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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e Boucher / The Butcher

프랑스 뉴웨이브 영화제작자들은 단지 오락거리로만 취급되었던 헐리우드의 몇몇 감독들의 예술성을 간파하고 이를 재해석하는 데에 기여하였다. 대표적으로 서부극의 존포드, 멜로드라마의 새뮤엘플러, 코미디의 하워드혹스 등이 있다. 이러한 운동의 선두주자였던 끌로드채브롤 Claude Chabrol 은 이 영화에서 노골적으로 알프레드히치콕의 코드를 (일종의 오마쥬로써) 차용한다. 한 시골의 여교사로 취임하는 주인공과 그녀를 사랑하는 푸줏간 주인, 그리고 이들을 둘러싸고 벌어지는 연쇄살인이 극의 주요흐름이다. 작품은 철저히 히치콕적(的)인 정신의학적 스릴러이다. 그래서 마치 프랑스어로 더빙한 히치콕의 작품을 보는 것 같은 느낌이다. 비록 이렇듯 노골적으로 히치콕을 차용하였다 하더라도 여전히 이 작품은 수준 높은 웰메이드 스릴러임에는 틀림없다.

High Anxiety

한 유명한 정신병원에 원장으로 취임한 쏜다이크 박사(멜부룩스)를 중심으로 펼쳐지는 음모를 그린 코미디영화다. 이 영화는 알프레드히치콕의 작품들을 여러 개 패러디했는데 대표적으로 – 제목에서도 짐작할 수 있듯이 – Vertigo 가 있고 이외에 Psycho, The Birds 등도 멜브룩스에 의해 재해석되었다. 영화에서 그려지는 정신병원은 요지경 세상이다. 정신병원의 환자들은 최고의 의료진으로부터 남부러울 것 없는 치료를 받는 듯 보이지만 실은 그 의료진들 자체가 이미 정신병자이거나 신경쇠약에 시달리고 있다. 게다가 그들은 부당이득을 위해 이미 치료가 끝난 환자들마저도 계속 병원에 가둬놓고 있다. 그런 병원에 원장으로 취임한 쏜다이크 박사는 이미 기득권 세력들에게 눈의 가시 같은 이였고 그를 제거하려는 음모가 진행된다.

멜브룩스는 이 영화로 1978년 골든글로브 남우주연상을 수상하였다.

Peeping Tom

고디바는 11세기 영국 코벤트리 지방에서 막강한 권력을 가진 영주의 어린 부인이었다. 그녀는 주민들이 과중한 세금에 시달리는 것을 시정해달라고 남편에게 간청하였다. 남편은 알몸으로 말을 타고 시장을 한 바퀴 돌면 세금을 감면해주겠다고 말했다. 부인이 포기할 것이라고 생각한 것이다. 그러나 부인은 정말 나체가 된 채로 말을 타고 시장을 돌았고 부인의 갸륵한 마음을 하는 주민들은 창밖으로 그녀를 쳐다보지 않았다. 그러나 탐이라는 친구만은 그녀를 몰래 보았고 이에 천벌을 받았는지 후에 맹인이 되었다. 이것이 관음증을 가리키는 Peeping Tom 이라는 표현의 기원이 되었다.

마이클 파웰 Michael Powell 의 1960년작 Peeping Tom 은 너무나 유명한 이 표현을 제목으로 앞세워 작품의 주제를 명확히 내세우고 있다. 어렸을 때부터 냉정한 과학자 아버지 아래에서 일종의 실험표본의 취급을 받으며 성장한 마크가 관음증적 증상에 시달리며 급기야 자신이 살인하는 여인의 마지막 모습을 카메라에 담는 취미에 탐닉하게 된다. 그러한 그를 진정으로 아껴주는 여인이 나타나지만 이미 그는 자신의 악취미에서 빠져 나오기에는 회복불능의 경지까지 타락해 있었다.

같은 해 만들어진 알프레드히치콕의 Psycho 에 필적할 만큼 왜곡된 성장배경으로 인하여 삐뚤어진 삶을 살게 될 운명에 처한 인물을 그려낸 스릴러의 걸작이지만 발표 당시에는 소재의 선정성에 집착한 평단으로부터 차가운 몰매를 맞아야 했다. Psycho 가 실제로 어머니의 편향된 보육으로 인해 살인마가 된 Ed Gein 을 모델로 한만큼 마크라는 변태적 인물의 현존 가능성도 얼마든지 개연성이 있는 문제이지만 오히려 평단이 그러한 리얼리티를 따라가지 못한 것이리라.

Match Factory Girl

아키카우리마스키(Aki Kaurismäki)의 유머감각은 그의 고향 핀란드의 날씨만큼이나 냉소적이다. 성냥공장에서 일하며 빈둥거리며 세월을 죽이는 그의 부모를 공양하는 불쌍한 소녀가장도 욕정은 있다는 것이 이 영화의 주된 줄거리다. 예쁜 옷을 부모 몰래 사서 술집에 가서 남자들의 접근을 기다리는 그의 모습에서 우리는 연민보다는 차라리 유치함을 느낀다. 그렇지만 아무리 신분이 천하다 하여, 외모가 보잘 것 없다하여 그의 이성에 대한 낭만적 사랑의 열망이 폄하되어서는 안 될 것이다(꼬부랑 노인에게도 성욕은 당연한 권리이듯이). 그럼에도 그에게 접근하여 하루를 보낸 남자는 그를 하룻밤 여흥으로 치부해버리고 상황은 점점 꼬여간다. 대사가 하도 띄엄띄엄 있어서 적막감이 흐르는 영화다. 핀란드/스웨덴 공동작업으로 1989년 작.

The Stepfather

못된 계모이야기는 많아도 못된 계부이야기는 흔치 않은데 바로 이 영화가 못된 계부에 관한 관찰기이다. 평소에는 인자하다가(?) 자신의 권위에 도전을 해온다는 느낌이 들면 살인마로 돌변하는 연쇄살인범의 이야기다. 영화의 시작이 바로 이 인간이 살인을 저지르고 태연히 수염을 깎는 장면부터 시작하므로 우리는 살인범의 정체를 처음부터 알고 있다. 이후 그가 다음 목표를 고르고 언제쯤 살인을 저지를 것인가 하는 것이 이 영화의 감상 포인트다. 과연 이번 살인도 성공할 수 있을까? 살인마가 착한 척 하고 만들어준 새집이 의외의 막판에 그에게 걸림돌이 된다. 후속작도 발표되었으나 전편만큼의 호평을 받진 못했다.

Strangers on a Train(1951)

미스터리 소설이나 영화로 밥 먹고 사는 이들이라면 늘 어떻게 범죄를 완벽하게 저지를 것인가에 대해 – 물론 상상 속에서 뿐이지만 – 강박적으로 고민할 것이다. 알프레드히치콕의 이전 작품 Shadow Of A Doubt에서 은행원 가장은 이웃집 사람과 매일 저녁 완전범죄의 플롯에 대해서 고민하는 장면이 나오는데 알프레드히치콕과 지인들의 대화는 이와 비슷할지도 모르겠다.

이 영화 역시 Rope처럼 완전범죄를 꿈꾸는 한 괴짜의 제안에서부터 시작된다. 프로 테니스 선수인 가이헤인즈가 열차 안에서 우연히 만난 브르노안토니로부터 교차살인 제안을 받는다. 즉 서로가 죽이고 싶어 하는 이들을 서로가 죽여주자는 제안이었다. 이에 대한 근거로는 완전히 타인인 상대의 적을 죽이면 경찰수사가 혼선에 빠지지 않겠냐는 것이었다. 터무니없는 소리라고 일축해버리지만 그 이후 가이헤인즈에게 불행이 잇따른다.

레이몬드챈들러의 원작을 바탕으로 만들어진 1951년작.

완전범죄, 교차살인, 열차 등의 소재가 상황은 다르지만 완전범죄를 한 젊은이가 어떤 열차에 타고 있는 유명정치인을 암살하기 위해 서로 교차하게 될 반대노선의 열차 안에 시한폭탄을 장치한다는 모리무라세이지의 소설을 연상시킨다.

참고사이트 : http://hitchcock.tv/mov/strangers_on_a_train/train.html

Heavenly Creatures(1994)

우정이 얼마나 파괴적일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영화. 악랄하리만큼 변태적인 컬트 Bad Taste 의 감독에서 ‘반지의 전쟁’으로 거장의 반열에 오른 피터잭슨이 실화를 바탕으로 만든 1994년작. 외골수 파울린이 생기발랄한 소녀 줄리엣(케이트윈슬렛)을 만나서 애정에 가까운 우정을 발전시켜나가는 와중에 둘은 줄리엣의 엄마가 자신들의 우정을 파괴하려 한다는 강박관념에 시달리게 된다. 결과는 파국적 종말. Bad Taste, Dead Alive 의 악동 스타일 영화로 명성을 얻은 피터잭슨은 정통극 영화에도 뛰어난 감각을 지니고 있음을 증명해준 영화. 실화의 주인공은 후에 소설가가 되었다 한다.

Rope

완전범죄는 가능한가? 전도유망한 두 젊은이가 이 과제에 도전한다. 이들은 친한 친구를 죽여 방 한가운데 궤짝에 시체를 넣은 후 천역 덕스럽게 그 친구의 부모, 여자친구, 자신들의 옛 스승(제임스스튜어트)을 불러 파티를 연다. 뭔가 의심쩍은 일이 진행되고 있다는 스튜어트의 직감에 의한 예리한 질문으로 살인자들은 점점 궁지에 몰린다. 영화 전체가 살인이 일어난 방안에서만 진행되는 연극과 같은 포맷으로 진행되는 미니멀리즘 스타일의 영화. 알프레드히치콕의 첫 칼라영화다. 만인을 속일 수는 있어도 자기 자신을 속일 수 없는 법이다.

Pink Flamingos

이 영화에 대한 느낌을 한마디로 표현하자면 “어이없음”이다. ‘이런 스토리로 영화를 만들 수 있구나’, ‘정말 이렇게까지 막가도 되는 거야?’라는 물음이 자연스럽게 나온다. 세계에서 가장 못생기고 야비한 것을 자랑스러워하는 디바인, 계란을 너무 너무 좋아하고 아기침대에서 하루를 보내는 뚱뚱이 엄마, 디바인보다 더 못되기 위해 디바인을 처치하려는 악당 부부 등. 어찌 보면 백설 공주 엽기 판이 아닌가도 생각되는 이 영화는 ‘영화의 펑크락 버전’이라 할만하다. 이야기의 흐름은 끊임없이 비틀거리고 관객의 시선은 느닷없는 엽기로 인해 혼란스럽다. 파티에서의 스트립쇼(?) 부분에 가서는 드디어 “세상에!!!”라는 탄식이 절로 나온다. 이 영화 이전에 봤던 존워터스의 다른 작품 크라이베이비는 정말 양반이다. 그래서 아직도 나는 그의 다른 작품을 보기를 망설이고 있다.

Shadow Of A Doubt

소매치기 사건이 마을신문의 탑기사에 오를법한 한적한 소도시. 은행원 아버지와 가정주부인 어머니, 그리고 2녀 1남의 단란한 가정의 장녀 찰리는 자신의 가정이 너무 의기소침해있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그는 자신과 같은 이름의 찰리 삼촌에게 응원을 요청하려 우체국에 달려간다. 그런데 우연히도 이미 삼촌은 집에 오고 있는 중이라는 전보를 받는다. 오랜만에 다시 모인 가족은 더 이상 부러울 것이 없을 것처럼 밝은 웃음이 안팎으로 넘쳐나고 때마침 미국의 단란한 중산층을 인터뷰하겠다며 정부 측 기자들이 집을 방문한다. 그 즈음부터 서서히 찰리 삼촌의 행동이 이상해지기 시작한다. 진실에 한발 한발 접근해가면서 공포에 사로잡히는 찰리, 한순간에 환희는 악몽으로 바뀐다. 그리썸 반장이 이끄는 CSI 라면 반나절이면 해결할 사건을 며칠째 질질 끌어서 주인공을 생명의 위기로까지 몰고가는 것이 답답할 정도인 고전적인 스릴러지만 어쩌면 바로 이러한 인간적인 맛이 고전 스릴러의 참맛이 아닐까? 머리카락 한 올이면 머리카락 주인의 신상에서 사돈의 팔촌의 신상까지 잽싸게 다 파헤치는 초스피드의 수사극에서는 쉽게 느낄 수 없는 형식적 여백과 허점이 오히려 극의 긴장감을 높이기도 한다.바로 이점을 알프레드히치콕은 이 영화를 비롯한 그의 필르모그래피에서 십분 활용하였고 때로 그 점이 오히려 관객에게 가학적일 정도의 두려움까지 선사하곤 하였다. 아무에게도 말할 수 없는 진실이 있다면 그 진실을 아는 사람은 진실을 나눌 단 한사람을 위해 목숨이라도 버릴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