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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verything You Always Wanted to Know About Sex, But Were Afraid to Ask

어떨 때는 유태인 음모집단이 유태인의 영악함을 감추기 위해 우디 알렌을 세상에 내보내 유약하고 열등감 많은 유태인 캐릭터를 창조한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그는 유난히 편집증적인 동시에 유난히 자신이 유태인임을 강조한다. 즉 그의 영화를 본 관객들은 “유태인은 똑똑하긴 하지만 콤플렉스 덩어리에 배포도 없구나” 라고 생각해버릴 것이고, 이는 유태인 음모집단에게 더없이 좋은 가면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각설하고.

사실 우디 알렌의 필르모그래피에서 일관되게 관통하는 주제는 뉴욕이라기보다는 오히려 (같은 유태인이었던 프로이드와 마찬가지로) 섹스다. 온통 혼란스럽고 어느 것 하나 맘먹은대로 되지 않는 이 험난한 세상에서 우디 알렌, 또는 그의 페르소나가 택한 안식처는 섹스(한 가지 덧붙이자면 째즈 정도)인 것이다. 그리고 “당신이 섹스에 대해 언제나 알고 싶어 했지만 묻기는 두려웠던 모든 것”이라는 긴 이름의 이 작품에서 우디는 섹스를 조리고, 볶고, 굽고, 끓이고, 쪄서 관객들에게 선사한다. 다양한 코스의 섹스 요리라 할 수 있다. 어떤 요리가 맛있는지는 각자의 취향에 달려있다.

일곱 개의 에피소드로 장식된 이 작품의 첫 번째 에피소드는 왕비를 사랑하는 광대의 이야기다. 욕정에 사로잡힌 광대가 감히 왕비의 침실로 숨어들어 사랑의 묘약으로 왕비를 유혹하지만 하필 왕이 왕비를 찾아오는 바람에 곤란을 겪는다는 에피소드이다. 이후 여러 흥미로운 에피소드가 등장하는데 개인적으로 좋아하는 에피소드는 진와일더가 양과 사랑에 빠진 의사 역을 맡은 에피소드다. 압권은 양과 사랑에 빠졌다는 농부의 말에 황당해하는 진와일더의 표정연기인데 친구들과 이 장면을 보고 약 3분 정도 정신없이 웃었다.

요컨대 ‘섹스’를 기본재료로 한 일종의 코스요리인 이 작품은 우리가 무의식중에 불편해하던 ‘섹스’라는 소재를 가지고 우디 알렌이 솜씨를 발휘해 만들어낸 웰메이드 코미디이다. 어쨌든 우리는 일상적으로 섹스에 노출되어 있다. 하드코어이든 은밀한 은유이든 간에 말이다. 아무리 ‘도덕적’인 사회가‘원죄’를 들먹이며 ‘섹스’를 억누르려 해도 그것은 마치 풍선처럼 어느 방향으로든 튀어나오고 마는 생물의 엣센스 중 하나이다(안 그러면 인류는 멸망하겠지).이처럼 “우리가 좋아하면서도 공유하기 두려워하는 섹스”를 주제로한 이 영화의 미덕은“나름” 고급코미디임을 내세워 도덕의 뭇매를 맞지 않고서도 처음 대하는 이성(異姓)과도 대화주제로 삼을 수 있을 정도의 중용을 걷고 있다는 점일 것이다.

그나저나 우디 알렌은 프리메이슨일까?

Shadows And Fog

어느 사람에게어떤 영화를 싫어하냐고 했더니 ‘어두운 영화가 싫다’고 대답했다. 그래서 슬픈 줄거리의 영화인줄 알았더니 그냥 화면이 어두운 영화를 두고 하는 이야기였다. 그렇다면 그는 이 영화를 절대 보지 말아야 할 것이다. 이 영화는 안개 자욱한 밤거리에서 벌어진 하루 동안의 사건을 소재로 하고 있는 영화니깐 말이다. 시종일관 주의를 기울여보지 않으면 등장인물이 안보일 정도로 화면이 어둡다.

이유도 모른 채 동네 사람들에 의해 잠이 깬 클라인만(우디 알렌)은 동네 사람들이 계획한 연쇄살인범 체포 작전에 울며 겨자 먹기로 가담하지만 정작 자신의 역할이 무엇인지는 알지도 못한다. 한편 동네 어귀의 서커스단에서는 칼을 집어 삼키는 여인 아이미(미아 패로우)가 그의 남편과 싸우고 집을 뛰쳐나와 버린다. 이후 등장인물들은 이런 저런 에피소드로 서로 얽히고설키는 관계가 된다.

마틴 스코세스 감독의 1985년작 After Hours, 토드 브라우닝의 Freaks, 그리고 칼리갈리 박사의 밀실이 한데 합쳐져 카프카의 소설에나 나옴직한 무대 세트에 옮겨 각색된 듯 한 작품으로 예의 우디 알렌의 신경쇠약적인 유머 – 칼을 삼켰을때 딸꾹질을 하면 어떻게 되느냐는 식의 – 와 셀 수 없을 정도의 카메오가 눈요기 거리(일 수도 있고 오히려 보다 지칠 수도 있)다.

Match Point

내가 우디 알렌에게 기대하는 두 가지 것, 즉 냉소적 유머와 뉴욕이 이 영화에는 없다. 그리고 영국식 악센트와 비극적인 사랑이 그 빈 공간을 채우고 있다. 나는 이 영화를 이틀에 걸쳐 감상했다. 전반부는 흔해 빠진 삼각관계의 연애담이다. 성공을 갈망하는 야심찬 젊은이, 그의 매력에 반한 부잣집 아가씨, 바람둥이인 그녀의 오빠, 그리고 야심찬 젊은이의 뜨거운 눈길을 견뎌야 하는 미국에서 온 금발의 ‘그녀의 오빠’의 애인. 후반부를 봐야 하는 이틀째 이대로 영화가 계속 상투적으로 간다면 우디 알렌의 영화라 할지라도 끝까지 참고 봐야 할 필요가 있을까 하는 의문을 가지면서 영화를 감상하였다. 결국 예상대로 빗나간 사랑은 파국으로 치닫고 있었다. 마침내 부잣집 아가씨 클로이와의 결혼하여 성공의 사다리를 타게 된 야심찬 젊은이 크리스는 사랑(love)과 욕망(lust)은 다른 것이라며 이미 남이 되어버린 ‘그녀의 오빠의 전(前)애인’ 노라 라이스와 육체적 유희에 빠져든다. 제어할 수 없는 심성의 소유자인 노라(그녀의 오빠의 애인)[스칼렛 요한슨]의 독기어린 이혼요구에 크리스는 드디어 돌아올 수 없는 강을 건너려는 생각을 하게된다. 결말은 이야기해줄 수 없지만 만약 내 예상대로 결말이 나지 않았더라면 대단히 실망스러웠을 뻔했다. 역시 우디 알렌만이 보여줄 수 있는 ‘냉소’가 있어야 ‘우디 알렌 표 영화’라는 스탬프를 찍을 수 있을터이니 말이다. 테니스공과 반지, 그리고 마약중독자의 커넥션이 이어지는 순간. 그러나 반드시 지적해야 할 한 장면. 그가 나 빗속을 뛰쳐나간 노라와 이를 뒤쫓아 간 크리스가 보리밭에서 격정에 휩싸여 섹스를 하는 그 장면이 도대체 이해가 가지 않는다. 왜냐하면 둘 다 진을 입고 있었기 때문이다. 안락한 장소도 아닌 비오는 보리밭에서 비에 축축이 젖었을 그 청바지를 정성과 시간을 들여 벗고도 여전히 정욕이 남아 있을 만큼 그렇게 그 둘이 뜨거웠을까 하는 의문이 뇌리에서 사라지지 않는다.

The Purple Rose of Cairo

관객이 영화 속으로 들어가 캐릭터들과 어울린다는 Sherlock Jr.의 아이디어를 반대로 뒤집으면 이 영화가 된다. 1930년대 대공황으로 지치고 팍팍한 삶을 살고 있는 한 빈민가정의 주부(미아패로우)는 남편의 술주정과 폭력에서 탈피하고자 영화관을 찾는다. 그리고 The Purple Rose of Cairo 라는 영화의 주인공(제프다니엘스)을 흠모한다. 그런데 영화를 보는 도중 갑자기 이 주인공이 영화 밖으로 뛰쳐나오고 어찌어찌해서 미아패로우와 사랑에 빠진다. 영화는 주인공의 탈출로 인해 진척이 안 되고 나머지 캐릭터는 하릴없이 주인공을 기다린다. 이에 영화사는 주인공 역할의 배우를 현지에 파견한다. 뒤죽박죽 섞이는 스토리에서 현실과 판타지의 경계에서 현실탈피를 꿈꾸는 한 여인의 감정을 전하는 이 영화는 우디알렌이 미아패로우를 주연배우로 쓰던 시기의 피크를 이루었던 작품이다.

Sherlock Jr.

버스터키튼 Buster Keaton 은 그 천재성과 영화사에서 있어서의 중요성에도 불구하고 동시대의 또 다른 천재 희극인 찰리채플린의 빛에 가려 영원한 2인자 신세로 전락하고만 – 희극계의 트로츠키? – 불운한 배우라 할 수 있다. 그래서 그의 트레이드마크인 무뚝뚝한 표정은 어쩌면 자신의 영화인으로서의 위치를 예감한 표정이 아닌가 싶기도 하다. 이 영화는 1924년에 만들어진 코미디라는 외피를 뒤집어쓰고 있기는 하지만 그 형식적이거나 내용적인 측면에서 동 시대의 영화를 뛰어넘는 위대한 영화이다. 셜록홈즈와 같은 훌륭한 탐정이 되는 것이 소원인 한 젊은이가 영화에 직접 들어가 극중 캐릭터와 함께 사건을 풀어간다는 초현실주의적인 착상은 영화 속의 영화보기라는 묘한 쾌감을 관객들에게 선사하는 동시에 영화의 본질이 무엇인가 하는 문제에 대한 철학적 고찰이라 할 수 있다. 우디알렌은 후에 The Purple Rose of Cairo에서 이 아이디어를 그대로 차용한다(물론 같은 아이디어로 만들어진 라스트액션히어로라는 어이없는 작품도 있다).

Hannah and Her Sisters

뉴욕이라는 공간을 배우에 버금가는 주요배역으로 격상시킨 우디알렌이 애니홀과 맨하탄 등에 이어 또 한 번 뉴욕과 뉴욕에 거주하는 사람들에 관한 이야기를 영화화하였다. 서로가 물고물리는 애정관계는 때로는 유치하게 때로는 강박적으로 서로를 구속하고 서로를 애태우고 또 서로를 성숙시키기도 한다. 몰라도 아는 척 알아도 모르는 척 가족이라는 뗄 수 없는 유대관계를 지키기 위해 때로는 자신의 자존심을 지키기 위해 등장인물들은 위험한 줄타기를 반복한다. 누가 도덕적으로 더 옳은 것인가 하는 도덕적 판단기준은 이 영화에서 주된 포인트가 아니다. 하지만 영화 말미에 우디알렌에게 닥친 시련 – 일종의 반전? – 은 “사랑이란 원래 그렇게 허무한 것이야” 라고 가벼운 충고 한마디로 치유 가능한 것일까? 마이클케인이 우유부단한 한나의 남편 역을 잘 소화해주었고 대배우 맥스폰시도우 Max von Sydow 가 자존심강한 화가 역으로 출연한다.

Play It Again, Sam

우디알렌의 희곡을 바탕으로 허버트로스가 1972년 만든 이 영화는 비록 우디알렌이 감독한 작품은 아니지만 그의 필로모그래피 전반에 차용되는 여러 분위기들 – 이를테면 주인공의 편집증적인 성격, 도시라는 공간에서 벌어지는 욕정과 배신, 사랑이라는 감정의 모순 등 – 이 충실하게 재현된 작품이라 할 수 있다. 아내에게 버림받은 소심하고 나약한 영화평론가 알란펠릭스(우디알렌)은 언제나 카사블랑카의 험프리보가트와 같이 카리스마있고 남성적 매력이 넘치는 자신을 꿈꾸고 영화에서는 상상속의 험프리보가트가 이러한 알란의 또다른 자아를 설명한다. 알란은 가장 친한 친구 딕 부부의 도움으로 그는 이런 저런 여자들을 만나지만 그러다 정작 딕의 아내인 린다크리스티(다이안키튼)을 사랑하게 된다. 하지만 결국 그 애틋한 감정은 린다의 거절로 순간의 추억이 되고 만다. 그럼에도 알란은 카사블랑카의 마지막 장면처럼 자신도 린다를 남자답게 떠나보내 주었다고 자위한다. 우디알렌다운 뻔뻔함이다. 우리가 우디알렌에게 발견할 수 있는 미덕이 곳곳에 배치되어 있는 이 소품은 나른한 일요일 오후에 맥주 한잔을 옆에 두고 감상하기 딱 좋다.

p.s. 이 영화의 제목은 잘 알다시피 영화 카사블랑카의 명대사이다.

What’s New Pussycat?

1962년작 ‘아라비아의 로렌스’에서의 카리스마 넘치는 전사로 올드팬들의 뇌리에 남아있는 피터오툴이 뜻밖에도 1965년 우디알렌이 시나리오를 쓴 What’s New Pussycat?에서 바람둥이 패션에디터 마이클제임스 역에 도전하였다. 아름다운 약혼녀 캐롤(로미슈나이더)을 두고서도 바람기를 잠재울 길없어 이 여자 저 여자의 사이를 방황하는 제임스가 정신과 의사(피터셀레스)에게 요청을 하지만 이 의사 역시 한 바람기하기 때문에 결국 상황은 계속 예상치 못한 방향으로 꼬여만 간다. 피터오툴의 천역덕스런 바람둥이 연기도 볼만하지만 가장 뛰어난 코미디언이라는 찬사를 받는 피터셀레스의 과장된 연기가 압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