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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lege Rock

근본적으로 College Rock은 Alternative Rock의 태동기(1983 ~ 84)에서부터 대학가의 라디오을 주도했던 Alternative Music을 일컫는 개념이다. 대부분의 College Rock은 New Wave, Post Punk, 그리고 초기 Alternative Rock의 복합적인 영향아래 놓여있었다. 대부분의 College Rock 밴드들은 초기에 New Wave가 그랬듯이 메인스트림에서 큰 호응을 얻지 못했다. 비록 보다 예술적이긴 했지만 Post Punk만큼 실험적이거나 분파적인것은 아니었다. 그리고 많은 미국 밴드들이 그들의 뿌리를 Punk나 Hardcore에 두기는 했지만 모든 College Rock 밴드가 그렇지는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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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MBG” by Matthew Jording from Brooklyn, NY, USA – DSC03697. Licensed under CC BY 2.0 via Wikimedia Commons.

초기 밴드들중 주요한 두 밴드는 각각 미국과 영국에서 Guitar-pop을 선도하고 있었던 R.E.M과 Smiths이다. 그럼에도 College Rock의 음악적 테두리는 보다 넓다. 그 범위는 대략 미국측에서의 Hardcore적인 언더그라운드 락씬(Sonic Youth, the Minutemen, the Meat Puppets, Dinosaur Jr., the Replacements), 영국에서의 New Wave 생존자들(XTC, Robyn Hitchcock, They Might Be Giants, the Violent Femmes, Camper Van Beethoven, the Pixies), 지적인 포크락(Billy Bragg, 10,000 Maniacs), 그들의 음악에 팝적인 요소를 가미한 포스트펑크락커(the Cure, Siouxsie & the Banshees), 씬써싸이저에 기반한 댄쓰팝 밴드(New Order, Depeche Mode), 그리고 귀를 찢는듯한 키타 소음에 팝훅을 뒤섞은 밴드(the Pixies, the Jesus & Mary Chain)에 이르기까지 소위 지적인 청취자가 좋아할만한 갖가지 조류의 인디펜던트 음악을 아우르고 있었다.

이후 메인스트림의 편입된 스타들은 U2, Peter Gabriel, Sting 등을 들 수 있다. College Rock의 전성기는 역설적으로 이후 Nirvana가 1991년 메인스트림을 격파하면서 끝을 맺었다. 대학가의 래디오 선곡은 메인스트림의 그것과 흡사해졌고 실험적이고 파격적인 얼터너티브/인디 밴드들은 땅속으로 더 깊이 들어가 버렸다.

주요앨범들

The English Beat: I Just Can’t Stop It [1980]
Jane’s Addiction: Ritual de lo Habitual [1990]
Tracy Chapman: Tracy Chapman [1988]
Marshall Crenshaw: Marshall Crenshaw [2000]
XTC: Fossil Fuel: The XTC Singles 1977-1992 [1996]
Sonic Youth: Sister [1987]
Violent Femmes: Violent Femmes [1983]

AllMusic 참조

R.E.M / Murmu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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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M. – Murmur” by The cover art can be obtained from I.R.S... Licensed under Wikipedia.

`얼터너티브 록의 원조` 라는 소문만 듣고 이 앨범을 구한 사람은 처음에는 실망할 지도 모른다. 록 밴드가 연주하는 음악이기에는 포크같은 그것도 포크 록보다는 포크 팝에 가까운 이 음악이 무슨 얼터너티브의 원조? 조지아 출신의 이 밴드는 처음부터 이런 수수께끼를 가지고 등장했다 그리고 그 수수께끼는 아직도 완전히 풀리지 않고 있다. 그렇지만 음악이 흘러나오면서 실망은 호기심으로 바뀐다 `징글 쟁글`한 피터 벅의 기타는 솜씨좋고 능숙한 아르페지오로 백킹을 반복한다 아이클 스타이프의 보컬은 무슨 말인지 알아 들을 수 없는 가사로 시적 몽롱함을 만들어낸다 매끄럽고 명칭한 사운드의 전성기에 이들의 사운드는 때로 불길하다는 느낌마저도 줄 정도로 `앳모스리어릭(atmospheric)`하다 을듣고 뉴웨이브의 리듬을 을 듣고 포크 록의 리프를 그리고 무든 곡에서 아메리칸 포크로 부터팝적 선물을 느끼는 것은 당연하다 그런데 이 모든 것은 분명 어디선가 들어본 듯하지만 왠지 모르게 낯설고 외경스럽다 팝을 전복하는 팝 즉 팝이라는 개념은 영국의 스미스와 더불어 R.E.M에게 특히 이 앨범에 가장 잘 어울린다. 평론가들은 R.E.M을 논할 때 버즈와 벨벳언더그라운드 동시적 영향을 언급한다 참 이상하다 히피와 비트는 당대에는 상극이었다 이렇게 극단적인 것 사이에 평형을 유지하는 것이 그들이 과거에는 얼터너티브 밴드였고 현재는 주류에서의 성공을 관리하면서 버티는 비결일지 모른다 R.E.M의 수수께끼는 얄미울 정도로 계속된다.(출처 불명)

Pixies, Th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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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ixies in Kansas City, October 1, 2004” by Stephanie D.Pixies in Kansas City, October 1, 2004. Licensed under CC BY-SA 2.0 via Wikimedia Commons.

6년동안 팩시스의 존재는 인디 씬에 신선한 바람을 몰고 왔다. 보스톤에서부터 세계적 헤더라이너까지 의미 심장한 가사와 격럴한 기타웍으로 뭉친 픽시스는 인디 씬에서 최고의 록밴드로 평가하는 그룹중의 하나가 되었다.

캘리포니아에서 비틀매니아인 ‘CHARLES MICHEAL KITRIDGE’ 즉,’BLACK FRANCIS’가 태어났다. 그의 아버진 술집 주인이었고 우울한 학교시절을 보낸다. 그래서 캘리포니아의 바닷가는 그의 음악세계에 어떠한 영향도 미치지 못했다. 그는 기타, 베이스, 피아노, 드럼을 배우기 시작했고 후엔 보컬영역까지 넘나 들었다.

비틀즈와 도어즈에 심취해있던 프란시스가 ‘MASSACHUSETTS’ 대학에서 필리핀계 룸메이트인 ‘JOEY SANTIAGO’ 를 만나게 되고 그로부터 70년대 펑크사운드와 ‘DAVID BOWIE’, ‘IGGY POP’ 을 소개 받게 된다. 그와 있는 동안 음악과 기타에 몰두하게 되나 산티아고와 헤어진후 방탕한 생활에 빠지게 된다.

1986년 5월 보스톤으로 돌아온 그는 밴드를 만들기로 결심한다. 그리고 프란시스는 다시 산티아고와 만나 짖굿은 작은 요정이란 뜻의 ‘PIXIES’ 란 이름으로 밴드를 만들고 신문에 ‘HUSKER DU’, ‘PETER,PAUL AND MARY’ 와 같은 음악성향이 비슷한 베이스스트를 구한다는 광고를 내게 된다. 그리고 그 광고를 보고 온 ‘KIM DEAL’은 메사추세츠의 ‘IZ WIZARD’ 와 ‘RIFF RAFF’에 있던 드러머인 ‘DAVID LOVERINGIL’ 을 대리고와 같이 픽시스에 함류하게 된다. 그래서 1986년 러버링길 아버지의 허름한 창고에서 부터 픽시스의 사운드는 시작된다.

얼마후 그들은 8곡이 담긴 데모테잎을 만들어 ‘ROXBURY’ 의 ‘FORT APACHE’ 스튜디오에 있던 매니져겸 프로듀서인 ‘GARY SMITH’에게 그것을 보냈고 데모를 들은 스미스는 흡족해 하며 첫 번째 미니 앨범을 제작케 했다. 1987년 3월의 일이었다. 그리고 이 데모테잎을 영국 인디레이블 ‘4AD’ 제작자인 ‘IVO-RUSSELL에게 보내게 되고 그는 곧 그들의 데뷰EP앨범 ‘COME ON PILGRIM’을 영국과 유럽시장에 내놓게 된다. 총 7곡의 짧은 곡들로 구성된 이 앨범은 프란시스의 악마적(?)인 외침속에 부드러운 멜로디로 곡들이 짜여져 있으며 종교적 색채와 성과 로큰롤이라는 대립되는 주제를 표현하고자 했다.

두번째 앨범은 이보의 제안으로 프로듀서인 ‘STEVE ALBINI’가 참가하게 되고 픽시스의 사운드를 확립시켜 내놓은 그들의 최고 앨범 surfer ROSA가 14일 동안의 녹음으로 1988년에 나오게 된다. 타이틀 곡인 ‘GIGANTIC’을 필두로 픽시스를 세상에 본격적으로 알리는 작픔이 되었다. 기계적으로 처리된 목소리, 거친 기타리프. 어울리지 않은 듯 하지만 조화를 이루고 있는 곡들. surfer ROSA는 음악적으로 상업적으로 모두 성공하게 되었고 영국 인디차트 정상을 차지하는 영광과 유수 잡지에서 최고의 밴드로 대우받게 되는 계기가 되어 주었다.

1988년 4월에 ‘LONDON’S MEAN FIDDLER’를 시작하여 튜어를 떠나게 된다. 이 공연 이후 그들의 팬들은 늘어 났고 여기서 킴딜은 후에 ‘BREEDERS’ 의 베이시스가 될 ‘JOSEPHINE WIGGS’ 을 만난다. 밴드로서는 프로듀서’GIL NORTON’ 과 알게 된다. 그리고 보스톤 스튜디오에서 임시 가제인 whore 로 그들의 세번째 앨범을 녹음하게 된다. 픽시스의 음악적 끼가 함축된 앨범 doolittle이란 타이틀로 1989년에 발매하게 된다.

어떤 이들은 픽시스하면 doolittle을 떠올린다. 15곡이 담긴 이 앨범은 누구를 비웃기라도 하듯이 당당히 첫 베스트원을 차지했다. ‘DEBASER’ 는 나무랄때 없는 픽시스의 No1노래이며 곡 자체의 가사와 멜로디는 잘 조화를 이루고 있다.

세번째 앨범의 활동을 마감하게 될때 킴딜은 1989년 12월말에 ‘LONDON’S MEAN FIDDLER’에서 서포트 밴드로 나온 ‘THROWING MUSES’ 의 키타리스트 ‘TANYA DONNELLY’, 또 서포트 밴드로 출연한 ‘PERFECT DISASTER’ 의 베이시스트 ‘JOSEPHINE WIGGS’, 하드코어 밴드 ‘SLINT’ 출신의 19살 무명의 드러머인 ‘BRIT WALFORD’ 와 프로젝트 그룹 ‘BREEDERS’ – 게이들이 사용하는 이성애란 뜻의 슬랭어 – 를 결성한다. 알바니가 다시 프로듀서를 맏아서 13곡을 녹음했고 pod란 제목으로 발매된다. 그리고 런던에서 비공식적 공연을 시작으로 브리더즈의 활동은 시작된다. 브리더즈은 픽시스와 쓰로잉 뮤지스를 섞어 놓은 것 같다는 평을 듣게 된다.

그리고 킴딜은 다시 LA에서 픽시스의 네번째 앨범을 녹음하기위해 밴드와 다시 합류한다. ‘MASTER CONTROL’ 스튜디오에서 bossanova 가 제작되고 서퍼 사운드와 SF적 내용이 앨범에 담겨진 이 앨범은 픽시스가 적절한 평과 댄스는 그만두라는 등의 상반된 평을 듣게 된다. 주목할 만한 것은 ‘ANA’ 는 드물게 어쿠스틱 버전으로 만들어 져다는 것이다. 픽시스는 후에 몇 개의 커버곡들을 만들었는데 이 곡들은 평론가들로 부터 외면당하기도 했다. 픽시스의 행로가 예상된 투어 ‘LODON’S BRIXTON ACADEMY’ 에서 킴딜은 우리의 마지막 공연이 될 것이라는 말을 함으로써 픽시스를 얼마동안 보지 못 할 것이란 의미를 내던진다. 그리고 프란시스는 ‘LONDON’S BORDERLINE’ 에서 개인 공연을 갖게되고 이것은 프란시스와 킴딜의 관계가 좋지 않음을 알수 있게 해 주었다.

1991년 ‘OZZIE OSBOURNE’ 이 녹음 한적이 있는 LA의 ‘MASTER CONTROL’ 스튜디오에서 5번째 앨범 trompe LE MONDE를 녹음한다. 15곡이 담겨있는 이 앨범은 픽시스가 뭔가 잘 못 되었음을 알게 해준 앨범이었으나 ‘PLANET OF SOUND’ 와 ‘U-MASS’ 는 그나마 픽시스의 모습을 볼 수 있게 해 주었다. 그리고 오래지않아 프란시스는 라디오에서 픽시스해산을 알림으로 픽시스의 역사를 접게 했다.

(from Clubnono)

디스코그래피
1987 Come on Pilgrim [EP] 4AD/Elektra
1988 Surfer Rosa 4AD/Elektra
1989 Doolittle 4AD/Elektra
1990 Bossanova 4AD/Elektra
1991 Trompe le Monde 4AD/Elektra

링크
PixiesWeb
Pixies 4AD
팬페이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