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ixies, The

Pixies in Kansas City, October 1, 2004.jpg
Pixies in Kansas City, October 1, 2004” by Stephanie D.Pixies in Kansas City, October 1, 2004. Licensed under CC BY-SA 2.0 via Wikimedia Commons.

6년동안 팩시스의 존재는 인디 씬에 신선한 바람을 몰고 왔다. 보스톤에서부터 세계적 헤더라이너까지 의미 심장한 가사와 격럴한 기타웍으로 뭉친 픽시스는 인디 씬에서 최고의 록밴드로 평가하는 그룹중의 하나가 되었다.

캘리포니아에서 비틀매니아인 ‘CHARLES MICHEAL KITRIDGE’ 즉,’BLACK FRANCIS’가 태어났다. 그의 아버진 술집 주인이었고 우울한 학교시절을 보낸다. 그래서 캘리포니아의 바닷가는 그의 음악세계에 어떠한 영향도 미치지 못했다. 그는 기타, 베이스, 피아노, 드럼을 배우기 시작했고 후엔 보컬영역까지 넘나 들었다.

비틀즈와 도어즈에 심취해있던 프란시스가 ‘MASSACHUSETTS’ 대학에서 필리핀계 룸메이트인 ‘JOEY SANTIAGO’ 를 만나게 되고 그로부터 70년대 펑크사운드와 ‘DAVID BOWIE’, ‘IGGY POP’ 을 소개 받게 된다. 그와 있는 동안 음악과 기타에 몰두하게 되나 산티아고와 헤어진후 방탕한 생활에 빠지게 된다.

1986년 5월 보스톤으로 돌아온 그는 밴드를 만들기로 결심한다. 그리고 프란시스는 다시 산티아고와 만나 짖굿은 작은 요정이란 뜻의 ‘PIXIES’ 란 이름으로 밴드를 만들고 신문에 ‘HUSKER DU’, ‘PETER,PAUL AND MARY’ 와 같은 음악성향이 비슷한 베이스스트를 구한다는 광고를 내게 된다. 그리고 그 광고를 보고 온 ‘KIM DEAL’은 메사추세츠의 ‘IZ WIZARD’ 와 ‘RIFF RAFF’에 있던 드러머인 ‘DAVID LOVERINGIL’ 을 대리고와 같이 픽시스에 함류하게 된다. 그래서 1986년 러버링길 아버지의 허름한 창고에서 부터 픽시스의 사운드는 시작된다.

얼마후 그들은 8곡이 담긴 데모테잎을 만들어 ‘ROXBURY’ 의 ‘FORT APACHE’ 스튜디오에 있던 매니져겸 프로듀서인 ‘GARY SMITH’에게 그것을 보냈고 데모를 들은 스미스는 흡족해 하며 첫 번째 미니 앨범을 제작케 했다. 1987년 3월의 일이었다. 그리고 이 데모테잎을 영국 인디레이블 ‘4AD’ 제작자인 ‘IVO-RUSSELL에게 보내게 되고 그는 곧 그들의 데뷰EP앨범 ‘COME ON PILGRIM’을 영국과 유럽시장에 내놓게 된다. 총 7곡의 짧은 곡들로 구성된 이 앨범은 프란시스의 악마적(?)인 외침속에 부드러운 멜로디로 곡들이 짜여져 있으며 종교적 색채와 성과 로큰롤이라는 대립되는 주제를 표현하고자 했다.

두번째 앨범은 이보의 제안으로 프로듀서인 ‘STEVE ALBINI’가 참가하게 되고 픽시스의 사운드를 확립시켜 내놓은 그들의 최고 앨범 surfer ROSA가 14일 동안의 녹음으로 1988년에 나오게 된다. 타이틀 곡인 ‘GIGANTIC’을 필두로 픽시스를 세상에 본격적으로 알리는 작픔이 되었다. 기계적으로 처리된 목소리, 거친 기타리프. 어울리지 않은 듯 하지만 조화를 이루고 있는 곡들. surfer ROSA는 음악적으로 상업적으로 모두 성공하게 되었고 영국 인디차트 정상을 차지하는 영광과 유수 잡지에서 최고의 밴드로 대우받게 되는 계기가 되어 주었다.

1988년 4월에 ‘LONDON’S MEAN FIDDLER’를 시작하여 튜어를 떠나게 된다. 이 공연 이후 그들의 팬들은 늘어 났고 여기서 킴딜은 후에 ‘BREEDERS’ 의 베이시스가 될 ‘JOSEPHINE WIGGS’ 을 만난다. 밴드로서는 프로듀서’GIL NORTON’ 과 알게 된다. 그리고 보스톤 스튜디오에서 임시 가제인 whore 로 그들의 세번째 앨범을 녹음하게 된다. 픽시스의 음악적 끼가 함축된 앨범 doolittle이란 타이틀로 1989년에 발매하게 된다.

어떤 이들은 픽시스하면 doolittle을 떠올린다. 15곡이 담긴 이 앨범은 누구를 비웃기라도 하듯이 당당히 첫 베스트원을 차지했다. ‘DEBASER’ 는 나무랄때 없는 픽시스의 No1노래이며 곡 자체의 가사와 멜로디는 잘 조화를 이루고 있다.

세번째 앨범의 활동을 마감하게 될때 킴딜은 1989년 12월말에 ‘LONDON’S MEAN FIDDLER’에서 서포트 밴드로 나온 ‘THROWING MUSES’ 의 키타리스트 ‘TANYA DONNELLY’, 또 서포트 밴드로 출연한 ‘PERFECT DISASTER’ 의 베이시스트 ‘JOSEPHINE WIGGS’, 하드코어 밴드 ‘SLINT’ 출신의 19살 무명의 드러머인 ‘BRIT WALFORD’ 와 프로젝트 그룹 ‘BREEDERS’ – 게이들이 사용하는 이성애란 뜻의 슬랭어 – 를 결성한다. 알바니가 다시 프로듀서를 맏아서 13곡을 녹음했고 pod란 제목으로 발매된다. 그리고 런던에서 비공식적 공연을 시작으로 브리더즈의 활동은 시작된다. 브리더즈은 픽시스와 쓰로잉 뮤지스를 섞어 놓은 것 같다는 평을 듣게 된다.

그리고 킴딜은 다시 LA에서 픽시스의 네번째 앨범을 녹음하기위해 밴드와 다시 합류한다. ‘MASTER CONTROL’ 스튜디오에서 bossanova 가 제작되고 서퍼 사운드와 SF적 내용이 앨범에 담겨진 이 앨범은 픽시스가 적절한 평과 댄스는 그만두라는 등의 상반된 평을 듣게 된다. 주목할 만한 것은 ‘ANA’ 는 드물게 어쿠스틱 버전으로 만들어 져다는 것이다. 픽시스는 후에 몇 개의 커버곡들을 만들었는데 이 곡들은 평론가들로 부터 외면당하기도 했다. 픽시스의 행로가 예상된 투어 ‘LODON’S BRIXTON ACADEMY’ 에서 킴딜은 우리의 마지막 공연이 될 것이라는 말을 함으로써 픽시스를 얼마동안 보지 못 할 것이란 의미를 내던진다. 그리고 프란시스는 ‘LONDON’S BORDERLINE’ 에서 개인 공연을 갖게되고 이것은 프란시스와 킴딜의 관계가 좋지 않음을 알수 있게 해 주었다.

1991년 ‘OZZIE OSBOURNE’ 이 녹음 한적이 있는 LA의 ‘MASTER CONTROL’ 스튜디오에서 5번째 앨범 trompe LE MONDE를 녹음한다. 15곡이 담겨있는 이 앨범은 픽시스가 뭔가 잘 못 되었음을 알게 해준 앨범이었으나 ‘PLANET OF SOUND’ 와 ‘U-MASS’ 는 그나마 픽시스의 모습을 볼 수 있게 해 주었다. 그리고 오래지않아 프란시스는 라디오에서 픽시스해산을 알림으로 픽시스의 역사를 접게 했다.

(from Clubnono)

디스코그래피
1987 Come on Pilgrim [EP] 4AD/Elektra
1988 Surfer Rosa 4AD/Elektra
1989 Doolittle 4AD/Elektra
1990 Bossanova 4AD/Elektra
1991 Trompe le Monde 4AD/Elektra

링크
PixiesWeb
Pixies 4AD
팬페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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