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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attle Beyond the Stars

스타워즈(1977)와 ‘7인의 사무라이’(아니면 이 영화를 패러디한 ‘황야의 7인’)을 짬뽕하여 철저히 흥행을 노리고 만든, 그러나 참 심심한 작품. 제작 로저 코먼 프러덕션, 시나리오 존세일즈, 미술감독 제임스카메론, 조지페파드(A특공대의 맏형)와 로버트본(‘황야의 7인’에도 출연했던)의 쌍끌이 조연 등 나름대로 호화진용이었다. 하지만 음악에서부터 너무 스타워즈를 베낀 티를 역력한데다 전투장면은 왜 그리도 어둡고 두서없는지 하는 생각이 든다. 결정적으로 주인공 Shad 역을 맡은 리차드토마스는 정갈하게 머리빗은 70년대 회사원풍의 가녀린 외모를 하고서는 어찌 그리 죽도 못먹은 사람마냥 힘없이 연기하는지 보는 사람이 지루할 정도이다.(뺨에 점은 또 왜 그리도 커보이는지) 다만 네스토라 불리는 외계인 캐릭터 설정은 나름 볼만 했다. 그러나 어쨌든 나름대로 틈새시장을 노린 이 작품은 로저 코먼이 80년대 내놓은 영화중 가장 좋은 흥행성적을 남겼다고 한다.

나의 아름다운 세탁소 (My Beautiful Laundrette, 198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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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y Beautiful Laundrette Poster” by The cover art can or could be obtained from MoviePosterShop.com.. Licensed under Wikipedia.

스티븐 퓨리어스가 파키스탄 이민 2세인 작가 하니프 쿠레이쉬(Hanif Kureishi)의 각본을 바탕으로 파키스탄 이민자 2세대인 오마르와 그 가족들이 과거의 식민제국이자 자본주의 체제의 첨병인 영국에서 살아남기 위해 버둥거리는 모습을 사실적으로 그린 작품.

영화의 등장인물은 하나같이 비뚤어져 있다. 자신의 이상주의적 가치관과 현실과의 괴리로 인해 시체처럼 살아가는 오마르의 아버지, 인종적 차별을 돈으로 해결하려는 오마르의 삼촌 나세르와 샬림, 오마르와 어릴 적 친구였으면서도 파시스트 청년들과 몰려다니는 조니, 그리고 다시 만난 조니를 고용인으로 부리면서 – 한편으로는 동성애적 관계에 빠지면서도 – 전도된 만족감을 얻으려는 오마르.

인종, 계급, 동성애, 가부장 등 이 사회의 가장 첨예한 사회적 이슈들이 뒤섞여 있다. 마치 영화에서 등장하는 세탁기 안의 빨래처럼. 그것들은 때로 색깔진한 빨래가 다른 빨래에 물을 들이듯이 서로 영향을 미친다. 때로는 전도된 계급관계에 희열을 느끼는 경우처럼 변태적이기도 하고 겉으로는 불륜이면서도 나름대로는 인종을 뛰어넘는 구식 로맨스이기도 하다. 그렇지만 어느 것 하나 뾰족한 답은 없다. 그저 매캐한 영국의 매연과 흐린 하늘처럼 늘 우리 옆에 존재할 뿐이다.

오마르는 나름대로 세탁소 같은 ‘깨끗한’ 사업으로 성공하려 하지만 그것이 언제까지 지속될지는 장담할 수 없다. 그리고 인종과 성적 편견을 뛰어넘는 조니와의 사랑도 역시 언제까지 지속될 것인지는 알 수 없다. 그저 영화 마지막의 애정 어린 물장구가 둘의 미래에 일말의 희망을 암시할 뿐이다.

p.s. 사무실 밖에 있는 조니가 사무실의 오마르를 창너머로 바라보는 얼굴로 오마르의 얼굴이 반사되는 장면은 둘의 서로를 향한 마음을 압축적으로, 그리고 시각적으로 예리하게 표현한 참 ‘영리하게’ 연출된 장면이었다.

p.s.2 물방울이 보글거리는 듯한 음향효과의 주제음악과 세탁기가 돌아가는 듯한 시각효과의 타이틀시퀀스도 인상적이다.

The Commitments(소설)

아일랜드의 수도 Dublin을 배경으로 하고 있는 이 소설은 Derek 과 Outspan 이 그들이 몸담고 있는 밴드 And And And 에 대한 대안을 마련하기 위해 음악에 대해 빠삭한 Jimmy 에게 도움을 요청하면서 시작된다. Jimmy 는 Frankie Goes To Hollywood 를 누구보다도 먼저 들었고 남들이 열심히 듣고 있을 때는 이미 그들을 쓰레기 취급할 정도로 음악을 듣는 감각이 앞서 있었다.(소위 Hipster?) Jimmy 는 And And And 가 커버하고 있는 Depeche Mode 를 싸구려 “아트스쿨” 음악이라고 치부하면서 새로운 음악의 이정표를 제시한다. 이른바 “Dublin Soul”!!


Jimmy 에 따르면 Soul 은 보통사람, 즉 인민(people)들의 음악이다. Soul 은 “I wanna hold your hand” 따위의 에두른 표현이 아닌 “I feel like sex machine”과 같은 진솔하고 직설적인 표현으로 사랑을 노래한다. 바로 Sex 그 자체를 노래한다. 또한 Soul 은 정치(politics)이다. Jimmy 에 의하면 어느 정치정당, 심지어 노동당마저 Soul 이 없어서 나라꼴이 말이 아닌 것이다. Soul 은 착취 받는 흑인계층, 보다 근본적으로 노동계급의 음악으로 정치적인 선동성을 지니고 있는 것이다. 따라서 새로이 만들어질 밴드는 더블린에서 Soul 을 전파하는 전도사의 역할을 수행할 것이다.


이렇게 하여 새로운 밴드는 하나하나 형상을 빚어간다. 섹서폰, 피아노, 드럼 등 차근차근 진용이 갖추어지기 시작하였고 보컬에는 후에 밴드의 문제아로 등장하는 Deco 가 가세했고, 밴드의 정신적 지주이자 또 하나의 문제아로 자리매김하게 될 Joey 가 트램팻을 맡게 되었다.  


소설은 이런 일련의 밴드의 결성과정과 성장과정, 그리고 갈등과 뒤이은 밴드의 해체를 유머러스한 에피소드를 엮어서 서술하고 있다. 후에 이 작품을 토대로 만들어진 영화와는 큰 틀에서 비슷한 사건으로 전개되기는 하지만 몇몇 부분에 있어서는 차이를 보이고 있다. 우선 Jimmy 는 영화와는 달리 많은 부분을 Joey 에게 의존하고 있다. 또한 밴드멤버 간의 갈등의 결정적 계기에 있어서도 차이가 있다. 소설에서는 갈등 폭발의 방아쇠는 밴드멤버들이 모두 사모하고 있던 Imelda 가 당기게 된다.  


음악을 주제로 하는 소설은 그 음악을 – 영화와 달리 – 직접 들려줄 수 없기 때문에 웬만한 용기가 아니고서는 시도할 수 없지 않을까 할 정도로 어려운 시도다. Roddy Doyle 은 자신의 고향인 Dublin 과 모타운의 음악인 Soul 이라는 어울리지 않는 두 실체를 소설이라는 형식을 빌려 한데 엮으려 시도했고 그 시도는 유의미했다. 그것은 바로 우리가 이 소설을, 그리고 이를 토대로 만들어진 영화를 보면서 더 이상 Dublin 을 정치적 갈등과 가난의 고장으로만 여기지 않기 때문이다.

The Evil Dea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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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vil dead ver1” by Movie Goods. Licensed under Wikipedia.

스파이더맨 시리즈로 거물감독이 되어버린 샘레이미의 1983년 데뷔작. 개연성 없고 식상한 시나리오이지만 그 식상한 소재를 풀어내는 이야기 솜씨가 뛰어난 작품. 재기발랄한 카메라웍, 장꼭또의 영화에서 따왔음직한 특수효과를 비롯한 여러 뛰어난 이미지의 결합, 특히 피로 물들어가는 영사기 화면과 전구 장면 등은 감독의 가능성을 보여주는 것들이다. 그러나 엑소시스트를 흉내낸 그 어설픈 좀비들은 어쩔 수 없는 팝콘무비의 한계이리라. 여하튼 나름 상업적 성공도 거두어서 살아남은 주인공 브루스캠벨을 활용하여 3편까지 시리즈를 이어갔다.

Amazon Women On The Moon

사실 이 작품은 마치 TV 코미디물 ‘Saturday Night Live’ 처럼 서로 크게 관련이 없는 일련의 단편희극으로 이루어져 있어 엄밀한 의미에서 통일된 주제의 장편영화로 볼 수 있는 것인지에 대해 의문이다. 결국 이 작품은 Joe Dante, Carl Gottlieb, Peter Horton, John Landis, Robert Weiss 등 여러 감독들이 Carrie Fisher, Steve Guttenberg, B.B. King, Arsenio Hall, Michelle Pfeiffer, 기타 많은 배우들을 긁어모아 한번 웃어보자고 만든 작품이다. 각 단막극의 소재는 전산화된 정보를 바탕으로 한 연애풍속도, 신생아를 잃어버린 의사의 해프닝, TV 속에 갇혀버린 노인 등 각양각색인데 굳이 줄기 단막극이 있다면 50년대 컬트 SF ‘Cat Women Of The Moon’ 을 비꼰 ‘Amazon Woman On The Moon'(바로 이 영화의 제목)이다. 머리비우고 한번 킥킥대고 싶은 사람들에게 추천할만한 영화.

The Postman Always Rings Twice

1946년 동명의 영화를 리메이크한 작품. 뜨내기 건달, 학대받는 아내, 둘의 공모, 이를 모르는 그리스인 남편, 느와르가 갖추어야할 기본문법을 착실히 갖춰놓고 진행되는 이 영화는 성행위의 적나라한 묘사로 인해 개봉당시 화제가 되기도 했었다. 이런 구설수 때문에 국내에서는 ‘우편 배달원은 벨을 두 번 울린다’라는 개봉제목을 ‘포스트맨은 벨을 두 번 울린다’라고 바꾸는 해프닝도 있었다(대체 우편 배달원과 포스트맨의 차이가 뭐람).  하지만 영화는 노골적인 성애영화라거나 – 물론 웬만한 성애영화보다도 성적묘사가 탁월하다 – 전통적인 느와르하고는 약간 다른 노선을 걷는다. 영화는 둘의 범죄행위가 과연 죽음으로 단죄 받을 만큼 잘못된 것인지에 대해 살짝 의문을 제기하고 있기 때문이다. 또한 범죄의 요소만 빼고 본다면 서로 다른 성격의 상처받은 두 사람이 만나서 사랑에 빠지게 되는 통속적인 멜로드라마적 성격도 강하다. 그러면서 한편으로 극의 진행은 이 건달과 남편 살해범이라는 두 커플이 해피엔딩을 맺을지도 모르는 희망을 관객에게 넌지시 암시한다. 그러나 영화 말미에서 일어나는 어이없는 사고는 ‘마치 인간은 미워하지 못해도 죄는 용서받을 수 없다’라고 관객을 희롱하는 것만 같다. 잭니콜슨의 애절한 눈물연기가 인상적인 라스트신이었다.

Not Of This Earth

Roger Corman 감독의 1957년 작을 원작으로 한 SF 영화. 몇몇 상황설정을 제외하고는 – 그리고 여성들이 보다 성적으로 개방적이고 나체를 많이 보여준다는 점 등 – 오리지널과 다르지 않은 스토리로 진행된다. 특기할 점은 포르노스타로 이름을 날리던 Traci Lords 가 간호원 역으로 출연한다는 점이다. 그녀는 이 후 Johnny Depp 이 출연한 컬트 무비 Cry Baby 에 출연하는 등 나름대로 진지한 연기활동을 펼쳐나간다. 배우들의 연기는 한층 어색해져서 보는 사람들이 민망할 정도이다. 다만 당연한 이야기이겠지만 특수효과는 진일보하였다. 개봉 당시 미국내 극장 수입은 8만 달러에 불과했다 한다. 포스터에서 보이는 저 괴물은 등장하지 않는다.

Roxanne

영혼의 아름다움과 육체의 아름다움 중 어느 것이 더욱 소중한 것인가 하는 질문은 참 진부하지만 연애를 할 때 항상 곱씹곤 하는 질문이다. 영육 분리와 이 중 영혼에 더욱 높은 가치를 두는 가치관은 중세 기독교에서부터 비롯된 것이 아닌가 하고 생각하고 있는데 – 거의 맞을 듯? – 결국 이러한 가치관이 오늘날까지 면면히 내려와 일종의 상식으로 자리 잡은 것 같다. 유명연예인들 흔히 인터뷰에서 ‘외모보다는 마음씨를 본다’ 라는 말을 서슴지 않고는 나중에 의사나 재벌3세와 결혼하곤 하니 말이다.

Edmond Rostand의 Cyrano de Bergerac 을 현대화하여 만든 Roxanne 가 바로 이러한 접근방식을 취하고 있다. 외모만 근사한 소방대원 Chris와 길쭉한 코 탓에 열등감에 시달리지만 재치 있고 사려 깊은 소방대장 C. D. Bates(Steve Martin)는 둘 다 재색을 겸비한 Roxanne Kowalski (Darryl Hannah)를 좋아한다. 그러나 Roxanne 의 눈에는 Chris 가 먼저 필이 꽂혔고 무식한 Chris 는 C.D. 의 도움으로 그녀와 데이트를 즐긴다. 어딘가 이상하다는 것을 눈치 챈 Roxanne 은 결국 둘의 음모를 알아내고 C.D. 와 크게 말다툼을 벌인다.

결말은 충분히 예상할 수 있을 것이다.

Steve Martin 의 최전성기에 최고의 역량을 발휘하여 만든 작품이 아닌가 싶다. 특히 맥주홀에서 모욕을 당한 C.D. 가 특유의 입담으로 상황을 모면하는 장면에서의 Steve Martin 의 입담은 가히 달인의 경지가 아니었던가 싶다. 원작을 현대화하여 시나리오로 담아낸 이도 바로 그이다. 이후 그는 작가로서의 길을 걷고자 했고 그 데뷔작이 바로 얼마 전에 소개한 Shopgirl 이었다. Darryl Hannah 는 이 작품과 Splash 등을 통해 80년대 섹스심볼로 부각되었다.

비슷한 영화로 프랑스에서 1990년 원작에 충실하게 만들어진 ‘시라노’와 여성판 시라노 ‘개와 고양이에 관한 진실’이 있다.

VENUS戰記(Venus War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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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enus Wars” by Derived from a digital capture (photo/scan) of the VHS or DVD Cover (creator of this digital version is irrelevant as the copyright in all equivalent images is still held by the same party). Copyright held by the film company or the artist. Claimed as fair use regardless.. Licensed under Wikipedia.

야스히코 요시카즈 감독/각본의 극장용 애니메이션. 금성이 사람이 살 수 있는 환경이 되어서 많은 이들이 이주를 하여 살아가고 있는 어느 미래. 이 행성은 이스탈과 아프로디아라는 두 개의 자치구로 나뉘어져 있다. 아프로디아의 수도 이오에서 모터사이클 경기가 있던 어느 날 이스탈은 이오를 침략하여 하루 만에 아프로디아를 점령하고 만다. 반항기 많은 모터사이클 선수 히로는 그의 친구들과 함께 이스탈에 저항하고 우연한 기회에 저항군에 합류하게 된다. 스산한 이미지의 금성이 두텁게 묘사되고 있고 화면구성이 박진감 넘친다. 스토리는 비교적 단순한 편.

Monsieur Hir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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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onsieur Hire” by http://www.allocine.fr/film/fichefilm-4755/photos/detail/?cmediafile=18658504. Licensed under Wikipedia.

철없는 금발미녀 Alice는 건달과 사랑에 빠져 그와 결혼하는 것이 소원이다. 바로 길 건너에 사는 보잘 것 없는 외모의 독신자 Hire 씨의 취미는 브람스의 피아노곡을 틀어놓은 채 Alice(Living Next Door To Alice?)의 일거수일투족을 훔쳐보는 것이다. 이런 독특한 취미(?)의 Hire 씨는 경찰로부터 또 다른 금발미녀를 살해했다는 의심을 받고 있다.

어느 번개 치는 저녁에도 Alice 를 훔쳐보던 Hire 는 그만 Alice 에게 자신의 모습을 들키고 만다. 그러나 대범하게도 Alice 는 Hire 에게 접근하여 그를 은밀히 유혹한다. 너무 사랑하여 감히 그녀를 손댈 수 없는 Hire 는 그녀의 향수와 같은 종류의 향수를 음미하며 그녀를 회상한다. 왜 Alice 는 보잘 것 없는 Hire 에게 접근하는 것일까? 이것이 살해사건과 함께 또 하나 영화가 던져주는 미스터리다.

우리에게는 “사랑한다면 이들처럼(Hairdresser’s Husband)”로 유명한 Patrice Leconte 감독이 그 영화를 만들기 한 해 전에 만든 작품이다. 스릴러라는 장르 형식을 띤 작품으로서는 이채롭게도 화면과 내러티브는 나직하고 은근하다. 그것은 Alice 를 사랑하는 – 그 사랑이 관음증적 사랑이라는 왜곡된 형태이기는 하여도 – Hire 의 고단한 일상을 소묘하기에는 그만이다.

Hire 는 자신의 선택에 후회는 없었을까? Alice 는 자신의 선택에 후회는 없었을까? 아니면 그 둘은 선택할 다른 길이 없었을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