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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urder Most Fou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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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gatha Christie의 Mrs. McGinty’s Dead 을 원작으로 한 1964년 작. Margaret Rutherford가 Agatha 의 유명한 캐릭터 Miss Marple 을 연기했는데 이 작품은 그녀가 Miss Marple 로 연기한 세 번째 작품이라고 한다. 여기서 잠깐 말하자면 개인적으로는 이 수다스럽고 경망스러워 보이기까지 하는 Margaret Rutherford 여사의 Miss Marple보다는 좀더 품위 있고 신중했던 Joan Hickson 여사의 – BBC 의 연작에서 출연했던 – Miss Marple 이 더 맘에 든다. Miss Marple 은 자신이 배심원으로 참여했던 사건에 의심을 품고 좀 더 파고들기로 마음먹는다. 살해당한 Mrs. McGinty 가 어느 극단의 누군가를 협박했다는 사실을 알아낸 그녀는 극단에 몰래 입단하여 단원들의 뒤를 캐고 마침내 진실을 밝혀낸다. 원작의 문제이겠지만 역시 Agatha 특유의 맛깔스러운 스토리 설정은 마음에 들되 다만 스토리 전개가 다소 산만하고 억지스러운 측면도 있어 비슷한 설정의 ‘쥐덫’에 한참 뒤진다는 생각이 든다. 그렇긴 해도 느슨한 일요일 오전 여유로운 마음으로 즐기기에는 더없이 어울리는 흑백 스릴러다.

혐오스런 마츠코의 일생 (嫌われ松子の一生: Memories Of Matsuko, 2006)

전편 ‘불량공주 모모코’에서 독특한 캐릭터와 묘한 스토리로 신세대 일본영화 팬들의 눈길을 사로잡은 나카시마 테츠야 감독의 신작. 2003년 발표된 동명의 베스트셀러를 영화화한 작품이라 한다. 운명의 장난으로 여교사에서 천재작가의 동거녀, 창녀, 이발사, 야쿠자의 동거녀 등 파란만장한 일생을 살다가 고향의 강을 닮은 도쿄의 어느 강가에서 외로이 죽어간 마츠코란 한 인물의 삶을 조카의 눈을 통해 재조명한 작품. 언뜻 들으면 굉장히 비장한 분위기의 멜로드라마가 연상되지만 – 실제 원작도 그러하겠지만 – 나카시마는 실사와 애니메이션의 결합, 뮤지컬을 통한 형식적 실험, 배우들의 슬랩스틱 연기 등을 통해 희극과 비극이 짬뽕된 MTV 정서의 오락물로 만들어버렸다. 마치 화려한 껌종이로 만든 모자이크 작품을 보는 기분이다. 감독은 디즈니 영화의 주인공이 문을 잘못 열면 어떻게 될까 하는 가정을 두고 만들었다 하니 상당히 악취미다. 개인적으로 모모코와 마츠코 중에 어느 쪽이 맘에 드는지 묻는다면 모모코를 택하고 싶다. 마츠코는 전형적인 비련의 주인공인 캐릭터라 머리 조금만 굴리면 나올 것 같은 캐릭터지만 로로코 풍의 옷을 좋아하며 폭력배에게 굴하지 않는 공주 스타일의 여자라는 캐릭터는 흔하지 않기 때문이다. 거기다 그런 캐릭터가 작품에 잘 녹아들어가 있으니 더 말할 나위없으리라.

Six Degrees Of Separa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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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onald Sutherland (1095412255)” by Alan LightDonald Sutherlan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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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르주아의 은밀한 매력’의 미국판이라 할 만한 작품이다. 플랜 키트리지와 오이사 키트리지 부부는 미술품 거래상을 하면서 뉴욕의 고급 아파트에서 살고 있는 전형적인 상류층이다. 어느 날 그들의 투자자와 저녁식사를 위해 집을 나서려는 중 자신들의 자녀와 친구라는 한 흑인청년을 맞이하게 된다. 불쑥 찾아온 이 청년은 화려한 언변과 음식솜씨로 이들을 사로잡는데 스스로를 영화배우 시드니 포이티에의 아들 폴 포이티에라고 소개한다. 하지만 오이사는 다음날 아침 폴이 한 낯선 남자와 침실에서 완전나체로 성행위를 하고 있는 장면을 목격하고는 둘을 내쫓는다. 이후 이들 주위친구들도 동일인물에게 비슷한 사기를 당하게 되고 이들은 정체불명의 폴이 누구인지를 집요하게 파고들기 시작한다. 영화제목 Six Degrees Of Separation 은 전혀 낯선 사람일지라도 여섯 단계만 거치면 알게 된다는 스탠리 밀그램 교수의 인간관계에 대한 이론을 의미한다. 결국 폴의 매력에 빠졌다가 피해 아닌 피해를 입은 이들은 어느 사이 서로의 인간관계가 어떻게 연관되는지에 대한 진지한 조사를 하게 되고 이는 상류층의 만남에서 좋은 입담거리가 되고 만다. 그러면서도 거리의 흑인청년이었던 폴이 얼마나 쉽게 그들의 고귀하고 차별적인 공간에 스며들 수 있는지에 대해서는 감지조차 못한다. 결국 폴과의 인간관계의 중요성을 깨달은 오이사는 폴을 도와주려 애쓰지만 바로 그 순간 자신의 딸의 진지한 대화요구는 거절하는 이중성을 보이기도 한다. 실력파 배우들의 연기가 감칠맛 나면서 연극작품을 영화화하여 다분히 연극적인 분위기가 돋보인다. 부르주아의 위선을 비웃으면서도 어느새 그 지적이고 세련된 분위기에 동화되게끔 만드는 매력을 풍기는 작품이다. 그들의 폴의 미스터리에 대한 입담 장면은 마치 에큘 포와르가 용의자들을 응접실에 모여 놓고는 사건을 해결해나가는 장면을 연상시키기도 한다.

Slaughterhouse-Fi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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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riginal movie poster for the film Slaughterhouse-Five” by May be found at the following website: City on Fire. Licensed under Wikipedia.

Kurt Vonnegut Jr.가 썼다는 원작에 대한 사전정보도 없이 영화 첫 장면을 보는 순간 ‘뮤직박스’유의 2차 세계대전에 대한 과거와 이를 반추하는 현재가 교차되는 스타일의 영화이겠거니 생각했다. 처음 얼마간은 이러한 예상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았다. 약간 어리바리한 주인공 Billy Pilgrim 의 과거의 공간은 전쟁터 한가운데의 참호 속이었고 현재의 공간은 그러한 자신의 삶에 대한 회고록을 쓰고 있는 그의 집이었다. 그런데 영화가 진행됨에 따라 이러한 과거와 현재의 교차편집이 단순히 ‘Lone Star’에서 볼 수 있었던 솜씨 좋은 연출의 문제가 아님을 느끼게 되었다. 주인공 Billy 는 과거를 회상하는 게 아니라 실은 과거와 현재를 수시로 시간여행하고 있었던 것이다. 이런 재밌는 발상을 시작으로 영화는 종반으로 갈수록 트랠파마도어라는 황당한 행성의 등장 등 처음의 전쟁영화 장르에서 블랙코미디, SF 까지 잡탕으로 섞인 다양한 장르적 실험이 되어버린다. 이것은 이미 솜씨 좋은 원작이 지니고 있었을 멋진 개성이 ‘스팅’이나 ‘내일을 향해 쏘아라’, 그리고 개인적으로 좋아하는 ‘헨리오리엔트의 세계’를 감독했던 거장 조지로이힐의 뛰어난 연출력과 만나면서 빚어낸 결과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어쨌든 영화의 메시지는 독일의 아름다운 도시 드레스덴에 전쟁포로로 머물렀던 Billy 의 경험을 통해 전쟁에서의 살육에는 어떠한 명분도 있을 수 없다는 반전(反戰)의 메시지를 담고 있다. 영화제목 제5도살장(Slaughterhouse Five)은 주인공이 일했던 도살장이기도 하지만 1945년 2월 13일 연합군으로부터 융단폭격을 받고난 후의 드레스덴의 처참한 몰골을 상징하는 것이기도 하거니와 Five 라는 단어는 마치 우주선의 이름을 연상시키기도 한다. Billy 가 나중에 찾아가게 되는 – 또는 되었다고 주장되어지는 – 트래팔마도어의 달표면과 같은 거친 표면은 또 바로 폭격 직후의 이 드레스덴을 연상시킨다. 그 황량한 별에서의 Billy 의 새로운 사랑은 절망 속에서의 희망이라는 여운을 남겨준다. 굴렌굴드의 서정적인 피아노 연주를 배경으로 눈길을 걸어가던 Billy 의 모습을 담은 첫 장면이 오랜 여운을 남기며, Catch 22 나 M.A.S.H 같은 영화와 잘 어울리는 삼총사가 될 것 같은 느낌의 영화였다.

다른 영화평

서평

Pride and Prejudic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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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rideandprejudiceposter” by The poster art can or could be obtained from Focus Features.. Licensed under Wikipedia.

극중 인물 엘리자베스 베넷이야 오늘날의 시각으로 보자면 그리 새로울 것도 없는 캐릭터다. 안정적인 결혼생활이 가능하지만 안 끌리는 – 역시 무엇보다도 너무 못생겨서(?!) – 콜린스보다는 언젠가 자신을 확 잡아당겨줄 사랑할 남자와 함께 하고 싶다는 그녀. 로맨틱코미디에서 신물 나게 보아온 인물상이다. 하지만 이 캐릭터가 19세기 초반 여성작가가 쓴 소설에서 등장했다면 꽤나 심각히 생각해볼 문제이다. 빅토리아 여왕이 아직 태어나기도 전인 1813년 여류작가 제인오스틴이 발표한 이 작품은 이성관계의 연결고리를 지위나 재산으로 보기보다는 둘 사이의 감정으로 보았다는 점에서 당시로서는 매우 혁신적이었을 법한 발상이기 때문이다.

당시 중산층 이하의 영국여인에게 결혼이란 로맨스의 귀결이라기보다는 자신의 밥벌이인 동시에 가족부양의 주요한 수단 일만큼 절박한 일이었을 것이다. 실제로 당시에는 ‘한정상속’이라고 하여 여자에게는 상속권이 없었고 가장 가까운 남자친척 – 극중에서는 콜린스 – 에게 상속권이 있었다고 할 만큼 여성의 지위는 보잘 것이 없었기에 고소득의 직업군이 있을 리 없을 당시 여성들에게 결혼이외에 다른 대안이란 있을 수 없었다. 작가 스스로도 혼기가 차자 청혼을 받았으나 남자집안의 반대로 결혼이 무산되면서 평생을 친척집을 전전하며 살았다 하니 결국 엘리자베스는 사랑이라는 너무 위험한 베팅을 한 것이었다.

이러한 사회적 배경을 깔고 있는지라 극 초반 다섯 자매의 호들갑은 충분히 이해할법하다. 그들은 어떻게 해서든 자신들을 예쁘게 포장하여 무도회장이라는 시장(市場)에 내놓아 검증을 받아야 하는 입장이니 말이다. 결과적으로 무도회에서는 아름답고 우아한 맏딸 제인이 빙리의 뇌리에 꽂혔고 엘리자베스는 어디서 꾸어다 놓은 보릿자루처럼 시큰둥하기만 한 달시와 어색한 첫 만남을 갖게 된다. 이후 진행되는 스토리는 그야말로 로맨틱코미디의 전형이라 할 만한 장르적 형식, 즉 스크루볼 코미디의 전형을 따르고 있다. 오만한 달시와 편견을 가지고 있는 엘리자베스. 주위에서도 다들 서로 싫어하고 있다고 생각했던 그 두 사람이 조금씩 서로에게 다가가는 그 미묘한 긴장감, 그 뒤로 그들을 받쳐주는 아름다운 자연과 시대극의 충실한 재현이 볼거리를 만들어준다.

1940년대부터 영화화되기 시작하여 1995년 BBC에서 시리즈로 방영되어 큰 인기를 얻었고 그 뒤에 원작을 노골적으로 패러디한 ‘브리짓존스의 일기’까지 큰 인기를 얻었던 작품이라 2005년 영화화에 많은 이들이 그 성과에 대해 반신반의하였다고 한다. 하지만 나름대로의 작품성을 인정받아 여러 영화제에서 상을 타기도 하는 등의 성과를 거두었다. 개인적으로는 엘리자베스역의 배우가 맘에 들지 않는다. 너무 현대적으로 재해석되어 있기도 하거니와 약간 나온 턱이 시종일관 눈에 밟혔다.(-_-;) 아버지 역으로 나온 도널드서덜랜드는 극 내내 변변히 등장도 못하다가 말미에 엘리자베스의 결혼소식에 눈시울을 붉히는 철촌살인의 명연기를 보여준다.

18세기 페미니스트라 할 만한 제인 오스틴, 그리고 그의 알터에고였을 엘리자베스. 엘리자베스는 결혼에 성공하였고 제인 오스틴은 당시에는 찬밥 대우를 받았으나 오늘날 영국에서 세익스피어 다음으로 최고의 문학가로 손꼽히고 있다한다. 둘 모두에게 잘된 일이다. 하지만 이 책을 읽고 사랑에 대한 주체적인 선택이 결혼의 필수조건이라는 모던한 사고방식을 가졌다가 좌절했을 많은 여성들에게 원작은 오히려 여성해방 지침서가 아닌 싸구려 로맨스 소설로 간주되지 않았을까 하는 노파심이 들기도 한다.

또 다른 리뷰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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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릭! 인생을 마음대로 정지시키거나 리워드, 포워딩 시킬 수 있는 리모트콘트롤이 있다는 설정에서 이야기를 가래떡 뽑듯 죽죽 뽑아낸 아담샌들러 주연의 무난한 가족 코미디다. 전체적인 이야기 구성은 스크루지와 비슷한데 다만 스크루지의 고용인이 겪었을법한 스토리다.

호색한이자 못된 고용주인 Mr. Ammer – 오랜만에 보는 반가운 얼굴로 ‘전격 Z작전’의 데이빗핫셀호프 – 아래서 실력은 뛰어나지만 노동력을 착취당하는 Michael Newman 은 아이들과의 캠핑 약속도 못 지킨 채 일에 몰두한다. 어지러이 널려진 온갖 리모트콘트롤에 화가 치민 Newman 은 모든 전자기기의 작동을 가능케 한다는 유니버셜 리모트콘트롤을 사기 위해 할인점에 들른다. 가게 뒤편의 이상한 방에서 만난 Morty는 – 역시 반가운 얼굴로 크리스토퍼웰켄 – 그에게 최신형 디자인의 이상한 리모트콘트롤을 주는데 이 물건은 전자기기뿐 아니라 Newman 의 인생까지 조절해주는 기막힌 물건이었다. 덕분에 Newman 은 피하고 싶은 상황은 포워딩하면서 인생을 즐기게 되었다. 그런데 점점 기계가 자체적으로 작동하기 시작하면서 일이 꼬여만 간다.

앞서 언급하였다시피 이 영화역시 스크루지처럼 Newman의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를 넘나들면서 인생의 순간순간이 얼마나 소중한 것인가를, 그리고 가정을 팽개친 채 일에 몰두하는 것이 얼마나 어리석은가를 설교하고 있다. 아담샌들러는 늘 그렇듯이 무난한 자신만의 코미디 연기를 보여주고 있고 영화는 마치 그의 맞춤양복처럼 아담샌들러를 중심으로 편안하게 진행된다. 곳곳에 배치된 이지리스닝 계열의 80년대 팝 – 특히 The Cars 의 음악이 집중적으로 쓰이고 있다 – 이 이 ‘무난’표 영화에 한 몫 하고 있고 Newman 의 아내역을 맡은 케이트버킨세일의 아름다움은 눈부시다.

이 영화에 출연한 카메오 군단 알아보기

이 영화에 대한 또 다른 시각

The Pursuit of Happyness

이 영화는 여러 면에서 ‘Erin Brockovich’의 흑인 남성 버전이라 할만하다. 어린 자식들을 부양해야 하지만 배움도 없고 재주도 없었던 에린이 각고의 노력 끝에 마침내 성공하게 되는 실화를 바탕으로 한 그 영화처럼 이 영화 역시 비슷한 처지에 놓여 있던 Chris Gardner 라는 흑인 남성이 주식중개인으로 성공한다는 실화를 바탕으로 만들어진 영화이기 때문이다.

80년대 초 샌프란시스코에서 휴대용 엑스레이 촬영기를 판매하며 생계를 꾸려가던 Chris Gardner(Will Smith). 그에게는 사랑하는 아내와 사내아이가 있었지만 쪼그라들어만 가는 생계로 인해 아내와의 갈등은 심해지고 마침내 아내는 그의 곁을 떠나고 만다. 어릴 적부터 수학적 재능이 있었던 Chris 는 어느 날 주식중개인의 인턴쉽에 도전하지만 정식사원으로 채용되기 위해서는 수많은 난관이 버티고 있었고 그나마 인턴 기간에는 보수마저 없었다. 유일한 호구책인 엑스레이 촬영기는 이런 저런 사람들에게 도둑맞고 되찾는 과정을 되풀이한다. 급기야 세무당국에게 밀린 세금을 차압당하여 무일푼이 된 그는 여관에서도 쫓겨나 아이와 함께 지하철역 화장실에서 몸을 누이고는 뜨거운 눈물을 흘린다. 끝없는 나락으로 떨어져가던 그의 인생은 마침내 인턴기간 동안 보여준 그의 능력에 대해 회사가 정식채용으로 보상함으로써 해피엔딩으로 막을 내린다.

이 영화에서는 재미있는 두 개의 물건이 등장한다. 하나는 앞서 말한 휴대용 엑스레이 촬영기이고 또 하나는 80년대를 풍미했던 이상한 정육면체 장난감 루빅스큐브이다. 엑스레이 촬영기는 Chris 와 그의 가족에게 있어 애증의 상징이다. 그 뛰어난 성능에 혹한 Chris 가 판매를 위해 전 재산을 쏟아 구입했을 당시 그것은 가족에게 희망의 상징이었다. 그러나 의사들에게 일종의 사치품으로 간주되었던 그 물건의 부진한 판매는 가족에게 갈등과 고통의 상징으로 돌변한다. 그리고 마침내 아내가 떠나고 파산한 Chris 에게 그것은 마지막 삶의 희망이 된다. 부피가 큰 재봉틀과 같은 외양을 가진 이 물건을 항상 들고 다니던 Chris 의 모습에서 우리는 애정과 증오가 반복되는, 그러면서도 차마 떨쳐 내버리지 못하는 우리 삶의 그 어떤 고단한 일상을 발견하게 된다.

반면 일종의 고도의 수학적 지식이 요구되는 장난감이었던 루빅스큐브는 단 한번의 등장으로 Chris 에게 천재일우의 기회를 제공하는 물건이 되었다. Chris 가 끈질기게 매달렸던 증권회사의 유력한 임원 Jay Twistle 은 Chris 와 함께 탄 택시 안에서 루빅스큐브를 맞추려고 노력한다. 이것을 본 Chris 가 혼신의 힘을 다해 루빅스큐브를 맞추자 Twistle 은 이 고졸 학력의 흑인을 남다른 눈빛으로 바라보고 마침내 인턴쉽의 기회를 준다. 이를 통해 루빅스큐브는 Chris 에게 단순한 장난감이 아닌 자신의 능력을 검증하는 매개체로 작용한다. 고단한 일상에서도 토마스 제퍼슨이 천명한 ‘행복추구권’의 행사를 위해 노력했던 그의 구세주는 국가의 공적부조나 그의 아내가 아닌 엉뚱하게도 루빅스큐브였다는 사실이 인생의 아이러니로 다가온다.

많은 사람들이 휴대용 엑스레이 촬영기와 같은 어리석은 선택을 통해 행복을 추구하지만 실패하고 만다. 그러나 훨씬 적은 사람들이 루빅스큐브와 같은 기회를 잡게 된다. 인생의 사닥다리에 매달린 수많은 사람들이 Chris 의 루빅스큐브와 같은 기회를 잡게 되는 것은 아닌 것이다. 그래서 이 영화는 한 개인에게는 해피엔딩이지만 절대다수의 빈자들에게는 일종의 동화같은 무용담일 뿐이다. 가난한 미혼모에서 해리포터의 작가로 일약 억만장자가 된 조앤롤링이나 수학적 재능을 바탕으로 인생역전을 이루어 낸 Chris 와 같은 이들이 아니더라도 누구에게나 행복추구권은 존재하는 것이고 이는 사회의 조화로운 발전을 통해 이루어져야 하기 때문이다. 1년 전에 머물렀던 영화의 배경 샌프란시스코에서 보았던 수많은 홈리스들도 역시 그러한 행복추구권을 행사할 권리가 있음을 다시 한 번 곱씹게 하는 영화였다.

p.s. Chris 의 아들 역을 맡은 꼬마는 다름 아닌 Will Smith 의 아들 Jaden Smith 라고 한다. 오디션에 뽑히기 전까지 Will Smith 의 아들임을 밝히지 않았다고 하니 연기재능은 역시 어디로 새지 않았던 모양이다. 영화의 말미에 한 흑인 남성이 Chris 부자의 곁을 지나가는데 그가 바로 실제 인물 Chris Gardner 라고 한다.

Obsession

이 영화는 제목 자체가 일종의 눈속임이다. 브라이언드팔머의 1976년작인 이 영화는 사랑하는 아내와 귀여운 딸이 유괴되어 불의의 사고로 잃게 된 한 부동산업자의 과거에 대한 과도한 집착을 묘사하며 일종의 심리극으로 전개된다. 그러나 영화는 어느 한 순간 초자연적인 장르로 노선전환을 하는 가 싶더니 종국에는 치밀한 음모에 주인공이 희생된 범죄 미스터리로 막을 내린다. 영화의 플롯 자체가 어느 노선으로 향하여도 어느 정도 개연성이 있게끔 신축성이 있는지라 결말을 어떻게 꾸며도 나름대로 재밌었을 영화였다. 하지만 “히치콕의 인정받지 못한 아들”이라는 불명예스러운 별명을 가지고 있는 감독답게 히치콕의 명작 ‘버티고’의 플롯을 고스란히 베껴왔다는 비난을 받은 – 심지어 음악까지도 ‘버티고’의 음악을 맡았던 버나드 허먼이 맡았다고 한다 – 영화이기도 하다. 다행히도(?) 개인적으로는 ‘버티고’의 스토리가 기억나지 않은 덕에 영화 그 자체를 즐길 수 있는 여유를 가질 수 있었다. 미국과 이탈리아를 오가는 로케이션, 조연들의 호연, 깔끔하게 처리된 음악, 서스펜스를 몰고 가는 연출력 등이 나름 매력 포인트이고 분위기로는 도널드서덜랜드 주연의 ‘Don’t Look Now’가 떠올랐고, 영화의 여러 상징과 설정에서는 박찬욱 감독의 ‘Old Boy’, 그리고 범인의 설정에서는 패트릭스웨이즈 주연의 ‘Ghost’ 가 떠올랐다. 흥행 면에서는 같은 해 개봉된 드팔머의 또 다른 작품 Carrie 에 훨씬 못 미쳤다.

센과 치이로의 행방불명

마녀는 누군가의 이름을 바꿔서 그를 지배한다. 우리가 사물에 이름을 붙이고 호명하는 행위는 그 사물을 정의하는 가장 기본적인 시작단계이다. 이름 모를 새나 이름 모를 꽃에 이름을 붙여줌으로써 우리는 그 새나 그 꽃에 한걸음 더 다가가게 된다. 또는 그것들을 지배하게 된다. 그리고 그것들의 의지와 상관없이 붙여진 그 이름을 바꾸는 행위는 그것들을 우리가 지배하고 있다는 명확한 의지표현이다.

치이로라는 이름이 과분하다며 센으로 이름을 바꿔버린 마녀 유바바의 행동은 그런 의미에서 전형적인 지배행위로 간주될 수 있다. 하지만 센은 부모님이 지어주었을 자신의 본명을 계속 기억함으로써 자신을 노예로 부리고 부모님을 돼지로 둔갑시킨 유바바의 지배에 저항한다. 그리고 자신을 도와 준 하쿠의 본명을 알려줌으로써 그의 해방을 도모하기도 한다.

<앨리스의 이상한 모험>과 <오즈의 마법사>의 일본판이라고도 할 수 있는 이 애니메이션은 미야자키 히야오의 전성기에 만들어진 작품이다. 이삿날 길을 잘못 들어버리는 바람에 겪게 되는 정령(精靈)들의 목욕탕에서의 한바탕 소동은 히야오가 이전부터 관심을 가져오던 주제, 즉 어린 소녀의 성장기와 환경오염에 대한 경고가 적절히 결합된 한편의 판타지다. 버블경제의 몰락으로 쇠락해버린 버려진 유원지라는 공간의 설정이 흥미롭다. 다만 개인적으로 컴퓨터그래픽과 수작업으로 그려진 그림간의 미스매치가 다소 눈에 거슬린다.

War Of Worlds

Steven Spielberg가 2005년 감독한 이 영화는 H.G. Wells 의 동명의 소름끼치는 공상과학소설을 원작으로 하고 있으나 스토리는 사뭇 다르다. 당연히 원작에 충실했던 Byron Haskin 감독의 1953년 작과도 내용을 달리 하고 있다. 전편이 등장인물 들 사이의 인간관계보다는 우주생물체의 습격의 스펙터클함에 주력하는 반면, 이 작품은 무책임한 노동자 남편 Ray Ferrier(Tom Cruise)가 그의 아들딸을 우주괴물들로부터 보호하는 과정에서 복원되는 가족애를 중심축에 두고 있다. 물론 기술의 발전에 따라 스펙터클 역시 전편보다 훨씬 뛰어나다. 사실 원작의 내용을 보자면 거의 무기력에 가까운 군대의 화력으로는 애당초 우주괴물을 상대할 수 없었기에, 그래서 결말이 다소 어이없을 수밖에 없기에 이 단점을 극복할 필요는 있었다. 따라서 리메이크 작품은 뭔가 관객의 시선을 잡아당길 수 있는 스토리를 삽입하였고 이전 작품에서 가족을 중심축으로 두곤 했던 스필버그로서는 당연한 선택이라 할 수 있다. 그러함에 결국 이 영화는 딸(Dakota Fanning)을 위해 헌신하는 아버지에 관한 가족영화라 할 수 있다. 부제로 “Saving Dakota Fanning”을 달아도 어색하지 않다. 

어쨌든 “우주괴물의 습격”이라는 소재는 오손 웰즈도 탐낼 만큼 픽션에서 언제 써먹어도 질리지 않는 소재이다. 당초 스필버그는 수년에 걸쳐 이 소재를 영화화할 계획이었으나 90년대 말 Independence Day, Armageddon 등 이른바 이런 유의 영화제작이 붐이어서 이 시기를 피해 2005년 제작하였다고 한다. 흥행을 염두에 두었을 포석이지만 어쨌든 작품성으로만 놓고 보자면 앞서의 두 영화보다는 이 영화의 작품성이 우수함은 분명하다. 약간은 질리기도 하지만 “가족”이라는 미국인들이 좋아하는 주제를 바탕에 깔고 있고 스토리 전개 역시 앞서의 영화보다 훨씬 자연스럽다. 다만 편집증적 인물 Ogilvy(Tim Robbins)의 등장은 다소 억지스럽다. 

곁가지로 이야기하자면 헐리웃이 이런 유의 스펙터클 영화를 제작할 때에는 거의 예외 없이 펜타곤에 협조를 요청한다고 한다. 2차 대전을 계기로 본격화된 이러한 공생관계는 군의 협조를 통한 제작비 절감을 노리는 헐리웃과 프로파간다로 영화를 활용하고자 하는 군 당국과의 이해관계가 맞아떨어지는 선에서 타협이 이루어지곤 했다. 역시 Tom Cruise 가 주연을 맡았던 Top Gun에서 톡톡히 재미를 본 공생관계를 활용하고자 하는 시도는 앞서 언급한 두 영화 Independence Day, Armageddon 도 예외가 아니었다. 그러나 펜타곤은 Independence Day에서 군인의 역할이 상대적으로 미약하다는 이유를 들어 제작협조를 거절했고 아부로 점철된 협조공문을 보낸 Armageddon 은 군의 위상을 드높일 수 있다는 당국의 자체판단에 의해 전폭적인 협조를 받았다 한다. 

그렇다면 이 영화 War Of Worlds 는 펜타곤의 협조를 받았을까? 개인적인 의견으로는 그렇지 못했을 것이다. 군인의 활약상이 Independence Day 보다 더 형편없기 때문이다. 기껏 보호막이 제거된 우주괴물에 박격포 몇 발 날려 쓰러트린 것이 전적의 전부인데 군이 협조했을리 만무했을 것이다. 물론 우주인들도 자신들을 “악의 세력”으로 그렸으니 협조했을 리 만무하다. 결국 스필버그나 되니까 누구의 협조도 없이 이런 거창한 영화를 만들 수 있었으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