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엊저녁에 넷플릭스에서 감상하다가 말다가 했던 다큐멘터리를 처음부터 끝까지 다시 봤다. 바로『팝 역사상 가장 위대한 밤(원제 : The Greatest Night in Pop)』이라는 제목의 2024년 다큐멘터리다. 대체 어떤 밤이 팝 역사상 가장 위대한 밤일까? 팝 평론가나 팝 애호가에 따라 다양한 주장이 있을 수 있겠지만, 이 다큐멘터리가 가리키고 있는 밤은 1985년 1월 28일이다.
그렇다면 그날 밤 무슨 일이 있었기에 그 밤이 팝 역사상 가장 위대한 밤일까? 수많은 일이 있었겠지만 일단 팝 역사에서 바라보자면 그날은 팝 음악 산업계의 중요한 행사 중 하나인 『제12회 아메리칸뮤직어워즈(American Music Awards)』가 로스앤젤레스에 있는 슈라인 오디토리엄(Shrine Auditorium)에서 열린 날이란 것이 첫 번째 단서다. 유력한 단서다.
그런데 ‘아메리칸뮤직어워즈 중요한 행사인 것은 알겠는데 1985년에 열린 그 행사가 그렇게나 중요해서 “팝 역사상 가장 위대한 밤”인 것인가?’하는 의문이 생긴다. 정답은 ‘아메리칸뮤직어워즈 말고 그다음에 있었던 이벤트’다. 그것은 바로 A&M 스튜디오에 내로라하는 아티스트들이 함께 모여 We Are The World라는 곡을 녹음한 바로 그 밤을 말하는 것이다.
We Are The World는 80년대 팬이라면 이미 익숙한 곡이다. 이 곡은 이미 1년 전에 붐타운래츠의 밥 겔도프가 아프리카 인민의 굶주림을 보도한 BBC 프로그램에서 감화받아 팝 뮤지션을 모아 녹음한 Do They Know It’s Christmas?에1 영감받은 해리 벨라폰테(Harry Belafonte)가 팝계의 거물 켄 크라켄(Ken Kraken)에게 제안한 프로젝트에서 만들어진 곡이었다.
위대한 흑인 음악 뮤지션인 동시에 시민운동가였던 해리 벨라폰테는 아프리카에서의 비극을 아프리카 계열의 뮤지션이 많은 미국의 팝 음악계가 외면한다는 사실을 좌시할 수 없었고 아프리카를 돕기 위한 프로젝트를 기획한 것이었다. 이 결과 켄의 인맥이 작용하면서 라이오넬 리치, 마이클 잭슨, 퀸시 존스와 같은 팝계의 거물이 합류하여 프로젝트에 살을 붙여 나갔다.
그리고 기획자들이 다큐멘터리에서 묘사하는 수많은 난관을 거치면서 마침내 “위대한 밤” 동안에 탄생한 곡이 바로 We Are The World다. 특별히 그 밤이 아메리칸뮤직어워즈가 열린 밤이었어야 한다는 사실은, 그나마 그날이 넓은 땅덩어리에서 활동하는 미국의 내로라 하는 뮤지션들이 한데 모일 수 있는 최적의 날이었기 때문이었다는 사실은 이미 짐작할 수 있는 일이다.
그날 밤 어떠한 우여곡절 끝에 곡의 녹음을 완성할 수 있었는지는 그 다큐멘터리를 보면 잘 알 수 있다. 화면으로만 봐도 가슴이 벅찰 수많은 에고의 뮤지션들이 그 좁은 스튜디오에 모여 노래를 완성하는 과정이 필름에 고스란히 담겨 있다. 개인적으로 그날에 관한 인터뷰 중에도 쉴라 이(Sheila E.)2의 인터뷰가 마음 아팠는데3 아무튼 나머지 가수들의 고생도 나름 다 의미가 있다.4
해리 벨라폰테가 위대한 인물이고 – 심지어 맑스주의자라는 설도 강하고 – 이 기획이 결코 만만한 기획이 아니었음은 분명함에도 그 한계는 분명하다고 생각하는 편이다. 밴드에이드 자체도 그렇지만 이 기획 역시 이미 잘 알려져 있다시피 제일세계의 셀럽들이 제삼세계 인민의 곤궁에 대한 일시적인 시혜적 시선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명확하게 견지하고 있었던 것이 사실이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1985년 1월 28일이 “가장 위대한 밤” 중 ‘하루’일 수 있다는 사실에는 공감한다. 이를테면 아프리카를 돕겠다는 명분으로 영국의 백인 뮤지션 위주로 시작한 프로젝트가 미국의 흑인 뮤지션 위주의 프로젝트도 진화했다는 의의도 있기 때문이다. 앞서 말한 그런 취지로 볼 때 그게 그것 아니냐 할 수도 있지만, 또 다른 유익한 넷플릭스 다큐멘터리를 상기해 볼 때 그 의미는 결코 만만치 않다.
그 다큐멘터리는 『선데이 베스트 : 에드 설리번 이야기(원제 : Sunday Best)』라는 다큐다. 나 역시도 에드 설리번을 그냥 팝 역사상 초창기의 가장 유명한 버라이어티쇼의 사회자 정도로 생각했지만, 다큐를 본 다음에 알게 된 실상은 엄청났다. 그는 단순한 사회자를 넘어서 팝 음악, 특히 흑인 음악을 주류에 안착시키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한 아일랜드+유태인 계 “백인” 진보 지식인이었던 것이다.
이 다큐를 특별히 언급하지 않을 수 없는 이유는 어떤 면에서는 이 다큐가 『팝 역사상 가장 위대한 밤』의 프리퀄에 가깝기 때문이다. 이 밤에 활약한 많은 아티스트들은 에드 설리번의 도움을 받아 그의 쇼에서 데뷔하고 활약했던 이들이다. 대표적으로 문제적 인물 해리 벨라폰테, 이후 스모키 로빈슨, 마이클 잭슨, 스티비 원더, 다이애나 로스 등이 애드의 도움을 받아 전국구가 되었다.
에드는 처음에 신문기자로 경력을 시작했다. 그는 스포츠 칼럼을 쓰면서 그 당시의 스포츠계에서의 인종차별주의에 대해 비판적인 칼럼을 쓴다. 그러던 중 우연한 기회에 연예계 행사의 사회를 보던 그는 새로운 매체인 TV쇼에서의 호스트로 경력을 시작하게 된다. 이 쇼가 바로 그의 이름을 단 애드 설리번 쇼였고, 이 쇼는 앞서 언급했듯 유색 인종에게 전국구 데뷔의 기회를 마련해주면서 미국 팝 음악계에 새로운 이정표를 제시한 쇼가 된다.
요컨대, 서구권의 팝 음악계에서 – 또는 다른 예체능계도 그렇지만 – 어쩌면 어쩔 도리 없이 선각자적인 백인의 도움을 받아 유색 인종이 업계에 진출하는 시기가 있었다.5 그중 키맨 한명이 바로 에드 설리번이었고 이 당시 기반을 다진 이들이 1980년대 마침내 그들 스스로의 기획으로 마음의 고향인 아프리카 등 다른 이들에게 도움을 주기 위해 행동에 나선 것이 바로 We Are The World였던 것이다.
당신은 그날이 팝 역사상 가장 위대한 밤이었다는 주장에 동의하는가?
-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은 이 기획에 참여한 대다수의 뮤지션들이 백인 뮤지션이었다는 점인데, 특별히 기획자들이 이러한 인종적 비율을 의식했다기보다는 그냥 영국 팝 음악계가 그렇게 이미 편성되었던 측면은 분명하다. ↩
- 쉴라 이는 아메리칸뮤직어워즈에서 생애 최고의 라이브 퍼포먼스를 선보인다 ↩
- 즉, 요지는 이 프로젝트의 기획자들은 사실 쉴라 이가 아닌 프린스를 무대에 초청하고 싶은 마음에 당시 그의 연인이었던 쉴라 이를 떡밥으로 부른 것이었다.(는 것이 쉴라 이의 생각이고 이는 거의 정설일 것이다) 그런데 “Check Your Ego At The Door”라고 퀸시 존스가 스튜디오에 써 붙여 놓을 만큼 강한 에고를 가진 이들이 한 번에 모인 그날 밤에서도 특히 프린스는 너무 에고가 강한 이였고, 라이오넬 리치에 따르면 그는 “별도의 녹음실에서 별도의 기타 솔로”를 요구했다고 한다. 당연히 이 요구는 받아들여지지 않았다.(그날 그 에고 강한 밥 딜런도 시큰둥한 표정을 하면서도 나머지 뮤지션들과 끝까지 한 방에 남아 있었다) 그래서 그날은 그냥 쉴라 이 홀로 미니애폴리스 사단의 일원으로서의 참가에 의의를 둘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기획자들이 프린스의 솔로 파트로 염두에 두고 있던 파트는 잔뜩 긴장한 휴이 루이스(Huey Lewis)에게 돌아갔고, 그는 이 파트를 훌륭하게 소화해 냈다. ↩
- 개인적으로 가장 좋아하는 솔로 파트는 신디 로퍼(Cyndi” Lauper)의 파트다. 다큐에서 신디 로퍼 파트에서 자꾸 이상한 소리가 나는 에피소드가 있는데 그 이유가 허탈하면서도 재밌다. ↩
- 예를 들면 방탄소년단이 지미 팰런 등과 같은 미국 주류 토크쇼의 백인 진행자의 도움 없이 미국 주류 음악에 편입할 수 있었을까?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