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alking Heads의 Speaking In Tongu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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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3년 5월 31일 Talking Heads의 다섯 번째 스튜디오 앨범 Speaking In Tongues가 발매되었다. Talking Heads가 프로듀스한 이 앨범은 뉴욕에 있는 시그마사운드 스튜디오 등 여러 곳에서 1982년 7월에서부터 1983년 2월까지 녹음되었다. 그때까지의 마지막 스튜디오 앨범이었던 Remain In Light이후로 3년 만에 처음 내놓은 이 작품은 그들의 작품 중에서 가장 접근하기 쉽고 상업적으로도 성공적이었던 앨범이랄 수 있다. 이 앨범에서는 그들의 가장 큰 히트곡 중 하나인 Burning Down The House와 This Must Be The Place가 싱글 커트되어 각각 차트 9위와1 차트 62위까지 올랐다. 이 앨범을 내놓은 후 밴드는 그때까지의 규모 중에 가장 큰 규모의 순회 공연을 가졌고 이 공연은 1984년에 Stop Making Sense라는 이름의 라이브 앨범/콘서트필름으로 제작될 것이었다. 콘서트 필름의 감독은 유명한 Jonathan Demme가 맡았다.2 화가이자 그래픽아티스트인 Robert Rauschenberg는 이 앨범의 한정판 LP 버전의 디자인으로 그래미상 시상식에서 “베스트 앨범 패키지” 상을 수상한다.3 오리지널 카세트테잎 버전은 LP의 길이 때문에 짧게 편집된 몇몇 곡 – “Making Flippy Floppy”, “Girlfriend Is Better”, “Slippery People”, “I Get Wild/Wild Gravity”, “Moon Rocks” – 의 더 긴 버전이 수록되어 있다. 2006년 바로 그 더 긴 버전의 곡들과 두 곡의 보너스 트랙 – “Two Note Swivel”과 “Burning Down the House”의 리믹스 – 이 수록된 리마스터 더블 CD가 발매되었다. 1989년 롤링스톤誌는 이 앨범을 “1980년대 가장 위대한 100장의 앨범”에서 54위에 선정했다.

Side one
1. “1. Burning Down the House” – 4:00
2. “Making Flippy Floppy” – 4:36
3. “3. Girlfriend Is Better” – 4:25
4. “Slippery People” – 3:30
5. “I Get Wild/Wild Gravity” – 4:06
Side two
6. “Swamp” – 5:09
7. “Moon Rocks” – 5:04
8. “Pull Up the Roots” – 5:08
9. “9. This Must Be the Place (Naive Melody)” – 4:56

2006 DualDisc reissue
10. “Burning Down the House” – 4:01
11. “Making Flippy Floppy (Extended Version)” – 5:53
12. “Girlfriend Is Better (Extended Version)” – 5:42
13. “Slippery People (Extended Version)” – 5:05
14. “I Get Wild/Wild Gravity (Extended Version)” – 5:16
15. “Swamp” – 5:12
16. “Moon Rocks (Extended Version)” – 5:45
17. “Pull Up the Roots” – 5:09
18. “This Must Be the Place (Naive Melody)” – 5:03
19. “Two Note Swivel (Unfinished Outtake)” – 5:51
20. “Burning Down the House (Alternate Version)” – 5:09

  1. 밴드의 첫 탑10 히트곡이었다
  2. Total Film은 이 영화를 역사상 가장 위대한 콘서트 필름으로 선정했다
  3. 일반적인 발매분은 David Byrne이 디자인했다

Go Wes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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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et-Shop-Boys-Go-West-22506” by May be found at the following website: http://eil.com/newgallery/Pet-Shop-Boys-Go-West-22506.jpg. Licensed under Wikipedia.

Go West는 1970년대 디스코 그룹 Village People이 1979년 싱글로 발표한 곡이다. 하지만 이 곡은 당시에 발표된 그룹의 다른 싱글인 Y.M.C.A. 나 In The Navy의 인기에 밀려 빛을 보지 못했다. 19세기 미국 언론인인 Horace Greeley가 젊은이들에게 당시까지도 미개척지인 서부를 개척하라고 격려한 “Go West, young man”에서 제목을 따왔다는 이 노래는 1993년 Pet Shop Boys가 리메이크한 후에야 비로소 인기를 얻게 되었다. Village People의 리드싱어 Victor Willis가 이 곡을 동성애자의 주제가가 되리라는 생각을 가지고 만든 것이 아니라고 말했지만, 많은 이들이 이 노래를 동성애 해방운동의 메카 중 하나였던 샌프란시스코에 대한 그리움을 표현한 것으로 이해하고 있다. 1992년 Derek Jarman은 Pet Shop Boys에게 맨체스터의 하시엔다 클럽에서 있을 AIDS 자선 이벤트에서 공연을 해달라고 요청한다. Chris Lowe는 Go West를 연주할 곡으로 골랐다. 공연 도중 Neil Tennant가 가사를 까먹긴 했지만 둘은 이 곡을 싱글로 만들기로 마음먹었다. 1993년 이 곡이 새 앨범 Very의 싱글로 발매됐고 영국에서 싱글 차트 2위, 독일에서 싱글 차트 1위까지 올랐다. Howard Greenhalgh가 감독한 컴퓨터그래픽이 전폭적으로 사용된 뮤직비디오는 다소 모호한 이미지를 전달한다. 헬멧을 쓴 독특한 복장의 Pet Shop Boys가 등장하는 가운데 소비에트의 군인으로 보이는 사나이들이 진군을 한다. 레닌의 부조도 보이고 흑인 여성에 빨간 옷을 입은 자유의 여신상도 등장한다. 소비에트가 붕괴된 당시의 상황을 빗대어 친서방 이미지인 것인지 상황을 역전시켜 소비헤드가 서방을 함락시켰다는 것인지 헷갈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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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Little Respec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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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rasure – A Little Respect” by The cover art can be obtained from Mute/ Sire.. Licensed under Wikipedia.

“A Little Respect”는 영국의 신쓰팝 듀오 Erasure가 불러서 히트한 댄스팝이다. 그룹의 멤버인 Vince Clarke와 Andy Bell이 쓰고 1988년 9월에 발매된 이 곡은 그들이 유럽에서 내놓은 세 번째 – 미국에서는 두 번째 – 스튜디오 앨범 The Innocents의 세 번째 싱글로 내놓은 작품이자 통산 열 번째 싱글이었다. “A Little Respect”는 영국 차트 4위까지 올라 듀오의 통산 다섯 번째 탑10 싱글이 되었다. 미국에서는 빌보드 핫100 차트 14위, 핫댄스클럽 곡 차트에는 2위까지 오르는 성적을 거두었다. 곡은 듀오의 다른 곡과 마찬가지로 강한 신디싸이저의 연주가 주조를 이룬 와중에 어쿠스틱 기타 연주가 가미했고, 이 연주를 바탕으로 Bell이 코러스에서 팔세토 창법으로 소화한 곡이다. 가사는 연인에게 동정심과 존경심을 가질 것을 애원하는 이의 사연을 노래하고 있다. Andy Bell은 제목이나 가사 등 때문에 이 곡이 Aretha Franklin의 “Respect”와 지나치게 비슷하게 들릴까봐 걱정하기도 했다고 한다. 이 곡은 그들의 다른 노래와 마찬가지로 다양한 버전으로 리믹스되었고 어쿠스틱 버전이 만들어지기도 했다. 다양한 커버버전 가운데 Wheatus가 2001년 7월 내놓은 락사운드가 강화된 커버버전이 가장 유명하다. 이 곡은 영국에서 3위까지 오르고 다른 여러 나라에서도 인기를 얻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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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ina Turner – Private Danc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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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4년 5월 29일 Tina Turner의 다섯 번째 솔로 앨범 “Private Dancer”가 발매되었다. John Carter 등 4개의 프로덕션 팀이 프로듀스한 이 앨범은 유명한 애비로드 스튜디오 이외에도 런던이나 영국의 다른 도시 스튜디오 등 다양한 곳에서 1983년 9월부터 약 7개월에 걸쳐 녹음작업을 진행했다. 당시 Tina Turner는 1976년 Ike Turner와 이혼한 후 솔로 뮤지션으로서의 경력을 계속 쌓아오던 중이었다. 새 매니저 Roger Davies의 도움으로 캐피톨 레코드사와 계약을 체결할 수 있었던 Tina는 새로운 경영진이 들어서면서 앨범도 만들기 전에 버림받을 뻔 했었다. 그러나 운명은 David Bowie가 뉴욕에서 임원들과 저녁을 함께 먹으면서 바뀌었다. 저녁식사가 끝날 무렵 David Bowie가 “내가 좋아하는 가수 Tina Turner를 보러 갈 예정이에요.”라 말했고 임원들은 The Ritz에서 Tina의 공연을 함께 보았다. 열정적인 공연을 본 그들은 그녀를 버리려는 당초 생각을 바꾸고 즉시 그녀를 스튜디오에 투입했다. Tina는 Al Green의 고전 “Let’s Stay Together”를 커버하기 위해 Heaven 17의 Martyn Ware, Ian Craig Marsh와 함께 작업했다. 이 노래는 R&B 차트 3위, 팝 차트 26위에 오르는 성적을 거두었다. 그 싱글의 성공 덕택에 캐피톨 레코드사는 그녀에게 정식 앨범의 취입을 요구했다. 앨범에는 많은 정상급 뮤지션들이 힘을 보탰는데 이 중에는 Jeff Beck, Wilton Felder, Joe Sample, Dire Straits, The Fixx 등이 있다. “Private Dancer”에서는 싱글 차트 1위에 오른 “What’s Love Got To Do With It”를 비롯하여 다섯 개의 싱글이 연속으로 히트했다. 앨범은 빌보드 R&B 앨범 차트 1위에 올라 1주간 머문다. 탑200에는 3위까지 올랐다. 1985년 그래미상 시상식에서는 6개 부문의 후보에 올라 ‘레코드오브더이어’ 등을 포함 4개 부문을 수상했다. 이 앨범은 전 세계적으로 2천만 장 이상이 팔린 것으로 추산된다.

Flashdance… What A Feeli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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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IMP Awards, Fair use, Link

Irene Cara의 “Flashdance… What A Feeling”이 1983년 5월 28일 빌보드 핫100 차트 1위에 올라 6주간 머물렀다. 또한 같은 해 6월 11일에는 클럽플레이 차트 1위에 3주간 머물렀고, R&B 싱글 차트에도 같은 해 6월 4일 2위까지 올랐다. 브롱스 출신의 싱어송라이터이자 배우였던 Irene Cara에게는 생애 최고의 히트곡이라 할 만한 이 곡은 Adrian Lyne이 감독하고 신예 Jennifer Beals가 주연하여 엄청난 인기를 얻었던 댄쓰 무비 Flashdance의 메인타이틀이었다. Irene Cara는 불과 세 살의 나이로 배우로서 프로의 세계에 입문했다. 브로드웨이에서 몇 개의 작품에 출연했던 그녀는 1980년 Alan Parker 감동의 “Fame”을 통해 커리어의 일대 전기를 마련하게 된다. 이 영화에서 그녀는 연기와 함께 주제곡을 함께 불러 빌보드 핫100차트 4위에 오르는 등의 인기를 얻었다. 1982년 그녀는 Don Simpson와 Jerry Bruckheimer가 제작할 한 영화의 주제가를 불러달라는 요청을 받게 되는데 그 영화가 바로 “Flashdance”다. 이 영화의 사운드트랙을 위한 프로듀서와 작곡은 Giorgio Moroder와 Keith Forsey가 맡았다. Moroder는 주로 연주곡을 작곡한 후 Forsey와 Cara가 이 아이디어를 가지고 녹음실에 들어가 곡의 가사를 다듬는 형식으로 작업이 진행되었다. 그 와중에 Cara는 춤을 출 때 느끼게 되는 느낌을 표현해야 한다는 아이디어를 냈고 Forsey는 무심코 “what a feeling”과 “dancing for my life”란 구절을 생각해냈다. 이 두 구절은 곡의 핵심을 표현하는 핵심적인 가사로 쓰였다. 1983년 3월말 “Flashdance” 사운드트랙에서 첫 싱글로 이 곡을 발매했고 같은 해 4월 2일 핫100 차트 77위에 처음으로 진입했다. 결과적으로 빌보드 연말결산 싱글 차트에서는 3위를 기록했다. Cara는 1984년 그래미상 시상식에서 베스트 여성 팝보컬 부문을 수상한다. 또한 골든그로브와 아카데미에서도 수상하는 등 상복을 누렸다. 영화 역시 큰 인기를 얻어 미국에서만 그 해 최고의 흥행작 3위를 기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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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nto The Groove

Madonna가 부른 “Into The Groove”가 1985년 5월 27일 발매되었다. Madonna와tephen Bray가 쓰고 프로듀스를 맡았다. 뉴욕시의 이스트빌리지에 있는 자신의 집에서 Madonna는 잘생긴 푸에르토리코 젊은이를 발견한다. Madonna는 이 청년을 염두에 두고 그녀의 이전에 Breakfast Club에서 같이 활동했던 드러머 Steve Bray와 함께 곡을 완성한다. 그녀의 인터뷰에 따르면 곡은 그녀가 곡을 쓰고 있는 동안 그 잘생긴 청년을 발견한 후 나가서 데이트를 신청했고 그와의 마지막 데이트 바로 전에 끝났다고 한다. Madonna의 데뷔 싱글 “Everybody”의 프로듀서이자 클럽DJ인 Madonna의 전남친 Mark Kamins가 Cheyne이라는 신인 십대 여가수를 위한 곡을 써줄 것을 요청했다. Madonna는 이 곡을 그에게 줬다. 얼마 안 있어 그녀는 Susan Seidelman이 감독한 “Desperately Seeking Susan”의 주연을 맡게 되었다. Seidelman는 Madonna에게 뉴욕시의 ‘댄서테리아라(Danceteria)’는 곳에서 찍은 나이트클럽 장면에 쓸 음악을 요청했고, Madonna는 감독에게 데모로 만든 “Into The Groove”를 들려주었다. Seidelman은 매우 마음에 들어 했고 Madonna와 Stever Bray는 뉴욕에 있는 시그마사운드 스튜디오에서 노래를 다시 녹음했다. Kamins는 Madonna가 자기에게 말도 없이 노래를 다시 가져가 버린 것에 화를 냈고 둘의 사이는 벌어졌다. 1985년 3월말 “Susan”의 개봉과 동시에 Madonna의 곡은 큰 인기를 끌게 됐다. 당초 이 곡은 싱글 발매 계획도 없었고 영화의 사운드트랙 앨범에도 수록되지 않았다. 그렇지만 이 곡을 이용한 뮤직비디오가 영화의 홍보를 위해 영화에서 골라낸 장면들을 이용하여 제작됐다. 라디오 방송국에서 이 비디오에서 뽑아 낸 노래를 방송하기 시작했다. 팬들의 반응이 뜨거워지자 Madonna의 소속사 Sire 레코드사는 싱글 발매를 결심하게 된다. 당시 차트에 머물러 있던 “Angel”의 경쟁을 피하기 위해 “Groove”는 “Angel”의 12인치 싱글 B면에 수록됐다. 미국에서 7인치 싱글로 발매되지 않았기 때문에 당시 규정에 따라 빌보드 핫100에 오르지는 못했다.1 하지만 12인치 싱글은 미국에서만 백만 장이 넘게 팔렸고 해외에서는 A면에 실려 발매됐다. 몇몇 지역에서는 “Like A Virgin”앨범에 수록되어 팔리기도 했다. “Into The Groove”는 영국 차트에서 4주간 1위를 비롯하여 9개 나라에서 정상을 차지했다. 미국에서는 1985년 6월 29일 빌보드 클럽플레이 차트에서 1위에 올랐다.

뮤직비디오

  1. 빌보드는 80년대 말 이 노래를 ‘지난 10년의 댄스 싱글’에 선정한다

God Save The Quee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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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ex Pistols – God Save the Queen” by Virgin Records. Licensed under Wikipedia.

1977년 5월 27일 Johnny Rotten이 이끄는 펑크밴드 The Sex Pistols의 “God Save The Queen”이 버진 레코드사를 통해 발매됐다. 그들의 유일한 정규앨범 Never Mind the Bollocks, Here’s the Sex Pistols 의 두 번째 싱글로 발매된 이 곡은 발표되자마자 논쟁을 촉발했고 BBC와 지방 라디오 방송국을 관장하는 IBA는 이 곡을 방송금지곡으로 지정했다. 전략적으로 퀸엘리자베스 2세 대관식의 25주년에 맞춰 발표한 이 영국의 국가와 같은 제목을 붙인 곡의 의도는 명백했기 때문이다. 이 곡의 가사 첫머리에는 여왕 체제를 “파시스트 정권”이라 규정하는가 하면 두 번째 문단에서는 “영국의 꿈에는 미래가 없다”고 노래하는 등 무정부주의적인 내용으로 가득 차있다. 방송의 노골적인 차별에도 불구하고 “God Save The Queen”은 영국의 NME 차트에는 1위, BBC가 사용하는 영국 공식 싱글 차트에는 2위까지 올랐다. 혹자는 BBC가 이 곡이 1위에 오르지 못하도록 조작했다는 설을 제기하기도 한다. 그룹이 버진과 계약하기 직전 소속사였던 A&M에서 발매한 오직 9장만 존재한다고 알려진 싱글 앨범은 현재 고가에 거래되고 있는 희귀 아이템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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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verything She Wan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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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ay be found at the following website: https://www.45cat.com/record/qa4949, Fair use, Link

영국 출신의 남성듀오 Wham이 부른 “Everything She Wants”가 1985년 5월 25일 빌보드 핫100차트 1위에 올라 2주간 머문다. 또한 같은 해 6월 8일에는 R&B 싱글 차트 12위까지 올랐다. 듀오의 프론트맨 George Michael이 작곡과 프로듀스를 담당한 이 곡은 듀오의 세 번째 미국 차트 1위곡이 되었다. 해당 곡은 듀오의 두 번째 앨범 “Make It Big”을 제작하는 기간에 만들어졌는데, 새로이 결혼한 남성이 부인의 물질적 요구에 힘들어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이런 상황은 부인이 임신을 한 사실을 알게 되고 결혼관계에서 빠져나오기 어렵다는 것을 깨닫게 되면서 더욱 악화된다. 녹음은 1984년 여름에 런던에 있는 Sarm West 스튜디오에서 진행되었다. 기본 리듬은 Linn LM-1 드럼 머신으로 프로그래밍되었고, Michael과 키보디스트 Tommy Eyre이 연주하는 신디사이저가 덧입혀졌다. 완성된 곡은 처음에 1984년 12월 영국에서 크리스마스 시즌을 겨냥하고 만든 “Last Christmas”와 함께 A면에 실려 발매되었고, 영국 싱글 차트에서는 Band Aid의 “Do They Know It’s Christmas”에 이어 2위까지 올랐다. “Everything She Wants”는 George Michael 스스로도 자신들의 곡 중에서도 특히 좋아하는 곡이며, 단순한 틴팝 그룹에 그칠 것이라는 세간의 평가와 달리 듀오가 좀 더 진지한 청취층을 아우를 수 있다는 가능성을 보여준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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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orn To Run

A bearded man holding an electric guitar leaning on an out-of-frame man's should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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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orn to Run은 미국의 싱어송라이터 Bruce Springsteen의 세 번째 정규 앨범이다. 이 앨범은 1975년 8월 25일 콜롬비아 레코드사를 통해 발매되었다. 이 앨범은 통상 Springsteen의 최고의 명반으로 꼽히며 그의 음악이 메인스트림으로 부각된 최초의 작품이라 할 수 있다. 앨범은 빌보드 200에 3위까지 올라갔으며 미국에서만 2000년까지 6백만 장이 넘게 팔렸다. 싱글은 “Born to Run”과 “Tenth Avenue Freeze-Out”이 발매되었다. Springsteen은 1974년 5월 앨범 작업에 돌입했는데, 녹음은 “Born to Run” 한 곡에만 6개월을 보내는 등 14개월에 걸쳐 이루어졌다. 곡들은 그의 고향인 뉴저지의 몇몇 장소가 구체적으로 언급되며 십대 혹은 젊은이들의 그 곳에서의 삶을 그리고 있어 자전적 요소가 섞여 있음을 알 수 있다. 작곡은 기타가 아닌 피아노로 이루어졌는데 Springsteen은 이 앨범이 “Roy Orbison이 Bob Dylan의 곡을 부르는 것”처럼 들렸으면 좋겠다는 희망을 피력했다. 앨범 커버는 락뮤직 역사에 있어 가장 유명한 커버가 되었는데, Eric Meola가 찍은 Springsteen의 모습이 담겨져 있다. 커버에서 Springsteen은 펜더텔레캐스터를 들고 누군가의 등에 기대어 웃고 있다. 그 등은 섹스폰 연주자 Clarence Clemons의 등이다. 이 이미지는 다양한 대중문화에서 패로디했다.

Side one
1. “Thunder Road” 4:49
2. “Tenth Avenue Freeze-Out” 3:11
3. “Night” 3:00
4. “Backstreets” 6:30

Side two
1. “Born to Run” 4:31
2. “She’s the One” 4:30
3. “Meeting Across the River” 3:18
4. “Jungleland”

Let’s Danc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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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etsDance” by Own photo. Licensed under Wikipedia.

1983년 5월 21일 David Bowie의 “Let’s Dance”가 빌보드 핫100차트 1위에 올라 1주간 머문다. David Bowie가 작곡한 이 곡은 Bowie에게 있어서는 두 번째로 미국 차트 1위의 기쁨을 선사한 곡이다. 1982년 EMI와 계약을 맺은 Bowie는 EMI에서의 첫 앨범을 위해 Chic의 Nile Rodgers와 함께 작업을 했다. 녹음을 시작하기 전에 Bowie는 Rogers에게 “Let’s Dance”를 포함하여 자신이 만든 곡들을 들려주었다. “Let’s Dance”는 원래 12현의 기타 연주로 데모 작업을 했기 때문에 완성된 곡과 거의 닮지 않았다. Rodgers는 이 곡을 업템포 댄스락으로 변신시켰다. 녹음 작업은 1982년 12월 뉴욕에 있는 파워스테이션에서 진행되었다. 녹음은 단지 3주 만에 완료됐다. “Let’s Dance”는 Tony Thompson이나 Nile Rodgers와 같은 특급 뮤지션들의 연주로 포장되었는데, 당시에는 무명의 블루스 기타리스트였던 Stevie Ray Vaughan도 기타 솜씨를 보태주었다. Bowie의 열다섯 번째 스튜디오 앨범은 1983년 3월에 발매되었다. “Let’s Dance”는 1983년 3월 26일 핫100 차트에 59위로 데뷔했다. Bowie는 이 곡의 인기로 신세대 팬층을 형성할 수 있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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