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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eart Of Glass는 어떻게 탄생하였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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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londie1977” by Private Stock Records – eBay ite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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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hoto front. Licensed under Public Domain via Wikimedia Commons.

1978년까지 Blondie는 컬트팬들에 둘러 쌓인 펑크밴드였을 뿐이다. 히트 앨범에 목마른 밴드의 레이블 Chrysalis는 Suzi Quatro와 Sweet과 같은 다운타운의 아티스트들의 음악을 녹음하여 성공한 창조적인 프로듀서 Michael Chapman을 영입하였다. 그 결과가 Blondie의 세 번째 앨범 “Parallel Lines”와 싱글 “Heart of Glass”였다. 1979년 초 발매된 이후 이 곡은 Blondie의 첫 빌보드 히트곡으로써 1979년 4월 차트 정상을 차지하였다. 이 곡은 신쓰팝과 일렉트로닉 댄쓰뮤직의 길을 닦았다.

Mike Chapman: 처음 Chris와 Debbie를 뉴욕에 있는 그래머시파크 호텔에서 만났을 때, 그들은 앨범에 담을 새 노래들을 들려줬어요. 음악은 대단했죠. 그러나 난 그 노래를 진정한 팝으로 만들고 싶었어요. 난 그들에게 다른 곡은 없는지 물었죠. 그들은 “음. 우리가 ‘그 디스코 곡’이라 부르는 노래가 있어요.”라고 말했습니다. 그 노래를 틀었는데 정말 근사했죠. 하지만 아직 100%에 다다르지는 않았어요.

Mr. Stein: 애초 그 노래의 Debbie의 두 번째 줄 가사는 “Soon turned out, he was a pain in the ass.”였어요. Mike는 이게 라디오 친화적이 아니라 생각했어요. 그래서 내가 한 구절을 생각해냈죠. “heart of glass”. 다들 좋아했어요. Debbie는 작업을 해서 “Soon turned out, had a heart of glass.”로 고쳤죠. 그게 바로 우리가 타이틀로 쓴 것이고요.

Mr. Chapman: Debbie에게 음악 비즈니스에서 누굴 제일 좋아하냐고 물었죠. 그녀는 “Donna Summer”를 좋아하고 특히 “I Feel Love”를 좋아한다고 말했어요. 전혀 예상 못했던 대답이었죠. 난 그녀와 Chris에게 말했어요. “이 노래를 Giorgio Moroder 느낌으로 가져가면 어떨까요?” Giorgio는 Donna의 명반들을 프로듀스 했었으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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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Will Survi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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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loria Gaynor (1976)” by Rob Mieremet / Anefo – Derived from Nationaal Archief. Licensed under CC BY-SA 3.0 via Wikimedia Commons.

1979년 3월 10일 Gloria Gaynor가 부른 “I Will Survive”가 빌보드 핫100 차트 1위에 올라 총 3주간 1위에 머물렀다. R&B 차트에는 5위까지 올랐다. Freddie Perren과 Dino Fekaris가 만든 이 곡은 뉴저지 출신의 이 가수의 경력 중에서 가장 큰 인기를 끌었던 곡이 되었다. Gloria Gaynor의 이전 히트곡은 Jackson 5의 클래식 “Never Can Say Goodbye”의 커버 버전(#9 Pop, #1 Club Play)과 The Four Tops의 커버 버전 “Reach Out, I’ll Be There”였다. 디스코가 인기를 끌던 시대적 흐름을 잘 읽은 Gloria는 그녀의 다섯 번째 앨범 “Love Tracks”를 위해 모타운의 프로듀서이자 작곡가였던 Freddie Perren, 그리고 Dino Fekaris와 함께 일하기로 한다. 앨범을 위해 이들이 만든 곡 중 하나가 바로 “I Will Survive”였다. Gloria는 이 노래를 몹시 좋아해서 이 곡을 녹음하는 것에 즉시 동의했다. 실은 이 녹음은 힘든 상황에서 진행되었다. Gloria는 앨범 작업 도중 어머니를 잃었고 등의 고통 때문에 척추 수술을 받아야 했다. 보컬을 녹음할 때에 그녀는 등 교정기의 도움을 받아야 했다. 당시 디스코의 프로듀싱 경향은 많은 편집을 거치곤 했다. 피치를 더 빠르게 올리는가 하면 오버더빙, 멀티보이스 등도 횡행했다. 하지만 이 곡은 백그라운드 싱어를 쓰지 않은 채 속도의 조절도 없이 Gloria의 보컬 하나만으로 곡을 만들어냈다. 때문에 이 노래는 다른 디스코 곡에 비해서 더 비어있고 투명한 사운드를 창조해냈다. 이 곡은 처음에는 1978년 발표된 “Substitute”의 B면 곡으로 출시되었다. “I Will Survive”가 분명히 히트할 것이라는 Gloria의 확신에도 불구하고 그의 레이블인 폴라이도 레코드사는 귀를 기울이지 않았다. 그는 마침내 이 곡의 레코드를 뉴욕의 유명한 디코스인 스튜디오54의 DJ Richie Kaczor에게 직접 가져갔다. Richie가 이 레코드를 틀기 시작하자 반응은 즉각 나타났다. 상황이 이쯤 되자 폴라이도는 그 곡을 A면으로 하는 싱글을 발매했다. 1978년 12월 16일 핫100 차트에 87위에 등장한 이 곡은 12주 후 정상에 등극한다. 급기야 역경에 굴하지 않고 떳떳하게 살아가겠다는 긍정적인 메시지 덕분에 이 곡은 여성이나 동성애자 그룹의 찬가가 되는 등 디스코 역사상 가장 유명한 곡 중 하나가 되었다. Gloria는 이 곡으로 1980년 그래미상 시상식에서 ‘베스트 디스코 레코딩’ 부문을 수상하였다. 롤링스톤은 이 곡은 “the 500 Greatest Songs of All Time”에서 492위에 등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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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on’t Bring Me Dow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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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ont bring me down ” by The cover art can be obtained from Jet Records.. Licensed under Wikipedia.

1979년 7월 20일 Electric Light Orchestra의 “Don’t Bring Me Down”이 발매됐다. 밴드의 리드 싱어이자 기타를 맡은 Jeff Lynne이 쓴 이 곡은 영국 출신의 이 락밴드의 최고의 히트곡이 되었다. Jeff Lynne은 앨범에서 시끄러운 곡이 너무 없어서 마지막 순간에 이 곡을 썼다고 증언했다. 이 곡의 드럼 트랙은 앨범의 다른 트랙 “On The Run”에서의 드럼 트랙을 일부 발췌하여 조금 더 느리게 반복한 트랙이다. 이 싱글의 홍보를 위한 광고에서, ELO는 이 노래를 지구 위를 맴돌다가 바로 며칠 전인 7월 11일 후주 서부에 추락하여 박살난 NASA의 스페이스 스테이션 Skylab에게 헌정한다. 밴드의 여덟 번째 스튜디오 앨범 “Discovery”의 두 번째 싱글로 발매된 이 곡은 1979년 9월 8일 빌보드 핫100 차트 4위까지 올랐고 영국의 싱글 차트에는 3위까지 올랐다. 이 성적은 밴드가 발표한 싱글 중에서 미국 차트에서는 최고의 성적, 영국 차트에서는 두 번째의 성적을 기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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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ar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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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umanCars” by May be found at the following website: http://www.beggars.com. Licensed under Fair use via Wikipedia.

1979년 영국의 아티스트 Gary Numan은 그의 앨범 The Pleasure Principle에서 “Cars”를 싱글로 내놓았다. 이 곡은 영국과 캐나다의 싱글 차트에서 정상을 차지했고 미국 싱글 차트에서는 9위까지 올랐다.[1. Numan이 비록 영국에서는 몇 개의 히트곡이 있었지만 미국에서는 이게 그의 유일한 탑40 곡이 되었다.] 이로써 이 곡은 시장에서나 뮤지션들 모두에게 신디싸이저를 이용한 뉴웨이브 음악이 상업적으로 성공할 수 있다는 인식을 갖게 된 계기가 된 곡이 되었다.

이 곡은 Numan이 싱글 네 개와 영국 차트에서 인기를 얻은 “Are ‘Friends’ Electric?”을 포함한 LP 두 개를 발표한 이전 밴드 Tubeway Army라는 이름을 버리고 처음 내놓은 곡이다. 음악적으로 이 곡은 이전의 곡들보다 더 밝아지고 보다 팝친화적이었다. Numan은 후에 이 곡을 만들 때 상업적 성공을 염두에 두었다고 술회했다. 그는 “그 때가 아마도 ‘이게 히트 싱글이 될 수 있을거야’라는 생각을 가지고 만든 첫 노래에요.”라고 말했다.

“Cars”의 제작에는 베이스와 드럼과 같은 리듬 섹션은 전통적인 악기를 사용됐다. 그리고 나머지 부분은 미니무그(Minimoog)와 폴리무그(Polymoog) 키보드 등의 아날로그 신디싸이저를 이용됐다. 간주 부분에는 탬보린이 쓰이기도 했다. Numan의 보컬은 대부분 무미건조하게 마치 로봇이 노래하는 듯한 톤으로 녹음되었다. Numan에 의하면 가사는 그가 직접 거리에서 겪었던 한 사건에서 영감을 얻은 것이라고 한다.

“한번은 런던에서 트래픽에 갇혀있었어요. 그런데 앞차의 사람들과 문제가 생겼죠. 그들은 나를 차에서 끌어내 때리려 했어요. 난 문을 잠그고 마침내는 인도 위로 차를 몰아 그들에게서 도망쳤죠. 그런 경우 일어날 수 있는 일이죠. 이는 현대에서 당신이 차안에서 얼마나 안전함을 느끼는 지를 설명하는 것이에요. 그 안에 있을 때 당신의 모든 멘탈이 달라집니다. 그건 당신만의 네 개의 바퀴가 달린 왕국과 같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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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ife During Wartim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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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ife During Wartime Talking Heads“. Via Wikipedia.

“Life During Wartime“은 미국의 뉴웨이브 밴드 Talking Heads의 곡이다. 이 곡은 1979년 발표된 그들의 세 번째 스튜디오 앨범 Fear of Music의 첫 싱글로 발매되어 빌보드 빌보드 핫100 차트 80위까지 올랐다. David Bowman이 쓴 Talking Heads에 관한 전기에 보면 David이 이 곡을 어떻게 쓰게 되었는가에 대해 나온다. 책에 따르면 David은 당시 애비뉴에이(Avenue A)[1. 뉴욕 맨해튼에 위치한 거리]에 있는 아파트에서 곡을 썼다고 한다. 그는 ”바더마인호프[2. 서독의 적군파(赤軍派)], Patty Hearst[2. 신문재벌 윌리엄 랜돌프 허스트의 손녀이자 상속자로 심바이어니즈 해방군이라는 좌익 조직에 납치되었다가 그들의 뜻에 동조해 조직에 가입하기도 했던 여인], 톰킨스 스퀘어[3. 뉴욕 맨해튼 알파벳시티 구역에 있는 공공공원]을 생각했어요. 이것은 알파벳 시티[4. 뉴욕 맨해튼 이스트빌리지 내에 있는 근린]에 살아가는 것에 관한 노래입니다.“라고 이야기했다. 노래의 화자는 좌익 조직의 조직원으로 추측되며, 그는 ”세 개의 패스포트와 두어 개의 비자를 가지고 있고 진짜 이름조자 모르는“ 이로 묘사되고 있다. 또한 그는 ”헤어스타일을 하도 많이 바꿔서 자신이 어떻게 생겼는지도 모르는“ 이다.[5. 이러한 도망자의 흔들리는 정체성은 시드니 루멧이 감독한 1988년작 Running on Empty에서 잘 묘사되고 있다.] 정말 전쟁 중이 아님에도 전쟁 중인 삶을 살아가고 있는 불행한 이다. 한편 가사 중에는 ”이것은 디스코가 아니다(This ain’t no disco)“라는 뉴웨이브 운동의 아이콘 비슷하게 간주되는 유명한 구절이 있다.[6. 때문에 이 구절을 제목으로 하는 뉴웨이브 앨범 커버로 구성된 책도 나왔다.] 후에 David은 The Best of Talking Heads의 라이너 노트에 이 가사 때문에 자신들이 ”反디스코 운동의 기수“로 여겨진 것이 너무 웃겼다고 전했다. 이 곡은 또한 1983년 만들어진 그들의 공연 필름 Stop Making Sense에서도 공연 버전으로 수록되었다. 공연 비디오에서는 David Byrne의 에어로빅댄스나 조깅을 연상시키는 독특한 안무가 인상적이다. 록앤롤 명예의 전당 측에서 ”록앤롤을 만든 500곡의 노래“에 포함시키기도 했던 이 위대한 노래의 기타 코드는 Am과 E가 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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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ing My Bel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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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INGBELL” by The cover art can be obtained from the record label.. Licensed under Wikipedia.

1979년 6월 19일 Anita Ward의 디스코 넘버 Ring My Bell이 빌보드 R&B 싱글 차트 1위에 올랐다. 빌보드 핫100 차트에는 같은 해 6월 30일 1위에 올라 2주간 머물렀다. Frederick Knight 이 쓰고 프로듀스한 이 곡은 전직 교사였던 멤피스 출신의 이 가수에게 최고의 히트곡이 되었다. 이 곡은 원래 13살의 싱어 Stacy Lattisaw에게 주려고 만든 곡이었다. 하지만 그녀가 Knight 의 회사 대신 아틀랜틱 레코드사와 계약을 체결하게 되자 Knight 은 가사를 고쳐 쓴 다음[1. 이 곡은 당초 아이가 전화로 이야기하는 내용이었으나 보다 성인 가수에 맞게 고쳐 쓰게 되었다.] 22살의 Anita Ward의 데뷔 앨범에 사용하도록 Ward에게 주었다. 이 트랙은 잭슨에 있는 Malaco 스튜디오에서 녹음되어 Knight의 Juana 레코드사를 통해 발매되었다. Ring My Bell은 미국에서만 약 2백5십만 장이 팔렸다. 이 곡은 그 뒤 DJ Jazzy Jeff & The Fresh Prince, Ann Lee, Tori Amos 등 수많은 아티스트들에 의해 리메이크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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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y Sharon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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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ySharonaCover” by May be found at the following website: http://rateyourmusic.com/release/single/the_knack/my_sharona___let_me_out/. Licensed under Wikipedia.

“My Sharona”은 파워팝 밴드 The Knack의 데뷔 싱글이다. 밴드의 기타리스트 Berton Averre와 리드싱어 Doug Fieger가 쓴 이 곡은 1979년 발표된 밴드의 정규 앨범 Get the Knack의 수록곡이다. 이 곡은 Fieger가 스물다섯에 만났던 열일곱 살의 Sharona Alperin을 염두에 두고 만든 곡으로, 그녀는 4년 동안 Fieger의 여자 친구였다. Averre는 처음에 Sharona의 이름을 직접 언급하는 것에 반대했다고 한다. 하지만 Fieger는 자신의 감정을 직접적으로 표현하고 싶다고 주장하며 그 이름을 쓸 것을 관철시켰다.

음악적으로 이 곡은 1960년대 락앤롤의 정서를 반영하고 있다. Berton Averre의 작품인 인상적인 기타 리프는 1960년대 락앤롤의 스타일이다. 리듬 파트는 Smokey Robinson and the Miracles 의 1965년 작 “Going to a Go-Go”에서 빌려왔다. 또한 메인 보컬에서의 “muh muh muh my Sharona” 라고 반복적으로 더듬는 스타일은 The Who의 1965년 작 “My Generation”에서의 Roger Daltrey의 스타일을 답습한 것이다.

이 곡은 빌보드 핫100 차트 정상에 6주간 머물렀고 그해 탑싱글 차트 1위에 올랐다. 미국음반산업협회(Recording Industry Association of America)는 이 곡에 대해 골드 디스크를 인증했다. 이로써 이 싱글은 1964년 발표된 The Beatles의 “I Want to Hold Your Hand” 이래 Capitol 레코드사가 내놓은 중 가장 빠르게 골드 인증을 받은 싱글이 되었다. 1991년 영화 Reality Bites 사운드트랙에 쓰이면서 이 곡은 다시 차트 91위까지 진입하기도 했다.

Sharona Alperin은 후에 부동산 중개인이 되어서 mysharona.com을 자신의 사업을 위해 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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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ove You Inside Ou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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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ee Gees 1977” by NBC Television – eBay ite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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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9년 6월 9일 Bee Gees의 “Love You Inside Out”이 빌보드 핫100 차트 1위에 올라 1주간 머물렀다. Barry, Robin, 그리고 Maurice Gibb 형제가 만든 이 곡은 이 가족 그룹의 아홉 번째이자 마지막 차트 1위곡이 되었다. 형제의 열다섯 번째 앨범 “Spirits Having Flown”을 만드는 도중에 탄생한 이 곡은 1979년 앨범의 세 번째 싱글로 발매되었다. 1979년 4월 21일 핫100차트에 37위로 데뷔한 이 곡은 7주 후 정상에 올랐다. 이 곡은 당시 가장 인기를 얻고 있던 Donna Summer의 “Hot Stuff”의 1위 행진을 1주간 멈추게 했다. 이 곡은 그룹이 내놓은 곡이 여섯 번 연속으로 차트 정상에 오른 곡으로 이 기록은 The Beatles의 기록과 동급의 기록이 되었다. 특히 그룹은 전 앨범에서 연속으로 세 곡이 정상에 올랐고 “Spirits Having Flown”에서 연속으로 다시 세 곡이 정상에 올랐는데 이 기록은 Bee Gees가 유일하다. 하지만 역설적이게도 이 곡이 그룹의 마지막 미국 차트 1위곡이 되었다. 디스코의 퇴조와 더불어 Bee Gees의 스타일이 방송국에서 환영 받지 못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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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e Are Famil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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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ister sledge” by SuprememarketingOwn work. Licensed under CC BY-SA 3.0 via Wikimedia Commons.

1979년 6월 9일 Sister Sledge의 “We Are Family”가 빌보드 R&B 싱글 차트 1위에 올라 1주간 머물렀다. 같은 해 6월 16일에는 핫100 차트 2위에 오른다. Bernard Edwards 와 Nile Rodgers가 쓰고 프로듀스한 이 곡은 그룹의 세 번째 앨범에서 연속적으로 두 번째로 R&B 차트 정상을 차지한 곡이다. Bernard와 Nile은 막 데뷔앨범을 발표하여 “Dance, Dance, Dance (Yowsah, Yowsah, Yowsah)”와 “Everybody Dance” 등을 히트시킨 Chic의 멤버인데, 아틀란틱 레코드사로부터 그들이 함께 일하고 싶은 뮤지션과 작업을 할 수 있는 기회를 얻게 됐다. 그들은 The Rolling Stones나 Bette Midler와 같은 슈퍼스타가 아닌 가장 성적이 저조한 이들을 고르고자 했다. 아틀란틱은 1973년부터 레이블에 머물러 있던 필라델피아 출신의 4인조 가족 그룹 Sister Sledge를 추천했다. 이를 계기로 그룹은 그들의 최고의 히트곡을 가질 기회를 얻었다. “We Are Family”는 프에토리코 출신 가수 Martha Veléz의 “Do What You Wanna Do”라는 곡에서 영감을 받은 곡이다. Nile Rodgers에 따르면 가사는 아틀란틱의 임원이 Sister Sledge에 대해 말한 내용에 기초하여 만들어졌다고 한다. 하지만 이 가사는 후에 다양한 콘텍스트의 연대 정신을 상징하는데 쓰였다. 녹음은 뉴욕의 파워스테이션에서 진행됐다. 당시 16세였던 리드 싱어 Kathy Sledge는 Bernard가 헤드폰으로 가사를 읽어주는 와중에 단 한번 만에 녹음을 끝냈다. 이 노래가 발표된 뒤 이 곡은 1979년 월드시리즈 우승팀이었던 피츠버그 피레이츠의 주제가가 쓰이는가 하면 Birdcage, The Full Monty, Mission Impossible 3과 같은 영화의 삽입곡으로 쓰였다. Nile Rodgers는 2001년 각종교육 프로그램을 진행하는 비영리 법인 “We Are Family Foundation”을 창설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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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od Save The Quee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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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ex Pistols – God Save the Queen” by Virgin Records. Licensed under Wikipedia.

1977년 5월 27일 Johnny Rotten이 이끄는 펑크밴드 The Sex Pistols의 “God Save The Queen”이 버진 레코드사를 통해 발매됐다. 그들의 유일한 정규앨범 Never Mind the Bollocks, Here’s the Sex Pistols 의 두 번째 싱글로 발매된 이 곡은 발표되자마자 논쟁을 촉발했고 BBC와 지방 라디오 방송국을 관장하는 IBA는 이 곡을 방송금지곡으로 지정했다. 전략적으로 퀸엘리자베스 2세 대관식의 25주년에 맞춰 발표한 이 영국의 국가와 같은 제목을 붙인 곡의 의도는 명백했기 때문이다. 이 곡의 가사 첫머리에는 여왕 체제를 “파시스트 정권”이라 규정하는가 하면 두 번째 문단에서는 “영국의 꿈에는 미래가 없다”고 노래하는 등 무정부주의적인 내용으로 가득 차있다. 방송의 노골적인 차별에도 불구하고 “God Save The Queen”은 영국의 NME 차트에는 1위, BBC가 사용하는 영국 공식 싱글 차트에는 2위까지 올랐다. 혹자는 BBC가 이 곡이 1위에 오르지 못하도록 조작했다는 설을 제기하기도 한다. 그룹이 버진과 계약하기 직전 소속사였던 A&M에서 발매한 오직 9장만 존재한다고 알려진 싱글 앨범은 현재 고가에 거래되고 있는 희귀 아이템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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