동안이나 음악이나 영화, 그밖의 모든 팝 문화를 이것저것 모두 떠안게 되었고, 어거지로 그것들을 그대로 주입당했다. 우리들은 그게 너무나도 싫어서 견딜 수 없었다. 우리들이 생각했던 것이나 세상에 대해 느꼈던 것들은, 당시 팝 문화에는 무엇하나 반영되어 있지 않았다고 생각되어 어쩔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그러한 때에 너바나가 나와서 처음으로 우리들의 생각을 대변하는 음악을 연주했고, 폭발시켰다. 그랬더니 갑자기 세상이 방향을 전환하며 이렇게 말했다. “아아! 역시 아이들도 성장하고 있었구나.”라고. 우리들에게도 사생활이 있고, 나름대로의 자기표현 방법이 있다는 것을 그시대 어른들은 처음으로 깨달았던 것이다.

DJ Shadow

대학교 2학년 무렵, 처음으로 “Smells Like Teen Spirit”의 비디오를 봤을 때 『와, 죽여준다』하고 놀랐었는데, Urban Radio라는 락이나 흑인음악 계열밖에 틀지 않았던 라디오 방송국이 그곡을 틀어주었다. 그런 현상을 만든 것 자체가 놀라웠다. 지금도 그런 풍조가 일어나면 좋을텐데. 너바나의 매력은 퍼블릭 에너미와 마찬가지로, 자신들이 노래불렀던 것을 정말로 믿고 있었다는 점에 있었다. 정말 그랬다. 그래서 커트가 죽었을 땐 무척 슬펐으며, 학교도 가지 않고 하루종일 MTV같은데서 뉴스를 봤던 추억이 있다.


Tom Waits

나도 너바나를 좋아했다. 『Bleach』에 수록된 노래들이, 어느 10대 소녀의 방 창문으로 쾅쾅 흘러나왔던 것이 기억난다. 그녀가 머리를 흔들면서 춤추고 있던 모습을 창문너머로 볼 수 있었다. 자살한 것은 유감이었다. 사람이 그런 극한의 선택을 할 수밖에 없었다는 사실은 유감스러운 일이다. 죽지않고 계속 활동했더라면 어떻게 됐을까 하는 생각도 해본다. 그런데 커트에게는 딸이 하나 있었잖은가? 그가 남긴 최고의 유산이 그의 딸이길 바란다. 자식이야말로 평생 남는 것이고, 가장 소중한 것이기도 하다. 레코드는…. 어차피 레코드일 뿐이니까(웃음).

What does “Never Mind” mean now?  : Nirvana의 Never Mind발매 20주년을 기념하는 Spin의 특집 페이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