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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ohn Taylor와의 인터뷰

그들이 요트위를 거닐건 또는 그들의 비데오클립 Wild Boys를 위하여 로드워리어처럼 행세를 하건 Duran Duran은 뮤직비데오를 일종의 상상력의 포스트모던 놀이터로 재해석했다. 키타리스트 John Taylor가 어떻게 해서 그들이 의도하지 않았던 선구자가 되었는지에 대해서 회상한다.

 

VH1: Duran Duran은 처음에 뮤직비데오를 만들기를 꺼려했나요?

John Taylor: 그것은 우리가 원하기전에 이미 존재했었어요. 그러나 그건 대단한 도구였죠. 밴드는 히트곡을 선전하기 위해 전세계를 돌아다닐 필요도 없었어요. 그래서 그 비데오들은 미국에서는 효과만점이었죠. 우린 우리가 하는 모든 인터뷰마다 왜 사람들이 비데오에 관해 언급하는지 이해가 되지 않았어요. “Hungry Like The Wolf”나 “Rio”같은 노래는 당신들은 비데오로 먼저 접했지요. 그 음악과 비주얼한 면은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동전의 양면이지요. 그들은 우리가 비데오를 만드느라 몇달을 고생하는줄 알고 있어요. 그러나 우리는 그걸 12시간내에 찍을 수 있었죠.

 

VH1: Duran Duran의 비데오에서의 모습에 영향을 준것은 무었인가?

Taylor: ’80년대 초에 나에게 최고의 비데오는 “제3의 인물” – 오손웰즈의 영화를 말하는듯(역주) – 에게 초점을 맞춤으로써 천재적인 영화에 경의를 표했었던 Ultravox의 “Vienna”였었어요. 우리는 그러한 방식을 “Hungry Like The Wolf”에 도입했었죠. 그 당시에 모든 사람들이 Apocalypse Now(프랜시스코폴라 감독의 지옥의 묵시록) 에 열광하고 있었기 때문에 우리는 거기에서 한두가지 아이디어를 따왔어요. 사실 그 노래의 콘텍스트도 거기서 따왔죠.

 

VH1: Duran Duran은 그런 비데오들을 위해 어떤 기여를 했나요?

Taylor: 꼭 그렇진 않아요. 난 음악가이지 영화제작자는 아니니까요. 우린 Russell Mulcahy와 일했는데 그는 뮤직비데오에 관한 책을 썼었죠. 그는 언제나 우릴 깜짝 놀라게 했어요. 그러나 우린 많은 레코드를 만들고 있었어요. 우린 가만히 앉아서 창조적으로 우리 비데오를 만들고 있을 시간이 없었어요. “Wild Boys”는 비데오를 위해 곡을 쓴 최초의 케이스라고 할 수 있네요. 우린 그때문에 Russell과 William Burroughs(네이키드런치의 작가) 의 책 Wild Boys에 관해 이야기를 했었습니다. 그는 그걸 full-length 의 작품으로 만들기를 원했죠. 그는 그것을 위해 노래 한곡을 쓸것을 요구했죠. 우린 곡을 썼고 그가 그 비데오를 위해 고안해낸 아이디어를 집어넣었어요. 그게 우리가 비데오에서의 모습이 어떻게 될까 생각하며 쓴 최초의 곡이었죠.

 

VH1: 당신은 MTV가 팝뮤직을 어떻게 변화시켰다고 생각하십니까?

Taylor: MTV 정말 고마워요! MTV는 차트에 새로운 차원의 에너지를 공급했죠. 젊음이 매우 중요한 요소가 되었어요. MTV는 새로운 아젠다를 요구했어요. 왜냐하면 더이상 라디오에서 연주하는 방식으로는 노래를 연주할 수 없게 되었기 때문이죠. Air Supply나 Christopher Cross의 뮤직비데오에서 그들은 연주는 할 수 있지만 존재하진 않는거에요. 그래서 그들은 새로운 음악을 접해야 했죠. Duran Duran이나 UItravox같은 이들말이죠.(우하~ 뭉게는군요. 못생겼다고…)

VH1: Duran Duran의 성공에 뮤직비데오가 얼마나 기여했다고 생각하십니까?

Taylor: 뮤직비데오는 우릴 수백만의 미국인의 가정에 전파했어요. 그러나 우리 역시 비데오에도 좋았어요 – 자신들이 뮤직비데오의 발전에 기여했다는 말인것 같음(바보역자주) – . 우린 어떤 밴드가 어떻게 미디어를 통해 자신들을 프로모트하는가에 대한 텍스트북 케이스였죠. 그리고 우린 매우 빠르게 진화했어요.

 

VH1: 뮤직비데오가 그들의 경력에 해가 된다고 생각해서 뮤직비데오를 거부하는 어떤 행동과 마주친적이 있나요?

Taylor: The Stones, Rod Stewart 또는 David Bowie같이 이미 명성있는 아티스트들은 그렇게 해야했죠. 그러나 만약 당신이 생존자라면 이 새로운 아이디어에 순응하여야 했죠. 비데오를 만들지 않는것은 매우 인디적인 자세입니다. George Michael은 그의 두번째 앨범 제작시 비데오를 만들지 않으려고 했다고 말하더군요. 그러나 그걸 만들기 전까지는 누구도 그걸 – 두번째 앨범(?) – 사지않았아요. 누군가 성공을 원한다면 비데오를 만들어야 합니다. 그리고 성공을 원하지 않는다면 뭐하러 레코딩 스튜디오로 갑니까?

 

VH1: 당신들은 “Girls On Film” 비데오가 그렇게 야한데에 놀라지 않았습니까?

Taylor: 우린 그 비데오의 내용을 이미 정확하게 알고 있었어요. 만약 우리가 알지 못했다면 매니져라도 알고 있었겠죠. MTV가 일반화되기 전에 뮤직비데오를 볼 수 있는 유일한 곳은 락클럽이었어요. 우리 비데오 “Planet Earth”와 “Careless Memories”는 잘 나갔드랬죠. 그래서 우린 Playboy와 Hustler가 조우하는 “Girls on Film”을 만든거에요. 찍는것은 끔찍했어요. 재미도 하나 없었어요. 우린 그런 녀석들이 아니랍니다. 그거 아세요? 그러나 발매되자 마자 논란거리가 되었죠. 그리고? Thanks very muc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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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0년대 뉴웨이브에 관한 Moby와의 인터뷰

조류에 거슬러 헤엄쳐 올라가는…. 여러분들은 아마 그의 메가히트곡 Play로 그를 기억할 것이다. 그러나 Moby는 이미 ’80년대 말부터 Acid House의 붐에 편승하여 그의 싱글을 내놓았던 전력이 오랜 아티스트이다. 음악 전문가들은 그를 하나의 아티스트로 만들어낸 New Wave에 대해 재고하고 있다.

 

VH1: 당신은 어떤 밴드가 뉴웨이브로 분류된다고 생각하시나요?

Moby: 그당시에 New Wave와 Punk사이에 엄격한 이분법이 존재하였기 때문에 참 대답하기 어려운 질문이네요. Black Flag, Bad Brains, Dead Kennedys는 펑크밴드였습니다. New Order, Depeche Mode, Duran Duran, Flock of Seagulls는 New Wave 밴드였습니다. 개인적으로는 Flock of Seagulls, Missing Persons, 또는 the Go-Go’s 등이 생각나네요. New wave는 클래식락과 같은 사운드가 아니면서도 씬써싸이저가 개입된 음악을 추구하는 짧은 머리를 한 아티스트들이 만들어내는 음악을 의미했었죠. 이제와서 생각해보면 경솔한 정의지요.

 

VH1: 그런 아티스트들이 어떻게 광범위한 팬층을 형성할 수 있었나요?

Moby: 그건 접근용이성과 멜로디에 관련된 흔히들 하는 질문이지요. The Dead Kennedys는 위대한 노래들을 만들어냈어요. 그러나 펑크는 자세, 에너지, 공격성과 더 많은 관련이 있었지요. 뉴웨이브는 언제나 “귀에 쏙 들어오는(Catchy)” 특징을 가지고 있었어요. 당신이 정말 뛰어난 멜로디에 드럼머쉰과 씬써싸이저를 입히면 새로운 싸운드가 태어나죠. 그러나 결국 요는 사람들이 좋아하고 쉽게 다가설 수 있는 훅(Hook : Catchy, Groove 등과 함께 우리말로 표현하기 참 어려운 단어중 하나)이었지요.

 

VH1: 그 당시엔 정말 키타보다 씬써싸이저를 많이들 채용하였나요?

Moby: ’80년대 중반에 키타 연주자와 씬써싸이저 연주자, 그리고 드러머와 드럼머쉰을 조작하는 사람들간에 전쟁이 벌어지고 있었죠. 그 당시 음반가게에 가면 아마도 당신은 드러머의 장점과 드럼머쉰의 장점에 대해 열띤 논쟁을 벌이고 있는 장면을 목격했을거에요. 그렇지만 그 전쟁에서 죽은 사람은 없었죠. 그러나 사람들은 정말 심각했어요.

 

VH1: 전형적인 뉴웨이브 아티스트의 패션은 어떠했죠?

Moby: 헤어젤 또는 헤어스프레이, 얇은 안경, Doc Maartens(Dr. Martens라는 브랜드를 의미하는듯함:역자주), 뽀족한 부츠, Converse(유명한 미국의 스포츠화:역자주), 달라붙는 검은 바지 또는 블랙진 정도가 뉴웨이브 아티스트들의 필수품목이었죠. 1981년 The Specials르 봤던 기억이 나네요. 사람들의 절반은 핑크와 블랙의 컴비네이션을 입고 있었어요. 그때 전 14살이나 15살이었는데 “와우~ 정말 근사하군.”하고 생각했었죠.

 

VH1: 그당시 팝차트에 머물던 곡들과 얼터너티브락은 어떤 차이가 있었죠?

Moby: ’80년대의 팝차트는 Prince, Michael Jackson, 헤어밴드들에 의해 점령되어 있었죠. 나중에 얼터너티브락은 Mission of Burma, R.E.M., the Pixies, 그리고 나중에 Jane’s Addiction 등에 의해 등장했어요. ’80년대 헤비메틀은 폭발적이었죠. 드럼은 무슨 폭발음같았어요. 씬써싸이저는 모든 것을 장식적으로 만들었죠. R.E.M.을 듣고 있자면 그건 보다 절제되고 기본적인 맛이 났어요. 키타는 키타 소리가 났었고 드럼은 드럼소리가 났죠. 마치 발가벗겨 진것처럼 말이죠. 1985년에 Husker Du나 R.E.M.은 무명 셔츠와 진을 입고 있었어요. 반면 The Time은 수트를 차려입고 헤어스타일은 무척이나 화려했었죠. 그들 모두가 과도기적인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반면에 하나의 교재였죠.

 

VH1: ’80년대 말 당신은 익사이팅한 시대를 살았다고 생각했었습니까?

Moby: 난 어쩌면 전혀 다른 시대를 살았다는 느낌입니다. 난 코네티컷에서는 14살짜리 펑크락커였고 뉴욕에서는 25살짜리 하우스 뮤직 열광자였으니까요. 많은 것들이 변화했죠. Charles Dickens를 인용하자면 정말 최고의 시대이자 최악의 시대였습니다.

 

VH1: ’80년대 어떤 유산을 남겼나요?

Moby: 그 시대에 많은 장르들이 탄생했죠. 그러나 그들은 길거리에 내팽겨쳐졌습니다. New Order같은 밴드를 보면 한편으로 New Wave 밴드였고 다른 한편으로 디스코 그룹이었습니다. 또다른 한편으로는 팝그룹이죠. 사람들이 디스코텍에 가서 음악을 듣고 그 노래가 차트에 올라가는 식이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그 음악은 실험적입니다. 다행히 그 유산들은 여전히 남아있어요. 사람들이 음악을 듣는 방식, 그리고 어떤 장르인지 개의치 않고 이 음악이 맘에 드는지 안드는지 자문하는 방식 등이라 할 수 있죠.

잭블랙 인터뷰

잭 블랙을 사로잡은 첫번째 곡은 7 살때 들은 ABBA의 Take a Chance on Me였고 그 다음에 그 기분을 되살린 곡은 어머니가 들려주신 Simon & Garfunkel의 Cecilia였다. 그가 처음간 콘서트는 Devo였고 곧 Styx와 Journey의 음악에 열광했다. 그는 위협적인 말투로 이렇게 말했다. “더이상 사람들을 당황하게 하고 싶지 않지만서도 하나만 더 말하자면 나의 소시적 음악 취향은 Huey Lewis & the News의 공연을 본것을 마지막으로 막을 내립니다”

Jack Black은 그의 밴드 Tenacious D에서 헤비 메탈을 연주하며 온갖 곡들의 리프를 입에달고 기타를 아작내는 익살스러운 락큰롤 전도사의 모습을 박스 오피스 1위 영화 School of Rock에서 보여준다. 하지만 무차별적인 쓰리코드 음악에 대한 사랑은 절대 장난이 아니다. “다들 구리다고 욕하는 헤비 메탈이 나의 음악적 뿌리라는 것을 결코 창피해하지 않습니다. Ozzy Osbourne의 Blizzard of Ozz 앨범은 날 변화 시켰어요. 그것도 영원히..”

Ozzy에 이어 그는 Iron Maiden, Judas Priest, Black Sabbath, Ronnie James Dio를 발견하는 기쁨을 느꼈다. 하지만 80년대 헤어메탈이라 불리는 치렁치렁한 음악이 나오면서, 그의 음악적 취향은 Meat Puppets, Minutemen, fIREHOSE, Sebadoh, Urge Overkill등의 언더 그라운드 얼터너티브 록들로 옮겨갔다. 그는 Soul Asylum도 좋아했지만 데이빗 퍼너가 위노나 라이더와 데이트한 이후론 시디를 다 불싸질렀다고 했다.-_-;;

그는 Nirvana의 대대적인 성공 전까진 모든 메인스트림 음악에 대해 거부감이 있었다고 한다.  그런 그의 Nirvana에 대한 사랑은 서브팝에서의 Bleach 음반에 이어 메이저 레이브 게팬에서 발매한 Nevermind가 대박을 터트린 이후에도 계속된다. “내가 좋아한 밴드들은 넒은 팬층이 없어서 나는 곧잘 그들에겐 내가 꼭 필요할거라고 생각해 왔고, 밴드가 뜨면 아쉬운 작별을 고하곤 했지만 Nirvana 만큼은 다른 사람들도 많이 좋아하니 나는 그만 듣겠다는 작별인사를 만할 엄두가 안나더군요. 그들은 나같이 기괴한 음악을 만드는 사람에게도 메인스트림에 진출할 수 있다는 희망을 줬어요.”

그 당시에 Jack Black의 음악 취향은 Bobby McFerrin이었다.  그의 보컬 스타일은 환상 그 자체였다고 그는 말하며, Billy Joel의 죽여 주는 손가락 움직임이 언제나 대뇌를 간지럽혔다는 기억도 끄집어냈다.

우여곡절 끝에 그는 헤비 메탈로 귀환했다. 화려한 David Lee Roth 시절의 Van Halen, Bon Scott가 몸 담고 있던 초기 AC/DC, 그리고 물론 Spinal Tap을 패러디하며 그때의 영광을 재건하려고 노력했다. 요즘 Jack Black은 Neptunes의 사이드 프로젝트인 N.E.R.D.의 음악을 즐기며 Radiohead, 그리고 Meg과 Jack White로 이루어진 밴드 White Stripes의 음악을 즐겨듣는다.

Jack Black과 Jack White가 혹시 어릴때 헤어진 음악적 쌍둥이가 아니냐는 농담을 던져봤다. Jack Black은 특유의 오버 하는 말투로 말했다. ‘우리 모두 록을 사랑합니다 솔직히 말하면 Jack White가 훨 났죠. 스테이지에서의 그의 존재감이란..  솔직히 그의 기타 연주를 들을 때면 어떤 면에선 화가 납니다. ‘그만 그마안해 내 뇌가 녹아 버릴것 같아~~’ 그는 정말 대단합니다.”

Jack Black은 요즘의 포스터용 보이밴드들과 요부형 여자가수들의 성공을  ‘얼굴만 반반한 것들의 습격’이라 정의했다. 그는 격앙된 목소리로 말했다. “우리는 Jennifer Lopez가 차트를 호령하는 암흑기에 살고 있습니다. 그녀의 보험들린 궁뎅이가 없었으면 그녀가 지금처럼 성공 할수 있었을까요. 더 말할 것도 없어요. 그녀는 노래의 노자의 모르는 무늬만 가수일 뿐입니다.”

최근 음악신에서의 락의 열정은 많이 퇴색했지만 다시 일어날 힘이 있다는 그의 믿음은 확고했고, 마지막으로 일성을 토했다. “락은 불사조처럼 재속에서 다시 일어나 건조한 이 음악계를 꼭 불질러 버릴겁니다.

스다다 스다다다다다아다…….”

Music according to Jack Black[USA Today]

잭블랙 인터뷰

잭 블랙을 사로잡은 첫번째 곡은 7 살때 들은 ABBA의 Take a Chance on Me였고 그 다음에 그 기분을 되살린 곡은 어머니가 들려주신 Simon & Garfunkel의 Cecilia였다.

그가 처음간 콘서트는 Devo였고 곧 Styx와 Journey의 음악에 열광했다.

그는 위협적인 말투로 이렇게 말했다

“더이상 사람들을 당황하게 하고 싶지 않지만서도 하나만 더 말하자면 나의 소시적 음악 취향은 Huey Lewis & the News의 공연을 본것을 마지막으로 막을 내립니다”

Jack Black은 그의 밴드 Tenacious D에서 헤비 메탈을 연주하며 온갖 곡들의 리프를 입에달고 기타를 아작내는 익살스러운 락큰롤 전도사의 모습을 박스 오피스 1위 영화 School of Rock에서 보여준다.

하지만 무차별적인 쓰리코드 음악에 대한 사랑은 절대 장난이 아니다.

“다들 구리다고 욕하는 헤비 메탈이 나의 음악적 뿌리라는 것을 결코 창피해하지 않습니다.
Ozzy Osbourne의 Blizzard of Ozz 앨범은 날 변화 시켰어요. 그것도 영원히..”

Ozzy에 이어 그는 Iron Maiden, Judas Priest, Black Sabbath, Ronnie James Dio를 발견하는 기쁨을 느꼈다.

하지만 80년대 헤어메탈이라 불리는 치렁치렁한 음악이 나오면서, 그의 음악적 취향은 Meat Puppets, Minutemen, FIREHOSE, Sebadoh, Urge Overkill등의 언더 그라운드 얼터너티브 록들로 옮겨갔다.

그는 Soul Asylum도 좋아했지만 데이빗 퍼너가 위노나 라이더와 데이트한 이후론 시디를 다 불싸질렀다고 했다.-_-;;

그는 Nirvana의 대대적인 성공 전까진 모든 메인스트림 음악에 대해 거부감이 있었다고 한다.
그런 그의 Nirvana에 대한 사랑은 서브팝에서의 Bleach 음반에 이어 메이저 레이브 게팬에서 발매한 Nevermind가 대박을 터트린 이후에도 계속된다.

” 내가 좋아한 밴드들은 넒은 팬층이 없어서 나는 곧잘 그들에겐 내가 꼭 필요할거라고 생각해 왔고, 밴드가 뜨면 아쉬운 작별을 고하곤 했지만 Nirvana 만큼은 다른 사람들도 많이 좋아하니 나는 그만 듣겠다는 작별인사를 만할 엄두가 안나더군요. 그들은 나같이 기괴한 음악을 만드는 사람에게도 메인스트림에 진출할 수 있다는 희망을 줬어요.”

그 당시에 Jack Black의 음악 취향은 Bobby McFerrin이었다.
그의 보컬 스타일은 환상 그 자체였다고 그는 말하며, Billy Joel의 죽여 주는 손가락 움직임이 언제나 대뇌를 간지럽혔다는 기억도 끄집어냈다.

우여곡절 끝에 그는 헤비 메탈로 귀환했다.
화려한 David Lee Roth 시절의 Van Halen, Bon Scott가 몸 담고 있던 초기 AC/DC, 그리고 물론 Spinal Tap을 패러디하며 그때의 영광을 재건하려고 노력했다.

요즘 Jack Black은 Neptunes의 사이드 프로젝트인 N.E.R.D.의 음악을 즐기며 Radiohead, 그리고 Meg과 Jack White로 이루어진 밴드 White Stripes의 음악을 즐겨듣는다.

Jack Black과 Jack White가 혹시 어릴때 헤어진 음악적 쌍둥이가 아니냐는 농담을 던져봤다.

Jack Black은 특유의 오버 하는 말투로 말했다.

‘우리 모두 록을 사랑합니다 솔직히 말하면 Jack White가 훨 났죠.
스테이지에서의 그의 존재감이란..
솔직히 그의 기타 연주를 들을 때면 어떤 면에선 화가 납니다.
‘그만 그마안해 내 뇌가 녹아 버릴것 같아~~’ 그는 정말 대단합니다.”

Jack Black은 요즘의 포스터용 보이밴드들과 요부형 여자가수들의 성공을
‘얼굴만 반반한 것들의 습격’이라 정의했다.

그는 격앙된 목소리로 말했다.

“우리는 Jennifer Lopez가 차트를 호령하는 암흑기에 살고 있습니다.
그녀의 보험들린 궁뎅이가 없었으면 그녀가 지금처럼 성공 할수 있었을까요. 더 말할 것도 없어요.
그녀는 노래의 노자의 모르는 무늬만 가수일 뿐입니다.”

최근 음악신에서의 락의 열정은 많이 퇴색했지만 다시 일어날 힘이 있다는 그의 믿음은 확고했고, 마지막으로 일성을 토했다.

“락은 불사조처럼 재속에서 다시 일어나 건조한 이 음악계를 꼭 불질러 버릴겁니다.
스다다 스다다다다다아다…….”

-USA Toda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