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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elovek S Kinoapparatom(카메라를 든 사나이, The Man With a Movie Camera)

Man with a movie camera 1929 2.png
By Dziga Vertov – http://anthologyfilmarchives.org/collections/reference-library/stills/683, Public Domain, Link

이거 참 괴물같은 영화다.

훨씬 후대에 만들어진 Koyaanisqatsi 를 연상시키는 작품이긴 한데 오히려 그보다 훨씬 혁신적이다. 촬영팀이 찍은 20년대 소비에트의 이런 저런 모습들을 모자이크식으로 엮어놓았는데 이를 통해 영화, 다시 말해 활동사진에서 느낄 수 있는 원초적인 즐거움, 즉 사진이 움직이는 것을 보는 데서 오는 (뤼미에르가 주고자 했던) 쾌감을 느낄 수 있다. 또한 이러한 화면의 연결이 어떻게 이른바 영화에서 볼 수 있는 은유, 비유, 치환, 상징 등 모든 영화문법의 알레고리로 옮겨가는지에 대한 단초도 제공하고 있어 즐거움이 더하다.

여전히 극적 구성을 띠고 있는 것은 아니지만 간간히 일종의 에피소드라 할만한 장면들이 눈에 들어오는데 그 중에서 필름을 편집하는 한 여인의 모습은 영화는 한편으로 ‘편집의 예술’임을 느끼게 하는 장면이다. 또한 영사기가 마치 로봇이라도 되는 양 움직이는 장면이 나오는데 이는 나중에 클레이애니메이션에서 쓰이는 방식을 통해 제작된 장면으로 유머러스하면서도 신선한 충격을 안겨주고 있다.

음악 또한 날도깨비 같다. 그 당시의 헐리웃 영화에서 들을 수 있던 유의 음악이 아니다. 훗날 존케이지나 필립글래스, 그리고 반젤리스 등에서 들을 수 있던 혁신적인 전자음악을 연상시키는 배경음악은 너무나 미래주의적이면서도 어색하지 않아 – 프로그레시브라는 레벨을 달고 있는 음악 중에 오늘날 들으면 촌스러운 음악들도 많다 – 귀가 딱 벌어질 정도다. 특히 첫 트랙은 귀에 쏙 들어올 정도로 마음에 든다. 음악은 영상과 완전히 매치가 되어 살아있는 유기체마냥 꿈틀거린다.

한마디로 이질적인 경외감을 선사하는 작품이다. 하늘에서 그냥 뚝 떨어진 것 같다.

Silent Movie

폭음 때문에 경력을 망쳐버린 영화감독 Mel Funn(Mel Brooks)은 재기하기 위해 빅픽쳐스의 사장을 찾아간다. 그가 구상하고 있는 신작은 바로 ‘무성영화’. 어이없어하는 사장에게 흥행을 위해 빅스타를 섭외하겠다고 큰소리친다. 그리고는 어리숙한 동생들 Eggs 와 Bell 을 데리고 스타들에게 다짜고짜 쳐들어간다. 한편 빅픽쳐스를 합병하고자 노리고 있는 거대재벌 Engulf & Devour 는 이를 저지하기 위해 온갖 비겁한 수를 다 부린다. 그래도 그 와중에 Mel Funn 은 걸출한 스타들을 영입하고 우여곡절 끝에 결국 영화는 성공을 거둔다. Marcel Marceau, Paul Newman, Burt Reynolds, Liza Minnelli, Anne Bancroft, James Caan 등 당대의 스타들이 Mel Funn 의 영입대상으로 실명 등장한다. 특히 Marcel Marceau 는 판토마임의 대가답게 아름다울 정도의 멋진 마임을 선보이고, Anne Bancroft 는 그 우아한 외모에 어울리지 않게 이경규식의 눈깔 돌리기 묘기를 선보인다. 영화는 극 속에서처럼 실제로 무성영화이다.

Laura

헐리웃 초기 스릴러의 걸작으로 꼽히는 작품이다. 로라라는 한 여인이 살해된다. 이를 조사하러온 뉴욕 경찰 마크는 수사 과정에서 그녀의 아파트에 있는 그녀의 초상을 보고 점차 그녀의 매력에 빠져든다. 살해당한 여인과 사랑에 빠진 것이다. 그런데 그녀의 텅 빈 아파트에 찾아와 잠이 든 마크의 눈앞에 죽었다던 로라가 나타난다. 이후 사건을 걷잡을 수 없는 소용돌이로 빠져든다.  경찰이 고인과 사랑에 빠져든다는 설정이 매우 독특하다. 언젠가 읽은 스릴러 소설에서도 – 레이몬드챈들러의 소설쯤으로 기억되는데 – 이와 비슷한 설정이 있긴 했다. 거기서는 그 여인이 살아 돌아오지는 않고 결국 경찰은 공무집행으로써 보다는 사적인 복수심에 불타 사건을 파헤친다는 내용이었다.  이렇게 느와르적 성격을 지닌 스릴러는 흔히 권선징악의 구도보다는 혼란스러운 인간관계, 뚜렷치 않은 선과 악의 경계를 넘다들면서 관객들을 공범으로 몰아넣는 경우가 많은데 이 작품도 약간 그런 성향이 있다. 살아 돌아온 로라역시 자작극이 아니냐는 의심을 극 내내 받게 되는데 극 진행은 관객들을 아름다운 로라가 범죄를 저지르지 않았기를, 심지어 면죄부를 줘도 되는게 아니냐는 심정적 공감으로 갈등하게 만든다.

Charade

휴가지에서 남편을 더 이상 사랑하지 않는다며 이혼하겠다고 호언장담하고는 집으로 돌아왔더니 집은 텅텅 비어있고 남편은 차가운 시체가 되어 있다면? 바로 그 꼴을 아름다운 여인 레지램버트(오드리햅펀)가 당하게 된다. 황당해 하는 그녀 앞에 매력적인 이혼남 피터죠슈아(캐리그랜트)가 나타났고 그녀는 그에게 연정을 느낀다. 한편 CIA의 정보원이라는 버튜모어는 남편이 CIA의 돈을 가져갔다며 그 돈을 찾아올 것을 주문하고 남편의 옛 전우였다는 세 남자 역시 레지램버트를 같은 이유로 협박한다.  그 분위기가 전체적으로 히치콕의 그것을 닮아 있다. 더구나 극 중반쯤 되면 그 돈이 어디 있는지 범인이 누구인지 대충 짐작될 정도로 반전이 그리 훌륭하다고는 할 수 없다. 하지만 나름대로 스타 시스템을 이용하여 관객이 보기 편하도록 성의껏 만든 오마쥬 역시 그 자체로도 의미가 있지 않을까 싶다. 특히 서늘한 아름다움의 소유자 오드리햅펀이 등장하니 말이다. 지방시의 심플한 파스텔톤의 의상들이 그녀의 전성기 미모를 받쳐주고 있다. 음악은 헨리맨시니가 맡았으니 오드리햅펀의 바로 직전 작품인 ‘티파니에서 아침을’의 스릴러 버전이라 해도 어색하지 않을 것 같다.

The Lady Vanishes

이 영화는 제목이 잘 지어진 사례로 뽑힐 만하다. ‘숙녀가 사라지다’라는 신문의 사건사고 헤드라인과 같은 제목은 극 초반부터 도대체 등장인물 중 어느 여인이 실종될 것인가 하는 궁금증을 자아내게 한다. 제목 하나로 극 초반의 서스펜스를 유지하는데 성공한 것이다. 생각해보면 히치콕의 영화는 애매하거나 상징적이기 보다는 ‘밧줄’, ‘새’, ‘이창’, ‘기차의 이방인’ 등 직선적이고 영화의 핵심이 되는 제목을 선호한다.

각설하고 기차 안에서의 실종사건의 미스터리와 로맨틱코미디가 적절히 가미된 이 코믹스릴러는 히치콕의 영국 체류기간의 말미를 장식한 작품 중 하나로 헐리웃의 시선을 끌 정도로 상업적 성공을 거두었다고 한다.

아름다운 예비신부 Iris Henderson (Margaret Lockwood)은 약혼자를 만나기 위해 기차에 올라탄다. 이 과정에서 친절한 중년의 여성 Miss Froy (Dame May Whitty)를 만나는데 잠깐 잠이 든 사이 Miss Froy 가 사라지고 없었다. Iris 는 그녀를 찾아 헤매지만 기차 안의 다른 사람들은 그녀를 본적조차 없다고 부인한다. 귀신이 곡할 노릇인데 우연히 호텔에서 다투었던 젊은 음악가 Gilbert (Michael Redgrave)가 그녀를 돕고 나선다.

중심이 되는 미스터리나 스크루볼코미디와 함께 히치콕 영화에서 흔히 볼 수 없는 총격장면도 볼거리다. 자신의 일이 아니면 끼어들길 꺼리는 영국인의 무뚝뚝함과 이기심이 신랄하게 비난받는 설정도 흥미롭다.

Network

거장 시드니루멧의 강력한 힘과 후광이 느껴지는 작품이다.

무엇 하나 쉽지 않은 테마들이 그야말로 유기적으로 팽팽하게 연결되어 저마다 빛을 발하고 있다. TV가 현대 매스미디어에서 차지하는 중심적 역할, 세계를 떠받치고 있는 시스템의 중심 다국적기업의 존재감, 서로 다른 방향으로 바라보고 만난 남녀의 이유 있는 불륜, 청춘을 바친 직장을 떠나는 직장인의 자아상실, 반문화의 상업화를 통한 자본주의의 놀라운 생존력, 시청률이라는 정체불명의 숫자놀음을 감싸고 벌어지는 비정한 인간관계 등 따로 떼놓아도 장편영화 한편이 너끈히 나올 소재들이 이 영화 한편에 경이롭게 담겨있다. 그러면서도 산만함이 없이 떡하니 중심이 분명하다. 모든 배우들은 자신이 맡은 역할에 분명한 색깔을 부여하고 있다. 특히 의욕 넘치는 젊은 중역 다이애나 역의 패이더너웨이와 노련한 보도부장 맥스 역의 윌리엄홀덴의 연기는 동선 자체도 훌륭한 연기다 싶을 정도로 치밀하고 섬세하다.

UBS 의 인기 앵커였던 하워드빌은 시청률이 떨어지자 하루아침에 직장에서 쫓겨날 판이다. 오랜 직장동료이자 같은 방송국의 보도부장 맥스슈마허는 술김에 방송에서 자살한다고 말하면 시청률이 올라갈 것이라고 농을 건넨다. 다음날 뉴스에서 하워드는 정말 방송에서 자살하겠다고 선언해버린다. 방송국이 발칵 뒤집힌 가운데 센세이셔널리즘을 추구하는 다이애나크리스틴슨은 UBS를 합병한 CCA의 점령군 프랭크해킷을 설득해 하워드의 뉴스를 버라이어티쇼로 전환시켜버린다. 시청자에게 일종의 대리만족을 주는 효과덕분에 하워드빌쇼는 엄청난 인기를 얻게 된다. 저널리즘을 훼손하였다고 생각한 맥스는 회사를 때려치우고 다이애나는 더 힘을 얻어 극좌 테러리스트의 테러 장면을 시리즈로까지 제작한다. 그 와중에 둘은 연인사이가 된다.

이제 TV는 더 이상 솔직해질 수 없을 정도로 자신의 치부마저 상업화시키는 ‘반문화의 상업화’의 정점에 오르게 된다. 하워드빌은 방송중에 CCA가 아랍계 자본에 먹힐 것이라며 애국적 호소를 하게 되자 회사중역들은 그의 무한질주에 분노를 느낀다. CCA의 최고경영자 젠슨은 그를 불러 민족과 민주주의는 실종된 지 오래며 그 자리를 다국적기업이 채우고 있음을 일갈한다. 다국적기업이라는 새로운 신 내림을 받은 하워드는 점점 더 자기 폐쇄적으로 침몰해가고 젠슨을 제외한 나머지 중역들은 그의 존재에 심각한 위기를 느낀다. 완벽한 시나리오, 완벽한 배역, 완벽한 완급조절 등 Dog Day Afternoon 등과 함께 시드니루멧의 전성기를 대표하는 걸작이다.

Thief of Bagdad

초기 헐리웃의 자본력과 기술력을 느끼게 해주는 환타지 대작. 아라비안나잇이 가지고 있는 여러 설정, 즉 착한 왕자, 사악한 마법사, 어여쁜 공주, 호리병 속의 거인, 나는 양탄자 등 이 당시의 첨단기술 및 자본과 결합되어 비슷한 유의 영화의 전형을 탄생시켰다.

The Evil Dea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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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vil dead ver1” by Movie Goods. Licensed under Wikipedia.

스파이더맨 시리즈로 거물감독이 되어버린 샘레이미의 1983년 데뷔작. 개연성 없고 식상한 시나리오이지만 그 식상한 소재를 풀어내는 이야기 솜씨가 뛰어난 작품. 재기발랄한 카메라웍, 장꼭또의 영화에서 따왔음직한 특수효과를 비롯한 여러 뛰어난 이미지의 결합, 특히 피로 물들어가는 영사기 화면과 전구 장면 등은 감독의 가능성을 보여주는 것들이다. 그러나 엑소시스트를 흉내낸 그 어설픈 좀비들은 어쩔 수 없는 팝콘무비의 한계이리라. 여하튼 나름 상업적 성공도 거두어서 살아남은 주인공 브루스캠벨을 활용하여 3편까지 시리즈를 이어갔다.

설국열차(코믹스)

“오랜 냉전의 끝에 지구가 얼어붙는다. 어리석은 인류가 기후 무기를 이용해 지구를 영하 85도의 얼음 행성으로 만들어버린 것이다. 살아남는 방법은 단 한 가지. 영원히 지구 위를 돌 수 있도록 만들어진 1001량의 초호화판 설국 열차에 탑승하는 것이다. 황금칸으로부터 꼬리칸까지 모든 객차는 계급에 따라 나누어져 있으며, 채소와 육류를 기를 수 있는 자급자족 차량까지 구비되어 있다. 설국열차는 지구의 축소판이다. 모든 것은 권력층의 독재에 의해 관리되며, 꼬리칸의 일반인들은 더러운 환경에서 고통받으며 죽어가고, 황금칸은 자포자기의 퇴폐와 향락에 휩싸여 타락해간다. 장 마르크 로셰트의 유려한 그림체를 오래도록 음미할 수 있는 <설국열차>는 모두 세편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한국판 1권은 <설국열차>, 한국판 2권은 <설국열차: 측량사>와 <설국열차: 횡단>을 모두 담고 있다.”

대략적인 책 소개이다.

열차를 공간적 배경으로 삼고 있는 예술작품이 의외로 꽤 된다. 열차탈취를 소재로 한 20년대 블록버스터 영화인 버스터키튼 주연의 ‘The General’, 아서힐 감독의 ‘Silver Streak’, 웨스앤더슨 감독의 ‘The Darjeeling Limited(2007)’,  고전이 된 애니메이션 ‘은하철도 999’, 그리고 휴고프라트의 걸작만화 코르트말테제 시리즈의 ‘시베리아 횡단열차’에 이르기까지……

열차는 다양한 상징으로 활용된다. 액션영화의 긴장감을 고조시키는 공간에서부터, 고향으로 떠나 타지로 가는 인간의 고독감과 두려움의 상징, 흘러가는 삶에 대한 은유, 그리고 남근의 형태를 가진데서 착안된 권력상징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은유와 상징으로 활용된다.

이러한 다양한 활용 용례에서 공통적으로 끄집어 낼 수 있는 공통점이 있다. 바로 열차는 ‘달리고 있다는 것’ 이다. 달리지 않는 열차는 흥미가 없다. 그저 좁고 답답한 기계일 뿐이다. 달리는 기차는 그 속도감과 한정된 공간이 주는 긴장감으로 인해 인간의 희로애락의 감정이 극대화되는 적절한 장치이기 때문에 예술가들로부터 사랑받는 공간이 된 것이다.

‘설국열차’에서의 열차는 제 스스로 달린다. 누구의 도움도 없이 기계 스스로 무한궤도를 질주한다. 멸망한 지구를 돌고 있는 이 열차에 몸을 의지하고 있는 인간들. 어찌 보면 더 이상의 희망도 없는데 꼬리 칸의 사람들뿐 아니라 황금 칸의 사람들까지도 무슨 이유로 살고 있나 싶기도 하다.

그런데 사실은 이 지구 역시 차갑고 생명체 없는 우주에서 무한궤도로 돌고 있는 또 하나의 설국열차에 불과할 수도 있다는 사실을 인식한다면 우리의 삶도 그들의 삶만큼이나 부질없고 희망 없는 것 일수도 있다. 어쩌면 – 상당히 믿을 만 할 정도로 – 작가가 의도한 설국열차는 바로 우리가 살고 있는 지구 그 자체일 것이다.

‘설국열차’에서는 계급간의 갈등을 꼬리 칸을 떼어내 버림으로써 해결한다. 상당히 편리한 해결방식이다. 현실의 지배계급도 할 수만 있다면 그렇게라도 하고 싶을 것이라고 생각해볼 수 있다. 다만 현실은 더욱 복잡하기 때문에 그렇게 하지 않는다. 현실에서의 피지배계급은 작품에서처럼 열차 꼬리에 매달려 죽을 날만 기다리는 기생계급이 아니라 지배계급을 위해 노동하는 생산자이기 때문이다. 현실의 설국열차는 꼬리 칸이 없으면 살아갈 수 없는 열차이다.

하지만 이런 단순화나 무리한 은유가 원작의 품격을 해칠 만큼의 단점은 아니다. 모든 예술작품에서의 추상화와 단순화, 그리고 일반화는 어쩔 수 없는 과정이기 때문이다. 지나친 단순화로 인한 단점은 특유의 장치설정에서 비롯되는 극적 긴장감으로 무난히 상쇄된다.

아무튼 특유의 유럽적 감성으로 무장한 이 독특한 작품에 대한민국의 봉준호 감독이 눈독을 들이고서는 영화화하려 하고 있고 2010년 쯤이면 그 결과물을 볼 수 있다니 자못 기대가 된다.

Amazon Women On The Moon

사실 이 작품은 마치 TV 코미디물 ‘Saturday Night Live’ 처럼 서로 크게 관련이 없는 일련의 단편희극으로 이루어져 있어 엄밀한 의미에서 통일된 주제의 장편영화로 볼 수 있는 것인지에 대해 의문이다. 결국 이 작품은 Joe Dante, Carl Gottlieb, Peter Horton, John Landis, Robert Weiss 등 여러 감독들이 Carrie Fisher, Steve Guttenberg, B.B. King, Arsenio Hall, Michelle Pfeiffer, 기타 많은 배우들을 긁어모아 한번 웃어보자고 만든 작품이다. 각 단막극의 소재는 전산화된 정보를 바탕으로 한 연애풍속도, 신생아를 잃어버린 의사의 해프닝, TV 속에 갇혀버린 노인 등 각양각색인데 굳이 줄기 단막극이 있다면 50년대 컬트 SF ‘Cat Women Of The Moon’ 을 비꼰 ‘Amazon Woman On The Moon'(바로 이 영화의 제목)이다. 머리비우고 한번 킥킥대고 싶은 사람들에게 추천할만한 영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