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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reakin’ 2: Electric Boogaloo(1984)

세상 참 모를 일이다. 이 영화가 나온 1984년만 하더라도 힙합댄스, 브레이킨과 같은 거리의 춤은 흑인들과 같은 타고난 몸을 가진 이들이나 추는 춤으로 생각하고 그들을 부러운 눈으로 쳐다보기나 했는데 지금은 비보이네 뭐네 하면서 한국의 젊은이들이 이 분야의 지존으로 불리고 있으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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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reakin2“. Via Wikipedia.

여하튼 이 작품은 그러한 거리의 춤을 소재로 한 몇 안 되는 전문영화이다. 전작의 호응에 힘입어(?) Kelly, Ozone, Turbo 의 세 주요인물을 그대로 기용하여 해도 넘어가기 전에 2편을 제작해버리는 그 순발력이 놀랍다. 전편을 보진 못했으나 이야기의 흐름을 따라가는 데에는 큰 지장이 없다. 춤과 노래에 초점이 맞춰진 작품이라 스토리, 캐릭터는 초절정으로 단순하기 때문이다.

Kelly 는 부잣집 딸에 백인이면서도 Ozone, Turbo 와 같은 흑인댄서들과 친하게 지낸다. 한편 이들은 미러클이라 부르는 커뮤니티센터에서 자원봉사로 춤을 가르치고 있다. 이 땅이 탐이 난 한 개발업자가 쇼핑센터로 재개발하고자 하나 이를 안 Ozone 과 마을사람들이 모금을 하여 마침내 자신들의 커뮤니티센터를 지킨다는 것이 주된 내용이다. 도심재개발에서의 공공성과 상업성 간의 갈등과 이를 해소하기 위한 공공성 강화 및 근린주구운동이라는 자못 심각한 주제를 담고 있다. 이는 영화의 주된 소비층으로 예상되는 빈민가 흑인들에게 그리 낯설지 않았을 소재였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의도야 어떻든지 간에 청문회 자리에서 Ozone 이 ‘인민(people)’, ‘공공(public)’, ‘공동체(community)’, ‘근린(neighborhood)’ 등을 외쳐가며 자본가에게 대항하는 모습은 무슨 좌익 성향의 뉴시네마 영화를 보고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착각을 불러일으키게 한다.

각설하고 영화는 역시 춤에 초점이 맞추어진 만큼 사실 위와 같은 스토리는 심하게 말하면 곁가지에 불과할 수도 있을 정도로 상영시간의 많은 시간을 춤에 할애하고 있다. 카메라는 팝핀, 브레이킨, 째즈댄스 등 주인공들의 현란한 춤 연기에 초점을 맞추고 있으며 프레드아스테어의 그 유명한 벽과 천장을 타며 춤추던 장면을 패러디한 장면도 눈에 띈다. Ollie & Jerry 의 Electric Boogaloo 등 – 본인의 페이보릿이기도 – 화려한 사운드트랙이 양념 역할을 하고 있다. 춤 이외에 나머지 출연진들의 연기나 의상들이 민망할 정도여서 오히려 영화를 보는 재미가 있다.

전편의 3천6백만 달러에 달하는 국내 흥행성적을 기대하며 급조된 후편이었지만 정작 흥행은 7백만 달러에도 미치지 못했다. 또한 ‘Electric Boogaloo’ 라는 제목은 조잡한 후편이라는 놀림감으로 여러 응용사례를 통해 인구에 회자되었다고 한다.

Lawrence Kasdan

로랜스캐스단의 영화이력은 스타워즈 시리즈의 걸작 The Empire Strikes Back 의 시나리오 참여부터 시작하였다. 시작부터 범상치 않은 이 양반의 다음 작업은 또한 초유의 히트작 인디아나존스의 Raiders of the Lost Ark 의 시나리오 작업이었다. 이때부터 이야기꾼으로서의 재능을 만방에 떨쳤고 마침내 1981년에는 감독으로서의 처녀작인 스릴러 Body Heat 를 내놓는다. Double Indemnity 의 후속편과 같은 뉘앙스를 풍기는 이 끈적끈적한 작품으로 로랜스캐스단은 단숨에 히트감독의 명예를 획득하게 된다.

이후 1983년 또 다른 스타워즈 시리즈 Return of the Jedi 의 시나리오 작업에 참여한 후부터 그의 변신은 시작된다. 스타워즈나 바디히트처럼 말초적 신경을 자극하던 영화가 주특기였던 그가 1983년 갑자기 죽은 친구를 애도하기위해 장례식장에 모인 옛 친구들의 우정을 그린 The Big Chill 을 선보였기 때문이다. 이 작품은 빠르지도 않고 더디지도 않은 템포로 이제는 각자 다른 길을 걷고 있는 친구들 간의 미묘한 감정을 그린 수작이다. 또한 쏘울 명곡으로 가득 찬 사운드트랙도 감칠맛인데 이를 통해 그의 음악적 편력도 드러냈다.

이후 The Big Chill에서 같이 작업했던 William Hurt를 내세워 만든 Accidental Tourist에서 또 한 번 서정적인 드라마를 통한 인생회고담의 장기를 선보인 그가 1990년에는 난데없이 포복절도 코미디 I Love You To Death(비디오 출시명 : 바람둥이 길들이기)를 내놓는다. 케빈클라인, 리버피닉스, 커누리브스, 윌리엄허트, 트레이시울먼, 피비케이츠 등 초호화배역을 내세워 바람둥이 남편을 살해하려다 실패한 여인의 실화를 극화한 이 작품으로 그는 코미디에도 한 재주한다는 사실을 증명해주었다.

1991년 그는 Grand Canyon 으로 다시 특유의 인생역정 드라마 전문 감독의 입지를 확인하였다. 큰 에피소드 없이 이런저런 에피소드를 통해 인생의 맛을 음미하는 이 영화에서는 대니글로버와 스티브마틴을 등장시켜 이전에는 볼 수 없던 인종적 문제와 같은 사회문제에도 접근하였다.

1992년에는 케빈코스트너와 휘트니휴스턴을 앞세운 블록버스터에 프로듀서와 시나리오에 참여하여 상업적 성공을 거두지만 작품 자체는 이전의 양질의 작품에 비해 다소 질이 떨어지는 영화인으로서의 갱년기 증상도 보이게 된다.

그러한 탓인지 이 이후의 작품은 이전만한 재기를 보여주는데 실패하고 케빈클라인과 맥라이언을 앞세운 로맨틱코미디로 반짝 성공을 보여주었을 뿐이다. 개인적으로 좋아하는 감독이기에 2007년 자신의 아들인 Jon Kasdan 의 작품 In the Land of Women 의 프로듀서로 참여하고 있다는 그가 언젠가 90년대까지 보여준 가공할 공력을 다시 보여주기를 기대해본다.

아키라, AKIRA(198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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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eo-Tokyo Akira” by https://github.com/prideout/effects-salad. Licensed under Wikipedia.

원작자 오토모가츠히로가 작품의 독립성을 위하여 별도의 위원회(일명 “아키라 위원회”)까지 구성하여 제작한 이 영화는 원작의 인기에 못 미치는 일본의 흥행성적에도 불구하고 서구에서는 저패니메이션이라는 신천지를 소개한 컬트 영상이 되어 일본으로 금의환향하였다. 그러나 한편으로 장장 12권에 달하는 장편만화 원작을 120여 분에 담아낸 탓에 영화는 마치 만화속의 인물들에게 “시간이 없으니 어서들 부지런히 연기해주세요”라고 몰아붙이는 느낌이다. 요즘같아서는 당연히 ‘반지의 전쟁’처럼 3부작 쯤으로 늘였겠지.

아키라라는 상상초월의 절대존재와 비슷한 과정을 통해 탄생한 초능력자들의 대결을 중심으로 카네다와 K 의 모험과 로맨스가 3차 대전이후 재건된 네오도쿄에서 펼쳐진다. 냉정하다 할 정도로 사실적이고 웅장한 화면 – 네오도쿄의 건물들은 만화에서보다 영화에서 더 미래주의적으로 그려져 있다 – 이 이전의 저패니메이션과 차별화되어 내용에 걸맞는 형식미를 뽐내고 있는 이 작품에서 아쉬운 점은 앞서 말했듯이 짧은 러닝타임 – 원작에 비해서 그렇다는 말이다 – 으로 인해 사건의 설명이 부족하고 이로 인해 각 캐릭터간의 갈등과 대립이 생뚱맞은 측면이 적지 않다는 점이다. 데츠오와 다른 초능력자들 간의 대립의 이유, 카네다가 데츠오를 죽이려는 이유, 부패한 정치인 네즈와 혁명가 류가 함께 일한 이유 등이 영화에서는 모호하고 – 나같이 머리나쁜 사람은 원작 만화를 읽어야 어느 정도 이해가 가능한 – 결정적으로 원작에서 19호로 불리며 극의 큰 축을 담당했던 신흥종교의 교주는 어이없게도 사이비 교리를 외치다가 데츠오가 파괴한 다리에 떨어져 죽는 식의 엑스트라로 전락하고 만다는 점이 아쉬움으로 남는다.

이러한 아쉬운 점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아키라는 저패니메이션을 뛰어넘어 사이버펑크라는 SF의 하위장르에서 커다란 족적을 남긴 걸작임에는 틀림없다. 원작자의 과학문명에 대한 비관적 입장이 형상화된 도시는 하나의 거대한 디스토피아였고 이는 당시 몇몇 걸출한 SF 등과 함께 훗날의 SF 의 경향을 주도하는 데에 한 몫 담당하였다고 볼 수 있다. 또한 이 작품은 문명비판의 메시지와 함께 추축국이었던 일본의 패배와 전후 고속성장에서 나타나는 국민의 피로감을 나타낸 작품이기도 하다. 좌익이 되었건 우익이 되었건 일본의 전후세대는 빠르게 변화하는 문명 속에서 가치관의 혼란과 정부에 대한 불신을 느꼈고 그러한 혼란은 좌우익 모두에게 무정부주의, 염세주의적 가치관을 심어주었다. 그리고 이 작품은 그러한 열망을 네오도쿄의 폭파와 미지의 생명 탄생이라는 사건을 통해 상징적으로 표현되고 있다.

Thief of Bagdad

초기 헐리웃의 자본력과 기술력을 느끼게 해주는 환타지 대작. 아라비안나잇이 가지고 있는 여러 설정, 즉 착한 왕자, 사악한 마법사, 어여쁜 공주, 호리병 속의 거인, 나는 양탄자 등 이 당시의 첨단기술 및 자본과 결합되어 비슷한 유의 영화의 전형을 탄생시켰다.

Clerks

비번인 가게 점원 Dante Hicks 는 12시까지만 가게를 봐달라는 사장의 부탁에 어쩔 수 없이 가게 문을 열었다. 애인 Veronica 가 놀러왔는데 섹스 상대 숫자 때문에 싸우고 예전 애인이었던 Caitlyn 은 아시아 디자이너와 결혼한다는 소문이 들린다. 완벽한 달걀을 찾는다는 손님은 바닥에 온통 계란을 늘어놓고 이상한 짓을 다하고 사장은 뒤늦게 먼 도시로 떠나버린 것으로 드러난다. 마틴스콜세스의 ‘After Hours’ 가 가게 안에서 펼쳐지면 이렇게 되지 않을까 싶을 정도로 Dante Hicks 의 하루는 그야말로 엉망진창 그 자체다. Kevin Smith 에 늘 등장하는 ‘제이와 조용한 밥’이 이번에도 예외없이 등장하고 ‘조용한 밥’ – Kevin Smith 본인 – 은 이번에도 예외 없이 침묵을 지키다 최후의 순간에 주인공에게 깨달음을 주는 몇 마디를 건넨다. 이런 저런 재치 있는 대화가 땅콩 까먹는 것 같은 재미를 주는 영화.

Gods And Monsters

초기 공포영화의 걸작으로 꼽히는 프랑켄슈타인, 투명인간 등을 감독했던 James Whale 의 말년에 초점을 맞춘 일종의 전기 영화. 동성애자임을 커밍아웃하였고 1차 세계 대전에 참전했다가 사랑하는 연인이 죽은 채 철망에 걸린 상황을 트라우마로 간직한 이 노감독은 몸이 쇠약해짐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남색을 밝히고 15년을 함께 해온 신앙심 깊은 가정부를 이를 끔찍하게 혐오한다. 그 와중에 근육질의 정원사가 새로 고용되고 James 는 그에게 또다시 눈독을 들인다.  스스로 게이인 Ian McKellen 이 참 맛깔스럽게 James Whale 을 연기하고 있다. 엄청난 마초주의자이면서도 한편으로 동성애자를 이해해가는 정원사 역으로 딱 어울리게 둔탁하게 생긴 Brendan Fraser 가 맡고 있다. 노년의 성, 그것도 동성애가 담겨져 있다는 점에서 흔하지 않은 소재이긴 한데 비슷한 소재로는 일본영화 ‘메종드히미코’가 있다.

라디오스타

사실 이 영화에서 독창적이라 할 만한 요소는 별로 눈에 띄지 않는다. 제목은 The Buggles 의 히트곡 Video Killed The Radio Star에서 따왔음이 분명하고, 80년대 음악에 대한 노스탤지어는 ‘와이키키 브라더스’를 떠오르게 하며, 스타와 매니저와의 관계라는 극의 기본설정은 ‘제리 맥과이어’ 또는 ‘러브액츄얼리’를 연상시킨다. 이렇게 기시감이 분명한, 결말이 불을 보듯 빤한 영화가 그러한 결함에도 불구하고 자기만의 힘 – 그것도 강원도의 힘 – 을 가지고 있다는 것은 의외의 즐거움이면서도 무척이나 기특한 일이다.


한물간 80년대 스타가 자존심만 세서 매니저를 고생시키다가 강원도 영월 촌구석에서 DJ 한자리 얻어서 다시 재기에 성공하고 매니저와의 ‘진한’ 우정도 확인한다는 단 두 줄로 줄거리가 요약되는 이 영화의 가장 큰 미덕은 욕심 부리지 않았다는 점일 것 같다. 잘만 우려내면 쓸 만한 에피소드 엄청 나올 것 같은 설정이지만 제작진은 큰 욕심 부리지 않고 자신들이 애초 의도했던 기본구도, 즉 ‘마이너가 승리할 수 있는 가능성’이라는 주제의식에 충실하고 있다.


2000년대 대 80년대, 비디오 대 라디오, 서울 대 영월, 댄스 대 락 등등… 영화의 문화코드는 이렇게 양분되어 있었다. 비록 후자가 전자를 이기진 못했지만 어쨌든 80년대 퇴물 락가수가 영월에서 진행하는 라디오 프로그램이 전국으로 방송됨으로써 자신의 존재감을 분명히 하게 되는 작은 승리로 귀결된다. 그리고 잠시 헤어졌던 스타와 매니저는 다시 재회하여 멋쩍은 웃음을 나눈다.


간간히 극적비약에 조급해하는 무리한 설정도 눈에 띄지만 박중훈, 안성기 두 관록 있는 배우들의 자연스러운 연기와 조연들의 뒷받침 – 특히 영월 지국장 역의 정규수씨는 정말 신들린 연기였다 – , 감칠맛 나는 대사, 그리고 정겨운 노래들이 어울린 자그마한 뒷동산 같은 영화였다.


p.s. 1 영화 끝난 후 자막을 읽다보면 주요배우들의 매니저들의 이름도 나온다. 얼마나 많은 영화들이 배우들의 매니저들까지 챙겨줬을까?

p.s. 2 라디오프로그램이 첫 전국방송을 시작하는 날 첫 곡은 MTV의 개국 첫 시간에 튼 Video Killed The Radio Star 였다. 비디오에 대한 라디오의 복수를 상징하는 오마쥬인가?

Radio Star Strikes Back!

Cocoon

이 영화에 따르면 전설의 대륙 아틀란티스는 실존했던 대륙이었고 외계인들의 지구 전진기지였다. 영원한 삶을 영위하는 이 신비로운 외계인들이 어느 날 지구에 남겨진 그들의 외계인 동료(정확하게 말하자면 커다란 고치[cocoon]속에 잠들어 있는 외계생물체들)를 데려가기 위해 지구로 왔다. 그들은 배를 빌려 알을 건져내는 한편 그 알들을 임시로 얻은 저택의 수영장에 보관한다. 그런데 그 수영장은 이웃 양로원의 장난기심한 노인들의 놀이터였다. 이들 노인들은 새 주인에 아랑곳하지 않고 수영을 즐기는데 갑자기 원기가 왕성해지는 놀라운 경험을 하게 된다. 이로 인해 그들의 삶은 젊은이들의 삶에 못지않은 활기찬 삶으로 변신하게 된다. 인간이라면 누구나 꿈꾸는 영생의 꿈이 실현된다는 설정의 독특한 소재의 SF 영화이다. Don Ameche, Wilford Brimley, Jessica Tandy(히치콕의 The Birds 의 히로인) 등 연로하신 과거의 스타들이 역동적인 연기를 선보이느라 꽤나 고생하셨을 것이 눈에 선한 이 작품은 이 덕분인지 그 해 아카데미에서 Don Ameche 에게 남우조연상을, 특수효과 제작팀에게는 특수효과상을 선사했다. 반면에 빼어난 미모를 자랑하는 외계인 역의 Tahnee Welch(라퀄웰치의 딸)은 안 따라주는 연기 탓에 이 작품 이외에 이렇다 할 대표작이 없는 형편없는 연기경력을 쌓게 된다. 후속편은 전편만큼의 호평을 받지는 못했다.

Sideways

Sideways 는 와인과 우정, 그리고 인생에 관한 영화다. Miles(Paul Giamatti)와 Jack(Thomas Haden Church)은 친한 친구사이다. 둘은 모두 그리 성공적이지 못한 소설가, 그리고 배우이다. Jack 의 결혼을 앞두고 Miles와 Jack 은 와인이 맛있는 캘리포니아로 여행을 떠난다. Jack 은 와인 애호가로서 Miles에게 이 고급취향의 취미를 가르쳐주려 하지만 Miles 가 관심 있는 것은 여자뿐이다. 어쨌든 둘은 여행길에서 두 여인을 만나 즐거운 시간을 갖게 되지만 그 즐거움은 오래 가지 않는다. 포복절도의 슬랩스틱 스타일이 아닌 잔잔한 웃음을 선사하는 와인처럼 깔끔한 작품으로 독립영화에서 다양한 기량을 선보이고 있는 폴지아마티의 연기가 볼만하다.

All Quiet On The Western Front

1차 세계대전 당시 서부전선은 끝 모를 지루하고 무의미한 전쟁터의 상징이었다. 20세기 초 발발한 1차 세계대전은 이전의 전쟁과 달리 무기의 발달과 참전국의 확대로 인해 대량학살이 동반되었던 그 이전의 어느 전쟁보다도 참혹한 전쟁이었다. 그 중에서도 특히 서부전선은 밀고 밀리는 와중에 무의미한 죽음이 난무하던 곳이었다. 후대의 어느 역사가에 따르면 이러한 참혹한 전쟁에 대한 공포심으로 말미암아 연합국이 나치 독일의 준동에 수동적으로 대응하였고, 심지어 그들을 어느 정도 용인하려 – 동맹국을 내주고서라도 – 하였다는 주장까지 있을 정도다.

레마르크의 소설을 원작으로 한 이 영화는 반전영화의 걸작으로 꼽히고 있다. 이 작품은 1차 세계대전을 연합국 참전군인의 눈이 아닌 독일 참전군인의 눈으로 관찰하고 있다는 점에서 특히 주의 할만하다. 대개의 전쟁영화는 승리자의 눈으로 바라보기에 – 또한 당연히도 그 배급자도 역시 승전국인 영미권이 주이기에 – 웬만한 웰메이드 전쟁영화조차도 선악이분법의 구도로부터 자유롭지 못하다. 그러나 독일의 평범한 시민이자 학생이었다가 참전한 이들의 눈으로 전쟁을 바라본다는 설정이 우선 이 작품이 전쟁에 대한 객관성을 유지할 수 있는 반석이 되고 있다.

군인들의 시가행진, 시민들의 환호, 참전을 부추기는 애국교수의 열변, 크게 감화되어 입대를 결심하는 학생들의 열기가 극 초반 숨 가쁘게 진행되며 극은 중반으로 돌입한다. 애국주의에 감화되어 도착한 전쟁터는 이념이 설 자리가 없는 삶과 죽음이라는 단순함이 자리 잡고 있는 생지옥이었다. 전우들이 하나둘씩 죽어가며 호승심은 공포로 바뀌어 가지만, 시간이 지나자 어느새 친구의 죽음으로 친구가 갖고 있던 신발이 내 차지가 되고, 전우의 죽음이 더 많은 식량배급으로 이어진다는 것에 만족하는 이성마비의 단계로 접어들게 된다.

결국 살아남은 이들에게 유일한 위안거리는 잠깐의 휴식과 전우들뿐이다. 잠깐의 휴가동안 고향으로 돌아오지만 머릿속으로만 전쟁을 하는 국수주의자들은 멋대로 승리를 예견한다. 결국 역설적이게도 군인들의 휴식처는 전쟁터가 되고만 것이다.

선구자적으로 사용한 크레인샷을 통해 비참한 전쟁터를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장면, 주인공이 애국교수가 혼쭐이 날만큼 전쟁의 참혹함을 학생들에게 설명해주는 장면, 그리고 나비를 좇다가 죽음을 맞이하는 장면 등이 이 영화의 명장면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