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awn Of The Dead

영화는 마치 국가연주 없는 국가대항전처럼 시작된다. 이미 좀비는 세상을 점령하고 있고 그 사실은 배우들도 알고 관객들도 알고 있는 것처럼 그렇게 영화가 시작되기 때문이다. 이것은 감독 조지 로메로가 이 작품을 그가 10년 전에 만든 걸작 Night of the Living Dead 의 연장선상에 있는 일종의 2편으로 간주하고 있기 때문이다.

스테판과 방송 일을 하는 여자 친구 프란세스, 그리고 경찰인 피터와 로저는 좀비들을 피해 더 안전한 곳으로 가기 위해 헬리콥터를 타고 북상한다. 그러나 가는 곳마다 차고 넘치는 좀비들로 인해 – 좀비들이 흔해짐에 따라 이제 어떤 사람들은 좀비들을 사냥감 또는 여흥거리로마저 생각하게 된다 – 여행길은 험난하다. 그 와중에 어느 대형쇼핑센터에서 휴식을 취하던 그들은 쇼핑센터를 탈취할 계획을 세우기 시작한다. 그리고 마침내 좀비들을 소탕하고 쇼핑센터를 그들의 것으로 만들어 마치 The Quiet Earth 의 주인공처럼 물질적 풍요를 마음껏 누리기 시작한다. 그러나 이내 악당들이 그들의 존재를 눈치 채고 쇼핑센터를 털 계획을 짠다.

영화에서도 설명되지만 좀비는 부두교에서 등장하는 죽었으나 저승으로 가지 못한 시체를 일컫는 말이다. 저주받은 죽음이라는 종교적 의미와 헐리웃과 만나 신종괴물로 둔갑하지만 그들은 다른 괴물들과 달리 굼뜨고 개념이 없는 그저 살아있는 시체일 뿐이다. 그런 그들로 세상이 가득차면 세상은 희망이 남아있을까? 이것이 살아남은 피터가 던지는 질문인데 그는 결국 희망 쪽을 택한다.

2004년 리메이크되었다.

King Kong

“반지의 제왕” 시리즈를 통해 컬트영화 전문 감독에서 일약 헐리웃 블록버스터의 거두로 떠오른 피터 잭슨이 고른 차기작은 1933년 만들어진 킹콩의 리메이크였다. 피터 잭슨이 왜 이 작품을 골랐는지에 대해서는 정확히 알 길이 없지만 아마도 어린 시절 충격적으로 다가왔던 이 스펙터클 무비를 만들 재력과 명성이 “반지의 제왕” 시리즈의 성공을 통해 이루어진 시점이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킹콩의 오리지널 작품은 헐리웃 영화사에서 가장 독특한 캐릭터 중 하나인 거대한 고릴라를 내세워 영화사적으로도 큰 의미를 획득하였고 상업적으로도 크게 성공한 영화이다. 그렇지만 원래 온순하고 평화로운 종인 고릴라에 대한 어쩔 수 없는 – 다른 생명에 대한 애정을 그렸다는 점에서 선한 면모를 그리고는 있지만 결국은 괴수 영화의 주인공이 필수적으로 갖춰야 되는 폭력성을 표현하였다는 점에서 – 편견을 필름에 담았기 때문에 무지한 대중은 한동안 고릴라를 난폭한 짐승으로 오인하였고 이로 인해 동물애호가들의 비판을 감수해야했다.

때문에 개인적으로는 피터 잭슨이 이러한 동물에 대한 ‘정치적 올바름’ 이 대중문화에 어떻게 반영되는가가 비판적 영화관객들의 핫이슈가 된 시점에서 어떻게 킹콩을 묘사할 것인가 하는데 대한 호기심이 있었던 편이다. 결과적으로 봐서는 감독은 일단 일부 세세한 묘사를 제외하고는 원작을 충실히 재현하는 쪽으로 가닥을 잡았던 듯싶다. 오히려 그는 관객들의 동물에 대한 ‘정치적 올바름’ 이 온순한 유인원으로서의 고릴라와 난폭한 괴수로서의 ‘고릴라를 닮은’ 거대한 유인원을 구별할 수 있으리라 생각했던 듯싶다.(어쨌든 섬세한 컴퓨터그래픽 덕으로 킹콩의 보다 인간적인(?) 면모는 오리지널보다 두드러질 수 있었다)

영화 자체로 파고 들어가면 이 영화의 플롯 자체는 ‘미녀와 야수’에 괴수 영화를 짬뽕한 영화이다. 애초부터 맺어질 수 없었던 이상한 커플의 사랑이야기가 주조를 이루는 가운데 한 나락에 빠진 영화제작자의 욕망과 주위 인물들의 모험담이 결합되어 소위 ‘사랑과 야망, 그리고 모험’ 이 총망라된 버라이어티쇼로 재현된 것이다. 그리고 그러한 스케일의 영화는 당연하게도 1930년대보다는 21세기의 최첨단 영화제작 환경에서 보다 박진감 넘치게 재현될 수 있었던 것이다.

그렇지만 예술적 상상력은 반드시 상상력의 빈 공간을 오감의 만족을 극대화시킴으로써 극대화될 수 있는 것만은 아니다. 영화라는 매체가 없던 시절에도 사람들은 글로 표현된 매체만으로도 희열과 쾌락을 느낄 수 있는 상상력을 지니고 있었다. 셰익스피어의 작품이 최첨단 기술을 통해 영화화되었다고 해서 원작에서 느끼는 희열을 반드시 넘어설 수 있는 것은 아니니까 말이다. 요컨대 원작과 리메이크 중 어느 작품이 더 맘에 드는지는 순전히 개인의 몫일 수밖에 없을 것 같다. 한혜숙의 구미호가 좋은지 고소영의 구미호가 좋은지가 개인의 몫인 것과 마찬가지다.

사실은 첨 글을 쓸 때 킹콩에서 감지할 수 있는 폭력적 자본주의에 대한 메타포에 대해 이야기할까 했으나 이런 유의 영화이야기는 이미 뻔한지라 생략.

Salaam Bombay!

혹자는 아기의 귀여운 몸동작이 어른들로 하여금 보호본능을 자극시켜 자신이 생존하기 위한 일종의 생존전략이라고들 말한다. 지나치게 냉소적인 말이지만 나름대로는 일리가 있는 말이다. 도대체 그 귀여움이라도 없었더라면 성가시고 귀찮기 만한 양육을 뭐 하러 자기 돈 들여가면서 떠안을 것인가? 그리고 사회는 이러한 양육을 부모로서의 신성한 의무로 이데올로기화시킨다. 안 그러면 이 사회의 존속은 불가능 할 테니까.

사회 절대다수의 가정이 이렇듯 자신의 피붙이에 대한 기본적인 부양의무를 어떻게 해서든 이행하려 노력하지만 때로는 자의이든 타의이든 양육을 포기하는 경우가 많다. 이렇게 가정으로부터 버림받은 아이들은 집단 수용시설에 들어가거나 거리로 내몰릴 수밖에 없다. Mira Nair 의 1988년작 Salaam Bombay! 는 바로 이러한 거리의 아이들을 애정 어린 시선으로 바라본 영화이다.

어머니로부터 버림받고 몸을 의지하던 서커스단으로부터도 버림받은 크리슈나는 자연스럽게 인도의 대도시 봄베이의 거리를 거처로 삼는다. 창녀촌 주변의 노점상의 차를 배달하는 한편으로 이런 저런 육체노동으로 푼돈을 꼬박 꼬박 모으는 크리슈나의 꿈은 돈을 모아 다시 집으로 돌아가는 것이다. 그의 어머니가 500루피를 모으기 전에는 집에 돌아올 생각을 하지 말라는 말을 하며 그를 떠났고 크리슈나는 이 말을 500루피를 모으면 어머니가 다시 그를 받아줄 것이라는 약속으로 믿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 한 가지 희망 때문에 온갖 악의 유혹이 넘쳐나는 거리에서 꿋꿋이 살아가지만 그런 연약한 소년을 경찰은 부랑아라는 단 하나의 이유만으로 집단 수용시설에 가둬버린다. 천신만고 끝에 수용시설을 탈출하지만 그를 기다리고 있는 현실은 수용시설 안보다 더 잔혹하다.

볼리우드라 불릴 만큼 현실과 동떨어진 당의정과 같은 환각적인 영화를 양산해내는 인도의 영화계에서 보기 드물게 리얼리즘적인 입장을 취하고 있는 영화이면서 감정의 과잉으로 흐르지 않는 절제의 미덕을 보여주고 있다. 루이스 브뉘엘의 1950년 작 Los Olvidados 과 여러 면에서 비교될만한 수작이다. 인도의 영국의 합작 영화

Tokyo Fist

거대한 도시의 빌딩숲 안에서 바퀴벌레처럼 생존을 위해 쳇바퀴 인생을 사는 보험 세일즈맨은 항상 지쳐있을 수밖에 없다. 하지만 여자 친구와 관계를 가진지가 언제인지조차 기억나지 않는 ‘왜 사는지 모르는’ 인생인 쯔다는 우연히 후배(어떤 후배인지 모르겠다) 코지마를 만나면서 궤도를 이탈하기 시작한다. 권투선수인 코지마는 다짜고짜 집으로 찾아와 여자 친구 히주루를 넘본다. 이후 쯔다의 질투는 그의 가슴 속에 사라졌던 야성으로 변하고 애초에 완력으로 상대가 되지 않았던 코지마에게 신나게 얻어터진다. 히주루는 난데없이 피어싱에 몰두하기 시작하더니 아예 거처를 코지마네로 옮겨버린다. 쯔다는 복수를 위해 코지마가 소속되어 있는 권투도장에 가서 권투를 시작한다. 복수심인지 질투심인지 변태성욕인지 모를 격렬한 감정들이 혼재된 채 등장인물들의 감정으로 표출되고 이러한 감정이 때로는 만용으로 때로는 소심함으로 때로는 비겁함으로 표현된다. 필터링된 화면이 아니었다면 폭력성에 있어 몇 배나 강도가 증가되었을 법 할 만큼 하드코어한 폭력장면으로 채워져 있다. 히주루의 피어싱과 금속이물질에 대한 집착은 마치 The Iron Man 을 연상시킨다.

The Iron Man 의 감독인 신야 츠카모토의 1995년작.

경쾌한 리듬 속에 흐르는 반전(反戰) 메시지

I Don't Want to be a Hero.jpg
I Don’t Want to be a Hero” by Derived from a digital capture of the album cover (creator of this digital version is irrelevant as the copyright in all equivalent images is still held by the same party). Copyright held by the record company or the artist. Claimed as fair use regardless.. Licensed under Wikipedia.

1987년 봄 Johnny Hates Jazz란 특이한 이름1의 팝트리오가 Virgin 레코드사에서 싱글로 발매된 Shattered Dreams란 곡으로 팝계를 강타했다. 여름에 들어서 지금 소개하는 두 번째 싱글 I Don’t Want To Be A Hero가 출시되었고 영국에서 11위 미국에서 33위까지 오르는 좋은 성적을 거두었다. 이 곡은 경쾌하고 세련된 댄스리듬과 어울리지 않게(!) 반전(反戰)에 대한 직설적인 메시지를 담고 있어 국내에서 한때 금지곡으로 억류되기도 했었다.2

흔히 댄스싱글하면 풋내기 사랑이나 자극적인 삶만을 추구하는 가사를 담고 있는 것으로 간주되기 십상이나 이곡은 그러한 편견을 깨고 있다. 귓가를 흥겹게 자극하면서도 사회의 모순을 이야기하는 곡으로 Johnny Hates Jazz의 전성기 사운드가 잘 표현되어 있는 곡이다.

Johnny Hates Jazz – I Don’t Want To Be A Hero

뮤직비디오

Oh, send me off to war
With a gun in my hand
But I wont pull the trigger
Out destiny is here
neath the red, white and blue
So lead me to the slaughter

오~ 내손에 총을 쥐어주고 전쟁터로 내몰아 보세요.
그러나 난 방아쇠를 당기지 않을 거예요.
운명이 여기 빨강, 하양, 그리고 파랑(성조기에 대한 은유 : 역자주) 아래 있어요.
그래서 나를 학살로 몰아넣어요.

Now dont be afraid
Come and join the parade
For the ultimate in sacrifice
Its an old-fashioned story
Of hope and of glory
A ticket for taking life

이제 두려워하지 마세요.
이제 희생의 궁극을 위한 퍼레이드에 함께 해요.
희망과 영광을 위한 구식 이야기죠.
목숨을 앗아가는 티켓 한 장.

(chorus)
I, I dont want to be a hero
I dont want to die for you
I dont want to be a hero

나는 영웅이 되기 싫어요.
너를 위해 죽기 싫어요.
나는 영웅이 되기 싫어요.

Oh send me off to war
In a far away land
I never knew existed
Subject me to the truth
To the horror and pain
Until my mind is twisted

오~ 나를 존재하는지 알지도 못했던 머나먼 땅의 전쟁터로 보내 보세요.
내 마음이 비틀릴 때까지 공포와 고통, 진실에 복종시키세요.

And what if I fail
Will you put me in jail
For a murder I will not commit?
cos you dont understand
Till theres blood on your hands
That its time to forget and forgive

그리고 내가 실패하면 내가 저지르지 않은 살인을 이유로
나를 감옥에 처넣을 건가요?
당신이 당신 손에 피가 묻을 때까지 이해하지 못할 것이기에.
망각과 용서의 시간이에요.

(chorus)
And those who return
Come back only to learn
That theyre hated by those who they love
cos youre not satisfied
Till the thousand will die
And your anger is paint for blood

그리고 돌아와서 그들이 사랑했던 이들로부터
수천 명이 죽을 때까지 희생을 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미움을 사는 것을 알게 되죠.
그리고 분노는 피로 칠해지죠.

  1. 그들은 실제로도 Jazz를 매우 싫어했던 그들의 친구 Johnny에서 착상을 얻어 밴드명을 지었다.
  2. 내용이 하도 직설적이어서 당시의 돌대가리 검열위원들도 그 의미를 바로 파악할 수 있었으리라.

Rock School Vs School Of Rock

비슷한 제목의 이 두 영화는 전자가 실화에 기반을 둔 다큐멘터리라면 후자는 한바탕 웃자고 만든 코미디라는 사실을 빼놓고는 참 닮아 있다. 둘 다 십대 청소년들에게 락음악을 가르치는 선생(또는 가짜 선생)에 관한 이야기다. 먼저 Rock School 에 대해 이야기하자면 중심인물은 필라델피아에서 9살부터 17살까지의 아이들에게 락음악을 가르치는 Paul Green School of Rock Music 의 설립자 Paul Green 에 관한 이야기다. 전통적인 학습법을 무시한 그의 무정부주의적인, 또는 펑크적인 가르침은 거침이 없고 격식도 없다. F**K 이라는 단어를 입에 달고 다니는 이 거침없는 사내는 아이들을 쓰다듬고, 소리 지르고, 껴안아주는 부모이자 선생이자 친구의 역할을 자청한다. 마침내 실력을 갖추게 된 아이들은 Frank Zappa 의 팬들이 모여 꾸미는 Zappanale 에 출연하기 위해 독일로 향하고 공연을 성공리에 마친다. 음악을 통해 아이들에게 더 나은 삶을 찾아준 한 사나이에 관한 다큐멘터리다. 한편 School Of Rock에서 스승을 자처한 사나이는 좀 더 비열한 목적에서 아이들을 가르친다. 스테이지에서 오버하는데 있어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기타리스트 Dewey Finn(Jack Black)이 자신이 만든 밴드에서 쫓겨나고 친구의 이름을 빌어 대리교사로 출근한 곳은 그 지역 제일의 명문 초등학교. 학생들의 연주 실력을 몰래 훔쳐본 듀이는 아이들을 끌어 모아 밴드 콘테스트에 나가서 상금을 착복할 꿈을 꾸게 된다. 아이들에게는 학교의 비밀 프로젝트라고 속인 채 말이다. 결국 그의 이중생활은 폭로되지만 아이들은 콘테스트에 나가기 위해 학교를 탈출하게 된다. 결말은 뻔하지만 여기서 말하지는 않겠다. 스포일러 천국이 되기는 싫으니까. 여하튼 잭블랙의 능청스러운 코믹연기와 실제 밴드 생활을 통해 다듬어진 탄탄한 음악 실력이 잘 조화을 이루어 웃음과 즐거움을 안겨주는 수작 코미디이다. 두 영화 모두 락음악을 줄기에 놓고 진행되는 영화라 프랭크자파, 모던러버스 등 평소 잘 찾아듣지 않던 음악들이 선보여 청각적으로반갑고즐겁다.

Ficton Factory – (Feels Like) Heaven

영국 출신의 Fiction Factory는 Depeche Mode 스타일의 싱글 “(Feels Like) Heaven”로 가장 널리 알려졌던 밴드이다. 이들은 춤추기 알맞은 신디싸이저 리듬과 훵키한 베이스라인을 바탕으로 쏘울풀하고 멜랑코리한 팝송을 만들어내는데 재주가 있었다. 특히 Heaven 17과 같은 이들로부터 영향을 받았지만 Kevin Patterson의 깊고 그윽한 보컬은 선배의 곡을 표절하는 것을 넘어서서 Fiction Factory 자신들만의 개성을 부여해주는 결정적 요인 중의 하나였다. Fiction Factory는 1984년 데뷔앨범 Throw the Warped Wheel Out을 발매했다. 그들은 이기간 동안 Paul Young, O.M.D 와 함께 순회공연을 하기도 했다. “The Ghost of Love” 가 앨범의 첫 싱글이었다. 그러나 인상적인 성공은 이어진 싱글 “(Feels Like) Heaven”에서 실현되었다. 이 곡은 1984년초 영국 차트 10위 안에 진입하였고 또한 미국과 필리핀 등지의 뉴웨이브 래디오 방송국에서도 큰 인기를 얻었다. 많은 이들에 의해 러브송으로 인식되고 있으나 사실 이 노래는 가슴아픈 이별에 관한 노래이다. 하지만 그러한 성공은 그리 오래 가지 않았다. “Ghost Of Love”가 싱글로 재발매되었지만 영국 차트 64위에 오르는데 그치고 만다. 급기야 소속 레이블과 결별한 후 1985년 발표한 2집 Another Story은 레이블과 배급사의 영세성으로 말미암아 거의 주목을 받지 못했고 이들은 해체의 길을 걸어야 했다.

뮤직비디오

Family Plot

만일 당신에게 일면식도 없는 백만장자 친척이 유산을 물려주겠다며 당신을 찾아 나섰다면 어떤 기분일까? 또는 어떻게 대응할 터인가? 영화는 이렇게 시작된다. 엉터리 주술사가 백만장자의 속사정을 알고 상속자를 찾아주면 거금의 수수료를 주겠다는 제안을 받는다. 그 상속자를 찾아 나섰는데 그는 공교롭게도 ‘악의 화신’에 가까운 범죄자. 그런 사실을 모른 채 주술사와 그의 애인은 그를 찾아 나섰다가 곤욕을 치른다. 세상 바르게 살라는 메시지. 히치콕의 작품치고는 그 분위기가 충분히 음모스럽지 못한 탓인지 올무비의 평가는 그리 후하지 않은 편이다.

Jeremiah Johnson

Jeremiah Johnson(굳이 원음대로 읽자면 제레마이어존슨이지만 우리말 표기에 따르면 제레미아존슨 정도 되겠다)은 서부극이다. 하지만 일종의 수정주의 서부극이다. 종래의 명징한 선악구도의 남성적인 서부극이 아닌 보다 깊은 곳의 인간성에 주목하며, 인디언 등 토속인종에 대한 편견을 배제하고 있다는 점에서 그렇다.

전직군인 Jeremiah Johnson이 문명세계를 벗어나 산에 들어가 홀로 살기로 결정한 이후 벌어지는 여러 사건을 다룬 영화로 개봉된 해인 1972년의 최고흥행작이라고 한다. 주인공을 맡은 로버트레드포드의 인기에 힘입은 바도 있겠지만 감독 시드니폴락의 박력 있는 연출과 장대한 풍경 등이 시선을 사로잡는다.

이야기의 정점은 어찌어찌해서 맺어진 이상한(?) 가족(마치 ‘가족의 탄생’처럼)이 제레미아의 부주의로 인해 처참하게 무너지는 그 순간이다. 고독했던 산사나이의 가슴을 녹여줬던 인디언 아내와 양아들이 다른 인디언 부족에게 살해된 현장과 맞닥뜨린 제레미아의 황망한 얼굴을 클로즈업하는 장면은 이 영화의 백미다.

Love Actually에서 동생과 정분이 나버린 애인을 두고 홀로 휴양지를 찾은 남자가(브리짓존스의 그 남자) 혼잣말처럼 “alone again naturally”라고 읊조리는데(잘 알다시피 Gilbert O’sullivan 의 히트곡 제목이다) 오히려 그런 사치스런 홀로됨보다 산에 또다시 홀로 남겨진 제레미아의 홀로됨이 훨씬 처연해 보인다. 그리하여 산사나이에 어울리지 않은 친절함과 신중함을 지니고 있던 이 사나이는 드디어 맹수가 되고 만다.

고독을 선택했다가 고독에 고통 받는 한 서부 사나이의 서사기.

Napoleon Dynamite

Napoleon Dynamite 라는 어울리지 않는 이름의 꼴통에 관한 영화다. 딱히 줄거리를 요약하는 것은 별로 의미가 없고 하여튼 주변의 인물들 역시 한꼴통하는 인물들로 채워져 있다. 매혹샷을 판매하러 다니는 여학생, 머리가 뜨거워서 밀어버리는 라틴계 학생, 가슴커지는 기구를 팔러 다니는 엉클리코, 채팅이나 하면서 여자를 꾀려는 나폴레옹의 형 등. 시대는 불분명하다. 패션이나 헤어스타일, 그리고 일부 삽입된 음악으로 보면 80년대 인데 삼촌이 1982년으로 돌아가고 싶어 타임머쉰을 산다는 설정을 보면 그 이후인 것 같다. 결정적으로 나폴레옹이 학생들을 감동의 도가니로 몰아넣는 댄스씬에서 쓰인 음악은 자미로콰이여서 분명히 80년대는 아니다. 요컨대 영화가 의도하는 바는 이질감에서 비롯되는 냉소적인 웃음이다. 나폴레옹은 하도 바보 같아서 이런 우리의 비웃음에 개의치 않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