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arl Marx and Friedrich Engels
Came to the checkout at the 7-11
Marx was skint, but he had sense
Engels lent him the necessary pence
칼 맑스와 프리드리히 엥겔스가
7-11 계산대에 갔어.
마르크스는 빈털터리였지만 분별력은 있었지.
엥겔스는 그에게 필요한 돈을 빌려줬어.
The Clash가 1980년 발표한 그들의 네 번째 앨범 Sandinista!를 듣고 있다.(앨범 제목부터가 파워가 느껴진다)1 인용한 가사는 이 앨범의 첫 번째 트랙 The Magnificent Seven2 의 가사 중 일부다. 뉴욕의 힙합씬에서 영향받은 랩과 비트로 구성되어 있는 이 곡은 최저임금으로 살아가는 소매판매점 노동자의 하루를 따라가며 쳇바퀴 돌듯 정신없이 돌아가는 자본주의 대도시의 일상을 묘사하고 있다.
위 가사를 인용한 이유는 흥미롭게도 개인적으로 좋아하는 프리드리히 엥겔스가 언급돼서다. 칼 맑스가 대중음악 가사에 쓰인 것도 많이 보지 못했지만,3 엥겔스는 처음 보는 것 같다. 어쨌든 그 둘이 현대로 와서 7-11에 갔다는 설정이 재밌다. 그리고 무일푼인 맑스는 엥겔스에게 돈을 빌린다. 실제 생전에 맑스가 엥겔스에게 재정적으로 많이 의지했다는 점에서 밴드의 뼈 있는 유머가 아닐 수 없다.4
By No machine-readable author provided. GS417~commonswiki assumed (based on copyright claims). – No machine-readable source provided. Own work assumed (based on copyright claims)., CC BY-SA 2.5, Link
이 노래가 뛰어난 점은 이미 독자적인 입지를 구축한 거장 밴드가 자신들만의 음악적 성(城)안에 머물지 않고 바다 건너 뉴욕의 힙합을 과감하게 받아들이는 음악적 실험을 두려워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밴드는 직접 뉴욕으로 날아가 음반 가게에서 슈가힐갱, 그랜드마스터플래시 등을 구매해서 듣고는 이들의 음악에 감화받아 이 노래를 만들었다고 한다. 그리고 노래는 뉴욕의 스튜디오에서 녹음됐다.
더불어 가사에서도 런던보다는 명암이 더 뚜렷한 자본주의 세계의 심장인 뉴욕에서의 일상 풍경이 진하게 느껴진다. 가사는 녹음 현장에서 즉석에서 싱어 조 스트러머가 만들었다는데 아마도 그러한 연유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역시 영국 뮤지션인 조 잭슨도 뉴욕에 와서 이 도시의 매력에 반해 명반 Night and Day를 만들었듯이 The Clash 또한 뉴욕 거리의 문화에 영감받아 이런 음악을 만든 것이다.
오피셜 뮤직비디오도 재밌다. 앨범 수록 버전과 조금 다르게 뉴스 앵커 톤의 해설가 이들의 공연을 소개하는 형식으로 시작하는 이 필름에는 밴드의 JFK 공항 도착 장면, 뉴욕의 거리, 공연에 모여든 군중 등의 영상이 담겨 있다. 특별히 의도된 연출 없이 눈에 띄는 거리와 공연장의 모습을 영상으로 담아 편집한 것으로 보이는 이 비디오는 그런 만큼 45년 전의 뉴욕의 풍경이 여과 없이 담겨 있어 매력적이다.
- 산디니스타 국민해방전선은 니카라과의 좌익 반군이자 후에 집권한 사회주의 정당으로 1920년대 미국이 니카라과를 침공할 때 이에 저항한 독립운동가 아우구스토 세사르 산디노의 이름에서 유래된 단어이다. ↩
- 1960년 공개된 미국의 서부 영화 제목으로 우리나라에는 《황야의 7인》이라는 이름으로 개봉됐다. 요즘은 미국의 주식 시장을 지배하는 일곱 개의 테크거인들의 별명으로 더 유명해진 듯하다. ↩
- 지금 당장 생각나는 것은 Bros의 When Will I Be Famous? 정도? ↩
- 노래에는 이 둘 이외에도 마틴 루터 킹 주니어, 마하트마 간디, 소크라테스, 플라톤, 닉슨 등 유명인들이 이런저런 재밌는 상황에 등장한다. ↩